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 회)
제 7 장
《수리개는 사내자식의 넋이라오》
3
(1)
황바위는 아까부터 옆의 숲속에서 아버지와 림중량이 주고받는 말을 다 듣고있었던것이다.
나이들수록 세상일이 더 알고싶어진 그는 특히 아버지, 어머니에게 꼭 있을것만 같은 깊은 사연을 알려고 그리고 쌍가마와 그의 어머니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칠성이를 무슨 낯으로 대하랴 하는 생각에서 이번에도 아버지 모르게 양덕고을과 중화땅 꽃골까지 나갔었다. 그러나 저로서는 다 풀수 없는 세상일들을 이번에도 한가슴 받아안고 돌아오다가 오리나무에 맨 오추마의 울음소리를 듣고 눈이 커져 달려왔었다.
그런데 개암나무숲속에 들어섰을 때 뜻밖에도 개울가에 앉아있는 아버지와 림중량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게 되여 발걸음을 멈춘채 가슴을 조이며 있었던것이다.
황바위는 림중량과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자기의 타고난 기구한 운명이 아버지의 가슴을 그렇게도 태워서 검은 숯덩이처럼 되게 했다는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러기에 숲속에서 아버지의 피맺힌 목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을 치며 함께 울었고 림중량의 웅심깊고 사려깊은 말을 들으며 새롭게 눈이 트이고 심장이 높뛴 황바위였다.
《이놈아, 그렇게도 애비마음을 몰라준단 말이냐?》
이밤따라 황봉은 아들이 더 야속하고 매정한것 같아 거쉰 숨을 내뿜었다. 들먹이는 무쇠등판같은 황바위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달이 뜨는 하늘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림중량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말없이 뒤짐을 지고 너럭바위우를 거닐며 달빛이 퍼지는 산봉우리들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우리 어머니가 양덕고을 조참봉네 〈도비〉였다는걸 왜 진작 말해주지 않으셨나요? 부자간에도 못할 말이 있나요?… 내가 종의 자식이라는걸 알면 아버지, 어머니를 원망할가봐 그랬나요,예?》
아들은 아버지를 붙잡고 몸부림쳤다.
《아니다, 아니다. 너를 굴레쓴 짐승으로 만들지 않으려고… 이놈의 세상에서 종의 목숨은 죽은 목숨인걸…》
그래서 아들에게 웃는 얼굴 한번 못보여준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으랴. 림중량은 생각이 깊어졌다. 인간생활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고독, 그것과 맞서보려고 저 황봉이는 안해의 고향 살구꽃도 떠옮겨보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인간세상에도 나가봤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을 어떻게 밀어팽개쳤던가. 자라난 아들은 아버지의 고독을 풀어주려고 세상밖을 날아봤다. 무엇때문에 자기와 아버지는 인간세상속에 못들어가는가를 파헤쳐보려고 수리개처럼 북대봉산발을 날아넘어 가보기도 했을것이다. 그런데 기뻐해야 할 아들의 그 성장이 아버지의 그런 공포와 불안으로 되다니… 절통한 일이였다.
《선다님! 종들이 왜 천대를 받아야 하나이까? 나다니며 보니 세상에서 제일 뼈빠지게 일을 하는것이 머슴들과 종들이던데 어째서 종들은 대를 두고 피땀을 빨리우며 이마에 불도장까지 찍혀야 하나이까,예?》
황바위는 자기 힘으로는 풀수 없는 인간세상의 수수께끼보따리를 안은채 림중량앞에서 가슴을 쳤다.
《왜 우리는 이 산속에서 짐승들과만 살아야 하나이까? 우리도 사람인데 아버지와 함께 사람세상에 나가서 살고싶소이다.》
림중량은 홱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격동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게다! 그것이 사람이면 누구나 다 가지고있는 본성이다.》
그러면서 림중량은 황봉에게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아들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것은 아버지의 생각이 짧았던것 같소. 아들이 자라면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인걸.… 아무리 깊은 산골에 숨어서 산다 해도 인간세상과 떨어져 살수 없는것이 바로 인간이요. 그래, 여기서 산다고 황서방은 그 사람세상과 뚝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우?》
림중량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런 곳으로 황서방부부가 도망쳐오게 한것도 인간세상이고 저 아들의 목줄을 쥐고있는것도 바로 인간세상이요. 성천부사도 조참봉도 인간세상에서 이 산골에까지 기여들었댔소. 그뿐이 아니요. 바위의 할아버지를 죽인 그 왜놈들이 오늘은 그 아들, 손자마저 죽이려고 지금 칼을 갈고있소. 이래도 황서방은 언제까지나 세상과 떨어져 이 산속에서 혼자 살수 있다구 생각하오?》
림중량은 황바위의 손을 꼭 잡고 말해주었다.
《바위야! 나도 너와 너의 아버지의 기구한 운명을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인간세상 사람이다.
서설봉선생의 부탁대로 너와 함께 왜놈을 물리칠 힘을 기르려고 너를 찾아온 인간이란 말이다.》
황봉부자는 놀라고 긴장해졌다.
《조참봉놈이 10년전에 제 집 녀종을 데리고 뛴 사람을 요즘까지도 찾고있다는것을 아는 나이기에 아버지와 너를 만나자 대뜸 짐작이 갔다. 서설봉선생이 너를 외손자로 삼아주실 때도 그 깊은 뜻을 나는 알고있었다. 선생님의 그 깊으신 뜻을 잊지 말아라.》
《선다님!》
황봉이가 너럭바위를 치며 오열을 터뜨렸다.
(아, 세상에는 이렇게 웅심깊고 의로운분들도 있구나.)
달빛은 교교하였다. 풀벌레들이 야무진 목청을 돋구었지만 마음들이 팽팽해진 그들에게는 그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았다.
림중량은 달빛에 황바위의 얼굴을 뜯어보며 심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 세상을 돌아다녀보니 어떻더냐?》
황바위는 그 물음에 친혈육과도 같은 따뜻한 숨결을 느끼며 이런 어른에게 내 무엇을 감추랴 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했다.
…올봄까지만 해도 황바위는 잡은 산짐승이랑 버섯, 고사리따위를 가지고 성천장마당으로 나가서 소금과 상목같은것을 바꿔왔다.
그것은 양덕거리에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절절한 부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쌍가마네와 칠성이의 그후 소식을 알고싶어 밤나무골에도 들릴겸 성천거리로 다녔던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소식은 영영 알길이 없었다.
그럴수록 세상을 알고싶은 생각은 더 간절해져서 자주 화엄산으로 가서 서설봉할아버님에게서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왜놈들의 란리가 멀지 않았다는것까지 알게 되였다.
서일이와 함께 설화마도 타보고 칼쓰는 법과 활쏘는 법도 익혔다.
그러나 자기는 칼질보다 돌팔매질이 더 손에 익어서 좋다고 하자 서설봉로인은 돌팔매질을 시켜보더니 무릎을 치며 《네 돌팔매질이 내 검술보다 낫다.》하고 칭찬을 해주며 표창도 몇개 가지고가서 손에 익히라고 했다.
그래서 험준한 화엄산길을 이웃집 드나들듯 한다고 그 집 식구들은 그에게 《황천왕동이》라는 별명까지 달아주었었다.
이렇게 몇해동안 여러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백성들이 사는 형편도 보는 동안에 차츰 세상물정에 눈이 트인 황바위는 그것을 더 깊이 알고싶은 마음이 커졌다.
더우기 열세살때 아버지가 먼발치로만 보여준 양덕고을거리에 가보고싶은 생각이 자꾸 치밀었다.
(왜 아버지가 거기에 못가게 할가? 꼭 무슨 사연이 있을게다.)
이런 생각이 깊어진 그는 마침내 아버지 몰래 올봄에 양덕거리에도 슬그머니 가보았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엄하게 말리던것을 생각해서 조심조심 들어가서 살구꽃둔덕에도 가보고 먼발치로 조참봉네 고래등같은 기와집도 눈여겨보군 했다.
그러나 차츰 내가 무슨 죄를 졌다고 이런단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나를 아는 사람도 없는데 하는 배짱도 생겨서 거기에서 소금도 사오고 세간붙이도 마련해왔다. 그러면서 조참봉네 남종, 녀종들이 겪는 고된 고역살이를 직접 보며 (우리 어머니도 저 집에서 저렇게 종살이를 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리고 쓰려져서 조참봉네 대문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었다.
이렇게 세상일에 깊이 들어가는 사이에 황바위는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한 인간세상에 있는 새로운 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처녀꼴이 다 잡힌 밤나무골 갑년이를 볼 때마다 그와 동갑나이인 쌍가마도 저렇게 컸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느 사이엔가 부푸는 봄싹처럼 쌍가마에 대한 정이 가슴에 차오르며 때없이 그리움에 젖어드는것이였다.
어린시절 장난기있게 자기앞에 머리를 숙이고 정수리에 있는 쌍가마를 짚어보이며 웃어대던 그 모습이, 자기에게 댕기를 달아주며 기뻐도 하던 그 쌍까풀눈이 그 어머니와 함께 팔을 베고 잔 그밤의 소쩍새소리와 함께 날이 갈수록 가슴깊이 파고들었다. 갑년이처럼 늘씬 키가 자란 쌍가마, 갑년이처럼 머리채가 치렁치렁할 쌍가마, 무어라 이름할수 없는 그윽한 정으로 놓칠세라 잃어질세라 조여지는 마음이 자꾸만 쌍가마에게로 달음질쳐갔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정과도, 쌍가마 어머니나 칠성이에 대한 정과도 다른 류다른 그리움이였다.
은근하고도 포근하게 마음을 감싸주며 무시로 쿵쿵 심장을 쳐주고 가슴에 매달리는 정이였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있는가?)
설레이는 가슴으로 그 그리움이 하나의 아픔이라는것을 느끼면서부터 황바위는 더더욱 쌍가마가 애처로와지고 그의 모든 불행이 자기때문인것만 같아 기어이 그를 찾아내고야말 마음이 굳어졌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난 황바위는 《쌍가마랑 그의 어머니를 찾아서 잘 돌봐주는것이 제가 사람구실하는것인데 저는 이렇게 뛰여다니기만 하고있소이다.》하고 머리를 숙이였다.
림중량은 그 간고한 시련속에서도 때묻지 않은 순정, 불덩이처럼 뜨거운 그의 열정에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정이 실린 눈길로 그를 지켜봤다.
황바위는 잊을수 없는 일들을 다시 생각하며 서글프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러던중에 한번은 어느 마을 버드나무밑에 숱한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모여서 그네라는것을 타길래 물어봤더니 봄명절이라고 하였소이다.
세상에 이런 날도 있구나 하면서 그속에 쌍가마가 있지 않나 해서 하나하나 살펴보고 하늘중천을 나는 처녀들도 눈여겨봤지만 쌍가마는 없었소이다. 참 마음이 쓸쓸했었소이다.
또 금년 정월대보름날에는 한 부자집 안뜨락에서 널을 뛰는 처녀들을 담장너머로 보고 거기에 쌍가마가 없나 해서 대문안으로 들어서다가 주인놈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할번도 했댔소이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는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손에 땀을 쥐는데 황바위는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쌍가마네는 어데로 갔을가요? 혹시 쌍가마도 종으로 끌려가지나 않았을가요? 만약시 끌려갔다면 내 기어코 가서 꼭 데려오고말겠어요. 그 성천부사놈도 없고 왜놈중도 만날수 없지만 쌍가마네 식구야 찾아야 할게 아닙니까.》
《뭐?》
황봉은 몸을 움칠했다.
림중량은 이 순박한 젊은이의 가슴속에 아름답게 망울지는 사랑에 무심할수 없었다.
사랑이란 인간의 본능이며 가장 아름다운 순정이다. 그래서 참된 사랑이란 인간의 넋을 정화시키고 뜨겁게 달구기도 하는것이다.
림중량은 인간세상의 위선에 물들지 않은 소박하고 정갈한 황바위의 가슴속에 자라는 그 첫사랑이 얼마나 값진것인가를 다시 생각했다.
하물며 생명의 은인인 칠성이 누이동생 쌍가마를 못잊어하는 사랑임에야.
《바위야, 네가 쌍가마를 잊지 않는것은 아름다운 마음이고 인간의 의리이다. 꼭 찾아내도록 해라.》
이렇게 힘을 안겨준 림중량은 그의 사랑을 꽃피워주고 인간세상속에 그를 더 깊이 떠밀어주고싶어졌다.
《선다님, 그래서 저는 쌍가마의 고향마을인 중화땅 꽃골이라는 곳에 이번에 또 갔다왔소이다.》
아버지는 다시 놀랐다. 그러나 림중량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쌍가마네 소식을 모르는지가 벌써 세해째가 아니오이까. 그동안 쌍가마네가 살 곳을 찾아다니다가 그 꽃골이라는 고향마을로 다시 가서 살지나 않을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댔소이다.》
《그래서…》
《더 참을수가 없어서 곧바로 그 꽃골이란데로 갔댔는데… 가보니 쌍가마네가 살던 오막살이는 더 기울어지고 집옆에 있는 느티나무잎새만 뜨락에 잔뜩 쌓여있어서 저는 맥이 빠져 돌아오고말았소이다.》
《음―》
《허전한 마음으로 꽃골서 돌아오다가 깊은 산속에서 마침 메돼지를 만나 한마리 때려잡았었소이다. 그래서 그걸로 소금과 쌀되박을 구하려구 양덕고을거리에 들렸다가 그만…》
《뭐, 양덕거리? 그래 거기서 어쨌단 말이냐?》
황봉은 놀란 눈으로 아들을 지켜봤다.
놀라는 아버지를 본 황바위는 오늘 있은 일을 사죄라도 하듯 이야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