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1 회)
제 10 장
《북대봉 황총각이 불씨들을 안고갔다오》
4 《여러분네들!》 황바위는 돌구럭을 추슬러올리며 챙챙한 목소리로 마을사람들을 불렀다. 그의 말은 첫마디부터 사람들의 심장을 거머잡았다. 《우리모두 왜놈을 치러 나섭시다. 그놈들을 살려놔두면 온 나라가 꽃골처럼 되고맙니다.》 《옳은 말일세.》 《어떻거면 좋을지 말 좀 해주게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황바위에게로 조여들었다. 《의병대장 림선다님께서는 제 겨레의 넋이 살아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는 법이 없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왜놈이 쳐들어오자 림선다님은
부모상중인데도 의병대를 일으켰고 화엄산 서설봉선생님도 늙으신 몸으로 전장에 나오시였습니다.》 《아, 참 장한 일이로다. 본받아야 할 일이로다.》 손로인의 감탄의 목소리 높고 사람들은 격동에 휩싸였다. 칠성이가 불쑥 앞으로 나서서 황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람이 바로 북대봉에서 어려서부터 호랑이를 세마리씩이나 몰고다닌 그 북대봉장수요.》 《어쩐지 사람이 다르다 했더니…》 사람들은 황바위를 새로운 눈으로 보며 감탄했다. 손로인은 여럿을 둘러보며 목청높이 말했다. 《여보게들, 저 총각은 돌멩이를 손에 익혀 좋은 병쟁기가 되게했네. 우리도 손에 익은 괭이랑 쇠스랑, 도끼 같은것을 들고 저 젊은이를
따라서 의병대에 나가자구.》 《옳쉐다. 그 엄생원처럼 다 도망만 친다면 나라는 누가 지키겠소.》 그들의 앞장에는 왜놈을 도끼로 까고 죽은 호섭이의 동생 호영이 서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황바위의 가슴을 쿵쿵 울려주었다. 그는 화엄산에서 서설봉의 화약, 뼘창들을 만들던 생각이 나서 말했다. 《부엌바닥흙도 파고 뒤간흙도 다 파가지고 갑시다. 그리고 헌 쇠붙이도 모두 가지구가구요. 그것으로 화약이랑 만들고 창이나 칼도 만듭시다.》 《그러자구. 부모죽인 원쑤 치지 않는건 불효자식이고 나라원쑤 치지 않는건 백성이 아니라고 하잖나. 이런 때 이불쓰고 제집에 처박혀있는건 모두 역적이야.》 호영이 어머니의 말에 모두들 기세가 더 올랐다. 《옳수다. 군사가 따로 있나. 싸우면 군사지.》 《부엌흙까지 왜놈칠 화약이 될줄은 몰랐구만.》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황바위도 칠성이랑 쌍가마와 함께 부엌흙을 긁어모았다. 칠성이가 황바위를 보며 말했다. 《내가 의병으로 나가면 저애가 저 어린것을 데리고 어떻게 살겠는지.…》 우는 억남이에게 꽈리를 입에 물려주며 달래던 쌍가마가 야무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 란리판에 사내들이 그런 걱정이나 하구있으면 어떻게 해요.》 그 소리를 듣는 황바위는 오히려 기뻤다. 얼마나 다기찬 소리인가. 《참 형님, 쌍가마를 북대봉으로 들여보냅시다. 거기엔 우리 아버지랑 서설봉선생님 사모님이랑 서일형님 색시도 있는데.…》 《그것 참 좋은 생각일세. 그런데 쌍가마가 저 어린것을 데리구 가내기나 할가?》 오빠의 말에 쌍가마는 《아, 나는 왜 사내로 태여나지 못했을가.》 하고 혼자말처럼 하더니 억남이를 추슬러업고 방으로 씽 들어갔다. 그가 벗어놓은 날끊어진 초신옆에 황바위는 차고온 미투리를 가지런히 놓아주었다. 이윽고 방에서 나온 쌍가마가 제머리엔 어머니의 몽상인 흰댕기를 달고 제가 달던 빨간 댕기를 오빠에게 주며 《이것을 황바위오빠에게 주세요.》라고 하였다. 황바위는 전날에 댕기생각이 겹쳐지며 죄 지은것만 같아 얼굴이 확 붉어졌다. 짓밟히던 댕기, 불타던 댕기가 눈앞에 어려왔다. 이때 쌍가마에게서 억남이를 받아 젖을 먹여주던 마을아주머니가 한마디 했다. 《쌍가마걱정일랑 말라구. 북대봉이 아니라 호랑이굴로도 뚫고들어갈 처녈세.》 이윽고 출발준비를 갖춘 10여명의 사람들이 다 모였다. 손로인이 밥가마와 숟가락까지 짊어지고 애송아지까지 끌고왔다. 효성스럽던 아들며느리덕에 윤두소로 평생 처음 길러보던 송아지였다. 《여보게 황총각, 내 이제 누굴 위해 이 가마에 밥을 짓겠나. 이 밥가마로 나도 칼이나 하나 벼려 가지겠네. 이 송아지는 의병대에 바치구. 내 왜놈을 때려눕히고 이 꽃골로 돌아와서 자식손자옆에 눕겠네.》 황바위는 《할아버지!》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는데 이번에는 호영이 어머니가 집에 있는 된장, 간장, 낟알, 고추가루단지까지 이고오더니 아들옆에 서며 《호영아, 이 에미랑 함께 가자. 내 이 고추가루를 그놈들의 눈깔에 퍼부을테니 너는 그놈들의 목덜미를 잘라라.》라고 했다. 마을에 남는 사람, 마을을 뜨는 사람모두가 복수일념에 불탔다. 이윽고 대렬은 남은 사람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마을을 떠났다. 대렬이 마을을 벗어날 때 《오빠야!》하는 쌍가마의 참고참던 절절한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뒤쫓아왔다. 황바위는 그 소리를 부디 잘 싸우라고 자기에게 힘껏 소리쳐주는 목소리로 들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도끼, 쇠스랑, 자루가 긴 낫들을 해빛에 번쩍이며 대렬은 마을을 벗어나 앞으로 나갔다. 이들은 벌써 한나절전의 꽃골사람들이 아니였다. 답답하고 어둡던 마음들에 불이 달리고 분노가 부글부글 끓는 사람들이였다. 황바위는 이 뭉쳐지는 힘, 타오르는 불길에서 백성들의 힘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알았다. 그리고 이제 자기는 혼자서 돌구럭을 메고 나선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넓어지는듯 했다. 꽃골사람들이 중화거리 못미처 북쪽 산골길에 접어들었을 때 흐린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묵묵히 걸음을 다그쳤다. 성천고을로 간다면서 따라나섰던 위서방이 황바위옆으로 오더니 사죄를 하듯 말했다. 《황총각, 참 장하이. 아까 내가 자네 돌팔매질을 하찮게 말한걸 용서하라구.》 《아저씨두 별걸 다… 그보담 아저씨, 이 사람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좀 해주십시오.》하고 황바위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말에 위서방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내 이번에 윤초시님을 찾으러 남해끝까지 갔다가 보고들은 이야기를 좀 하라우?》 그러자 사람들이 저마다 호기심어린 눈길들을 그에게로 돌렸다. 《난 원래 서울서 윤초시님의 말구종노릇을 하던 사람이올시다. 그런데 왜란이 나기 한달전에 초시님은 부산땅 왜놈들과의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서 다른 견마잡이군 한사람을 데리구 부산으로 떠나구 나는 돌아와서 성천고을로 피난간 그의 어머니네 집일을 보아주고있었지요. 그러던중에 란리가 나서 서울 궁중에까지 왜적이 기여들었다는 소문을 들은 윤초시의 어머님은 가슴을 치며 날보구 자꾸 아들소식을 알아다달라구 조르는게 아니겠소. 그렇지만 왜놈들이 쳐들어올 때 첫발을 디딘 부산땅으로 들어간다는게 그리 쉬운 일인가요.》 《그렇구말구요.》 《그렇지만 주인집 일을 모른체 할수가 없어서 지난 5월보름께 미투리 한죽을 메고 집을 떠났댔쇠다.》 《거 쉽지 않은 길을 떠났댔수다레.》 《그래서 아슬아슬한 고비도 수없이 겪으며 초시님을 찾아봤지만 어디 만날수가 있어야지요. 부산성은 이미 왜놈들이 타고 앉았고… 그렇지만 싸움소식이랑은 많이 듣고 왔수다.》 《그래 백성들이 우리처럼 모두 참변을 당했던가?》 손로인이 다그쳐물었다. 그 말에 위서방은 머리를 저으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외다. 내 이번에 우리 조선백성이 어떤 백성들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았소이다. 우선 왜군 20만이 들이닥쳤을 때 일만 놓구봐두…》 사람들은 그를 따라 걸으면서 귀를 강구었다. 《그놈들이 부산성을 옹근 하루낮, 하루밤을 몇십겹으로 에워싸고 총탄을 퍼붓는 속에서도 부산진첨사 정발장군은 성안의 군사들, 백성들과 한마음이 되여 싸웠는데 정발장군은 그런중에서도 률객(음악연주가)을 시켜 성우에서 퉁소까지 불게 해서 군사와 백성들의 사기를 돋구고 왜놈들을 질겁하게 했답니다. 기여드는 놈들을 쳐눕힐 때는 검은 전포를 입고 놈들의 모가지를 삼대처럼 베여눕혀서 왜놈들은 장군을 〈흑의장군〉이라고 부르며 떨었답데다. 성이 무너져 마지막순간이 닥쳐왔을 때도 〈나는 의리에 죽을뿐이다.〉하며 눈을 부릅떠서 왜놈들이 선뜻 덤벼들지 못하고 성안백성들도 끝까지 싸워 모두 전사를 했는데 심지어 나어린 관비까지도 수개처럼 달려드는 왜놈들앞에서 칼을 빼들고 우리 조선녀인들은 차라리 죽을지언정 오랑캐들의 노리개로는 되지 않는다고 웨치면서 그 칼로 자결을 했다니 이 얼마나 장한 일이웨까.》 그 말을 들으며 황바위는 거기에서 장렬하게 전사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입술을 피나게 깨물던 서일의 새색시가 화관과 원삼을 벗고 아버지몽상을 입던 생각을 했다. 위서방은 부산옆에 있는 동래성싸움이야기도 했다. 군기와 령기를 성첩우에 높이 꽂고 각 성문을 돌면서 부사 송상현이 군사와 성안백성들에게 《사람의 값이란 죽을자리를 옳게 고르고 크게 죽는것이다. 인간의 사랑중에서 가장 큰 사랑은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것이다.》라고 하며 그들의 충의지심을 불러일으킨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왜놈들이 그에게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주면 살려주겠다고 말했을 때는 《내 죽으면 죽었지 이웃나라에 쳐들어가려는 네놈들에게 나라길을 내주랴.》하고 추상같은 호령을 했는데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놈들은 모두 쥐새끼처럼 도망을 쳤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싸움때는 조복을 갖춰입고 적앞에서 떳떳이 장렬한 최후를 마쳤는데 의롭고 강한 장수밑에 약한 군사와 백성이 없다는 리치대로 성안의 모든 사람들도 끝까지 왜놈과 싸우다가 모두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록 두 성이 덤벼든 왜놈의 손에 들어는 갔지만 왜놈들은 우리 땅에 첫발을 들여놓자마자 총알도 뚫지 못하는 우리 백성들의 그 불굴의 얼앞에서 넋을 잃었지요.》하고 말했다. 《장할시고!》 손로인의 감탄의 목소리가 대렬속에서 크게 울려나왔다. 《특히 리순신장군이 남해바다가에서 왜놈들과 그놈들의 싸움배를 무데기로 바다속에 처박고 불살라서 첫 싸움부터 우리 수군이 련전련승한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너무 기뻐서 울기까지 했쉐다. 왜놈과 대비도 안되는 적은 싸움배와 군사를 가지고 우리의 천하명장이 싸워이겼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당신도 옥포, 당포, 당함포 싸움얘기야 들었겠지.〉하며 포자를 련달아 외워대는데 알고보니 그곳들이 리순신장군의 수군이 5월 초순부터 6월초사이에 왜놈들을 무데기로 물귀신을 만든 곳들입데다. 우리 수군을 깔보고 덤벼들었던 왜적들이 처음부터 리순신장군의 된 방망이에 연거퍼 골통이 깨져서 지금 왜적들은 남해바다 으슥한 곳들에 머리를 처박은채 숨도 크게 못쉬고있다고 합데다. 참 통쾌한 일이 아니웨까.》 위서방은 사기가 나서 그곳 백성들이 하던대로 학의 진 활짝 펴고 우리 수군 나갈적에 기발든 우리 장군 풍채 좋고 전복 좋다 앞장선 거북선은 적진중을 좌충우돌 이놈 치고 저놈 칠제 왜놈의 배 쪼각이 나 남해바다 덮는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고 어깨를 들썩이며 리순신장군이 왜적을 치던 이야기를 했다. 《거 멋있다. 와하하.》 《으하하.》 《그래서 도요도미는 그 소식을 듣고 뒤로 벌렁 넘어지며 눈이 뒤집혔다던지.》 《와하하…》 《그뿐이 아니웨다. 륙지에서도 왜놈이 지나온 곳들에서 조선의병이 안일어난데가 없습니다. 경상도 의령땅의 곽재우장군, 전라도의 고경명을 비롯해서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에서도 의병들이 왜놈에게 무리죽음을 안기고 여기 평양성둘레에만도 중화의병대와 상원의병대를 비롯해서 평양8장사의병대 등 수많은 의병대들이 평양성의 왜놈들을 빙 둘러싸고있답니다. 심지어 묘향산의 일흔세살난 서산대사님까지 아수라(불교에서 말하는 싸움귀신)에게 우리 백성 다 죽으면 부처님의 련화대(부처를 모시는 련꽃장식대)는 누구를 위하여 있어야 하며 목탁은 누구를 위해 치겠느냐고 하면서 승병을
거느리고 나섰답니다.》 《아, 우리 백성 장할시고.》 손로인이 감탄 절반으로 웨쳤다. 왜놈에게 무참히 죽음만 당하는줄 알았던 우리 백성들이 모두 이렇게 용감하고 의롭게 떨쳐나섰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부쩍 새힘이 솟았다. 《우리도 한번 본때를 보이자구요.》 《사타구니에 두알을 찬 사내치고 우리 조선백성 의기남아 아닌 사람 있소.》 《그런데 위서방은 어쩌면 그렇게 보고들은 말을 리치에 맞게 잘하우?》 누군가 감탄을 하며 묻자 《다른게 있소이까. 오랑캐가 내 땅에 기여들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자연히 귀도 눈도 밝아지더군요.》하고 위서방은 대꾸했다. 《옳은 말일세. 그런데 돌아올 때도 고생 많이 했겠구만.》 《아니웨다. 저는 서해바다의 우리 배를 타고 황해도까지 온걸요.》 《뭐라구?》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아까도 제 말씀했지만 우리 수군과 의병덕분에 우리 나라 서남쪽에는 왜놈들이 얼씬을 못하고 우리 배가 북쪽으로 군량을 실어나르고있소이다.》 《거 참 놀라운 일이군. 자네 말을 들으니 싸움은 벌써 우리가 이긴 싸움일세.》 송아지도 그 무슨 말귀라도 받아듣는듯 《음메》하고 영각을 쳤다. 위서방은 황바위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난 여기서 성천고을로 떠나야겠네. 가서 이곳 형편을 알려줘야겠네. 초시님이 그곳에 돌아와있는지도 모르겠구. 그 집 일도 참혹하게 됐는데…》 떠나는 위서방의 손을 잡으며 황바위는 말했다. 《아저씨같이 문견이 넓고 우리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는분이 의병대에 꼭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성천고을에서부터 큰것을 아저씨에게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말을 듣고보니 우리 눈앞이 환해지는것 같은데요. 막 힘이 생깁니다.》 호영이도 한마디 하는데 《가셨다가 우리 의병대로 꼭 오십시오.》하고 황바위가 한마디 더하자 《내 이런 때 어딜 가겠나. 꼭 오겠네.》 이렇게 말하고 성천길로 들어서서 가는 위서방의 외자상투는 크기도 했다. (저런 사람들이야말로 불씨로구나. 세상에 의지가지 없는 처지에 목숨걸고 란리판을 뚫고다니면서 나라걱정을 하며 눈과 귀를 밝히는 사람이 백성의 불씨가 아닌가.) 생각이 깊어진 황바위의 눈길을 받으며 위돌이는 날개가 돋친듯 한 걸음새로 산모퉁이를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