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9 장

출전

2

 

오래동안 로환으로 누워있던 서설봉로인은 오늘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화엄산의 청초한 록음을 스쳐온 훈풍이 방안 한가득 그윽한 향기를 불어넣어주었다.

기골이 장대한 로인이지만 여든세살나이와 병세는 어쩔수 없는듯 더우기 깊고깊은 이 산골에까지 요즘 들려오는 긴박해진 왜놈소문으로 덧쌓인 수심이 그의 강의한 의지로 가리워져있다.

오늘은 손자의 잔치날이다.

왜적에 대한 어수선한 풍문이 오가는 때였지만 나이많은 서설봉로인을 생각해서 빨리 혼례를 치르자고 신부집에서 몹시 서둘렀다.

그래서 맹산땅 신부집으로 가서 3일동안 성례(결혼식)범절을 마치고 오늘 손자 서일이가 신부를 데리고오는것이다.

안마당에 삼베차일을 쳐놓고 평소에 서설봉로인에게서 글과 검술을 배우며 그의 고결한 지조를 흠모하여온 사람들이 먼데서까지 모여와 초례청(결혼식장)을 꾸리고있었다.

신랑신부가 백년 한생을 푸르청청 젊어살라고 소나무가지와 사철나무가지를 초례청우에 고여놔주고 변함없는 사랑속에 일생을 화목하게 그리고 배불리 잘살라고 그들이 오면 그 가지들에 걸어줄 청실홍실을 부리를 마주댄 한쌍의 닭앞에 놓인 쌀그릇우에 서리여놓았다.

서설봉로인의 애국애민의 높은 뜻과 청백한 생활기풍,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정을 잊지 않고 그의 말년의 영화인 오늘을 장식해주려는듯 사람들은 초례상우에 소박하고 성의가 담긴 갖가지 음식들을 차려놓았다. 아낙네들의 솜씨가 곱게 물들여진 삼색떡과 과줄, 강정, 산짐승고기와 비류강 물고기, 더덕, 도라지, 고사리무침들 그리고 오늘을 위해서 움속에 넣어 해를 묵인 밤이며 능금, 돌배, 대추, 잣, 은행과 참깨, 들깨, 송화다식, 지짐판에서 기름냄새를 풍기며 지져낸 지짐그릇들이 고관대작들과 소문난 부자들의 진수성찬에는 깃들지 못할 사람들의 따뜻한 정에 받들리여 고여져있다. 여기에 서해바다의 조기 한꿰미도 있다.

그것은 서설봉의 제자인 《신초립》으로 불리우는 신욱이가 자기 할아버지 생일에 쓰려고 구해둔것인데 그 할아버지가 서설봉손자의 잔치상에 보내온것이다.

그런데 이 초례청에 갑자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각별히 힘을 들여 잡은 송아지만한 메돼지와 아버지가 담그어보낸 기장술방구리를 지고온 황바위가 그것을 통채로 초례상앞에 척 내려놓았기때문이였다.

깜짝 놀라 질겁을 한 사람들이 초례상에 털도 안뜯은 통돼지랑 술방구리를 통채로 놓는 법이 어데 있느냐고 야단을 했다.

그러자 황바위는 《법은 무슨 놈의 법이요. 성천부사는 치성드릴 때 돼지대가리를 놓던데 난 우리 서일형님 잔치상에 통돼지를 놔주갔소.》하고 뻗대서 한 아낙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서설봉로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서설봉로인까지 미소를 짓고 머리를 끄덕이며 《극진한 성의인데 법에 없다고 해서 그걸 못놓게 할거야 있나.》해서 황바위는 큰 입을 벙글거리고 초례상은 류별난 상이 되였다.

(야,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구나.)

황바위는 난생처음 보는 초례상이 신기한듯 눈여겨 바라보았다.

《저 끌끌한 총각이 고집도 이만저만이 아니로군.》

《여보게 총각, 어데 보아둔 색시감이라도 있나?》

사람들은 그의 름름하고 소박한 성미에 마음이 끌려 그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없갔소. 저렇게 잘난 총각인데…》

이 말에 어째서인지 황바위는 저도모르게 두볼이 확 달아오르며 쌍가마생각이 쿡 치밀어올라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렇지, 내가 잘 아는 처녀는 쌍가마밖에 없지.)

마음속에 자기와 몇해동안을 함께 사는 쌍가마인것이다.

가슴은 더 후두둑 뛰였다.

(그가 살아나 있는지?…)

한편 서글프고 허전한 생각, 새삼스럽게, 애틋하게 파고드는 쌍가마생각에 그는 시무룩해져서 입을 다물었다.

긴 수염을 쓸며 방안에서 초례상을 내다보는 서설봉로인의 흰 눈섭밑의 광채도는 두눈에는 깊은 감회가 담겨져있었다. 우리 나라 남해바다가마을들을 략탈하는 왜구와의 싸움에서 무인답게 최후를 마친 외아들, 그 유복자가 오늘 장가를 드는것이다. 왜적이 지른 불길속에서 죽으면서도 포대기에 싼 아들을 밀어놓은 며느리, 그 피덩이손자를 눈물이 섞인 암죽으로 키워낸 늙은 안해의 생각이 가슴속을 허비는것이였다.

신부는 부산첨사 정발의 휘하군관의 딸이다.

그의 조부 남정우는 서설봉과 을묘왜변때에도 남해기슭에 함께 출전한, 젊은 시절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심허지우이다.

그들은 손자인 서일이와 손녀인 일옥이가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있는 총명한 자질들을 사랑하여 성장한 뒤에 짝을 무어주기로 언약했던것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일옥이 조부도 락향해와서 맹산땅에 살고있었다. 그 아들 남훈이 역시 위국의 뜻이 높고 무예가 출중해서 부산첨사 정발이 그를 사랑하여 데리고 부산진으로 함께 갔다. 그래서 그가 돌아온 다음에 손녀의 혼례를 치르려 했던탓에 일옥이와 서일이의 성례할 나이까지 지나게 했던것이다.

그러나 서설봉로인의 고령로환을 생각해서 더는 미룰수 없었던것이다.

지금 서설봉은 신부 일옥이가 어렸을 때 그의 할아버지무릎에 안기여 재롱을 피울 때면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일과 좀 자라서는 《동몽요결》의 글뜻을 놀라울만큼 빨리 해득해내는것을 칭찬해주던 일이 어제일처럼 떠올라 세월의 덧없음을 다시한번 절감하면서 이 소란스러운 세월에 그들의 성례를 치르게 된것이 마음에 걸렸다.

서설봉로인이 일찍부터 손자에게 검술을 익혀주자 남정우도 손녀에게 단검쓰는 법을 가르쳤는데 벼슬아치들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서설봉로인은 그가 손녀의 속대를 키워주는 그 마음이 고마왔다. 그런 일옥이를 오늘 손자며느리로 맞아들이는것이다.

골짜기쪽에서 귀익은 설화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려서부터 서일의 말타기재주를 키워준 말이다.

이윽고 신부집에 나무기러기를 앞세우고갔던 서일이가 신부를 태운 사린교를 앞세우고 설화마에 높이 앉아 마당으로 들어섰다. 서일이를 따라갔던 유신검과 신욱이도 함께 들어섰다. 인적없어 한적하던 산속이 오늘 처음으로 흥성거렸다.

혼례식을 주관하는 중년녀인 선배하님이 병석에 있는 년로한 서설봉로인을 생각하여 신랑신부를 이끌고 먼저 할아버지를 뵈옵게 했다.

붉은 치마 초록저고리에 남색등거리를 받쳐입고 긴 봉채(봉을 장식한 비녀)밑으로 오복을 축원하는 금빛수놓이를 한 흑공단댕기를 드리고 칠보화관을 쓰고 연지곤지 곱게 찍은 손자며느리와 사모관대차림에 더 의젓해진 손자의 큰절을 대견한 얼굴로 받은 서설봉로인내외는 신랑신부가 괴여받치는 술잔을 받아들었다.

황홀한 눈으로 신랑신부를 바라보던 황바위는 (우리 아버지랑 림중량아저씨가 함께 계셨드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쌍가마도 이 뜨락 어데선가 신랑신부를 바라보고 서있는것만 같아 저도모르게 앞뒤를 돌아보았다.

이때였다. 눈익은 오추마가 한 선비를 태우고 다급히 마당으로 들어섰다. 말도 사람도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3년전에 북대봉 범골에 왔던 림중량의 친구 윤봉이가 말에서 뛰여내리더니 황급히 서설봉로인앞으로 다가왔다.

재작년에 세상을 뜬 부친의 무덤곁에서 시묘(부모의 묘를 지키는 일)살이를 하는 림중량이 오늘을 축하해서 그를 보낸줄 알고 서설봉이 반가와하는데 윤봉은 《서설봉선생님! 왜놈들이 쳐들어왔소이다. 벌써 서울과 평양성을 놈들이 타고앉았고 상감님께서는 북쪽끝 의주로 파천(임금이 피난가는것)을 하셨소이다.》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알리였다.

《뭐, 뭐라구?》

백발로옹이 흉벽을 두드리며 터친 통성과 함께 그의 손에 들렸던 술잔이 떨어졌다.

《음, 드디여 그날이 오고야말았구나!》

서설봉로인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며 울부짖었다. 손자 손부가 급히 부축을 했다.

집안팎이 술렁거렸다. 강의한 의지로 자기를 누르며 서설봉로인은 윤봉이에게 따지기라도 하듯 물었다.

《국록을 타먹고있는 조정의 고관대작들은 그래 무엇들을 하고있었다던가?》

《4월 열사흗날 새벽 왜병 수륙군 20여만의 대군이 안개를 타고 부산앞바다로 밀려들었는데 허물어진 봉화체계와 파발(사람 또는 말을 띄워 알리는 련락조직)체계로 해서 열이레날에야 서울 왕궁에서 그 소식을 알았다고 하옵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장군과 동래부사 송상현나으리가 나라의 관문을 막아 왜적에게 무리죽음을 안기며 싸웠으나 대세막부득하여 두 성의 장병들과 백성들전원이 모두 장렬하게 순국을 했사옵고…》

윤봉의 목에서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뭐라구?》

서설봉로인이 다시한번 소스라쳐 놀랐다.

《아―》

신부의 입에서 애처로운 비명이 새여나왔다. 정발장군수하의 자기 아버지를 생각한것이다.

서설봉로인은 침통한 눈길로 손자며느리를 바라보았다. 연지를 찍은 입술을 꼭 깨문 신부의 입술에 경련이 일었다. 손자며느리를 붙안은 서설봉 부인이 두손을 와들거렸다.

(아, 이애의 초례옷을 벗기고 전사한 저의 아버지상복을 입혀 머리를 풀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집안팎에서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놀라움과 분노의 울부짖음이 터졌다.

《나라가 물먹은 담벽이였구나!》

《백성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그런 상감님과 조정대신들을 믿고살다니… 아, 원통하구나.》

《우리가 이렇게 가슴만 치고있어서야 되갔소. 무슨 도리가 있어야지.》

윤봉이 품속에서 편지를 꺼내여 굳어진듯 눈을 감은채 앉아있는 서설봉로인앞에 놓으며 말했다.

《림중량의병장께서 보내시는 서찰이올시다.》

《뭐? 림중량의병장…》

서설봉로인이 눈을 번쩍 떴다.

가슴속에 방망이질이 인 황바위가 윤봉의 옆으로 다가섰다. 윤봉이 애써 흥분을 누르며 말했다.

《비록 선친의 단복기(3년상끝에 맞는 상복기간)중이오나 중화고을백성들과 나라를 지킬 맹세를 함께 한 그를 저희들이 의병장으로 선출했소이다. 지금 중화고을 서진땅 양무대에서 허물어진 성첩을 수축하고있사온데 모여든 의병들이 벌써 수백명에 이르렀소이다.》

《과시 림중량이로다. 백성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구나.》

서설봉로인의 목소리는 격정에 떨고 편지를 펴든 손도 떨렸으나 두눈은 황황히 빛났다.

 

상중죄인(부모몽상중에 있는 사람) 림중량은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이 글월을 삼가 서설봉스승궤하에 드리나이다.

호시탐탐 우리 나라를 노려오던 왜국의 《관백》 풍신수길이 내나라 조정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나라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서 드디여 20여만 대군으로 침입하여 벌써 5월 3일에는 서울을 강점하고 적의 좌선봉장 소서행장(고니시 유끼나가)은 의주로 파천하시는 국왕전하를 뒤쫓아 6월 4일에는 평양성에 들어왔으며 우선봉장 가등청정(가또 기요마사)은 두 왕자를 쫓아 함길도(함경도)쪽으로 추격하고있소이다.

이리하여 흉악무도한 왜적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백성은 도륙을 당하고 수천년 선조들이 이룩해놓은 보배로운것들이 섬오랑캐들의 무지한 발길아래 짓밟히며 불타고 빼앗겨 금수강산은 지금 불바다, 피바다속에 잠겼나이다.

소생 불우하여 부친을 여읜 슬픔속에서 다시 나라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은 이 원통함을 당하오니 하늘에 소리치고 땅을 두드려도 막힌 가슴 풀길이 없나이다.

그리하여 비록 상중죄인이오나 옛 선렬들의 본을 받아 상복을 벗고 그날 주신 비류검을 들어 철천의 원쑤를 치고자 충의에 차넘친 백성들과 함께 의병기의 기치를 들었나이다.

이것이 또한 스승의 뜻이옵고 선친이 바라시던바라고 생각하나이다.

이미 예측못한바 아니오나 왜적의 치욕을 받아 나라가 이 지경이 되고보니 아, 원통하오이다.

평소에 기필코 다가올 국난을 두고 그토록 소생의 흉벽을 두드려 깨우쳐주시던 스승의 애국충정을 오늘 다시 가슴뜨겁게 새기나이다.

얻어듣자옵건대 내 땅에 기여든 왜적을 맞받아 전국각지에서 의병들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서 오랑캐놈들에게 무더기죽음을 안기고있다고 하옵나이다.

이것은 내 겨레의 불굴한 기상이며 우리 백성이 있는 곳에 애국의 불길이 있음을 말하는것으로 아옵니다.

이곳 중화땅은 유구한 력사를 가진 평양성의 남쪽관문으로서 서울과 평양간의 큰길을 오가는 왜적무리들의 허리를 자르고 앞대가리와 뒤꼬리를 치기에 맞춤한 곳이옵고 백성들의 의기 또한 충천한 곳이옵니다.

그런데 이 요충지를 막아서 나라와 고을백성을 지켜야 할 중화군수 김요립이 고을에 부임한 후 백성들에게 행악질만을 일삼다가 적이 림진강에 이르렀다는 소문을 듣고 도망을 쳐서 고을백성은 주인을 잃은 무장지졸이 되였나이다.

이러한 때 더욱 앉아있을수 없고 백성된 도리 또한 지중하옵기로 국난앞에 한목숨바쳐 싸울 결의로 상중죄인 림중량은 스승께서 주신 그 검을 빼여들었나이다.

그러하오나 제 불민한 재국으로 이러한 때에 부조의 땅을 지켜내는 싸움에서 제구실을 못하는것이 죽음보다 더한 수치임을 생각하는 심정을 깊이 헤아리시와 부디 용병하는 지략과 큰 장력을 북돋아주는 활력을 안겨주시기 바라나이다.

그리고 서일과 황바위, 신욱 등이 이제는 국난의 한 모서리를 막아나설 나이들이오니 그들의 용력과 지략을 믿는바이옵니다.

그들에게 멸적의 검을 안겨 보내주시리라 믿사오나 말년에 외동손자를 보내실 스승과 불구인 황봉의 심정이 헤아려져 마음편치 않소이다.

나라에 기여든 왜적을 물리치고 나아가 큰절을 드릴 날까지 부디 옥체만강하시기를 삼가 축원하나이다.

                                                                     임진년 6월 림중량 재배

 

《음, 김요립이 그놈이 끝내 백성과 나라를 배반했구나. 천하에 용서받지 못할 역적놈…》

푸른 서리발이 서설봉로인의 눈에서 번쩍이였다.

《김요립이라니, 성천부사하던 그놈이 아니오이까?》

황바위가 윤봉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그렇다네.》

《아니, 그렇게도 떵떵거리던 놈이…》

황바위는 두주먹을 부르쥐였다. 눈에서 불이 펄펄 솟았다.

사람들이 들레이였다.

《듣자니 김공량의 끈을 잡고 평양감사자리에 눈독을 들였는데 여기로 온것은 이 중요한 중화길목을 잘 다스리는 법부터 배우러 왔었답데다.》

《흥, 잘도 다스리는군. 에이, 짐승만도 못한 놈. 개도 제집에 든 도적을 보면 짖고 수닭도 터세를 하는 법인데…》

사람들은 격분으로 치를 떨었다.

서설봉로인은 편지를 다시 훑어보았다.

온 집안은 다시 숨소리를 죽이였고 두필의 말울음소리만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었다.

《아, 10만양병을 주장한 선견지명을 가졌던 률곡이 오늘 다시 그립구나.》

로인의 두볼을 적신 의분의 눈물이 흰 수염발을 타고 흘러내렸다. 윤봉이 그를 위로하고나서 《저는 림중량의병대의 모사(참모)직을 맡고있사옵기에 물러가겠소이다.》 하고 급히 말에 올라탔다.

윤봉이 떠난 후 천만심사를 누르는듯 말없이 앉아있던 서설봉로인은 두손을 모아잡고 옆에 서있는 손자, 손자며느리를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부인에게 말했다.

《새아기에게 저의 아버지 몽상을 입히시오. 장한 집 딸이 내 집안에 들어왔구려.》

신부의 어깨가 세차게 들먹이였다. 연지를 찍은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신부는 무인의 딸답게 용케도 울음소리를 깨물어삼켰다.

서설봉로인은 정중한 목소리로 손자를 불렀다.

《유복(서일의 애명)아!》

《예.》

《사모관대를 벗고 의병복차림을 하거라.》

서일이 놀란 눈길로 할아버지를 바라보고나서 《예.》 하고 대답을 한다음 문밖으로 나갔다.

온 집안이 술렁거렸다. 유신검이 방으로 들어오더니 서설봉앞에 무릎을 꿇었다.

《호군나으리, 오늘 하루만이라도 새서방님을…》 유신검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서설봉은 입을 꾹 다문채 말이 없었다.

눈등을 덮은 흰 눈섭만이 꿈틀거렸다.

문밖에 화관대신 풀어내린 검은 머리채에 삼베수건을 두르고 록의홍상대신에 흰 소복을 하고 꽃당혜대신 짚신을 신은 신부와 새초립을 쓰고 가뜬한 몸차림에 미투리감발을 한 서일이가 장검을 차고 와섰다.

《새아기야, 너의 조부님 애국지정을 받고자란 너를 내 잘 알기에 잔치날 남편을 출전시키는것이다. 이곳은 국도(나라 큰길)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벽지가 돼서 란리소식이 늦었는데 국난앞에 어찌 잠시인들 지체할수 있겠느냐.》

서설봉의 목소리엔 뜨거운 애정과 믿음이 차있었다.

신부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신랑은 칼자루를 힘껏 틀어잡았다.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경사로운 잔치날 신랑인 외동손자를 생사를 기약못할 싸움터로 보내는 백발로옹을 보는 사람들은 그의 심정이 헤아려져 눈시울을 적시였다.

서설봉이 손자를 앞세우고나서자 황바위도 신초립도 그리고 마을젊은이들도 따라나섰다.

그러자 서설봉은 《황바위는 아비에게로 달려가서 말하고 떠나오고 신욱이는 서일이와 함께 가다가 서해가로 가서 조부님께 국난소식을 알려드리고 의병대로 가거라.》라고 하며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윽고 서설봉은 마당에 차려놓은 손자, 손자며느리의 고배상옆을 지나 사립문을 나섰다.

서설봉부부와 흰 상복을 입은 신부가 연비정에 올라 서일일행을 바래웠다.

만단심회가 담긴 눈길로 조부모앞에 하직을 하고 안해에게 눈길을 주고 떠나던 서일이가 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유복아,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싸움터에 나가는 대장부가 뒤일을 걱정하면 큰일을 그르친다. 국난앞에 대장부의 제일 큰 사랑은 나라와 백성을 위한 사랑이니라.》

손자를 떠나보내고 돌아온 서설봉앞에 마을의 한 로인이 《호군나으리의 애국충정에 무어라 여쭐 말씀을 모르겠소이다.》하고 정중히 머리를 숙이자 서설봉은 그와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국난앞에 사사로운 일에 구애되여서야 되겠소이까. 우리 힘들을 모아 왜적을 칩시다.》 하더니 유신검을 불러 일렀다.

《자네는 야장간에서 그동안 벼린 병장기들과 화약들을 건사해가지고 떠나주게. 그리고 린근마을들에 왜란소식을 전하고 젊은이들이 일떠서도록 하게.》

이렇게 일을 다 분별한 다음 그날밤 손자며느리의 절절한 심정이 담긴 술도 한잔 받아든 서설봉은 다음날 아침 안해를 불렀다.

《여보, 내 군복을 꺼내주오.》

손자며느리가 깜짝 놀라고 유신검도 《아니, 로환중에 어떻게…》 하고 놀라는데 역시 흠칠 놀라던 부인은 생각깊은 얼굴로 벽장문을 열고 잘 손질이 되여있는 흑청색전포와 상모달린 전립을 꺼냈다. 남편이 호군벼슬을 할 때 입었던 전포였다.

부인은 늙은 남편에게 장검과 동개를 떼서 두손으로 받쳐주었다.

과시 다년간 무인인 남편을 뒤받침해온 안해였다.

말없이 군복차림을 한 서설봉은 이윽고 《신검이, 설화마의 고삐를 풀어주게.》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늙은 안해의 손을 잡고 간곡한 음성으로 《부디 새애기를…》 하고 천만심회가 담긴 부탁의 말을 남기고 유신검이 고삐를 잡고있는 설화마에 올라앉았다.

한편 황바위는 치솟는 가슴속불길을 안고 북대봉을 향하여 뛰였다.

달리는 황바위의 머리속에는 작년 이맘때 림중량을 만나보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날도 황바위는 성천장마당에 나가서 소금을 사고있었다.

그때 큰갓에 불빛말을 탄 량반 하나가 장마당으로 들어왔다.

그는 좀스럽게 생겼는데 그의 견마잡이는 몸집이 날렵하고 서글서글한 사람이여서 《미안하지만 량반님이 닭을 사러 오셨으니 길 좀 비킵시다.》 하며 량반을 닭전으로 데리고갔다.

《량반이 닭을 사려 장마당에 나오다니?》

《아니, 저 량반이 중화고을 꽃골 윤초시로구만. 흥, 량반은 무슨 량반, 〈할번초시〉라네.》

《옳거니. 소문을 듣자니 재물로 초시감투를 사려다가 재물이 아까와서 그만뒀는데 그때부터 초시행세를 한다두만. 재물이면 못하는짓이 없지.》

《저 견마잡이는 이고장에서 자란 위돌이 아닌가. 저 사람 조실부모하구 8도강산을 떠돌아다니더니 이제는 량반의 견마잡이가 됐구만.》

사람들은 중구난방으로 수군거렸다.

이윽고 닭전에 이른 윤초시가 닭흥정을 시작했는데 《이놈은 너무 가볍구…》, 《이건 너무 비싸구…》 하면서 닭을 들었다놨다 하는 바람에 닭장사들이 학질을 떼는데 그 한마리가 푸드득 나는 바람에 그 근방 팥죽장사, 국수장사들까지 란리를 만나 울상을 하였다.

이때 그 꼴을 보다못해 한 중늙은이가 닭 두마리를 반값에 팔아주어서 윤초시는 《허, 백성들이 인심이 좋을시고.》 하며 말구종군에게 그 닭을 들려가지고 갔다.

잠시후에 견마잡이가 사람들앞으로 오더니 닭을 팔아준 령감에게 《배나무집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를 아는 고향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니, 위돌이 이 사람, 언제 장가를 들었나?》

그의 큰 상투를 보고 한사람이 물었다.

《예, 이거요?》 하고 위돌이는 쓸쓸하게 웃고나서 말했다.

《30이 넘어서까지 총각대방소리를 듣기 싫어 외자상투(가짜상투)를 틀었쉐다.》

《뭐, 외자상투?》

《예, 서울 동소문밖에 사는 사람네 집에 가서 상투를 좀 틀어달라구 했더니 그 집 내외가 상론을 하더니 국수 한사발, 막걸리 한병까지 사다가 받쳐놓고 이 상투를 틀어줄 때 내 고향어른들생각이 나서 울었쉐다.》

사람들이 그 말에 생각들이 깊어져 잠자코들 있는데 배나무집 할아버지가 한마디 했다.

《이젠 고향에 와서 함께 삽세다. 진짜장가두 들구…》

그러자 위돌이는 《계집은 얻어 어떻거겠소이까. 집도 없는 놈이 지게에 지고다닐수도 없구… 또 란리가 난다고 세상이 벅적 끓고있는데…》하고 도리질을 했다.

《참, 그 이야기를 좀 들려주게나. 나라형편이 지금 어떤가? 이 시골에서야…》

사람들이 그의 앞으로 조여들었다. 황바위는 맨앞으로 비집고 들어섰다.

《지금 머지않아서 왜놈들이 쳐들어올거라고들 해요. 그래서 서울서도 지금 피난바람이 불었지요. 윤초시도 늙은 어머니를 여기 성천땅 어디에 데려다두려구 서울서 내려와서 원님을 찾아가는 길인데 닭을 선물로 사가지구 갈려구 아까 그 복새를 피웠지요.》

《아니, 피난이라니? 자네는 여러곳을 돌아다녀본 사람이니 보고들은것도 많겠는데 좀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게나.》

사람들은 그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내 아는건 없지만 당장 나라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된 일 몇가지만 들은대로 이야기하지요. 우선 급한것은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려고 싸움배를 뭇는 왜놈들의 대패밥이 우리 남해가에까지 떠내려오고있답니다.》

《엉?…》

사람들이 그에게로 더 바싹 조여들었다.

《그런데 한심한것은 작년에 조정에서 왜국에 보냈다던 통사들이 올해 3월달에 돌아왔는데 글쎄 그 사람들이 서로 하는 보고들이 다르답디다. 당파관계로 서인인 정사 황윤길이는 왜놈이 꼭 쳐들어올게라고 하는데 동인인 부사 김성일이는 왜국우두머리인 도요도미의 상판을 보니 우리 나라에 감히 쳐들어올 재목이 못되니 안심하라고 해서 대감네는 큰숨을 내쉬고있답니다.》

《그러니 그놈은 나라국사가 아니라 관상쟁이노릇하러 갔던 놈이로구만.》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그런데 놈들은 나고야라는 곳에 군사지휘부를 두고 우리가 보라는듯이 조총부대를 훈련시키는데 그놈의 총알이 어찌나 세고 멀리 나가는지 우리 활따위는 대비도 안되더랍니다.

그런데도 란리가 안난다는 그자의 말을 듣고 요즘 량반집자식들은 동동이라는 새로 생긴 노래를 부르며 대낮에도 계집들을 끼고 서울거리를 싸다니고있소이다.》

《일은 당한 일이군.》 사람들이 설레였다.

위서방은 다시 《그런데 더 기막힌 일은 이런 판에도 또 당파싸움이 터져서 이번에는 동인패들의 세상이 되였답니다. 그런데 근자에는 북이요 남이요 하는 파까지 생겼답디다.》라고 말하였다.

황바위는 이 소식을 급히 림중량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큰길로 200여리 중화땅 림중량의 시묘막까지 밤을 도와 달려갔다.

림중량이 북대봉에서 내려간 후 한달후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서 유신검과 함께 가본 일이 있어서 그곳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황바위의 갑작스런 출현에 림중량은 저으기 놀랐다. 그런데 더 놀란것은 황바위였다.

오래 다스리지 않은 수염과 쑥대머리는 림중량을 환갑이 훨씬 넘어보이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초상때 입은 상옷은 때국에 쩌들었으며 방안에 깐 삿자리는 곰팡이가 끼여 냄새가 코를 찔렀다.

황바위는 억이 막히고 분이 끓어올랐다.

(부모님상은 꼭 이렇게 치러야 하는가. 법이 이렇게 만든다면 그깐놈의 법을 무엇에 쓰겠는가.)

《아저씨, 지금 왜적들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려고 싸움배를 뭇고있는데 그 대패밥이 남해바다에까지 떠내려온답니다. 그런데 아저씨같으신분이 이러고계시니…》

황바위는 부르짖듯 했다.

《음―》

림중량의 숱진 눈섭이 꼿꼿이 일어섰다.

황바위는 애써 격정을 누르며 성천고을에서 들은 이야기를 다 했다.

황바위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림중량은 그가 시묘막안에 벗어놓은 날끊어진 짚신에서 눈을 못뗐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숨가삐 뛰여왔구나. 고맙다. 나도 윤봉아저씨들이랑 통해서 다 알고있었다. 그런데 황바위야, 한가지 기쁜 소식을 너도 알고있어야겠다.》 하고 말했다.

황바위의 눈에 돋은 별빛을 보며 림중량은 《우리 나라 수군의 명장 리순신장군이 올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내려가서 왜놈칠 싸움차비를 하고있단다. 장군은 내려가자바람으로 군률도 강화하고 성첩을 수축하고 앞바다에는 왜적선이 들어오지 못하게 쇠사슬을 늘여치고 거북선이라는 쇠배까지 만들고있다누나.》

《거북선이란 어떤 뱁니까?》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쇠밴데 거부기모양으로 생겨서 거북배라고 한단다. 온몸을 총과 창 등으로 고슴도치처럼 무장하고 물로 드나드는데 왜놈의 배들속으로 좌충우돌하게 된거란다. 그리고 왜놈조총알따위는 배에 맞아도 콩알튀듯 할게란다.》

《야!》

황바위는 환성을 올렸다. 그를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림중량은 《황바위야! 네가 나에게 오늘 큰 힘을 주는구나. 네 말이 옳다. 나도 부모님령전에 사죄를 하고 비록 상주의 몸이지만 서설봉선생이 준 그 비류검에 녹이 쓸지 않게 하겠다. 그리고 너희들 젊은이들의 임무가 막중하다는걸 명심하거라.》하고 당부했다.

황바위는 벌떡 일어서더니 《전 아저씨가 꼭 그러시리라고 믿고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시묘막 거적문을 들치고나섰다.

달리는 그의 발꿈치에서는 불이 일었다.

시묘막을 둘러싼 푸른 숲에서 매미들이 떼울음을 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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