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 회)
제 5 장
작은 샘이 대하를 이룬다
1
황바위는 초담이장마당의 일을 성표에게 넘겨주고 서진성으로 돌아오라는 림중량의 령을 받고 그날로 마을을 떠났다. 그 어떤 엄벌이라도 받을 각오는 하고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떠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억이 막히기만 했다.
자기의 분별없는 행동이 이렇게 큰 후과를 빚어낼줄은 몰랐다.
이번 일로 해서 초담이장마당을 통하여 성안에 있는 왜놈들의 동태를 알아내여 앞으로의 큰 싸움을 위해 기찰대를 쇠소리나는 별동대로 꾸려놓자던 림중량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말았던것이다.
서진성으로 돌아가는 황바위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자기에게 그처럼 큰 믿음을 준 림중량의병장은 무슨 낯으로 만나며 자기를 그처럼 따르던 의병들은 또 무슨 면목으로 대한단 말인가. 쌍가마앞에 나설 생각은 아예 엄두부터 나지 않았다.
희생된 좌상로인과 기찰대원들의 장례를 치르는 날 얼핏 마주쳤던 쌍가마의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등골이 다 써늘해왔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꽉 다문채 피기가 가셔지다못해 새파랗게 질린듯한 그의 얼굴에는 황바위에 대한 원망의 서리발만이 돋아있는듯 했다.
쌍가마의 말을 귀담아들었어도 황바위는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것이였다.
저녁늦게야 서진성에 도착한 황바위는 고개를 푹 떨군채 림중량이 거처하는 별채로 찾아갔다.
무슨 깊은 생각에 잠겨 방안을 거닐던 림중량은 풀이 죽어 들어서는 황바위를 쳐다보았다.
북대봉의 호랑이처럼 적들을 무찌르며 펄펄 날던 황바위가 하루사이에 된서리를 맞아 기가 꺾이고 주눅이 들어버린걸 보느라니 림중량의 가슴은 더 답답해났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만이 흘렀다.
이윽고 림중량이 길게 한숨을 쉬고나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가서 쉬게. 앞으로 자네한테 무슨 일을 맡기겠는가 하는건 생각해보겠네.》
황바위를 보내고난 림중량은 다시 괴로운 생각에 갈마들었다.
중화의병대의 기둥으로 크게 믿고있던 황바위가 소금싸움을 제멋대로 벌려놓으려다 시작도 못해보고 도리여 큰 희생을 냈으니 실로 커다란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평양성에 기여든 왜놈들과의 마지막 판가리싸움이 하루하루 다가오고있는 때에 제일 크게 믿었던 기둥이 허리를 꺾이우고 주저앉아버린것이다.
오로지 왜놈을 쳐죽여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물불을 가리지 않고 펄펄 뛰는 황바위의 마음을 뒤에서 잘 다잡아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오가 림중량을 더 괴롭혔다.
황바위에게 어떤 엄벌을 내려야 할지 림중량은 인차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의병대원으로 내려놓고 일체 싸움에는 내보내지 않는 두문벌을 줄수도 있었다. 그것이 황바위에게는 제일 아픈 매로 될것이였다.
림중량은 이내 도리머리를 저었다.
지금과 같은 때에 아픈 매나 안긴다고 백성을 믿지 못하고 백성의 힘을 볼줄 모르는 황바위가 자기의 근본으로 돌아오겠는가.
황바위와 같이 근본이 깨끗하고 천성이 착한 사람에게는 모든걸 제 눈으로 보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하는것이 합당할것이라고 림중량은 타산하였다.
이틀후 황바위는 한대걸과 함께 서설봉 부인이 살고있는 북대봉으로 떠나라는 령을 받았다.
그 말을 들은 순간 황바위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체 의병들이 모인 앞에서 자기가 지은 죄를 일일이 렬거한 후에 하다못해 곤장이라도 안기거나 의병대에서 아주 쫓아버릴줄로만 생각하고있었던 황바위였다.
함께 떠나는 한대걸이도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이번 북대봉길에 마음속고민을 다 털어버리고 심신을 거뜬하게 하자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숲속은 간밤에 내린 비로 축축하고 써늘했다.
한대걸의 뒤를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황바위는 누가 뒤에서 자기를 지켜보는듯한 육감을 느꼈다.
얼결에 뒤를 돌아보던 황바위는 가슴이 흠칫해왔다. 나무뒤로 얼핏 몸을 숨기는것은 분명 쌍가마였다. 그의 눈가에서 번뜩하는 구슬픈 눈물이 가슴을 짜릿하게 훑어내리는것이였다.
황바위는 애써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두사람이 북대봉기슭에 이르렀을 때는 새벽이였다.
허리중턱에 새벽안개를 휘감은 북대봉봉우리들은 마치 푸른 바다우에 점점이 떠있는 섬처럼 보였고 안개속에 휘감긴 아래쪽 골짜기에서는 지심을 흔드는 폭포소리가 메아리쳐왔다.
문득 한대걸이가 엷은 안개속에서 자태를 드러낸 큰 바위를 가리켰다.
《저 바위가 낯이 익지 않나?》
《?!…》
황바위의 눈에도 숭숭 구멍이 패인 자욱이 헨둥하게 알리는 큰 바위가 안겨왔다. 그 바위를 바라보느라니 저도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왔다.
황바위의 눈앞에 열세살때 아버지를 따라 이 골짜기에서 난생처음 인간세상으로 나오던 때의 일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그때 황바위는 아버지와 함께 왜구의 침습으로 하여 헤여진채 수십년세월 소식도 모르는 큰아버지를 찾아 평양으로 가는 길에 성천고을 밤나무골 한대걸의 집에 들린 일이 있었다.
다음날 나라지형을 렴탐질하는 검은 장삼을 걸친 왜놈중과 길가에서 우연히 맞다들게 되였다. 그들부자는 가던 길을 돌아서서 그 사실을 성천고을 신임부사 김요림에게 알렸었다. 허나 부사 김요림은 왜놈의 중을 잡아들일 대신 아버지가 민심을 소란시키며 돌아다니는 놈이라고 발꿈치의 장심줄을 부저가락으로 지져 끊어놓는 악형을 가했다.
그 광경앞에서 황바위는 새끼범처럼 형리놈들에게 달려들었으나 악귀같은 놈들의 힘을 당할수가 없어 동헌마루에 나가 떨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까지 악착스럽게 매를 맞았다. 그때 겨우 살아난 황바위는 아버지를 병신으로 만든 그 부사놈을 제 손으로 때려잡을 원한을 품고 일곱해동안이나 이 골짜기에서 차돌멩이질을 익혀왔다. 그사이에 골짜기의 크고작은 바위들마다 황바위의 사무친 원한의 표적인듯 온통 구멍이 숭숭 패인것이다.
한대걸이도 그 일을 되새겨보는지 감개무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왜란이 일자 난 자네를 상원 조호익의병대에 데리고 가려고 이곳에 왔댔었지. 허 그런데 자넨 벌써 중화의병대로 떠난 뒤더군.… 지금도 황바위가 지팽이를 짚고 선 림선달님앞에서 무술을 익히던 이야기를 해주며 눈굽을 찍던 자네 부친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
한대걸의 말에 황바위의 추억은 림중량의 손탁에서 무술을 익히던 일들로 이어졌다.
…림중량은 벼슬을 탐내지 않는 중화고을의 선비로서 일찌기 전국각지를 답사하며 많은 의기지사들과 사귄 호걸남아였다. 그는 충청도의 조헌이 날이 시퍼런 도끼를 둘러메고 천리길을 와서 경성 왕궁문을 두드리며 국난이 다가온다고, 조선땅에 들어온 왜나라의 《국사》를 비롯한 정탐군놈들을 당장 쫓아버리자고 웨칠 때 자리를 함께 하였으며 경상도 선비 곽재우가 벼슬길을 찾아 경성에 왔다가 대감네 객실들에 모여드는 당파군들, 탐욕과 아첨군무리들에게 침을 뱉고 돌아선것을 알고 그와 흉금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특히 나라의 명검객으로서 경성에서 호군벼슬을 하다가 조정의 군사력이 다 파괴되고 리률곡의 10만 양병주장이 배격을 받게 되자 은퇴해버린 명검공 유신검과 함께 이 북대봉산발과 잇닿아있는 화엄산에 와서 후대들을 키우며 밭을 일구고있는 서설봉선생과도 기우는 국운, 닥쳐올 왜란을 두고 서로 가슴을 치기도 했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이의 차이를 넘어 지기지우가 되였다.
서설봉에게는 열네살난 손자가 하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갓 태여났을 때 남해기슭에 침입한 왜적을 치다가 전사했다.
그 손자 서일은 기골이 준수하고 영특하며 검술이 비상하였다.
성천부사에게 부저가락을 내동댕이친 황바위를 만났을 때 그의 뛰여난 인품과 다기차고 오돌진 성격에 마음이 끌렸던 림중량은 다가올 국난을 앞두고 그와 함께 서일이도 쓸모있는 장재(장수감)로 키워보리라 마음먹었었다.
림중량이 무술의 오묘한 기법을 터득한 여기 북대봉골짜기로 서해가에 사는 나이많은 의기지사 신생원도 외동손자 신욱이를 보내왔다.
비바람 맞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 그들의 무술훈련장은 북치고 징치며 기발을 날리는 그런 멋진 훈련장이 아니였다.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봉우리로 해가 한번 건너 뛰면 하루낮이 다 지난다는 좁은 골짜기로 둘러싸인 험한 령들과 수백길 낭떠러지들, 깊고깊은 골짜기의 폭포와 룡소들이였다.
림중량은 앞장서서 이들을 이끌고 그 상상봉에 올라 이 세상 하늘이 어떻게 높으며 땅속지심까지 인간의 넋이 어떻게 깊이 슴배였는가를 그리고 백길 룡소를 헤치며 세면이 바다인 이 나라 장수들이 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었다. 그리고 황바위의 차돌멩이, 서일의 검날, 신욱의 화살촉에 한개의 헛방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피타는 노력은 무엇을 위한것이겠는가? 그것은 이제 침략해들어올 왜적을 돕는것이라고 꾸짖군 하였다.
그들의 담력과 지략을 키워주기 위한 림중량의 피타는 노력은 야장간 불무지옆의 동국병감으로 펼쳐졌다. 산뙈기, 자갈밭을 함께 가꾸면서도 림중량은 이들의 가슴속에 구수한 흙냄새와 더불어 백성들의 뜨거운 정을 새겨주었고 북대봉 소나무숲을 스쳐지나는 바람소리도 무겁게 여기도록 일깨워주었다.
림중량의 이런 노력이 있어 황바위와 서일 그리고 신욱은 마침내 북대봉 청산대호로 자라나 국난이 일어나자 제일먼저 칼을 들고 나라찾는 싸움에 나선것이 아니랴.
황바위의 눈앞에는 어랑산성 성루를 눌러디디고 서서 왜놈들에게 북대봉 차돌멩이벼락을 안겨 묵사발을 만들어놓던 일들과 평양성에서 기세등등해서 기여나온 왜적 구시라를 통쾌하게 족쳐대던 일들도 선히 안겨졌다. 그러나 이번에 있은 소금싸움을 생각하면 가슴에 묵직한 돌멩이가 걸린듯 답답해오는것이였다.
쏴― 북대봉 푸른 숲바람에 짙은 새벽안개가 룡트림하듯 꿈틀거리며 서서히 걷히더니 눈에 익은 초불봉옆 황바위가 살던 오돌막이 나타났다.
《?!…》
황바위는 한순간 어리둥절해졌다. 이제는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오돌막이 옛모습그대로 서있는것이 더욱 놀라왔다. 게다가 굴뚝에선 연기까지 고즈넉하게 피여나고있지 않는가?!…
영문을 몰라하는 황바위에게 한대걸이 말해주었다.
《지금 저 집에서는 서설봉선생의 부인과 그 가족들이 살고있다네.》
《예?… 아니, 그럼…》
한대걸은 그냥 한본새로 우두커니 서있는 황바위를 남겨두고 먼저 걸음을 뗐다.
황바위는 씨엉씨엉 오돌막을 향해 걸음을 다그치는 한대걸을 멍청히 보기만 했다.
오돌막옆 채마밭에서는 서일의 안해인듯한 소복차림의 젊은 녀인이 부지런히 호미질을 하고있었는데 백발의 녀인은 아이를 업고 밭두렁의 애호박을 따고있었다.
한대걸은 오돌막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어험―》하고 인기척을 냈다.
호미질을 하던 젊은 녀인이 흠칫 놀라 일어서며 경계하는 눈길로 한대걸을 바라보았다.
《뉘신지요?…》
《저, 여기에서 서설봉선생님댁 권솔들이 사시지요?》
《뉘시요?》 머리흰 녀인이 되물었다.
《저, 사모님, 제가 사모님등에 업힌 그 아이의 애비올시다.》
《아니, 그럼 임자가… 억남아, 아버지가 왔다.》
반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소리치듯 말하며 서설봉 부인은 억남이를 등에서 돌려안으려 했다.
《저…》
한대걸은 급히 달려가 억남이를 받아안았다.
《억남아, 아버지다!》
그는 아들애의 두볼에 자기의 꺼칠한 볼을 비벼대며 흐느꼈다.
부자의 상봉을 눈물속에 지켜보던 서설봉 부인이 다가섰다.
《임자 어머니랑 안해, 큰아이가 꽃골서 왜적한테 원통하게 죽던 날 이애가 죽은 어머니잔등에서 울고있는걸 이집 황바위가 쌍가마란 처녀한테 업혀 이리로 들여보내왔네.》
《알고있습니다.》
한대걸은 뒤를 돌아보며 서설봉 부인에게 가리켜보였다.
《저기 그 황바위가 와있습니다.》
《뭐? 황바위가 왔다구? 어디, 어디…》
서설봉 부인은 기쁨을 금치 못해하며 마주 걸어나왔다.
그제야 황바위는 오두막앞으로 내달리듯 마주 나갔다. 서설봉 부인앞에 이른 그는 땅바닥에 꿇어앉아 절을 하며 목메여 흐느낌을 토했다.
《할머님,… 흑!》
황바위는 일어설념을 못하고 그냥 황소울음을 터뜨리였다. 80객의 나이에 왜놈들과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마친 서설봉선생의 모습이 사무쳐오는것을 막을수가 없었던것이다.
《이 사람, 왜 그러나, 일어나라는데…》
서설봉 부인은 그냥 흐느껴우는 황바위를 보고 무슨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지 한대걸에게 물었다.
《자네 의병이겠는데 이 란리통에 아들이나 한번 안아보자고 온건 아닐거구… 그래 대체 무슨 일로 이 심산속에까지 힘든 걸음을 했나?》
한참만에야 한대걸은 큰숨을 내불며 비장한 목소리로 떠듬거렸다.
《서설봉선생님께서… 년로하신 몸으로 중화의병들의 싸움을 이끄시다가… 그만… 장렬하게 순국하셨소이다.…》
《아!》
가느다란 비명과 함께 젊은 녀인의 손에서 호미가 떨어졌다. 몸을 가눔하기 어려운듯 비척거리며 돌아서는 서설봉 부인을 손자며느리가 부축여주었다.
《무슨 말씀으로 상사말씀을 드리올지…》
한대걸이 상사인사의 말문이 막힌채 무언의 백발부인앞에 머리를 깊이 숙일뿐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