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1 회)
제 13 장
《중화의병대에 북대봉호랑이가 있다》 1 서진성안의 의병장군막안에 모사 윤봉을 비롯해서 각 대정들과 칠성이 등 여러명의 핵심의병들이 모였다. 기의식을 가진 다음 왜적과의 첫 전투를 하기 위한 전술을 짜는 모임이였다. 그들의 앞에는 《죽고싶은 왜놈들은 오늘밤에 중화땅 서진성으로 오라!》라고 쓴 큰 패말 몇개가 놓여있었다. 기의식이 있은 뒤 반드시 왜놈의 침습이 있을것을 예견한 림중량은 서설봉에게 그를 쳐물리칠 대책을 물었었다. 하얀 서리발같은 염초를
긁어모으고있던 서설봉은 일손을 멈추고 림중량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런 때는 〈허즉실이요 실즉허〉(비여있는듯 차있고 차있는듯 비여있다는 뜻.)라는 전법으로 그놈들을 혼비백산케 하는게 좋겠소.》 《예, 알겠소이다.》 림중량은 제꺽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작전계획을 세웠다. 글씨는 서일이가 썼지만 그것은 왜적들을 끌어내기 위한 의병장의 의도를 말해주는것으로서 그 풍자적인 글발에서도 의병장의 여유작작한 기상이
엿보여 의병들의 기세를 돋구었다. 《이걸 보고도 못오는 놈들이면야 사타구니의 두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한 놈들이지.》 《우쭐렁거리며 평양성까지 온 제놈들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덤벼들겠지.》 《왜놈성미가 쟁개비끓듯 한다는데 가만히 있지는 않을거웨다.》 《더우기 그동안 우리를 쇠스랑, 괭이따위나 멘 오합지졸로만 알았으니까. 하하하…》 황바위가 생각이 난듯 서일에게 한마디 했다. 《형님, 내 말도 한마디 거기에 써주오. 꽃골서 내 차돌멩이에 살아난 털보놈이 오면 더 좋겠다고 말이요.》 《하하하.…》 군막안에 웃음판이 벌어졌다. 서일이 벙긋 웃고 황바위의 말을 패말에다 더 써놓았다. 윤봉이 지형도를 짚으며 림중량에게 말했다. 《대동강기슭에 이 패말들을 세워놓고 이 지점에 매복해있다가 들이치는게 좋겠소이다.》 그러자 서일이도 찬성을 했다. 《그게 좋겠소이다. 그래서 우리 의병대가 중의잠뱅이패가 아니라는것을 그놈들에게 톡톡히 보여주는것이 좋겠소이다.》 그러나 황바위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그렇게 되면 우리 의병대에 명검, 명궁들이 많다는것을 알아차리고 앞으로는 덥석덥석 그놈들이 끌려오지 않을거웨다. 그러니 이번에는
저 혼자 돌멩이로 그놈들을 까눕히겠소이다.》 아까부터 말없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심중히 듣고있던 의병장 림중량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음, 저녀석이 돌팔매질만 하는게 아니구나.) 자기의 의도를 알아줄뿐아니라 의병대에 맞는 전법을 생각하는 황바위가 대견스러웠다. 《아무리 돌팔매질을 잘한다한들 어떻게 혼자서 돌멩이만 가지고야…》 고서방이 고개를 기웃거렸다. 《제가 황바위랑 함께 가겠소이다.》하며 칠성이가 나섰다. 그 말에 림중량은 《자, 이리로들 더 가까이 오오.》하고 모두를 부르더니 차근차근 자기의 전술의도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는 의병들은 모두 경탄한 얼굴로 벙글거렸다. 《예, 예, 알겠소이다.》 서일이가 머리를 크게 끄덕이였다. 다가올 국난을 앞에 두고 그렇게도 가슴아파하던 의병장이기에 그런 기묘한 전술도 생각해낼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싸움은 벌써 이겨놓은
싸움이라는 신심에 가슴이 들먹거렸다. 그런데 황바위는 머리를 기울사하며 아쉬워하는 얼굴이였다. 그를 바라보는 림중량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어렸다. 2 (1) …음산한 밤이다. 지척을 분간할수 없는 캄캄한 밤이다. 온종일 가열된 대지에서는 눅눅한 습기가 서려올라 찐득찐득 몸에 배여들고 모기와 깔따구들까지 한번
붙으면 떨어질줄을 모른다. 쪼개진 먹장구름사이로 팥고물을 잔뜩 다져넣은 송편같은 달까지도 피뜩 한번 땅우를 내려다보더니 다시 먹장구름속으로 들어간 후로는 감감
무소식이다. 물결소리마저 숨을 죽인듯한 영제교근방의 대동강기슭에 기여붙은 시커먼 무리들이 밤눈에도 력력한 큼직한 패말앞에 모여들었다. 《이게 뭐야?》 《뭐? 죽고싶은 왜놈들은 오늘밤에 중화땅 서진성으로 오라?》 《중화의병대? 길표식까지 써붙였구만.》 저승길문턱에라도 다가선듯 섬찍해진 왜병들이 술렁거렸다. 《이게 무슨 놈의 도깨비판이야?》 《제길, 죽고싶은 놈이 세상에 어데 있어? 허 참.》 《이거 우리가 화약지고 불속으로 뛰여들어가는게 아니야?》 《이게 우리 게구마상 오라는 소리구만, 하하하.》 왜병들은 패말의 글씨를 보며 웃어댔다. 《누가 게구마상을 오랬어?》 《거 있지 않나. 우리가 꽃골이라는데서 나올 때 차돌멩이로 기꾸찌의 말다리를 분질러놔서 기꾸찌를 죽게 한 푸른 중의적삼을 입었던 그 애녀석
말이야.》 그 말에 한놈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뭐 돌멩이? 푸른 중의적삼?》 서진성의병대의 내막을 알아내려고 서진벌에 숨어들어가서 손령감네와 김을 맨 일이 있는 변상갑의 졸개 텁석부리였다. 놈은 그때 거기서 푸른
갑옷입은 총각의 솜씨가 귀신같다는 말을 잔뜩 듣고온터였다. 《아니 그럼 돌팔매질 잘하는 그 아이놈 하나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와드드하게 차리고 나섰단 말야?》 《개망신이다. 그런줄 알았더라면 따라나서지나 말걸. 난 소금때문에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차리고 나서는줄로만 알았더니… 제길!》 이렇게들 왜병들이 지껄여대는데 《건방진 그 애새끼놈의 모가지를 오늘밤 썩둑 베여놓지 못하면 우리 사무라이망신이다.》하고 소리를 치는 놈도
있었다. 《도대체 중화의병놈들이란 어떤 놈들이야? 아직도 우리 조총맛, 칼맛을 모르는 모양이지.》 《오늘 그놈들을 몽땅 멸살시키고 성안에 있는 소금이나 다 걷어가지고 오자구.》하고 희떠운 소리를 하는 놈들도 있었다. 놈들은 소금이라면 염라대왕의 밥상이라도 차넘기고 빼앗아갈 지경에 이르렀던것이다. 어쨌든 게구마가 중화의병대를 치겠다고 선발하여 데리고온 놈들인만큼 모두 억대우같은 놈들이였다. 《왜들 꾸물거리는가?》 배에서 내려 말에 탄 게구마가 꿰진 소리를 질렀다. 《그놈의 패말들을 어서 뽑아 팽가쳐라!》 캄캄한 이밤 털보는 완전히 새까맣다. 그가 탄 희끄무레한 재빛말만 아니면 자빠져도 딩굴어도 알수 없을 하나의 시꺼먼 덩어리가 말잔등에
올라앉은것 같다. 《곧바로 서진성으로 쳐들어가자! 텁석부리 앞장서라!》 《예?!》 텁석부리는 등때기를 밀리워 얼떨떨한 얼굴로 길잡이를 섰다. 시커먼 무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인간의 공포란 눈앞에 맞다든것보다 불안속에 있는것이 더 큰 법이다. 여차직하면 뛸려고 강변에 열두놈의 조총수를 비롯한 열댓놈의 칼잡이들을
대기시켜놓고 스무놈의 조총수와 100여명의 칼을 빼든 놈들이 지금 털보놈의 강박에 몰려 서진성을 《야습》하겠다고 몰려가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죽고싶은 놈은 한놈도 없었다. 게구마자신이 10여명의 졸개놈들에게 호위되여가고있는것이다. 이때 그놈들의 앞 멀지 않은 어둠속에서 갑자기 한점의 불빛이 번쩍했다. 대렬은 주춤했다. 《앗?》 잔뜩 겁에 질린 텁석부리놈이 소리쳤다. 대렬이 뒤로 다시 주춤했다. 《뭘 꾸물거리는가? 불이면 불, 돌멩이면 돌멩이지. 자, 빨리 내달려라.》 게구마가 발악적으로 대렬뒤에서 졸병들을 채찍질했다. 어둠속에 묻힌 중화땅 서진벌은 쥐죽은듯 잠잠했다. 방금 단 한번 번쩍한 불빛외에도 하늘도 대지도 먹물을 뿌려놓은듯 다시 그저 캄캄하기만
했다. 《야, 이건 또 뭐야?》 대렬이 다시 주춤거렸다. 또하나의 크고 시허연 패말이 어둠속에 우뚝 서있었던것이다. 《거기엔 무어라구 썼는가?》 한놈이 떠듬떠듬 글을 읽었다. 《서진성 동쪽문앞이 네놈들이 죽기에 가장 알맞춤한 곳이다. 담력이 있거든 한번 그리로 와보라.》 패말앞에서 대렬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온 대렬의 머리가 쭈빗해진것이다. 《이게 다 그 의병대장이란 놈의 얕은 수다. 장장세월 싸움판 피바다속을 대를 이어가며 내달려온 야마도 사무라이들이 한개 패말앞에서 이게
무슨 꼴들인가, 앙?》 말우에서 시커먼 덩치가 밤눈에도 번쩍거리는 긴 칼날을 빼들고 고아댔다. 그러나 그 소리는 벌써 깨여진 나발소리였다. 그래도 대렬은 앞으로
나갔다. 《서진성이 어데야?》 《아, 저기 성이 보인다.》 밤하늘에 우뚝 시꺼멓게 솟은 성곽을 바라보며 다시 발걸음들이 멈춰섰다. 볼수록 높아만 보이는 어둠속의 서진성이였다. 대렬은 조심조심 앞으로 나갔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여, 텁석부리, 저건 무슨 소린가?》 《예, 저건 조선퉁소소리올시다.》 멋들어진 퉁소소리였다. 《저 성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가?》 《예, 바로 그렇쇠다.》 《이게 무슨 놈의 판이야?》 대렬이 또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런데 이번엔 게구마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지금 게구마는 말잔등에서 눈을 껌벅거리며 그 어떤 기억을
더듬고있는것이였다. (옛날 제갈량이란 사람이 빈 성우에서 거문고를 탔다던가? 그 병법을 무어라고 했다더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온 제 머리가 오늘밤에는 왜 이렇게도 안도는가싶어서 게구마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이 어둠속에서 불쑥 윙하고
차돌멩이가 제 골통으로 날아들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쇠투구를 꾹 눌러썼다. 그러면서도 소리쳤다. 《뭣들 꾸물거리고있는가? 퉁소면 퉁소, 제갈량이면 제갈량이지 겁날게 뭔가? 이건 변변치 못한 조선의병들이 우리를 속이자는 얕은 수다. 어서
달려가서 저 성을 들이쳐라! 저길 쳐야 소금도 생긴다.》 이상하리만큼 저도모르게 큰소리를 친 게구마는 제 말고삐만은 틀어잡고 늦추지 못한채 중얼거렸다. 《대장노릇하기란 과연 바쁜 일이로구나.》 투구안에는 진땀이 그득찬것 같았다. 이때 투덜거리며 앞으로 나가던 왜병들의 자지러진 비명이 어둠속에서 터졌다. 《함정이다!》 《사람 살려라!》 오늘밤에 나선 사무라이가운데서도 가장 날래고 포악하기로 이름난 다까도비(높이 나는 매라는 뜻.)라는 별명을 가진 놈이 칼을 빼들고 앞장서서
《날 따르라!》하며 내달리다가 그놈특유의 높은 청가락으로 《함정이다!》라는 마지막고함을 치고는 어둠속으로 잦아들고말았던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또 한점의 불꽃이 먼 앞쪽에서 번쩍이더니 삽시에 무수한 홰불이 온 서진성에서 솟아오르며 놈들에게로 달려들었다. 《와―》 기겁을 해서 돌따선 놈들이 냅다뛰는 바람에 게구마는 뒤로 밀리여 주춤거리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징, 꽹과리, 북소리가 서진성에서 터져올랐다. 와뜰 놀란 게구마는 홱 말고삐를 잡아채며 말머리를 돌렸다. 방금 돌멩이벼락이 제 뒤통수를 치는것만 같았다. (그 아이새끼놈이 감히 나를…) 그러면서도 부리나케 말채찍을 휘둘러댔다. 왜병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았다. 이밤 게구마가 거느린 왜병들이 도망쳐 건너온 대동강은 휘영청 밝아진 달빛아래 유유히 흐르고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