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5 회)
제 9 장
출전 1 신묘년(1591년) 봄 왜국의 계속되는 침략기도와 비등되는 여론으로 하여 조정에서는 전라좌수사로 리순신을, 우수사로 리억기 등 명망있는
장수들을 배치하여 남해안방비를 강화하게 하였다. 《제승방략제》를 《진관제》로 다시 바꾸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어서 수습을 할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이때처럼 좌의정 류성룡이 이미 없는 리률곡을 생각한때는 없었다. 리순신장군은 좌수사로 내려가 허물어진 군사기강을 바로잡고 성첩을 수축하며 봉화대를 고쳐쌓고 판옥선, 대맹선과 같은 큰 싸움배도 만들었다. 이때 수영에서 죄없이 쫓겨나 남의 집 부러진 상다리나 농짝 같은것을 고쳐주던 옥지라는 목수의 재간을 알고 리순신장군은 그를 도목수로 삼고
침식을 함께 하며 큰배들을 만들고 대장쟁이들을 모아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되는 거북선이라는 쇠배도 만들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어찌 성의와 자기
재간을 아꼈겠는가. 이것 한가지만으로도 리순신장군의 인품과 우국지정을 알게 된 백성들은 앞을 다투어 수군을 도왔고 멀리 이사를 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와 수영안팎은 들끓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이런 때에조차 《수군무용론》을 들고나와 수군을 철페하고 적을 륙지로 끌어올려다가 치면 되지 않는가고 하는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섬나라인 왜군은 수전에 능하며 또 우리 나라는 세면이 바다이므로 바다로 기여드는 놈들은 바다에서 쳐물리쳐야 한다고 리순신장군은
강하게 주장을 하였다. 류성룡이 이 주장을 지지하고 장군의 사업을 적극 도왔다. 그해 3월 초닷새날 리순신장군은 자기 일지에다 이렇게 썼다. …좌의정이 편지와 《증손전수방략》이라는 책을 보내여왔다. 읽어본즉 물과 륙지의 전투에서 불로 공격하는 등의 일이 하나하나 서술되여있었다. 실로 만고의 기이한 의론이다.… 이무렵 왜국의 오사까성은 날마다 붐비고 관백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전국의 대소령주들을 눌러놓은 기세로 살기등등해서 조선침략을 위한
구체적전략을 꾸미기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실로 그의 하루일과는 눈코뜰사이가 없었다. 쯔시마도주 종이지(소 요시도모)도 도요도미의 부름을 받고 섬을 떠났다. 쯔시마는 우리 부산까지는 바람세 좋은 날이면 하루배길밖에 안되는 섬이다. 원래 그 섬은 농사지을 땅이 없는 자갈밭뿐이여서 우리 나라에서
보내주는 쌀과 곡식으로 큰 도움을 받아왔었다. 때문에 도주는 그 맛에 우리와 가까이 하면서 오히려 저의 본국과는 관계를 소홀히 해왔었다. 쯔시마는 우리 나라 배를 비롯해서 영나라, 류구, 남만 등지의 장사배들이 수많이 드나들고 또한 왜구들의 근거지로도 되여왔다. 그러다나니
차츰 왜국본토와 우리 나라에 량다리치기를 하게 되였으며 삼포왜란때를 비롯해서 예로부터 여러 란을 일으키는데서 쯔시마도주는 수많은 부정적역할을
놀고 그때마다 우리의 징벌을 받았다. 해마다 보내주는 세사미(보내는 쌀)의 중단, 또는 삭감을 놈들은 제일 무서워했다. 그렇지만 놈들은 조선실정을 잘 알며 또 조선말을 거의다 하는 놈들이 돼서 본국의 사촉도 받아 수많은 렴탐질을 해왔다. 더우기 도요도미가 전국을 평정하고 본격적으로 조선침략을 기도하면서부터는 쯔시마도주를 조선침략의 길잡이로 내세우기 위하여 지꾸젠, 하까다 등
땅까지 그에게 떼주었다. 도요도미의 특별신임을 받아 우리 나라에 사신으로 여러번 나온 하까다의 중 현소(겐소, 저희 나라에서는 안국사 서당이라고 중의 벼슬이름으로
부름)도 원래는 쯔시마도주의 가신이며 조선에 사신으로 온 일도 있는 큰 렴탐군 평조신(다하라노리노브)도 쯔시마의 행정을 맡아보던 놈이다. 그리하여 장사군, 중 등 각양각색으로 조선에 드나드는 놈들은 거의가 쯔시마놈들이며 심지어 놈들은 조선에 관직까지도 요청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랍치도 해갔다. 조선의 조정과 왕에게 보내는 문서들은 거의다 겐소(현소)라는 중놈이 쓴것인데 그 오만하고 악랄한 문장은 사람들을 격분케
했던것이다. 쯔시마를 떠나 역시 하루배길인 미끼섬을 거쳐 왜국본토에 오른 쯔시마도주는 제 장인인 고니시에게로 갔다. 도요도미에게서 각별한 신임을 받는
고니시 유끼나가는 쯔시마(대마도)도주를 제 공로를 세우는데 써먹기 위하여 양딸을 그에게 주어서 사위로 삼았던것이다. 오늘 도요도미는 아침부터 조선국왕에게 재차 사신으로 파견했던 겐소의 렴탐보고와 조선의 조정형편 그리고 민심동향을 청취했다. 그가 겐소를 사신으로 등용한것은 칼질밖에 모르는 살기띤 사무라이보다는 외교에서 중을 내세우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더우기 겐소는
학문과 불교수양이 높은 학승으로서 국내에서 명망이 높은자인것이다. 도요도미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최근년간에 조선의 남해안인 가리포, 홍양 등지를 일부러 찔러본데 대하여 조선조정의 태도는 어떻던고?》 그것은 조선조정의 반향을 알아보려고 일으켰던 가리포왜구사건이였다. 겐소는 합장을 하고 대답을 했다. 《군사를 시켜 치게 했을뿐 조정에서는 별로 관심을 돌리지 않소이다.》 《그것은?》 《조정대신들이 당파싸움으로 여념이 없기때문이라고 생각하옵니다.》 《음―》 놈들은 일부러 잔인한 학살만행과 략탈, 주민랍치까지 감행했던것인데 겐소의 말을 듣자 잰내비상판의 삼각수염을 쓸면서 만족한듯 도요도미는 또
물었다. 《조선벼슬까지 한 다히라 가도쯔기가 충주라는 곳에서 백성놈들에게 매맞아죽은 사실에 대해서는?》 《예, 그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돌리지 않고있소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윽윽거리고있소이다.》 《음…》 도요도미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 조총 두자루는?》 그것은 조총 두자루를 조선왕에게 선물이란 명목으로 보낸것인데 그 반응을 물어본것이였다. 《그것도 왕이 한번 보고 군기시에 넘겼는데 그후 그것은 어데로 갔는지 그 행방조차 모르고있는 형편이오이다.》 이 말에 도요도미는 희색이 만면해서 탁자를 탕 치며 《됐다, 됐어. 저희들이 도륙당할 총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무관심하다면야, 하하하…
그까짓 백성놈들이야 암만 윽윽거려도 그놈들은 맨손인데 걱정할게 없는게구…》하고 쾌재를 올렸다. 그런데 겐소의 통보자료속에는 검은 장삼을 입고 조선땅을 싸다니던 그 중놈의 정탐자료가 큰몫을 차지하고있었다. 도요도미는 겐소를 내보내고나서 대기하고있던 사까이(일본 서부항구)의 대무역상인 고니시와 그의 아들 고니시 유끼나가, 쯔시마령주 소 요시도모를
밀실로 불렀다. 그들에게 금잔이 철철 넘게 친히 술을 따라 권하고난 도요도미는 큰 탁자우에 조선과 명나라지도를 펼쳐놓았다. 지도에는 왜군이 조선을 거쳐 륙로를 통하여 명나라로 쳐들어갈 침공로와 조선남해를 거쳐 서북쪽으로 북상해서 명나라로 향하는 수군침공계획표식이
그려져있었다. 도요도미는 고니시 유끼나가의 애비를 쳐다보며 물었다. 《고니시상, 어떻소? 당신의 무역선배길과 우리의 수륙병진정책이?》 《과시 천하영걸이 아니고는 생각하지 못할 웅략이올시다. 저도 적극 뒤를 받쳐드리겠소이다.》 고니시는 도요도미가 저에게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때문에 자기앞에 작전지도까지 펴놓았는가 하는 속심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한수를 더 떠서 그를
추겨올렸다. 도요도미는 국내동란때 교또, 오사까와 서쪽 무역항들인 나가사끼, 사까이 등의 큰 장사군들의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왔던것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이 신흥상업재벌들의 부추김을 받아 해외침략까지 마음먹게 된것이다. 국내동란을 평정하는데서도 도요도미는 특히 고니시와 하까다의 가미야마에게서 막대한 지원을 받았고 그들 역시 무기무역 등에서 큰 리득을
보았던것이다. 그래서 고니시는 앞으로의 해외침략에서도 제 장사를 위하여 도요도미를 지원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의 아들 고니시 유끼나가까지 부른것은 그가 도요도미의 오른팔이 되여 국내동란때도 활약해온터이지만 조선침략군의 선봉장을
맡기겠다는것을 은근히 내비쳐서 장사군인 그 애비의 지원을 더 크게 받자는것이였다. 《감사하오이다. 이 각별하신 은의에 저희 부자가 무엇을 아끼겠소이까.》 고니시부자는 청다다미우에 넙적 엎으려 감사를 드렸다. 도요도미가 소 요시도모에게도 일본수군의 배길잡이를 잘하고 렴탐질을 더 잘해서 공을
세우면 후한 상을 주겠다고 하면서 당분간은 조선조정을 슬슬 구슬려 왜구출몰에 대한 허위통보도 보내며 조선이 우리의 출병계획을 모르게 하라고 하자
그도 청다다미에 머리를 박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날 도요도미는 고니시 유끼나가에게 금투구를 씌워주었다고도 한다. 그들 다음으로 불러들인것은 전부터 깊은 련계를 가지고있던 뽀르뚜갈, 영국, 네데를란드의 선교사들과 무기장사군들이였다. 그들과의 밀담에서는 시급히 더 많은 조총과 싸움배를 사들일 흥정을 했다. 도요도미는 다음으로 자기가 굴복시킨 대소령주들을 큰방에다 불러들였다. 갑옷투구를 갖추고온 놈, 제 집안가문을 박은 하오리 하까마(례식옷)차림으로 온 놈들이 도요도미앞에 머리를 조아리였다. 사실 볼품으로 말하면 제일 체소하고 보잘것 없는 잰내비상판인 도요도미가 하루라도 피를 보지 않고는 못견디는 이 포악한 사무라이들,
침략야망에 들뜬 놈들, 제 땅과 가병들을 많이 빼앗겨서 볼이 잔뜩 부은 놈들 특히는 복종하는체는 하지만 관동8주에 큰 세력을 가진 대령주인
도꾸가와 이에야스와 같이 속으로 코웃음을 치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앉았다는것은 하나의 기형적현상이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도요도미가 큰소리로 웨쳤다. 《제공들! 조선과 명나라로 출병을 해서 야마도 사무라이들의 위용을 마음껏 떨칠 준비들을 갖추라!》 그의 목소리는 쨍쨍한 쇠소리를 내고 두눈에서는 푸른 불꽃이 튀였다. 그 푸른 불빛,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수 없는 그의 특징이며
상대자에 대한 위협의 불길이였다. 《하!》 다이묘(령주사무라이)들은 일제히 다다미에 손을 짚고 깊숙이 머리들을 숙였다. 《지금 조선국은 자는 범과 같다. 아니 술취한 곰이다. 그러고보면 그 나라는 막대꼬치 하나 없는 백사지와 같은 땅이다. 우리의 출병구실은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빌리자는것이다. 알겠는가?》 방안이 술렁거렸다. 도요도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내 그대들에게 몇가지 이를 말이 있다. 그 첫째는 그대들이 점령하는 그 나라 백성, 땅, 재부는 모두 그대들의것이라는것이다.
둘째는 그것을 점령할 때까지는 〈지장은 무식어적식〉(슬기로운 장수는 적의 식량을 빼앗아먹는데 힘쓰라.)이라는 말을 명심하라는것이다. 셋째는
그대들의 전공표식은 조선놈들의 코다. 코는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것이다. 모가지대신 코를 소금에 절여가지고와서 상을 받게 하라.》 이것은 총과 칼만 가지고가면 세상만사를 다 해결할수 있다는 악독한 침략자, 강도의 론리였다. 그날로 도요도미는 조선침략을 위한 2
000척의 싸움배를 만들것을 명령하고 뽀르뚜갈에서 조총을 더많이 사들일것을 무역상인들에게 지시하고 그 제작에도 열을 올리도록 했다. 그리하여 왜국은 조선침략을 위하여 온 나라가 들끓었다. 그런데 도요도미에게 한가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께름직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열을 올려 고아대는데도 별 반응이 없는듯 묵묵히 앉아있던 도꾸가와 이에야스때문이였다. 듬직하고 말이 적고 풍채가 름름한
60여세의 늙은이는 사람의 배속을 꿰뚫어보는듯 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만 있었던것이다. 민간에서는 오다노부나가(도요도미의 상전)와 도요도미 히데요시, 도꾸가와 이에야스의 기질을 두고 뻐꾹새를 다루는 자세를 빌어 돌아가는 풍요가
있었다. ―뻐꾹새,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이것은 오다노부나가의 기질이였고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 이것은 도요도미의 기질이였고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마. 이것은 도꾸가와의 기질을 풍자한것이였다. 그런데 도요도미는 뻐꾹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는 도꾸가와에게 항상 무엇인가 짓눌리우는 심정인데 이번 모임을 통하여
그것을 더 력력히 느꼈던것이다. (죽여버릴가? 아니야. 그놈은 함부로 못다칠 놈이야. 발목을 단단히 묶어서 제 령지안에 처박아두어야지.) 과연 도요도미는 조선출병시에 주로 서부왜국의 사무라이를 많이 동원시키고 동북부지방 사무라이들은 도꾸가와를 누르는 힘으로 남겨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