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14 장

쥐무리들

1

 

김요립이 도망쳐가있던 노루목에서 다시 북쪽으로 인마가 겨우 통할 오불꼬불한 산골짝길 30리를 더 들어가면 중화고을의 막바지땅인 칭칭이골이라는 후미진 골짜기가 있다. 원래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던 곳이였는데 험한 세상에서 밀리우고 쫓기운 한집, 두집들이 모여 열집가량의 화전민들이 마을을 이루고사는곳이였다.

거기서 좀더 개울을 따라 올라가면 기묘한 절벽들을 등에 지고 해묵은 소나무숲속에 자그마한 암자 하나가 있다. 오늘 여기로 김요립이 노루목에서 다시 도망쳐들어왔다. 김요립이 도망친 정체가 드러나자 사령, 관노들중에서도 의기가 있는 사람은 침을 뱉고 돌아서고 군수의 큰 짐보따리들에 눈독을 들여오던자들은 참깨, 들깨 노는데 아주까리 못놀소냐는 심보로 그 큰 짐꾸레미들의 알맹이를 곶감꼬치 빼듯 옆으로 빼고 뒤로 빼내가지고 뛰였다.

지키는 놈 열이 훔치는 놈 하나를 못당한다고 어떤것은 큰덩이채 온데간데 없어져서 군수의 권위는 하루사이에 걸레쪽같이 되고말았다. 그렇게도 극악스럽게 긁어모은것들을 맥없이 빼앗기는 김요립과 옥매의 오장륙부는 부글거렸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여 칭칭이골로 김요립이를 따라온것은 환갑이 다되도록 충실하게 그를 섬겨온 노비 홍첨지부부와 김요립의 인척인 책방(아전의 한 직무)뿐이였다. 금붙이, 은붙이보따리를 잔뜩 그러안은 절구통같은 옥매를 업고 아슬한 비탈길을 톺아오를 때 책방의 눈앞에는 노란 불찌들이 맴돌았다.

평소에 군수와 옥매의 등을 믿고 사령, 군노들을 쉰 보리겨떡 주무르듯 하던 호방놈은 다리는 부러졌지만 옥매의 치마자락을 놓을수 없어서 들것에 들리워 따라왔는데 그놈의 6촌동생인 수교놈과 얼떨떨한 사령 두놈 그리고 관노 두놈이 그 손아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채 부담마를 끌고 조참봉 딸의 맞교군질을 하며 왔다.

그 경황중에도 군수인궤(도장함)를 붙안은 군수는 금방 의병들에게 뒤덜미를 잡힐것 같아 꽁무니에 불이 달린 심정으로 말을 탔는데 그의 옥색모시도포는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행이 칭칭이골로 들어서서야 김요립은 제법 말우에서 밭은기침을 했으나 마을에는 사람은 고사하고 강아지새끼 한마리도 없었다.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다는 군수놈이 온다는 소문이 어느새에 돌았던지 모두들 남부녀대하고 산지사방으로 흩어져갔던것이다.

호방놈은 그런 속에서도 두억시니처럼 날뛰는 제 6촌동생 수교놈에게 사람들을 위압시키려고 시뻘건 홍곤장을 들려가지고 왔으나 이제는 그것도 쓸모가 없이 되였다.

일행이 수리암이라는 암자에 다달았을 때 중들은 모두 의병으로 나가고 절간은 텅 비여있었다.

마지막으로 절간을 떠나던 젊은 중이 짚고가던 큰 쇠몽둥이를 번쩍 쳐들며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 큰소리로 꾸짖었다.

《도대체 네놈들은 어떤 사타구니에서 빠져나온 놈들이길래 국난이 닥쳐온 이때 이 꼴들을 하고 다니느냐?》하고 눈을 부릅뜨는 바람에 기겁을 한 김요립이와 《신동》은 금방 숨넘어가는 시늉을 했다.

젊은 중은 그 꼴을 보더니 《에이, 더럽다.》하고 침을 뱉고 골짜기로 내려갔다.

이렇게 빈 절간에 든 김요립은 눈으로 보지 못한 왜놈보다도 제앞에서 오만무례해진 백성들의 눈길과 몽둥이앞에 겁이 더럭 나기도 했지만 창자가 울컥 뒤집히기도 했다.

(아, 세상이 이렇게 뒤집혔단 말인가. 중놈까지 감히 내앞에서…)

그러나 아무리 윽윽거려도 속담그대로 그는 절간에 온 색시꼴이 되고말았고 정갈하고 수려한 골짝안의 경치도 무시무시한 도깨비굴처럼 느껴졌다.

《그 칠성인지 륙성인지 하는 관노새끼 하나 다루지 못하는것도 군수요?》하고 김요립에게 삿대질을 하려던 옥매가 아무런 소용이 없는짓이라는것을 알고 쳐들었던 주먹까지 매시시해져서 내리고마는데 제사날 맏며느리 등창난다는격으로 조참봉의 딸은 그 복새통에 맞교군으로 멘 가마안에서 이마빡이 좀 긁히운것을 핑게로 잔뜩 나자빠져서 눈을 딱 감고있었다.

금붙이와 패물보따리를 베고 부처앞에 벌렁 누운 옥매는 저녁굶은 시어미상통으로 씩씩거렸다.

거기에다가 찹쌀연계찜을 해내라고 고래고래 소래기를 지르다가 벌떡 일어난 조참봉 딸에게 아래턱을 한대 쥐여박힌 《신동》이 《이년 사람 친다!》하고 턱주가리를 싸쥐고 고아대는 바람에 김요립은 잔뜩 찌프린 상판을 하고 보료와 사방침대신 마루바닥에서 바람벽을 기대고 볼꼴없이 앉아있었다.

푸른 솔 싱그러운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절간앞 맑은 물소리도 깊은 산골짝의 정취를 돋구건만 마음의 여유를 찾을만한 재목이 못되는 김요립은 이런 경황중에도 돈떨어지자 입맛 난다는격으로 섬사주는 말고 탁배기라도 한잔 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잔뜩 독이 오른 옥매의 뱁새눈에 기가 눌려 자는듯조는듯 앉아있었다.

(흥, 어제날까지 거부기털이라도 구해서 먹일듯 하던 년이 이렇게 날 괄시하다니.)

가뜩이나 볼품이 없는 쥐상이 요즘 홀쪽해진 두볼을 쓸고 앉아서 깜박 졸다가 여기가 동헌마루같은 착각이 들어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눈을 내리뜨고 가운데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붙이고 앉아있는 부처앞에서 금붙이보따리를 베고 누운 옥매의 씨근덕거리는 숨소리만 솔밭의 바람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뿐이였다.

사면팔방 흰눈자위들의 공세속에서 난생처음 겪어보는 제 집안의 바가지 긁는 굿에 김요립은 골머리가 들쑤시였다.

수년동안 인박힌 원님의 위세가 이렇게도 하루사이에 깨진 사발쪼각처럼 되다니. 그 빌어먹을 놈의 란리때문에 따라지신세가 되여 이런 곳에서조차 조마조마하며 우거지상들에게 둘러싸인 생각을 하니 부아통이 터질것만 같았다.

생각하면 지난날이 한때의 허무한 꿈으로 영영 사라져버릴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무엇인가 건덕지가 좀 남아있는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내게 군수인궤가 아직 있지.…)

김요립은 옆에 놓은 인궤를 다시 쓸어만져보느라니 생각이 많아졌다.

(제길, 그놈의 란리만 아니였더면 곧 평안감사가 될 내가 아니였던가.)

그것은 사실이였다. 성천부사로 있을 때 초불봉치성을 더럽게 했다고 그를 서울로 불러올린 김공량은 그동안 제 뒤바라지일을 시켰는데 김요립이가 긁어모으는데는 펄쩍 뛰는 놈이였기때문에 앞으로 평안감사를 시켜줄테니 우선 급은 좀 낮지만 중화군수로 가있으라고 구슬려서 다시 갈퀴질을 시키러 보냈던것이다.

《이거야 어디 가슴이 터져 살겠나. 그 족제비같은 아전놈들에게 몽땅 털린 생각을 하면…》

이렇게 김요립이 인생 허무감에 빠져 녹작지근해서 앉아있는데 늙은 관노 홍첨지가 마을에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룡꿈꾸고 낳은 미꾸라지같은 아들놈 성화에 못이겨 마을에 내려보냈던것인데 수교군교놈들이 집집마다 아궁 굴뚝속까지 뒤져봤건만 콩고물 하나 남은것이란 없다는것이였다.

《그놈들이 그래 제 고을원에게 청야전술을 썼단 말이냐?》

김요립은 쾅하고 마루바닥을 쳤지만 제 주먹만 얼얼했지 별도리가 없었다.

《여기 호방나으리 글쪽지가 있소이다.》

늙은 관노가 종이쪽지를 내놓았다. 호방놈이 옥매에게 보낸것이였다.

《다리부러진 놈이 자빠져나 있을게지 무슨 놈의 글쪽지질이야.》

옥매가 부처앞에서 벌떡 일어나 소래기를 지르는데 김요립은 《그래도 무슨 수가 좀 있는지 읽어나보우.》하고 넌지시 기대를 걸며 옥매를 바라봤다.

호방놈의 편지는 절절했다.

…다리를 못쓰고보니 섬기고 받들고 모시고싶은 마음 더욱 불같사오이다. 아침저녁으로 대접할 음식감을 구하려 아래것들을 풀어봤으나 백성놈들은 밭에 있던 열무, 고추, 풋콩 한꼬투리 남기지 않고 심지어 산에조차 돌배, 산딸기 한알이 없사오며 더덕, 도라지 한포기 없소이다. 개울도 훑어봤는데 산천어, 버들치, 가재 한마리 잡을수 없고 토끼, 사슴, 메돼지따위는 더욱 잡을길 없다 하옵니다. 콩꼬투리같은거야 이곳 백성놈들이 다 가지고갔겠지만 물고기, 산열매, 산짐승이야 왜 싹 없어졌겠소이까. 생각컨대 이곳에 온 아래것들이 그걸 잡고 캐고 따서 저희들만 배를 불리우고있는것이 분명하오나 다리가 부러져 누웠으니 한이외다.… 한번 귀하신 걸음 제게 돌려주시오면 세세한 가슴속말씀 다 올리겠나이다.…

이때였다. 갑자기 절간 아래쪽에서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김요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림중량이패로구나!》

그는 자기도모르게 화닥닥 일어섰다. 옥매는 보따리를 그러안았다. 그런데 난데없는 까투리울음소리같은 목소리가 나더니 귀익은 소리가 들렸다.

《사돈님, 그간 고생이 많았겠수다. 에쿠, 이거 웬 마당에 빈 우물이야. 하마트면―》하며 양덕고을 조참봉이 뜨락으로 들어와 말에서 뚱기적거리며 내렸다.

《아이구, 코구멍같은 집안에 밑구멍같은 사돈 온다더니. 저 살진 족제비는 또 무슨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왔누. 옳지, 제 딸년이나 저 말잔등에 싣고가라고 해야지.》

옥매가 이렇게 종알대는데 《아버지…》하며 귀신머리를 하고 맨발바람에 조참봉 딸이 꼬꾸라지듯 뜰아래로 궁글어내려 애비옷자락을 거머잡고 저승에 갔다온 애비를 만난듯 사설을 퍼부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아버지, 날 데려가주오. 난 아버지를 더 못보구 이놈의 집에서 각시귀신이 되는줄 알았소.》

그러나 조참봉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냥 서있었다.

《어서 떠날 차비를 하여라. 내 너를 데리러 왔다.》

조참봉이 김요립이와 옥매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딸을 손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함죽선 모서리로 손바닥을 탁 치고난 옥매가 흔들거리며 마루끝으로 나오더니 조참봉을 내려다보며 우박을 퍼부었다.

《아니, 사돈대접이 이렇소? 그래 란리가 났다고 해서 자기 딸 귀한줄은 알면서도 사위 귀한줄은 모르시우. 군수인궤를 버젓이 안고있는 중화군수도 안중에 없단 말이요?》

《예, 군수인궤를?…》

이 말에 조참봉의 눈에서 새빛이 번쩍했다.

(음, 그러니까 군수도장은 안고 뛰였단 말이지? 들리는 말에는 의병들에게 쫓기워 쪽 발가벗고 뛰였다기에 아주 망해 뭉그러졌나 했더니…)

조참봉의 태도가 홱 달라졌다.

《거 안됐수다. 경황이 없어서… 부모자식간의 정이 뭔지 원… 하하하.》

조참봉은 까투리웃음을 한바탕 쏟아놓더니 추어올렸다.

《과시 우리 사돈님이 원님지조를 갖추신분이외다. 이 란중에도 상감님께서 주신 나라의 관인을 목숨처럼 건사하시고 중화고을의 지경을 안넘으셨으니 그 충절 후세에 길이 전해질것이외다. 비록 일시 이 산골에 피신은 하고계시지만 어엿한 중화군수이시니 장하시외다.》

이 말에 김요립은 오래간만에 틀을 차리며 쥐수염을 쓰는데 옥매의 눈초리는 더 새침해졌다.

(흥, 귀신 듣는데 떡소리 못한다더니 저 살진 족제비가 군수도장소리를 듣고 왜 저렇게 꼬리를 칠가? 아무튼 우리 집 쥐상판보다야 세상물계에 밝은 위인이니 써먹을건 써먹고보자.)

이렇게 생각이 미친 옥매는 한술 더 떠서 마루에서 내려서며 사돈의 손이라도 잡아끌듯이 너스레를 피웠다.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는 바람에 제가 사돈님공대를 못했소이다. 섭섭히 생각마시우.》

조참봉을 따라온 하인들과 호방의 패거리들이 서로 눈길질을 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조참봉은 마루우에 올라앉자 보자기에 싸놓은 중화군수의 인궤부터 정중히 쓸어보았다.

밤비에 자란 놈같은 사위가 그제사 나와서 넙적 절을 했다. 사람구실하기는 싹수가 틀린것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이 《신동》짜리 사위가 이 란리통에도 여전히 피둥피둥 살이 져있는것은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이때 뜻밖에도 옥매가 도망보따리속에 깊숙이 건사해두었던 감홍로와 백옥잔을 꺼내놓았다.

《아니, 우리 집에 이런게 있었던가?》

김요립은 놀랍기도 하고 괘씸도 했지만 입이 헤벌어지며 제법 동헌마루에서 술잔을 받던 몸가짐새로 그 술을 들이켰다. 술맛이 이렇게 좋은줄을 난생처음 안듯 한잔술 놓고 쌍장구치는 마음이 되여 비게덩이 옥매를 흘겨보면서 《이런게 있으면 진작 좀 줄게지.》하자 옥매는 《흥, 그 무슨 부아터질 정이 들었다구 절간귀신노릇하는 당신에게 이 술을 내놓갔소.》하고 내쏘았다.

그러나 김요립은 《저게 입은 걸어도 내 바로 저 재미에… 으하하.…》하고 쓸개빠진 놈처럼 헤헤거렸다.

그러나 조참봉은 그따위 일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제 속궁냥을 굴렸다.

(저자가 군수의 인궤를 가지고있겠다.)

하는 생각에 가지를 쳐나가는 이런저런 궁리에 까투리웃음까지도 멈춰버렸다.

《아니 사돈님, 무얼 그렇게 생각하시우.》하고 김요립이 조참봉을 바라봤다.

그러나 무엇을 생각했던지 조참봉은 자못 신중한 표정을 지으며 첫수를 썼다.

《소문에는 사돈님이 비류강배놀이때 내가 드린 그 종놈의 쇠장대에 맞아서 다리가 부러졌다기에 걱정을 했댔는데 상한데가 없으시니 천만다행이웨다.》

《말두 마시유. 그놈때문에… 참 기가 막혀서… 그런데 그놈이 지금 림중량이란 놈의 패거리에 들어가서 쩡쩡거린답데다. 거기엔 돌팔매질 잘하는 놈, 칼 잘 쓰는 놈, 활 잘 쏘는 놈, 백정놈 별별 놈들이 다 모여들었다는데 고을의 군량고랑 무기고까지 몽땅 털어갔쇠다. 내 그놈들때문에 망했는데 이 분풀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군량고, 병기고란 말에 조참봉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김요립은 단번에 조참봉의 낚시에 걸려든것이다.

《원 사돈님두… 그 무지렁이들을 가지구 뭘 그렇게까지 걱정하시유. 당당히 군수의 관인을 가지고있는데… 그놈들을 천하에 단죄하는 방문 한장이면 될걸 가지구.》

이렇게 말하는 조참봉인즉 이런 때 잘만 하면 그 방 한장이 왜병과 손을 잡는데 귀신 부르는 초혼장 못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우리 사돈님이시야 세상만사에 밝으신 큰 재목이시지.》

옥매가 사돈의 등때기라도 긁어줄듯 뱁새눈을 좁혔다.

제 낚시코에 암컷수컷 다 걸려든다는 생각에 조참봉은 신이 났다.

《지금 평양주변을 비롯해서 사방에서 의병이란 이름을 건 무리들이 나라법 무서운줄 모르고 관장을 업수이 여기며 날뛰는데 이름은 왜놈을 친다 하지만 종당에는 사돈님이나 우리의 목을 졸라매려 대들것이외다. 듣자니 이 중화고을 의병에 흉악한 놈들이 많다는데 관인을 쾅 찍어서 래일이라도 당장 중화거리에다가 방을 큼직하게 써서 내붙입시다. 그래서 우선 그놈들을 아예 화적떼로 몰아서 백성놈들이 그놈들에게 더는 붙지 못하게 할뿐아니라 붙은 놈들도 뒤가 무서워서 몽땅 떨어져나오게 만듭세다.》

조참봉은 기세를 올렸다.

그가 하는 말은 다 아전인수격으로 제가 차지할 몫을 노리는것이였다.

《흥하고 망하는건 자고로 하늘에 달렸는데 우리 나라라고 망하지 말라는 법 있수. 지금 나라운수가 다 기울어졌는데 이런 땐 두다리 아니 세 다리라도 걸어두는게 해롭지 않습네다. 의병대를 역도로 모는 방을 잘 써서 척 내붙이면 사돈님은 잘하면 위국충신이 될수도 있고 나라가 아예 왜놈에게 망한다 해도 왜국의 골치거리이던 의병을 때린것으로 하여 사돈님은 한몫 잘 차지할수 있지요. 바른대로 말해서 나도 그놈들때문에 발편잠을 잘수가 없쇠다. 그 돌팔매질 잘한다는 놈이 틀림없이 이십년전에 우리 집에서 도망친 종년의 자식놈같은데 그간 우리 어머님때문에 그놈을 잡아내지 못했댔쇠다. 그 흉악한 놈이 꼭 언젠가는 내 골통을 그 차돌멩이로 깨놓으려구 덤벼들거외다. 그런 놈이 원님골통인들 알아본답데까?》

남의 잔등을 긁어주고 꼬집어주는 높은 수를 가진 조참봉이 추켜올렸다내렸다하는 바람에 김요립은 두말할것도 없고 옥매까지도 엉뎅이가 들썩거려졌다.

《거 방따위나 쓰는게 뭐 힘들게 있수. 한 여라문장 콱 써가지고 중화고을거리 한복판에 내다붙이면 왜병들의 손에 들어갈게구 림중량의병댄지 뭔지 하는데로도 들어갈게 아니우.》

《거 사부인댁 머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외다그려.》

조참봉은 실지로 놀라 옥매를 다시한번 바라봤다.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놀아먹던 솜씨가 다르구나. 보통녀걸이 아닌걸.)

이렇게 생각하며 조참봉은 김요립을 부추겼다.

《그럼 사돈님, 이제 당장 쓰시우. 써서 저 군수도장을 시뻘겋게 쾅 찍으시우.》

《그런데 나는 글씨가 졸필이 돼서…》

그러자 옥매가 참견을 했다.

《거 호방이 천하명필 아니유.》

《응, 그렇지.》

이렇게 되여 이날밤 들것에 들려온 호방놈은 옥매가 따라주는 술한잔을 감지덕지 삼키고나서 부러진 다리를 뻗치고앉아 김요립과 책방이 낑낑거리며 불러주는 방을 썼다.

―중화군수 김요립은 관하백성에게 알리노라―

이렇게 시작한 방은 림중량의 《죄목》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첫째로, 제 아비 상중에 칼을 들어 국법을 어겼다는것, 둘째로, 군기고, 식량고를 털었다는것, 셋째로, 무지렁이백성들을 부추겨 왜군을 친다는 이름밑에 화적질을 한다는것, 넷째로, 백성들의 된장, 간장, 고추가루까지 걷어들여 호의호식을 한다는것, 다섯째로, 임자있는 서진벌 논밭을 타고앉았다는것 등등 열두가지 죄목을 렬거하고 그놈을 잡아바친자에게는 천금상을 주고 그놈에게 붙는자는 앞으로 나라법 무서운줄을 알게 하리라고 쓰고는 네모난 중화군수도장을 시뻘겋게 쾅 눌렀다.

방을 다 쓰고나자 김요립이 걱정스레 조참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을 내다붙여야 할텐데 무슨 수로 내다붙인다?》

《원, 사돈님은 걱정두 많수다. 관노 한놈 시켜서 중화거리 왜병에게 갖다바치면 어련히 척 붙여주지 않으리요. 잘하면 사돈님신변까지도 왜국사람들이 지켜주겠다고 하리다. 그뿐인가요. 두고보시우. 이 방이 평양성안의 고니신지 하는 왜군두목에게까지도 갈테니…》

김요립이는 입이 떡 벌어지고 옥매는 (우리 쥐상판이 저 족제비 반구실만 해도.)하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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