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3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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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동지께서는 불탄 자리가 거뭇거뭇한 작전가방을 받아드신채 한동안 내려다보기만 하시였다. 차가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며 불이 달렸지만 박정덕이 마지막순간까지 품에서 놓지 않았다는 작전가방이였다. 불타는 차안에서 딩굴면서도 꼭 껴안고있던것으로 팔과 겨드랑사이의 부분만은 본래의 가죽색대로 말끔한 연밤색이였다.

박정덕을 차에서 들어내렸을 때도 그 가방은 그냥 껴안은 상태였는데 최현이며 부관이 그 가방을 빼낼 때는 굳어진 팔을 푸는것이 무척 어려웠다고 했다. 접힌 가녁들이 누렇게 눈 크지 않은 작전지도를 조심스럽게 펼쳐 작전대우에 놓으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동안 긴숨을 몰아쉬시다가 작전대에 손을 짚으시였다. 문득 작전탁 모서리밑에 댕그라니 놓여있는 크지않은 오지단지가 눈에 띄우시였다. 김명수, 공정수와 함께 자신께서 박정덕의 위탈을 고쳐주시려고 손수 만드신 검정토끼곰이 저 오지단속에 들어있다. 검정토끼는 최고사령부 뒤산의 토끼사에서 품들여 키우신것이다. 단너삼은 빨찌산군의출신인 림춘추에게 부탁하여 실한것으로 몇뿌리 얻어왔었다.

밤새워 곰을 하느라 공정수가 불을 지펴놓고 손바람질, 입김질을 하며 지키다가 그만 깜빡 졸아 이마에 동전만한 화상까지 입었다. 장명선아바이에게서 김 몇잎을 얻어다 상처자리에 붙여주시며 웃음짓던 일이 생각나시였다.

《박정덕참모장의 위탈을 고쳐주려다 우리 공정수가 얼굴을 뎄다? 야단인데, 덕동녀선생한테 면회갈 때까진 낫겠지…》

지금 그 공정수가 김명수와 함께 저 출입문입구에 숨을 죽이고 서있을것이다. 그들이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몸을 떠는것이 느껴지신다.

부관들이 제일 좋아하고 허물없는게 젊은 장령들인 박정덕과 류경수이다. 박정덕은 그저 오는 일이 없다. 늘 가방에 무엇인가를 꿍져가지고와서는 공정수와 김명수의 주머니에 넣어준다. 하모니카와 수첩, 때로는 탄피로 만든 등잔도 있다. 그게 뭔지 일일이 보시진 못했으나 부관들의 입은 늘 함지가 된다. 장기질군인 공정수는 그를 붙잡고 《못살게》굴군 했다. … 저 토끼곰은 아직도 따끈따끈하련만 그는 어디 가고 이렇게 작전문건만 보내왔단 말인가.

눈이 쓰리시였다. 그 오지단지를 보다못해 다시 불에 그슬려 누렇게 된 작전지도우에 눈길을 떨구시였다. 작전지도의 부호들을 뜯어보시려 했으나 자름자름한 부호들은 그저 뿌옇게 보일뿐이다. 고개를 드실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자신을 진정하기 어려울것 같으시였다. 그대로 작전지도우에 두손을 짚고 움직일줄 모르시였다.

(전선… 참모장… 동무, 정덕동무,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요. 우리가 전선사령부를 찾았을 때 그리도 혈기왕성하고 자신심에 넘쳐있던 동무가… 아직도 귀가엔 동무의 그 쇠소리나는 목소리가 그냥 들려오는데… 동무는 도대체 어디로 갔소. 동무의 부인과 어린 자식들이 눈이 까매 저 담박골어귀의 토굴집에서 기다리고있는데…

동무가 키운 저 74군단의 장기명수 리만호전사는 군관학교로 떠나며 옛군단장이 보고싶다고, 졸업하면 동무에게 보내달라고 당부했는데…)

가슴이 미여지는것만 같으시였다.

집무실안에는 시간의 흐름조차 멎어버린듯 숨막힐듯 한 고요가 깃들어있다.…

《최고사령관동지!》

갑자기 급히 들어온 남일이 다가와 무슨 보고를 올렸으나 그이께서는 첫순간 가려듣지 못하시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스라쳐 놀라시며 머리를 번쩍 드시였다.

《총참모장동무, 이자 뭐라고 했소?…》

남일이 굳어진 얼굴로 힘들게 입을 연다.

《장군님, 방금 정찰국에서 통보해왔는데 미16군단이 동해안으로 기동하고있습니다. 그리고 오성산 앞계선의 미군무력이 공격출발진지를…》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시 작전지도에 눈길을 주시였다.

무자비한 시간이 공간을 썰며, 압축하며 다가오고있다. 아니 급하게 지나가고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흐려오는 눈가를 손으로 문지르시고 불에 그슬리고 누른 작전지도를 다시 들여다보시였다.

점점 눈앞이 선명해지고 지도우의 부호들이 크게 부각된다.

적아 쌍방의 무력배치상태와 방어선, 방어축성물들과 예상되는 적의 진출로정… 결전진입계선을 표시한 붉은 점선들, 첨입과 포초, 익측과 린접을 담당한 부대표시들… 작전부호들은 대부분 생략되고 암호화되여있다. …아마도 전선참모장은 자기가 직접 설명하려고 될수록 간략했을것이다. 용의주도한 지휘관인만큼 만약의 경우도 예견했을것이다.

그 《만약의 경우》란?… 또다시 가슴이 터질것 같으시였다.

전선동부의 주요 적지탱점들에 대한 공격방안은 작전지도에 이상한 몇가지 암호기호로만 표시했다. 자신께서 이번 미제침략군의 예상되는 대공세를 결정적으로 파탄시킬 중심고리로 여기고 현지까지 밟아보며 대응책을 제기하셨는데 그 구체적인 작전전투조직내용은 젊은 전선참모장이 머리속에 간직하고 영원히 가버린것이다.

그보다 좀 더 아리숭한 암호표식들이 상감령쪽에 찍혀있다. 썼다는 지우고 다시 희미하게 새긴 흔적들…

아끼고 사랑하고 중히 내세우신 전사가 운명의 마지막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가. 이 부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것일가.

전사가 간직하고 간 중대한 작전안인것으로 하여 그 모든 짐이 자신의 어깨우에 무겁게 실리는것을 의식하였으나 그이께서는 그 중압감이나 전선정황의 긴박감을 현실적으로 느끼지 못하시였다.

그저 찦차 뒤칸에서 싱싱한 풋배추단을 부리우며 싱긋거리던 사랑하는 전사의 모습만이 알수 없는 부호들우로 자꾸만 덧떠오르는것이였다.

(정덕이, 동무가 갔다는것을 과연 정말 믿어야 하나? 저 50년도 늦가을 동무네 사단의 행적을 몰라 안타까이 압록강기슭을 거닐던게 어제같아.

압록강기슭엔 살얼음이 끼던 때였지. 그 살얼음낀 강기슭을 거닐며 며칠밤을 밝혔어. 박헌영이가 와서 54사는 이미 소멸된것같은데 적들이 놀라게 같은 이름으로 새 사단을 조직하자고 간청하는걸 단호히 눌러버렸댔지. 난 끝까지 동물 기다리고싶었소. 박정덕이 그렇게 호락호락 쓰러질 인간이 아니라고 믿었거든. 김책동무가 힘을 주었지. 내 어깨우에 조용히 외투를 씌워주며 그가 하던 말이 생생해.

《장군님, 박정덕이는 돌아옵니다. 54사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장군님 믿음이면 됩니다.》

박정덕이, 동무는 그 믿음에 보답했소. 놈들을 족치며 건재한 사단을 이끌고 최현의 군단으로 돌아왔지. 철원시가도 동무들이 해방했지. 그런데 과연 그런 동무가 정녕 떠났단 말인가, 아니 아니야. 동문 가지 않았어.)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머리를 흔드시였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그 어떤 고통과 시련도 무조건 이겨낼수 있는 불가사의한 철의 인간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 우리는 그 어떤 아픔이나 좌절, 역경에도 끄떡하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생사운명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동지앞에서는 이 심장이 너무도 연하다는것을 다는 모를것이다. 심장이 찢어져 터갈라지는 아픔을 정녕 참기 어렵다는것을!…

하지만 이겨내자. 눈물을 복수로, 동지의 희생을 승리의 함성으로!

그것은 번개불과도 같은 순간의 심리적불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문득 지도우의 한점을 응시하시였다.

빨간 점선의 기묘한 선회, 인민군 53사의 기발표식이 그 점선을 따라 우익린접의 오성산으로부터 미9군단 측방까지 에돌다가 《×》자로 끊어졌다.

(아, 정덕동무!…)

가슴속 흉벽을 뭔가 쾅쾅 두드린다.

사무치는 애정이 그리고 끌수 없는 아픔이 또다시 가슴속을 에이고 들쑤신다.

(그래, 어쩌면 동무와 나의 생각이 이처럼 맞아 떨어질가.)

김일성동지께서는 누구도 알아낼수 없는 기묘한 점선의 선회와 부호표식들로써 박정덕의 새로운 착안, 자신께서 생각하던 구상을 발견하셨다.

오성산과 금화 동북쪽 상가산에 대한 적의 공격이 지원군방어선을 돌파할수 있는 위험이 조성될 때 그이께서는 인민군 제53사를 기동시켜 오성산 좌측 측방 남쪽의 미9군단 익측을 후려쳐 적의 공격진을 중간에서 허물려고 결심하셨던것이다.

그런데 박정덕이 벌써 그것을 내다보고 누구도 알수 없는 부호로 그 착안을 박아넣은것이다.

김책, 강건… 박정덕은 그들 못지 않은 장래가 촉망되는 군사가였다.

그이께서는 한동안 지그시 입술을 깨무시다가 지도우에 시선을 주시였다. 여러번 지우고 고쳐 기입한 암호부호들을 살피시던 그이께서는 남일대장에게 눈길을 돌리시였다.

《총참모장동무, 우리가 이곳에 예견한 포병무력이 얼마입니까?…》

《장군님, 3개 련대를 배치하기로 되여있습니다.》

《적구만. 이건 내 생각이자 박정덕동무의 우려요. 최사예비포련대 한개를 더 보내줘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도에 새겨진 박정덕의 작전전투조직과 기도에 대하여 설명하신 다음 자신께서 구상하신 결심을 말씀하시였다.

《내 결심이란 더 다른것이 없소. 박정덕동무가 작성한 방안이 곧 나의 방안이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동부의 다섯개 고지를 손으로 짚으시였다.

《총참모장동무, 이 경계선의 적들의 지탱점들에 대한 공격전투준비정형을 알아보았습니까?…》

《방금전… 류경수동무 그리고 71군단장동무와 련계를 가졌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명령을 내리시길 기다리고있습니다.》

남일은 경건한 자세로 조용히 보고드리였다.

《그리고 계획대로 최현동무네 72군단이 통천앞바다로 기여드는 미16군단을 견제타격하도록 해야겠소.》

《알았습니다.》

물론 김일성동지께서는 박정덕의 작전전투조직에서 일부 수정보충할 여지를 보시였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그 약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으시고 포괄적인 작전계획을 구체적세부까지 밝혀 최고사령관명령으로 정식 발표하시였다.

《동무들, 희생된 전우들의 복수를 위하여, 무자비한 섬멸전을 개시합시다! 전 전선에서!…》

김일성동지의 안광에서 푸른 섬광이 번쩍이시였다.

1952년 10월 12일 늦은 아침이였다. 이로부터 미제침략군의 《금화공세》시작까지는 이틀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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