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회)
제 1 장
대동강이 노하다
1
임진(1592)년 8월 초이튿날 아침이였다. 보통문밖의 벌판에서는 왜병들이 어제 조선군사들과의 싸움에서 죽은 제놈들의 시체를 화장하는 검은 연기가 맑게 개인 하늘을 흐려놓고있었다.
원래 똑똑한 장례법도 없이 그저 사람이 죽으면 나무궤속에 시신을 넣어 구뎅이에 묻고는 돌로 지질러놓는것이 왜나라의 풍습인데 이렇게 한꺼번에 무더기시체가 생겼으니 불태워버리는 방법을 택한것이다.
놈들은 화장하는것으로도 그 많은 시체를 처리할수가 없었던지 시체를 날라다 대동강에 마구 처넣었다.
살아남은 왜병들속에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전염병처럼 떠돌았다. 어제 전투에서 무너진 성벽을 고쳐쌓고있던 왜병들은 어디서 또 조선군사의 화살이 날아들지 몰라 잔뜩 겁질린 상통들이였다.
성안의 한쪽에서 제비뽑기를 하고있는 놈들도 보였다. 평양성에서 요행 살아날것인가를 점쳐보는것이다.
《살았다! 나무아미타불…》
상괘(좋은 수)를 뽑은 말상판을 한 꺽다리가 벌떡 일어나며 야생적인 소리를 질렀다.
《망했다!》
죽을 수를 뽑은 왜병은 제 뒤통수를 탁 치며 금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조총자루를 집어던지고 벌렁 담장밑에 나자빠지더니 멀거니 하늘만 바라보는것이였다.
《제길, 조선에 가면 땅도 생기고 금덩이도 생기고 계집도 생긴다던게 다 거짓말이였어.…》
《흥, 거지중에도 알거지가 됐지.》
《시라소니같은 놈들…》
고니시를 비롯한 우두머리들을 두고 하는 불평이였다. 가슴속에 고름이 고인자들의 악담이였다.
날 끊어진 왜짚신을 손질하던 왜병이 총가목을 베고 벌렁 드러눕더니 성안팎 하늘을 날아도는 까마귀떼를 보며 청승맞은 목청으로 무슨 노래같은것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재물 얻을 꿈을 안고 조총메고 조선땅에 왔다가 까마귀밥이 되게 된 가련한 신세를 한탄하는 노래였다.
이때 보통벌에서 죽은 왜병들의 시체우를 날아돌던 까마귀떼가 성안에까지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땅― 땅― 여기저기서 조총소리가 울렸다. 왜병들이 까마귀들을 향해 쏜것이다. 세마리의 까마귀가 졸병들앞에 떨어져 푸드득거렸다.
괴성을 내지르며 모여든 왜병 몇이 화토불을 피워놓고 까마귀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왜병들은 까마귀고기를 구워먹으며 또다시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이 비싼 총으로 까마귀를 잡아먹다니, 제길…》
《먹을알이 없는 곳엔 인심도 없다더니 제길, 죽을 고비를 겪는 우리들에게 말뼈다귀 하나 차례지지 않는구나.》
《대가리에 쉬만 잔뜩 쓴 그놈들이 우리 사정 알아줄게 뭐야.》
평양성에 갇히워있는데서부터 오는 중압감은 곧 제 우두머리놈들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이어졌다. 왜병특유의 성깔들이 바글바글 또 끓기 시작한것이다.
《제길, 죽든 살든 결판을 내야 해.》
아까 점괘에서 상괘를 뽑고 좋아하던 왜병이 주먹을 휘두르며 고아댔다.
《그놈들을 믿고있다간 여기서 몰살을 당하고마네. 우리끼리라도 이 보통문이든 대동문이든 열어제끼고 뛰쳐나가야 살아.》
이때 그들의 옆으로 지나다가 말에서 훌쩍 뛰여내린 소 요시도모의 수급졸개 문어대가리 구시라가 《먼산바라보기눈》으로 그들을 쭉 훑어보았다.
《먼산바라보기눈》굽에는 눈물이 가랑거렸다. 그 눈물엔 이 세상 슬픔과 함께 《자비》가 다 담겨져있는듯싶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기세가 올라 지껄여대던 왜병들이 그를 보는 순간 와뜰 놀라며 일어서는것이였다. 그와 함께 그들의 얼굴에 어려있던 혈기들이 싹 사라져버렸다.
구시라는 상괘를 뽑은 졸병앞으로 문어대가리를 바싹 들이댔다. 이윽토록 졸병의 겁질린 눈을 들여다보는 그의 눈굽에 눈물이 가랑가랑 고여들었다.
《정신이야 말짱하겠지?》
구시라의 달짝지근한 목소리에 이어 어느새 쑥 빼든 그의 시퍼런 칼날에 졸병의 모가지가 썩둑 베여졌다.
잘리운 목줄기에서 시뻘건 피줄기가 솟구쳐오르더니 졸병은 쿵하고 그자리에 통나무 넘어지듯 했다.
문어대가리가 더 가랑거리는 눈물속에 자비를 가득 담은 눈길을 다른 놈들에게 돌리자 졸병들은 와― 하고 거미새끼들처럼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피워놓았던 화토불은 어느새 다 사그라지고 까마귀고기는 새까맣게 숯검댕이가 되여버렸다.
이때 20여명의 마병들이 보통문안으로 들어섰다.
구시라는 그들앞으로 가더니 귀속말로 물었다.
《보통벌에서 우리 사무라이들의 시체를 실어나르는 사람들이 아닌가?》
《예, 그렇소이다.》
《그런데 어찌 빈손들인가?》
애된 젊은 졸병이 나서며 순진스럽게 대답을 했다.
《저… 벌판에서 조선군사들이 불쑥 달려나올것만 같아… 그래 그냥… 이렇게 왔소이다.》
《그런데 그건 뭐지?》
구시라는 그가 말잔등에 싣고온 말고기를 보며 물었다.
《군사들이 고기를 못먹고 지내길래 이거라도 먹일려구…》
거짓을 모르는 애된 군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시라의 칼이 번쩍하더니 그의 목이 또 떨어져 땅바닥에 구을고 구시라의 눈에는 눈물이 또 가랑거렸다.
《아―앗》
마병들은 일제히 보통문이 미여지게 가재걸음을 쳤다.
구시라는 피묻은 칼날을 죽은 말 허벅다리에 문질러 씻더니 칼집에 꽉 꽂은 다음 아무말없이 타고온 말에 올라앉아 떠거덕거리며 사라져버렸다.
졸병들속에서 《생불마귀》로 불리우는 구시라는 군사들을 앞으로 내몰 일에는 언제나 앞장서군 했다. 두달전 왜군이 평양성으로 들어오는 날 공포에 질려 비여있는 성안에 성큼 들어서지 못하고 우물거릴 때도 이렇게 눈물을 가랑거리며 셋씩이나 졸병들의 목을 쳤었다.
구시라는 언제나 《자비》로운 눈물을 가랑거리며 부처님의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순식간에 졸병들의 모가지를 베여버리군 했는데 그에게 걸려드는 날에는 말 한마디 해볼 사이없이 염라대왕에게 가야 했다. 소 요시도모밑에서 졸병들의 기강상태를 맡아보고있는 이 구시라의 칼에 맞아 죽은자가 부지기수이다.
원래 구시라는 소 요시도모밑에 있던 보통사무라이였다.
하루는 바다가를 지나가다 고래새끼를 잡아가지고 오는 어부들을 만났었다.
그때 구시라는 《이걸 가지고 쯔시마다이묘님께로 가자. 내 특별히 말씀을 올려서 너희들에게 큰 상을 타게 해주마.》하고 자비로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순박한 바다사람들은 구시라의 선량해보이는 눈길에 끌리여 그의 말대로 수십명이 달라붙어 그 고래를 멨다.
그 당시 왜나라에서는 고래값이 금값이였다. 고래는 고기는 물론이고 뼈, 기름, 가죽, 지느러미, 밸까지 하나도 버리는것이 없을뿐아니라 특히 기름은 그을음이 없고 맑아서 부르는것이 값이였다.
고래를 메고 다이묘의 집이 바라보이는 곳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느라 기진맥진해진 한 어부가 혼자말처럼 《왜 하필 다이묘의 집으로 가누. 뭐 고래 팔아먹을데가 없어서?》하고 중얼거렸다. 하기사 먼바다에 나가 천신만고속에 잡은 고래를 다이묘에게 바쳐야 하는가 하고 생각한것은 그 한사람뿐이 아니였다.
구시라는 이내 첫 말을 뗀 어부에게 바싹 다가서서 속삭이듯 《너 다이묘님 대하는 태도가 뭐냐? 어디 한번 더 지껄여봐라.》하더니 그의 목을 뎅거덩 쳐갈겼다. 그리고는 피묻은 칼을 추켜든채 《이놈들, 어디 또…》하고 눈물을 가랑거렸다. 그바람에 배군들은 잘못 걸려들었다는 생각에 고래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도망쳐버렸다.
어부들은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잡은 고래여서 다문 몇푼이라도 돌려달라고 다이묘의 문전에 몰려가 항의를 들이댔으나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이런 일로 하여 구시라는 소 요시도모의 눈에 들게 되였으며 마침내는 그의 오른팔이 되였던것이다.
구시라라는 그의 성은 바로 그곳 어부들이 그를 가리켜 구지라(고래)라고 저주를 담아 부른것이 어느새인가 《구시라》로 변이된것이였다.
보통문에서 구시라가 사라지자 졸병들은 다시 모여들어 칼에 맞아 피칠갑이 된 불쌍한 두 동료의 시체를 안아다가 화장터에 던져주고는 격분을 억제하지 못해했다. 특히 애젊은 졸병의 처참한 죽음을 두고 슬퍼들 했다.
《그놈이 진짜 〈생불마귀〉로군.》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사람까지 죽이는걸 보니 그놈에겐 대를 이을 자식도 없을걸세.》
《거짓말이라곤 해본적이 없는… 내가 잘 아는 농사군의 아들인데, 어참.》
이때 여기로 물거미뒤다리처럼 다리가 긴 봉행(군수관 비슷한 직무) 노다가 또 말을 타고 달려와 그들앞에서 내렸다.
《당신도 우리 목을 치러 왔는가?》
《하기사 간 못먹여서 죽이나 목을 쳐 죽이나 같지 뭐.》
《그래 봉행이라는게 뭣하는 놈이냐?》
그의 앞으로 몰켜든 졸병들이 바늘끝같은 눈길로 올려다보며 가슴에 품고있던 분통들을 터치는데 말 마디마디에는 가시들이 돋혀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례상사인 노다는 싱글거리며 어깨를 낮추었다.
《자, 이러지들 마소. 나도 배고프고 소금도 고기도 먹고싶소.》
그 소리에 결패가 있어보이는 졸병 하나가 노다의 턱앞에 큰 주먹을 내대고 흔들며 소리쳤다.
《이놈아, 그 혀바닥으로 어물쩍하려고 들지 말아. 그래 싸움판에서 죽을 고비를 겪고난 우리들에게 고기 한점, 소금 한웅큼 못주는것도 봉행이냐?》
그러자 곁불들이 또 일어났다.
《먹을것이 없어 까마귀까지 잡아먹는 군사들의 목을 쳐서 피칠갑을 만들어놓는 놈들…》
《말똥에 굴러도 사는것이 제일이라고는 하지만, 제길… 이렇게 살바에야 너 죽구 나 죽구 할판이다. 제길…》
뼈속까지 독이 밴 졸병들로 하여 일이 크게 부르터 금방 치고받고 살륙판이 또 벌어질것 같은데 노다는 여전히 벙글거렸다.
《날보고 아무리 이래봤자 뭘하겠나. 내가 무슨 놈의 화수분(보물단지)이라고 소금도 내놓고 고기도 내놓고 겨울옷감도 내놓겠나. 경성(서울)길은 중화의병들에게 콱 막히고 북쪽길은 조선관군과 승병들때문에 나갈 가망이 없는데… 거 누구건 제발 내대신 봉행자릴 타고앉을 사람 없는가?》
노다의 딱한 사정을 아는 졸병들중에는 허허하고 웃기까지 하는 자도 있었다.
분위기가 일변되자 노다는 상론조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떠나올 때 관빠꾸님께서는 〈무식어적식〉(적의 식량을 빼앗아먹으라)이라는 유식한 말씀을 하셨지만 이 평양성바닥에서야 빼앗아 먹을것이나 있어야지, 제길… 쌀은 있지만 사람이 쌀벌레가 아닌데야… 》
노다는 긴 다리를 돋궈올리며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러니 우리 저 보통벌에 뻐드러진 말새끼들을 몽땅 끌어다가 먹자구. 여름철이지만 바로 어제 뒈진것들이니까 내장만 들어내면 될게거든.…》
노다의 뜻밖의 말에 좀 벙벙해져 서로 마주보던 졸병들가운데서 《거 좋은 생각이요.》하는 말이 한마디 터져나오자 모두들 호응했다.
《그렇게 합시다. 이런판에 죽은 고기, 산 고기 가리게 됐소.》
《우리 봉행이 명봉행이요. 허허허…》
《조총들을 메고 나가서 죽기내기로 다 끌어오세나.》
《한사람은 죽은 말 끌어왔다구 목을 치고, 한사람은 먹자구 하고… 흥, 될대로 되라지.》
원래 왜인들은 소고기보다 말고기를 더 좋아했다. 허나 오늘은 좋아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이러는것이다.
노다는 그제야 후― 하고 큰 숨을 내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젠장, 봉행도 못해먹을 일이야!)
2
(1)
보통문안에서 이렇게 왜병들이 저희들끼리 살아날 궁리를 엮어대고있을 때 대동강가에서는 군막에 물을 길어다주는 일에 강제로 동원되였던 물지게군들이 물을 못긷겠다고 항의를 들이대고있었다. 강물에 던져버린 왜병들의 시체로 하여 온 대동강물이 더러워진 까닭이였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시체를 대동강에 처넣었지?》
한 중늙은이 물지게군이 물속의 시체를 가리켜보이며 그들의 일을 감시하던 우두머리왜병에게 들이댔다. 놈은 얼굴을 찡긋거리고나서 대수롭지 않은듯이 뇌까렸다.
《아하, 난 또 뭣때문에 그러는가 했구만. 에또, 우리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면 이렇게 물속에 처넣는다. 그러니 상관말고 흩어져들 가라.》
《야, 우린 못하겠다.》
물지게군들은 저마다 그놈앞에 물지게를 내동댕이쳤다.
《이건 반항인가? 정 그러면 모조리 죽여버릴테다.》
놈은 이렇게 씨벌여대며 칼을 뽑아들었다.
《뭐야?》
구시라가 《자비》의 눈물을 가랑가랑 고여안고 나타난것은 바로 이때였다.
제놈들에게서 사연을 듣고난 구시라는 중년물지게군에게 다가오더니 귀속말처럼 속삭였다.
《그래 이 큰 강에 시체를 좀 던진것이 그리도 큰일인가.》
《뭐야, 이 무지막지한 섬오랑캐놈아!》
중년물지게군이 솥뚜껑같은 큰 주먹으로 문어대가리의 아래턱을 콱 치올려받으려는데 어느새 그의 목에 시퍼런 칼날이 날아들었다.
《앗!》
뜻밖의 끔찍한 참경에 물지게군들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저놈 때려죽이라!》
사람들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때려죽이라!》
물지게군들은 고함들을 치며 저마다 물지게들을 추켜들고 그놈에게로 달려들었다.
《륙손이 아버지를 대동문우에 목매단 놈도 저놈이다.》, 《모란이 아버지를 대동강에 빠쳐 죽인 놈도 저놈이다. 저놈을 쳐죽이자!》
제 나라에서는 칼질 한번이면 거미새끼들처럼 흩어지던 백성들이였다. 헌데 이 나라 백성들은… 뜻밖에도 벌떼처럼 달려드는 물지게군들앞에서 구시라는 뒤걸음을 쳤다.
이때였다.
《구시라, 썩 물러가지 못할가?》
불호령소리의 주인공은 소 요시도모였다.
소 요시도모는 당장 달려들것 같은 물지게군들에게 사죄하는 양으로 머리를 좀 숙일사 해보이고나서 무척 선량한 어조로 말했다.
《에또, 조선의 풍습을 잘 모르다나니 우리 병사들이 시체를 강물에 던진것 같다. 그러니 량해해주길 바라오.》
《야, 개수작 말고 당장 시체들을 걷어내라. 그렇지 않으면 우린 물을 긷지 않겠다.》
물지게군들은 쉬이 물러설 자세가 아니였다.
《여, 게다니!》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한 소 요시도모는 그중 진중해보이는자를 손짓해 불렀다. 그에게 어떻게 하나 물지게군들을 무마시켜야겠다고 쑹얼거리고난 그는 곧 문제를 더 야기시킨 구시라를 데리고 대동문루로 사라져버렸다.…
《우둔한것, 그래 그놈들의 목을 다 베여놓은 다음 네가 우리 2만명군사들의 물을 길어먹이겠는가?》
고니시는 무릎을 꿇고앉아 하회를 기다리는 구시라를 쏘아보며 소래기를 쳤다. 평소에 침착단아함을 자부하던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구시라에게 한바탕 된욕을 퍼붓고난 고니시는 소 요시도모에게 턱짓했다.
《저 구시라를 평양성안에 놔뒀다가는 계속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 당장 어랑산성으로 내보내라.》
고니시는 구시라의 꼴을 보기도 싫다는듯 자리를 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