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7 장

《수리개는 사내자식의 넋이라오》

1

 

쩡… 쩡… 쩡…

북대봉산발에 망치소리가 울려퍼진다.

황봉이가 자기 집옆에 있는 큰 차돌바위를 까내고있는것이다. 정대끝에 번쩍번쩍 불꽃이 일고 주먹만큼씩한 차돌멩이들이 떨어져 무드기 쌓여진다.

40고개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는 황봉의 귀밑머리엔 벌써 반나마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이마엔 세파에 부대껴 깊이 패여진 주름살이 두드러졌다.

소슬한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오돌막옆의 오동잎처럼 어쩔수 없는 인생의 조락기를 벌써 말해주는듯 지난날 그렇게도 이글대던 두눈엔 감출수 없는 서글픈 빛이 어리여있었다.

힘이 진한듯 잠시 쇠망치를 놓은 그는 련련히 뻗은 아득한 산발들에 눈길을 돌리더니 옆에 놓인 손때절은 물푸레나무지팽이를 짚고 일어서서 깎아세운 돌사람인양 한식경이나 움직일줄을 모르고 서있었다.

붉디붉은 단풍이 산벼랑들에 불길처럼 타는데 그 산발들을 스치듯 철새떼가 날개시위소리높이 날아갔다.

그것을 바라보는 황봉은 부글거리는 심정을 억제할수 없는듯 혼자말로 뇌이였다.

《덜된놈의 자식… 애비속을 이렇게 태우다니.…》

그는 지금 산새처럼 이 골짝에서 훌쩍 날아올라 인간세상을 돌아치는 아들걱정으로 가슴을 조이고있는것이다.

이런 일이 해가 갈수록 더 잦아져서 황봉의 마음은 항상 이렇게 조마조마해있는데 요즘도 아들은 집을 나간지 나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있는것이다.

(저리도 산발은 웅기중기 겹쳐섰건만 그녀석의 발길을 막아내지 못한단 말인가?)

세해전에는 이 골짝으로 돌아오며 다시는 인간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들이였다. 그때는 철옹성처럼만 느껴지던 북대봉산발들도 오늘은 철새처럼 날아넘는 아들의 발밑구름굽이만 같아 마음이 허전해진것이다.

그보다도 황봉의 마음을 조이는것은 제 신변에 어떤 비밀이 붙어다니는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세상을 돌아치다가 어떤 불의지변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였다.

피투성이인 인간세상에서 허위단심 아들 하나를 생의 지팽이로 의지하고 사는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돌아오면 《도비》의 자식이니 정신 버쩍 차리라고 아예 말해줄가? 아니다. 그것은 펄펄 뛰는 내 자식의 생목숨을 내 손으로 조여주는것이나 같다. 차마 못할 일이다.)

이런 때면 《여보, 제발 그 말만은… 그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에는 내 자식은 소나 말처럼 부자놈에게 매여서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는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당신이 아니예요.》 하는 안해의 애절한 목소리가 귀전을 때리는듯 했다.

이렇게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오호흥… 하는 말울음소리가 아래골짜기에서 들려왔다.

와뜰 놀란 황봉은 다급히 지팽이를 앞으로 내짚으며 골짜기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이녀석이 끝내 일을 저지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때 골짜기아래 돌바위사이에서 오추마가 기세좋게 한번 더 오흥소리를 지르며 사냥군차림의 중년사나이를 태우고 나타났다. 소매가 좁은 웃옷에 테좁은 갓을 쓰고 미투리감발에 견마잡이도 달지 않은 그는 활과 전통을 어깨에 메고 장검을 허리에 찼는데 부담짐우에는 중치막이 챙겨져있었다.

늘씬한 앉은키에 해맑은 얼굴과 보기 좋게 가꾼 까만 다복수염을 본 황봉은 두눈을 빛내이며 《아, 선다님!…》하고 소리치더니 지팽이를 쿵쿵거리며 그의 앞으로 어푸러지듯 달려갔다. 중화선비 림중량이였던것이다.

《황서방―》

림중량도 말에서 뛰여내리더니 두팔을 쩍 벌리고 마주 달려와 쓰러질듯 품에 안기는 황봉을 붙안았다.

《이거 얼마만이요? 내 한번 온다온다 하면서도…》

《뵙고싶었소이다. 꺼져가던 목숨을 살려주신 선다님을 잊지 않고 살고있소이다.》

황봉은 목이 메여 더 말을 못이었다. 더우기 오늘같은 날에 와준 그가 고마왔다.

집앞의 오리나무에 오추마고삐를 맨 다음 림중량은 오동잎 지는 그의 오돌막 앞뒤뜨락과 집두리를 둘러보며 이 심산유곡에서도 이모저모 살뜰히 꾸려놓은 손길들에서 인간세상을 잊지 못하는 황봉부자의 심정을 읽었다.

집두리에 정성들여 가꿔진 터밭이며 살구나무, 복숭아나무 등에도 빼앗긴 고향의 흙냄새, 꽃냄새가 슴배여있으리라. 사립문안 울바자밑에서 풍겨주는 산국화무지의 그윽한 향기에서도, 오막살이지붕에 딩굴고있는 앙증한 박통들에서도 그 어데 가서나 우리 백성들이 가슴깊이에 간직하고 사는 소박하면서도 풍만한 향토적인 정취, 회상만 해도 그윽해지는 고향을 못잊어하는 살뜰한 그 심정이 뜨겁게 느껴졌다.

돌자갈밭을 옥토로 가꾼 땅에 머리숙인 방망이같은 조이삭들이며 금방 튀여날듯 알차게 잘도 여문 콩꼬투리, 팥꼬투리에서도 농사군의 끈덕진 땀방울을 느꼈다.

추녀밑에 달린 우리안에서 채바퀴를 돌리는 다람쥐며 언제 왔던지 긴 뿔을 추켜들고 다가오는 순하디순한 흰점박이사슴들에게서도 인적없는 외로운 심산속에서 살지만 황봉이네의 순결하고도 지혜로운 인간본성의 생활정서를 읽을수 있었다.

림중량은 아직은 인간세상을 다 모를 아들을 데리고 이 심산속에서 귀밑머리 희여진 황봉을 다시 바라보았다.

뜨거워진 마음으로 집두리를 다시 돌다가 무드기 쌓여진 차돌멩이무지와 정대, 쇠망치며 뜯기우고 뚫리워서 온통 벌둥지처럼 구멍이 숭숭한 큰 차돌바위에 눈길을 돌린 그는 황봉에게 물었다.

《저건 어찌된것들이요?》

《제 자식이 이 애비 원쑤를 갚겠다구 3년동안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수백번씩 돌팔매질을 익히느라고…》

《음…》

림중량은 놀란 눈으로 그것들을 다시한번 눈여겨보며 손아귀에 드는 하얀 차돌멩이 하나를 주어들었다.

《성천부사가 저 초불바위에 치성기도를 드리러 왔을 때 그 부사놈의 골통을 깨놓겠다구 던진 돌멩이로 떡시루만 깨놓은 다음부터 그놈이 이를 사려물고 이렇게…》

《음… 성천부사이야기는 나도 들었소.》

림중량의 눈앞에 오돌차고 총명하던 황바위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그러니까 하루에 백번씩만 익혔어도 한해에 3만 6천번씩 돌팔매질을 한셈이군. 그렇게 3년세월이 넘도록… 음…》

마음속에 불이 당기면 강철도 뚫는다는 리치를 생각하며 혼자말처럼 하는 림중량의 얼굴에는 경탄의 빛이 어렸다.

《이 차돌바위뿐아니라 이 근방의 크고작은 바위들에 모두 저렇게 구멍들이 뚫렸소이다.》

그러면서 황봉은 이 차돌바위가 원래는 메돼지모양을 하고있었는데 주둥이도 코도 눈, 귀도 다 그 돌멩이에 얻어맞아서 보다싶이 오늘은 저렇게 밋밋하게 되고말았다고 했다.

《그래서 저도 이렇게 돌멩이를 깨주기는 하오이다마는 이까짓 돌멩이가 무슨 맥을 추겠소이까? 산짐승사냥에나 쓸모가 있겠는지… 그리고 이 험한 세상에서 제 몸이나 지켜내게 하려구…》

《왜 그렇게만 생각하오?》

림중량은 돌멩이를 들고 그 무게에서 황바위의 오돌찬 기질의 무게라도 가늠해보는듯 하더니 생각깊은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내 그녀석을 어릴적부터 잘못보지 않았구나.)

그의 마음은 흐뭇해졌다.

《참, 그애가 어째 보이질 않소? 이젠 그애가 열여섯살이 되였겠는데…》

《예, 그런데 영 철딱서니가 없어서…》

아직도 아들에 대한 노여움이 풀리지 않은채 오추마의 소담한 갈기를 쓸어주던 황봉은 불끈거리는것이 다시 치밀어올라 하소연겸 푸념겸 한마디 덧붙였다.

《자식이란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지 품밖으로 삐여져나가면 자식이 아닌가보오이다.》

곡절이 있는듯한 황봉의 말에 림중량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녀석이 수리개가 돼서 이 산골짝에서 훌쩍훌쩍 날아나군 하는게 아니요? 오늘도 없는걸 보니, 하하하…》

황봉은 신통히도 자기 심중을 알아맞추는 그를 다시한번 바라보았다.

번뜩이는 눈으로 황봉이의 소침해진 모습을 훑어보고난 림중량은 어린시절의 황바위의 모습을 눈앞에 다시 그려보며 이제는 더 세차졌을 그의 성깔과 곡절많은 인생행로를 헤쳐나가는 이 아버지사이에 그 어떤 부조화가 생겼으리라는것을 직감하였다.

림중량은 오추마앞으로 가서 부담짐을 풀더니 배가 부른 오지술병을 꺼내들며 말했다.

《자, 이리 오우. 저 개울가로 가서 애비속 태우는 그녀석의 이야기를 좀 들어봅세다. 내 진작 한번 온다는 노릇이 아버님께서 그동안 내내 병석에 계시여서…》

묵은병, 긴병에 효자가 없다지만 부모에게 효성이 극진한 림중량은 몇해동안 거의 아버지곁에서 떠나지 못하다가 요즈음 좀 병세가 나아져서 이번에 서설봉로인을 만나보고 여기로 온것이였다.

그는 3년전에 서설봉이 자기에게 앞날의 큰 재목감이니 황바위를 잘 돌봐주라던 부탁을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아니, 친환(부모의 병)까지 있는데도 이렇게 어려운 행차를 하셨소이까?》

황봉은 고마왔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아들이 돌아오면 주려고 옹노놓아 잡은 메돼지 뒤다리를 들고 개울가 너럭바위로 나갔다.

 

2

 

돌가마밑에 삭정이불을 살리는 황봉에게 림중량이 물었다.

《그래, 그녀석이 어떻게 집을 뜨군 하우?》

황봉은 삭정이를 든채 심중에 쌓인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선다님도 아시다싶이 그때 피눈물을 뿌리며 그앨 앞세우고 이 산골짝으로 다시 들어온 제가 아니오이까.》

《그랬지.》

《들어올 때 다시는 사람세상에 나가지 말자고 한 이 애비말에 그렇게 하겠노라고 하던 놈인데 몇달도 되기 전에 훌 이 골짜기에서 날아나는게 아니겠소이까. 자식을 기르는것도 농사와 같다더니 이 인적없는 외진 산속에서 애비 혼자 자식을 키운다는게 저 돌자갈밭농사보다도 몇곱절 더 힘이 드오이다.》

삭정이연기때문인지 두눈을 슴벅거리며 하는 황봉이의 절절한 이야기속에 어느덧 매방석만한 하늘을 타고 넘어간 해빛의 역광마저 사라지고 골짜기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자기를 찾아준 림중량이 기대여도 될 든든한 언덕처럼 느껴진 황봉은 간곡한 심정을 호소하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 험한 산속이 나서부터 밟고 자란 산발이여서 벼랑도 골짜기도 날으듯 타고넘으며 사나운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따위엔 꿈쩍도 않는 녀석이옵지요. 그런데 그녀석이 그렇게 통이 크게 놀아서 제 애비속을 태울줄은 몰랐소이다.》

《허, 무슨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군.》

황봉은 이제껏 혼자만 안고 묵새기지 못하던것을 다 털어놓았다.

《성천부사의 패거리들이 와서 란장을 치고간 그날밤이였소이다. 칠성이를 떠나보내고 온 아들놈이 〈아버지, 칠성형님은 정말 고마운 사람이예요. 글쎄 아버지랑 나의 뒤걱정을 없애주려구 아버지랑 나를 업어다가 비류강물속에 처넣었다구 호방놈에게 말했대요. 그리구 소문을 크게 냈대요. 그러면서 이제는 아무 걱정말고 살라고 했어요.〉하고 좋아하는게 아니겠소이까. 그러나 저의 가슴은 철렁했댔소이다. 그 소문을 그의 어머니랑 한서방이 듣는다면… 하는 생각에서 말이오이다.》

그러나 아직 그것까지는 생각 못하는 황바위였다.

그는 그후부터 부사놈의 골통을 못깨고 떡시루만 깬것이 통분해서 날마다 돌멩이질익히기를 했는데 언제든지 그놈의 골통을 꼭 깨여놓고야말겠다고 윽윽거렸다.

그러나 전에없이 수심에 잠긴 아버지를 보자 아들은 걱정이 되여 캐물었다. 아버지는 칠성이 어머니와 한서방이 칠성이소문을 듣고 놀랄 일이 걱정이 돼서 그런다고 한마디 내비쳤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일어나보니 바위놈이 없어진게 아니겠소이까. 부엌부뚜막에다 애비가 먹을 몇끼의 밥을 지어놓고 말이외다.》

《음, 그래서…》

《그걸 보는 순간 그녀석 성미에 틀림없이 밤나무골에 갔구나 하는 생각이 데꺽 들었댔소이다. 그러고보니 아직 어린것에게 애비가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후회도 들고 100리길이 넘는 그 험한 산길을 어린게 어떻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여졌댔소이다.》

《그랬겠지.》

《저는 꼬박 이틀동안을 사립문밖에서 지팽이를 짚고서서 그놈을 기다리며 돌아오면 단단히 발목을 매놔야지 그렇지 않다가는 앞으로 무슨 변이 생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댔소이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새벽에 〈아버지.〉하고 다급한 소리를 지르며 그녀석이 달려오는게 아니겠소이까. 그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마음이 조여지는데 〈칠성형님이 아버지랑 나를 비류강에 처넣었다는 소문을 듣고 글쎄 그의 어머니가 실성을 했대요.〉하며 울먹이는게 아니겠소이까.》

《저런.》

림중량은 꼿꼿이 허리를 폈다.

《가보니 한서방네 집이 텅 비여있어서 어리둥절해있는데 이웃에 사는 갑년이 어머니라는 아낙네가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성천땅에 실성한 삼촌어머니를 두고싶지 않다면서 한서방은 온 식구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고 알려주며 눈물을 흘리더라는것이였소이다. 저는 정말 그때 그 어진 어머니를 미치게까지 한 죄를 지은 마음으로 저같은게 세상에는 왜 태여났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댔소이다.》

《음…》

《그런데 그 험한 길을 갔다오느라고 옷이 가시덤불에 찢어지고 신바닥이 거덜이 난것을 보니 녀석을 욕질할수도 없었소이다.》

《욕질을 하다니.》

림중량이 놀라듯 말했다.

《그런데 또 기막힌 일은 그놈이 성천부사골통을 박살내고야말 마음으로 성천고을에 들려보니 성천부사가 이 골짝에 왔다 돌아가자바람으로 서울로 가고말았는데… 글쎄 가까이에 있는 어머니랑 누이동생을 한번 만나보고 가겠다는 칠성이를 륙모방망이찜질을 시켜 우격다짐으로 서울로 끌고갔다는게 아니겠소이까. 선다님! 왜 세상이 이다지도 모질고 악착하오이까.》

림중량은 받아안은 충격으로 뒤짐을 지고 너럭바위우를 거닐며 《삼일천하》를 하고 뛴 놈의 죄행도 이렇게 큰데 우리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랴 하는 생각에 잠기였다.

《그런데 녀석이 칠성이를 생각해서 우리 부자가 살아있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노라고 해서 마음이 놓였댔소이다.》

《음, 정말 용한 놈이군.》

림중량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두번째로 바위녀석이 뜻밖의짓을 한것은 그해 겨울이였소이다. 그때도 훌쩍 집을 떠난 그녀석이 글쎄 80리 산길인 화엄산에 달려가서 서설봉나으리댁에서 지워주는 소금자루를 메고 나타난게 아니겠소이까. 정말 어이가 없었댔소이다.》

황봉은 그날을 다시 생각하는듯 쓴웃음을 지었다.

조그마한 어깨에 소금자루를 걸머메고 노루, 사슴도 눈속에 다리가 묻혀서 긴 목을 빼들고 애처롭게 우는 그 험한 산발 눈속을 뛰여갔다온 아들을 보는 황봉은 어안이 벙벙해있다가 그의 두어깨를 그러잡고 《너 또 이런짓을 할테냐, 응? 애비를 위해 이런짓을 한다면 이 애비는 죽고말겠다.》하고 소리를 칠 때 난생처음 보는 아버지의 격노한 얼굴앞에 아들은 말없이 머리를 숙였었다.

그의 뒤를 멀리서 지켜주며 따라온 유신검이 《이애가 정말 이 북대봉호랑이를 거느리고 다닐 녀석이요.》하고 웃으며 나타나지 않았던들 아버지의 옹골진 주먹이 아들의 어깨우에 내려질번 했었다.

《그런데 그놈이 자랄수록 점점… 이제는 욕을 해도,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니…》

황봉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끊고 사그라져가는 삭정이불을 다시 후후 불었다.

석간수 흐르는 물소리가 정적을 돋구었다.

《그후부터 바위놈은 집옆에 있는 저 바위를 깨가지고 낮에도 밤에도 짬만 있으면 돌팔매질을 했는데 그 솜씨가 날을 따라 놀랄만큼 늘어서 오늘에 와서는 그 차돌멩이가 겨누는것이라면 무엇이고 맞히지 못하는것이 없게 되였소이다. 심지어 머리우를 나는 자그마한 산새까지도 그 돌멩이를 피하지 못하고 달리는 산짐승도 뿔이면 뿔, 발목이면 발목, 마음먹은 곳을 때리지 못하는 일이 없게 되였소이다.》

여기까지 말하고난 황봉은 말을 끊었다.

그것은 아들의 그 돌팔매솜씨가 늘수록 (정말 이녀석이 그 돌멩이팔매질재간을 믿고 함부로 날뛰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지기때문이였다.

오만가지 걱정이 겹쳐지는 황봉은 아들을 붙잡고 제발 양덕고을에만은 가지 말라고 사정을 하다싶이 했었다. 피를 나눈 부자지간에도 말하지 못할 인생의 비극을 두고 항상 황봉의 마음은 살얼음우를 걷는 심정이였다.

《그렇게 두해가 지난 어느날 밤, 그놈은 그동안 결심을 단단히 한듯 〈아버지, 아무래도 칠성형님네 식구를 찾아봐야겠어요.〉하고 말하는것이 아니겠소이까. 너무도 당돌한 그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제가 미처 대답을 못하는데 〈아버지! 그럼 갔다오겠어요.〉하고는 또다시 훌쩍 집을 떠났소이다.》

《허, 그애가 일찍부터 인간의 의리를 아는 애가 되였구려. 참 장한 아들을 두었소.》하고 림중량은 경탄하였다.

《?》

림중량의 말에 황봉은 한숨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이야 제가 이 한쪽발로라도 8도강산을 다 뒤지여서 그 식구들을 찾아내는게 인간의 도리였지요.》

갈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그는 삭정이불우에 메돼지다리를 구웠다.

림중량은 오지술병의 술을 따라 한잔 쭉 들이키더니 한잔을 다시 부어 황봉에게 주며 물었다.

《그래, 그애가 그때 어데를 갔다왔답데까?》

《예, 그때 그녀석은 밤나무골로 다시 가서 그 갑년이 어머니에게서 원래 쌍가마네 고향이 중화땅 꽃골이라는걸 알아가지고 그곳에서 150리나 되는 거기로 찾아갔는데 쌍가마네가 살았었다는 오막살이뜨락에는 잡초가 무성해있고 이웃에 사는 한 아주머니가 자기들도 쌍가마네 소식을 몰라 궁금하다고 걱정을 하더라고 했댔소이다.》

황봉은 다 익은 메돼지다리를 칼로 저며 림중량앞에 놓아주면서 그때 아들이 돌아와서 씩씩거리며 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꽃골에서 돌아오던 황바위가 어느 한 마을에 들어섰을 때였다.

왕가물에 마을의 곡식들이 다 타들고있었다. 불붙는 부지깽이 한끝만 대도 확 타번질것만 같은 바싹 마른 초가집마당에서 아래도리를 못가린 서너살짜리 사내아이가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부여잡고 《엄마, 나 배고파.》하고 떼질을 하며 울었다. 아무리 달래여도 아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자 어머니는 《이놈아, 밥같은 소리 하지두 말아. 그렇게 밥이 먹고싶거든 저기 땅임자네 논밭을 매고있는 너의 아버지한테나 가서 달라고 해라.》하며 아들의 엉덩짝을 철썩 때렸다.

그러자 어린아이는 더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머니는 그 볼기짝을 쓸어주며 고개를 돌리고 눈굽을 닦았다.

타드는 벼포기들에 길어온 물을 주고있던 농군들이 《여보게, 자네 아이가 또 저의 어머니를 못살게 구누만.》 《어린게 오죽하면 저러겠나.》하고 말들을 하는데 아이 아버지는 수굿이 머리를 숙이고 타드는 벼포기들에 모금모금 물을 주고있었다.

《제길, 이렇게 해야 땅임자 밥사발이나 높여주는건데… 세상에 머슴군, 종놈들은 왜 생겼누.》

한 농군이 목에 걸린 소리를 하자 아이 아버지는 혼자말하듯 한숨을 섞어 말했다.

《밥이야 그가 먹겠지만 이 곡식들이야 무슨 죈가. 우리가 논밭에 곡식을 가꾸는 재미마저 모르고 산다면야 그게 무슨 농사군의 사는 보람이겠나.》

바위는 그들앞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상일을 좀더 안것 같지만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이때 저쪽에서 뿔관을 쓴 땅임자가 부채질을 해주는 상노아이를 데리고 여덟팔자걸음으로 걸어오다가 김매는 농군들을 보고 《그래, 땅을 이꼴로들 가꿀텐가, 엉?》 하고 소래기를 질렀다.

그를 본 아이 어머니는 《에그, 땅귀신 온다.》하더니 아이를 둘쳐업고 굴뚝뒤로 돌아가 숨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황바위는 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 세상엔 왜 그런 땅귀신이 있고 어린 아들이 배고파 울어도 밥 한술 못주는 농사군들이 있어야 하나요?》하고 안타까이 물었었다.

《저는 그때 세상일을 따져묻는 아들을 욕질할수가 없었소이다. 내 자식이 세상일에 일찍도 눈을 뜨는구나 하는 생각은 했댔지만 제가 세상리치를 잘 모르다나니 애비구실을 못했댔소이다. 선다님, 정말 이 심산속에서 혼자서 자식을 키우는것이 이렇게 힘든줄은 몰랐소이다.》

황봉은 어깨숨을 길게 내쉬였다.

《그런데다가 나이가 들면서부터 차츰 더 고삐풀린 수말처럼 날뛰는 그녀석을 어떻게 잡아끌어야 할지 마련이 가지 않소이다. 천둥치는 날에 낳은 놈도 아닌데 돌개바람에 휘감기운 놈처럼 저렇게 돌아치니 그러다가 무슨 일이라도 치는 날에는… 꼭 설피게 발목을 매놓은 수리개같기도 해서 언제 푸드득 이 애비옆에서 영영 날아날지 통 마음이 놓이질 않소이다.》

황봉의 목소리는 절절하였다. 그런데 림중량은 뜻밖에도 호걸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일은 무슨 일을 친다고 그러우.》

불안과 근심으로 오그라든 아버지의 마음을 펴주려는 생각에서 일부러 높인 웃음소리리라.

《그래, 이 북대봉산발을 수리개처럼 날아도는 그녀석을 무슨 수로 한평생 품안고만 있겠소. 자, 술이나 한잔 더 드우.》

림중량은 술 한잔을 따라 황봉에게 권했다. 머리우 하늘로 엄청나게 꼬리가 긴 별찌가 흘러날으며 그 빛발을 술잔에 잠그어주었다.

여물대로 여문 가을귀뚜라미소리가 개울가 풀숲에 한벌 쫙 깔린 밤이다.

《그래서 〈수리개는 사내자식의 넋〉이라고 하지 않소. 실컷 날아다니도록 그 날개를 붙잡지 마우.》

《예?》

《그애가 이젠 자라서 사람세상의 물정도 알고 더 깊이 세상리치를 알려고 하는게요. 그러니 얼마나 장하오. 그렇지 못하다면 몰라라 그런 장한 아들을 두고 이렇게 고시랑거리고있다니, 원… 허허허.》

《저… 선다님, 그건 제 심정을 모르시구 하시는 말씀이오이다.》

황봉은 무엇인가 하려던 말을 더듬는데 《모르긴 뭘 모른다구 그러우. 자, 어서 그 술이나 쭉 드우. 사람이 사람세상을 그리워하고 알려고 하는것은 인간의 본성이요. 뭐 황서방은 살고싶어서 이 유벽한 심산속에서 사우? 그 장한 아들을 잘 키워서 사내대장부구실을 시켜야지 그 죽지를 잔뜩 붙잡고있어서야 되우.》

림중량은 열기띤 목소리로 하나하나를 꼽듯이 말했다.

《열세살나이에 벌써 포악한 부사놈의 동헌에 쇠불갈구리를 내던진 대장부의 기상이 있고 칠성이네 집일이 걱정이 되여 발을 동동 구르는 의리가 있고 아버지를 위해 험산준령 눈속길을 넘나든 효성이 지극하고 세상물정을 알려고 애를 쓰며 특히 왜놈을 미워하는 내 겨레의 넋을 지녔으며 3년세월 돌멩이를 손에서 놓지 않은 매모진 마음을 가진 아들인데 얼마나 장한 아들이요.》

황봉의 구레나룻이 밤눈에도 눈에 뜨이게 씰룩거렸다.

《그 부사아들놈따위와는 견줄수도 없는 영특한 아들이 아니우. 번쩍거린다구 다 금덩이가 아니요. 비록 흙탕속에 묻혀있어도 옥은 제 빛을 간직하고 제 값을 지니고있는 법이요.》

림중량은 더 뜨거워진 목소리로 간절한것을 부탁이라도 하듯 《그애의 기를 꺾지 말고 앞날의 영웅호걸로 잘 키워내야 하오. 알겠소?》하고 말마디에 힘을 주는데 《선다님―》하고 황봉은 갑자기 림중량을 부르며 주먹으로 너럭바위등을 내리치더니 울부짖었다.

《선다님! 선다님은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오이다. 제 자식은 아무리 영웅감이라 해도 사람축에 못드는 놈이외다. 제 자식은… 제 자식은… 제 어머니가 이마에 〈도비〉라는 불도장을 찍히우고 여기로 도망쳐온 종의 자식이오이다.》

피를 토하듯 하는 그의 울부짖음에 풀벌레들도 울음소리를 멈추었다.

어느새 동녘봉우리에 보름달이 솟아오르고있었다.

《세상에 그게 알려지는 날에는 제 자식은 산송장이 된단 말이외다. 그런데 그녀석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도 양덕고을에는 조참봉이란 놈이 피둥피둥 살이 쪄있는데… 선다님! 사람세상 살기가 왜 이다지도 힘이 드오이까, 예?》

긴긴세월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비밀을 피를 토하듯 쏟아놓은 황봉이였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림중량에게서 가슴뜨겁게 느낀 황봉은 이밤 그에게 생명과도 바꿀 인생의 비밀을 다 털어놓은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무말이 없이 술잔을 든채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던 림중량이 이윽고 심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황서방, 그만하우. 내 이미 그것을 안지 오래오.》

《예?》

림중량의 뜻밖의 말에 황봉은 와뜰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바로 이때였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줄 알았던 골짝을 쩌르렁 울리며 《아버지! 선다님!…》하고 바로 그들옆의 개암나무숲속에서 황바위가 나타나더니 어푸러지듯 달려왔다.

《아니, 이게 황바위가 아니냐?》

림중량은 자기앞에 엎드려 흐느끼는, 밤눈에도 아름차게 쩍 벌어진 그의 어깨를 두팔 벌려 꽉 그러안아주었다. 헌헌장부로 름름하게 자란 그가 정말 대견스러웠다.

《바위야, 네가 이렇게 컸구나.》

《예, 이렇게 자라서 불쌍한 우리 아버지 가슴을 태워드리고있소이다. 선다님…》

그의 어깨에 크게도 파도가 일어 그칠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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