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15 장

륙손이

1

 

늙고 병든 몸으로 출전한 서설봉은 신음소리 한마디없이 병쟁기만드는데 앞장서 사람들의 머리가 저절로 수그러지게 하였다. 서설봉은 《군사의 기본은 모든것을 제손으로 만들줄 알아야 하네. 그리고 앞날을 준비할줄 알아야 하구.》하면서 자신이 직접 화약과 표창을 만드는 한편 의병들에게도 일일이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매일 창검대, 표창대, 사수대의 훈련장을 돌아보며 시범동작도 해보이고 나라의 이름난 장수들과 의로운 군사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윤초시가 찾아와 《나라와 제 백성 소중한것을 뒤늦게야 깨달은 저는 나으리같은 애국지사를 뵈올 면목이 없소이다.》하고 머리숙일 때 서설봉은 흔연한 기색으로 그를 칭찬하며 반겨맞아주었다.

한번은 의병들이 불러 힘이 될 노래와 춤이 필요하다는 의병장의 말을 들은 서설봉이 《좋은 말이요. 자고로 명장들은 노래없는 군사는 온전한 군사가 아니라고 했소.》하고나서 자기 손자에게 그런 노래를 만들라고 했다.

그래서 서일이는 기찰대정 위서방이 리순신장군휘하 군사와 백성들이 부르더라는 《강강수월래》(강한 오랑캐 물건너 왔다)의 곡과 그가 몇구절 외워온 가사를 보충해서 노래를 지었다.

이 노래는 《강강수월래》하고 한사람이 먼저 노래를 부르면 그에 따라 합창을 하며 춤을 추는것인데 부르기 쉽고 사기를 돋구는 노래였다.

이윽고 그 노래와 춤을 의병들과 백성들에게 부르게 한 날이였다. 기찰대정 위서방이 선창을 뗐다.

그러자 의병들은 총을 들고 백성들은 북을 두드리며 춤노래판을 벌렸다.

 

강강수월래―

호밀 들면 농군이요 칼을 들면 의병일세

강강수월래―

천년천년 오천년을 대대손손 살아왔네

강강수월래―

만년만년 오만년을 대대손손 지켜가세

 

황바위가 난생처음 춤판에 뛰여들고 칠성이, 신욱이, 호영이 등 모든 젊은이들이 뛰여들었다.

봉수군들은 상모달린 창을 들고 백정의병은 도끼메고 뛰여들었다. 호영이 어머니와 아낙네들도 뛰여들었다.

 

강강수월래―

내 죽으면 네가 있고 너 죽으면 내가 있다

강강수월래―

나라위한 큰 목숨은 죽어서도 꽃핀다네

강강수월래

 

손로인, 공로인, 윤초시까지도 감격의 눈물로 수염발들을 적시며 뛰여들었다.

림중량이 서설봉앞에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 한곡조의 노래가 의병 천명을 얻은것보다 크오이다.》

림중량은 감회깊게 한마디 하고는 서설봉을 표창대훈련장으로 인도했다.

《다시!》

《한번 더!》

이제는 돌멩이가 아니라 표창던지기로 바꾼 석전대의 이름도 《표창대》로 고쳤다. 그러나 아직 왜놈에게는 비밀에 붙이고있는 표창이였다.

《다시!》

《더 똑바로!》

황바위는 거듭 강한 요구성을 들이댔다.

《이 란리판에서는 하루가 10년맞잡이라고 한 의병장님의 그 말씀을 잊지 맙시다.》

황바위는 대원들이 목표를 맞히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과녁에서 빗나가면 몹시 분개했다. 그것을 제 살붙이의 일처럼 생각하는 그 진정이 대원들의 가슴에도 뜨겁게 흘러들어 그의 요구성을 고마운것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그들의 솜씨도 몰라볼만큼 날을 따라 높아졌다. 끝에 뾰족한 날이 서고 허리가 잘룩한 조그마한 쇠덩이표창들이 오늘도 목표물로 세워놓은 큰 통나무에 고슴도치가시처럼 박혔다. 환성이 꼬리를 물고 터졌다.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마치 그것을 모르는듯 악악 더 기세를 올렸다.

맹렬한 훈련은 창검대에서도 서일의 엄격한 요구밑에 벌어지고있었다.

특히 칠성이의 쇠장대쓰는 법이 눈에 뜨이게 높아져서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그래서 의병들은 그에게 《이제야 진짜배기 비류강장수》라고들 했다.

활터에서는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신욱이의 활쏘기시범에 따라 수십대의 화살이 오동나무에 높이 단 과녁에 일제히 들이박히고있었다. 앞으로 큰 싸움을 위한 치렬한 훈련들이다.

류성이의 기찰자료에 의하면 관군의 평양성수복전투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는것과 왜적이 당장은 의병대를 크게 공격해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것이였다. 하여 요즘 의병대에서 무술훈련을 강화하고있는것이다.

서설봉은 표창대훈련을 보아주고오면서 혼자말처럼 했다.

《황바위의 애비가 끌끌한 장부로 자라난 아들을 보았더라면…》하고 흰머리를 끄덕이더니 탄식조로 말을 이었다.

《저애가 어렸을 때 제 큰애비를 만나러 가다가 평양성을 눈앞에 두고도 아직 들어가보지 못했지.》

이 말에 림중량은 심한 충격을 받고 그날 공로인과 황바위를 불렀다.

《공로인님께서 이 황대정을 데리고 대동강가에 나가서 강도 보여주고 평양성을 멀리서라도 한번 보여주고 오시오. 아직 황대정은 평양성과 대동강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로인님도 아들이 장하게 싸운 동대원벌을 먼발치에서라도 보시도록…》

의병장의 웅심깊은 생각에 황바위도 공로인도 목이 메였다.

《그러나 너무 오래 지체는 마십시오. 앞으로는 우리가 타고앉을 평양성인데…》

이리하여 공로인은 황바위를 데리고 수구문 맞은편 대동강가로 나갔다.

큰 폭을 가지고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과 아름다운 모란봉이며 높은 성벽, 성문들을 바라보는 황바위의 눈은 황황히 불타올랐다.

(이 강이 뉘강이고 저 성이 뉘성인데 왜놈들이 가로타고앉았단말인가. 우리 큰아버지가 살아나 계시는지…)

황바위의 두주먹은 저도모르게 꽉 부르쥐여졌다.

그런데 이때 그들의 바로 앞 강물속에서 어깨에 총을 멘 십륙세쯤 돼보이는 젊은이가 불쑥 나타났다.

바싹 긴장된 황바위가 저도모르게 돌구럭에 손을 넣는데 젊은이는 《중화의병대가 어데쯤에 있수?》하고 물었다.

《그건 왜?》

황바위가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되묻자 《왜놈들이 우리 아버지를 죽여서 대동문앞에 매달았소. 원쑤를 갚아달라고 왜놈총을 빼앗아가지고 오는 길이요.》하더니 총각은 오열을 터뜨렸다.

《그럼 이 강을 헤염쳐건넜단 말인가?》

황바위가 놀라서 묻자 《헤염쳐오다간 놈들의 총에 맞아죽고말게요. 물속을 기여서 왔수다.》하는 바람에 황바위가 와뜰 놀라는데 공로인이 총각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더니 《아니, 너 대동문앞에서 물지게를 지던 륙손이 아닌가?》하고 물었다.

《날 어떻게?》

《나야 여러번 평양성을 나들었으니까 알지. 그때 사람들이 모두 자네가 집이 없어서 대동강쪽배우에서 나서자란 불쌍한 총각이라고들 하더군.

그리고 아버지 한쪽손가락이 여섯개여서 아들이름을 륙손이라고 지었다던지…》

《뭐 륙손이?》

황바위는 눈이 커질대로 커지며 다급한 소리로 물었다.

《너 아버지 이름이 뭐가?》

《우리 아버지 이름은 황돌이야.》

《뭐, 황돌이라구? 그래 넌 아버지에게 동생이 있단 말 못들었니?》

《왜 못들었갔소. 한평생 소원이 작은아버지 찾는것이였는데…》

《그럼 작은아버지 이름이 무엇이였는지 모르니?》

《황봉이라구…》

륙손이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황바위가 와락 그를 끌어안으며 웨쳤다.

《륙손아, 내가 네 사촌형이다. 황봉이가 우리 아버지란 말이야. 나도 아버지와 같이 큰아버지를 찾아 떠났었단다.》

《뭐라구?!》

륙손이는 물론 공로인도 크게 놀랐다.

《형아!》

륙손이가 황바위를 마주 그러안으며 울음을 터치다가 대동강건너 평양성을 바라보며 《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도 못잊어하던 작은아버지소식을 알았는데… 사촌형도 만났는데 아버지는… 아― 아버지―》하고 목놓아울었다. 그러자 황바위가 기막힌 사연을 알아채고 성급히 물었다.

《이제 가면 아버지 죽인 왜놈들을 만날수 있니?》

《만날수야 있지만…》

《그럼 어서 가자. 내 그놈들을 쳐죽여 큰아버지 원쑤를 갚겠다.》

그의 목구멍에서는 쇠내가 났다. 륙손이는 놀란 얼굴로 바위를 바라보았다. 공로인도 《거기가 어디라구 그런 소릴 하나.》하고 경이에 차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황바위는 《내 네 허리에 매달릴테니 이 강만 건느게 해다오. 나도 헤염은 칠줄 아니까. 우리가 이 원쑤를 못갚는다면 무슨 자식들이라고 하겠니.》하고 서둘러 말했다.

그래도 륙손이가 어리둥절한채 황바위가 차돌구럭을 추슬러메는것을 보고있는데 공로인이 륙손이에게 말해줬다.

《이 사람이 우리 중화의병대의 북대봉호랑이일세.》

《아니, 그럼 푸른 갑옷입고 돌팔매질 잘한다는 그 장수란 말이요?》

륙손의 두눈에 새별이 돋았다.

황바위는 공로인에게 륙손이가 메고온 조총을 맡기며 말했다.

《의병장님과 서설봉할아버님께 말씀드려주시우. 제 평양성으로 들어가서 큰아버지 원쑤를 갚고 시체를 업어내오겠다구요.》

《아니, 거기가 어디라구 자네 혼자서… 이런 일이야 의병장님께 알려야지.》

공로인은 황바위를 붙잡고 말렸다.

《할아버님, 걱정마십시오. 제가 큰아버지 원쑤를 갚으러 갔다고 하면 의병장님도 서설봉할아버님도 기뻐하실겁니다.》

이렇게 말한 황바위는 《자, 어서!》하고 륙손이를 재촉했다. 공로인도 더는 어쩌지 못했다.

이윽고 철천지원쑤를 갚으려는 두 불덩어리가 대동강물속으로 뛰여들었다.

석양노을이 피빛처럼 불타고있었다.

 

2

(1)

 

원쑤를 갚고야말겠다는 보복의 일념으로 구사일생 대동강을 건넌 황바위와 륙손이가 평양성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밤이 퍽 깊은 뒤였다. 사방에 우등불이 타오르고 시커먼 옷차림을 한 놈들이 어둠속을 왔다갔다 하고있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여있었다.

《큰아버지 목매달린 곳이 어데야? 왜군우두머리놈이 있는데가 어데야?》

황바위가 성급히 물어대자 륙손이는 《형, 너무 성급히 굴지 마우. 여기는 왜놈들속이우.》하더니 으슥한 큰집 추녀밑에 그를 숨겨놓았다.

《내 가서 아버지시체가 어떻게 됐는지, 아버지 죽인 놈이 지금 어떻게 하고있는지 알아보고 올테니 여기 꼼짝말고계시우.》하고 어데론가 사라졌다.

륙손이는 4촌형을 어둠속에 감춰놓고 모란이가 있는 김명립이네 집으로 갔다.

오늘 새벽 물지게를 지고 그 집으로 갔을 때였다. 사색이 되여 달려온 모란이 아버지가 《륙손아, 놀라지 말아. 왜놈들이 너의 아버지를 저기에…》하고 대동문을 가리키며 《새벽에 성을 넘는 우리 의병을 도와주다가 왜놈에게 잡혀서 저렇게…》하고 주먹을 부들거렸다.

《예?!》

아버지가 대동문앞에 목매달려 늘어져있었다.

《아―》하고 절통하게 웨치는 륙손이의 입을 얼른 막으며 모란이 아버지는 《소리치지 말아라. 잘못하다간 너까지 죽는다. 늬아버지는 장한 사람이다. 그동안 목숨걸고 8장사의병들을 도왔느니라. 넌 이제 빨리 대동강을 건너 중화의병대를 찾아가거라.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시체를 모셔내가야겠는데…》하고 떠밀었다.

《도대체 우리 아버지를 죽인 놈이 어떤 놈이예요, 예? 아저씨!》

《내 짐작엔 그 변상갑이란 놈이 고자질한것 같다. 모란이가 하는 말이 그놈은 아무도 없을 때는 김명립이네 집에 드나드는 놈들하구 왜말을 한다누나. 아무래도 그놈이 왜놈같다.》

《아, 왜놈!》

륙손이는 이렇게 모란이 아버지가 떠밀어주어 아버지의 시체를 눈물속에 돌아보며 대동강기슭으로 나왔었다. 하지만 보초를 서고있는 왜놈을 보자 앞뒤를 가리지 않고 와락 달려들어 그놈을 껴안고 물속으로 뛰여들었고 버드럭거리는 놈의 목을 졸라죽이고 총을 빼앗아멘채 대동강바닥을 기여건넜다. 어려서부터 물에서 사는 배군의 자식은 물을 무서워말아야 한다면서 잠수질까지 배워주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다정한 모습을 그리며 필사적으로 강바닥을 기여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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