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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2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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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사령부 야전병원 원장은 강심제를 놓는 간호원을 내려다보다가 얼이 나간 사람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빨리 군복을 벗기시오.》
해쓱한 얼굴로 옆에 서있던 간호원들이 전선참모장의 몸에서 군복을 벗겼다. 차가 벼랑에서
떨어지면서 화재까지 일어 군데군데 불탄 자리가 숭숭한 군복저고리가 잘 벗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전선참모장이 품에
작전가방을 꼭 껴안고있었기때문에 굳어진 그 팔을 풀기가 여간 조련치 않았다.
작전가방을 받아든 젊은 부관의 얼굴에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진다. 석상처럼 뻗치고 선
최현의 뒤에 웅크리고서있던 김인정은 자기가 달아준 가녁을 파란 실로 수놓은 목달개를 알아보자 그만 참지 못하고 얼굴을
싸쥐였다.
전선참모장의 몸에서 군복을 벗기자 주위에 둘러섰던 사람들의 눈에 놀란 빛이 떠올랐다.
전선참모장은 속에 병사용면내의를 입고있었던것이다.
《어마나…》
강심제를 놓던 단발머리간호원이 부르짖었다.
전무성의 뒤를 따라 류경수군단장이 병실에 뛰여들었다.
침상에 반듯이 누워있는 박정덕을 본 류경수의 몸이 우두둑 떨렸다. 인간의 소리라고 할수
없는 거센 굉음이 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어떤 놈이! 어떤 놈이 이렇게 했는가!》
《삼손이ㅡ》
얼굴이 비참하게 이지러진 최현이 류경수의 손목을 꼭 잡아쥐며 원장을 가리켜보였다.
류경수는 비칠거리며 원장에게 다가갔다.
《원장동무, 살려낼수 있겠지?…응?… 왜 말이 없소.…》
《좀… 아직 심장은 멎지 않았습니다.》
《여보, 제발 살려주오. 내가 비오. 아니, 장군님께서 바라시는것이요. 장군님께서는 방금
전화로 무조건 살려야 한다고 하셨소. 살려야 한다고, 알겠소?》
하지만 류경수는 그의 대답을 들을수 없었다.
나직한 탄성속에 군의와 간호원들이 박정덕을 둘러쌌다.
원장은 잠깬 사람처럼 허둥지둥 박정덕앞에가 허리를 굽혔다.
《정덕이, 나야. 날세, 류경수야.》
류경수군단장이 목메여 소리치자 박정덕의 눈시울이 떨렸다. 입놀림까지 있었다. 그러나
소리는 없었다.
《너무 덤비지들 말라구.》
최현이 점잖게 말하며 쓸쓸한 얼굴로 박정덕을 내려다보았다.
《참모장! 우린 여기서 너무 지체하고있어. 장군님께서 지금 동물 기다리시는데 그게 뭔가,
응? 기운을 내라구.》
김인정은 최현이가 밉살스러웠다. 치명상의 환자를 일떠세우려 하다니… 그런데 뜻밖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눈동자가 커지며 섬광같은것이 번쩍였다. 웃음까지 보이는듯 싶었다.
《무사…하군요. 한데… 내 가방…》
《여기 있소.》
최현이 그의 작전문건가방을 들어보았다. 그순간 박정덕은 실지로 웃음을 보였다.
그다음 얼굴에 한줄기 경련이 지나갔다.
《캄파!》
원장의 다급한 웨침과 함께 한 간호원이 그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박정덕은 물끄러미 천정을 보는가싶더니 손을 내밀었다.
《정덕이, 다들 여기 있네.》
최현이 다급히 그의 손을 잡자 박정덕은 후ㅡ 하고 숨을 내쉬였다.
또 한번 얼굴에 경련이 일더니 마지막힘을 모아 류경수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최현을
바라보았다.
《최현동지… 고추장은…》
《있다, 있어. 에익!》
최현은 고개를 꺾으며 흑 ㅡ 하는 흐느낌을 터쳤다.
《정덕동무, 정덕동무. 힘을 내오! 힘을!》
류경수역시 오열을 터뜨리며 소리쳤다.
박정덕은 무슨 말을 더 하려는듯 입술을 떨었을뿐 점점 눈빛이 꺼져갔다.
청진기로 그의 가슴속 고동을 엿듣던 의사가 천천히 일어섰다.
자는듯 눈을 감은 박정덕의 얼굴에는 놀랍게도 미소가, 고요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그
미소는 령구에 안치될 때까지 고스란히 그냥 남아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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