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6 회)
제 15 장
륙손이 2 (2) 모란이네 집에 다달은 륙손이는 뜻밖의 정황에 어리둥절해졌다. 게구마가 있을 때는 대문간에 보초까지 세웠고 그가 없을 때엔 언제나 밤이면 변상갑이와 술놀이를 하던 김명립의 집에 사람기척이 없었던것이다. 살금살금 모란이가 거처하는 행랑방으로 다가가서 문을 두드리며 그를 부르자 기다리고라도 있은듯 모란이가 뛰쳐나와 그의 품에 안기듯 하면서 울음절반 급한 소식을 알려주는것이였다. 《너의 아버지시체를 의병들에게 도적맞힐가봐 왜놈들이 대동강에 처넣었어. 우리 아버지도 지금 발에 쇠고랑을 차고 물지게를 지고있구.》 《뭐라구?》 륙손이는 휘청거려지는 몸을 겨우 담벽에 의지하고 섰는데 모란이는 더 뜻밖의 소식을 알려주었다. 《변상갑이 그놈이 이 집주인 김명립이를 데리구 중화군수가 숨어있는데로 갔어. 백성들한테서 소금이랑 천을 빼앗아내겠다구 하면서…》 《뭐라구?!》 륙손이가 두주먹을 부르쥐며 한발 다가섰다. 《그 군수놈이 있는데가 어데래?》 《그건 모르겠어.》 《야, 이놈들, 두고보자!》 륙손이 목소리가 커지자 《쉿, 주인집녀편네가 안에 있어.》하며 모란이는 안채를 가리키더니 《우리 아버지는 어쩌면 좋아. 그러다간 아버지까지 죽일것 같애.》하고 또 울먹이였다. 그러나 륙손이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마음 든든히 먹어. 아버지도 생각이 있을거야.》 륙손이가 떠나려고 하자 《잠간만…》하더니 모란이는 무엇인가 보따리에 싸가지고 나와서 주었다. 《배를 곯구 다니겠는데.》하고 또 흐느꼈다. 륙손이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보따리를 받아들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황바위가 숨어있던 곳에 온 륙손이는 또다시 가슴이 철렁했다. 그가 숨어있던 앞길가에는 시커먼 옷차림을 한 왜놈 두놈이 너부러져있을뿐 황바위는 어데로 갔는지 알수가 없었다. 왜놈들은 아가리들에 흰 차돌멩이들을 물고 나자빠져있었다. 륙손이는 정신이 아찔했다. 일은 당해놓은 일이였다. 아니나다를가 땅땅 총소리가 터지며 저쪽에서 왜병들이 고함을 치며 달려오고있었다. 새빨간 불줄기가 귀전을 스쳐지나갔다. 륙손이는 당황해났다. 다행히도 헤여질 때 무슨 일이 생기거든 모란봉숲속으로 해서 을밀대아래쪽성벽을 넘어가자고 약속해둔터여서 그쪽으로 빠졌다. 한참 헤매던 그는 솔포기속에 숨어서 자기를 기다리는 황바위를 만났다. 《아니 형, 여기가 어덴줄 알고…》 륙손이는 놀랍고 억이 막혀 말을 잇지 못하는데 《큰아버지시체는 그대로 있더냐?》하고 황바위가 급히 물었다. 《없어요. 왜놈들이 대동강에 처넣었어요.》 《뭐라구? 내 그놈들을 그저.》 황바위가 벌떡 일어섰다. 륙손이 두팔로 형을 꽉 잡고 모란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 해주었다. 울먹이며 하는 륙손이의 이야기를 듣는 황바위앞에는 분을 새기노라 질근질근 씹어뱉는 솔잎사귀가 쌓여졌다. 《가자, 륙손아. 빨리 그놈들을 쫓아가서 그 변상갑이도 군수놈도 다 쳐죽이자.》 황바위는 큰아버지의 시신마저 구하지 못한 울분이 치솟아 솔포기를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아버지가 이 소식을 들으시면 얼마나 분해하실가. 륙손아, 떠나자.》 《이 일을 의병대에 알려야 하지 않을가요?》 륙손이 묻는듯 형을 바라봤다. 《그럴사이가 없다. 그러다간 놈들을 다 놓치구만다.》 두 형제는 솔포기를 차고일어섰다. 《우리 둘이서 해낼수 있을가요?》 《너 그러구서야 어떻게 원쑤를 갚겠느냐. 그놈들은 우리 부모의 원쑤일뿐아니라 나라의 원쑤야. 옛다, 이 총을 메거라. 아까 내앞을 지나가는 왜놈을 요정내구 빼앗은거다. 군수놈 있는데가 중화고을 노루목이라는 곳일게다. 그리로 곧장 가자.》 두 형제가 성벽을 넘으려고 을밀대아래쪽으로 가는데 왜병 세놈이 추격해오며 총질을 해댔다. 그것을 보자 황바위가 몸을 부르르 떨며 《이 원쑤놈들아!》하고 모란봉이 찌르릉하게 고함을 치며 내달리더니 단매에 놈들의 골통을 까서 꺼꾸러뜨렸다. 깜짝 놀란 륙손이가 황급히 황바위를 잡아끌어 성을 넘는데 황바위는 황소숨을 몰아쉬며 《아, 저 성안의 왜놈들을 다 죽이지 못하고 가는구나!》하고 씨근거리였다. 이때 성안에서는 중화의병대의 푸른 갑옷입은 호랑이를 잡아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사방에서 홰불들을 올리며 총질을 해댔다. 그러면서도 놈들은 제 골통에 차돌멩이가 날아들가봐 어둠속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모가지들을 움츠렸다. 《과연 형은 호랑이구려!》 그 정황속에서도 륙손은 감탄을 금치 못해했다. 기구한 운명속에 만난 두 형제는 왜놈들이 득실거리는 평양성을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대동강을 다시 건너 노루목골로 향하였다. 그들은 밤낮으로 백리길을 달려서 새벽녘에 노루목에 다달았으나 군수놈이 칭칭이골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 주먹을 부르쥐고 그곳으로 달렸다. 물우에서 자란 륙손이에게는 범같이 날랜 황바위를 따라가기가 숨가빴다. 《형은 돌팔매질만 잘하는줄 알았더니 걸음새도 호랑이걸음이구려. 그런데 참 그 돌팔매질을 누구한테서 배웠수?》 《배우긴, 할아버지를 죽인 왜놈이랑 아버지네들을 생리별시키고 다리병신까지 만들어놓은 놈들을 기어이 복수하자구 내자신이 익힌거다.》 모란이가 싸준 밥으로 요기를 하면서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 형제가 칭칭이골언덕에 올라섰을 때였다. 어디선가 신음소리같은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귀를 강구었다. 《누구 없수.…》 아래골짜기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들은 그리로 달려갔다. 골짜기의 실개울물가에서 머리 흰 로인이 무엇인가를 붙안고 누워서 소리를 치고있었다. 그옆에는 그의 안해인듯한 늙은 녀인이 누워있는데 이미 숨을 거둔듯 했다. 로인의 옷은 피투성이가 되여있었다. 《아니, 웬 로인님들이…》 로인은 가까스로 눈을 뜨더니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뉘시우?》 《중화의병대예요, 할아버님.》 《중화의병대라구? 됐어. 거기에 우리 칠성이가 있지. 난 중화군의 관노 홍첨지구 여기 눈감은것은 내 녀편네지. 관비라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로인은 안깐힘을 써 안고있던 인궤를 그들에게 넘겨주며 《이건 군수놈의 관인인데 의병대에 가져다주라구. 그 군수놈이 역적놈일세.》하고 말했다. 그는 조참봉과 왜군군수관놈이 하던 밀담과 붉은 쪽지를 꽂은 화살이야기까지 다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놈들이 양덕고을로 갔는데 빨리 따라가 쳐죽이라고 했다. 로인은 무거워지는 눈까풀을 힘겹게 추켜올리며 《내 우리 의병들옆에서 죽으니 이젠 됐네. 우리 칠성이보구 부디 잘 싸우라구 일러주게.》하고는 눈을 감았다. 사람값에 들지 못하던 자기도 백성의 도리를 하고 죽는것이 다행인듯 주름진 얼굴에 느긋한 미소를 지은채 숨을 거두었다. 황바위와 륙손이는 친손자가 된 심정으로 어설프게나마 홍첨지내외의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뻐꾹새 한마리가 이 깊은 골안에서 벌어진 이 나라 백성들의 깨끗한 넋을 온 세상에 알려라도 주려는듯 청맑은 목소리를 높이며 날아갔다. 이때 웬 사람이 그들에게로 와서 무덤의 사연을 알아보더니 덥석 무릎을 꿇고 엎디였다. 《홍아버지, 부엌녀어머니! 참 장하십니다. 저도 오늘에야 눈을 뜨고 그놈들이 주는것을 어랑산성 왜놈에게가 아니라 중화의병대의 칠성이에게 갖다줄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황바위가 묻자 그제야 그 사람은 황바위와 륙손이의 차림새를 훑어보고 되물었다. 《그쪽은 의병들이요?》 《그렇소.》 그러자 그 사람은 믿음이 가는지 품속에서 종이쪽지를 꺼내놓으며 《난 군노외다. 까막눈이 돼서 무슨 글인지는 모르겠지만 군수가 이걸 왜놈에게 갖다바치라는데 우리 조선사람 잡자는것이 분명한것 같아서…》하고
말했다. 종이를 펴든 황바위는 깜짝 놀랐다. 한문과 국문으로 쓴것인데 림중량을 잡으라는 방이였다. 황바위는 방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그 군수놈이 지금 어데있소?》하고 다우쳐 물었다. 《이 오솔길로 가면 수리암절간이 있는데 거기에 있소.》하고 관노는 자세히 대주었다. 《참 잘 생각하였소이다. 이것은 중화의병장을 잡으라는 방이요.》 《네?!》 관노는 와뜰 놀라며 《내가 더 큰 죄를 질번 했구려.》하고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였다. 《어서 이걸 가지고 서진성으로 가서 의병장님께 드리시우. 그리구 황바위가 큰아버지의 시체는 못찾구 군수랑 조참봉, 왜놈들이 백성들의 소금과 천을 털어내려구 해서 그놈들을 잡으려 여기까지 왔는데 꼭 그놈들의 모가지를 베여가지고 가겠단다고 전해주시우. 칠성형님이 잘 도와줄겁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황바위는 홍로인부부의 무덤을 앞으로 더 잘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고 일어섰다. 《륙손이, 그 군수놈에게로 빨리 가자.》 먼저 황바위가 앞서 달려갔다. 절간 본채의 큰방 뒤문을 열어제낀 황바위는 놀랐다. 절간은 텅 비여있었다. 《아이구, 이놈들을 놓쳤구나!》 락심한채 방안에 잠시 서있던 황바위는 《거 어떤 놈들이냐?》하고 마당 건너편 방에서 나는 고함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내다보니 어려서부터 오늘까지 잊은적이 없던 호방놈이 다리를 뻗치고 앉아있고 살이 피둥피둥 찐 수교놈과 또 한놈의 군교놈이 제각기 병장기를 들고 이쪽을 쏘아보고있었다. 분기가 치밀어오른 황바위는 《내다. 이놈들!》하고 차돌멩이를 거머쥔채 문을 박차고 뛰여나와 마당을 지나다가 《아이쿠.》소리를 지르며 섬거적으로 가리워놓은 마른 우물속에 빠지고말았다. 《아하하, 그 우물이 한몫을 했군.》 수교놈이 우물속을 들여다보며 《옳지, 네놈이 바로 돌팔매질솜씨로 이름난 도적놈이로구나. 군노녀석이 아직 어랑성에 가닿지도 못했겠는데 우리는 큰 도적놈을 앉아서 잡았군.》하고 세길이 넘는 빈 우물속을 들여다보며 지껄여대는데 밑에서 윙 소리를 내며 돌멩이가 연거퍼 솟아올라 지껄이던 놈의 아가리며 골통이 박살나고 눈이 뒤집힌채 뻐드러졌다. 호방놈이 군교에게 악에 받쳐 소리쳤다. 《가마의 끓는 물을 갖다가 우물속에 퍼부으라!》 이때 뒤쪽 숲속에서 망을 보던 륙손이가 총을 꼬나들고 달려나오며 《이놈들!》하고 소리를 쳤다. 호방놈이 기겁을 해서 뒤로 뭉개질을 치고 군교놈은 뺑소니를 쳤다. 그런데 륙손이는 총도 쏠줄 모르거니와 탄알도 없어서 총이 한갖 쇠막대기처럼 되고말자 총을 거꾸로 잡고 호방놈에게 덤벼들어 총가목으로 두들겨패서 요정을 냈다. 그리고는 우물로 달려가서 바위에게 소리쳐주었다. 《형! 걱정마우. 내 이제 바줄을 내려보낼테니.》하고 바줄을 찾아보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사방을 두루 찾다가보니 산비탈쪽으로 군교가 도망을 치고있었다. 륙손이는 소리쳤다. 《여보시우, 우리는 당신을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니우. 이리 와서 우리를 좀 도와주우.》 그러나 그는 그저 도망만 치고있었다. 륙손이는 몸이 달았다. 군수패거리가 또 불쑥 나타날것 같아서였다. 서둘러 새끼오래기들과 칡넝쿨들을 주어모으는데 《여보시우, 당신들은 정말 의병이유? 까짓 나를 죽일테면 죽이시우.》 하고 뜻밖에도 도망치던 군교가 되돌아와서 헛간으로 가더니 드레박줄을 가지고왔다. 이윽고 마른 우물속에서 나온 황바위는 군교에게 급히 물었다. 《군수놈이 어데 있수?》 《오늘새벽에 제 식구 데리구 저 숲속으로 뛰였소이다.》 황바위형제는 맥이 났다. 황바위가 물었다. 《당신은 왜 뛰다말고 왔소?》 《저 호방놈과 수교놈의 손아귀에 잡혀살았댔는데…》 《좀 늦기는 했지만 이렇게 우리를 도와주어 고맙소. 지금 조선백성치고 왜놈과 싸우지 않는 사람이 누구겠소. 이 군수떼거리같은 놈들을 내놓곤… 여기 있던 홍로인부부도 마지막에 백성구실을 잘하고 세상을 뜨셨소.》 《아니, 홍령감내외분이? 참 착한분들이였지요. 우리에게 칠성이라구 있었는데 그 령감님내외가 살뜰히 보살펴주었지요. 누구에겐들 사람의 정이 없겠소. 하지만 권세앞이라… 하기야 다 제 못난탓이지.…》 칠성이 말이 나오자 황바위는 불끈 그의 생각이 치솟아 가슴이 저려났다. 륙손이가 군수놈 찾을 걱정을 하자 군교는 《그놈들은 이제는 죽은 놈들이나 같수다. 이 깊고 큰 산속에서 호랑이밥이 안되면 원한을 품은 백성들의 발길에 짓뭉개지고말거외다.》하고 말했다. 벌써 귀밑에 흰머리칼이 돋기 시작한 군교의 진정에 감동된 황바위는 《요너머 골짜기에 홍로인부부의 무덤이 있습니다. 거기 관노 한사람이 있으니 같이 잘 묻어드리고 중화의병대로 가시우. 거기 칠성이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 그렇소?》 그제야 황바위의 차돌구럭에 눈이 간 군교는 황바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더니 《총각이 북대봉에서 나왔다는 총각이 아니유? 과시 듣던 말대로구만.》하고 감탄을 하고나서 방을 가지고가는 관노가 있는 곳으로 급히 떠나면서 황바위가 양덕가는 길을 묻자 세세히 대주었다. 황바위형제는 급히 양덕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