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10 장

북대봉 황총각이 불씨들을 안고갔다오

3

 

《쌍가마야, 우리 어머니를 정성껏 묻어드리자. 이젠 이것이 우리들의 마지막효성이구나.》

그들은 양지바른 뒤산기슭에 무덤자리를 팠다. 황바위는 어머니고향 양덕의 살구꽃이 생각나서 우거진 살구나무숲옆에 깊숙이 광중을 팠다. 칠성이는 묵묵히 눈물로 얼룩이 지는 땅을 팠다. 그들 남매는 자기들을 키우느라 소금이 돋던 어머니잔등을 두손으로 받들어 땅속에 눕혔다. 한뉘 장수힘을 가지고도 고역살이만 하는 아들생각에 너무나도 가벼워진 어머니를 들어안은 칠성이는 그 큰 몸뚱이를 비틀거렸다. 그들은 세 시체를 땅속에 나란히 눕혀주었다. 아기는 엄마잔등에 코를 박고 떨어지지 않겠다고 억척같이 울어댔다. 억쇠를 엄마옆에 눕혀주며 황바위는 그가 왜놈을 치려고 그러쥐고있던 돌멩이를 더 꼭 그 손아귀에 쥐여주었다.

그들은 묵묵히 봉분을 쌓아올리고 다독이였다.

이때 어머니또래의 귀밑머리 흰 녀인이 헐떡이며 달려오더니 《아니, 성님! 이렇게 가려우?》하고 봉분을 두드리며 울음을 터쳤다.

《우리 큰아이 호섭이는 도끼로 왜놈 한놈 까눕히고 그놈들의 칼에 맞아죽었소. 난 이 원쑤를 갚고야 죽지 성님처럼 이렇게는 못죽겠소.…》

그러더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 왜놈을 둬두고 벼락은 어데서 낮잠을 자고있느냐?》하며 봉분을 다시 두드렸다. 어머니와 친형제처럼 지내던 녀인이였다.

《호섭이 어머니,…》

칠성이가 자기 어머니 품에라도 안기듯 큰 덩치를 자그만 그의 품에 맡긴채 어깨를 들먹이였다. 녀인은 량팔로 칠성이와 쌍가마를 껴안아주며 《산 사람들은 다 이렇게들 만나는데…》하며 다시 흐느꼈다.

어머니생각이 북받쳐올라 칠성이는 어머니손처럼 험하게 터지고 못이 박힌 그의 손을 쓸고쓰는데 호섭이 어머니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말했다.

《살아있어도 못보는 자네 이야기를 그렇게도 안타까이 하더니… 맹산땅에서 살다가 돌아온 날 자네 어머니는 눈을 감아도 이 꽃골이 삼삼해서 돌아왔노라고 했는데 글쎄 그 왜놈의 총에 이렇게 맞아죽을줄이야.…》

맹산땅이란 말에 이글거리는 눈을 디룩거리는 황바위를 본 호섭이 어머니는 물었다.

《혹시 총각이 북대봉 황총각이 아닌가?》

《예, 제가…》

《옳거니, 저렇게 영특하게 생긴 총각이길래 쌍가마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그렇게도 못잊어했댔구만.…》

하더니 어머니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며 황바위를 눈여겨봤다.

《거 전에 쌍가마네 소식을 알자구 몇번 여기에 왔던 일이 있지않나?》

《예.…》

그 말에 쌍가마도 칠성이도 목젖이 뜨거워났다.

(아, 우리때문에…)

황바위를 바라보는 쌍가마의 두눈에 고마운 눈물이 가랑거렸다.

《그런데 세상에 없다던 총각이 어떻게 여기에 오늘 나타났수.》

어머니는 의아해하는 눈길로 황바위를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을 안 황바위는 허거푼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호섭이 어머니도 이 칠성형님이 나를 비류강물속에 처박은줄로만 아셨던 모양이구만요. 죽이긴 고사하고 이 형님은 우리의 은인이외다.》

《뭐, 뭐라구?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그런걸 그 대쪽같은 성미인 어머니는 아들때문에 실성까지…》

호섭이 어머니는 눈물을 닦고 젖어든 목소리로 말했다.

《잊지들 말라구. 꾀꼴새도 제 새끼 빼앗기면 창자가 열두토막나서 죽는다는데…》

《어머니!》

칠성이가 목메여 어머니를 다시 불렀다. 뒤산에서 국국새가 그를 대신하여 울어주듯 구슬프게도 국국거렸다.

《그런데 왜 억쇠 아버지가 보이질 않나요?》

황바위는 보이지 않는 한서방이 걱정스러워 물었다.

《의병으로 나갔네.》

《예?》

《란리가 나자 성천고을에서 의병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로 떠났다네.… 백성구실 할줄 아는 사람이지.…》

그는 말을 그쳤다가 다시 이었다.

《떠나가면서 한서방은 자기 안해에게 북대봉 초불봉밑에 있었다던 자네네가 살던 곳을 찾아 피난을 가라고까지 했지. 그러면서 만약시 황총각이 살아있다면 틀림없이 의병으로 나올것이니 자기와도 만나게 될거라구.… 살아만 있다면 한몫 단단히 할 장수감이라구…》

황바위는 어깨가 무거워났다. 서글서글하고 대바르던 한서방의 얼굴이 눈앞에 선했다.

어머니무덤을 다독이고있던 쌍가마가 푸른 중의적삼에 가뜬한 미투리감발차림을 한 황바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늘씬한 키에 어릴적보다도 더 이글이글 불구슬이 구는 두눈, 그때 자기가 댕기를 드리워준 그 머리에 푸른 수건을 질끈 동인 황바위였다.

(그때 열세살이였으니까 이젠 열아홉살…)

쌍가마의 가슴은 새삼스럽게 높뛰였다. 어째서인지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그래 총각도 의병으로 나가는가?》

호섭이 어머니가 황바위의 몸차림을 보며 물었다.

《예.》

《장하네.》

쌍가마의 가슴이 다시금 화드득 뛰였다.

이때 손로인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여기로 왔다. 한시각에 아들, 며느리, 손자를 왜놈에게 죽인 통분함을 안고 마을의 좌상으로서 참변을 당한 사람들을 돌보러 온것이다.

《모자간의 피줄이 소중한것이기에 자네가 오늘 이렇게 왔구만.》하고 칠성이를 조상해주고난 손로인은 황바위를 눈여겨보더니 《총각 보아하니 의병대로 가는것 같은데 그게 돌구럭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예, 차돌멩이옵니다.》

《그래, 돌멩이로 왜놈 치러 나섰단 말인가?》

《예.》

《허, 기막힌 일이로다. 하긴 그럴수록 더 장한 일이지.》

손로인은 흰수염을 내리쓸며 대견해하는데 방갓(상제가 외출할 때 쓰는 대가치로 결은 둥근갓)을 쓴 얼굴에 오이꽃이 핀 중년선비가 그들앞을 지나가다 한마디 했다.

《왜 꾸물거리구들 있소. 총을 멘 대군이 쳐들어왔는데 예로부터 날이 선 도끼날앞에서는 우선 몸을 피하고 보라고 하지 않았소.》하더니 짐을 지고인 자기 식구들을 데리고 부리나케 떠나가버렸다.

이웃마을에서 사는 엄생원인데 한뉘 책밖에 모르는 선비라고 린근에 소문이 난 사람이였다.

그를 보는 순간 황바위는 문득 (저런 사람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죄여들었다. 아니나다를가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떠나자구.》

《학식이 많은 그런분이 세상사를 잘 알고 하는 말인데 그 량반의 말대로 하는것이 틀림없을것 같네.》

《그런데 우리가 가도 왜놈 없는 곳이 어데 있을라구.》

《깊은 산골로 들어가지.》

《제길, 다 도망치면 어떻게 해?》

《그러나 맨손으로야 어찌겠소.》

칠성이가 황바위에게로 다가서며 말했다.

《이 사람, 저따위 량반자 보란듯이 나도 의병으로 나가겠네. 함께 가세. 그런데 내 먼저 가서 그 군수놈을 때려죽이고 오겠네.》

《예?》

황바위는 갑자기 무어라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데 호섭이 어머니가 두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훠이, 훠이, 이눔의 까마귀새끼들아, 눈도 채 못감은 사람들을 파먹으려고 벌써부터 덤벼드는거냐?》

어느새엔지 마을로 까마귀떼가 새까맣게 날아들었던것이다.

《저 왜놈악귀 같은것들을 어떻거면 좋담.》

어머니는 흰 귀밑머리를 거슬러올리며 돌멩이를 주어들더니 눈을 부릅뜨고 까마귀들을 향하여 힘껏 올리던졌다. 그러나 돌멩이는 서너발도 못올라가고 땅에 떨어졌다. 까욱까욱 까마귀들은 더 기승을 부렸다.

그것을 본 황바위의 손이 저도모르게 돌구럭으로 들어갔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어라도 볼겸 연거퍼 돌멩이를 머리우로 올리쳤다. 시꺼먼 까마귀 세마리가 마을사람들앞에 털썩털썩 떨어지더니 푸드득거렸다. 까마귀떼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놀란 눈길들이 황바위에게로 쏠렸다.

《거 놀라운 솜씨로군.》

《귀신도 곡하겠네.》

마을사람들이 황바위를 둘러쌌다.

《저런 돌팔매재주들만 있었어도 오늘 섬오랑캐놈들한테 우리 마을이 떼주검은 안당하는건데.…》

《그 돌멩이 한구럭이 우리 고을 병기고보다 훨씬 낫수다.》

《어디서 그런 솜씨를 배웠나?》

젊은이들이 황바위에게로 다가섰다.

《배우긴… 왜놈이 쳐들어올것이라기에 내절로 집에서 익혔지.》

《야, 이 친구, 이거 사귈만할 친구구만.》

젊은이들은 저마다 황바위 구럭속의 차돌멩이를 꺼내여 손아귀에 틀어져봤다.

손로인이 다시한번 황바위의 옷차림을 훑어보며 정기가 도는 그의 두눈과 범의 눈섭을 지켜보더니 다짐을 받듯 물었다.

《자네 의병으로 나가는게 분명하렷다?》

《예.》

그러자 손로인은 황바위의 손을 꼭 잡고 흰수염발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이 사람, 나도 데리고가주게나.》

《예?》

황바위는 놀라면서도 코마루가 짜릿했다.

《아니, 어떻게 로인님이?…》

《날 늙었다구만 생각말라구. 이런 판에 늙었다구 조선사람의 얼까지 늙었겠나. 자네가 그 돌멩이로 왜놈을 때려눕히면 내 뒤따라가며 손에 익은 도끼로 그놈들의 목줄기를 찍어놓겠네. 그거야 못하갔나. 엉, 이 사람.》

《할아버지!》

황바위는 그의 두손을 감싸쥐였다. 태여나서 본 일이 없는 자기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것만 같고 절절한 그 목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호섭이 어머니가 황바위의 돌구럭을 쓸어보며 《여보게, 내 큰아들 호섭이 원쑤도 갚아주게. 아니, 열일곱살짜리 내 둘째녀석 호영이를 데리고가주게.》 하고 간절한 눈길로 황바위를 바라보았다.

(아, 이분들이 오죽하면 내 차돌멩이구럭에까지 이렇게들 매여달릴가.)

이 순간, 설한풍치던 북대봉 상상봉에서 조국의 산야를 가리키며 절절히 말해주던 림중량의 목소리가 황바위의 귀전을 때렸다.

《우리 백성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데서나 애국심의 불씨가 타고있다. 너희들은 그 불씨들을 살려서 큰 불길로 만들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 이 불씨들을 모아서 큰 불길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이 불씨들을 뿔뿔이 헤쳐지게 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생각한 황바위는 불끈 치솟는 새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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