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8 장

심산속에 묻힌 옥

2

 

다음날 림중량은 황바위와 함께 야장간을 만들었다. 야장간이래야 넙적한 돌로 사개를 맞추고 진흙을 발라서 풍구틀을 만든 다음 긴 풀무대끝을 짐승가죽으로 싸매서 바람을 뿜게 하고 모루대신에 큼직한 차돌멩이를 갖다놓은것이였다.

그러나 선비인 림중량의 손재간과 궁냥을 잘 보여주는것이여서 황봉은 감탄을 했고 황바위도 신바람이 났다.

《세상에 저런 량반님네도 있구나. 일솜씨도 있구 스스럼이 없구.…》

《서설봉할아버지랑 꼭같아요.》

그들부자는 이렇게 속삭였다.

풍구의 첫 풀무대를 잡으며 바위는 림중량에게 물었다.

《이 야장간은 왜 꾸리셨나요?》

《네게 병장기를 만들어주려고 그런다.》

《검을 만들어주실려구요? 저는 차돌멩이면 됩니다.》

《허, 그게 무슨 소린고. 적과 싸워야 할 사람이 병장기를 소홀히 하다니.… 왜놈들은 조총이라는 서양총까지 사들였다는데 그런 총앞에서 차돌멩이로만으로는 맞설수 없지. 우선 표창을 만들어야겠다.》

《서설봉할아버님네 야장간에 있는 그 쇠덩이표창말이지요? 저도 가지고있는데 저는 그걸 쓰지 않습니다.》

《병서에 이르기를 비록 좋지 못한 병장기라도 군사가 그것을 능숙하게만 다룬다면 좋은 병장기 못지 않다고 했다. 표창이 그리 좋은 병장기는 못되지만 잘만 쓰면 왜적을 치는데서 돌멩이보다는 더 큰 힘을 낼게다.》

《병서란 무엇입니까?》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지.》

《책이 어떻게 싸우는 법을 가르친단 말입니까?》

《하하하, 네가 글공부를 좀 해야겠구나.》

《글공부란 량반님네나 하는 놀음이라는데 저는 그런짓 안하겠습니다. 서일형님이 자꾸 배우래서 무릎을 꿇고 책앞에 앉아봤는데 오금이 쑤시여서 뛰쳐나오고만걸요.》

《하하하.》

림중량은 큰소리로 걸걸하게 웃었다.

이날 점심녘에 림중량은 편지 한장을 황바위에게 써주며 서설봉선생에게 갖다드리고 오라고 했다. 봉하지 않은 편지였다.

《이 편지에 뭐라고 쓰셨습니까?》

《네가 편지를 읽지 못하니 할아버님이랑 서일도련님에게 읽어달라고 해라.》

《예?》

승벽이 센 황바위는 서일이에게 보이라는 말에 얼굴이 벌개지며 뒤통수를 긁고나서 집을 나섰다.

《빨리 다녀와야겠는데 언제쯤 돌아올수 있느냐?》

《래일아침이면 돌아올수 있습니다.》

《아니, 산골길 왕복 160리를 그렇게 빨리? 그래 밤길을 혼자 걸을수 있느냐? 산짐승도 많은데…》

《아저씨가 저를 우습게 보시는군요. 북대봉에 흔하디흔한게 돌멩이인데 호랑이가 덤벼든들 겁날게 있습니까? 그리구 절보구 걸음이 빠르다고 〈황천황동이〉라고들 하는걸요.》

《아니, 그럼 돌구럭도 안메고가겠단 말이냐?》

황봉이 걱정스레 물었다.

《아버지, 돌구럭 메고서야 빨리 뛸수 있나요.》

(저놈이 과시 담덩이가 메주덩이만한 놈이로구나. 고집은 벽창호같구.…)

림중량은 빙그레 웃으며 황바위를 바래주었다.

어째서인지 림중량은 말을 타고 가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바람에 황바위는 더 고집통이 불어나서 휭하니 내뛰듯 골짝으로 달려내려갔다.

황봉의 얼굴에 불안한 빛이 어렸다.

《자, 들어갑시다.》

림중량이 황봉의 지팽이를 잡아주었다.

황바위가 화엄산뒤 령마루에 올라섰을 때 먼 서산마루에서는 뉘엿뉘엿 해가 지고있었다. 실로 저도 놀랄만한 빠른 걸음새였다.

림중량의 편지를 읽으며 서설봉로인은 미소를 짓고 연신 머리를 끄덕이더니 서일에게 그 편지를 내주었다. 서일이도 그 편지를 읽으면서 벙실거렸다.

황바위는 서설봉 안주인이 만들어준 햇기장떡 한사발을 볼이 미여지게 게눈 감추듯 하고나서 서설봉로인에게 말했다.

《빨리 떠나야겠는데 주실게 있으면 어서 주시오이다.》

《무엇을 달라느냐?》

《예?》

《아니, 그럼 무얼 가지러 오는줄도 모르고 왔느냐?》

서설봉은 봉하지 않은 편지를 펴들고 《네가 까막눈이 돼서 여기 씌여있는것도 모르고 80리 산길을 뛰여왔구나.》하고 웃으며 《천자문》을 내주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신검이 황바위를 야장간으로 데리고가더니 물었다.

《얼마만큼이나 보내라시더냐?》

《예? 무얼 말입니까?》

황바위가 어리둥절해지자 유신검이 말했다.

《네가 글을 모르니 그 큰 담력도 다 써먹지 못하겠구나. 참 분한 일이다.》

《예?》

《제손으로 가지고다니는 편지 한장 못읽으니 무슨 대장부구실을 하겠느냐?》

유신검은 헌 쇠붙이와 쇠망치를 구럭에 넣어주었다.

《제길, 글을 배우긴 배워야겠네.》

황바위는 벌개진 얼굴로 서일이를 보고 한번 씽긋 웃은 다음 《천자문》과 쇠붙이를 구럭에 넣어메고 떠났다. 그런데 전같으면 밤길을 가지 말라고 붙잡을 서설봉로인의 식구들이 아무말도 없이 그를 떠나보냈다. 하기야 그런다 해도 고집을 써서 떠나고야말 황바위였다.

밤눈이 밝은 황바위는 펄펄 나는듯 밤길을 다그쳤다. 글을 몰라 편지를 못읽어서 망신을 당한것이 분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림중량에게 자기의 빠른 걸음새와 밤중에도 사나운 짐승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고싶어서였다. 칼쓰는 법, 활쏘는 법에서는 아직 림중량을 못당하지만 밤길걷기나 빨리 걷는것에서는 지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야 할 길도 옆질러 벼랑을 타고넘고 골짝개울물도 뛰여넘었다. 어느덧 밤은 깊어 하늘에는 잘 익은 가을별들이 초롱초롱 한가득 박혔다.

그 별을 이고 황바위는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쳤다. 사실 황바위는 지금까지 혼자서 이렇게 산속 깊은 밤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였다. 정 밤이 깊으면 바위굴같은데라도 들어가서 쉬여다녔다.

그러나 그의 지기 싫어하는 승벽이 오늘은 기어이 밤길을 걷게 했던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무섬증을 타는 사람들이란 다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겠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림중량과 같은 믿음성있는이가 이 산속에 자기와 함께 있다는 든든한 생각도 들어서 있는 힘껏 발걸음을 다그치는것이였다. 그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며 한 등성이에 올라섰을 때였다.

갑자기 《어흥!》소리가 나더니 시퍼런 불을 질질 끌며 갈범 한마리가 앞을 딱 막아나섰다. 황바위의 발길이 흠칫 멈춰졌다. 순간 그의 손이 둔덕을 더듬었다. 돌멩이를 찾는것이였다.

그런데 캄캄한 밤이여서 돌멩이는 인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두루 살폈으나 둔덕에는 돌멩이가 없었다. 황바위는 가슴이 철렁하였다. 돌구럭을 메고오지 않은것이 후회되였다.

《어흥!》소리를 다시 치며 범은 바위우로 성큼 올라섰다. 그런데 또 한마리의 범이 더 크게 《따웅!》소리를 지르며 옆쪽 등성이에 나타났다. 두마리의 범이 시퍼런 불을 달고 서로 앞을 다투며 금방 달려들것만 같았다. 사태는 위급했다. 다급해진 황바위는 구럭속의 쇠붙이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이걸 던져서야 안되지. 그러면 림중량아저씨가 웃을텐데… 제길, 내가 이깐놈의 범새끼들에게…)

반발심이 불끈 치밀어올랐지만 별수가 없는 황바위는 량손에 쇠붙이를 번쩍 추켜들고 범들과 마주섰다.

바로 이때였다. 등뒤쪽에서 갑자기 여러개의 홰불이 나타나더니 그 홰불들이 범들을 향하여 윙윙 날아갔다. 불뭉치를 보자 범들은 질겁을 해서 자취를 감추고말았다.

바위는 어리둥절해졌다.

《바위야!》

《황바위야!》

귀익은 목소리들이였다. 유신검과 서일이였다.

《하하하, 황바위도 땀을 뺄 때가 있구나.》

유신검과 서일이는 림중량의 편지에 써있는대로 여러개의 홰불감을 량손에 들고 황바위의 뒤를 따라왔던것이고 림중량은 황바위에게 글이 얼마나 소중한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면서도 밤짐승이 념려되여 이렇게 뒤를 따르게 했던것이다.

황바위는 유신검과 서일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경황이 못되였다. 어제오늘 있은 일들이 다 자기가 놀림을 받는것 같애서 지기 싫어하는 그는 쇠붙이와 《천자문》이 든 구럭을 추슬러올리더니 홰불가지 하나를 들고 휭하니 산등성이를 타고 내리달렸다.

달려가는 황바위는 분했다. 림중량한테도 유신검한테도 지어는 서일이한테도 진것만 같아 분했다. 그러나 별수가 없었다.

유신검과 서일은 등성이우에서 벙글거리면서 그를 바래주었다.

어느덧 산봉우리 동쪽하늘에 희붐히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

 

×     ×

 

《그러니까 그런걸 다 아저씨가 그 편지에 썼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런데 너는 그걸 가지고 뛰여다니면서도 몰랐으니 부끄러웠겠구나.》

황바위는 뒤통수를 벅적벅적 긁었다.

《그런데 홰불로 호랑이 쫓는 묘한 생각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호랑이란 놈은 불만 보면 기겁을 해서 뛴다.

그것은 병서에 씌여있는 전술, 전법을 네게 알맞춤하게 써먹은것이다.》

《예? 그런것도 그 책에 다 씌여있단 말입니까?》

《그렇다. 그래 어떠냐? 이래도 글공부할 생각이 없느냐?》

《없습니다. 답답해서 어떻게… 제가 이번에 생각을 짧게 한 때문에 돌구럭을 안메고가서 그랬지 그렇지만 않았다면야 호랑이새끼 다섯마리가 한꺼번에 덤벼들어도 겁나할 제가 아닙니다. 책으로야 어떻게 호랑이를 잡습니까?》

이 길들이기 힘든 애젊은 생말을 앞에다 놓고 림중량도 좀 아연해하는데 아침밥을 지어놓고 아까부터 방문밖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있던 황봉이가 사립문밖으로 나가더니 회초리를 몇개 만들어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림중량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데 황봉은 그 회초리를 림중량앞에 내놓으며 한쪽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면서 말했다.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저를 종아리 쳐주사이다.》

《음―》

림중량은 가슴에 치밀어오르는것을 지그시 누르며 잠간 눈을 감았다가 뜨더니 회초리를 집어들었다.

천리만리길을 달려야 할 애젊은 준마의 길을 들이고 그 신들메를 든든히 신기기 위하여 든 종아리채찍이였다.

《내 황서방의 뜻을 받아서 종아리를 치겠소.》

림중량의 목소리는 엄엄하고 심중했다.

《이 종아리를 치는것은 인간의 큰힘이 세상리치를 깨닫는데 있다는것을 모르고 국난이 닥쳐오는 이때 돌멩이 던지는 조그마한 재간만 믿으면서 배우지 않으려는 아들을 키운 아버지의 잘못을 때리는것이요.》

이렇게 말하고나서 림중량이 채찍을 추켜드는데 황바위가 벌떡 일어서더니 씩씩거리며 아버지를 가로막고서서 제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며 부르짖었다.

《불쌍한 우리 아버지를 때리지 마시오. 한쪽발꿈치밖에 없는 우리 아버지를 아저씨까지 종아리 치신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러워 어떻게 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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