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7 장

《수리개는 사내자식의 넋이라오》

3

(2)

 

황바위가 메돼지를 걸머메고 장마당에 들어선것은 해가 거의 중천에 떴을무렵이였다.

그런데 아버지가 항상 양덕거리에는 가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던 말이 다시 생각나서 마음이 켕겼다. 그래서 메돼지를 팔아서 쌀과 소금을 사가지고 거리를 빠져나오는데 사람들이 추석날 부모님에게 드릴 옷감들을 사가지고 간다고 했다.

추석이라는것을 처음 알게 된 황바위는 자기도 아버지에게 옷을 한벌 해드릴 생각으로 무명가게로 갔었다.

그런데 유들유들 살이 진 군턱쟁이가 말을 타고 기와집으로 들어가고있었다.

(아, 조참봉놈이다. 어머니도 칠성형도 저놈의 종노릇을…)

황바위는 벌떡 일어섰다. 돌구럭에 손을 넣었다.

(저놈이 왜놈에게 섬겨바칠려구 북대봉호랑이까지 잡으려고 한 놈이지.)

하는 생각이 치밀어서 돌멩이 하나를 거머쥐였다. 단방에 즉살시킬 작정이였다.

그런데 벌써 놈은 솟을대문안으로 들어가고말았다.

《제길!》

소리를 치며 발을 구르는데 옆골목에서 산수벙거지에 륙모방망이를 든 놈들이 몸부림치는 한 처녀를 끌고왔다.

처녀의 삼단같은 머리채는 풀어지고 신발은 벗겨져 맨발이였다.

《에그, 가엾어라.》

《조참봉네 녀종으로 끌려오는 처녀라우.》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저게 쌍가마가 아닐가?)

대뜸 이런 생각이 든 황바위는 가슴이 후두둑거렸다.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쌍가마!)하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며 달려가서 처녀의 얼굴을 살펴봤다. 쌍까풀진 눈이 아니였다.

그러나 독수리에게 채워가는 어린 까투리처럼 바들거리며 자기를 바라보는 처녀의 두눈이 자기에게 구원을 애원하는듯싶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꼭 쌍가마를 빼앗기는 심정이였다.

(쌍가마도 저렇게 어데론가 끌려간것이나 아닐가?)

몇해를 마음속에서 함께 자란 쌍가마의 모습이 눈앞에 커지면서 어른거렸다.

《이 처녀를 어데서 끌고오우?》

황바위는 산수벙거지에게 물었다.

《뭐? 아무데서 끌고오건 네놈이 무슨 상관이야? 되지 못하게.》

산수벙거지가 눈을 부라렸다.

불끈 밸이 뒤틀린 황바위는 《그래, 그 불쌍한 처녀가 어데 살던 처년지 물어도 못본단 말이요?》하고 맞섰다.

《이 세상 청맹과니같은 놈, 오지랖이 꽤 넓군. 그런데 이새끼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남의 처녀 찾아 개구멍 트고 다니는 새끼아냐?》하며 황바위를 쏘아보았다.

황바위는 무슨 말인지 영문을 알수 없어서 《개구멍 트고 다니는게 어떻게 하는거요?》하고 묻자 하하 웃고난 그놈은 그 말에는 대답이 없이 황바위의 어깨를 툭툭 쳐보고나서 《괜찮아, 억대우같은 놈이군. 이놈도 끌고가세. 우리 조참봉령감님이 머슴복은 타고났거던. 하하하.》하고 놈은 허파에 바람든 놈처럼 한참 웃어댔다.

《뭐, 조참봉?》

황바위가 눈을 부릅뜨자 《이놈이 방망이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대낮에 남의 처녀 따라다니는 놈 놔두면 나라에 법이 없는것으로 되지.》하며 륙모방망이로 바위의 어깨죽지를 내리쳤다.

그 순간 날쌔게 몸을 피한 황바위는 가슴속 홍두깨가 불끈 곤두서서 제김에 앞으로 꼬꾸라지는 그놈의 동가슴을 주먹으로 힘껏 내질렀다.

몇해동안 차돌멩이질로 무쇠처럼 다져진 그 주먹 한대에 《억!》 소리와 함께 그놈은 담장밑에 너부러지고 륙모방망이는 저만큼 나가딩굴었다. 그걸 집어든 황바위는 그 방망이로 그놈의 대갈통을 박살내려는데 문뜩 지팽이를 짚고 북대봉골짝에 섰을 아버지의 근심어린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려서 방망이를 홱 팽개쳤다.

《네 이놈, 감히 관가에 대고 행패질을 해?》

《명주바지》가 덤벼들더니 황바위의 멱살을 거머잡았다. 《관가》라는 말에 다시 불끈 배알이 뒤틀린 황바위는 자기도모르게 그놈의 턱주가리에 한대 먹였는데 그놈은 주먹 한대에 뻐드러져 나자빠지며 턱주가리가 부스러졌는지 명주저고리를 피로 매닥질쳤다.

처녀를 끌고가던 산수벙거지가 감히 덤벼들지는 못하고 《네 이놈, 네 이놈!》하며 허세를 부리는데 《싸움났다.》하며 사람들이 우 몰려들었다.

《조참봉네 도청지기랑 고을사령들이 또 한사람 덮치려다가 코를 떼우고있다.》

《코를 떼운게 아니라 뻐드러졌다.》

《저 기생오라비같은 도청지기녀석 개구리 뻗듯 했구나. 그렇게 으르렁거리던 놈이 알구보니 허드레망태기구만.》

《그놈이 허드레망태긴가, 저 총각이 천하장수지.》

《야, 저 총각 눈 좀 보라구. 불이 펄펄 이는 불구슬같구려.》

《저 총각 붙잡아가기는 싹수가 틀렸구만. 저 총각앞에서는 륙모방망이가 부지깽이만도 못하구만. 저런 장수한테는 조참봉도 걸리면 뼈다귀도 못추리겠는걸, 하하하.》

《잘코사니, 성천부사 아들에게 시집보낸 딸덕분에 요즘 기세가 더 등등해서 백성들을 다 제놈의 발싸개로 알더니…》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 황봉은 밤눈에도 얼굴이 새하얘지고 림중량은 몸을 가로흔들고 앉아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뒤일이 없겠소이까?》

황봉은 안타까이 림중량을 바라봤다.

《일은 무슨 일, 북은 치도록 소리난다고 제놈들의 망신인데… 그리고 황바위가 누군지 어떻게 알겠소.》

한동안 너럭바위우에서는 말들이 없었다.

뒤죽박죽인 세상을 두고 가슴을 치는 황바위의 성장을 생각하며 림중량은 대견한 눈길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아직 만나본적은 없지만 그 쌍가마라는 처녀도 비록 모질고 각박한 세상풍파속에 자라지만 이 나라의 딸들이 지니고있는 순결하고 의기로운 정으로 이 총각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갔다.

하물며 황바위부자에 대한 아들의 《불의》때문에 실성까지 한 그 어질고 착한 어머니의 딸인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림중량은 황바위에게 힘이 될 무엇인가를 말해주고싶은 충동을 느끼였다.

《네가 그런 세상리치를 알려고 애쓰는것은 좋은 일이다. 저 큰 바위를 뭉그러뜨려놓으며 세해동안이나 돌팔매질을 익힌것도 참 장한 일이다.

그런데 그 재간을 큰일을 위해 써먹어야 한다.

듣자니 성천부사의 이마빡을 깨놓으려구 돌멩이질을 시작했다면서?》

《예, 꼭 아버지원쑤를 갚겠소이다.》

《음, 그러니까 아버지원쑤만 갚으면 네 소원이 다 풀리겠구나.》

《예.》

황바위의 대답, 아니 그 목표는 뚜렷했다.

티없이 순결한 마음과 제 눈으로 인간세상의 흑백을 명백히 가려보며 그 악을 징벌하기 위해 불덩이로 달궈진 황바위의 마음을 림중량은 우선 값높이 보았다.

《그래, 그 돌멩이나 가지구 원쑤를 다 갚을수 있겠느냐?》

이 말에 황바위는 벌떡 일어서서 《선다님, 제 돌멩이질하는걸 한번 보아주사이다.》하고 씩씩거리며 자기가 있던 숲속으로 달려가더니 메고다니는 차돌멩이구럭과 양덕거리에서 산 소금, 쌀, 아버지옷감을 가져다 바위등우에 내려놓았다. 림중량은 차돌멩이구럭을 쓸어보며 말했다.

《황바위의 돌팔매질솜씨구경이라… 좋아, 어디 한번 그 솜씰 좀 볼가.… 하하하.》

온 골짝이 들썩하게 한바탕 웃고난 림중량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그럼 저 오리나무에 걸어둔 내 검을 가져오너라.》

림중량은 비상한 결심을 하였다.

이 날범을 단단히 길들여야 하겠다고 생각한것이다.

《예? 칼말이오이까?》

황바위는 눈을 디룩거리더니 오리나무앞으로 뛰여갔다.

황봉은 《얘야―》하고 겁에 질려 소리를 쳤다.

보름달은 좁디좁은 하늘복판에 떠서 밝은 빛발을 주체하지 못하는듯 좁은 골짜기를 대낮처럼 밝혀주었다.

황바위가 가져온 칼은 서설봉이 준 그 칼이였다.

림중량이 빼든 칼날에 푸른 달빛이 비꼈다.

《자, 그럼 그 돌멩이로 나를 면바로 때려봐라.》

《예?》

황바위는 뜻밖의 일에 깜짝 놀랐다.

황봉이가 림중량의 바지가랭이를 거머잡았다.

《선다님, 어쩌자구 이러시나이까? 이밤중에…》

《하하하, 일없소. 우리 함께 바위의 돌팔매질솜씨를 좀 보아줍시다. 돌팔매질솜씨를 어떻게 낮과 밤을 가려 보아주겠소.》

림중량은 바위뒤 둔덕에 올라서서 검날을 고누어잡고 소리쳤다.

《자, 사정보지 말고 그 돌멩이로 나를 쳐라.》

그러나 황바위는 망설이였다. 막상 돌멩이를 던지자니 손이 떨렸다.

《선다님! 그렇게는 하지 않겠소이다. 저 바위를 때려보이겠소이다.》

《겁이 나느냐? 나를 맞추지 못할가봐?》

이 말에 황바위는 림중량이 자기의 돌팔매질을 우습게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치밀어올라 구럭속의 돌멩이를 거머쥐였다.

《이 철부지녀석아, 네가 어쩌자구…》

황봉이 급히 아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놔두오. 아들을 제구실 시키려거든 놔두오.》

림중량의 목소리는 엄엄했다.

《예?》

황봉은 둔덕우의 림중량을 아찔해진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자, 뭘 그리 꾸물대느냐? 어서 쳐라!》

순간 황바위의 돌멩이가 윙― 소리를 내며 림중량에게로 날아갔다.

그런데 차마 곧바로는 치지 못하겠다는듯 돌멩이는 림중량의 귀전을 스쳐지나갔다.

그것을 알고있었기라도 한듯 림중량은 까딱않고 선채 소리쳤다.

《네 담덩이가 큰줄 알았더니 고작 그거냐?》

《예?》

그 말에 불끈해진 황바위는 또하나의 돌멩이를 집어들더니 힘껏 내쳤다.

총알처럼 날아드는 그 돌멩이를 림중량은 슬쩍 몸을 비껴 스쳐보내며 소리쳤다.

《그런 솜씨를 가지구 부모의 원쑤를 갚겠다구?》

그러자 또하나의 돌멩이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그 돌멩이도 가볍게 옆으로 비껴친 칼등에 불찌를 일으키고 땅에 떨어졌다.

이번엔 황바위의 두손에서 두개의 돌멩이가 한꺼번에 날아갔다.

두개의 돌멩이도 동시에 가로 비껴친 칼등에 맞고 불찌를 일으키며 림중량의 발밑에 떨어졌다.

《선다님!》

황바위는 메고있던 돌구럭을 팽개치고 림중량의 앞으로 가서 꿇어앉았다.

온몸에 땀이 밴 황봉이 림중량의 앞으로 다가갔다.

림중량은 황바위를 굽어보며 진정으로 칭찬을 했다.

《용타, 바위야. 네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그 기상이 장하다.》

《아니외다, 선다님. 선다님 검술이야말로…》

황바위는 머리를 다시 숙였다.

세해전 서설봉로인앞에서 이렇게 머리를 숙이던 림중량을 생각하며 그는 진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림중량은 《하하하, 내가 이렇게 땀을 뺀것을 못보느냐?》하며 칼날을 칼집에 꽂고 허리춤에서 수건을 풀어 이마에 배인 땀을 씻었다.

(아, 내 자식을 위해서 저 량반이…)

목이 멘 황봉의 목젖이 오르내리였다.

《자, 저리루들 가자구.》

개울가 너럭바위우에 다시 그들은 둘러앉았다.

《바위야, 오늘밤 나는 네게 진셈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이까?》

《나야 검술공부를 이십여년이나 해온 사람이구 너는 3년동안 돌팔매질을 익혀왔지만 내가 이렇게 땀을 뺐으니 말이다. 허허허.》

림중량은 땀을 다시 씻으며 웃고나서 황바위에게 물었다.

《그런데 바위야, 네 그 돌멩이로 너 혼자 능히 그 부사랑 조참봉을 잡을수 있겠느냐?》

《예, 선다님은 못당해도 그깐놈들은…》

림중량은 말없이 머리우의 달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왜놈들까지 지금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려고 차비하고있다. 재작년에도 왜놈들은 우리를 떠보느라고 가리포라는 남쪽바다가에로 왜구를 또 들이밀었었다. 이것은 머지않아 우리 나라에 쳐들어올 징조다. 그러니 네가 본 그 불쌍한 백성들은 누가 지켜주겠느냐. 왜놈들이 쳐들어오면 그 부사나 조참봉따위가 우리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내대고 싸울것 같으냐?》

《아니외다. 이 북대봉호랑이까지 다 잡아서 왜놈들에게 바치려고 하는 놈들이 어떻게…》

황바위는 그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는듯 펄쩍 뛰였다.

(음, 이녀석이 돌팔매질만 잘하는게 아니라 그 마음도 돌멩이처럼 단단해졌구나.)

림중량은 비여있던 자기 가슴 한구석을 이밤 그가 메꿔주는것 같은 심정이였다.

림중량은 황바위에게 또 물었다.

《그런데 바위야, 네 생각에는 바다건너 먼 곳에 있는 왜놈들이 왜 우리 나라에 덤벼들려고 하는것 같으냐?》

이 물음에 황바위는 문득 어렸을 때 화엄산에서 어른들에게서 들은 말과 서일이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건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깔보기때문이오이다. 백성들도 그렇게 말들을 하고있소이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군사도 병쟁기도 제대로 갖춰져있지 못하다고들 하면서 걱정들을 하고있소이다.》

《옳거니, 바로 말했다. 그래서 탐욕스럽고 간악한 왜놈들이 쳐들어오려고 하는것이다.

너의 할아버지를 죽이고 너의 아버지의 발꿈치를 끊게 한 그 왜놈들이말이다.

그놈들은 잘못했노라고 사과를 하려 총칼을 메고오는게 아니다. 알겠느냐?》

《알겠소이다. 왜놈들이 덤벼들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소이다. 등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놈들을 보고만 있겠소이까.》

《하하하, 칼 한자루도 못막는 그 돌팔매질로 악을 물고 덤벼드는 수십만명의 왜적을 막을수 있단 말이지?》

《아니오이다. 그거야 이제 큰 장수가 나타나서… 선다님같으신분이 말이외다.…》

《음, 장수라…》

빙그레 웃고난 림중량은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그런 장수도 혼자서는 용빼는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장수는 너도 될수 있다.》

《예?》

《장수란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힘이나 센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우선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이며 무술이 뛰여나고 원쑤를 때려눕힐수 있는 슬기와 용맹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바위야, 그런 사람이 량반들속에 많겠느냐, 백성들속에 많겠느냐?》

《백성들속에 많소이다. 백성들은 량반들보다 나라와 고향을 더 사랑합니다.》

《그렇다. 그들은 세상의 쓰고단 맛을 다 보며 제힘과 제 슬기로 이 땅을 가꾸는 사람들이다. 때문에 진짜장수는 그런 사람들속에서 나오고 또한 그런 백성들이 바로 나라의 란리를 막아낼 사람들이다. 이것을 명심하거라.》

《정말 그런 장수가 많으면 왜놈 무서울게 없겠소이다.》

《그러니 너도 그런 장수가 되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돌팔매로 아버지의 원쑤나 갚자고 윽윽 벼르고있으니 걱정이구나.》

《선다님!》

림중량의 말뜻을 깨달은 황바위는 더 말이 없이 머리를 숙였다.

림중량의 목소리는 더 심중해졌다. 그리고 뜨거운 정이 넘쳐 흘렀다.

《이 심산속에서 네가 이렇게 자란것이 정말 기쁘다. 너의 돌팔매질솜씨도 기쁘지만 네가 사람값을 하려고 애쓰는 그 마음이 더기쁘다.》

황바위부자는 정중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참된 사람값이란 제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고 목숨도 아끼지 않는데 있으며 의로운것을 위해 악한것을 용서치 않는데 있다.

그렇다고 하여 그런 마음만 가지고서는 안되지.…》

림중량은 잠시 말을 끊고 황바위를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원쑤가 나보다 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면 떨기마련이고 떨게 되면 그놈들에게 먹히우기마련이다. 더우기 〈나는 그런 일을 할 재목이 못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

바위야, 너는 서설봉선생과 같은 애국지사의 외손자라는것을 자랑으로 알아야 한다. 알겠느냐?》

《알겠소이다, 선다님.》

림중량의 뜨거운 정이 슴배이고 깊은 뜻이 담긴 말에 황바위는 다시한번 머리를 숙이였다. 황봉은 서설봉의 외손자이야기에 그의 깊은 심정이 헤아려져 다시한번 눈확이 화끈해졌다.

《선다님, 저는 그런 리치도 모르고 이 좁은 골짝에서 자식을 끼고만 있으려 했댔소이다.》

황봉은 진심으로 이렇게 깨달은 말을 했다.

《황서방은 인간세상의 된서리만을 맞은 사람이 돼서 그럴수도 있소.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 아들을 깊이 잘 알아야 하오. 이 아들은 벌써 제 부모의 원쑤, 나라의 원쑤가 어떤 놈들인가를 아는 아들이요. 두고보우. 그런 아들이고보니 그 돌팔매질도 이제 앞으로 큰몫을 할게요. 얼마나 장하오.》

《고맙소이다. 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일들과 자식을 키우는 애비가 알아야 할 일들을 이렇게 따뜻이 깨우쳐주시니…》

태고연한 여기 심산유곡에서도 이밤 이 나라 백성들의 넋은 이렇게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있었다. 어느덧 서산마루에 걸린 달이 맑은 개울물속에서 미풍에 춤을 추고 너럭바위는 밤이슬로 축축해졌다.

밤이 이슥해서야 그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이날밤 북대봉 범골에서는 쩡쩡 바위를 치는 돌팔매질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

《저애가 밤을 새우는구려.》

잠이 든줄 알았던 림중량이 일어나앉았다.

《선다님, 주무시오이다. 그놈의 성깔이 그런걸요. 선다님의 가르치심에 저렇게 새힘이 솟는가보오이다.》

황봉이 누우라고 거듭 권했으나 림중량은 문을 열었다.

먼동이 훤히 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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