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12 장

평양성에 갇히운 이리떼

3

(1)

 

모란봉구경이 개판이 되여 락심하고있는 시동아이앞에서 나비수염을 쓸며 풀이 우거진 쌀낟가리를 이윽토록 바라보던 고니시는 발길을 대동문쪽으로 돌렸다.

이때 저쪽 골목에서 털보 한놈이 유가다(일본여름옷)에 띤 검은 오비(띠)에 엄청나게 큰 왜검을 차고 술에 만취되여 노래를 부르며 오고있다.

 

인간도처 유청산이라(이르는 곳마다에 푸른 산천이 있다. 즉 가는 곳마다에 살기 좋은 곳이 있다는 뜻.)

 

《아니, 저게 서울서 내려온 게구마가 아니야?》

담장밑에서 해바라기를 하던 졸병놈들이 수군거렸다.

《옳구만. 내려오자바람으로 통역관놈을 시켜서 중화군수 4촌동생 김명립의 집 안방을 차지하고있다두만. 그런데 뭐 평양의 동명왕릉까지 파가겠다나. 하하하. 소금 한줌도 못구하는 주제에…》

《저놈이야 매일 진수성찬이겠는데 소금걱정이 있겠나. 듣자니 같은 털보인 소서비상은 피난가는 계월향이라는 기생을 가로챘지만 저자는 계월향의 동무인 옥개라는 기생을 길바닥에서 붙잡고 제게 수청을 들라고 했다가 저 털부숭이아래턱을 치올려받치웠다는군.… 그래서 놈이 칼을 빼들자 옥개는 〈이놈아, 우리는 네놈들의 노리개가 아니다.〉하고 단도로 제 목을 찌르고 쓰러졌다네. 만만치 않은 백성들이야.》

《아니, 저 오비에 주렁주렁 찬게 뭘가?》

한 졸개가 소리쳤다.

《음― 내려올 때 마을을 치고 시집갈 처녀의 례장감 패물들을 들어왔다더니 그게 분명하군.》

《제길, 사무라이망신 더럽게 시킨다.》

《사무라이는 무슨 놈의 사무라이. 제 조상은 동래부산서 장사를 했대. 그런걸 우에다가 올려와서 저렇게 우쭐렁거린다네.》

그러는 동안에 놈은 《인간도처》를 부르며 다가왔는데 그의 오비에서는 은장도며 은가락지, 범의 발톱이발쑤시개, 향주머니, 유리단추 등 울긋불긋한 패물들이 왈랑절랑거렸다.

《에구, 창피해라. 조선계집들이 보면…》

와라지를 삼던 졸개놈이 침을 탁 뱉고 돌아앉았다.

게구마에게도 성과 이름이 있었는데 하도 털이 많아서 놈들이 게구마(털곰)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놈은 오히려 그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한놈이 《게구마상, 대단한것을 차셨소이다.》하고 비꼬는데 그때 이곳을 지나던 고니시가 꽥 소리질렀다.

《그놈의것들 다 떼팽개치지 못할가!》

그리고는 저희 지휘처를 향해 씨엉씨엉 걸어갔다.

이날 고니시는 지휘처에서 변상갑이라는 조선이름을 가진 첩자를 시켜 수급졸개들앞에서 최근의 전쟁정세지도를 펴 걸게 했다.

우묵눈에 뒤웅박대가리인 그자는 바로 고니시가 오랜 기간 조선국내에 박아둔 첩자이고 겐소와 깊은 련계가 있는자인데 지금은 게구마밑에 있으면서 게구마가 꽃골을 칠 때 매부리코와 함께 길안내를 한자다.

지도는 고니시가 오늘 대동문루에서 펴보던 그 지도였다.

펼쳐진 지도에는 붉은줄이 부산에서 서울을 거쳐 평양성에 이르는 큰길을 따라 그어졌고 평양성의 바로 뒤통수에 시뻘건 동그라미를 열번도 더 되게 겹쳐 그린 곳이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였다.

중화 서진성이였다.

변상갑이는 남해에서의 수군패전의 시커먼 작대기표와 각 도 의병부대들이 일어난 불길같은 위치표식, 가또의 함경도진출표식들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어섬겼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다 알고있기때문에 오늘은 주로 평양성주변의 조선관군과 의병정세에 대하여 특히 중화의병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중화의병대의 붉은 동그라미를 한번 더 덧쳐그었다.

그러더니 그는 《그러자면 먼저 평양성주변정세부터 간단히 말씀드려야 하겠소이다.》하고 마른 기침을 깇고나서 주묵을 듬뿍 찍은 큰 붓을 들었다.

모두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변상갑은 평양성 서북쪽에 바싹 붙은 순안일대에 큼직한 일자진을 쭉 그으며 《여기에는 평안감사 리원익과 순변사 리빈이 거느린 5천명의 조선관군이 집결되여있소이다. 도원수 김명원이도 있구요.》하고 설명했다.

그리고는 뒤이어 평양서쪽의 강서, 룡강, 증산, 항종, 삼화 등 다섯고을에 큰 동그라미를 치며 말했다.

《여기에서는 조선의 이름난 큰 장수인 평안도 조방장 김응서가 거느린 1만명의 군사가 호시탐탐 평양성을 노리고있는데 벌써 평양성에 바싹 접근해와있소이다.》

변상갑은 잠시 여럿의 얼굴들을 둘러봤다. 눈이 커진 놈, 찌프린상을 한 놈 각양각색이였다. 겐소는 눈을 감은채 묵묵히 앉아있었다.

《음, 김응서라…》

소서비의 뒤틀린 목소리가 튕겨나왔다.

《심중히들 듣거라.》

고니시가 소리를 질렀다. 변상갑은 계속해서 평양 서쪽교외에 있는 평양부사 남부흥과 평양유생 양덕록 등이 거느린 1만명의 군사표식과 강동에서 동쪽길목을 가로막고있는 리일의 군사 5천명 그리고 대동강어구를 봉쇄하고 왜병들의 서해에로의 배길을 꽉 막아버린 별장 김익추의 수군위치들을 하나하나 표식해나갔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변상갑은 자기의 렴탐력을 시위라도 하려는듯 장내를 둘러보며 지껄여댔다.

《보는바와 같이 그동안 쫓기우던 조선관군이 이제는 이렇게 대렬을 수습하였소이다.》

이때 게구마가 불쑥 한마디 했다.

《왜 의병이야기는 안하느냐?》

제 졸도의 렴탐력을 뽐내고싶었던것이다.

《예, 이제부터…》

변상갑은 게구마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나서 계속했다.

《그럼 평양주변의 조선의병정세를 말씀드리겠소이다.》

하더니 평양 대성산에 《평양수복의병대》가 자리잡고있다는 표식을 하고난 다음 묘향산의 이름난 큰 중 서산대사와 그의 수제자 사명당이 이끄는 수천명의 승병이 떨쳐나서서 순안일대에 집결하고있는 표식을 했다. 그리고나서 한층 심중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의 제일가는 골치거리는 우리의 뒤덜미를 겨누고있는 이 중화의병대올시다.

그들이 요즘 우리가 보란듯이 기의식까지 하고 징, 북, 꽹과리를 요란스럽게 두드려대는것은 우리의 뒤통수를 누르자는것인데 그것은 앞서 말한 조선관군 그리고 의병들과 밀접한 련계를 가지고있는 증거올시다.

중화고을을 중심으로 생겨난 의병대만 해도 중화와 상원사이의 산줄기를 타고다니며 우리의 뒤덜미를 치는 조호익의병대, 한대걸농민의병대, 중화땅 개고개에 근거지를 둔 김진수의병대, 운추봉에 자리잡은 차은진의병대 그리고 남쪽으로 내려가며 황주, 봉산땅의 김만수의병대 등등 수많은 의병대가 있습니다.》

놈이 그것을 다 표식하고나니 평양성은 겹겹이 포위된 고립무원한 왜군의 감옥처럼 보였다. 무거운 어깨숨소리와 짓눌리는 위압감이 왜군지휘부에 꽉 차고 이럴줄은 몰랐었다는 놀란 눈들이 지도에 쏠렸다.

《거기다가 중화의병대장 림중량은 그 전법이 신출귀몰해서 아직까지도 그 의병수자와 확실한 근거지도 아직 우리는 모르고있었댔소이다. 하여 서진성에서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치며 기발을 내꽂았다지만 거기가 그네들의 진짜본거지인지 그것도 믿을것이 못됩니다.》

겐소는 여전히 합장을 한채 눈을 감고 그린듯이 앉아있고 소서비는 육중한 칼자루를 두손으로 잡고 앉아서 씩씩거렸다. 쯔시마도주는 눈을 디룩거리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있고 일찌기 그의 지시를 받고 왜국의 사절로 조선에 왔던 렴탐군 다히라는 큰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오직 게구마만이 제 부하인 변상갑의 렴탐솜씨가 어떠냐는듯 여럿을 둘러보며 헤벌쭉거리고있었다.

원래 변상갑은 제 조상때부터 삼포왜란, 을묘왜변에도 참가한 쯔시마놈이다.

그래서 조선말에 능숙한 그는 고니시의 지시로 자기의 정체를 깊숙이 감추고 조선땅에 10여년동안이나 박혀있던 놈이다.

그는 군사들속에 들어가면 제법 조선의 병서들에 나오는 조선명장들의 전술이야기까지 해주었고 량반사대부들앞에서는 문방사우를 펼쳐놓고 설화지에 사군자(매화, 란초, 국화, 참대)를 붓 몇번 휘둘러 멋들어지게 펴놓기도 했다.

새우젓독을 지고나서면 그럴듯한 새우젓장사요, 엿목판을 메고 엿가위를 철꺽거리면 그뒤로 아이들이 줄레줄레 따랐다. 가사, 장삼을 떨쳐입으면 거룩한 스님이 되고 시골서당을 찾아가서는 팔자수염을 꼬아올리며 고급문장까지 강론하는 바람에 떨떨한 훈장들을 뒤로 물러앉게 하였다.

그리고 기생을 끼고앉으면 청가락높은 시조 한마당에 멋들어진 학춤, 곱새춤까지 펼쳐놓는자로서 마음놓고 어데나 무상출입하면서 조선의 풍속, 민심까지 몽땅 꿰들고있는자다.

그래서 이름까지도 변상갑이라고 조선이름으로 고쳤는데 《변》자와 《갑》자 발음을 왜말로는 못하기때문에 왜놈들은 그를 《벤상꼬》라고 불러서 제 본이름까지도 가리워버렸다.

우묵한 눈은 살기띤 음흉한 독불을 뿌리기도 하고 《거룩한》 광채를 내뿜기도 하며 때로는 다정다감한 눈길로 사람들의 심금을 거머쥐기도 한다.

그렇기때문에 이자는 국왕이 의주로 파천한 후 평양주변에 재수습된 조선관군의 력량과 의병들의 실태를 마음놓고 돌아다니며 이렇게 시시콜콜히 장악한것이다.

사실 고니시가 오늘까지 평양성안에 진득이 눌러앉아있은것도 이자의 렴탐자료에 의해서 작전계획을 짜자는 심산에서였던것이다.

지금은 란시가 되여 게구마에게 속해있지만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고니시, 겐소 그리고 쯔시마도주외에는 아무도 없는것이다.

그러기에 변상갑은 변상갑대로 저의 의견이 고니시의 작전계획을 좌지우지할수 있다고 코대가 높은자이다.

그런데 왜군이 이 땅에 쳐들어온 후 뜻밖에 그놈을 허둥거리게 만든것은 예상치도 못했던 조선의병들의 봉기였다. 그것도 한두곳이 아니라 온 8도강산에 걸쳐 벌떼처럼 일어나는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놈은 오랜 세월 렴탐질을 해오는 동안 조선의 장수재목들까지도 다 알고있었다.

리순신장군을 비롯해서 젊은 시절에 맨손으로 호랑이 뒤다리를 잡아 꺾어놓았다는 평안도 룡강땅의 김응서장군, 권세있는 가문출신의 권률, 신립 등과 장재를 갖춘 김덕령 등을 비롯한 인물들의 래력까지 꿰들고있었다.

그러나 삼거웃처럼 흐트러진 조선의 군사체계와 무방비상태로써는 그런 장수들도 용을 빼는 수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리고 곽재우, 조헌, 고경명, 림중량, 정문부, 서산대사 등이 비록 민망은 높지만 그런 한미한 선비따위나 중 등이 강대한 왜군앞에서 무슨 맥을 추랴싶었던것이다.

더우기 평소에 그저 평범하고 소박하기만 해서 공기돌 다루듯 할것만 같던 농사군을 비롯한 조선백성들이 그렇게도 무서운 불사신처럼 국난앞에서 사생결단하고 일떠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방금 제가 지명한 평양성둘레의 그 관군대오만 놓고봐도 바로 그 의병들의 힘에 의하여 숨돌릴 틈을 얻어 대렬을 정비한것이다.

(도대체 그 무지렁이같던 백성놈들의 그 어디에 그런 힘들이 숨어있었던가. 그럴수 없겠는데…)

아무리 머리칼을 쥐여뜯어도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것이다. 따라서 이 나라의 실정을 제 손아귀에 다 틀어쥐고있는듯 자처해온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치명적인 타격으로 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오늘 변상갑은 조선의병의 위력한 존재를 더 부각시키면서 그 책임에서 저는 슬쩍 빠져볼 궁냥을 하며 한참 주어섬기는 판인데 갑자기 소서비가 송충이같은 눈섭을 꼿꼿이 세우며 꽥 소래기를 질렀다.

《네 이놈, 그게 다 진짜냐? 거북선이 어떻소 의병이 어떻소 하고 항상 요란스레 줴치는데 허튼소릴 했다간 네 모가지부터 베여버리겠다. 그리고 김응서를 마치 천하명장처럼 떠받들고 중화고을 의병대가 큰일을 칠것처럼 허풍을 치는데 내 그놈들의 모가지를 잘라 네게 보여줄테니 두고봐라.》

그 말에 변상갑은 속으로 (저자가 전날 룡악에로 소금 구하러 나갔다가 김응서군사에게 당한 망신때문에 저러렷다.) 하고 픽 웃었다.

《좋습니다. 제 말에는 한치의 드팀도 없사옵고 사실 김응서나 중화의병대는 장군이 아니고는 당해낼 장수가 없다고 보옵니다.》

변상갑은 우직스런 소서비를 가지고 노는것인지 진담을 하는것인지 이렇게 얼버무려버렸다.

고니시는 그따위 옥신각신에는 귀를 기울일 형편이 못되였다.

그는 변상갑이 주어섬기는 속에서도 제옆에 있는 평양성지도를 펼쳐보았다.

성벽에 총구멍을 촘촘히 설치한 내성과 대동문앞을 비롯해서 사방에 오불꼬불 파놓은 곡굴진지들을 훑어보았다. 잠시라도 놔두면 꼭 무슨 변을 일으키는 졸개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으려고 몰아쳐서 설치해놓은것들이였다.

대동강을 허리에 감고 솟은 모란봉 청류벽의 천험요새와 보통문앞의 10리벌이며 제 졸개들이 소금때문에 나갔다가 녹아나는 잡약산기슭을 더듬어가던 고니시는 서북쪽의 평양성벽을 따라 연연 수십리를 푸르싱싱 뻗은 송림의 바람소리가 들리는듯싶었다.

그 소리가 마치 그 성벽너머에서 들려오는 조선백성들의 대함성처럼 느껴진 고니시는 와뜰 놀라 지도를 덮었다.

불현듯 그는 제 나라의 나고야성을 떠나올 때 눈병에 걸려 시뻘겋게 된 눈을 껌뻑거리며 20만 대군을 떠나보내던 도요도미의 원숭이상판을 다시 생각했다.

도요도미는 그때 그에게 《조선은 200년동안 잠을 자던 나라다. 그러니 이번 싸움은 자는자의 목을 자르는것과 다를것이 없다.》라고 했던것이다.

(그 어디에 천하를 삼켜보려는 그런 엉뚱한 생각이 숨어있는것일가? 흥, 우물안 개구리…)하고 고니시는 다시 코방귀를 뀌였다.

그는 지금까지 왜국 66주를 제 무릎아래 거느린 도요도미를 떠받들며 리해하려고 애써온 사람이였다. 그런데 오늘은 엄혹한 현실앞에서 수천리 바다건너에서까지 그를 흘겨보는 고니시로 된것이다.

변상갑은 마지막말에 힘을 주었다.

《평양과 서울을 오가는 길을 중화의병대에게 끊기우는 날이면 우리 평양성은 더욱 고립무원하게 될것입니다. 사실 중화의병대는 오늘 우리가 제일 경계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의병대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러자 게구마가 불쑥 큰소리로 웃어대며 씨벌거렸다.

《거 중화고을 중의잠뱅이들말인가? 요전에 꽃골어구에서 우리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그 푸른 중의적삼을 입은 애새끼따위들말이지? 하하하…》

《조용하라.》

고니시는 잔뜩 찌프린 얼굴로 그를 쏘아보았다.

(저 팔삭둥이놈이…)

고니시는 골치가 쑤셨다.

서울서 졸개들을 끌고오던 날 바로 그 돌팔매질에 황천객이 된 졸개놈을 길바닥에 팽개치고 와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던 그를 생각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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