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8 회)
16. 평양성으로 ! 화창한 봄날이였다. 송악궁성의 서쪽대문인 오정문이 열리더니 기치창검을 추켜든 군사무리가 미여지게 나왔다. 그뒤로 화려한 련을 실은 수레가 역시 군사들의
호위속에 굴러나왔다. 임금의 행차였다. 왕건이 서경순행에 나선것이다. 고려국의 임금이 된 이후로 해마다 어김없이 진행해오는 평양성시찰이였다. 금필은 태자 무와 지몽, 술희와 함께 왕건을 옹위했다. 행렬은 성밖을 나선지 얼마 안되여 방향을 꺾어 백주(배천)로 가는길에 들어섰다. 백주에 들려 왕계(발해왕세자 대광현)대광을 함께
데리고가려는것이였다. 백주에서 배를 타고 례성강을 거슬러 평주까지 간 다음 거기서부터 륙로로 평양성에 대기로 했다. 금필이 태여나고 성장한 고향 다지홀과 우봉땅을 밟아볼수 있게끔 왕건이 길을 잡아준것이였다. 왕계대광은 왕건을 맞이하자 눈물부터 앞세웠다. 발해왕실의 세자를 따뜻이 받아들였을뿐아니라 부친의 정으로 돌봐주고있는 왕건이 그지없이 감사했던것이다. 《왕대광의 안색을 보니 심신이 무탈하신것 같소.》 왕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나서 하는 왕건의 말이였다. 왕계는 그사이 이곳 기후풍토에 어지간히 적응되여있었다. 그런 그를 보고 왕건이 한시름 놓는것이였다. 《페하! 신은 페하의 은총만 입고 보답을 하지 못해 한스러울뿐이옵니다.》 왕계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있었다. 《걱정할것 없소. 이번 길에 대광이 할 일이 많으니까. 서경북쪽에 정착한 발해유민들을 돌아보시오. 그들이 안착은 되였을것이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야 할것이요.》 《알아들었소이다, 페하!》 《손에서 병쟁기를 놓지 않도록 이르시오. 북방을 도모해야 할 소임이 그들에게 지워져있다는걸 잊지 말도록 해야겠소.》 왕건은 거란의 침입을 경계하라고 이르고있었다. 어제 밤 늦게까지도 왕건은 이 문제를 놓고 금필과 의논을 했었다. 북방령토를 회복하려는 고려의 노력은 개국이전부터 시작되였었다. 고려국이 선 그해부터만 해도 왕건은 금필과 더불어 대동강북쪽 청천강계선은 물론 그우로 압록강계선까지에 무려 20여개의 성을 새로 쌓도록
했었다. 그 지역에 은거해있던 고구려유민들이 속속 성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고 여기에 서경남쪽의 많은 주민들이 이주해가서 합류했다. 압록강으로
넘어온 발해유민들의 대다수도 이 지대에 자리를 함께 했다. 서경북쪽의 주민구성이 이때부터 조밀해지기 시작했다. 거란은 더는 서뿔리 고려로 쳐들어올수 없게 되였다. 그러나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는 없었다. 거란은 당장은 고려를 칠수가 없어 주춤해있을뿐이였다. 거대한 옛 발해땅을 차지하기는 하였으나 곳곳에서 일어나는 발해유민들의 반거란항전은 멈추어지지 않고있었으며 각이한 이름을 단 발해후국들이 도처에서 계속 일어섰다. 거란은 발해를 일시 입에 물었으나 삼키지는 못하고 몸살을 앓고있었다. 거란이 고려를 공격하지 못하고있는 리유는 또 한가지 료동북쪽에서 세력을 불구고있는 돌궐의 존재때문이였다. 돌궐은 거란이 노리는 료동과 그 남쪽인 중원일대를 똑같이 욕심내고있었다. 이런 돌궐과 다투는데 거란은 어지간히 맥을 뽑고있었던것이다. 돌궐은 거란을 치는데 발해유민들과 손을 잡으려고 하고있었다. 여기에 흩어진 녀진족들이 합류해나섰다. 돌궐은 이들과 때없이 련합하여 거란을
괴롭히였다. 바빠맞은 거란은 일종의 회유정책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고려에 화친을 청한것이 그 실례였다. 거란왕 야률배(료나라 2대왕)는 고려와 일시 화친을 함으로써 발해유민들의 반거란항전을 무마해보려고 시도하였다. 큰 규모의 사절단이 거란왕의 친서를 가지고 압록강을 넘어왔다. 주단 100여필을 실은 50마리의 락타가 늘어선 행차였다. 왕건은 이에 분개했었다. 《료(거란)나라는 발해와 제휴할데 대한 우리의 제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하고서도 뒤집어버린 신의없는 나라이다. 동족의 나라인 발해를 무너뜨린
그 죄 용서할수 없을진대 화친이라니 이 무슨 궤변인가. 천추에 한을 남긴 적국 료(거란)와는 절대로 화친할수 없다!》 왕건은 거란사절들을 교동도로 류배보내는 조치를 취하였다. 주단은 불태워버리고 락타는 궁성밖 만부교밑에 매여둔채 굶어죽게 했다. 동족을 해친 적국 료(거란)에 대한 왕건의 립장은 이처럼 단호했다. 금필, 술희, 지몽, 언위 등 고려의 장수들과 대신관료 대다수가 왕건의
이러한 조치에 적극 찬성했다. 고려는 세워진 첫날부터 자기 할 말은 하고 사는 나라로서 제힘으로 나라를 통일하고 겨레를 합치였으며 주변의 그 어느 나라에도 신세진것이
없었다. 그 누구의 눈치를 볼 일이 없는것이였다. 동방일각에 그 위용이 자못 도도한 고려였다.… 금필은 지금 불어오는 강바람에 수염발을 날리며 배전에 서있었다. 낯익은 산천을 두루 살피고 선 그의 얼굴에 감회가 짙게 어려있었다. 지금 금필이 서있는 곳은 례성강 덕포나루였다. 바다를 면한 유명한 벽란포로부터 강상류로 거슬러올라오면서 세번째로 있는 나루였다. 일행은 여기서 잠시 쉬고있었다. 썰물이 지면서 강물의 흐름이 빨라져 거슬러오르는데 불리해진때문이였다. 밀물이 들기를 기다려야 했다. 저녁무렵에 밀물을 타고 다시 오르면 얼마 가지 않아서 조포나루가 나질것이다. 그곳은 우봉지경이다. 금필이 송씨의 가병으로 있으면서 무예를 익히고 웅지를 키운 곳이였다. 거기서 다시금 거슬러오르면 한포나루인데 금필의 조상의 뼈가 묻혀있는
다지홀본관지였다. 거기서부터는 륙로로 갈것이였다. 《저게 자라가 아니요?》 금필은 왕건이 소리치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여났다. 배전에 앉아있던 왕건이 강기슭을 가리키고있었다. 얼핏 살펴보니 강기슭 바위우에서
엉기적거리는 자라무리가 보이였다. 열댓마리쯤 되여보이는 자라들이 한가로이 해빛을 쪼이고있었다. 《옳소이다. 자라란 놈들이오이다.》 금필이 아뢰였다. 왕건은 자라에 호기심이 동해있었다. 《그놈들 실하기도 하다.》 사람의 말소리에 놀라서인지 몇마리의 자라가 뚤렁뚤렁 떨어져 물속으로 사라져버리였다. 하지만 나머지놈들은 여전히 태평스레 엎디여있다. 《지금이 쌍붙는 철이라 놈들이 저렇듯 서성거리는것이오이다.》 금필이 설명하자 왕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나는 바다물은 조금 아는듯 하나 민물은 잘 모르오. 금필아우는 이곳에서 살아보았으니 잘 알겠군. 저놈들을 더러 잡아보았소?》 《몇번 잡아는 보았소만…》 《그럼 이 사람에게 얼른 한마리 잡아주시오. 어디 아우의 왕년의 솜씨를 한번 봅시다.》 왕건은 좋은 일거리를 만난듯 금필을 부추겼다. 《이제는 몸놀림이 예전같지 않사와 혹여 웃음거리가 될런지 모르겠소이다만… 그럼 조금 기다려주시오이다.》 금필은 자라를 한번 잡아보리라 마음먹었다. 금필이 자기를 위해 우정 배길을 택한 왕건인데 그를 기쁘게 해줄수만 있다면 무엇을 주저하랴. 금필은 강기슭을 에돌아 강웃쪽으로 사라졌다. 《형님, 조심하시오. 이제는 이팔청춘이 아니란 말요.》 술희가 걱정한다. 《술희아우는 걱정이 많아졌구려. 마음놓고 기다려봅시다.》 왕건이 술희를 시까슬렀다. 왕건은 바위우를 주시했다. 금필이 이제 자라를 어떻게 잡는지 자못 흥미가 동한것이였다. 조금 있더니 강웃쪽에서 풀검불무지들이 둥둥 떠내려왔다. 그중 조금 큰 풀단사이에 갈대 하나가 유표하게 솟아있었다. 금필이 갈대로 숨을 쉬며
물속을 헤갈라오는것 같았다. 이윽해서 그 풀단은 자라들이 올라서있는 바위기슭에 와서 제돌이를 했다. 그렇게 잠시 바위기슭을 맴돌던 풀단이 갑자기 물우로 불쑥
솟구쳐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그 서슬에 자라들은 놀라서 눈깜짝할새 물속으로 떨어져 들어갔다. 헛물을 켰구나!… 구경하던 사람들이 아쉬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들은 금필이 금시 솟구치며 자라를 덮쳐잡을줄 알았었다. 《아이구 형님! 그만 물밖으로 나오시우!》 술희가 소리쳤다. 그 나이에 자라잡이라니… 페하께서 너무하신데가 있군. 그러다 우리 형님 병나시겠는걸. 술희는 발을 구르며 금필을 불러댔다. 《가만, 가만 … 술희아우! 그만 설레발을 치고 저길 보라, 저 갈대를…》 왕건이 술희를 끄당겨앉히며 수면에 손가락을 겨누어보이였다. 《갈대라니요?…》 술희는 왕건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서도 아직 알아채지 못하고있었다. 배가까이로 뾰족한 갈대가 물을 헤가르며 다가오고있었다. 모두가 가까이 다가오는 그 갈대에 시선을 모으고있었다. 진작부터 걱정만 앞세우고있는 술희만이 그걸 보지 못하고있을뿐이였다. 드디여 배전에 이른 갈대가 물우로 솟아올랐다. 뒤이어 갈대를 입에 문 금필의 얼굴이, 그다음 그의 상반신이 물우로 드러났다. 갈대를 뱉아버린 금필은 왕건을 향해 빙긋이 웃었다. 그의 두손은 아름이 벌게 두둑한 천자루를 그러안고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기의 도포자락을
그러안고있었다. 야! 하는 소리가 일시에 강안에 울렸다. 배에 오른 금필이 도포자락을 놓자 좌르르 자라들이 떨어져내렸다. 왕건의 발치에 소담한 자라들이 두둑이 쌓여졌다. 《자라다!》 《저런! 다섯마리나 잡았구만!…》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감탄해마지 않았다. 《대단하오, 대단해! 그 나이에 자맥질이라니… 역시 금필아우는 당대에 으뜸가는 장수요!》 왕건이 감탄을 련발했다. 《아직 물이 차겠는데… 어서 옷을 갈아입으소.》 술희는 한쪽으로는 자라구경을 하면서도 금필이 탈이라도 날가보아 잔걱정이 여간 아니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왕건은 흥에 겨워 금필에게 말했다. 《이제 서경에 올라가 여차하면 그길로 료동까지 내달릴수 있겠는걸. 금필아우가 이렇게 정력에 넘쳐있으니 짐도 힘이 솟는도다.》 《페하께서 소인을 소시적 고장으로 이끌어주시니 제 어찌 젊음이 솟구치지 아니하겠소이까. 정말 망극하옵니다.》 금필은 왕건을 기쁘게 해준것이 마음놓이였다. 이전에 금필은 주로 달밤에 자라잡이를 했었다. 자라는 보름달이 오를 때에 특별히 물밖으로 나와 놀기를 좋아하는 놈이였다. 오늘은 그저
왕건을 즐겁게 해줄 마음 하나로 몸을 놀려본것인데 다행히도 성공하였던것이다. 《형님이 오늘 정말 큰일을 했소이다. 자라라는게 몇백년을 산다는 짐승이니 이는 금필형이 페하의 장수를 기원하여 올리는 선물이 아니겠소이까!》 술희가 금필을 곁달아 칭찬해나섰다. 《경들이 건강해야 짐도 건강할것이요. 오늘 짐을 기쁘게 해준 금필대광에게 다시금 사의를 표하노라!》 왕건은 금필을 거듭 치하한 뒤 말을 이었다. 《그대들이 지금껏 나를 받들어 수고가 많았으니 이 자라를 상으로 받으라! 한가마에 푹 삶아서 우리 다같이 들도록 하자!》 《망극하오이다.》 일행은 다같이 머리를 숙였다. 《참, 두마리는 간수했다가 태자비와 식렴에게 주도록 하자. 태자비의 기가 허한것이 나에게는 걱정이로다.》 왕건은 그 순간에도 아들을 보지 못하고있는 태자의 일을 걱정했다. 《식렴이 서경에 틀고앉아 일을 많이 했어. 그 사람에게 금필이 잡은거라며 이걸 한마리 가져다주면 그가 작히나 좋아하겠나!》 왕건은 평양성의 식렴이도 생각하고있다. 전쟁을 하고있을 때나 끝난 뒤에나 임금의 머리는 한가해볼새가 없었다. 크든작든 한 나라를 그러안은 임금의 시름은 덜어질수가 없는가보았다. 일행은 강가에서 생각지 않았던 자라탕추렴을 하고 다시금 북으로의 길을 이어갔다. 례성강중류 한포나루에서부터 왕건의 행차는 륙로로 들어섰다. 젊은 시절처럼 말을 구보로 달리는 걸음이 아니여서 행렬은 어지간히 굼떴다. 임금의 순행에 어울리게 느릿한 속도를 유지하고있었다. 지몽과 태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예순을 넘거나 내다보는 나이들이라 지그시 걷는데 익히
절어있었다. 당악(중화)고개를 넘은 행렬이 락랑벌로 들어서고있을 때였다. 곧추 뻗은 길우로 사람 둘이 정신없이 달려오고있었다. 하늘공중에 시선을 던진채 두팔을 마구다지로 휘저어대며 달음박질을 치는것이 무엇엔가
혼이 쑥 나간 자세들이였다. 맹수에게 쫓기는것이 아닐가? 술희가 손을 들어 행렬의 선두를 멈춰세웠다. 《살을 메워라!》 술희가 소리치자 궁수들이 날쌔게 활을 겨누어들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두사람은 행렬의 코앞까지 달려와 멈춰섰다. 둘중 하나는 녀자였다. 이들의 손에는 묵은 바가지쪽들이 들려있었다. 전렬의 군사와 부딪칠번 하고서야 행렬을 알아본 이들은 당황하여 눈길을 허둥거렸다. 《뭣들이냐?》 술희가 소리치자 사나이는 허공을 가리켰다. 《벌들이 세간을… 저걸 쫓다나니 그만…》 《그래?!…》 술희는 얼결에 허공중에 눈길을 돌렸다. 그 순간 위잉… 하는 소리가 일행의 귀전을 울렸다. 동시에 꺼먼 벌떼가 행렬의 머리우로
지나갔다. 뒤엉킨 벌떼가 스쳐지나가는 서슬에 언뜻 해빛마저 가리워졌다. 《이크! 이런 횡재라구야…》 술희는 그제사 알겠다는듯 무릎을 탁 쳤다. 《그걸 이리 다오.》 술희가 사나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가지쪼각을 달라는것이였다. 《사부님! 어찌시려는것이오이까?》 태자 무가 호기심이 동해 물었다. 《태자마마! 신이 이제 좋은것을 보여주리다.》 술희는 바가지를 들고 혀를 내밀어 핥아보더니 씨익 태자에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병졸의 창을 앗아들고 창날에 바가지를 꿰여들고는 말의
배허벅을 힘껏 걷어찼다. 행렬은 잠간 멈춰서서 말을 몰아가는 술희에게 시선을 모았다. 술희는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개울을 건너 벼랑앞까지 달려가서야 말을 멈추었다. 거기서 몇번 몸을 솟구치더니 이윽해서 되돌아 달려왔다. 땀발이 질벅하게 젖은 얼굴을 태자에게 돌린채로 술희는 손에 든 창을 높이 쳐들어보였다. 《태자마마! 벌떼를 잡아왔소이다.》 《벌떼를?!…》 태자는 쳐들린 창끝을 바라보았다. 물동이만큼 큰 벌떼무지가 창끝에서 뭉실거리고있었다. 술희가 창대를 좌우로 마구 휘저어대는데도 벌떼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이리 둥실, 저리 둥실 창대끝에 달려다니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오이다. 저것들이 저렇듯 엉켜붙어 떨어지지 아니하니 말이오이다.》 태자가 감탄하는 모양을 바라보던 왕건이 너그러이 웃으며 물었다. 《태자는 벌떼가 세간을 나는것을 처음 보느뇨?》 《그러하옵나이다, 페하마마!》 《벌들이 노는 모양을 들여다보느라면 자연의 조화속에도 생명의 근본으로 되는 리치가 있음을 알수 있노라!》 왕건이 지몽을 돌아보며 의미있는 미소를 지어보이였다. 《지당한 말씀이옵나이다.》 지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그 리치란 무엇이옵나이까? 》 태자가 긍금한듯 되물었다. 《내봉원사가 답을 주오.》 왕건이 지몽에게 설명을 떠맡기였다. 《페하! 그 답은 술희대광이 주게 하소서.》 지몽이 사양하자 왕건이 쾌히 응하였다. 《딴은 그렇구려. 날아가는 벌을 잡아온 술희대광에게 언권을 주노라.》 술희는 희색이 만면하여 태자에게 다가갔다. 《태자마마! 벌이란것은 어미인 녀왕벌 하나만을 모시는 기이한 벌레오이다. 수천수만마리의 벌들이 오직 한마리의 녀왕만을 따르는것이지요. 저
꿀벌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벌집을 엮어놓소이다. 그러면 녀왕벌이 그 무수한 구멍들에 알을 한개씩 낳아넣지요. 알은 인차 유충으로 변하는데 그러면
꿀벌들은 이번엔 꿀을 날라다 유충들에게 먹이오이다. 이 벌들이 꿀을 만들어먹이는데 따라 꿀벌이 되고 수벌이 되고 녀왕벌이 되옵나이다. 꿀벌이
천마리면 수벌이 백마리, 녀왕벌이 열마리정도의 비률로 되오이다. 벌들은 새로 자라나는 벌들을 지켜보다가 절반쯤 큰 다음에 수벌은 절반쯤
죽여버리고 녀왕벌은 한마리만 남기고는 모두 죽여버리나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저희들끼리 제절로 균형을 맞추는셈이오이다. 녀왕벌이 다 자라면
이미 있던 녀왕벌과 같이 있을수 없게 되므로 드디여 따로 나게 되오이다. 만화방창한 4월(음력)의 개인 날을 잡아 다 자란 녀왕벌은 벌통에서 나와가지고 하늘높이 치솟아오르다가 자기뒤를 따르는 수벌들가운데서
마지막까지 따라오는 수벌 한마리와만 정을 나누오이다. 그나머지 수벌들은 일생 녀왕벌을 호위만 해줄뿐 더는 범접을 못하오이다. 함께 까나온
로동벌(꿀벌)들이 수벌들과 함께 녀왕벌에게 합류하오는데 녀왕벌은 저를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새로운 거처지를 잡으러 날아가고 또 날아가오이다.
지금 이 벌떼처럼 말이지요. 그다음 처음과 같은 일이 또 반복되고… 해마다 한차례씩 진행되오이다.》 《하오면 사람들이 먹는 꿀은 어떻게 얻어지는것이오이까?》 《벌통안에는 벌집이 여러겹으로 달려있소이다. 웃쪽의 벌집들에서 벌들이 자라고 아래쪽 벌집들엔 꿀이 채워지는데 오래 묵은 벌통일수록 아래쪽
꿀을 채우는 벌집이 두텁소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오이다.》 태자는 연신 감탄하였다. 《자연의 조화치고는 너무도 인간세상과 합치되는바가 있사오이다.》 지몽이 때맞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갖 미물에 불과한 벌레조차도 한어미만을 따르는것이고보면 신하가 한임금만을 모시는것이야말로 지극히 당연한 인간사라 아니할수
없는것이오이다.》 《잘 알아들었소이다. 세상만물이 이같이 하나의 중심에 뭉쳐야 생존할수 있다는 리치를 내 언제나 잊지 않고 새겨두겠소이다.》 태자는 지몽이 아니라 왕건에게 머리숙여 아뢰였다. 왕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두 남녀에게 시선을 돌리였다. 《그대들은 어디 사는 백성들이뇨?》 왕건의 물음에 둘은 황급히 땅바닥에 부복했다. 저들의 앞에 있는이가 상감마마라는 사실에 어지간히 놀란것이였다. 《소신들은 락랑벌에 거처를 잡은 농군들이옵니다. 천만뜻밖에 이런 몰골로 임금님을 뵈옵게 되여 황송하기 그지없소이다.》 《그대들은 부부간인가?》 《그러하옵니다.》 《자식들은 있는가?》 《이 사람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이 하나 있소이다.》 《후취를 하였느냐?》 《그렇사옵니다. 전장에서 돌아와보니 부모님과 자식들은 병을 앓아 이미 저세상사람이 되였사와…》 《내인되는이도 남편이 잘못되였느냐?》 《전장에서 그만…》 녀인은 빨개진 얼굴을 수그린채 간신히 대답하였다. 《마을사람들이 그대들을 박대하지는 않느뇨?》 왕건의 물음에 농군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임금님께서 교지를 내렸다 하시와 이 사람과 결합은 하였사오나… 뒤소리가 그치지 않아 외따로 나와 살고있소이다.》 《그 뒤소리란게 어떤것이냐? 짐이 좀 들어보자.》 《어서 아뢰여라.》 왕건이 거듭 독촉해서야 농군은 뜨직뜨직 대답했다. 《조상전래로 내려오는 법도를 어긴 무도한것들이라고 욕을 하옵나이다.》 《임금의 교지를 따랐음에도 그러는가?》 《다 그러는것은 아니옵고… 페하! 소인들이 인륜법도를 어긴것은 사실이오라… 이렇게라도 살게 해주신 페하의 은혜에 백골난망일뿐이오이다.》 《그렇지가 않다. 나이든 남자가 홀몸으로 어찌 편안히 살수가 있단 말이냐. 그대같이 전장에서 늙어버린 사람이 말이다. 겨레의 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그대가 아니겠는가. 인륜법도도 사람이 살게 하자고 있는것이다.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왕건이 격해진 음성으로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페하! 페하의 교지에는 이상이 없는줄 아뢰오.》 금필이 황급히 대답했다. 《페하, 어지를 소홀히 하는 페단을 제 곧 바로잡겠나이다.》 지몽도 왕건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아뢰였다. 《우리가 집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것만 보고 서뿔리 안심하고 있었소이다. 죄송하오이다.》 금필은 생각되는바가 커서 다시금 왕건에게 사죄하였다. (내가 의지가지할데 없어 전전긍긍하던 소시적 처지를 벌써 잊고있었구나.…) 금필의 머리우로 왕건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백성들의 마음의 상처가 아물도록 해야 하오. 마음의 상처가 아물도록 말이요.》 《페하의 뜻을 받들겠나이다.》 일행은 숙연히 머리를 숙이였다. 이 순간 이들은 아직은 이 땅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생각했다. 《그대는 집에다 벌도 치는 모양이군?》 왕건은 농군에게 화제를 돌리였다. 《지난해 가을부터 이짓을 하고는 있사오나…》 농군은 또다시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부지런히 일하고 아들딸도 많이 낳도록 하여라. 우리 고려는 땅만 넓어질것이 아니라 백성들도 늘어나야 할것이노라.》 《알아들었소이다, 페하!》 왕건의 분부에 감심한 두 내외의 눈에선 금시에 눈물이 고여내렸다. 그들은 멀어져가는 왕건의 행렬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농부가 쥐고 선 창대우에서는 벌무리가 여전히 뭉실거리고있었다. 왕건을 위시한 행렬은 미시 중간무렵(오후 2시)에 대동강가에 도달하였다. 대동강너머로 웅장한 평양성곽이 눈이 모자라게 안겨왔다. 강대안에는 신록이 짙어진 버들숲이 우거져있고 그사이로 갖가지 꽃들이 점점이 피여 향기를 풍기고있었다. 왕식렴이 미리 강을 건너와있다가 왕건을 맞이하였다. 화려하게 장식한 범선으로 임금을 안내하는 식렴의 얼굴에 만족한 웃음이 넘실거리고있었다. 왕건이 년초에 이르기를 이제부터는 년중에 두달이상은
평양성에서 정무를 보리라 하였었다. 그 말을 어기지 않고 봄이 무르녹는 이 계절에 이렇게 찾아온것이였다. 진작부터 평양성으로 천도해야 한다고 주장해나선 식렴이였다. 그는 평양성에 틀고앉은 이후로 평양에 완전히 반해있었다. 강을 건느자 왕건은 식렴에게 단군사당으로 안내하라 일렀다. 점심시간도 퍼그나 지난 때였지만 왕건은 조상을 찾는 례의부터 지키려는것이였다. 왕건은 평양성밖 교외에 있다는 단군의 릉과 동명왕의 릉도 찾아내여 정리를 하라는 어지를 이미전에 내린터였다. 그 일이 늦어지고있어 불만이 여간 아니였다. 고구려시기엔 평양성안에도 단군과 주몽의 사당이 있었는데 이러저러한 란리통에 자취를 찾을수가 없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이에 주목을 돌린 왕건이 년초에 식렴에게 분부를 내리였다. 단군과 주몽의 사당을 당장 세워놓으라고 하였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엔 응당 겨레의 시조인 단군과 고구려시조 주몽을 제사지내는 사당이 복구되여야 한다고 했다. 지금 그 정형을 알아보자고 그곳부터 찾는것이였다. 일행은 대동문으로 들어섰다. 대동문은 평양성 내성의 동쪽성문이였다. 당시로서는 동양제일의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성문이였다. 식렴은 왕건을 평양성 내성의 장대재봉우리로 안내하였다. 이곳은 평양성의 주요지휘처의 하나였다. 여기서는 내성의 동서쪽과 남쪽전경이 한눈에 안겨왔다. 평양성의 중성과 그 남쪽으로 이어진 외성
그리고 그 너머로 굽이져간 대동강과 보통강까지 바라보이였다. 장대재에서 서남쪽으로 굽이쳐간 보통강을 면한 성벽의 한끝에 평양성 중성의 서문인 보통문이 운치있는 용모를 드러내고있었다. 일행은 평양성 남서쪽의 경치에 한동안 눈을 팔고있다가 왕건의 독촉을 받고서야 장대재 남쪽등성이 안쪽에 있는 사당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일행은 사당안에 들어가 단군과 주몽의 화상앞에서 향을 피워올리고 절을 올렸다. 이 사당은 왕건의 지시로 왕식렴이 대광 류차달(류달)이와 함께 급히 지은 건물이였다. 류차달은 왕건이 후백제와 최후결전을 벌릴 때 대동강 남쪽에서부터 서쪽지역안의 인력과 물산을 총동원하여 군량을 마련하고 천여대의 수레를
만들어 전장에까지 날라다 보장한 공로로 대광의 벼슬에 오르고 두 아들중 맏이는 차씨성을 하사받고 문화현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자신도 왕건의 어명으로 차씨성을 받아 이름을 류차달로 고치였다. 그사이 류차달은 왕식렴과 손발을 잘 맞추었다. 금필의 부탁을
진심으로 받아들인것이였다. 그는 식렴으로부터 임금의 분부를 전달받자 그 즉시 자기 본거지인 문화현에 내려가 구월산 패엽사에 이미전부터
안치되여있는 단군의 3대목상(단군의 조부 환인, 부친 환웅 그리고 단군)을 모조해오게 하는 한편(이 3대목상은 리조시기에 와서 패엽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삼성사라고 하는 절을 새로 짓고 옮겨안치하였다.) 평양성주변은 물론 이전 후백제와 신라시기의 절간들까지 모조리 훑어가며 단군과
주몽의 화상원본을 찾아내고 화공을 시켜 재현하게 하였다. 원래 고구려는 단군과 주몽을 비롯한 력대왕들의 화상을 평양성 북성안의 사당에 안치해왔었는데 그것이 그간의 란리를 겪는 과정에 자취를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는것이였다. 그때 당시 라당군의 평양성황페화작전의 후과였다. 그러던것이 류차달의 활약으로 시조의 화상은 다시금 제모습을 드러내게 되였다. 《류달형은 역시 인재요.》 금필은 류달의 공적을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