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7 장

림중량의 실책

1

 

쌍가마는 요사이 완전히 딴사람이 되여버렸다. 서설봉 부인을 만나고온 황바위를 쓴외보듯 하는 그를 보고 모두들 혀를 찼다.

쌍가마는 사람들과도 휩쓸리지 않고 늘 혼자서 표창던지기훈련에만 열중하였다.

하지만 쌍가마의 가슴속에 쌓인 황바위에 대한 원망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사실 쌍가마가 왜놈들에게 붙잡혔을 때 창황중에서도 먼저 떠오른것은 황바위의 모습이였다. 오빠처럼 믿고 의지하던 황바위와 다시는 만날수 없다는 비통한 생각에 가슴이 찢기는것만 같았다.

하지만 왜놈들이 자기를 미끼로 함정을 파놓고 황바위를 붙잡으려고 한다는것을 알았을 때 정신을 펀뜩 차렸다. 그래서 입에 틀어막혔던 헝겊을 뱉아버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던것이다.

《오빠! 오지 말아요!… 오면 안돼요!…》

그러나 북대봉의 호랑이처럼 성이 나서 펄펄 뛰는 황바위를 멈춰세우기에는 쌍가마의 목소리가 너무도 연약했었다.…

쌍가마는 황바위를 사전에 제지시키지 못한 자기한테 모든 잘못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탔다.

그때 자기가 황바위를 잘 설복시켰더라면 그렇게 헤덤비지 않았을것이며 초담이장의 좌상로인과 끌끌한 젊은이들이 희생되는것과 같은 참사를 빚어내지 않았을것이다.

쌍가마는 가슴아픈 생각을 더 하고싶지 않아 표창이며 병쟁기를 벼리는 야장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메질소리가 힘차게 울리는 야장간에 들어서니 쌍가마가 부탁했던 표창 스무개가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쌍가마는 그저 담담해서 벼려놓은 표창들을 만지작거렸다.

메질을 하던 구레나룻의 의병이 일손을 멈추더니 의아한 눈길로 쌍가마를 바라보았다.

여느때 같으면 번쩍이는 표창들을 움켜쥐고는 《아이, 정말 이쁘게도 생겼네.》하고 말해서 야장간사람들을 한바탕 웃기군 하던 쌍가마였던것이다.

《왜, 표창이 마음에 안드나?》

구레나룻이 넌지시 물었다.

쌍가마는 그제야 황황히 표창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오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이때 성표가 야장간에 들어서며 제집 하인들에게 호령하듯 꾸지람을 했다.

《여기선 팔자가 늘어졌군. 언제 한가하게 말장단할새가 있다던가?…》

초담이장의 일을 뒤수습하는데서 《공》을 세운것으로 하여 어깨가 으쓱해진 성표는 제가 선봉장이라도 된듯이 성안의 이일저일에 다 삐치고있는터였다.

성표의 음험한 눈길이 한쪽에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쌍가마의 자태를 훑으며 지나갔다.

그의 시선을 느끼는 순간 쌍가마는 독사가 자기 몸을 핥으며 지나가는것처럼 오싹해졌다.

원래 쌍가마는 성표라는 인간을 좋지 않게 보아온데다 그가 소금싸움을 두고 황바위가 처녀한테 빠져 죽을둥살둥 모르고 왜놈의 함정에까지 갇히는 신세가 되였다는 말을 내돌렸다는 소리를 들은 다음부터는 그의 그림자만 보아도 역겨워졌다.

《오늘중으로 내가 말한 병쟁기를 다 벼려놓게.》

성표는 쌍가마가 자기한테 눈길 한번 돌리지 않는데 밸이 뒤틀린듯 이렇게 한마디 내뱉고 돌아섰다.

성표가 사라지자 야장간사람들은 내놓고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눈꼴이 시여서… 허, 자기가 선봉장이라도 된것처럼 노누만.》

《그러게말일세.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들볶는다니까.…》

풀무질을 하던 중년사나이가 한마디 끼여들었다.

《그래도 성표 그 사람이 이번에 선봉장으로 선출된다는 말이 돌아갑데.…》

구레나룻이 그 말에 벌컥 성을 냈다.

《아니, 성표가 선봉장이 된다구?… 어림없어, 선봉장은 황바위가 적임자야.》

풀무군은 그 말에 코방귀를 뀌며 응수했다.

《황바위는 안될걸세. 황바위가 그르친 소금싸움을 바로잡은게 성표란 말이요. 의병장님도 그렇게 보고있다네.》

쌍가마는 더 듣기가 괴로워 얼른 표창을 싸들고 황황히 돌아섰다.

숲속으로 종종 걸음을 놓는 그의 가슴은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자기가 늘 표창훈련하던 숲속에 오똑 멈춰선 쌍가마는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분을 터치듯 과녁을 향해 표창을 날리기 시작했다.

휙―휙 휘파람소리를 내며 표창이 연방 목표판에 날아가 박혔다.

쌍가마는 손에 들려있던 표창을 죄다 뿌려던지고나서야 풀썩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너무 흥분했던탓인지 온몸이 매시시 맥이 풀려났다.

과녁에 촘촘히 박혀있는 표창을 바라보느라니 자기에게 표창훈련을 시키던 황바위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 …

마지막 새벽별이 꼬리를 감춘 이른새벽, 서진성 한귀퉁이에서는 황바위가 쌍가마에게 단검치기훈련을 시키고있었다. 새벽눈을 밝혀주기 위해서였다.

시작한지가 오랜듯 쌍가마의 귀밑머리가 땀에 젖어 귀밑에 착 붙어있었다.

쌍가마가 오돌차게 들이치는 단검이 씽― 팍― 소리를 내며 성벽에 기대여 세워놓은 통나무에 꽂혔다. 황바위는 거듭 반복구령을 주었다.

《더 똑바로! 더 빨리!》

황바위는 범골바위들을 숭숭 뚫어놓은 자기의 차돌멩이자국에 쌍가마가 단검을 들이쳐주는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마음이 매모지면 강쇠도 뚫는다지만 이렇게도 빨리 단검치기솜씨가 늘어가는것이 놀랍기만 했다.

이윽고 마지막 칼이 통나무에 들이박혔다. 열두자루 칼중에서 땅에 떨어진것은 두개뿐이였다.

황바위는 그 두개를 집어들고와서 쌍가마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다시!》

그러더니 황바위는 통나무과녁앞에 가 서는것이 아닌가.

《에그머니나.》

쌍가마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그 순간 황바위는 북대봉의 달밤 그 너럭바위에서 림중량이 자기를 위해 가슴을 내대고 돌멩이치기를 가르치던 일을 생각한것이리라.

《자!》

황바위는 칼날들이 박힌 통나무앞에서 쌍가마에게 소리쳤다.

그의 량손에는 표창이 들려져있었다.

쩌르릉― 황바위의 굵은 목소리가 먼저 쌍가마의 가슴에 날아가 박혔다.

《쌍가마, 저기 오빠가 누워있어. 오빠가 보구있단 말이야!》

그 소리에 쌍가마가 입술을 옥물고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쥐였다. 그러나 차마 내치지는 못하고 머뭇거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쌍가마, 그 칼을 못던지면 쌍가마도 죽고 나도 죽어, 알겠어?》

순간 쌍가마의 손에서 날아간 칼이 해살을 받아 번쩍이였다. 그 칼날은 맞받아날아온 황바위의 표창에 번쩍하는 불꽃과 함께 쨍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나 던져가지고는 왜놈들을 못죽여. 꽃골어머님이 무덤을 차고일어나.》

다음순간 똑바로 날아드는 칼날을 황바위는 옆으로 한발작 옮겨서며 피하였다. 칼날은 통나무과녁에 들여박혔다.

쌍가마는 그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칼을 집어들고온 황바위에게 《저… 누운 오빠는 나에게 욕을 못하오. 오빠대신… 오빠대신 나에게 더 욕을 해주오.》하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생각에서 깨여난 쌍가마는 그제야 자기의 두볼을 타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다는것을 깨닫고 황급히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2

(1)

 

황바위와 한대걸이 북대봉에서 돌아온 이날 서진성안은 별로 흥성거렸다.

천만복의 어머니는 자기 내외가 이고지고온 기장쌀과 여러가지 음식감으로 의병들의 점심식사를 푸짐하게 차렸다.

쌍가마도 음식을 만드는 만복이 어머니를 도와 팔을 걷고나섰다.

만복이 어머니는 남복차림을 하고 잽싸게 음식감을 손질하는 쌍가마에게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처녀가 〈북대봉호랑이〉색시감이라지?》

그 말에 쌍가마의 얼굴이 홍당무우처럼 빨개졌다.

《늙은이 말을 탓하지 말라구. 내 너무 대견해서… 참, 조참봉놈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키크고 얼굴이 좀 얼금얼금하는 그 착하디 착하던 총각이 처녀의 오빠였다며?》

그 말에 쌍가마의 두눈에 저도모르게 눈물이 핑 고였다.

《내가 주책없이 아픈 상처를 건드렸구만.》

만복이 어머니는 후― 하고 한숨을 쉬였다.

《로친네, 일손을 다그치라구요. 그러다 점심 늦겠소.》

천덕로인이 흥이 나서 돌아가며 재촉했다.

림중량은 천덕로인내외의 성의를 마다할수가 없어 군막 앞마당에 가져온것으로 의병들의 점심을 차리게 했다.

서진성에 의병대가 생긴 후 모처럼 마련된 화기에 넘친 좌석이였다.

왜놈들의 준동을 살피기 위하여 사방에 배치한 의병들을 내놓고는 모두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림중량은 손로인, 윤초시, 공로인을 비롯해서 천덕로인이랑 황봉, 유신검 등 나이지숙한 사람들과 상을 같이하고 둘러앉았다.

천덕로인이 자기가 손수 담그어 지고온 기장술을 한사발 가득 부어 림중량의병장에게 먼저 권하였다.

《의병장님, 저 섬나라오랑캐무리들을 하루빨리 이 땅에서 내쫓아주기를 바라는 우리 백성들의 마음을 담아 드리는것이오니 받아주소이다.》

두손으로 술을 받아든 림중량은 이 나라 백성들의 애국지성에 가슴이 뭉클해와 한참이나 그대로 있다가 천덕로인에게 진심으로 사의를 표했다.

천덕로인은 황송해하며 감개무량해서 말했다.

《우리 늙은 내외가 수고를 했으면 얼마나 했겠소이까. 오히려 우리가 오늘 큰 힘을 얻었소이다.

자고로 명장아래 약졸이 없다고 이렇게 의기에 넘쳐있고 하나같이 끌끌한 의병들을 대하고보니 의병장님의 고심어린 노력이 헤아려지오이다. 나라에서 진작 이런 군사들을 길러놓았더라면 백성들이 이런 란을 겪지 않았으련만…》

그 말을 듣는 의병들모두의 가슴속에서는 하루빨리 이 땅에서 원쑤들을 쳐몰아내고 겨레의 사무친 원한을 풀어주고야말 의기가 용솟음쳤다.

황바위는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어져 천덕로인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젊었을 때는 기골이 장대하고 기상이 름름했을 천덕로인은 비록 농사군으로 늙어왔지만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북대봉의 샘물처럼 티없이 깨끗하고 정결했다.

황바위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 겨레가 지니고있는 참된 애국의 넋을 다시금 느꼈다.

림중량은 진중해진 좌석의 흥을 돋구려는듯 술잔을 높이 들며 좌중에 대고 말했다.

《자, 겨레의 념원을 하루빨리 풀어주기 위하여 모두 듭시다.》

의병들도 림중량을 따라 맹세의 술잔을 높이 들어 마시였다.

서로 술잔들이 오가고 푸짐한 음식들이 들어오자 좌석은 흥성거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아진 한대걸은 문득 비류강가에서 그전에 림중량과 도시락밥을 함께 나누던 생각이 나서 그에게 청을 드렸다.

《의병장님, 오늘은 모처럼 마련된 자리인데 후날에도 기억에 남게 시 한수 읊어주시오이다.》

의병들모두가 그의 청에 찬성했다.

《여러분네들, 이자리에서 시를 읊기보다 칼춤을 추는게 더 어울릴듯 하오. 이 칼은 서설봉선생이 내게 준 칼이요. 윤봉모사는 서설봉선생이 순국하실 때 남기신 그 시를 선률에 맞춰주오.》

이윽고 윤봉의 절절한 목청에 맞추어 의병장의 검무가 시작되였다.

 

한평생 장검의 푸른 날 세웠건만

슬프다 어언 늙어 왜적을 못치는가

서리서리 맺힌 원한 검속에 벼려안고

내 하늘 날아돌며 내 겨레 지키리라

 

노래는 절절하고 검날은 해빛을 받아 푸르렀다. 하지만 림중량의 두눈은 그 검빛보다도 더 황황했다.

의병장의 검무를 처음 보는 백성들과 의병들의 마음은 비장했다. 산악도 베일듯한 그 칼춤의 기세는 사람들의 심금을 틀어잡았다.

노래가 익어갈 때 서일이 칼날을 빼들고 달려나오더니 림중량과 대검무를 추었다. 이름높은 검객 서설봉선생 손자의 검무가 어찌 비범하지 않으랴!

이때 조용하던 군중속에서 격동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의병장님, 저는 천한 백정으로서 의병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아본 사람이올시다. 외람되오나 오늘 의병장님의 뜻깊은 검무를 받들어 저도 춤을 출가 하옵는데 허락해주사이다.》

백정 원달이였다. 그는 림중량의 장한 의기에 격동되여 도끼를 메고 일어선것이다.

《자 어서!》

림중량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춤판에서는 도끼날이 유별나게 번쩍거렸다.

량반과 백정이 함께 추는 춤판, 실로 관례를 뛰여넘은 희귀한 춤판이였다.

《저희들도 의병장님 칼춤을 받쳐드리겠소이다.》

이번에는 봉화군들과 함께 칼춤군인 정수돌이가 춤판에 뛰여들었다.

《우리 아낙네들이라고 춤이야 못추갔소.》

호영이 어머니를 따라 곽과부라고 불리우는 아낙네가 춤판에 뛰여들었다. 이윽고 서진성안에서 북장단, 꽹과리장단에 맞춰진 《강강수월래》가 힘차게 울려퍼졌다.

천덕로인, 손로인, 공로인, 윤초시도 춤판에 뛰여들었다. 손로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공로인이 하늘을 우러르며 노래를 불렀다.

 

달떠온다 달떠온다

동해동천에 달떠온다

달아달아 말물어보자

강강수월 언제던가

 

평양성밖 자그마한 토성, 서진성의 노래소리는 높기도 했다. 아니 조선의 얼, 조선의 기상은 뜨겁기도 했다. 성루높이에서 《의》자가 한껏 나래를 펴고 펄럭이였다.

호영이 어머니가 목청을 돋구어 울음절반의 노래를 불렀다.

성벽밑에 있는 서설봉, 칠성의 무덤을 두고, 왜놈에게 빼앗긴 아들을 두고 목이 메였던것이다.

 

떨쳐보세 떨쳐보세

우국충정 떨쳐나보세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

 

정가롭고 의기로운 백성들의 심혼이 썩지 않고 영원토록 굽이쳐갈 내 겨레의 뜨거운 얼들이 가슴마다에서 솟구쳐진 노래였다.

각이한 인생길 굽이마다에 잡아매여졌던 가닥들은 서로 달라도 나라를 왜적에게 빼앗기지 말자는 한마음의 뜨거운 분출이였다.

이때 만복이가 고삐를 잡은 말에 김억겸이를 태우고 성안으로 들어섰다.

림중량이 서일의 할머니 편지를 읽고 남진의 김억겸, 동진의 윤린에게 《황천왕동》이와 의병들을 급히 보냈던것이다.

《아, 우리 〈천왕동〉이가 정말 의병구실을 하는구나.》

아들을 보며 그의 어머니가 기뻐했다.

《〈천왕동〉이, 정말 장하이.》

사람들의 칭찬에 천덕로인의 입이 벙실 버그러지며 《우리 천가집안에 사내구실 못하는 놈 없지요.》해서 와그르르 웃음판이 터졌다.

이윽고 림중량은 서일이를 자기옆에 세우더니 사람들을 둘러보며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러분! 오늘 한가지 큰일을 여러분과 상론하려고 하오.》

사람들의 눈빛이 림중량에게로 쏠렸다. 림중량은 편지 한장을 품속에서 꺼내들었다.

《이것은 창검제장 서일이 할머님께서 오늘 보내온 편지입니다.》

물을 뿌린듯 조용해진 장내에 림중량의 절절한 목소리가 퍼져나갔다.

《여러분들도 아다싶이 남해바다는 서일제장의 부모들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곳이며 조부님도 생존시에 왜놈들과 싸우신 곳이요. 이번 란리에는 그의 장인까지도 동래성싸움에서 장렬하게 전사했소. 서설봉선생은 생존시에 국란이 일면 왜놈을 치려 남해가로 손자를 데리고 나가겠노라고 하셨댔소. 조부님께서 순국을 하신 다음 서일제장도 그 뜻을 이어 남해출전할 생각이 간절했을것이요.

그러나 조부님께서 나를 도와 평양성을 하루빨리 수복하라고 유언을 남기신때문에 그 말을 못하고있었을것이요.

나도 유복자 외동손자를 키우신 할머님심정이 헤아려져 망설이다가 서설봉선생 순국소식을 알려드릴겸 이번에 한대걸별동대장과 황바위를 북대봉으로 보냈던것이요. 그것은 국란이 한두해에 끝날것 같지 않은 형편에서 우리 중화의병대에서도 남해 큰 싸움판의 천하명장밑으로 사람들을 보내여 큰 장재감으로 키웠다가 우리가 왜놈을 몰고 남해바다가로 나가는 날 그와 힘을 합치게 하자는건데 거기엔 서일제장이 제일 적임자란 말이요.

그래서 이런 의사를 전해드렸는데 서설봉 부인은 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여왔소. 내 이제 그 편지를 읽을테니 신중해들 들어보시오.》

사람들은 긴장해지고 서일이는 편지에서 눈을 못뗐다.…

 

《왜적을 치는 어려운 싸움을 하는 의병장님께 외람되게 산골늙은이 분수에 맞지 않는 말씀 올리게 됨을 관용하시오이다.

남편이 생의 마지막까지 나라와 백성을 지켜 싸우다가 순국하신것은 그이 평생에 바라던바이고 세상을 뜨면서 부모, 장인의 복수를 위한 손자의 남해출전에 대하여 유언을 남기시지 않은것도 장군을 도와 평양성 관문을 지키는 싸움이 소중하기때문이였으리라고 생각하옵니다.

의로운 군사를 거느리신 장군께서 결심하신 일에 내 무슨 왈가왈부하는 요망스러운 의사를 따로 하오리까?

국란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고 내 손자를 남해로 출전시키려는 장군의 혜안에 머리가 수그러질뿐이오이다.

한낱 제 혈육의 원쑤가 아니라 나라의 큰 적을 치기 위하여 중화의병대의 력량으로 남정을 시키시려 하시거니 지하에 계신 남편도 기뻐하실줄로 아옵니다.

바라건대 의병장님께서 우리 유복이를 남해 큰 싸움터로 보내실 때 이 할미를 대신해서 조부님분묘앞에서 그의 군복앞섶을 바로잡아주시고 할아버지가 쓰시던 검을 채워보내도록 해주소이다.

이 글을 보내는 무인집 늙은 과부의 심정이 어떤것인지 알고도 남으실 의병장님이시온데 내 더 무슨 긴 말을 하오리까.

천년고도 우리 평양을 수복하는 의로운 싸움에서 언제나 무훈이 있기를 축원하옵니다.

임진 9월 북대봉 산곡에서

서설봉의 안해 올림》

 

장내는 조용했으나 가슴들에서 불뭉치들이 꿈틀거렸다.

대의를 놓치지 않는 의병장의 그 기상과 자손에 대한 참된 사랑을 다하는 무인집 로할머니앞에 머리를 숙였다.

《아, 우리 의병대를 왜놈들이 감히 어쩌지 못하리로다.》

윤초시의 감탄이였다. 그런데 이때 황바위가 일어서더니 절절한 목소리로 웨치듯 했다.

《의병장님과 할머님의 말씀이 천만지당하오나 평양성 왜놈들과의 싸움을 앞두고 서일제장을 보내는것은 마땅치 않은줄 아오이다. 서일제장은 의병장님의 오른팔이오이다. 저에게는 돌팔매질이나 하는 재간은 있지만 서일제장이 가지고있는 오묘한 전법과 능숙한 의병전술과 지혜가 없소이다.

의병장님! 저를 남해로 보내주사이다. 제 가서 서일제장의 삼대원한을 씻어드리겠소이다.》

서일이가 그 말을 밀막아나섰다.

《그건 안되오이다. 황바위야말로 의병장님의 오른팔입니다. 저에게는 그가 겸비하고있는 장력을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푸른갑옷〉을 입은 북대봉호랑이 황바위가 없는 중화의병대가 무슨 의병대이겠소이까.…》

유신검이 근엄해진 얼굴로 일어서더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 전 양덕고을 화엄산시절부터 서설봉선생께서 림중량선다님과 흉금을 터놓은 심허지우로서 닥쳐올 왜란을 두고 나라가 삼꺼풀(삼의 껍질이나 꺼풀)처럼 허트러지고 군사방비가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함께 가슴들을 치시던 일을 목격한 사람이올시다. 그러면서 왜적이 덮쳐들 때에는 백성들을 불러일으켜서 내 나라 반만년 청사우에 섬오랑캐의 오욕이 남지 않게 하자고 철석같은 언약을 다질 때 저도 그옆에서 함께 운 사람이올시다.》

그의 말에 장내는 근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니 서일제장의 남해출전은 부모의 복수만이 아니고 나라와 겨레를 더 크게 지키려던 서설봉선생의 뜻이며 이것이 서설봉선생께서 손자님에게 의병장님을 잘 도우라 하신 유언을 더 크게 받드는 일이라고 생각하옵니다.》

군중들속에서 손벽소리가 터졌다.

유신검이 하던 말을 계속했다.

《서일제장을 남정시키는것은 국란의 전망을 내다보시는 의병장님의 넓으신 안목이며 비록 평양성 왜놈들과의 간고한 싸움이 앞에 있지만 더 큰 싸움을 위해서 보내시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소.》, 《옳은 말이요.》하는 호응소리가 높아졌다.

김억겸이 한마디 했다.

《인간의 신의란 그가 살아있을 때 보답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가 간직했던 뜻을 이루어지게 도의를 지키는데 있지 않습니까.》

황봉이도 한마디 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의병장님과 서설봉선생의 명철한 선견지명이올시다.

저도 이번에 서일제장의 남해출전은 그의 조부모님과 의병장님 그리고 우리 전체 의병들의 뜻으로 떠나보내는것으로 생각합니다.》

윤초시가 말을 받았다.

《옳은 말씀이요. 서일제장이 할 몫을 우리모두가 해냅시다.》

《서일제장! 뒤일은 걱정말고 우리 평양 중화의병대의 용맹을 남해바다에 떨쳐주소.》

《남해로 간들 서일제장의 마음이 어떻게 이 평양관문을 잊겠소.》

손로인이 큰것을 느낀듯 말했다.

《우리도 이제 의병장님이랑 평양성의 왜적을 몰고 그 남해로 나갈텐데… 서일제장은 한발 먼저 나가는셈이지.…》

격동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튀여나오는데 한대걸은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용솟는 물줄기도 옳바른 곬에 들어서야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끌어주는이의 손길이 없었던탓에 값없이 스러져 빛을 잃은이 얼마였던가. 그래 림중량의병장이 서설봉선생의 뜻을 이어주는구나. 서일제장은 서설봉할아버지와 림중량의병장의 뜻을 안고나가는것이다. 그리고 그의 등을 떠밀어주는 서설봉 부인의 큰 사랑을 안고나가는것이다. 이런 의병장, 이런 인재들이 있는 한 결코 우리는 섬오랑캐따위들에게 망하지 않을것이다!)

뜨거운 마음들이 엇갈려드는데 서일이 림중량의병장앞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한가지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소이다. 앞으로 중화의병대의 인원이 더 불어나게 되면 그만큼 싸움판도 커질것이니 부득불 의병장님의 오른팔이 되여 앞장에 서야 할 선봉장을 두어야 할것이오이다. 황바위를 중화의병대 선봉장으로 삼아주십시오. 그는 결코 왜놈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말그대로 북대봉호랑이가 되여 그놈들을 물어제낄것이고 의병장님을 있는 성의를 다해서 받들어드릴것입니다.》

순간 장내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서일의 말에 의병들모두가 놀라움과 기쁨을 금치 못했으나 유독 가슴이 섬찍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성표였다.

림중량의 신임을 받고있던 서일이 남해로 떠나가면 선봉장으로는 틀림없이 자기가 될거라고 생각하고있던 그였던것이다. 황바위가 선봉장으로 된다면 량반의 자식이 상놈의 령을 듣게 될것이니 눈앞이 다 캄캄해지는것만 같았다.

아무리 란시라 해도 반상이야 엄하게 구별해야 할게 아닌가.

《암, 그렇구 말구. 황바위야 마땅히 우리 중화의병대 선봉장감이지.》

《여부가 있나, 〈푸른갑옷〉을 누가 당할라구.》

흥이 나서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의병들의 말을 들으며 성표는 속이 뒤틀리는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그것은 후에 론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하자. 서일제장은 래일 아침 떠나도록 하라! 그리구 황바위는 서일제장을 서해바다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어야겠다.》

《알겠소이다!》

림중량의 령에 서일이와 황바위는 머리를 조아렸고 주위의 사람들은 제각기 제나름대로의 주견과 결론을 내리며 끄덕이던 머리를 깊이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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