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12 장

평양성에 갇히운 이리떼

1

 

평양성안은 무더위로 찌는 시루속같았다. 푸른 수양버들가지들에서 매미들이 제 목청을 뽐내고있었다.

조총소리에 날아갔던 황금꾀꼬리도 어느새엔가 다시 날아와 그 버들가지들에서 고운 청가락을 뽑았다. 그 소리에 약이 올라 조총질까지 하는 섬오랑캐떼를 가두어놓은 평양성벽은 드높이 솟아있었다.

열칠팔세쯤 되여보이는 얼굴이 길죽하고 눈섭이 짙은 총각아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물지게를 지고 대동문안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왜적이 성안에 들이닥칠 때 염창의 소금을 대동강물속에 처넣고 한발 늦게 떠나다가 아버지랑 왜놈에게 붙잡힌 물지게군총각이였다.

그는 대동문루에서 서성거리는 왜군두목놈에게 눈을 한번 흘겨주고나서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길, 저놈부터 홀쳐갈것이지.)

놈들에게 붙잡혔을 때에는 겁나고 원통도 했었다. 그런데 그는 날이 갈수록 자기가 왜놈에게 붙잡혀있는것이 아니라 왜놈들이 평양성에 갇히워있다는것, 자기는 평양성의 주인이라는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아버지와 함께 붙잡힌 날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귀속말을 해주었다.

《떨지들 말라구. 떨면 죽어. 무서운것은 죽는것이 아니라 놈들앞에 비겁한 꼴을 보이는것이네.》

그날 그는 아버지를 새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새힘을 받아안았었다.

평양8장사의병들이 밤마다 성벽을 타고 넘어와서 감쪽같이 왜놈의 모가지를 잘라가고 묶어가는통에 놈들은 밤이 되면 더욱 벌벌 떨고있는것이였다.

총각의 가슴은 넓어지고 평양성벽에 뺨을 비벼주고싶도록 제 고향 평양이 유정스러웠다. 그런데다가 대동강가에서 함께 살다가 의병대에 들어간 제또래 물지게군이였던 현수백(8장사중의 한사람)으로부터 왜놈의 우두머리들이 있는 곳들과 왜놈들이 많이 모이는곳, 왜놈들이 총과 화약을 쌓아둔 창고들을 잘 알아두라는 부탁을 받고 또 강건너 중화땅을 비롯해서 수많은 곳에 의병대가 활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부터는 왜놈의 물지게는 지지만 자기도 왜놈과 싸우는 평양성사람이라는 자부를 가지게 된것이였다.

바로 어제밤에도 왜놈옷차림에 왜검을 차고 경상골을 버젓이 지나가는 낯익은 의병을 보았었다.

그런데 밤이 되여 잔뜩 겁에 질린데다 소금을 못먹어서 야맹증까지 걸린 왜놈졸병이 비실거리며 그앞을 지나다가 그와 마주칠번 하고는 《시쯔레이》(실례) 하고 굽신거리며 지나가는것을 보고는 손벽을 치며 웃어주고까지싶었었다.

 

대동문루에서 지도를 펴들고보던 평양강점 왜군의 우두머리 고니시 유끼니가는 펴들었던 지도를 뚤뚤 말아들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갸름하고 날카롭게 생긴 창백한 얼굴에 화살깃을 마주 비껴꽂은듯한 새까만 눈섭과 나비수염이 신경질적으로 쭝깃거렸다. 파란 배코머리 뒤턱에 세운 좀마게가 크기도 했다.

서울 남별궁에 틀고앉은 왜군 총두목인 우끼다 히데이에의 지시로 졸개들을 데리고 며칠전에 서북군의 정찰통보책임자격으로 온 털보 게구마에게서 받은 전쟁정세지도를 벌써 몇번이나 들여다보고는 답답한 심정을 누를길 없어 대동문루에 오른 그였다.

전쟁정세는 너무나도 뜻밖에 불리하게만 되여가고있었다. 우선 기세등등해서 남해바다를 뒤덮고 기여들었던 왜국수군이 첫 싸움에서부터 리순신장군에게 된벼락을 맞았다. 구로시마함대가 전멸된것을 비롯해서 수천명의 수군과 수백척의 싸움배들이 물속에 련속 처박히고있는것이다. 특히는 도요도미의 특별지시로 왜국수군장수가운데서도 난다긴다하는 와끼사끼, 구끼, 가도가 거느린 세척의 대함대가 격멸당한 한산섬싸움의 대참패소식에 고니시는 맥이 쑥 빠진것이다. 일본군의 수륙병진계획의 파탄은 고니시자신이 꿈꾸던 모든것의 파산이기도 했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질 노릇이였다.

떠나올 때 어떤 일이 있어도 일본수군의 서해침공계획을 성공시켜 저의 무역선배길을 조선의 서북부바다와 명나라에까지 활짝 열게 하라던 제 애비의 락심초조해할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자기에게 왜군 총9군중 제1군을 맡기며 애비의 장사배길을 생각해서라도 잘 싸우라던 도요도미의 세모진 얼굴도 떠올랐다.

《머저리자식들!》

수군두목들을 욕질하고난 고니시는 《아니, 그럼?》 하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조선각지에서 일떠선 의병부대로 하여 자기가 쳐들어온 후방이 모두다 불붙는 전선지대로 되고말았고 평양성의 동서남북을 둘러싼 조선관군과 의병부대는 시시각각으로 압력을 가해오고있는것이 아닌가.

고니시는 제 나라 사무라이가운데서도 자신을 첫자리에 놓을 거울로 자처하는자였다. 자기의 총명과 힘을 과신하는자들이란 그것이 뒤집힐 때 더 크게 맛보게 되는 허탈감과 쓰거운 맛,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게 될수가 없는데…) 하고 고개를 기웃거리는 법이다. 즉 파탄된 현실앞에서 살아남은 환상쪼각을 부여잡고 안깐힘을 쓰는 법이다. 고니시가 바로 지금 그런 정신상태에 있는것이다.

그러나 불안이 불행이라는것만은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고니시였다.

(흥, 죽일놈들. 날보구 조선땅은 100리벌을 휘저어도 눈찌를 막대기 하나 없다는것쯤이나 알고 가면 될 땅이라고 혀바닥을 놀려대더니 이 땅은 모래불이 아니라 온통 가시덤불이 아닌가. 그리구 우리와 맞서는 백성놈들은 모두가 범장수같은 놈들이구.… 에이, 시라소니같은 놈들.)

이것은 긴긴세월 조선의 내정을 렴탐질해다 바친 놈들의 혀바닥을 두고 두덜거리는 소리였다.

벌써 몇해전부터 제 사위인 쯔시마도주를 시켜서 조선에 숱한 렴탐군들을 들여보냈었고 렴탐자료를 도요도미에게 바쳐온것이 바로 자기인만큼 울화가 더 치민것이다.

(아, 그때…)

고니시는 도요도미와 제 애비가 하던 밀담들을 생각했다. 그리구 조선출병을 앞두고 나고야성에서 도요도미가 특별히 저에게 마음에 드는자들을 다 골라 데리고가라던 말도 생각났다.

그래서 고니시는 10여년전부터 자기가 길러내고 조선에 드나들며 왜국사신이라는 명판을 빌려 온갖 렴탐행위를 다한 중 겐소와 역시 국사노릇을 한 렴탐군 다히라 그리고 제 나라 국내전쟁때 우직한 만용과 잔인성으로 하여 백성들과 군졸들을 전률케 한 소서비, 저의 사위인 쯔시마도주 등을 골라서 달고왔던것이다.

고니시는 그 끌끌한자들과라면 아무런 군사방비도 없고 파쟁으로 하여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조선땅쯤 말그대로 백사지 무풍지대를 달리듯 하며 한바탕의 총칼부림으로 삼천리땅을 자리말듯 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큰공을 남에게 빼앗길세라 부산앞바다에도 제일 선참으로 뛰여들었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부산, 동래의 조선장병들과 백성들에게 사등이뼈가 부러질번 했던것이다.

그렇지만 조선땅에 첫발을 내디딘것이 자기라는것, 그래서 도요도미의 그 큰 신임에 우선 보답한것으로 되였으며 중요하게는 자기의 용맹을 천하에 떨친것으로 된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는 그러한 《공적》이 오로지 자기의 뛰여난 총명과 장재(장수재목)로 하여 이뤄진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았으며 이 평양성에까지 들어선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비록 목숨이 아슬아슬한 곡경도 한두번만 치른것이 아니였지만 그럴수록 자기는 천하명장임에 틀림없다는 자부를 더 굳게 가지게 된것이다. 그동안 고니시는 조선하늘에 대고 호걸스럽게 세번 큰 웃음을 터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다 자기의 천품적인 장재때문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 첫번째 웃음을 터친것은 문경새재를 넘어올 때였다. 실로 그 높고 험한 령굽이들은 천험의 요새지로서 자기가 제일 겁을 먹던 길목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선장수 신립이 그곳을 텅 비여놓고 고개너머 허허벌판에 달래강을 등에 지고 배수진을 친것을 알고는 《조선에 장수감이 없도다.》하고 문경새재마루에서 크게 터친 웃음이였다.

두번째는 림진강가에서 20일가까이 안절부절 못하면서 마음을 조이던 때 궁여지책으로 군사를 슬쩍 물리여 유인매복진을 쳤었는데 조선의 도원수 김명원이 제꺽 그 낚시코에 걸려들어서 뜻밖에도 쉽사리 강을 건느며 《과연 조선에 장수재목이 없도다.》 하고 너털웃음을 터쳤던것이다.

세번째는 평양성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때 대군을 거느린 고니시는 대동강을 앞에 둔 동대원벌에서 평양성의 소소리높은 성벽을 이레동안이나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조이고있었다. 더우기 군량이 떨어졌던것이다. 그때 문득 생각난것이 도요도미가 전체 침략군장병들앞에 크게 써붙였던 글발이였다.

―지장은 무식어 적식이라.―(지혜로운 장수는 적의 식량을 빼앗아먹는데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동대원일대의 논밭을 몽땅 뒤지게 하고 농가를 모조리 털어내게 했는데 왜놈들 먹으라고 식량을 남겨두고 피난간 백성은 한집도 없었다.

약이 오른 고니시는 졸개들을 식량략탈에로 더 악착하게 내몰았다.

이때 병중에 있는 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뒤늦게 피난을 가던 며느리가 버드나무밑에서 시어머니에게 미음을 대접하는것을 본 왜병들은 굶주린 들개들처럼 와 하고 달려들어 그 미음사발과 몇되박의 좁쌀까지 강탈했다.

그러자 그 며느리가 《이 섬오랑캐놈들아, 네놈들에게는 부모도 없느냐?》 하고 고함을 치며 식칼을 고누잡고 덤벼들다가 열두발의 총알을 맞고 쓰러졌다.

그런데 평양성에 들어와보니 뜻밖에도 10만석의 군량을 그냥 놔둔채 조선의 대신들은 왕과 함께 뛰였던것이다. 그래서 고니시는 동대원에서 새벽에 습격을 당할 때 조선군사의 화살에 찢어진 귀쪼박으로 날아붙는 쉬파리떼를 쫓을 생각도 잊고 낟알더미들앞에서 춤이라도 출듯 《정녕 조선왕밑에 인재가 없도다.》 하고 호탕하게 웃어댔던것이다.

그래서 졸개들가운데는 《우리 선봉장이 저렇게 잘 웃다가 옛날 조조란 놈처럼 죽을 곡경을 치르지나 않을가.》 하고 수군거리는자들도 있었다.

그때의 고니시는 실로 승승장구하는 전승장군의 쾌감이 어떤것인가를 흠뻑 맛보며 흥얼거렸던것이다.

《내게는 모래불보다 가시밭이 더 좋다.》

그의 눈앞에는 자기의 전승보고에 벙글거릴 도요도미의 얼굴이 환히 보였고 애비의 무역선이 쫙 깔릴 서해바다의 출렁이는 물소리가 귀전에 들리는듯 했다.

그래서 겐소가 구해다 바친 조선의 이름난 병서 《동국병감》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옆으로 밀어놓으며 자기를 지용이 겸비된 무비의 영걸로 자처했던것이다.

그러니만큼 자기가 골라 데리고온 좌우수족노릇을 하는 문무성원들과 졸병들앞에서도 가슴이 넓어지고 천하를 제손에 틀어쥐고 노는듯한 쾌감을 느꼈던것이다. 그래서 체소한 몸으로 호걸풍을 보이느라 힘에 부치는 철선(쇠부채)을 보란듯이 펴고닫고 하는데 그런 천하명장을 입을 헤 벌리고 보아주는 평양백성들이 없어서 아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평양성에 들어앉자부터 뜻밖에도 강대한 조선이란 나라의 힘이 전후좌우에서 조여드는것이였다. 그중에서도 생각지도 않았던 백성들이 온 나라에서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데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고니시앞에서 감히…》

이렇게 마음을 도사려보기도 했으나 어쩔수 없는 허탈감, 초조감에 사로잡혀 오늘도 모대기고있는데 그의 앞으로 자기의 오른팔장수인 시꺼먼 털부숭이 소서비가 나타났다. 고니시의 두곱도 더될 우람한 몸집이였다.

거나하게 취한 소서비는 왜가리목청으로 자못 참지 못하겠다는듯 지껄여댔다.

《가또상은 승승장구해서 함경도쪽으로 이 나라 왕자들을 뒤쫓아 쳐들어간다는데… 우린 이러구만 있겠소? 조선왕의 뒤를 쫓아 냅다 치며 나갑세다.》

그 말에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던 고니시는 《가서 자빠져 자기나 해라!》 하고 꽥 소래기를 쳐서 소서비는 《흥.》 하고 코방귀를 뀌며 문루에서 뚜꺽뚜꺽 되돌아 내려갔다.

망상이나 엉뚱한 환상속에 잠겨있던 인간이 그속에서 깨여나 참혹한 현실속으로 굴러떨어질 때 흔히 두가지 자세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하나는 발악이고 다른 하나는 자포자기이다. 오늘 고니시의 경우는 그 발악인것이다. 그러기에 평소에 술취한 곰 다루듯 해오는 우직한 소서비에게도 그렇게 소래기를 쳐서 자기를 항상 약골로 보아오던 그가 깜짝 놀라 딸꾹질을 하며 대동문 돌층계를 내려갔던것이다.

소서비가 지껄이고간 가또란 말에 고니시의 밸이 더욱 뒤틀렸다. 그 가또때문에 항상 골머리를 앓는 고니시는 왜군 우익선봉장 가또 기요마사란 놈이 함경도쪽으로 쳐들어가며 우쭐렁거린다는데 더욱 밸이 꼬였던것이다. 가또는 도요도미가 고니시와 함께 저의 좌우팔로 여기는자다.

원래 가또는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먼 조카벌이 된다는 놈인데 왜국 서부지방의 큰 령주이며 전형적인 야생말같은 사무라이기질로서 그에게서는 지성과 정서란 한쪼박도 찾아볼수 없고 칼밖에 모르는 우직한 놈이다.

그래서 문무를 겸비한 영걸로 자처하는 고니시는 아예 그를 자기의 발싸개만큼도 여기지 않고있는것이다. 그러니만큼 고니시자신은 세계문물의 추세와 전쟁정세에 대한 예리한 판단, 전략전술에 대한 세련된 군사학적력량이 가또따위보다는 몇백곱이나 높은 우위에 있다고 자처하고있는것이다.

그런데 가또놈은 또 가또놈대로 이교도인 장사군의 자식 고니시를 코웃음을 치며 보는 까닭에 코코에 그놈과 맞다들어 기분을 잡쳐왔다. 그래서 도요도미까지도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부산성을 공격할 때도 하루 뒤늦게 달려든 가또는 심보가 뒤틀려서 깨진 징짝소리같은 탁성으로 이렇게 비꼬았었다.

《서울 약국거리를 먼저 차지하려구 남보다 앞서 뛰여왔는가? 내 서울 가면 늬 애비와 거래를 할 조선의 약장사군들을 몽땅 불러모아주마. 조선은 천하명약이 많은 나라라는데… 오이! 고니시! 아니, 톰 오큐스탄!(고니시가 야소교세례를 받으며 지어받은 이름) 한턱 내라!》

고니시의 애비는 큰 약재무역상이였던것이다. 그 말에 얼굴이 새파래진 고니시는 참을수가 없어서 칼을 쑥 빼들었다. 그리하여 칼싸움이 벌어졌는데 전형적인 일본신도의 독신자이며 술을 마셔도 일본술을 동이로 들이키고 성이 나면 수염과 머리칼이 우로 꼿꼿이 치오르는 우직한 가또와 길고 말쑥한 흰 얼굴에 까만 나비수염을 다스리며 스스로 단아하고 총명함을 앞세우면서 술을 찾아도 양주만 찾는 야소교도 고니시와의 칼싸움은 실로 볼만 하였다.

그것은 공로와 자리다툼인 동시에 서로 다른 기질간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 싸움을 뜯어말린것은 도요도미의 사위이며 일본군 총두목인 우끼다 히데이에였다.

더우기 가또가 고니시에게 더욱 애를 먹인것은 서울을 강점하고난 다음 조선왕을 쫓아 서북쪽으로 가는 좌익선봉장과 두 왕자를 쫓아 함경도쪽으로 가는 우익선봉장자리를 정할 때였다.

가또는 부득부득 제가 조선왕을 붙잡으려 서북쪽으로 가겠다고 목에 피대를 세웠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유도 있었다. 충청도 충주싸움이 끝난 다음 또 서울길을 두고 옥신각신하다가 고니시는 서울 동대문쪽으로 쳐들어가고 가또는 한강을 건너 남대문쪽으로 들어갔었는데 이때도 가또는 고니시보다 반나절 늦게 서울에 들어갔던것이다.

그래서 가또는 고니시따위 약골은 왕을 못잡는다고 제가 꼭 그 서북쪽으로 가겠다는것이였다.

그렇게만 되면 고니시는 애비와 함께 망하는 판이였다.

그 일로 또 칼싸움이 벌어질번 했었는데 이번에는 로회한 늙은 중 겐소가 나서서 《부처님의 뜻을 받읍시다.》라고 했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결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고니시가 좌익을 맡게 되여 안도의 십자가를 긋고 평양성까지 오게 된것이였다.

(그놈은 지금 조선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고 함경도끝까지 우쭐렁거리며 기여올라가고있겠지. 그러면서 이 평양성에서 한발작도 더 못나가는 나를 비웃구, 흥.)

고니시는 밸이 불끈거려 오른쪽귀상처에 달라붙는 쉬파리를 쫓는다는것이 제 귀쪽만 답새기고나서 오만상을 찌프리더니 홱 돌아서서 성루동쪽 란간앞으로 갔다.

저희 나라에서는 볼수 없었던 맑고 푸른 대동강은 7월에 접어들자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장마비에 한껏 불어나 붉은 흙탕물이 되여 흐르고있었다. 평양성에 들어앉은 후 얼마 안되여서부터 구질거리는 비속에서 그 흙탕물을 날마다 바라보는 마음 또한 구질거렸다.

그는 잔뜩 찌프렸던 얼굴을 애써 폈다. 그러면서 대동강의 장쾌함을 노래하려다가 바로 그 장쾌함에 기가 눌려 겨우 두줄의 시를 쓰고는 붓을 던지고 울었다는 고려시인 김황원의 시구를 찌프린 상을 하고 생각해봤다.

 

긴 성을 감돌며 푸른 물결 용용히 흐르는데

동쪽 넓은 벌엔 점점이 뫼부리가 솟았구나

 

순간 고니시는 도도한 대동강의 흐름과 그 시인의 드높은 기개에 눌리우는 생각이 들어서 홱 발길을 돌려 성안거리쪽을 바라봤다.

장마비가 잠간 멎고 내리쪼이는 7월의 뙤약볕아래 소금을 못먹어서 오갈이 들고 누렇게 뜬 제 졸병들이 걸레짝같은 옷을 걸치고 큰 기와집들 추녀밑이며 풍류스런 애련당 련못기슭 버드나무그늘아래에 늘어져있었다. 보초를 서는 놈외에는 거의 움직이는것이 없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드는 기발 같다고 해서 조선사람들이 《만장기》라고 부르는 색날고 때묻은 왜군의 기발이 고래등같은 기와집담장들에 기대인채 축 늘어져있다. 그 기발들에는 입성전 동대원싸움때 얼룩진 제 졸개들의 피가 배여있는것이다.

순간 고니시는 제놈들이 지금 깨져가는 돛배를 타고 평양성이라는 세찬 풍랑우에 떠있는듯한 생각이 들어 몸을 움씰했다. 그러고보니 그 배우에서 화살을 먹인 시위처럼 저 혼자만 마음이 팽팽해져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까욱까욱… 때마침 까마귀떼가 날아오며 까욱거렸다. 마치 저의 졸병들을 죽은 시체인줄 알고 덤벼드는것만 같았다.

까마귀소리를 듣자 고니시는 온몸이 오싹해졌다.

수많은 졸병들을 이끌고와서 대동강 건너편 벌판에 진을 치고있으면서 마음을 조일 때였다. 하루는 양각도쪽의 얕은 여울목에서 까마귀떼가 고기를 잡아먹는것을 보고 좋아서 손벽을 친 쯔시마도주놈의 말을 듣고 그곳에 은밀히 말뚝을 박아둔 다음 밤중에 평양성으로 쳐들어갔었다.

그런데 감쪽같이 그 말뚝들을 물이 깊은 곳으로 옮겨 꽂아놓은 조선군사 100여명이 김침이라는 장수의 지휘밑에 저희 병영들을 기습해온 바람에 수백명의 졸병들을 물속에 몰살시키고 말 133필까지 빼앗겼던것인데 그곳 싸움에서 참패한 생각이 되살아났던것이다.

기분을 잡친 고니시는 눈섭을 씰룩거리며 도망이라도 치듯 대동문루에서 내려와 련광정으로 올라갔다. 기분을 전환시켜보자는것이였다. 그러나 동대원벌을 바라보는 그의 기분은 더 잡쳐지고말았다.

동대원에 진을 치고있을 때 천험의 요새 평양성이 앞을 막고 천리로 뻗은 왜군의 뒤길이 끊길 위험의 초조감속에 낮도깨비떼같은 1만 8천명의 대군을 끼고앉아서 마음조이던 그 나날들, 금방 평양성문이 활짝 열리며 조선의 대군이 쳐나올것만 같아 밤에도 쪽잠을 자던 그때 갑자기 밤중에 쳐들어온 조선군사앞에서 넋을 잃고 투구갑옷도 못차린채 말잔등에 올라뛰다가 곤두박혀 십년은 감수하는것 같던 일이 생각나서 잔뜩 얼굴을 찌프렸다. 그리고 군량도 략탈로 보장하게는 하였지만 걸구같은 졸개놈들의 그 큰 배때기들을 무엇으로 채울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그래서 생각하던 끝에 문무를 겸비했다는 중 겐소를 시켜 대동강우에서 조선의 례조참판이며 대제학인 리덕형과의 담판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겉으로는 명나라로 쳐들어갈 길을 내달라는것이였으나 실은 평양성문을 빨리 열라고 위협해보자는 심산이였다.

겐소와 리덕형은 전부터 직무상의 외교관계로 아는 사이였고 류성룡 등 대감네들도 그에 찬동해서 대동강복판에서 담판이 이루어졌던것이다.

그런데 사태는 개판이 되고말았었다. 사모관대에 관복차림을 어엿이 하고 수려한 금수산 모란봉과 대동문, 련광정, 장경문, 부벽루, 을밀대, 청류벽 등을 마치 잘 조화된 한폭의 산수병풍처럼 뒤에 두르고 앉은 30대의 름름한 조선대표앞에서 검은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치고 백팔념주를 손목에 걸고 두손을 합장하고 앉은 늙은 중 겐소의 꼴이란 마치 조선대표가 《네 이놈! 남의 나라에 총칼을 가지고 덤벼든 명분을 말해봐라!》라고 하는 호령앞에 쩔쩔매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마살을 잔뜩 찌프리고 그 꼴을 지켜보던 성미급한 소서비가 줴쳤다.

《저 중놈 돌아오면 모가지를 썩둑 베여서 피가 나는 사람인지 피가 없는 부처인지 한번 시험해보겠소.》 하고 날치여서 진땀을 뺐던것이다.

사실 겐소를 제 진중으로 데리고온것은 그가 도요도미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인물이고 조선에 대하여 그만큼 아는자가 없으리라 믿었기때문이다. 나고야를 떠나 출병할 때 《장군은 내가 제공한 조선국 조정대신들의 당파싸움형편과 〈제승방략〉이라는 유명무실한 군사체계, 이 두가지만 가지고도 조선국 3천리를 손바닥 뒤집듯 하며 깔고앉는 첫째 공신이 되오리다.》하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또 여기까지 오는 동안은 사실이 거의 그렇게 되였다고 말할수도 있고 특히 가또와의 제비뽑기때도 덕을 봤던것이다. 그러니만큼 그런 꼬락서니를 보는 고니시의 눈에서는 불이 더 일었다.

그러던중 6월 열나흗날 새벽 동대원진지를 습격해왔던 조선군사들이 날이 밝아오자 다급히 왕성탄 여울목을 건너가는것을 보고 그날밤 고니시는 대군을 휘몰아 대동강을 건넜었다. 그러나 선뜻 성안으로 들어서지는 못했었다.

동대원에 쳐들어왔던 조선군사들의 그 의기와 용력을 생각하면 어데서 금방 벼락이 떨어질것만 같아 간이 콩알만 해졌던것이다.

이때 을밀대근방에 시허옇게 늘어서있는것이 조선군사가 아니라 군사로 가장한 헌 옷가지들이였다는것을 알고서야 마음이 놓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사대를 먼저 들여보낸 다음 조심조심 성안으로 기여들었던것이다.

고니시가 평양성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졸병들에게 강조한것이 세가지였다.

첫째로, 들어가자바람으로 남녀로소 가리지 말고 닥치는대로 조총으로 쏘아눕히고 칼로 베여 제끼라. 그리하여 우선 평양성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들어놓으라!

둘째로, 한되박의 식량도 성문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이것은 우리가 죽고사는 문제이다.

셋째로, 평양성안에 우물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 대동강물지게군들을 몽땅 붙잡으라!

그런 고니시가 성안에 들어서자 머리끝이 쭈삣해졌다. 뜻밖에도 성안이 텅 비여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다음에는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사창골과 륙로문 등지에 10만석의 곡식이 쌓여있었던것이다.

그 낟알더미를 보고서야 흥이 솟구쳐 껄껄 웃어대고난 그는 부하들에게 《강한자에게 약한자는 먹히우기마련이다. 그것을 평양백성놈들에게 보여주어라!》 하고 야수의 입김을 불어넣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왜적들은 마음놓고 이리떼의 본성을 드러냈다. 천수백년의 유구한 력사문화를 가진 평양성은 무지한 섬오랑캐들의 발길에 짓밟히고 미처 피난을 못간 백성들은 잔악한 참살과 략탈을 당했고 그 울부짖음과 아우성속에 평양성안은 피비린내나는 살륙장이 되였으며 고니시는 승리자의 흐뭇한 쾌감에 도취되였던것이다.

조선군이 미처 손을 쓰지 못한채 둬두고간 10만석의 군량미를 보며 흐뭇해하였다.

(저것이면 우리 군사들을 몇해동안은 먹일수 있으니 조선왕을 사로잡는것은 시간문제다.) 하고 꾸던 꿈은 지금도 부여잡고 놓을수 없는 꿈이다. 그때의 고니시는 제가 천하영걸인양 했지만 그는 굴러다니는 조그만 성돌우에 올라서서 뒤짐을 지고 평양성안을 둘러보며 잔기침을 하는 그런따위의 위인이였다. 그러나 그는 왜군의 수륙병진계획이 당장 이뤄져서 제 애비의 무역선이 조선의 서해바다로 돛을 추켜달고 둥둥 떠서 금방 대동강으로 들어오는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선왕에게 글을 보내였다.

―이제 일본수군 10만이 서해를 타고 올라올텐데 그때 조선왕이 갈 곳이 어덴고?― 하는 오만한 글까지 겐소를 시켜 써보낸 그였다. 그런데 한달도 채 못되여 지금의 꼴은 어떻게 되였는가?

우선 평양성안에 항복을 하는 백성이 한명도 없는것이였다. 이것은 인류전쟁력사에 없는 실로 희귀한 일이였다. 응당 자기는 강점한 나라 백성들의 머리우에 군림할 사람이라는 우월감에 도취되였던 고니시는 우선 그것으로 한방망이 되게 얻어맞은셈이 되였던것이다.

그다음 가슴이 철렁해진것은 성안에 소금과 간이 하나도 없는것이였다.

그래서 술맛이 쓴 승리의 축배를 들 때 고니시가 잔뜩 찌프린 상을 하자 소서비는 큰 왜검자루를 꽉 잡고 털부숭이 구레나룻을 쓸어올리며 이렇게 줴쳐댔던것이다.

《어델 감히 제놈들이… 이 소서비의 장검앞에서도 항복을 하는놈이 없는지, 소금이 안나오는지 내 한번 시험해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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