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4 회 )

 

×

 

김일성동지께서는 담박골입구의 구락부에 안치한 전선참모장 박정덕의 령구앞에 오래도록 서계시였다. 마지막으로 전사를 다시 보고싶다는 그이의 말씀에 따라 백포를 벗긴 상태였다. 스러져가는 석양빛이 조용히 누워있는 전사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박정덕의 얼굴엔 미소가, 고즈넉한 미소가 여전히 비껴있는듯싶었다.

(정덕동무! 우리의 마음은 이토록 아프고 괴로운데 동무는 웃고있구만… 그런데 왜 이리 조용한가? 추도곡소리는 왜 들리지 않는가…)

《정덕동무…》

김일성동지께서는 산사람과 말하듯 나직이 뇌이시며 박정덕의 어깨며 가슴쪽의 군복주름을 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곁에 선 김일에게 손을 내미시여 훈장곽을 받아드시였다.

자유독립훈장 제1급, 번쩍이는 그 훈장을 박정덕의 가슴팍에 달아주시던 그이께서는 불쑥 쓰라린 아픔을 느끼시였다.

전쟁 첫날부터 련대와 사단, 군단을 이끌어 승리에 승리를 새겨온 이 장령에게 너무나도 훈장이 적은것이 마음에 걸리시였던것이다.

하지만 력사와 인민이 그를 영원히 높이 알것이 아닌가. 그리고 자신께서도.

그이께서 허리를 펴시자 비장한 추도곡이 연주되였다. 수백 수천을 헤아리는 영결식 그때마다 울리던 추도곡.

산에서 싸울 때는 추도가도 없이 전사들과 헤여지실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때마다 찢기는듯 한 아픔과 슬픔이 그이의 가슴을 찌르고 허비였었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김일, 최현, 남일과 함께 령구를 메고 담박골입구의 야산으로 향하시였다. 단풍이 빨갛게 물든 야산기슭에 가을 들국화가 뒤설레였다. 황금빛을 띤 언덕기슭에 더미를 지어 떨기떨기 연하늘색꽃잎을 떠는 들국화들, 전사는 더운 피를 뿌리고가는데 대지우에는 꽃이 피여나있구나.… 조총소리가 울렸다.… 깃을 찾는 저녁새들이 무리짓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 앉는다.

집무실로 돌아오시였으나 아무것도 입에 대실수 없으시였다. 밥을 넣으면 모래를 씹는것 같고 국을 들면 소태푼 물같아서 박정덕이 품들여 보내온 작전문건만을 뒤적이셨다. 이미 전선으로, 군단들로 명령서를 띄운 뒤였지만 전사의 충정의 숨결이 배인 그 문건앞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으시였다. 쓰다듬고 뒤적이시며 오래도록 추억에 잠겨 아픈 가슴을 억제하시였다.

다음날 점심때 림춘추와 김일이 박정덕의 부인 정옥희녀성이 쓴 편지를 가져왔다. 금방 박정덕의 유가족을 돌봐줄데 대한 내각결정을 내려보내신 뒤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편지를 받아드시였다.

눈물자욱이 력력한 글발들이 눈앞을 스치였다.

눈물이 앞을 가려 힘들게 읽어나가시였다.

《…장군님, 벌써 며칠째 식사를 안하신다니 저희들은 가슴이 졸아듭니다. 저의 남편이 이걸 안다면 땅속에서 자리를 차고 일어날것입니다.

장군님, 식사를 꼭 드십시오. 이건 우리 유가족만이 아니라 싸우는 전선의 전사들과, 가족들 조선인민의 소원입니다.

장군님께서 건강하셔야 우리가 이기지 않습니까…》

그래서 처음으로 식탁앞에 마주 앉으시였다. 박정덕의 최후를 목격한 김인정을 그 식탁에 부르셨다.

박정덕을 생각하시여 또 희생된 김광선을 생각하시여 김인정을 최고사령부에 눌러두기로 하신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상에 놓인 고추장이 눈에 띄우시였다. 발그레한 고추장은 찰기가 돌고 군데군데 마늘다짐과 참깨들이 아기자기 박혀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장명선을 쳐다보시였다.

《장아바이가… 끝내 고추장을 마련했군요. 안됐습니다.… 내가 너무 바쁘다나니 함께 만들자던 약속을 어겼구만요.》

장명선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굽이 축축해졌다.

《장군님…이 고추장은… 저 최현동지네가 만들어온 법동물산이올시다. 이 인정이가 가져왔지요.…》

김인정이 눈물을 똑똑 떨구며 사연을 이야기한다.

《장군님… 전선참모장동지는 운명의 시각에도 이 고추장걱정을 했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만 수저를 드신채 굳어지시였다. 그냥 그 고추장단지를 바라보시였다. 그것이 그저 고추장으로만 보이지 않으셨다. 이게 무슨 고추장인가. 아니! 동지들의 사랑! 최현의 얼굴에 겹쳐 박정덕의 마지막순간이 상상속에 비껴오른다.

사람이 운명의 마지막순간에 하고싶은, 터놓고싶은 말들이 오죽 많으랴. 이런 전사를 잃고…

단 한술도 들수 없으시였다.

… 썩 멀리 세월이 흐른 뒤 새 세기에 들어선 어느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수령님의 슬하에서 혁명가로 자라 영생의 언덕에 오른 혁명전사들의 모습을 담은 기록영화 《위대한 령장을 모시여》를 보고계시였다.

전선참모장 박정덕과 중요초소에서 일하고있는 그의 가족들에 대한 화면이 펼쳐지자 당력사연구소 책임일군이 늘 그러했던것처럼 설명을 시작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문득 한손을 내저으시였다.

《됐습니다. 강동무, 박정덕전선참모장이나 그의 가족에 대하여 알면 동무들이 나보다 더 알겠소. 우린… 소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소.》

기록영화가 끝났을 때 그이께서는 다시 보자고 하시였다.…

저녁에 집무실로 최용건보위상이 찾아왔다. 대성 네알을 단 그 좋은 풍채에 베보자기에 싼 그릇을 들고서있는게 이상하여 김일성동지께서는 물으시였다.

《왜 그러고 섰소?》

최용건은 외투안섶에 손을 넣어 검푸릿한 대두병을 꺼내 집무탁우에 놓고 베보자기를 풀었다.

《방금 최고사령부예비대로 장악하고있던 한개포련대를 전선중부로 떠나보냈습니다.

장군님, 낮에도 또 끼니를 번지셨다기에 제 오는 길에 평남도대평쪽에 들려 술을 좀 받아왔습니다.

전에 김책동무가 다니던 고장 술입니다. 따뜻하게 데워서 품고오기는 했지만…》

《!…》

최용건이 잔과 함께 김이 문문 나는 쟁개비를 밀어놓는다. 두부탕이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용건과 함께 밖으로 나서시였다.

차거운 석양빛에 눈이 시우시였다. 계절은 벌써 조락의 시절을 마치고 겨울에로 다가서고있다. 어느새 락엽들이 담박골의 여기저기를 덮었다. 최고사령부뒤의 담바우산도 불타던 단풍이 다 스러지고 푸릿푸릿한 소나무들 사이로 메마른 활엽수지대가 듬성듬성해 좀 한산한 감이 든다.

이 담박골의 지형이 참 기묘하다. 담바우산을 중심으로 바위벼랑들이 담벽처럼 둘러싸였는데 그런 어슷비슷한 산들이 줄줄이 늘어앉아 처음 온 사람은 골짜기들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하긴 그래서 때로는 이 건지리 오형제골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최용건의 안내를 받으며 둔덕을 넘어 산탁의 벼랑기슭에 바투 붙여지은 꿩사앞에 멈춰서시였다.

토실토실 살진 꿩들이 한무리 몰켜서있다가 살창곁으로 푸르르 달려든다.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족속들이라 먹이를 주러온줄로 아는 모양이다.

최용건과 김명수가 먹이통에서 콩을 한줌씩 주어들고 마치 닭모이주듯 휘여휘여하며 살창안으로 뿌려던진다.

몸집이 작은 알락달락한 누른 재빛의 까투리 여러놈이 날쌔게 달려들어 콩알을 부리가 부서지게 쫏는다. 저만치 물러서있던 붉은깃에 황금색이 현란한 장끼가 위세있게 지게걸음으로 다가오자 까투리들은 례의를 차리는지 공손히 한옆으로 물러서는척 하다가는 또 부리를 빼들고 함지걸음새로 달려든다.

《보위상동무네가 키운 보람이 있소.… 허, 장끼란 놈이 참 위엄이 있소. 까투리들이 꼼짝 못하누만.》

김일성동지께서 혀를 차시자 최용건의 너부죽한 얼굴에 미소가 피여났다.

《장군님, 저놈이 아주 흉물스럽습니다. 누가 까투리들을 건드리기만 하면 제법 목털을 세우고 덤벼듭니다.》

《그래요?》

먹이가 바닥이 나자 꿩들은 기운이 생겼는지 좁은 우리안을 부리나케 오락가락한다.

《보위상동무, 저놈들이 숲이 그리운 모양이요.》

《예?!…》

김일성동지께서는 짧은 숨을 내그으시였다.

《저것들은 원래 가금이 아니지 않소. 왜 숲과 들이 그립지 않겠소. 비록 불탄 숲이지만… 이젠 저것들을 숲에 놔주는게 어떻소?…》

《좀 아쉽긴 하지만… 제 보금자리로 갈 때가 된것 같습니다.》

최용건이 활달한 어조로 말씀올리자 김일성동지께서는 환하게 웃으시였다.

《그래요? 의견이 없다? 김명수동무… 꿩사문을 여오.》

《알았습니다.》

김명수가 철망으로 된 꿩사문을 활 열어젖히자 꿩들은 오히려 비실비실 안쪽으로 기여들어간다.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꿩사안으로 들어서시였다.

그이께서는 까투리 한마리와 장끼를 붙안으시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산천은 불탔어도 이제 봄이 오면 더 억세게 푸르를게다. 너희들의 깃을 펼 자리도…》

김일성동지께서는 꿩을 날려보내시였다. 장끼가 날으자 나머지 꿩들도 일제히 우리를 빠져나와 들판과 잎마른 야산둔덕으로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른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하염없는 생각에 잠기시여 그냥 말없이 꿩들이 날아오르는 창공을 바라보고계시였다.

꿩들은 아직 숲과 언덕, 포연내 짙은 자연이 낯설은듯 내릴 곳을 찾지 못하고 불안하게 여기저기 앉았다가는 또 푸드덕거리고 어떤 놈은 다시 꿩사쪽으로 기여오기도 한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어쩐지 자꾸 눈물이 솟으시여 꿩들의 움직임도 느끼시지 못하며 겨울빛이 서려오는 담박산 창공만을 바라보고계시였다.

꿩들은 그냥 푸드득거리다가 담박산밑의 헐벗은 숲쪽으로 날아가 앉는다. 불쑥 김일성동지께서는 가슴속으로 짜릿한 아픔이 지나가는것을 느끼시였다. 그 산기슭에는 전선참모장 박정덕의 묘소가 있었던것이다.

어쩐지 꿩들도 자신의 마음을 아는것 같았다.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꿩들이 날아간 산기슭에서 눈길을 뗄수 없으시였다.…

 

×

 

전선이, 전선이… 몸부림쳤다. 폭풍우가 터졌다. 화산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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