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8 장

심산속에 묻힌 옥

1

 

붉디붉은 단풍그림자가 잠긴 맑은 석간수로 오추마의 아침목욕을 시키고난 황바위가 코앞에 듬뿍 안아다 놓아준 가을풀앞에서 말도 즐겁게 코투레질을 했다.

《너 말다루는 법은 언제 배웠느냐?》

《서일형님에게서 배웠소이다.》

《음― 그렇지.》

림중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루밤 흉금을 터놓은 황봉부자와의 이야기를 통하여 더 알게 된 곡절많은 세파속에서도 이토록 름름하게 자라는 황바위가 대견스러워진 림중량은 그에게 물었다.

《나하구 오늘 저 산마루에 한번 올라가보지 않겠느냐?》

《예, 그렇게 하겠소이다.》

벙글거리는 황바위의 두눈에 기쁨이 찰랑거렸다.

림중량은 맨 상투바람에 수건을 동이고 가뜬히 초신감발을 하고서 활을 메고나섰다. 황바위는 차돌멩이구럭을 메고나섰다.

그들을 지켜보는 황봉은 어제 잎떨어지는 오동나무옆에 초연히 서있던 황봉이가 아니였다.

이 아침은 황봉이가 산속에서 안해를 여읜 후 처음으로 밝은 웃음을 웃어보는 아침이였다.

개울가 단풍잎가지들에 걸려있는 곡절많은 몇끝의 무명필이 가을해빛에 눈이 시게 희였다.

눈뿌리 아득한 산봉우리들우로 수리개 한마리가 유유히 돌고있었다.

소리를 치며 무너져내리는듯한 폭포주변의 벼랑들을 에돌아 절벽을 톺아오르는 림중량은 문득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황바위가 몇해동안 모진 마음으로 차돌멩이로 들이쳐서 숭숭 구멍을 뚫어놓은 벼랑들과 바위들을 무심히 볼수 없어서였다.

황바위는 림중량을 데리고 덤불과 수림속을 헤치고 골짜기를 지나며 신이 나서 북대봉짐승들의 이야기를 했다.

《호랑이란 놈은 참 별스런 놈이오이다. 그놈은 꼭 저 다니는 길로만 다니는데 겨울에 눈우에 난 발자국을 보면 네발가진 놈인데도 외발자국을 내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놈은 짐승을 잡아먹다가 남은것은 여기저기 눈속에 묻어두군 합지요. 이런 가을철이면 그놈이 제 몸을 단풍잎뒤에 감쪽같이 숨기는데 꼬리만 없으면 떡갈나무잎새 하나로 몸뚱아리를 다 감출수 있는 놈이오이다.

그러니 그놈의 그런 버릇을 잘만 써먹으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잡을수도 있소이다.

다니는 길에 묻어둔 먹이옆에 함정을 파놓으면…》

림중량은 호랑이도 가지고 놀려드는 그의 말을 들으며 놀라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노루 한마리가 이깔나무사이에서 긴 모가지를 빼들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황바위는 림중량의 귀전에 입을 대고 소곤거렸다.

《저놈은 놀라기를 잘해서 뛰는 놈이지만 단번에 잡을수 있소이다. 산양도 오소리도…》

《어떻게?》

《보시오이다.》

황바위는 쾅 하고 발을 굴렀다. 그러자 깜짝 놀란 노루가 화닥닥 뛰기 시작하더니 눈깜빡할 사이에 벌써 멀리 달아뺐다.

그뒤를 따라 달리던 황바위가 괴춤에 찔러가지고온 끈달린 돌멩이를 휘휘 두르다가 노루를 향해 휙 던졌다.

그러자 돌멩이를 단 노끈이 노루모가지에 칭칭 감겼다. 황바위가 끈을 잡아당기자 노루는 버드럭거리면서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며 끌려왔다. 실로 감탄할 솜씨였다.

림중량은 그것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황바위는 끌려온 노루의 등때기를 쓸어주며 림중량에게 말했다.

《선다님, 이 노루를 놔주겠소이다.》

《그건 왜?》

《아버지랑 저는 착한 짐승들은 잡지 않소이다.》

《하하하, 그래…》

황바위 손에서 놓여난 송아지만한 노루는 껑충껑충 뛰여 숲속으로 사라졌다. 림중량은 문득 황바위가 어렸을 때 서설봉로인의 집에서 번대수리를 돌순대로 잡던 생각이 나서 대견스런 눈으로 그를 다시 보며 뒤를 따라갔다.

볼수록 쩍 벌어진 어깨와 늘씬한 키, 건강한 두다리와 날렵한 몸가짐이 이 산속의 날범을 련상케 했다.

림중량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물었다.

《너 호랑이를 잡아본 일이 있느냐?》

그 말에 황바위는 벙긋 웃고 돌아서서 말했다.

《호랑이는 못잡았지만 승냥이는 한꺼번에 세놈을 잡았댔소이다. 세놈이 앞뒤에서 시뻘건 아가리를 벌리고 덤벼들 때 돌멩이로 그놈들의 그 아가리를 쳐서…》

《음, 세마리씩이나…》

림중량은 황바위의 담력에 혀를 내둘렀다. 이윽고 그들은 시뻘겋게 땅을 파헤치고 칡넝쿨을 짓뭉개놓은 메돼지들의 길목에 다달았다.

《선다님, 여기로 오시오이다.》

《바위야, 너 이제부턴 선다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저 아저씨라고 불러라. 그리고 〈했소이다.〉라는 말 그만둬라.》

《예?》

정이 넘치는 림중량의 미소를 본 그의 두눈에 새빛이 돋더니 천진스럽게 입을 벙실거렸다.

《그럼 참 좋겠어요. 아버지가 자꾸 〈했소이다.〉, 〈했소이까.〉라고 하라구 해서…》

황바위는 서설봉로인이 자기를 외손자라고 불러주던 때만큼이나 기뻤다.

《하하하…》

림중량이 어깨를 들먹이며 웃는데 신이 난 황바위가 물었다.

《아저씨, 메돼지를 몇놈이나 잡을가요?》

《몇놈이나 잡다니? 그럼 뭐 메돼지를 잡고싶은대로 잡겠단 말이냐?》

《예. 겨울에는 그것들을 잡아서 함정속에 넣어두고 먹는걸요. 메돼지란 놈들은 우둔해서 뒤에서 급히 몰아대면 떼를 지어 함정속에 빠집니다.》

《그래?…》

림중량은 다시한번 놀랐다.

(그러구보니 이녀석은 호랑이도 가지고놀고 메돼지따위는 이 산속에 놔두고 길러가며 먹는 놈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 림중량은 다시 허허 웃었다.

웃으면서도 그가 하는 말, 하는짓들을 무심히 스쳐보내지 않았다.

《아저씨! 그놈들이 여러마리씩 몰려올 때면 맨앞의 놈을 먼저 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놈들이 돌따서서 뛰는데 그때에는 뒤놈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놈이 죽자 하고 도망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 건드렸다간 그놈들에게 물리울수 있습니다.》

《응, 그럴듯한 말이다.》

림중량은 그가 자기의 삶을 위한 투쟁속에서 얻은 그 리치들을 귀중하게 들었다.

마치 군사에 비하면 하나의 전법이랄가.

《그런데 승냥이떼나 메돼지떼가 덤벼들면 이 활을 가지고는 너만큼 그놈들을 못잡겠구나.

아무래도 이 활이란건 살을 메워 겨누면서 잡아당기는 시간때문에 손쉽게 집어던지는 네 돌멩이보다는 굼뜨거든.》

《뭐 돌멩이는 겨누지 않고 던지나요?》

자기를 떠보는 말인것을 아는지 황바위는 벙실 웃으며 대답했다.

《네 말이 옳다, 옳아.》

림중량은 오늘 그와 함께 산에 오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메돼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림중량은 황바위를 데리고 산을 내렸다.

이때 장끼 한마리가 숲속에서 꺼겅껑거리며 날아올랐다.

그것을 본 황바위는 날쌔게 돌구럭에서 돌멩이 하나를 꺼내여 휙 던졌다.

그러자 뒤미처 목깃이 두드러지게 고운 장끼 한마리가 그들의 발밑에 떨어져 퍼드덕거렸다.

장끼의 골통이 박살이 나있었다.

《바위야! 그렇게 닥치는대로 잡다간 북대봉짐승들이 네 돌멩이에 다 없어지고말겠구나.》

림중량의 말에 황바위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건 아저씨 대접할려구 잡은겁니다. 오늘 메돼지도 못잡았는데…》

《하하하.》

림중량의 웃음소리와 황바위의 기뻐하는 소리가 어울려 산골짝에 메아리쳤다.

《그래, 짐승잡는 법은 아버지에게서 배웠느냐?》

《아버지에게서 배운것두 있구 제가 생각해낸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이 산속벼랑들을 펄펄 날아넘던 아버지가 지금은…》

황바위는 시무룩해져서 말끝을 얼버무렸다.

《음…》

림중량은 잠시동안 묵묵히 걸었다.

어려서부터 이 심심산속에서 살며 당한 뼈아픈 일들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고 세해동안이나 익힌 놀라운 그 돌팔매솜씨는 차돌멩이처럼 단단하고 오돌진 황바위의 그 마음이 키운것이리라.

또한 림중량의 마음을 틀어잡은것은 황바위의 그 슬기로운 생각들이였다.

그것은 이 심산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피어린 투쟁속에서 찾아낸 값진 지혜들인것이다.

그러기에 범을 비롯한 포악한 짐승들을 다루고 잡는 힘과 그 묘리를 벌써 황바위는 다 터득하고있는것이다.

거기에다 착한 짐승들을 다치지 않는 그 마음씨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림중량은 황바위가 마치 이 웅장한 북대봉의 주인처럼 느껴졌다.

모진 세파에 날려 떨어진 솔씨 하나가 이 심산속에서 락락장송으로 자란듯도싶었다.

앞서가던 황바위가 발걸음을 멈추더니 림중량을 돌아보며 물었다.

《아저씨, 저기 가서 미역을 감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산에 올랐다가 내려갈 때면 저기서 미역을 감습니다.》 하고 폭포수가 떨어져 그 깊이를 알수 없는 소를 가리켰다.

《아니 저기서?》 림중량은 깜짝 놀랐다.

《그럼 저혼자 잠간 감고오지요.》 하더니 황바위는 푸른 소옆으로 가서 훨훨 벗고 풍덩 뛰여들었다.

림중량이 마음을 조이고있는데 한참만에 물속에서 솟구쳐오른 황바위는 벙글거리며 림중량을 바라봤다.

(저 애가 정말 이 북대봉산천도, 백가지 짐승도 다 가지고노는 놈이로구나!) 하고 혀를 내둘렀다.

그들은 다시 산을 내렸다.

《아저씨, 저걸 좀 보십시오.》

큰 피나무구새통으로 꿀벌들이 부지런히 가을꽃꿀을 물어나르고있었다.

《벌집이구나.》

《아저씨, 저 벌집이 백년도 더 묵은것 같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저 벌집을 못다치게 합니다.》

《왜?》

《비록 미물이지만 한마음이 되여 서로 도우며 부지런히 일하면서 사는것이 기특해서지요.

그래서 저 구새통으로 기여드는 곰을 두마리나 잡아제껴주었습니다.》

《그래?》

《저 꿀벌들이 사는걸 보면 참 기특합니다.

저 꿀벌가운데는 왕벌이 있고 꿀을 모아 나르는 벌이 있는데 집을 짓는 놈, 집을 지키는 놈도 있습니다. 모두 제 맡은 일을 부지런히들 하지요. 저 벌들은 참 사이가 좋습니다. 악독한 사람들보다 낫습니다.》

《그렇지.》

황바위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림중량은 꿀벌들을 이윽토록 지켜보다가 산을 내렸다.

림중량은 바위를 데리고 산에 오른것을 잘한 일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이날 《메돼지바위》곁에서 가뜬한 몸차림으로 활과 전통을 멘 림중량이 지켜보는 가운데 황바위는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황바위의 돌팔매질을 검법, 궁법과 같은 오묘한 법수로 터득시키려는 림중량의 깊은 생각에서였다.

황바위의 솜씨는 실로 놀라운것이였다.

열두개의 돌멩이가 연거퍼 날아가서 강대나무의 한군데에 들어박히며 번쩍번쩍 불찌를 일구었다.

이때 갑자기 림중량이 그에게 소리를 쳤다.

《뒤손질로 던졋!》

손에 돌멩이를 쥔 황바위는 림중량을 한번 바라보고나서 뒤손질로 돌멩이를 내쳤다.

그러나 지금까지 별로 해보지 못한 일이여서 다섯번을 던진 돌멩이가운데서 두개가 헛방을 쳤다.

《옆으로 던졋!》

림중량의 새 구령에 다섯개중 한개가 빗맞았다.

《나무우로 뛰여오르며 던졋!》

불끈 화가 동한 황바위가 땅을 차고 솟구쳐 홰나무가지를 붙잡고 한손으로 내친 첫방이 빗맞았다.

이때 윙― 하는 시위소리가 나더니 림중량이 먼장질로 쏜 화살이 《메돼지바위》너머 큰 피나무우듬지에 날아가박혔다.

뒤이어 높은 바위우에 날아올라 쏜 두번째 화살이 먼저 꽂힌 화살과 겹치여 꽂혔다.

비호처럼 내달리며 쏘고 옆으로 쏘고 돌아서며 쏘는 화살들이 그곳에 동그라미를 그으며 꽂혔다.

그런데 전통에서 화살을 빼고 그것을 활시위에 메워 쏘는것이 황바위의 돌팔매질 못지 않게 빠르고 드팀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놀란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황바위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아저씨, 됐습니다. 알겠습니다.》

《알다니?》

림중량은 자기가 쏘아 꽂아놓은 피나무의 화살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 여기서 돌멩이로 쳐서 다 떨구어라.》

《예?》

돌팔매가 가닿을수 없는 먼곳의 그 화살촉들을 바라보던 황바위는 잠간 생각하더니 집으로 뛰여가서 무명끈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더니 그것으로 돌멩이를 감싸가지고 휘휘 돌려 먼장질로 쳤다.

그러나 세번을 쳐서 한방밖에 맞히지 못했다.

《아저씨!》

황바위는 어제밤처럼 림중량앞에 머리를 숙이더니 《제 이제부터 아저씨의 칼쓰시는 법, 활쏘시는 법으로 돌팔매를 익히겠습니다.》 하면서 림중량의 활과 화살을 몇번이나 쓸어보고 쓸어보았다.

림중량은 심중한 목소리로 황바위에게 가르쳤다.

《바위야, 싸움마당에 나서면 적은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고 멀리에도 있다는것을 잊지 말아라.》

(아, 저 량반이 이럴려구 내 아들을 위해서 이 심산속에 들어오셨구나. 칼로도 활로도 내 자식을 가르쳐주시려구.…)

황봉은 지팽이에 힘을 주며 감사의 정이 넘친 눈길로 림중량을 바라보았다.

이날밤 밤이 새도록 북대봉골짜기를 쩡쩡 울리며 앞뒤로 들이치는 황바위의 돌팔매질에 《메돼지바위》는 더 만신창이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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