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4 회)
제 11 장
중화의병대 2 의병장군막안으로 죽동이들을 들고 아낙네들이 들어왔다. 좁쌀죽에 열무김치를 곁들여 의병들에게 나눠주던 녀인들이 따로 마련한 조밥 한그릇을 열무김치 한보시기와 함께 의병장앞에 내놓으며 말했다. 《의병장님, 대접을 이렇게 해서 안됐소이다.》 《허, 나를 별스럽게 생각들 마시우. 이건 나더러 의병장자리를 내놓구 가라는 소리입니다. 허허허.》하더니 림중량은 그 조밥그릇을 들고 군막을 나와 꽃골사람들이 든 풍막으로 갔다. 죽을 받아놓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났다. 림중량은 그들을 눌러앉혔다. 손로인앞에도 죽사발이 놓여있었다. 그러나 손로인은 숟갈을 들념을 않고 금방 소나기라도 쏟아질것 같은 바깥하늘만 바라보고있다가 밥그릇을 들고온 림중량을 보자 영문을 몰라했다. 림중량은 손로인앞에 조밥그릇을 놓더니 그의 손에 숟가락을 쥐여주며 말했다. 《자, 어서 드시우.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여 당하신 참변이니 마음을 크게 쓰셔야 합니다.》 어느새 황바위가 열무김치그릇을 가지고 들어왔다. 빼앗긴 아들, 며느리와 손자를 대신하여 그에게 한끼의 밥이라도 따뜻이 대접하고싶어서 밥그릇을 들고 찾아온
의병장을 처음에는 벙벙히 바라보던 손로인이 의병장이 들려준 숟가락을 든채 《허억―》 하고 어깨를 들먹이였다. 눈물은 내려가고 밥숟가락은 올라간다는 말이 있지만 손로인의 숟가락은 올라가지를 못했다. 《이러지 마시우. 내가 오히려 로인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나보외다. 자, 로인님. 의병장의 령으로 아시고 어서 수저를 드시오.》 《예, 예.》 로인은 몸가짐을 바로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숟갈을 들었다. 《자, 어서…》 《예, 의병장님 령이신데…》 숟갈로 밥은 떴으나 그것을 끝내 못넘기고 로인은 땅을 치며 다시 오열을 터뜨렸다. 흰수염으로 걷잡을수없이 눈물방울이 굴러내렸다. 손로인은 진정 의병장과 그들이 고마왔다. 평소에도 반상간(량반, 상놈간)의 차별이 별로 없던 림중량이 바로 이런 때 백성을 구할 재목이였구나 하는 믿음이 가슴뿌듯이 안겨와 온몸에 젊음이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의병장님, 내 제 살붙이의 원쑤만을 생각해서 이러는게 아니웨다. 그 왜놈들이 인간이 아닙데다. 그놈들을 더 살려두었단 우리 백성들이 다 죽소이다. 그래서 그놈들을 잡으려고 이렇게 나섰으니 늙었다고 버리지 말아주사이다.》 림중량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 받아안은 충격으로 하여 다복수염이 움씰거렸다. 《장하신 일이외다. 그러나 60이 넘은 고령의 로인에게까지 병쟁기를 들려 섬오랑캐앞에 내세운다면 우리가 무슨 의병이겠습니까. 그래서 한가지 로인장과 의논할 일이 있는데…》 하고 림중량은 의논조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온지…》 《로인님, 예로부터 백성에게는 먹을것이 제일 중하다고 해서 〈민은 이식위천〉이란 말까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막상 왜놈과 싸우자고 하니 군사를 쓰는데서도 〈이식위천〉이라는 말뜻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군사가 먹지 않고서야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그런데 왜놈들과의 싸움이 하루이틀에 끝날것 같지도 않은데다가 이 중화 서진벌만 놓고봐도 란리가 난 후에 논밭에 사람손이 못가서 말이 아닙니다. 그걸 보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그래서 로인님이 정 그러한 마음이라면 왜놈을 치는 심정으로 이 근처 농민들을 데리고 저 벌판을 다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송아지도 저 벌판에서 키워서 앞으로 논갈이를 시키며 말입니다. 우리가 왜놈을 몰아내자면 한편으로 이렇게 농사도 지어가며 싸우는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로인장 생각에는 어떠하신지…》 손로인은 벌떡 일어서며 격동된 목소리로 웨치듯 했다. 《우리 중화고을 백성들이 살았구나. 우리곁에 이런 명장이 계시니…》 그러면서 《내 지금까지 해오던 농사일인데 그거야 못하겠소이까. 논밭일은 념려마시오이다.》 하더니 풍막밖으로 나가 송아지를 끌고 《이랴, 낄낄》소리를 치며 성큼성큼 들판으로 나갔다. 먹장구름이 멀리 밀려간 서진벌 하늘아래에 주인을 만난 푸른 벌이 설레였다. 이것을 본 황바위의 가슴은 뜨거워지고 벌써 싸워이길 날이 환히 눈앞에 보이는듯싶었다. 이날밤 림중량은 윤봉, 김억겸, 윤린 등 의병발기자들과 오늘 성우에서 한 서설봉의 의견을 놓고 진지하게 상론했다. 그리고 황바위를 대정(소대장격)으로 하는 석전대를 새로 뭇기로 했다. 그리고 칠성이는 창검대원으로, 막동이는 의병장 순령수로 삼았다. 서설봉은 의병대에 온 첫날부터 유신검대장간옆의 간소한 천막에서 침식을 하며 병기창일을 도와주는 한편 의병장의 의병전술과 전법을 가르쳐주고 의병장은 크고작은 일을 그와 상론하고 그의 가르침을 성실히 받았다. 그의 로환을 생각해서 색다른 음식을 마련하면 우선 먹지부터 않고 걱정스러워 림중량이 상머리를 못떠나면 《대장은 대장이 서있어야 할 자리가 있는데 한갖 늙은 병사의 곁을 못떠나면 어떻게 하겠는가.》하며 엄히 이르기때문에 그의 강의한 기상앞에 림중량은 머리를 숙였다. 이밤 황바위는 서설봉과 서일이, 유신검이 앞에서 할머님과 아주머니를 북대봉으로 보낸 이야기며 꽃골에서 있은 이야기를 세세히 했다. 그러면서 제 겨레의 넋이 살아있는 나라는 망하는 법이 없다고 가르쳐준 서설봉의 말뜻을 꽃골사람들에게서 알게 된 이야기도 했다. 화약재료를 만들던 손을 멈춘 서설봉은 눈가에 잔주름을 지으며 《용타.》 칭찬을 하고 서일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놓지 못했다. 한편 군막안의 아낙네들은 도망친 군수대신 보란듯이 의병장의 전포를 지어 입히자고 했댔는데 서설봉이 전포를 벗어주었다는 말을 듣고 그대신 《중화의병대》의 기발과 《의》자를 새긴 큰 기발을 만들어 수실로 장식했다. 그리고 의병장이 들 북두칠성을 새긴 초요기며 령기들도 정성껏 수놓아 만들었다. 다음날 새벽 의병장은 꽃골에서 온 호영이를 비롯한 젊은이들과 날파람있는 젊은이 30여명으로 무은 석전대원들을 성 서쪽문밖에 내세우고 거기로 의병들과 성안의 백성들까지 다 모이게 하였다. 푸른빛중의적삼에 돌구럭을 건듯 메고 푸른 머리수건에 빨간 댕기 한끝을 비죽이 내보이며 대렬앞에 나선 석전대장 황바위를 보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거 뉘집 자손인지 과시 의병감이로다.》 《저 눈 좀 보우. 불덩어리가 이글거리는것 같구려. 저 숱진 눈섭은 꼭 범의 거웃같잖소.》 《돌팔매질을 잘한다우.》 《돌팔매질? 왜놈들은 총을 가지고 덤비는데 아무려문 그 돌멩이가 총알을 당해내겠나.》 《아니네. 듣자니 의병장님이 키운 사람이라는데 아마 오늘 그 솜씨를 보여줄거네.》 호영이 어머니가 황바위를 감싸듯 한마디 했다. 《잘들 보기나 하시우.》 이윽고 림중량이 석전대앞에 나서서 황바위를 소개했다. 《이 황대정은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심산속에서 나서자란 사람인데 나라에 국난이 닥쳐오자 이렇게 북대봉 차돌멩이를 까서 담은 구럭을 메고 달려왔습니다. 그 돌멩이는 자기 할아버지를 죽이고 자기 아버지의 다리힘줄이 끊기우게 한 왜놈에 대한 원한으로 굳어진 돌멩이입니다. 열세살때부터 날마다 수백번씩 여섯해동안을 손에 익힌 돌멩이올시다.》 《원, 저런!》 《거 세상에 드문 일이군.》 《그러니 그 돌멩이가 총알만 못할게 뭐겠소.》 사람들은 희한해하며 그를 지켜보았다. 림중량은 말을 이었다. 《사실 나라가 이 총각과 그 아버지에게 준것이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산골짝에 밀어던지였던 그의 아버지는 이 아들을 키워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 변심이 없으라고, 푸르청청한 북대봉나무껍질을 벗겨 푸른 물을 들여서 이 아들의 옷을 지어입혀보냈습니다. 이것을 어찌 한벌의 옷이라고만 하겠습니까.》 《옳은 말씀이올시다. 그것은 왜놈들의 총알도 뚫지 못할 푸른 갑옷이올시다.》 손로인의 이 말에 《옳습니다.》, 《옳습니다.》 하고 호응을 하는 사람들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의병장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더 이었다. 《우리는 왜놈칠 철석같은 맹세를 다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마음 하나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아무리 뜻이 커도 싸움마당에서 병쟁기가 손에 설면 장수로도 군사로도 쓸모가 없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이게 한것은 비록 한덩어리의 돌멩이이지만 사람의 앙심이 굳어지면 강쇠도 뚫는다는 리치를 우리모두 함께 다시 깨닫자는 뜻에서입니다. 이제 우리 함께 새로 무은 석전대 황대정의 돌팔매솜씨를 한번 봅시다.》 그러고나서 의병장은 황바위를 부르더니 신중히 말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네 돌팔매질솜씨를 한번 보여주어라. 그것이 왜놈 천백놈 잡는것 못지 않게 중한 일이라는것을 명심하여라.》 이때 머리우로 한무리의 참새떼가 날아갔다. 의병장이 령을 주었다. 《석전대정, 저놈 두마리를 골통을 깨서 떨궈라!》 《예.》 대답과 함께 황바위의 두손이 우로 번뜩이더니 두개의 조그만 덩어리가 사람들앞에 떨어져 파드득거렸다. 참새 두마리의 골통이 다 깨여져있었다. 《야―》 환성이 터졌다. 《귀신도 못따를 솜씨다.》 림중량은 이번에는 키높은 오동나무잎을 가리키며 령을 주었다. 《저 오동잎 열개를 상하지 않게 밑둥을 잘라 떨궈보아라.》 그 말과 함께 오동나무주위를 돌며 들이친 돌멩이에 밑둥이 잘리운 열개의 오동잎들이 맴돌며 떨어졌다. 그 오동잎을 주어든 사람들의 감탄의 목소리가 더 크게 터졌다. 《룡천검도 쓸줄 알아야 칼이라는데 돌멩이도 이렇게 잘 쓰니 서툰 룡천검보다 백곱절이나 낫소!》 《그 돌멩이구럭 왜놈의 조총 100자루와 바꾸재도 안바꾸겠소.》 의병들과 백성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이번에는 림중량의 지시로 황바위가 표창 한두름을 꺼내들었다. 《저건 또 뭔구?》 《쇠돌멩이로구만.》 《끝에 창날이 달렸소.》 《저게 뼘창이라는거요.》 고서방이 그걸 알아보았다. 사람들의 눈이 또 황바위에게 쏠렸다. 이윽고 성벽에 기대여 세워놓은 널판자로 황바위의 표창이 날아가기 시작하더니 눈깜짝할사이에 열두개표창이 널판자우에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그려놓으며 꽂혔다. 다시 서진성이 들썩하게 환성이 터졌다. 《이제 저 장수의 손에 왜놈들이 무리죽음을 당하게 됐소.》 사람들의 놀라와하는 얼굴을 보는 칠성이는 제일처럼 기뻤다. 그러면서 그때 북대봉에서 부사놈의 떡시루를 깨고 흥분해하던 황바위가 6년세월 앙심을 품고 날마다 돌팔매질을 했다고 말해주어서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사람들은 황바위곁에 모여들어 그의 손도 잡아보고 돌멩이구럭도 표창도 만져보고 푸른 갑옷도 쓸어보았다. 《의병장님, 우리에게도 〈뼘창대〉를 만들어주십시오. 만들기 쉽고 던지기 쉬운 이 뼘창이 왜놈조총만 못할게 없겠소이다.》 석전대원들의 요청에 림중량은 빙그레 웃으며 황바위를 바라보았다. 황바위가 석전대원들에게 한마디 했다. 《앞으로 쇠붙이가 많이 생기면 이걸 많이 만들어씁시다. 지금 서설봉선생께서도 저 대장간에서 이걸 만드는 일을 도웁고계십니다.》 《아니, 그 년세에 어쩌문…》 사람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림중량은 황바위에게 무엇인가 귀띔을 했다. 그러자 황바위는 허리춤에서 끈이 달린 조그마한 돌멩이 하나를 꺼내더니 그것으로 버드나무가지를 올리쳤다. 순간 돌멩이가 칭칭 감긴 나무가지가 우지끈 부러져내렸다. 《야!》 또 환성이 터졌다. 림중량은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이것도 황대정이 북대봉산속에서 짐승을 잡을 때 어려서부터 손에 익힌거외다. 어떻습니까. 저런것을 많이 만들어 성벽으로 올라서는 왜놈조총수 모가지를 옭아매여 거꾸러뜨리면?》 《좋습니다.》 《그럼 이것도 우리 손으로 많이 만듭시다. 이것을 〈편승〉이라고 부릅니다.》 《편승?》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새 신심과 기쁨의 빛이 넘쳤다. 오늘 림중량이 황바위의 재간을 사람들에게 보인데는 그에게 깊은 생각이 있어서였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마음을 다잡고 덤벼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들을 안겨주자는것이였으며 그것으로 하여 조총에 대한 공포감에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자는것이였다. 그런데 사람들속에서 《그 끈에 이 근방에는 없는 차돌멩이를 달지 말고 진흙을 단단히 구워서 달면 만들기도 쉽고 얼마든지 많이 만들것 같습니다.》하는 의견까지 나와서 림중량은 기쁜 얼굴로 《보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생각을 짜내니 왜놈잡을 병쟁기까지 생기지 않습니까.》 하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사기는 충천했다. 림중량은 서일의 검술도 보여주었다. 신입의병 다섯사람의 검을 한자루의 칼등으로 가볍게 막으며 적수를 피동에 몰아넣는 서일의 검술에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며 경탄했다. 림중량이 칠성이의 긴 쇠장대와 서일의 짧은 칼을 맞세웠을 때 칠성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저희들은 벌써 맞서봤댔소이다.》 《아니,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소이다.》 서일이도 미소를 짓고 한마디 하자 그들사이에 그동안 무슨 사연이 있었다는것을 짐작한 의병장은 《음, 그랬댔구만. 하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때 사람들속에서 칠성이를 보고 《아니, 저 허우대 큰치 고을의 빈 창고를 지키던치 아냐? 그 큰 덩치값도 못하구.…》하고 누군가가 새된 소리를 쳤다. 《옳군.》 사람들의 눈길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 소리에 칠성이는 움칠했다. 덩치 큰 그의 얼굴이 홍당무빛이 되였다. 그러자 호영이 어머니가 말해주었다. 《여보게들, 저 사람도 왜놈에게 피맺힌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네. 어려서부터 의기도 있구.… 저 사람이 바로 비류강에서 성천부사 화전놀이배를 뒤집어엎은 사람일세.》 《아니, 그럼 비류강장수란 사람이 바로 저 사람이란 말이우?》 《그렇다네.》 사람들은 놀란 얼굴들을 했다. 그들속에서 《우리 의병대에 저런 장수들까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하는 목소리들이 섞여져나왔다. 신욱이가 활군들의 솜씨도 보여주자고 했다. 그러나 림중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좀더 익숙시켜가지구…》 림중량은 오늘 모임의 매듭을 지었다.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런것들을 보여드린것은 우리 조선백성들의 힘과 지혜가 무궁무진하다는것을 깊이 믿자는것이였습니다. 부탁할것은 자기들이 던지는 돌멩이 하나도 그것을 돌멩이로만 생각치 말자는것입니다. 그것을 한번 헛방치면 수많은 우리 부모형제들이 왜놈에게 목숨을 빼앗긴다는것을 알고 칼질도 창질도 면바로 합시다. 그리고 여러분이 메고온 도끼, 쇠스랑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소이다, 의병장님!》 《특히는 원쑤의 총이나 칼에 겁을 먹으면 그것은 벌써 진 싸움이라는것을 다시 명심합시다. 그런데 지금은 저 황바위처럼 오랜 시간을 두고 돌팔매질이나 칼, 활솜씨를 익힐수는 없습니다. 하루를 10년맞잡이로 생각하고 훈련에서도 헛방들을 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예, 알겠소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하고싶은것은 아직은 우리에게 표창이 있다는것을 절대로 왜적에게 내비치지 맙시다. 그저 돌멩이나 있는것으로 그놈들이 알게… 내 말뜻을 알겠습니까?》 《알겠소이다.》 하나같은 목소리가 울려터졌다. 그의 말을 놓칠세라 귀담아듣고있는 트레머리, 수건머리, 외자상투, 고추상투들의 얼굴마다에 새로운 속다짐과 긴장한 빛들이 넘쳐흘렀다. 의병장의 부탁을 명심한 의병들의 훈련은 더 치렬했다. 새벽훈련을 끝내고 황바위가 땀을 들일 때 서일에게서 검법을 배우던 칠성이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서일형의 칼 막아내기가 힘들지요?》 《음, 나는 그저 쇠몽둥이만 휘두르다나니… 그런데 우리 쌍가마가 무사히 북대봉으로 들어갔을가? 그게 마음에 걸려서… 쇠장대에서 가끔 맥이 빠지군 하네.…》 그 말에 황바위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도사려먹고 웃으며 말했다. 《원 형님두, 별걱정 다하시우. 자기 누이동생을 그렇게도 못믿으시우, 하하하.》 …바로 이 시각 북대봉으로 들어가는 쌍가마는 억남이를 업고서 벼랑을 톺아넘고 가시덤불을 헤치고있었다. 얼기설기 끌어맨 신총밖으로 피진 발가락이 삐여져나왔는데도 황바위가 준 미투리는 허리춤에 단단히도 매달려있었다. 아기는 잔등에서 잠이 들었는지 기진맥진했는지 잠잠하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는 쌍가마의 쌍까풀진 눈에 근심이 어렸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따웅― 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와뜰 놀란 쌍가마는 사방을 둘러보다가 옆에 있는 자그마한 바위굴로 급히 들어갔다. 아기를 눕혀놓고 급히 식칼로 가시나무를 찍어 굴문을 막으며 아기에게 속삭였다. 《억남아, 울지 말아. 울면 호랑이가 온다.》 그런데 아기가 《으앙.》 하고 울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쌍가마는 식칼을 들고 문어구를 지키며 몸을 도사렸다. 호랑이가 굴속으로 들어올 때는 뒤로부터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던 그는 금방 들이밀듯한 범의 꼬리를 생각하며 칼자루에 힘을 주었다. 옷은 가시에 찢겨 살이 드러나고 손과 발에서는 피가 흘렀다. 칼자루에도 피가 질벅했다. 그는 사생결단으로 칼자루를 거꾸로 틀어잡고 아기에게 다시한번 애원을 하듯 했다. 《억남아, 울지 말아. 너는 의병의 아들이 아니냐. 의병의 아들은 울지 않는 법이란다.》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가까와졌다. 쌍가마의 두눈에 불이 일었다. 그는 칼날을 고누어세우며 웨쳤다. 《이놈의 호랑이야, 이 북대봉주인이 왜놈치러 나간줄도 모르느냐?》 그의 눈앞에 꽃골사람들을 이끌고 떠나던 황바위의 름름한 모습이 떠올랐다. 새힘이 생겼다. 쌍가마는 범에게 소리를 치며 동굴벽을 쾅쾅 두드렸다. 그의 두눈에 불이 일었다. 왜놈들이 저주로왔다. 그는 다시 웨쳤다. 《이 왜놈의 종자들아! 네놈들이 우리를 이 호랑이앞 굴속에까지 밀어넣었지만 우리는 안죽는다!》 그는 황바위도 오빠도 이 북대봉산악이 되여 자기옆에 든든히 서서 지켜주는듯싶었다. 언제부터인지 굴밖에서는 사나운 비바람소리와 함께 콸콸 흐르는 골짝물소리가 들렸다. 어느 사이엔지 범의 포효성이 멎고 아기의 울음소리도 멎었다. 태고연한 이 심산동굴속에서 쌍가마는 갑자기 오빠 그리운 생각, 황바위 그리운 생각이 치밀어올라 굴벽에 뺨을 비벼대며 속삭이듯 애원을 했다. 《부디 잘들 싸워주세요.》 이윽고 훤히 굴속이 밝았다. 으스러지게 거머잡았던 식칼자루에 손가락이 굳어붙어서 잘 펴지지 않았다. 다시 애기를 업고 나선 쌍가마는 빨간 산딸기를 따서 아기입에 물려주다가 바위짬에 핀 청초한 백도라지꽃에 눈길이 갔다. 문득 맹산땅 바위틈에 피였던 백도라지꽃에 눈물을 떨구며 부르던 노래생각이 났다. 심심산골 바위짬의 백도라지야 너는너는 누구의 몽상을 입어 하얀하얀 꽃댕기를 드리웠느냐 나는야 모진 세상 심산속에서 산 어머니 산 오빠 죽은 총각의 몽상을 입고 우는 접동새란다 그다음 순간 쌍가마는 자기도모르게 머리를 가로저으며 (아니야, 나는 울기만 하는 접동새가 될수 없어.) 하면서 북대봉속으로 발길을 다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