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4 장

함정

3

 

어둠이 깃든 왜놈의 군영에서 저희들끼리 또 개싸움이 붙었는지 치고받는 소리와 악담을 퍼붓는 소리가 한창 소란을 피우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불안과 공포, 기근으로 해서 악만 남아있는 왜놈들이였다.

한편 게구마는 어랑산성으로 되돌아서기 전에 매부리코를 데리고 소란한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찾을줄 아는 장수다운 자세로 대동강변을 거닐었다.

과대망상증은 자기가 희극적인 존재라는것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의 비극이다. 그런자는 항상 자신을 비범한 인물로 치부하는 동시에 자연히 얻기는 쉽고 버리기는 힘든 아첨쟁이들을 많이 달고 다니기마련이다.

이밤에도 게구마의 똥집을 꿰뚫어보고있는 매부리코는 그의 궁둥이에 바싹 붙어서 등때기를 슬슬 긁어주었다.

《정말 오늘 어랑산성군사들의 목숨을 살려야 한다고 하신 말씀은 게구마장수가 아니고는 누구도 감히 못할 말씀이였소이다. 어랑산성군사들이 게구마님의 송덕비를 세워야 할줄로 아오이다.

참, 게구마님께서 거처하실 곳은 어디로 잡을지…》

게구마는 그의 말이 귀등에 붙지 않는듯 대동문추녀끝의 막새(암기와와 수기와끝에 달린 기와)를 바라만보았다.

이윽토록 대동문추녀끝의 막새를 치올려보던 게구마는 낮에 본 울긋불긋한 색갈을 생각하며 《동명왕릉을 파가기는 코집이 글렀는데 이 대동문것이라도…》하고 중얼거렸다.

《게구마님, 저 처마끝의 막새들이 아주 귀물이올시다.》

약삭빠른 매부리코가 게구마의 귀에 대고 불어넣었다.

《막새라니?》

게구마는 가지고갈것만 생각하면서도 막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있었다.

《추녀기와끝들을 마무리한 저 구름무늬, 꽃무늬기와장말입니다. 저것을 우리 나라에 가지고만 가면 큰 귀물이 될게오이다. 거기에다가 저 풍경까지 받쳐서…》

《풍경?》

《날아갈듯이 추녀끝에 매달려 바람에 댕강거리는 저 맵시있는 쪼꼬만 쇠종말입니다.》

《거 신기한 생각을 했구나. 그것들이면 보따리도 큼직해지겠지.》

《크고말고요.》

《네가 나보다 낫다. 우끼다에게 메고갈 큰 보따리걱정을 네가 풀어주는구나. 흐하하하…》

게구마는 징그럽게 너털웃음을 쳤다. 졸개놈은 이때를 놓칠세라 상전의 턱밑에 다가붙었다.

《그럼, 저는 평양성안에 남아 저것들을…》

《좋다, 그렇게 해라. 그리고 우리가 평양성을 빠져나간 다음에는 이놈의 성문에 불을 콱 지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바로 이때 대동문성루웃쪽에서 누군가를 단속하는듯한 수비병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하여 찌그덩― 하고 성문이 열리더니 수비병이 허줄한 두루마기같은것을 걸친 두놈을 데리고 들어왔다.

게구마가 웬놈들인가 해서 눈을 치떠보니 초담이장에 내보냈던 《집게다리》와 《먹새》였다.

《게구마님, 다 알아냈소이다.》

《집게다리》가 밑도끝도없이 말을 꺼내는데 어느새 《먹새》가 그를 앞질러 게구마앞에 다가붙었다.

《〈푸른갑옷〉의 위치를 제가 알아냈소이다.》

《〈푸른갑옷〉?!…》

게구마는 대번에 살기가 뻗쳐 《먹새》의 멱살을 잡아흔들며 다그쳐물었다.

《그게 사실인가?》

《예, 그놈은 지금 초담이장에 와있습니다. 그걸 알아내느라고…》

자기가 머저리라고 취급하던 《먹새》에게 선코를 떼운 《집게다리》가 속이 뒤틀려 《먹새》의 정갱이를 걷어차고나서 게구마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게구마님, 사실은 이놈때문에 일을 다 망칠번 했소이다.》

《집게다리》는 숨도 돌리지 않고 초담이장근처의 소나무밑에서 황바위와 쌍가마가 주고받은 말을 그대로 외워바쳤다. 그리고 《먹새》가 그 계집년을 쫓아가려는것을 자기가 제지시켰다고 고해바치는것도 잊지 않았다.

《그건 아주 잘한게다.》

게구마는 감지덕지해하는 《집게다리》의 잔등을 툭툭 두드려주며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이 미물같은것들이 한갖 계집애에게 홀리워 솔밭으로 들어갔다가 금덩이를 주어온셈이구나! 《푸른갑옷》?!… 역시 애숭이녀석이야.… 이번이야말로 이 게구마의 솜씨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이다. 고니시, 넌 나를 졸병취급하며 야로했지만 흥, 계략을 꾸미는데서는 나한테 안될걸.…)

게구마의 상판이 갑자기 사납게 돌변했다. 고니시의 본을 따서 칼자루를 꽝 땅에 박으며 호통을 쳤다.

《내 말을 가져와!》

 

저녁땅거미가 깃들고있었다.

황바위가 자기가 거처하는 방에 길게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좌상로인이 찾아왔다.

《이제 있게 될 소금싸움잡도리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들렸네.》

황바위는 얼른 일어나앉아 좌상로인에게 자리를 권하고나서 흔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건 좌상로인께서 걱정안하셔도 되나이다.》

《걱정을 안하다니?!…》

《림중량의병장한테 기별을 띄웠으니 서진성에서 날랜 의병들이 도착할겁니다.》

《서진성에서 의병들이 온다구?…》

좌상로인은 그 말에 동감이 안가는지 채머리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서진성에도 지금 의병 한사람, 한사람이 요긴할텐데… 여기 사람들을 가지고 소금싸움을 벌리면 안되겠나? 이런 싸움을 하자고 기찰대랑 지금껏 무술을 닦은게 아닌가?…》

《그렇기는 하지만… 이번 싸움은 실수가 없어야 하겠기에…》

황바위는 어쩐지 속이 찔리는것 같아 미적지근하게 말끝을 흐렸다.

섭섭한 심정을 금치 못하며 한동안 덤덤히 앉아있기만 하던 좌상로인이 혼자말처럼 뇌이였다.

《그러니 자넨 우리 초담이장사람들에게 믿음이 안가는가보군!…》

 

4

 

다음날 아침 쌍가마를 다시 초담이장으로 떠나보낸 림중량은 어쩐지 께름직한 생각에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는 어제 저녁에 서진성에 도착한 쌍가마로부터 황바위의 소금싸움에 대한 계획을 듣고나서 아무래도 황바위의 결심을 중지시켜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간교한 왜놈들이 전번처럼 같은 수법으로 소금짐에 달려들지 않을것이 분명했다.

림중량은 황바위에게 다음령이 있을 때까지 행동하지 말라는 편지를 쌍가마한테 쥐여보냈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쌍가마가 초담이장으로 가던 도중 무슨 사달이 생기는 날이면 편지를 받지 못한 황바위는 그 불같은 성미에 참지 못하고 혼자서 싸움에 뛰여들것이였다.

림중량은 급히 마당으로 나와 지나가는 한 의병을 불러 빨리 가서 군기고를 책임진 성표를 찾아오라고 분부했다.

성표로 말하면 림중량이가 경성에서 사귄 량반의 아들이였다. 경성이 왜놈들에게 떨어지자 란리를 피해 여기까지 오던 도중 림중량의병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서진성에 찾아온 성표는 량반가문의 체면을 세워 공을 세우겠노라고 림중량이앞에서 맹세했다.

그래서 의병대에 받아들여 림시로 군기고를 맡아보는 별초로 선출했는데 평백성출신 의병들을 깔보고 량반행세를 하려드는 등 불민스러운데가 있긴 하지만 언제 배워두었는지 무예만은 단수가 있었다.

잠시후 체격이 미츨한 성표가 달려왔다.

림중량은 즉시 그에게 분부했다.

《의병 몇사람 데리고 빨리 쌍가마를 뒤쫓아가게. 쌍가마가 로상에서 무사하도록 보호해주는것이 첫째이고 다음은 쌍가마와같이 황바위의 무분별한 행동을 제지시키는것이 두번째로 자네가 해야 할 일이네. 황천왕동이 찜쪄먹게 걸음이 잰 쌍가마가 벌써 퍼그나 달려갔을터이니 빨리 행동하게.》

《알겠소이다.》

성표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나서 나는듯이 뒤돌아 달려갔다.

림중량의 분부대로 의병 셋을 뒤에 달고 내달리던 성표의 걸음이 점점 떠졌다.

지체높은 량반인 자기가 상놈들을 위해서 이렇게 헐떡거리며 달려간다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상놈의 자식인 황바위가 의병대의 큰 장수나 되는것처럼 떠받들리우는것이 늘 눈에 거슬려하던 성표였다.

(황바위가 일을 그르치건말건 내가 상관이 뭐야. 그렇게 되면 차라리 잘된셈이지. 상놈의 자식이 너무 방자해졌단 말이야.…)

성표는 주춤 걸음을 멈추고 뒤따라오는 의병들에게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직 쌍가마란 계집이 보이지 않는걸 봐선 혼자 다니는 지름길이 있음직한데… 하여간 좀 쉬면서 궁리해보자.》

성표는 제먼저 길섶에 다리를 쭉 펴고앉았다.…

 

한편 황바위는 어제 쌍가마와 만났던 소나무밑주위를 서성거리며 이제나저제나 그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황바위는 불안이 갈마들었다. 처녀의 혼자 몸으로 위험한 길을 다니는 쌍가마의 신변에 대하여 늘 마음써온 그였다. 어제도 한사람 붙여보낼가 하고 생각하였지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옥신각신하던 끝에 쌍가마를 혼자 보낸것이 후회되였다. 한편으로는 이 지대는 지금까지 왜놈들이 마음대로 싸다니지 못하던 곳이고 또 싸다닌다한들 표창 잘 쓰는 쌍가마가 왜놈 몇놈쯤이야 못당하겠는가 하는 마음의 위안도 가져보았다.

황바위가 이런 생각으로 안절부절하는데 갑자기 저쪽 숲속에서 녀자의 가느다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황바위는 머리칼이 곤두서는듯한 전률감이 뇌리를 치는것을 느꼈다.

(쌍가마가?!…)

황바위는 지체없이 몸을 휙― 돌려 비명소리가 난쪽을 향하여 나는듯이 내달렸다.

소나무숲을 벗어나 등성이로 치닫던 황바위는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지는것을 느꼈다.

왜놈들에게 두팔을 붙잡히우고 입까지 틀어막힌채 등성이숲쪽으로 끌려가는 녀인은 분명 쌍가마였다.

쌍가마를 끌고가는 왜놈들속에는 《집게다리》와 《먹새》도 있었다.

황바위의 두눈에 퍼런 불이 펄펄 일었다.

(이놈들이 내앞에서 감히!…)

황바위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쌍가마를 끌고가는 놈들을 향해 비호같이 내달으며 차돌멩이를 날렸다.

《아이쿠!》

뒤에서 따라가던 왜놈이 단번에 골통을 얻어맞고 등성이로 데굴데굴 내리굴었다.

황바위는 그냥 내달리며 차돌멩이를 날렸다.

몇놈이 또 대가리를 싸쥐며 쓰러졌다.

그래도 남은 놈들은 쌍가마를 내놓지 않고 그냥 끌고 뛰는것이였다.

황바위는 차돌멩이질에 혹시나 쌍가마가 상할것만 같은 조바심이 앞서 벼락같이 소리만 쳤다.

《이놈들, 〈푸른갑옷〉이 여기 있다! 그 녀자를 놔두라!》

《푸른갑옷》이라는 말만 들어도 사시나무떨듯 하는 왜놈들이였건만 무슨 독한 마음을 먹었는지 이번만은 사정이 달랐다.

《집게다리》와 《먹새》는 쌍가마를 량옆에서 꽉 붙든채 기를 쓰고 달아나는것이였다.

(네놈들이 내 주먹맛은 아직 모르는구나!)

황바위는 성난 호랑이처럼 바위들을 휙휙 날아넘으며 내달렸다.

이때 왜놈들에게 끌려가던 쌍가마가 겨우 모지름을 써서 입에 틀어막혔던 헝겊을 뱉아버렸다.

쌍가마는 금시 왜놈들을 덮칠듯이 지척까지 따라온 황바위를 보고 눈앞이 아찔하여 소리쳤다.

《오빠! 오지 말아요!… 오면 안돼요! 여긴 왜놈들이…》

《집게다리》가 어느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쌍가마의 애원에 찬 목소리를 들은 황바위는 더이상 앞뒤를 가리지 않고 숲을 가로질러 왜놈들에게 달려나갔다.

순간 황바위는 풍덩하고 땅이 꺼지는것과 함께 깊은 함정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린 황바위는 겨우 몸을 일으키고앉아 우를 쳐다보았다.

《으하하하…》

갑자기 짐승의 울부짖음같은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어느새 함정우에 쇠그물까지 쳐놓은 왜놈들이 함정에 갇혀 꼼짝 못하게 된 황바위를 내려다보며 너털웃음을 짓고있었다.

그속에서 게구마가 흉물스럽게 입귀를 실룩거리며 황바위를 향해 씨벌였다.

《네놈이 〈푸른갑옷〉이라구?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더니, 평양성안에 이 게구마장수가 있는걸 몰랐겠지? 흐하하하…》

게구마는 졸병들에게 또 호통쳤다.

《다들 와서 구경해라. 너희들이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푸른갑옷〉이란 놈이 어떤 신세가 됐는지 보란 말이다.》

황바위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것만 같았다.

가슴을 쥐여뜯으며 태질하고싶은 절망감에 정신이 다 아찔해지는것이였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이 간특한 왜놈들! 나때문에 쌍가마까지…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황바위는 주먹으로 땅을 쾅쾅 내리치며 몸부림쳤다.

그 시각 쌍가마는 《먹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필사적으로 반항하고있었다.

한무리 왜병들이 쌍가마를 끌고 풀숲으로 들어가는 《먹새》를 따라가며 히히닥거렸다.

바로 이때였다.

《왜놈들을 치자!》하는 벼락같은 함성이 울려왔다.

쌍가마를 끌고가던 《먹새》와 왜놈들이 깜짝 놀라서 굳어졌다.

창과 칼을 든 백성들이 사나운 기세로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혼비백산한 왜놈들은 한동안 어찌할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속에서 게구마의 악청이 울려나왔다.

《뭣들 하는거냐? 저 무지한 백성놈들을 모조리 쳐죽여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왜놈들이 《와!》하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선두에서 달려오는 노마를 비롯한 기찰대를 맞받아나갔다.

분노한 백성들은 조금도 주춤거림이 없이 왜놈들을 향해 육박했다.

여기저기에서 창, 칼이 서로 부딪치고 악악하는 웨침소리가 울렸다.

왜놈들도 쓰러지고 백성들속에서도 희생자가 점점 늘어났다.

뒤에서 칼을 빼들고 기찰대를 지휘하던 좌상로인이 소리쳤다.

《막봉아, 황바위부터 구원해라!》

함정속에 갇힌 황바위는 초담이장마당의 기찰대가 자기를 구원하러 왔다는것을 안 순간부터 제정신이 아니였다.

함정속을 마구 맴돌며 길길이 뛰기도 하는 황바위의 모습은 흡사 덫에 걸린 맹수와 같았다.

막봉이와 십여명의 젊고 날랜 기찰대가 함정속의 황바위를 향해 조총을 내리쏘려는 왜놈들에게 왁 덮쳐들었다.

지금까지 기세등등해서 칼을 휘두르던 게구마가 먼저 기겁을 해서 달아났다. 그러자 조총을 쥔 놈들도 왁 흩어져버렸다. 그틈을 타서 막동이네들이 함정우에 덮었던 쇠그물을 제끼고 바줄을 내려보냈다.

《바위형, 우리가 왔소!》

《어서 바줄을 잡으라구.》

귀에 익은 좌상로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황바위의 가슴속엔 뜨거운것이 왈칵 치밀어올랐다.

바줄에 매달린 황바위는 어떻게 자기가 함정밖으로 나왔는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살았구만, 살았어.》

좌상로인이 기뻐하며 황바위앞으로 다가왔다.

황바위는 그들을 바로 보지도 못하고 풀썩 무릎부터 꿇었다.

《좌상로인님!…》

황바위는 목이 메여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이때 《땅!―》하고 조총소리가 울렸다. 뒤이어 왜놈들이 쏘아대는 조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좌상로인은 황바위를 자기 몸으로 막으며 꽉 끌어안았다. 옆에 있던 기찰대원들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황바위는 일어서려고 몸부림쳤으나 좌상로인은 그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좌상로인의 잔등은 순식간에 붉은피로 물들었다.

조총을 쏘던 왜놈들이 갑자기 달아나기 시작했다. 성표네가 불의에 조총을 쏘는 왜놈들의 등뒤에 나타난것이다.

성표와 같이 온 날파람있는 의병들이 비호처럼 몸을 날리며 조총을 쥔 놈들을 삼대베듯 쓸어눕혔다. 왜놈들의 조총사격에 일시 주춤했던 기찰대원들도 《와!―》하고 기세를 올리며 놈들을 맞받아나갔다.

쌍가마도 어느새 표창을 뽑아들고 달아나는 《집게다리》와 《먹새》를 뒤쫓았다. 그의 손에서 휙휙 표창이 날아가며 놈들의 목줄을 끊어놓았다.

뒤에서 소리만 치며 의병들을 부추기던 성표는 이제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는지 선두로 달려나가며 솜씨있게 칼을 휘둘러 도망치는 왜놈들을 요정냈다.

맞서는자는 없고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놓는 놈들이라 성표는 이 싸움의 승패가 자기에 의해 마련되기라도 한듯이 기고만장해서 소리쳤다.

《한놈도 놓치지 말라!》

싸움판의 형세는 이미전에 달라졌다. 게구마는 성표가 나타나기전에 벌써 살구멍을 찾아 도망쳤던것이다.

숲속에는 왜놈의 시체가 한벌 쭉 깔렸다.

초담이장의 기찰대원들속에서도 희생자가 여럿이 났다.

좌상로인은 억이 막혀 꺽꺽 숨을 몰아쉬는 황바위의 무릎을 벤채 운명하고있었다.

《황바위… 독불장군이라고… 백성을 믿지 않으면… 싸움에서 이길수 없네!…》

좌상로인의 유언이였다.

황바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좌상로인의 눈을 감겨주었다.

좌상로인의 죽음앞에서 초담이장의 온 기찰대원들이 통곡했다.

쌍가마도 소나무밑에 엎드려 두어깨를 떨며 슬프게 울었다.

황바위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발길이 닿는대로 휘청휘청 자꾸만 숲속으로 가고있었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가 왜 쌍가마의 말을 듣지 않았던가.… 어제까지만 해도 무지렁이로 짓밟히며 살아온 내가 언제부터 백성들을 믿지 않고 제 혼자 잘난체 우쭐대는 어리석은 놈이 되였는가?!…)

황바위의 가슴에서 차고넘치는 피눈물인듯 피같이 진한 마지막락조가 불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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