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16 장

푸른 갑옷

2

 

임진년 8월 초하루날 새벽.

대동강하류 문발이쪽에서 달려오는 말 한필이 솟아오르는 새벽빛을 받으며 차츰 크게 나타나더니 이윽고 급한 채찍을 더 다우치는 기찰수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평양성수복전투가 시작되였소.》

서진벌에 메아리쳐오는 그 목소리에 서진성과 양무대가 아니, 온 중화의병대와 백성들이 발돋움을 하며 그 목소리들을 되받았다.

《평양성싸움이 시작되였다오.》

얼마나 기다리던 날인가.

《오늘 새벽 날이 밝기 시작하자 함구문에서부터 들이치기 시작했소이다.》

기찰수는 말에서 뛰여내리며 숨가삐 림중량의병장에게 보고를 했다.

《그렇소?》

밝아진 얼굴로 반갑게 그를 맞는 의병장두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덤비지 말구 차근차근…》

의병장의 말에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기찰수 막동이(순령수로 있던) 총명하게 생긴 눈을 빛내이며 자기가 임무를 받고온 내용을 전달했다.

《오늘 어둑새벽에 공격은 함구문쪽에서 시작되였소이다. 이번에 평양성안의 왜적을 들이칠 우리 관군과 의병들은 2만명이 넘고 그 선봉장은 김응서장군이, 중군은 김명원도원수가 거느리신답니다. 승병부대를 비롯한 평양8장사의병대는 칠성문쪽을 맡았는데 잘하면 이번에 성안의 왜놈을 다 잡을수 있다고 하옵니다. 살아서 도망치는 놈들은 우리 중화의병대가 주동이 되여 잡아달라는 김응서장군의 부탁이 있었소이다. 그럼 저는 기찰대정님에게로 돌아가겠소이다.》

그가 급히 전달한 내용은 간단했으나 서진성에는 하늘을 찌를듯 한 사기가 맴돌았다.

림중량의병장은 직접 자기가 미리 조직해놓은 의병들의 매복처를 돌며 의병들의 사기를 고무했다.

의병장과 함께 의병들을 돌아보는 기동대정 황바위의 가슴은 걷잡을수없이 높뛰였다.

적이 둥지를 틀고있는 어랑산성 동남쪽에는 한대걸의병대와 김억겸류동대가 있고 서쪽벌에는 그들을 호위하는 윤봉이 거느린 중화의병대 대원들이 쭉 깔려있었다.

적정을 제때에 파악하고 련락을 긴밀하게 조직하는것은 림중량의병장 전술의 특징이다. 하기에 10리어간에 기동기찰대를 세워놓고 왜적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대동강하류쪽 두루섬, 만경대 등지로 기본련락통로인 배길도 만들었는데 급한 경우에는 말로도 달리게 하였다.

대동강에서 어랑산성까지의 국도사이에는 황바위의 기동대가 성안의 왜놈들을 한놈도 남기지 않을 기세를 안고 대기하고있었다.

황바위는 기동대의 차비를 료해하고나서 말하였다.

《형님, 동생들, 다 아시는것처럼 이 몸은 군률을 어겨서 처벌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도 역시 여러분들과 같이 왜놈들을 끝없이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한마음한뜻이 되여 원쑤 왜놈들을 족칩시다. 우리는 의병장님의 명령지시대로 부단히 기동하면서 왜놈들을 옆에서도 치고 대담하게 앞에서도 치면서 우리 의병들이 매복한 곳으로 유인해와야 합니다.》

황바위는 불꽃이 튕기는 기동대원들의 눈빛을 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기동대가 왜놈군대를 혼란에 빠뜨릴수록, 그놈들을 유인해다가 소모전을 벌릴수록 우리의 승리는 더욱 커질것입니다. 일단 싸움이 붙었을 때에는 표창대가 먼저 왜군의 조총대와 기마대를 녹여내고 그에 뒤를 따라 사수대와 창검대가 협동공격을 들이대며 적들이 따라오는 기미가 보이면 날쌔게 기동하여 매복지점으로 원쑤놈들을 끌어와야겠습니다.》

그는 기동대원들을 둘러보고나서 계속했다.

《헛방, 헛칼, 헛활질 하나가 나라앞에, 백성들앞에 얼마나 큰 죄로 되는가를 명심합시다. 서설봉할아버님몫까지 싸웁시다.》

《알겠수다!》

젊은 기동대원들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의병장의 지시로 푸른 갑옷을 가뜬하게 차려입은 의병들은 만단의 싸움준비를 했다. 도망치는 왜놈들의 뒤통수를 되게 때리자고 봉수군들도 창을 날세웠고 백정의병은 도끼날을 시퍼렇게 갈았다.

긴장한 하루였다. 표창마다 칼과 화살마다에 멸적의 눈이 밝혀진 하루였다.

그런데 해가 벌써 기우는데도 평양성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만단의 준비를 갖춘 의병들의 피는 끓고있는데 어찌된 일일가?

(형편이 달라진게 아닐가?)

조마조마한 마음들이 옥죄여들었다.

해가 서산마루에 넘어서서야 기찰대정 위서방이 의병장앞으로 급히 말을 타고 달려와서 가슴을 쳤다.

《의병장님, 오늘 싸움에서 우리가 패했소이다. 억울하오이다.》

황바위는 눈앞이 아찔했다.

불타는 평양하늘을 바라보는 의병들의 주먹들이 와들거렸다.

《말하오.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것은 자고로 있는 법인데 우리 의병대는 한번 실패에 넋이 빠질 사람들이 아니요. 그래, 싸움에 패한 근본원인이 무엇이요?》

림중량의 침착한 물음에 위서방은 다시한번 가슴을 치며 말했다.

《이번에도 도원수의 비겁성때문이오이다.》

《아니 또? 그 도원수말이요?》

호영이가 주먹을 불끈 쥐였다.

분위기는 긴장할대로 긴장해졌다.

《김응서장군은?》

의병장은 걱정이 되는듯 물었다.

《김응서선봉장은 왜병의 주력을 함구문으로 쏠리게 한 다음 조총사격거리안인 보통문성밑에서 한바탕 싸움을 벌리다가 놈들을 성밖으로 멀리 끌어내여 치면서 한편 매복군들로 성안을 타고앉게 하자는것이였소이다.

그런데 김명원도원수가 꾸역꾸역 보통문으로 쏟아져나오는 왜병과 조총대에 겁을 먹고 뛰기 시작해서 중군, 좌군, 우군이 걷잡을수없이 지당산쪽으로 뛰였소이다. 그래서 할수없이 김응서선봉장부대도 잡약산 뒤쪽으로 물러서는것을 보았는데 그후 소식은 모르겠소이다.

여기 의병대에 빨리 알려야겠기에…》

하더니 위서방은 《과시 김응서장군은 천하명장이였소이다. 보통문앞에서 장군은 왜놈의 모가지를 풀대 베듯 했는데 왜놈들은 감히 그앞을 막아서는 놈이 없었소이다. 8장사의병들과 승병들, 경상골에서 왜놈에게 죽은 할머니의 아들 최영장의 칼날도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소이다. 우리 조총대도 그간 왜놈의것을 뺏아 30여자루가 되였지만 헛방이 없이 잘 싸웠소이다. 오늘 왜군의 앞장에 섰던 쯔시마도주놈도 김응서장군의 칼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아, 우리 도원수가 조금만 대담한 사람이였더래도 한편으로 놈들을 넓은 벌로 끌어내여 멸살시키고 한편으로는 평양성을 타고앉는것인데 정말이지 원통하오이다.》라고 했다.

통분함을 금치 못하는 위서방의 외자상투가 밤눈에도 크게 흔들거렸다.

《너무 락심들 맙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응서장군은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요.》

림중량의병장의 침착한 목소리가 어둠속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의병들과 백성들가운데서는 실망해하는 빛이 력력한 사람도 있고 《제길 평양성을 언제 가면 도로 찾노.》 하는 사람도 생겼다.

순간 림중량의병장은 서설봉과 작전하던 일을 생각하며 신심에 넘친 소리로 사람들을 불렀다.

《우리 중화의병대는 작전계획대로 오늘밤에도 왜놈을 칩시다.》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모여들었다. 림중량은 사람들앞에 변상갑이를 끌어내세우고 물었다.

《여러분, 이게 어떤 놈인지 아시오?》

《거 우리 마을에 와서 관상쟁이노릇을 하던자로구만.》

《중노릇을 하고다녔는데 중이 어떻게 머리를 길렀을가?》

이 소리에 한가닥 희망이라도 건듯 변상갑이 줴쳤다.

《옳쉐다. 저는 조선사람이 옳쉐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순간 추상같은 림중량의 목소리가 찡 울렸다.

《여러분, 내 말을 똑똑히 들으시오. 이놈은 바로 그런 행색을 하고 10년나마 우리 나라 방방곡곡을 싸다니며 국정, 민심을 렴탐해온 왜놈의 수급렴탐군이올시다.

이번에 란이 일어나게 된데는 이놈의 이런 렴탐자료가 큰 뒤받침을 한것입니다.

왜놈이란 이렇게 간악한 놈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황바위기동대정은 벌써 열세살때 중의 모습을 하고 다니는 이놈의 정체를 알아보고 전날의 성천부사였던 김요립에게 알려준 죄로 그놈에게 자기 아버지의 생다리만 끊겼습니다.

우리 어찌 이런 오랑캐놈을 용서하겠습니까.》

《저놈 죽여라!》 하는 아우성이 터졌다.

이때 윤모사는 분노에 떠는 목소리로 웨쳤다.

《그런데 바로 이놈과 김요립이, 양덕의 조참봉따위가 군수의 도장을 리용하고 성천, 양덕땅의 백성들을 속여 평양성안에 거덜이난 소금, 천따위를 걷어다가 왜병괴수에게 바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백성들의 밝은 눈이 그것을 알아차렸기에 이놈이 우리에게 이렇게 묶이웠습니다. 이놈은 조선사람으로 가장하고 갖은 악독한짓을 다한 우리의 철천지원쑤입니다.》

윤모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병들이 달려들어 변상갑을 요정내기 시작했다. 변상갑은 드센 주먹과 발길에 얻어맞아 면상이 터지고 팔다리가 부러져나갔다.

황바위는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원한이 맺힌 주먹으로 변상갑을 후려치고도 성차지 않아 황소숨을 내그었다.

림중량은 격앙된 분위기와 의병들의 적개심을 지켜보다가 대오를 정돈시킨 다음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평양성의 왜놈은 비록 쫓겨는 안났지만 여러 싸움에서 반넋이 나간 놈들입니다. 그러니 소금이 못들어가게 된줄을 알면 더우기 환장이 되여 모두 미치거나 등신들이 될게구 여기 어랑산성놈들은 평양성싸움으로 종일 긴장한데다가 동쪽 석가상으로부터 종일 들락날락하며 놈들을 유인습격한 한대걸의병대로 하여 피곤과 불안속에 있을것입니다. 그러니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그놈들을 계속 치자는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어서 령을 내리시오!》

의병들은 한결같이 응해나섰다.

그리하여 림중량은 이미 짜두었던 작전계획을 발표했다.

《기동대를 맡은 황바위는 직접 어랑산성의 동쪽을 습격하고 불을 올릴것. 최칠성은 전날 자기가 지키던 산성뒤쪽 군기고옆에 매복하고있다가 어랑산성의 불신호에 따라 그 군기고속에 있는 왜놈의 조총과 화약, 탄알을 빼내여 의병들과 말에 실려보낸 다음 그 창고에 불을 지를것. 그보다 앞서 호영이는 표창대를 이끌고 꽃골로 가서 한대걸의병대와 힘을 합쳐 그쪽으로 가는 왜놈들을 섬멸하고 서일은 기동대를 인솔하고 더 멀리 수월산 룡마골로 가서 적을 칠것. 만약에 왜놈들이 변상갑의 활촉련락대로 오지 않으면 지체없이 어랑산성 남쪽진지에 대한 습격전투에 참가할것. 그리고 서쪽마을에 있는 의병들은 멀리서 밤중에 홰불을 들어 놈들을 불안케 만들고 이 틈을 타서 800명 의병대는 린근농민들과 함께 서진벌의 곡식을 몽땅 베여들일것.》

림중량의병장의 명령과 지시는 분명하고 정확하였다. 림중량은 놈들을 유인하기 위하여 이튿날새벽 신욱을 시켜서 어랑산성옆의 홰나무에 비밀쪽지를 꽂은 화살을 날려보내기로 작정했다. 

되돌이

우리민족끼리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E-mail) : urimanager@silibank.com 홈페지내용에 관한 문의(E-mail) : uriminzok@silibank.com
Copyright © 2003 - 2013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gotop
기사종합
 
도서, 잡지
 
영화, 음악
 
독자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