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6 장

피눈물이 서린 종문서

1

 

드디여 서진성에 들어선 황바위와 한대걸은 오래간만에 고향집에 들어선듯 한 기분이였다.

마음이 흥그러워진 한대걸은 싱글거리며 황바위에게 말했다.

《누구누구해도 황바위 임자를 기다리는거야 쌍가마일걸세. 임잔 쌍가마부터 만나보게. 의병장님은 내 먼저 만나지.》

그 말에 황바위는 달다쓰다 아무말이 없이 그냥 뒤따라걸었다.

림중량은 한대걸이와 황바위를 보자 몹시 반가와했다.

《먼길에 수고들 했네그려.》

림중량은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는 황바위를 의미있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북대봉에 다녀온 일은 한대걸제장에게서 들으면 되는거구. 황바위는 돌아가서 로독을 풀게. 사람들도 만나보고…》

림중량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린 황바위는 거북해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림중량은 한대걸이를 가까이에 앉히고나서 물었다.

《서일이 조모님이랑 무고하시던가?》

《예. 기력이랑 여전하신데 우리 억남이를 키우느라 고생이 많소이다.》

《그럴테지. 참, 선생님 순국소식 전해드리기가 힘들었겠구만.》

《아니올시다. 서설봉 부인의 기풍에 우리가 오히려 머리를 수그렸소이다.》

한대걸은 서설봉 부인을 만났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고나서 그가 전해달라고 한 편지를 내놓았다.

그 편지를 다 읽고난 림중량은 서설봉 부인의 애국지성에 감탄한듯 군막밖의 먼 하늘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때 막동이가 군막안으로 들어섰다.

《의병장님, 어떤 로인내외분이 아들을 찾아왔다고 하면서 먼저 꼭 의병장님을 만나뵙겠다구 합니다.》

《엉?》

림중량보다 한대걸이가 먼저 일어섰다.

벌써 군막앞에 양덕고을 천덕로인과 그의 안해가 와있었다.

로인은 커다란 짐을, 그의 안해는 큼직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있었다.

《아니? 저이들이 벌써 따라왔나. 허, 죽을내기로 쫓아왔군.》

한대걸은 놀랐다.

《누구요?》

림중량이 물었다.

《오다가 비류강나루터에서 만난 양덕고을에 산다는 농민량주인데… 하나 남은 막내아들을 여기 중화의병대로 보내놓고 제구실을 하는지 알아보려구 찾아온다구 했소이다.》

《장한 마음들이군.》

《저렇게 우리 의병들에게 맛보이겠다구 자기들이 지은 햇곡식까지 이고지고…》

《음, 자 어서.》

짐을 받아내려주며 한대걸이 로인량주에게 인사시켰다.

《이 어른이 림중량의병장님이십니다.》

천덕로인은 수건을 벗어들고 머리를 숙였다.

《의병장님, 성함은 익히 들었소이다. 이렇게 백성들을 위하여 국난을 막으시노라… 정말 고맙소이다.… 저는 의병장님밑에 와있는 천만복이의 애비올시다.》

《그렇습니까. 참 어려운 걸음을 하셨소이다.》

림중량은 로인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었다.

만복이 어머니가 머리를 숙이며 조심스레 림중량에게 물었다.

《의병장님께서 제 아이를 알고계신지요? 천만복이라구.》

림중량이 모사 윤봉을 돌아보며 물었다.

《천만복이가 누구더라?》

여기로 온 서일이도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것을 본 만복이 어머니는 후―하고 한숨을 쉬며 락심한 표정을 지었다.

《의병장님이 이름도 모르는 그런 자식을 의병으로 내보낸것이 잘못이지…》

《제가 의병장구실을 잘못해서 데리고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다 모릅니다. 이거 면목이 없소이다.》

《그게 제구실을 했으면야 의병장님이 이름도 모르시겠소이까? 제 자식 못난건 생각못하구 이렇게 찾아까지 오고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소이다. 분하외다. 같은 동갑에 그 〈푸른갑옷〉을 입었다는 의병의 소문은 짜한데…》

만복이 어머니는 옷고름으로 눈굽을 눌렀다. 림중량은 가슴이 찌르르해졌다.

(이런 부모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왜 제구실을 못하겠는가. 정말 나야말로 제구실 못하는 의병장이로구나!)

림중량이 이런 생각으로 얼굴을 붉히는데 키가 늘씬한 애젊은 의병 하나가 뛰여오며 《아버지, 어머니.》하고 소리쳤다.

《저게 〈황천왕동〉이가 아닌가. 엉? 그럼〈황천왕동〉이의 본이름이 천만복이였는가?》

림중량의 눈이 커졌다.

《아니, 그럼?!》

만복이 부모들도 영문을 몰라했다.

달려오던 천만복이 림중량의병장의 뜻밖의 말에 걸음을 주춤하는데 림중량은 기쁜듯 그의 부모들에게 껄껄 웃으며 큰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이 림중량이 아드님이름이 천만복이라는것은 몰라도 〈황천왕동〉이라는것은 잘 압니다.》

로인내외는 더욱 영문을 몰라했다.

《〈황천왕동〉이야 몇십년전에 있었던 림꺽정의 처남이름이 아니오이까?》

《옳습니다, 하하하…》

림중량은 호탕하게 웃고나서 로인내외앞에 그의 아들을 내세워주었다.

《로인님들, 아드님은 훌륭한 의병이올시다. 표창질도 잘하지만 그 빠른 걸음걸이로 의병대의 큰 일들을 맡아해냅니다. 부모님들!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하하하…》

림중량은 다시한번 크게 웃어주었다.

《왜 아드님이 〈황천왕동〉이가 되였는지 내 말씀해드리지요.》

윤봉모사가 설명해주었다.

8월 초이튿날 새벽 어랑산성 왜놈들과 싸움을 벌릴 때 일이였다.

남진쪽에 있는 김억겸이가 맡은 의병들에게 긴급히 사람을 띄울 일이 생겼을 때 만복이가 나서며 그 일은 자기가 맡겠다고 했었다.

그리고는 왕복 150리가 넘는 길을 반나절 남짓한 동안에 달려갔다 왔던것이다.

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었다.

그때부터 그에게 《황천왕동》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후에도 그런 비호같은 걸음새로 해서 의병대에 큰 도움을 주었고 천만복이라면 몰라도 《황천왕동》이라면 의병부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이렇게 아들은 의병구실을 잘하고있습니다. 이제는 마음들이 놓입니까? 하하하…》

림중량은 자신도 만족한듯 기쁘게 웃는데 만복이 어머니는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럼 왜놈은 안잡구 뛰기만 하는것도 의병구실을 하는것이웨까?》

《그것이 왜놈 몇을 잡는것보다 더 크게 의병대싸움을 돕는 일이올시다. 그렇지 않다면야 왜 〈황천왕동〉, 〈황천왕동〉하고 사람들이 떠받들겠소이까!》

로친은 제 령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령감님! 우리 아이도 의병구실을 합니다레.…》

《거 보우. 내 뭐랍데까. 우리 천가집안치구 제구실을 못하는 자손 없다구 하지 않던가?》

《와하하하…》

모여든 사람들의 큰 웃음판이 터졌다.

그제야 녀인은 아들을 부르더니 그의 옷앞섶을 다독여주었다.

《용타!》

천덕로인도 한마디 하고 벙긋 웃었다.

《거 천덕아저씨 아니유?》

저쪽에서 지팽이를 급히 놀리며 사람들을 헤집고 꼬꾸라질듯 달려온 황봉이의 울음섞인 소리였다.

《엉?》

천덕로인부부가 얼굴을 마주보는데 황봉이 말했다.

《아저씨, 이 황봉이를 그렇게도 몰라보겠수? 양덕고을 조참봉네 집 녀종 봄순이를 업고 내뛸 때 죽지 말구 살라구 전대속에 씨앗을 넣어주고 호미, 쇠스랑도 쥐여주던 그 아저씨가 옳지요?》

《이게 누군가. 이 사람 자네가?!…》

천덕로인이 두팔을 쩍 벌리고 마주 달려갔다. 만복이 어머니가 달려가 황봉이의 다리를 그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2

 

《이 사람아, 이게 웬일인가. 엉? 어떤 모진 세상살이를 했길래 그 무쇠기둥같던 다리가 이 지경이 되였나, 엉? 어느 놈이 자네 다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어, 엉?》

《그래 봄순이는 어데 있나?》

천덕로인이 다그쳐묻자 황봉이는 얼이라도 나간듯 대답이 막혔다.

《왜 말이 없나. 그럼 그 착하디 착하던게 죽었단 말인가?… 그래, 그게 이 세상에 없단 말인가?》

만복이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아, 저놈의 하늘은 왜 눈만 말똥거리구있누. 죽을 놈이 따로 있지 죽어서는 안될 사람을 죽이고도 무슨 하늘이야. 아, 불쌍한것!…》

헤여져서 스무해 생리별끝에 다시 만난 그들의 인생행로는 이렇게도 다단하고 가슴아픈것이였다.

아낙네들은 돌아서서 얼굴을 싸쥐고 군막앞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아니, 근엄해졌다. 그들의 운명이자 자기들의 운명이라는 가슴아픈 생각들에서였다.

《그래, 그동안 어데 가 살았나?》

《북대봉에서 살았쇠다. 아예 인간세상에 다시는 발길을 안할 마음으루… 그간의 이야기를 어찌 한마디루 다 하겠수. 아저씨…》

황봉은 다시 천덕로인부부를 흐려지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아, 머리들이 백발이 되셨구려.》하고 긴 한숨을 내쉬는데 《자네두…》하며 천덕로인은 나무등걸같은 손으로 황봉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임자 북대봉에서 살았다고 했겠다. 그럼 그 북대봉호랑이라고 하는 〈푸른갑옷〉을 입었다는 그 장수를 알겠구만.》

그 말에 달라지는 황봉의 얼굴빛을 놓치지 않은 만복이 어머니가 말했다.

《혹시 자네 아들이?! 세상에 하느님이 있다면 자네에게 그런 아들을 점지해줄수도 있지. 자네가 양덕고을 떠난지도 스무해구 그 장수가 열아홉살이라는데…》

《…그 〈푸른갑옷〉이 봄순이가 낳아주고간 제 아들이올시다.》

황봉이는 천덕로인내외앞에 머리를 숙였다.

《아, 이게 꿈이 아니갔지?》

만복이 어머니는 황봉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하는데 천덕령감은 흥분된 목소리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소리치듯 했다.

《여러분네들! 세상에 이런 희한한 일도 있수다레.》

그러면서 흥분을 애써 누르더니 황봉일가의 파란곡절 많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봄순이란 양덕고을 조참봉네 처녀종의 이름이구 그의 어머니가 그놈의 집 행랑살이로 일생을 억울하게 살다가 늙어 병들자 섣달그믐날 밤에 대문밖으로 내팽개쳐져 얼어죽었다는것, 그후 봄순이가 그놈의 집에서 뛰쳐나가려다가 이마에 《도비》(도망치려는 녀종)라는 불도장까지 찍히우자 젊고 의기로운 머슴군 총각 황봉이가 그 처녀를 둘쳐업고 자취를 감췄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천령감은 이렇게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때로부터 17년이 지난 어느해 장날이였지요. 조참봉네 청지기랑 고을의 군노사령들이 불쌍한 처녀 하나를 집녀종으로 삼으려구 끌고가는데 한 젊은 총각이 나타나서 물었지요. 〈어데서 데려오는 처녀입네까?〉하구 말이외다. 아마 그 총각에게 이렇게 물어볼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갑데다.

그런데 사령놈이 륙모방망이를 그 총각의 코앞에 들이대며 〈별 오지랖 넓은 놈 다 보겠구나. 아무데서 데려오건 네놈이 무슨 상관이야.〉하더니 건장한 총각의 몸을 아래우로 훑어보다가 〈이놈도 데리고가자. 조참봉님이 종복은 타고났거든.…〉했지요.》

그 다음이야기는 만복이 어머니가 대신했다. 그는 손짓, 몸짓을 해가면서 《그러자 그 총각이 눈을 부릅뜨는데 꼭 범의 눈입데다. 총각은 주먹 한대로 사령놈의 턱주가리를 욱 부스러뜨려놓고 그놈의 두다리갱이를 모아잡더니 휘휘 돌리다가 옆의 담장문에 탕 하고 태질을 쳤는데 그놈은 목이 부러져서 소래기도 제대로 못지르고 담장밑 시궁창에 구겨박혔지요. 그바람에 명주바지저고리차림으로 으시대던 청지기놈은 팽개쳐지는 사령놈의 발길에 걷어채워 허리가 부러져서 똥을 싸구 총각에게 덤벼들던 놈들은 다리와 팔이 부러지구 륙모방망이들은 십리나 날아났지요. 그 총각은 다섯놈이나 되는 두억시니같은 놈들을 어린애 주무르듯 합데다.

우리 양덕장마당이 들썩했었지요. 묵은 체기가 쑥 내려간 장군들이 〈우리 양덕땅에 북대봉정기를 타고난 범장수가 났다.〉하구요.》

이번엔 다시 천령감이 신이 나서 로친의 말을 가로챘다.

《그 총각이 온데간데 없어졌단 말이야. 기골이 장대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헌헌장부였지. 뉘집 자손인지 잘도 났다구 모두 혀를 찼었지요. 뜻밖에도 우리 집 로친네가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겠수. 〈그 총각이 우리 만복이또랜데 봄순이가 살아서 아들을 낳았다면 그런 나이가 됐을게 아니요?〉라구 말이외다. 헌데 그게 정말 이 황봉이 아들일줄이야.… 세상일이란 참…》

 

한편 쌍가마를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수선한 마음을 안고 서성거리던 황바위는 저쪽에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는것을 무심결에 바라보다가 펄쩍 놀랐다. 로상에서 우연히 만났던 낯익은 로인내외가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군막으로 오고있었던것이다.

황바위가 더욱 놀란것은 로인내외와 같이 오던 아버지가 그들에게 인사를 시켰을 때였다.

《바위야, 어서 와서 인사해라. 이분들이 바로 아버지, 어머니가 늘 외우던 그 고마운 사람들이다.》

한참만에야 황바위는 북받치는 울음을 삼키며 천덕로인내외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천덕로인도 그를 알아보고 놀랐다.

《아니, 임자가 황봉이와 봄순이의 아들이란 말인가?》

《할아버님, 할머님, 우리 부모님들이 늘 외우시던 할아버님, 할머님을 로상에서 뵈옵고도 미처 인사를 올리지 못한 저를 용서하시옵소서.》

황바위는 끝내 황소울음같이 꺼이꺼이 목메여 흐느꼈다.

《어서 일어나게, 어서…》

천덕로인도 눈물이 그렁해서 황바위를 안아일으켰다.

안늙은이도 기쁨과 설음이 한데 엉켜 오열을 터뜨리듯 황바위의 어깨를 자꾸 쓸어만지며 넉두리를 했다.

《뉘 엄마 마음씨 비단결같고 일솜씨 또한 알뜰하기 그지없었건만… 정말 하늘이 무심코나!…》

안늙은이는 옷고름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쳤다.

이번에는 천덕로인이 아까부터 손에 거머쥐고있던 종이장을 높이 흔들더니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여러분네들! 이게 뭔지 압니까? 이게 바로 이 북대봉호랑이 어머니의 그 가짜종문서올시다.》

《뭐? 뭐라구?》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이 종문서는 중화의병님네들이 와서 그 조참봉놈, 아니 그 왜놈의 개를 때려잡던 날 우리 양덕백성들이 그놈의 집에서 찾아낸거웨다.》

그 말에 황바위가 흠칫했다.

(아니? 그럼 어머니의 종문서가?…)

누군가 손을 쳐들며 소리쳤다.

《어디 그 종문서라는걸 좀 봅세다.》

사람들의 손이 종문서를 향하여 올라갔다. 종문서는 이손에서 저손으로 돌아갔다.

천덕로인은 하던 말을 계속했다.

《그때 조참봉놈이 들이닥친 두 젊은 의병들을 보고 〈네놈들이야말로 의병이 아니라 화적놈들이구나.〉하고 지껄이다가 그 아가리에 들이박힌 차돌멩이를 문채 눈깔을 흡뜨고 황천객이 되고말았다오. 노비는 무슨 놈의 노비겠소. 그 어머니가 어린 딸을 데리고 걸식을 하며 돌아다닐 때 그를 붙잡아서 행랑방에 가두어두고 부려먹다가 늙어서 쓸모가 없게 되자 눈바람치는 대문밖으로 내쫓아얼어죽게 한것을 우리 양덕고을사람들이 다 아는데… 양덕관가와 짜구서 이마에 불도장을 찍으며 만들어낸 이놈의 가짜종문서!… 헌데 그날 조참봉놈의 아가리에 차돌멩이를 먹인 사람이 바로 몇해전에 우리 양덕장거리에서 조참봉네 청지기랑 군노사령놈들을 요정낸 그 총각장수라는게 아니겠소.》

《그 종문서를 령감님이 어떻게 여기로 가지고오셨소?》

윤초시가 물었다.

《예, 일이 그렇게 되자 황봉이 아들도 이 중화의병대에 있을게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막내아들놈을 여기로 보냈지요. 그 장수가 누구인지 잘 알아보구 또 너두 그런 장수가 되라구요. 그래 이번에 아들을 만나러 올 때 마을사람들이 가지고있는 그 종문서를 달래가지구 왔지요.

사실 이번길은 제 자식이 의병구실을 잘하는가 알고도 싶었지만 어쩐지 그 〈푸른갑옷〉입었다는 장수가 황봉이, 봄순이 아들만 같아서…》

《령감님의 그 의리가 장하외다.》

손로인을 비롯한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뭘요, 나야… 그보다두 봄순이원한을 풀어주려구 이 종문서를 찾아낸 우리 양덕사람들이 용치요.》

《옳은 말이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우리 황바위 기동별초가 천하의 기구한 팔자를 다 타고난 사람이군.》

《그런데도 이 국란속에서 량반님네는 흉내도 못내는 위국충정을 다 바치고있지 않소.》

《비유해서 말하면 막돌과 금덩어리지요.》

윤초시가 그 말에 크게 감동된듯 머리를 끄덕거리고나서 말했다.

《거 조참봉놈이야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아는 놈이요. 나도 한때 그놈에게 붙어돌아다니던 사람인데 오죽했으면 〈좁쌀 윤초시〉로 호명까지 있던 내가 그놈의 낯짝에 침을 뱉고 돌아섰겠소.

그놈은 담배씨로 뒤웅박을 파려는 놈이였소. 그리구 도적놈이 먼저 포도청에 간다는 말대로 온갖 권모술수와 악착하고 교활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등가죽을 벗기고는 죄는 우리 백성들에게 들씌웠지.… 제가 진 죄는 제가 지기마련이라는 말대로 그놈이 왜놈에게까지 붙어서 반역질을 하다가 바로 저 북대봉호랑이의 차돌멩이에 맞아 황천객이 되였으니… 참 세상일이란…》

사람들은 그의 말을 심중히 듣고있었다.

《따져놓고보면 인간죄악의 근원은 모두 리속때문이요. 조정대신들의 파쟁싸움만 놓고봐두 그렇지. 그게 결국 땅과 재물을 더 많이 가지려는 싸움으로서 제 나라를 망치구 저도 망치고… 하기사 나두 우리 의병대가 아니였더라면 그런 벌레가 될번 했지, 허허허…》

그는 개탄조로 이렇게 말은 했지만 거기에는 심중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윤초시의 말을 들으며 림중량은 인간이란 한번 진심으로 개심만된다면 저렇게 세상리치를 깨닫는 사람으로, 악에 맞서는 사람으로까지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쳐들었다.

(그렇다. 나라가 썩는것, 사람이 썩는것, 그것은 다 리속때문이다.…)

오늘 림중량은 이 사람들속에서 실로 많은것을 깨닫고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소득은 우리 백성들이 간직하고 사는 위국위민의 그 의리와 의기를 더 잘 안것이였다. 실로 귀중한 백성들이였다.

《아저씨, 그 종문서 나를 주시우.》

황봉이가 천덕령감에게 손을 내밀었다. 종문서를 쥔 황봉의 손이 와들거렸다. 그 솥뚜껑같은 손을 아들이 받들어잡았다.

《아버지!》

사람들의 가슴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부르는 황바위의 절통한 목소리였다.

아버지의 손에서 어머니의 종문서를 받아든 황바위는 사람들에게 부르짖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 동생들! 나는 우리 어머니가 진짜 종이였다해도 조금도 부끄러울것이 없습니다. 남을 속인 일이 없고 일로만 한생을 살아온 우리 어머니가 부끄러울게 무엇입니까? 나는 우리 어머니를 자랑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한점 남겨놓고간 그 피줄기가 제 어머니의 억울하고 눈물많던 인생길에 박혀진 못을 뽑아주고 그자리에 꽃송이를 놓아주는 말이였다.

《그렇지, 그렇구말구.》

사람들속에서 격동에 넘친 목소리들이 일었다.

성천고을 군노였던 정수돌이가 부르짖었다.

《그렇소이다. 우리네 종들은 부끄러울것이 없소이다. 남을 속인 일이 없고 나라를 속인 일이 없소이다. 비록 우리는 노비나 종의 신분이여도 이 육신을 낳아준 부모님들과 태를 묻고 자란 이 땅을 자랑합니다!》

태를 묻고 자란 이 땅!

정수돌이의 피젖은 마지막말을 가슴에 새겨보는 황바위의 두눈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아, 참말로 산 사람의 염통을 조이는 그런 죄된 종살이라는 법이 왜 생겨났을가. 우리 천민들의 몸을 갈가리 찢어내는 이 모진 량반들의 세상에서도 선조들이 묻혀있는 이 땅을 살붙이로 여겨 국란의 시기에 한목숨을 내대는 저 사슴같은 사람들이 바라는것은 과연 무엇일가. 비록 량반의 세상에서 무지렁이로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이 땅은 목숨과 바꿀수 없는것이기때문이리라!

황바위는 피눈물이 서린 종문서를 꽉 움켜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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