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4 회)
제 14 장
쥐무리들 2 밤은 깊었는데 눈을 말똥거리던 조참봉은 두번째 낚시를 군수에게 던지면서 속살거렸다. 《듣자니 평양성안에 지금 소금이 없답데다.》 《소금?》 《수만명 왜병이 간을 못먹어서 모두 텅텅 붓고 노랗게 오갈이 들었는데 소금값이 그야말로 천금이라우.》 김요립이보다 옥매가 그 말뜻에 더 민감했다. (저 족제비가 어쩌믄 저리도 머리가 핑핑 돌가?) 옥매가 빤히 바라보는데서 조참봉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주어댔다. 《그런데 조선군사와 의병때문에 대동강배길이 막혔지, 소금이 있는 서해바다가의 한천길도 막혔지, 서울길도 여기 중화땅에서 콱 막혔는데…
그렇지만…》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거요?》 그제서야 조참봉의 말귀를 알아챈듯 김요립이 물었다. 《평양성안의 우두머리왜장과 손을 잡고 소금장사 한번 크게 해보자는거외다.》 《뭐요? 알구보니 사돈님 간덩이가 메주덩이만큼이나 크외다그려.》 김요립의 눈이 커졌다. 《나라가 망한다구 우리도 따라 망하겠수. 그래서 내 생각해낸게 있수다.》 《무언데?》 《거 평양성안에 사돈님 사촌동생이 있지 않수.》 《아, 우리 명립이? 그런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죽긴 왜 죽어요. 왜장가운데서도 난다긴다하는 사람과 형제처럼 친해져서 떵떵거리며 산답데다.》 《그래?》 김요립의 두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니 그 군수도장 쾅 찍어서 공문 한장 왜장두목에게 더 쓰시우. 중화, 양덕땅 소금을 다 긁어모아 보내겠으니 사촌동생님에게 왜장 한사람
달려보내라구요.》 대개 이런 류의 인간들에게는 공통된 두뇌가 있는듯 그의 생각은 신통하게도 백성의 소금 털어낼 변상갑의 방법과 꼭같았다. 《그러구보니 사돈님은 꼭 고니신지 하는 왜장의 참모장같수다그려. 하하하.》 웃어는대지만 꼭 물귀신에게 멱살을 잡히워가는듯싶어 김요립은 한번 슬쩍 줄을 당겨봤다. 《아니 이거 사돈님, 콩죽은 사돈님이 자시고 설사는 나보구 하라는거 아니요?》하자 옥매가 끼여들었다. 《콩죽이구 팥죽이구 콱 먹구봅세다. 제길, 인생 살아야 100년인데.》 《그렇지요. 100년을 산대도 콩고물, 팥고물 다 떼면 남는건 조막덩이만한 인생인데… 뭐니뭐니해두 이런 때나 저런 때나 그저 재물이
제일이지요. 사돈님도 한평생 시골원노릇이나 하구계실 인물이 아닌데…》 《그런데 왜놈이 쫓겨나는 날에는…》 김요립이 우물거렸다. 《그 무서운 조총을 가진 20만대군을 그래 돌멩이나 뽕나무활로 막아낼것 같수? 그리구 뭐 우리가 소금장사한다구 방을 써서 사방에 내붙이고
하나요?》 옥매는 (이 양덕족제비가 암만 봐도 우리 쥐생원과는 댈바가 아니구나.)하고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 그러니 투전장은 그만큼 쥐고있고 이젠 펴놓으시우. 아무세상에서나 재물이 량반이고 량반이 재물인걸. 상감님 망건값도 떼먹는 판인데
제길 소금장사쯤이야.… 하하하.…》 당겼다놨다하며 조참봉은 바싹 조여들었다. 남의 불에 밤 구워먹는데서 김요립은 조참봉을 상대할만한 적수가 못되였다. 《저기 저 부처님 밑구멍엔 삼거웃이 잔뜩 쑤셔박혀있소. 뭘 그리 우물거리시우. 인생은 부처처럼 겉으로 사는게 아니요. 실속을 차려야
하우.》 《까짓거 제길, 해봅세다.》 마침내 김요립이 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때였다. 《사또님께 손님이 오셨소이다.》하는 수교의 뜰아래 목소리와 함께 《형님!》하고 모시도포자락을 펄럭거리며 뜰안으로 뛰여드는 통영갓이 있었다. 《아니, 자네 명립이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인가. 엉?》 김요립이 반가와 어쩔줄 몰라했다. 《그러지 않아도 형님께서 동생걱정을 하시던중인데 이거 사돈님, 마침 잘 오셨쇠다. 란리통에 무사하셔서 반갑쇠다.》 조참봉은 희색이 만면해서 너스레를 피웠다. 이때 중년의 사나이가 역시 도포와 뒤웅박머리우에 올려놓은 통영갓차림으로 거드름스럽게 마루에 올라서더니 《사또께 문안드리오.》하며 김요립에게
읍을 했다. 《뉘댁이신지?》 《예, 몇해전에 성천땅에서 제 변변치 못한 산수묵화를 드린바있는…》 《아니, 그럼 그 스님께서?》 《예, 그후 환속(중노릇을 그만두는것)을 했소이다. 중을 너무 천대하는 세상이 돼서. 허허허.》 그자는 팔자수염을 꼬아올렸다. 《아니, 그렇게 고명하신 스님이… 자, 어서 앉으시우. 죽지 않으면 다 이렇게 만나기마련이군요.》 《거 형님있는 곳을 찾느라고 백성들에게는 형님잡으러 오는 선전관 행세를 다하며 왔쇠다.》 김명립은 쓰거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옥매는 김명립이가 가지고온것으로 또 한상을 차려내왔다. 김요립이 명립을 다시 보며 말했다. 《평양성안에 사는것도 용치만 빠져나오기가 또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래 무슨 일로 왔나?》 《네. 차차 말씀드리지요. 자, 우선 한잔 드시우. 아주머니도 란리통에 몹시 축이 간것 같쉐다레.》 《에구 말두 마시우. 자, 어서들 드시우.》 옥매가 잔들을 권했다. 눈치빠른 조참봉은 벌써 사태를 꿰뚫어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제때에 굴러온 화수분(보물이 솟아나는 단지)들이로군. 그런데 저 뒤웅박대가리는 누굴가? 어데서 본 얼굴인데…)하고 생각을 더듬으며 짐짓
일어설듯 했다. 《종형제간(4촌간)에 하실 말씀들도 많겠는데 전 잠간 바람을 쐬고 오겠소이다.》하고 한마디 슬쩍 튕겨보았다. 《사돈님, 이러지 마시우.》 김요립이가 놀라서 말리며 팔을 잡아끌었다. 《우리 사돈님과는 죽을 말을 서로 해도 일없네.》하고 명립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김요립이도 제 사촌이 이렇게 왔을 때에야 무슨 큼직한
꿍꿍이가 있어 왔겠는데 옆에 제갈량이가 있어야 할것 같아서 조참봉의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사또님의 사돈이시면 양덕 사시는 조참봉님이시겠군요?》 뒤웅박대가리의 뜻밖의 말에 《아니? 어떻게 나를?》하고 놀랐다. 뛰는 놈우에 나는 놈을 만난 격이 되여 조참봉이 어정쩡해졌다. 《저는 참봉님을 잘 알고있소이다. 서울서도 만나고 부산서도 만나고. 하하하…》 부지불식간에 난다긴다하는 조참봉도 무언지 모를 그의 위압과 억센 손아귀 비슷한것에 쥐여져버리고만 생각이 들었다. 《이 후미진 곳까지 찾아오느라고 시간을 많이 보냈는데 그럼 이야기하지 뭐.》 그는 아래턱을 김명립에게 끄덕해보였다. 《저 이 어른은 일본군 고니시대장님의 군수관이올시다.》 《그렇소? 거 큰 벼슬을 하셨군요.》 중이 왜군벼슬을 한것이 신기해서 김요립이 변상갑을 다시 바라봤다. (중도 사람인데 제 살길 찾는거야 나쁠것 없지. 그런데 왜군벼슬까지 할줄이야.) 조참봉은 부러운듯 그리고 아리숭한 생각으로 그를 지켜봤다. 변상갑은 닭의 다리를 뜯느라 정신이 없는것처럼 했다. 김명립이 목소리를 낮추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 사실은 지금 평양성안의 왜국군이 소금과 천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형님의 힘을 빌리려고 고니시대장님이 친히 군수관님과 저를
보내시였소이다.》 (그러면 그렇겠지. 척척 일이 맞아떨어지는군.) 조참봉은 엉뎅이가 들썩거리는것을 꾹 참았다. (우리 사돈이 제갈량이가 틀림없군.) 김요립은 조참봉을 힐끔 바라봤다. 《그런데 듣자니 평양성으로 통하는 사방 구멍이 다 막혔다는데 어떻게?》 김요립이 막상 일을 당하고나니 다시 어정쩡해져서 어물거렸다. 《거 사돈님, 걱정도 많수다. 구멍이 따로 있수. 뚫으면 구멍이지. 중화의 어랑산성을 비롯해서 몇군데만 고니시장군 군사들이 든든히
지켜주면야 걱정할게 뭐외까. 사돈님은 중화고을 원님으로서 믿을만한 사람들에게 연줄을 놓아 조선관군에게 보내줄 소금과 천이라고 하면 백성놈들은
있는것을 다 바칠게구. 그러니 그런 일쯤 손바닥뒤집듯 할수 있을거 아니외까. 중화의 소금짐을 어랑산성에서 떨어진 곳에 쌓아놓으라고 했다가
거둬들이면 될게 아니웨까. 그리고 나는 나대로 양덕고을, 성천고을의 소금, 천 그리고 호랑이가죽까지도 다 모아놓겠쇠다. 그렇게 되면야 그 짐바리들이 평양성안으로
꾸역꾸역 들어가게 될게 아니웨까. 그러니 걱정이 뭐요. 그런데 란시가 돼서 소금이랑 천이랑 구하기가 좀 힘은 들게고 백성놈들이 값을 금값으로
부를것이 아닌게아니라 좀 걱정은 됩네다.》 조참봉은 제 알속채울 일을 이렇게 한마디로 다 찔러놓았다. 닭의 다리를 뜯던 변상갑이의 우묵한 눈이 번뜩 그에게로 돌려졌다. 그는 속구구를 했다. (이놈이 진짜 써먹을만한 놈이군.) 《금새는 걱정마시오. 부르는대루 다 드리지요.》 군수관의 말에 김명립이가 짐군들이 지고온 보따리와 짐을 풀었다. 고니시가 보냈다는 금붙이와 왜술통이였다. 《에고나 어쩌믄.》 옥매가 선참으로 금붙이를 쓸어보구 둥그런 왜술통을 쓸어보며 환성을 올렸다. 《그걸 참봉님과 우선 나눠가지시우. 그것뿐이겠수. 앞으로 중화원님은 평안감사자리가 차례질텐데… 알고보니 왜국량반들 노는게 통이 큽데다.》 (엉? 평안감사?) 군수관의 말에 김요립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발이 스쳐지나갔다. (예서 주건 제서 주건 감사도복은 내가 타고난 복이로구나.) 김요립은 술잔을 쭉 들이켰다. 밤은 깊어갔다. 예견성있게 김명립이가 가지고온 청심박이 황초불이 환히 켜지고 빈 절간에 모여든 쥐무리들은 밤이 깊도록 머리를 맞대고
쑥덕공론을 했다. 이날밤 꿍꿍이판에서 변상갑이가 더 내놓은 이야기는 게구마가 중화근방에 있는 고구려동명왕의 무덤을 파가는 일을 돕는것과 고려자기를 비롯해서
값진 그림, 글씨 등 조선의 이름난 문화유물들을 빼앗아내는 일 그리고 북대봉 호랑이가죽에 대한것들이였다. 쑥덕공론을 하는중에도 흥이 나서 느닷없이 지르는 조참봉의 청높은 까투리웃음소리에 도적고양이같은 변상갑이가 깜짝깜짝 놀라군 했다. 변상갑은 어랑산성에도 알려주었다고 하면서 왜군에게 소금, 천들을 모아놓을 장소와 때를 알리는 일은 군수도장이 찍히고 제 글씨로 된 편지를
붉은 종이쪽지에 써서 화살에 끼워 어랑산성뒤에 있는 큰 홰나무우듬지에 새벽녘에 쏘아 꽂게 되여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수와 조참봉에게 활 잘 쏘는 사람을 구해두라고까지 했을 때 《참 묘한 수로다.》라고 조참봉이 더 높은 청가락을 뽑아서 다들
또다시 와뜰 놀라게 했다. 그러나 놈들은 모르고있었다. 이런 란시에 이 심심산골에 모여든 이놈들이 어떤 구렝이들일가 하고 눈과 귀를 밝히던 늙은 관노가 마루옆
협문뒤에서 이들의 쑥덕공론을 다 듣고있다가 슬그머니 부엌으로 간줄은 아무도 몰랐다. 원래 착하고 어진 이 늙은 관노 홍첨지는 남의 말을 엿듣는 법을 몰랐었다. 더우기 상전인 원의 말을 엿듣는것은 천벌을 받을 일로 생각하던
그였다. 평소에 말이 없어서 북대봉 부처님치성때 그가 한마디 했었는데 홍첨지도 말을 할줄 아는가고까지 사람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나라에 란이 닥쳐온 다음부터 더우기 군수놈 노는 꼴이 사람같지 않아 의분을 느껴온 그였다. 김요립이 밑에 얽매여 손발노릇을 하는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처럼 여기면서 칠성이가 쇠장대질을 할 때까지도 저애가 너무 과하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였다. 그후 군수일행이 나라를 배반하고
백성을 버린 놈들이라는것을 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 주먹을 떨어왔던것이다. 부엌아궁앞에 쪼그리고앉은 마누라인 늙은 관비옆에 가앉으며 하늘이 무너질듯한 한숨을 쉬고난 홍첨지는 말했다. 《여보, 우리 이놈의 역적굴에서 빨리 빠져나가자구.》 《거 무슨 소리요?》 《저놈들이 왜놈의 부뚜막에 올라앉은 개들이요. 몽둥이로 다 때려잡지는 못할망정 이 군수놈밑에 더 있는건 천벌을 받을 일이요. 우리는 이젠
다 산 목숨들이지만 마지막이라도 조선백성구실을 하고 깨끗이 죽읍세다.》 《옳수다. 우리가 사람구실을 한번이나 해본적 있수?》 그 말에 늙은 관노의 가슴은 찌르르했다. 성도 못가져보고 한생을 사는 안해, 이름은 늙어서도 부엌녀―비부살이로 살아온 자기에게는 홍가라는
성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짓밟히우고 늙은 마당쇠로 불리우는 신세들이다. (그렇지만 내 안해는 저놈들에 비하면 얼마나 사람값이 높은가.) 《로친네, 고맙소. 저놈들이 지금 역적모의를 하고있소. 내 저놈의 관인인지 군수도장인지를 빼내다가 중화의병대장에게 바치겠소. 도망쳐온 놈이
무슨 군수요? 백성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고을의 주인이지.》 그러면서 홍령감은 식칼날이 잘 서있는지 엄지손가락가늠을 해보며 마누라에게 부탁을 했다. 《저놈들이 술에 곤드라떨어졌을 때 그 인궤를 빼내오겠는데 여차직하면 군수놈과 그놈들의 목을 찌르고 나도 죽을테니 당신 혼자서라도
중화의병대를 찾아가서 이 역적놈들이 백성들의 소금이랑 천을 토색질하려 양덕, 성천, 중화고을들로 떠난다고 일러주우. 우선 두놈은 양덕고을로
간다고 했소.》 이날밤 절간에서는 복닥소동이 일었다. 《의병이다!》 잠결에 지른 김요립의 질겁한 목소리에 급히 문밖으로 뛰쳐나가는 그림자에 대고 변상갑이가 얼결에 헛칼질 몇번을 했을뿐 그 누구도 감히 그뒤를
쫓지는 못했다. 인궤를 안고 나오던 홍첨지가 당황해서 군수놈의 다리를 밟았던것이다. 옥매가 기겁을 해서 소리를 질러 불렀지만 홍첨지내외는 대답이 없었다. 《이것들이 밤사이에 호랑이에게 물려갔나? 어델 갔어?》 그러나 그 순하디순한 종들이 부처뒤에 감춰놓은 군수의 인궤를 빼내갔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정말 범에게 물려갔나 하고 부려먹을 사람이
없어서 고시랑거리기만 했다. 그 새벽에 김명립이는 평양성으로 돌아가고 밤에 만든 소금, 천을 걷어들일 공문서를 가지고 변상갑이와 조참봉은 첫새벽에 양덕쪽으로 떠났다. 조참봉은 제 딸을 말에 태워 따로 보냈다. 어제밤에 쓴 방을 주어 관노 하나를 중화왜군에게로 떠나보낸 다음 김요립이는 인궤가 없어진것을 비로소 알고 금방 까무라칠듯 펄썩 주저앉으며
울부짖었다. 《어이쿠, 이젠 다로구나!》 3 비걷힌 저녁무렵이였다. 윤초시가 피난가있는 성천집 사랑방에서는 아까부터 감투바람으로 말이 없이 몸만 가로세로 흔들며 앉아있는 윤초시에게 조참봉이 바싹
붙어앉아있었다. 윤초시앞에는 군수 김요립의 편지가 놓여있었다. 《무얼 그렇게 오래 생각하나. 기우는 배에 오래 앉아있다간 천길물속에 쑤셔박히우게마련인데 터놓구 말해서 중화군수의 사촌님도 이 일때문에
다녀가시고 이 군수관님이 이렇게 친히 오셨네. 자네 작인들의것만 다 모아바쳐두 앞날의 벼슬자리가 그까짓 초시감투에 대겠나. 나하구야 소시적부터
막역한 사이길래 이렇게 내 양덕가던 길에 먼저 찾아왔는데… 세상형편 잘 봐가며 눈치코치있게 살자구…》 윤초시의 린색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조참봉은 벼슬길을 열려다가 안되니까 리속에 눈을 돌려 장사도 하며 땅임자노릇도 하는 윤초시니만큼
천금짜리 소금장사라면 눈을 휙 뒤집고 덤벼들줄 믿고 우선 그부터 찾아온것이였다. 《따님이랑 아주머니가 왜군에게 죽은건 다 천명이지. 그게 잘 안내려가는 모양같은데 속을 넓게 써야 하네. 자네야 이제라도 이팔청춘 새댁네를
맞아들여 세상재미 다 볼수도 있지 않는가. 세상이 바뀌였는데 그에 맞게 살아야지. 인생 백년이 그런거야… 자네 작인들의 줄만 당겨도 소금
오십섬쯤이야 문제있겠나. 그 오십섬을 란리전의 오십곱으로 값을 쳐준다는걸세. 한번 해볼만한 일 아닌가?》 그래도 윤초시는 말이 없이 몸만 흔들고있었다. 그러자 더 참을수 없는듯 변상갑이 그에게로 다가앉으며 말했다. 《우리 대장님 쬐쬐하지 않쇠다. 통이 커서 후한 상을 내릴거요.》 조참봉이 그 뒤말을 이었다. 《그까짓 란리는 란리구 터놓구 말해서 저 살구멍을 찾아야지. 나라는 이제 다 망했는데 평양성의 새 주인인 고니시대장님에게 잘 보여둡세나.》 《뭐라구?》 처음으로 입을 연 윤초시는 눈을 부릅떴다. 《조선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네놈이 감히 나라의 국난앞에서까지? 옛다 이놈아, 이거나 먹어라.》 윤초시는 갑자기 옆에 있는 타구(침뱉는 그릇)를 들어 조참봉의 상통을 후려쳤다. 다행히 면상은 바로맞지 않았으나 타구의 가래침을 뒤집어쓴 조참봉은 《아이쿠》소리를 치며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목덜미며 가슴팍에 가래침을
잔뜩 맞은 변상갑이가 《칙쇼》하고 도포소매속에서 단도를 꺼내들었다. 《뭐 〈칙쇼?〉 오, 네놈은 왜놈이였구나.》 이것은 변상갑의 씻을수 없는 실수였다. 《이 왜놈 잡아라!》 윤초시가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치자 김응서장군에게 갔다오는 길에 마을사람들을 의병대로 데리고가려고 윤초시네 집에 들렸던 덩지 우람찬
위서방이 큰 몽둥이를 들고 달려왔다. 변상갑이와 조참봉은 기겁을 해서 줄행랑을 쳤다. 도망치는 두놈을 보고 윤초시는 허희탄식을 하면서 웅얼거렸다. 《아, 하늘은 어찌하여 사람을 세상에 내놓고 이렇게도 뒤늦게야 백성된 도리를 깨닫게 하는고.》 그러더니 위서방에게 《말을 준비하게.》하고 일렀다. 《몸도 편치 않으신데 어델 행차하시려구…》 《자네가 간 의병대로 가세나.》 《예?》 위서방은 윤초시를 다시한번 쳐다보더니 그의 불빛말에 안장을 얹었다. 이때 윤초시의 집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줄로 짐작이 간 이웃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윤초시는 그들에게 호소하며 웨치듯 말했다. 《방금 나에게 왜놈과 역적놈이 와서 내 작인들과 백성들의 소금과 천을 긁어모아달라구 했소. 내 그래서 그놈들의 상판에다 타구를
태질쳐보냈소. 내 비록 지금까지 린색하게는 살아왔지만 국난앞에서야 백성구실을 해야지요. 내 이제 집에 있는 소금과 무명필들을 싣고 위돌이가 간
중화의병대로 가려고 하오. 위돌이가 나보다 몇갑절로 나은 백성이요. 우리도 이런 때 조선백성구실을 합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윤초시를 놀란 눈으로 다시 쳐다보았다. 《옳은 말씀이외다. 그 무명통이랑 소금짐을 우리들이 지고가겠소이다. 우리들도 있는껏 다 모아서 의병대로 가져가겠소이다.》 마을사람들은 왜놈에게 당한 불행속에서 국난앞에 대의를 깨달은 윤초시를 진정 놀라움과 존경의 눈으로 다시 봤다. 이리하여 이날 마을사람들은 윤초시의 집 소금 한섬과 무명 50통 그리고 큰 솥과 마을안의 소금 스무말, 무명 20통을 짊어지고 나섰는데
젊은이들은 아예 의병에 입대할 차비들을 하고 나섰다. 윤초시는 늙은 어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불빛말에 올라타더니 그들의 앞에 섰다. 윤초시집 황소
두마리와 조참봉이랑 변상갑이가 버리고간 두필의 부담말에 짐을 잔뜩 싣고 사람들은 뒤를 따랐다. 집을 떠나며 윤초시는 위서방에게 물었다. 《중화의병장이 누군가?》 《림중량나으리십니다.》 《옳거니, 과시 의병장감이지. 어서 가세.》 일행은 길을 재촉했다. 먼 하늘끝에서 마른벼락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쳐온 변상갑이 씩씩거리며 조참봉에게 눈을 부라리였다. 《여보, 이게 무슨 꼴이요. 큰소리를 치기에 별이라도 따는가 했더니 허참 나까지 곁불에 봉변을 당했군.》 조참봉은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 발버둥을 치듯 하며 빌었다. 더우기 그가 왜놈이라는것을 알고는 잔뜩 겁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꽉 붙잡고 늘어져
그를 우려먹자는 심산이였다. 《속단하지 마시우다. 단숨에 배부르겠소. 내 윤초시의 상투까지 들어낼테니 두고보시우.》 《좌우간 일이 성사되면 일본어른께 품해서 참봉에게 섭섭치는 않게 해주겠소.》 변상갑은 일이 잘되면 누이좋고 매부좋은것이여서 후하게 약속을 해준 다음 떠날 차비를 했다. 이곳에 오래 지체했다간 목숨이 위태로울것 같아 속이 불안했던것이다. 《그럼 내 먼저 가서 운반할 군사를 보내겠소. 물품들을 많이만 장만해두오. 이번에 큰 공을 세우면 참봉나리를 고니시각하에게
대면시켜주겠소.》 《그렇게만 해준다면야 뭘 더 바라겠소.》 조참봉은 떠나는 변상갑에게 간수했던 호피와 고려청자기, 그외 귀물들을 한보따리 들려보냈다. 그리고는 심복들을 시켜 집집의 소금과 천들을 깡그리 들춰내라고 을러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