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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31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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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상스레 마음이 불안하였다. 골짜기밑에 어둠이 깃들자 제법 차거운 가을바람이
기세를 돋구었다. 《그》는 약속된 장소인 이 령길 옆도로에서 기다리게 되여있었다. 그들이 오게 되면 《그》는 오래동안
품을 들였고 검질기게 추적해온 목표를 제거하고 돌아가게 된다.
물론 합법적인 지원군군표를 가지고있는것만큼 중국대륙을 경우해야 할것이다. 어쩌면 이번
임무수행으로 지겨운 떠돌이생활도 끝장이 날지 모른다.
그것이 좋은것이든 나쁜것이든 종말은 오고야말것이다. 《그》는 사냥군이 만든 교묘한 함정과
덫을 조심스럽게 냄새맡고 에돌줄 아는 늙고 령리한 짐승처럼 발달된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있었다. 그《후각》이 이번엔
마지막이다. 너는 성공하든가, 실패하든가, 최악의 경우엔 죽든가 살든가 할것이라고 거의 숙명적인 가혹성을 가지고 판결을
내린것이다. 《그》는 이것을 최근 자기의 마음속에서 뜻밖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통해서도 자신도 모르게 북받치는 일종의
감상, 영문모르게 젖어드는 눈물에서도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쇠로 빚은 인간으로부터 지푸라기같은 존재로
변화되고있었다. 언젠가 함께 일해온 《그》의 《선배》가 운명을 앞두고 말한적이 있었다.
사람에게는 몸의 피만큼 눈물이란게 있다는것이다. 그걸 일정하게 흘려야 사람의 한생도
끝난다고 했다. 다는 아니라 일정하게다. 사람의 몸에서 피가 다 빠져야 죽는것은 아닌것처럼…
이런 변화, 이런 유언, 이런 숙명에 대한 순종이 《그》로 하여금 이제는 늙어빠진 말처럼
나약해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또 군용화물차의 기관실덮개를 열어놓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이란 바로
중국인민지원군의 탈을 쓴 《람의사》출신의 씨아이씨패당들이다. 그들이 《그》에게 운명의 마지막주패장을 가져오게 될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주패장은 올것이다. 《그》는 그들이 이전처럼 자기를 신임하지 않는다는것도 알았다.
지난 여름 저 북방 삭주에서의 실패가 그 시초를 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정말 안주부근에서 차가 고장났었다.
마음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될대로 되라는 자포자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리성은 움직였으나
웬일인지 감성이 제동을 걸었다는것을 그가 인정하려 하지 않았을뿐이다. 큰 죄악감에 대한 의식과 명령에 대한 불복정신이
저도 모르게 싸운것일수도 있다. 의혹의 불꽃이 량극에서 일었다.
아니, 그것은 이번 작전의 중요성으로부터 그들이 독주가 아니라 중주를 필요로 했을수도
있다.
혹은 그들의 눈에 이제는 자기가 퇴색한 낡은 구두로 보였는지 모른다. 이 두번째 경우가
가장 위험하였다. 주인은 밑창이 난 구두를 버리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자신도 마지막도박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래 나도 인간이라면 피가
있을진대 눈물도 있을것이다. 짐승이 아니라면 사랑과 증오라는 량기슭의 어느쪽에 설것이고 선악을 나름대로 가르게 될것이며
얼굴과 이름은 없어도 생각과 선택의 자유는 있을것이다.
《그》는 …《그》에게 있어서 생명의 불꽃이고 이제 와서는 숨쉬는 리유이기도 한 그
가냘프고 어진 광야의 초불같은 존재인 딸애소식을 《상부》에 물은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그》의 생사를 가르는 거점으로
되고말았다. 그들이 정확히 알아온다면 그 결과가 분명하여 아직은 안개속의 과녁같은 두 길중의 하나를 선택할수
있을것이요, 그냥 온다해도 자기에 대한 명백한 무시고 부정이므로 더욱 선택이 헐할것이다. 마구 휘던진 동전은 이미
하늘높이 떠올랐다. 그것은 어디론가 날아갈수도 없고 분명히 땅에 떨어질것이였다. 《그》는 그저 동전을 내려다보며 운명이
자기에게 생사의 어느쪽을 가리켰는가를 확인하면 될뿐이다.
《그》는 군용화물차의 앞바퀴턱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물었다.
이제 담배 한대가 타는 사이면 그의 지겨운 인생, 가혹한 운명이 결정될것이다.
담배 한대가 타는 시간… 과연 내가 부성애 하나로 살아왔던가. 아버지는 장학량군대에서
하층장교로 있다가 군벌들의 싸움터에서 숨졌다고 한다. 고래싸움에 새우잔등 터진격이다. 시앗다툼에 집안망조 든셈이다.
어머니는 누군지 모른다. 추적하면 알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는것이 두려웠다. 아버지에게
정조를 바치고 때이르게 죽었을 그 녀자, 자기의 비천한 출신과 운명에 대한 자포자기가 외곬으로 치달아 자살에로
이끌었을수도 있다는것을 공포속에 예감했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소박하고 평범한 중국사람들이였을것이다.
운명에 순종하여 부르면 응하고 앉으라면 앉고 가라면 가고 지어 죽으라면 죽는 중화민족의
이 수천년세월이 굳혀놓은 노예근성을 그래 어느 누가 깨친단말인가. 황계광의 말을 들어보면 전 중국을 통일하고 새 나라를
일떠세운 저 모주석같은이들이 눈뜬 소경들의 마음을 밝혀 손잡아 이끌지도 모른다.
저 당태종이나 주원장, 건륭황제들도 채 못한 일을 모《황제》가 정말 하겠는지 아직은 알수
없다.
왜냐하면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이 귀신처럼 떠받들리울 때는 벌써 해가 서산에
기울기때문이다.
장개석을 보면 그는 분명 《걸출》한 속물이다. 속통이 좁으니 대만이 무덤으로 되고말것이다.
그럼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었다. 그래서 찾은것이 자기식의 인생관 ㅡ 악에는 악으로
맞서라, 불은 불로 끄듯이… 악에 의거하지 않았으면 《그》는 이미 부모의 뒤길을 따른지도 오랬을것이다. 《그》에게 있어
악이란 곧 살기 위해서는 무자비해야 한다는 생리적충동이였고 그것이 곧 자기자신이였던것이다.
골짜기아래에서 어둠을 써는 전조등불빛이 세번 껌벅이더니 풍을 친 차 한대가 불쑥
나타났다.
풍차는 좁은 지선에서도 그의 곁을 재치있게 빠져 군용화물차뒤에 바투 차체를 박았다. 검은
가죽잠바가 느릿느릿 다가왔다. 가죽잠바는 담배를 꺼내더니 그에게서 불을 달았다.
《왕동무, 오늘이 10월 11일이지, 우린 이렇게 한초도 늦는 법이 없소.》
《…》
《궁금할테지?…》
《알아왔소?…》
《우릴 어떻게 아는거야? 국제조직이나 같아. 참 그런데 그 연청이란 계집애가 자네와 무슨
연고지? 자넨 혈혈단신이니 말이야. 정부는 아닌것 같고…》
이제보니 말이 많은 작자다. 중어도 정확하긴 하지만 어쩐지 귀에 거슬린다.
《그》는 쓰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신이 알바가 아니요.》
《어럅쇼ㅡ… 여, 정<동무>, 그 봉투를 이리 내오우.》
풍차에서 날파람있게 생긴 젊은이가 뛰여나왔다.
《방금 본부에서 무전이 왔수다. 선두차가 아니라 세번째 차에 전선참모장이 탔소. 그가
극비작전문건을 가지고 평양으로 간단말이요. 임무가 확정된셈이요. <리브>가 알려왔소.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작전문건을
빼앗아야 하오. 절호의 기회자 마지막기회라오.》
《알겠소. 꿩먹고 알먹고 둥지털어 불을 때야지, 허허, 봉투를 주게!》
가죽잠바가 봉투를 열고 내속을 기관실덮개우에 쏟았다.
몇장의 사진이 뚤렁 떨어졌다. 《그》는 가슴이 섬찍하여 떨리는 손으로 사진을 집어들었다.
반년전과는 머리모양이 달라지고 더 핼쑥해졌으나 딸애가 분명하였다.
가죽잠바는 담배를 뻑뻑 빨았다.
《사진과 구체적인 자료가 어제야 도착했소. 일본을 거쳐서야 오니까. 하지만 우리
씨아이씨는 정확하지. 당신 구좌에 돈도 어김없이 들어간댔소.…
이 연청이라는 처녀애는 지난 5월부터 팽호렬도의 기륭에 있는 미해군기지 창부촌에 있었소.
하지만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중공이 도사린 해남도에 가있다오.》
《?!…》
《해군기지에서 미해병대장교들에게 몸도 채 피지 않은 어린게 매일밤 시달리우다나니 페결핵에
걸렸소. 단마르크병원선에 실렸는데 중공해상경찰에 단속됐다누만. 본인의 요구에 의해 거기에 떨어졌다오. 관심을 가질년이
못돼!》
침묵… 전률… 숨가뿜… 《그》는 머리속이 어질어질해났다.
무엇인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는지 가죽잠바는 《그》의 눈치를 흘끔흘끔 살피며 뒤말을
누그러뜨린다.
《그》는 말없이 몇걸음 걸어 축축한 잔디우에 가앉았다.
맥없이 넋을 잃고 눈을 어디다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그러니 그 애는… 제 땅으로 찾아갔구나.…)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귀가 멍했다. 갑자기 멀었던 귀가 열리고 이 세상의 온갖 잡음이
귀속으로 흘러드는것 같다. 《그》는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아,아! 그 어질고 연약한 애를 짐승다루듯 하다니… 미군이… 아 계광아, 미군놈들이
중국사람을 모욕하고 더렵혔어. 그앤 당당한 중국사람이였어.…)
《그》는 오래 생각하는 법이 없다. 운명의 패쪽은 《그》에게 전혀 다른, 상상할수도
없었던 제3의면을 열어보였다.
그것은 가슴이 터질것 같은 분노와 절망의 벼랑끝에 비쳐든 한가닥 해빛이였고 한송이
죽어가는 꽃송이였다. 뽑히고 꺾이웠으나 제 땅에 이제는 뿌리를 묻었으니 기대할수 있을가? 희망을 가질순 없을가?
꺾인 줄기가 아물거나 그 뿌리에서 새순이 돋을수는 없을가?
《여 뭘해? 준비! 차가 나타났어. 본때를 보이게!》
《그》는 눈을 번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전칸에 올랐다.
가죽잠바가 곁에 함께 올랐다. 그자는 히죽히죽 웃으며 권총을 빼들더니 능숙하게 장탄했다.
《만약을 생각해서 엄호하자는거야. 군용차가 나타나면 직선으로 차를 받으며 벼랑으로!
그다음은 작전문건을 찾아내고 함께 뒤차로! 계획은 변동이 없어. 작전문건이 기본이야!》
저 권총에 재워진 총탄은 작전이 끝난 다음 《그》의 잔등을 거쳐 심장에 날아들것이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딸애소식을 문의한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결심을
내리게 했을것이다.
령길우에서 전조등불빛이 비쳐오는지 그들의 앞, 날카로운 벼랑건너편의 조락하는 단풍숲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그것은 한찰나였으나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숲이였다.
《왕선생, 세번째 차야, 첫차와 다음차는 통과시키우!》
(계광이, 자네 말대로 우린 중국사람이야. 방금전까지 난 아니였어. 지금은 확신있게
말할수 있어, 우리 딸애만은 진짜 중국녀자야. 모주석은 농민편이라고 했지. 나의 어머니도 농민이였어, 내생의 마감에
와서야 이걸 깨닫다니!…)
《발동을 걸라!》
《그》는 덤비면 더 큰 실수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뒤차가 문제였다. 발동을 걸었다.
(이게 마지막 나의 싸움이 되겠구나. 절대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 저 군용차들이
안전하게 령길을 통과하게 해야 한다. 작전문건… 그게 미제침략자놈들을 칠 폭탄이 아닌가. 이놈들의 손에 작전문건을
빼앗겨서는 안된다. 내 생명을 바쳐서라도… 딸애의 복수를…
서뿔리 움직이면 뒤에 서있는 풍차에서 불길과 수류탄이 날아들것이다.…)
숨가쁜 시간이 흐른다. 《그》는 운전대를 틀어쥔채 까딱도 하지 않고 그냥 앞만 쏘아본다.
선두차가 천천히 지나갔다. 가죽잠바가 정신없이 후면을 쏘아볼 때 《그》는 운전대를 꺾으며
한손으로 그의 정수리를 쳤다. 단련된 전문가의 일격이였다.
가죽잠바는 피를 토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권총을 잡았다. 그 순간 차문이 열리며 시체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충돌전에 뛰여내리게
되여있었으므로 문을 걸지 않은것이다. 《그》가 자기의 실수를 깨닫는 찰나 총소리가 울렸다. 눈앞이 번쩍하며 역스러운
화약내가 온 입안에 가득찬다.
《그》는 가물거리는 의식속에 자기옆으로 살같이 내달리는 풍차의 운전칸에 대고 연방 권총을
쏘았다. 명중을 알리는 비명소리, 하지만 정체불명의 차는 약간 비틀하다가 그냥 최대속력으로 달려 인민군의 세번째
군용차를 들이받으며 함께 벼랑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래… 두놈 다 황천객이다.… 하지만 인민군군용차는?… 제발 무사했으면…)
《그》는 눈을 감았다. 점점 눈앞이 어두워온다.
멀리로 황계광과 딸애가 다정히 손을 잡고 달려간다. 이윽고 중국의 젊은이들은 언덕너머로
사라져버린다. 《그》의 환영도 사라졌다.
영원한 어둠이 《그》를 삼켜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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