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10 장

북대봉 황총각이 불씨들을 안고갔다오

2

 

여라문발쯤 솟아오른 아침해가 벌써부터 세상만물을 몽땅 찜질이라도 해놓을듯이 시뻘건 불덩어리로 이글거린다.

올해따라 변덕스러운 날씨는 6월달엔 실컷 가물다가 7월달에 들어서면서 무더기비를 퍼붓더니 요즘은 우에서 내려쪼이는 불볕과 밑에서 솟아오르는 무더운 땅김으로 하여 벌써부터 사람들이 숨이 헉헉 막히게 했다.

푸른 무명 중의적삼에 차돌멩이구럭을 메고 푸른 토목수건을 질끈 동인 총각이 미투리감발도 가뜬히 나지막한 고개마루로 훌쩍 올라서더니 검은 연기가 타래쳐오르는 꽃골마을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중화의병대로 가는 황바위였다.

불연기속에 언듯언듯 보이는 사람들과 아우성소리를 들으며 잠시동안 어리둥절해서 마을을 지켜보던 그의 눈이 커졌다. 아직 본적이 없는 몸차림을 한 수십명의 시커먼 무리들이 마을에서 큰길쪽으로 달려나가고있었다.

(아니, 저게 왜놈들이 아닌가? 저 마을에 불을 질렀구나.)

황바위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저도모르게 량손에 차돌멩이를 하나씩 움켜쥐였다. 그리고 큰길쪽을 바라보며 발을 굴렀다. 놈들은 돌팔매질 거리에서 멀리 벗어나고있었던것이다.

《제길…》

황바위는 사방을 둘러보면서 골짜기로 내리달렸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과 큰길로 나가는 갈림길목에 벼랑바위가 있고 그옆에 또하나의 벼랑이 있는데 그 벼랑우로 앞질러가면 갈림길을 돌아오는 놈들과 맞다들수 있을것 같았다.

(저놈들을 살려보내다니…)

황바위는 처음으로 맞다든 왜놈을 놓칠세라 있는 힘껏 달려 두번째 벼랑우에 올라섰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벼랑이 험해서 놈들은 그동안 그밑을 지나 멀리 달려가고있었다. 두눈에 불이 인 황바위는 급히 괴춤에 찌른 무명끈을 풀더니 그 무명끈에 돌멩이 하나를 재워 휘휘 돌리다가 맨 뒤 말탄 놈을 겨누고 힘껏 먼장질로 후려쳤다.

맨 뒤에서 끄덕거리며 칼을 빼들고가던 놈의 말이 껑충 뛰여오르더니 빙그르르 돌면서 제 잔등에 탄 놈을 옆으로 밀어내던지고 길바닥에 나자빠졌다.

말에서 떨어진 놈이 길바닥에 너부러진채 칼끝으로 벼랑우에 우뚝 서있는 황바위를 가리키며 악을 썼다.

《저 벼랑우에 푸른옷 입은 놈을 쏘라! 쏘라!》

그러나 다른 놈들은 벌써 멀리 앞으로 달려가고있었다.

(제길, 말새끼따위나 때려눕히다니…)

황바위는 씩씩거리며 다시 차돌멩이를 꺼내는데 갑자기 땅! 땅! 소리를 내면서 불덩어리들이 날아와 그가 기대인 이끼바위를 뚫어 불찌를 일으키더니 뒤이어 우지끈지끈 옆에 있는 참나무가지를 분질러놓았다. 앞서가던 놈들이 돌아서서 쏴대는 총알이였다.

(이크, 이게 총알이라는게로구나.)

황바위는 몸을 흠칠했다. 바로 이 순간까지도 그는 시커먼 그 무리들을 북대봉에서 쫓아잡던 메돼지무리처럼만 생각했던것인데 그것들이 불찌를 내쏘아 바위에 구멍을 뚫고 생나무를 꺾어놓는게 아닌가. 황바위는 바위뒤에 몸을 숨겼다. 그러나 돌멩이질로는 먼데서 총을 쏘는 놈들을 때려잡을수가 없었다. 황바위는 온몸에 피가 곤두섰다.

(그렇지만 이놈들, 맛을 좀 봐라.)

황바위는 저도모르게 다시 돌멩이를 거머쥐고 벌떡 일어서는데 《죽고싶어서 이래?》하며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작년에 성천장마당에서 만났던 그 위돌이라는 견마잡이군이였다.

《뭐 저놈들이 그따위 돌멩이에나 맞아죽자고 바다건너 여기까지 쳐들어온줄 아나, 엉?》

위서방은 어처구니없어하는 얼굴로 다시한번 황바위를 잡아끌면서 나무랐다.

《아니, 위돌아저씨가 어떻게 여기에?》

황바위는 놀랍고 반가와서 순순히 그의 손에 끌려 벼랑뒤로 내려갔다.

《자네가 나를 어떻게 아나?》

《작년에 성천장마당에서…》

《오, 그랬댔구만.》

《그런데 아저씬 어떻게 오늘 여기에?…》

《저 마을 윤초시네 집으로 가다가 자네 노는 꼴을 보니 너무도 철딱서니가 없는것 같고 마음이 아슬아슬해져서 뒤따라 올라왔지. 그런데 이 사람…》 위서방의 얼굴이 심중해졌다.

《놈들의 총질, 불질에 저 꽃골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네. 저길 좀 보라구.… 우리 어서 가서 불도 끄고 건질 사람들은 건져보자구.》

《그러자요.》 황바위는 위서방의 뒤를 따랐다.

황바위는 그동안 화엄산에 들려서 서설봉 부인과 서일의 안해를 북대봉 아버지에게로 보내고 이곳으로 왔었다. 서설봉 부인은 한발을 못쓰는 황봉의 짐이 될가봐 망설이다가 얼마후에야 북대봉으로 들어갔다.

황바위가 중화의병대로 들어가던 도중 이곳에 들린것은 쌍가마네와 한서방네 소식도 궁금했고 중화군수 김요립이가 뛰였다니 칠성이가 고향인 여기에 왔을것 같기도 해서 그와 함께 의병대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놈에게 당한 꽃골마을의 너무나도 엄청난 참변앞에서 그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꽃골은 온통 불길에 휩싸여있었다.

윤초시네 집 기와장이 와지끈 퉁탕 소리를 내며 불속에서 튀고있었다. 인간세상이 온통 불에 타는듯, 난생처음 보는 충천한 불길앞에서 황바위는 억이 막혔다. 위서방은 어데로 갔는지 연기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혼자고 보니 황바위는 눈앞이 더 캄캄했다.

전에 왔을 때 눈여겨두었던 쌍가마네 집옆의 해묵은 느티나무를 바라보며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내내와 피비린내, 통곡소리와 아우성소리가 뒤섞인 마을로 들어선 황바위는 움칠움칠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을 집뜨락들과 길바닥, 밭고랑, 개울창들에 쇠스랑, 괭이를 꽉 틀어잡은채 쓰러진 사람들이 그 무엇인가를 호소하듯 감지 못한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는것만 같아서였다.

정성껏 가꿔가던 콩밭고랑에서 호미자루를 쥔채 피를 쏟고 쓰러진 녀인옆에서 콩잎들이 피비린 바람을 풍기며 흐느적거렸다.

황바위는 치를 떨었다. 그는 또 달렸다. 불연기속에서 느티나무가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그런데 그 느티나무밑에서 피로 물든 여라문살쯤 되는 총각아이를 껴안은채 쓰러져있는 백발녀인을 한 처녀가 부여잡고 《오마니, 이게 웬일이요. 오마니…》하며 몸부림치고있었다.

새벽에 버섯을 따러 뒤산에라도 올라갔던듯 처녀옆에 버섯바구니가 나딩굴고있었다.

황바위는 가슴이 철렁했다.

온몸이 오싹해졌다.

치렁거리는 머리채를 들먹이며 몸부림치고있는 처녀가 낯익어보였던것이다.

황바위는 다급히 백발녀인의 시체앞으로 다가가서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모진 세상의 서리발인양 머리는 새하얗게 세였지만 왼쪽 눈두덩우의 낯익은 까만 사마귀가 금방 움씰거리며 그를 반겨 눈을 번쩍 뜰듯, 틀림없는 쌍가마의 어머니였다.

그가 껴안은 아이는 키가 훌쩍 컸지만 세살때처럼 황바위의 바지가랭이를 붙잡고 금방 발을 동동거리며 매달릴것만 같은 억쇠였다. 황바위는 와락 녀인의 시체를 그러안고 소리쳐 불렀다.

《어머니―》

그러나 그가 이 세상에 태여나 두번째로 빼앗긴 그 어머니는 대답이 없이 백발을 물들인 피속에 누워있었다.

《아니?!》

인기척에 처녀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들었다. 놀라움으로 쌍까풀진 눈이 커질대로 커졌다. 쌍가마였다. 오매불망 긴긴세월 황바위가 그렇게도 찾고찾던 쌍가마였다.

꿈을 꾸듯이 그의 얼굴을 지켜보던 황바위는 이윽고 《쌍가마!》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며 타고난 천성그대로 쌍가마의 어깨를 꽉 그러잡았다.

죽음과 상봉의 두 화살을 한꺼번에 맞은 쌍가마는 옛말속의 파랑새인양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게 꿈인가? 아, 아니다. 꿈이 아니다.)

긴긴세월 그의 죽음을 두고 가슴을 친적은 얼마였던가. 그럴수 없다고 도리머리질을 한적은 얼마였던가. 그 총각이 바로 이런때 이렇게 여기에 헌헌장부로 되여 불쑥 나타날줄이야.…

이 세상의 의지가지를 다 빼앗긴 고독과 슬픔, 원한을 막아나서주듯 자기앞에 불쑥 나타나준 총각으로 하여 처녀의 슬픔은 더한층 커졌다.

처녀는 어머니를 부여잡고 몸부림쳤다.

《오마니! 오마니! 누가 왔나 좀 보오. 그렇게도 못잊어하더니… 실성을 하고서도 부르고 찾던 그 사람을…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보아주오.》

처녀의 울부짖음소리에 놀라 그들옆에 쓰러져있는 중년녀인의 잔등에서 갓난애기가 《으앙.》하고 울음을 또 터뜨렸다. 그 녀인은 총에 맞은 억쇠의 어머니였다. 황봉부자의 기구한 운명을 두고 그리도 섧게 울어주던 그 순하디순하던 자그마한 녀인, 얼굴에 주근깨가 많기도 한 녀인이였다. 저 애기는 억쇠의 동생이리라.

《아―》

통절한 신음소리를 내는 황바위는 인간의 비통과 분노가 극도에 다달으면 그것이 가슴속에 타드는 불이 되고 눈굽에 맺히는 뜨거운것이 된다는것을 이자리에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러나 그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왜놈에게 지는것만 같아서였다.

《쌍가마!》

황바위는 그를 다시 부르고도 목이 꽉 메여 다음말을 못이었다. 처녀는 그 짤막한 한마디에서 천만마디의 말보다도 더 뜨겁고 깊은 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쌍가마는 어깨우에 치렁거리는 머리채를 들먹이며 지난날 천진스럽게도 황바위의 머리에 댕기를 달아주던 그 손으로 오늘은 어머니의 시체를 그러안고 터지려는 울음을 입술로 꽉 깨물어삼켰다.

그러면서 어머니를 다시 생각했다.

죽을 사람이 따로 있지 북대봉기상을 타고난 그 총각이 그렇게 죽을수 없다던 어머니였다.

《오마니―》

쌍가마는 참을수 없어 어머니를 다시 부르는데 이때 갑자기 온 마을을 찌르릉 울리는 큰 목소리와 함께 허우대가 큰 총각이 쇠장대를 둘러메고 달려오며 울부짖었다.

《오마니!》 칠성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벌떡 일어선 쌍가마가 그를 보더니 두팔을 벌리고 막아서며 소리쳤다.

《이리로 오지 마오, 오마니는 짐승아들을 낳지 않았다고 했소.》

《뭐?》

칠성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잠간 주춤거리다가 《너 미쳤니?》하고 쇠장대를 팽개치더니 쌍가마를 밀어제끼고 어머니의 시체를 그러안으며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오마니, 내가 왔소. 이 불효자식이 왔소.》

그런데 쌍가마는 오빠앞에 벌렸던 두손으로 느티나무를 붙안더니 《그래요. 미쳤어요. 나도 미치고 어머니도 미치고…》하며 느티나무를 쾅쾅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일에 잠시 움칠했던 황바위는 어머니시체앞에서 벌어진 오누이의 그 기구한 상봉을 놓고 함께 가슴을 쳤다.

《칠성형님!》

황바위는 칠성에게로 달려가 그를 부둥켜안았다.

《아니, 자네 황바위가 아닌가?》

칠성이는 황바위를 꽉 그러안더니 《아, 왜놈들때문에… 그 군수놈때문에… 내 끝내 어머니를 못만나보고…》하며 주먹으로 쾅쾅 가슴을 쳤다.

《형님! 너무 이러지 마시우. 종살이신세가 오죽했으면…》

《아닐세. 아무리 종살이를 한다한들… 아, 나는 눈뜬소경이였네. 자네가 그렇게 어머니랑 쌍가마를 가서 만나보라고 했는데도… 나는 효성도 사람의 의리도 모르는 놈이였네.》

헉헉거리는 칠성이의 불같은 숨결이 황바위의 가슴을 아프게 지졌다.

《형님! 이러지 마오. 형님은 우리 아버지랑 나를 두번씩이나 살려주지 않았소?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줄을 모르시구.… 내 정말 형님이랑 저 쌍가마에게 사람구실을 못했소.》

《아니, 그럼?》

쌍가마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는 황바위와 오빠를 번갈아보더니 《아니, 그게 무슨 말들이요?》하고 다그쳐 물었다.

《쌍가마, 이 칠성형님이 우리 부자를 비류강에서도 살려내고 북대봉에서도 살려주었어.》

《그게 정말이우. 아, 오빠―》

가슴을 째는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눈물과 머리칼이 범벅이 된 쌍가마는 오빠에게 매달려 그의 가슴을 쾅쾅 쳤다. 그러더니 다시 어머니를 붙안고 흔들었다.

《오마니, 들었소? 이제 그 말을… 눈을 뜨고 오빠를 용서해주고 가오.…》

황바위는 주먹을 부르쥐였다.

(누가, 누가 그렇게도 마음 정갈하고 의롭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떼죽음을 안겼는가. 그렇게도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칠성이가 어머니를 미치게까지 했는가. 인간세상이란 이런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왜놈들때문이다. 그리구 백성들을 그놈들앞에 맨손으로 내맡긴 량반놈들때문이다.)

황바위의 주먹은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쌍가마와 황바위를 번갈아보던 칠성이는 그간에 무슨 곡절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누이동생을 불렀다.

《쌍가마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 어머니가 혹시 나때문에 잘못되신게 아니냐?》

그 말에 쌍가마는 자기가 이러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는듯 귀밑머리를 쓸어올리더니 칠성이가 황바위부자를 비류강에 처넣어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가 실성을 했던 이야기며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오열속에 말해주었다.

칠성이는 어머니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천만가지 심정을 담아 살아있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오래오래 어머니얼굴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터지고 못이 박힌 어머니손을 두손으로 받들어쥐였다. 일생동안 웃음보다 통곡이 많던 어머니, 수난많던 그 인생길에서 일찍도 백발이 된 어머니를 실성하게까지 하고 왜놈들의 총에 맞게 하다니… 그의 두눈에 고인 눈물은 피눈물이였다.

《왜놈들을 천백배로 복수하리라!》

칠성은 울부짖으며 일어섰다.

쌍가마는 애절한 눈길로 오빠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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