
(제 12 회)
제 7 장
림중량의 실책
3
서진벌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두 젊은 의병이 나는듯이 말을 몰아 달리고있었다. 마치 서진벌에서 불쑥 솟아난듯 허공높이 채찍을 들이치는 그들의 숨결은 젊고 뜨거웠다.
설화마와 밤빛말이 오홍소리를 쳤다. 서일이와 황바위였다.
《형님! 더 빨리!》
뒤에서 잡아당기는 인간의 정에 마음을 너무 쓰지 말고 앞으로만 내달리라는 황바위의 생각이 담긴 말이였으나 서일이의 눈앞에는 금방 서진성을 떠날 때의 일들이 말그대로 주마등처럼 눈앞에 되풀이되며 명멸했다.
마지막으로 창검날을 고누잡아주고 떠날 때 자기를 바라보던 젊은 창검대원들의 석별의 정에 찼던 그 눈길들이 떠오른다.
큰절드리고 떠나온 할아버지의 분묘, 그옆의 칠성이무덤이 움씰거린다.
할아버지에게서 넘겨받았던 비류검을 풀어 자기것과 바꿔차던 림중량의병장, 지팽이를 짚고 못박힌듯 서서 바래워주던 황봉아저씨, 가을꽃들이 쫙 깔린 둔덕에 어푸러지며 꼬꾸라지며 멀리도 따라오던 유신검…
《서일제장, 할아버님의 그 시폭을 부디 품속에 잘 건사하오.…》하고 소리쳐주던 유신검의 반백귀밑머리가 그 목소리와 함께 따라온다.
왜구들이 지른 불속에서 자기를 업어내오고 할머니와 함께 암죽을 끓여먹여 키워준 그 정이 이런 때 이렇게 가슴아프게 안겨들줄이야!
서설봉선생의 밑에서 의기를 배우고 애국지성을 본받으며 기우는 국운을 두고 벼리고 벼려온 그 검들, 길지 않은 열아홉 서일의 인생길 풍상의 고비마다에서 그와 얽혔던 희로애락의 매듭들은 또 얼마였던가.
오늘 그 모든 일들이 서일이의 남해에로의 길우에 이렇게 한꺼번에 떠오르는것이다.
《이랴!》
서일의 뜨거운 목소리와 함께 채찍이 머리우에서 휘파람소리를 냈다.
함께 달리는 황바위는 북대봉하늘에서 허허넓은 창공을 나래치는 수리개 마음이다. 북대봉 옹달샘물을 마시고 자란 그의 눈앞에 벌써 서해의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그의 가슴속에는 대를 두고 용솟는 겨레의 정기, 썩을줄 모르는 용솟는 북대봉샘물이 굽이치고있는것이다.
흙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달리는 두필의 말, 단아한 군복차림에 큰 칼을 찬 서일이와 푸른 적삼에 빨간 댕기끝이 내비친 푸른 수건을 질끈 동이고 차돌멩이구럭을 건듯 멘 황바위를 등에 태운 말들은 오호홍소리를 내지르며 지평선 멀리 사라지고있었다.
가을빛이 짙게 물든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며 서진벌의 지열과도 같은 두 젊은 의병은 벌써 가물가물 보이지 않았다.…
이날 두필의 준마가 머리를 나란히 달려 서해가 바위둔덕에 올라서서 발굽들을 투닥거릴 때 망망한 바다는 한껏 출렁이며 몸을 크게 뒤채겨 그 호연지기를 시위했다.
《야!》
그들은 환성을 질렀다. 황바위는 서일의 손을 꽉 잡았다.
《자, 형님은 이제부터 남해바다에서 그 비류검으로, 나는 서진성에서 북대봉 차돌멩이로!》
두 젊은이는 말고삐들을 바위옆 소나무에 매놓고 한동안 모래불을 걸었다.
바다가의 물이끼오른 자그마한 바위로 물새 한마리가 날아와앉더니 녹두알만한 눈으로 두 젊은이를 바라보았다. 물새는 당신들은 어느 산골뜨기들이냐는듯 눈을 또록거리다가 훌 날아가버렸다. 대신 하얀 모래불에서 참게들이 긴 눈방망이들을 곤두세우고 옆걸음을 치며 빤히 바라보다가 그들의 큰 발자국에 놀라 쫙 헤쳐져 제구멍으로들 숨어버렸다.
허리를 굽혀 그중의 한놈을 붙잡은 황바위가 《애개개―》소리치며 홱 내팽개치자 그의 손가락을 꽉 문 제 가위다리를 남겨놓은채 게란 놈은 쏜살같이 달아나버렸다.
《허허… 임자가 산골뜨기라구 게도 놀리려드는군.》
황바위는 소리내여 웃었다.
《바위동생, 이제 돌아가면 선봉장일을 맡게 되겠는데… 그 일이 헐치 않을거네.》
《그런 말 마시우. 상놈이 어떻게 선봉장이 된단 말이우. 오르지 못할 나무를 바라보지두 말랬다구 난 애초에 재목감이 못되우다.》
《아니, 왜 자기를 그렇게 낮추나. 동생만큼 문무를 겸비한 사람이 중화의병대에 더 있겠소. 림중량의병장님은 꼭 황바위를 선봉장으로 내신할터이니 이제 보라구.》
《…》
서일이의 말에 황바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쓸쓸한 마음으로 멀리 바다지평선쪽을 바라볼뿐이였다.
인간세상에 어찌하여 빈부귀천에 따라 사람의 금새를 재여보는 법도가 생겨났단 말인가. 서일형의 말그대로 나의 문무가 아무리 뛰여났다해도 노비의 자식인데야 어찌 선봉장이라는 그런 직분이 차례질수 있겠는가.
헤여질 때가 된 그들은 서로 억세게 그러안았다.
《형님, 부디 살아서 만납시다.》
《황바위, 꼭 왜적을 치는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장수가 되길 바라네.》
《형님, 고… 고맙소이다. 내 형님의 그 마음을 영원히 잊지 않겠소이다.》
작별인사를 나누는 두 의병들 머리우로 갈매기들이 한껏 나래를 펴고 아욱아욱 하며 애된 소리를 내질렀다. 그것들도 이들의 리별을 아쉬워하는듯싶었다.
《자, 그럼 이젠 헤여지자구.》
하며 서일이 먼저 말허벅을 걷어찼다. 그러자 설화마가 호홍소리를 내며 네굽을 안고 달리기 시작했다.
《형님, 잘 가시우!》
황바위의 웨침이 바다가에 메아리쳤다. 이어 말머리를 돌린 그도 《이랴!》하고 말을 몰아갔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향해진 두 말은 잠시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바다물이 두 젊은이가 찍어놓고간 하얀 모래불우의 발자국들을 소중히 쓸어주었다.…
황바위가 서일을 서해바다가까지 바래주고 돌아온 다음날 중화의병대에서는 선봉장을 선출하기 위한 중요한 모임이 열렸다. 여러 제장들이 참가한 회의는 시비를 가르는 그런 모임이 아니였다. 선봉장선출은 중화의병대의 의병장인 림중량자신의 선택권에 한한 문제여서 누구나 감히 조언따위를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의병대에서 그럴 권한이 있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모사 윤봉이였다.
선봉장감 고르는 문제가 나섰을 때 윤봉모사는 대뜸 황바위를 선출했었다.
《의병장님, 싸움의 승패는 장군의 지략에 달려있습니다. 황바위야말로 문무를 다 갖춘 보기드문 인재올시다. 마땅히 그가 우리 중화의병대의 선봉장이 되여야 할줄 아오이다. 그리구 림중량의병장님도 그를 이 나라의 장수감으로 될 인재라고 늘 외워오지않았소이까.》
《그건 사실이요. 하지만 요즘 둘러보니 세상법도는 그것을 허용치 않는구만. 멀게는 김응서방어사가 그전에 사헌부(량반들의 행동을 규찰하는 중앙관료기구) 감찰로 두번이나 임명되였으나 문벌이 〈미천〉하고 평안도출신인것으로 하여 면직되여 녀진방어의 일선인 벽동 아이만호로 전직되였고 가깝게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리순신이 남해바다에서 제해권을 장악하는데 큰 공로를 세운것으로 마땅히 3도를 통솔하고도 남음이 있으련만 조정에서는 그가 비천한 선비출신의 무관이라고 직품마저 올려주기 꺼려한다는구만. 하물며 노비의 천한 신분을 가진 황바위를 선봉장으로 내세웠다가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게 될지 그것이 꺼려 그러네.》
《의병장님, 후환이 두려워 대들보감을 멀리한다면 꼭 더 큰 후환이 뒤따르게 될줄 아오이다.》
《그만하오!》
윤봉모사의 의견이 언제나 정확하였다는것을 잘 아는 림중량이였건만 선봉장선출문제만은 그의 말대로 할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제장들이 둘러앉은 군막안을 거닐고있는 림중량의 심정은 지금 이런 일로 하여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림중량 역시 황바위가 이번에 소금싸움을 그르친 일은 있으나 의병대의 선봉장으로는 나무랄데가 없다는것을 인정하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의병대라고 해도 선봉장이면 장수나 같은건데 그런 중임을 어찌 노비의 자식인 황바위한테 맡긴단 말인가. 이제 란리가 끝나고 태평세월이 다시 돌아오면 무질서했던 전시의 상벌이 엄격해질터인데 평백성중에서도 제일 하바닥에서 딩굴던 노비의 자식이 량반의 등을 디디고 올라서게 만든 리유를 어떻게 변명하겠는가.
물론 포악한 량반들이 백성들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그들의 등껍질을 벗기며 원한을 사고있는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리치가 그렇게 만들어진것을 림중량, 자기 혼자의 힘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도 량반은 량반이다!)
림중량은 속으로 중얼거리고나서 서글퍼진 눈길을 들었다.
기대어린 눈길로 자기를 바라보는 제장들속에서 긴장과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서있는 성표의 모습이 안겨들었다.
림중량은 마음을 다잡으려는듯 헛기침을 깇고나서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모두 듣거라. 평양성에 기여든 간악한 왜놈무리들과 마지막판가리싸움이 박두한 이 시각 우리 중화의병대의 선봉장은 마땅히 용맹과 힘만이 아니라 재주와 함께 견문과 출신을 겸비한 인재를 뽑아 선발하여야 한다. 나는 우리 중화의병대의 기강과 명성을 더 높이 떨치기 위하여 성표제장을 선봉장으로 임명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 제장들모두가 아연해졌다.
성표만이 제 귀를 의심하듯 머리를 번쩍 쳐들고 림중량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가슴이 쩌릿해지면서 누를수 없는 쾌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고맙소이다. 의병장님, 아무렴 의병장님도 량반출신인데 이 성표가 상놈들밑에 눌리우는것을 바라겠나이까.)
성표는 저도모르게 눈물까지 글썽해서 림중량의 앞으로 걸어나와 두손을 맞잡고 머리를 조아렸다.
《미흡한 저를 명성높은 중화의병대의 선봉장으로 앞세워준 의병장님의 산같은 기대에 충정으로 보답하겠소이다.》
림중량은 그에 답례하듯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좌중에 대고 다시 알렸다.
《그리고 이번 소금싸움에서 범한 실책으로 제장자리에서 제외시켰던 황바위는 다시 제장으로 임명하노라. 각 제장들은 새로 임명된 성표선봉장을 잘 받들겠다는 뜻에서 그에게 인사를 올려라.》
의병장의 령에 따라 제장들은 차례로 나와 신임선봉장 성표에게 인사를 했다.
엄숙한 표정을 짓고 제장들의 인사를 받던 성표는 자기앞으로 다가와 머리를 숙이는 황바위를 보자 한바탕 통쾌하게 웃고싶은 심정을 겨우 참았다.
성표를 선봉장으로 임명해놓고 돌아서는 림중량의 심중은 저으기 어수선하고 께름직한게 꼭 무슨 불행이 따를것 같은 예감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