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 회)
제 6 장
북대봉호랑이
1
북대봉이 내뿜는 새벽숨결인양 짙은 안개가 초불봉골짜기로 기여오르고있었다.
그 안개속을 헤집고 큰 나무단을 진 황바위가 늙은 홰나무를 끼고선 돌바위를 돌 때 안개속에서 불쑥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머리채를 감아올리고 수건을 질끈 동인 총각이였다. 손에는 큼직한 쇠장대가 들려있었다. 주춤 멈춰서는 황바위를 보자 그쪽에서 먼저 소리를 쳤다.
《아니, 너 황바위 아니냐?》
웅글지고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아, 칠성형님!》
황바위는 마주 소리를 치며 나무짐을 팽개치고 그에게로 달려갔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그래 네가 여기서 산단 말이냐?》
칠성이는 다시한번 소리치며 그의 두팔을 부여잡았다.
《그래 아버지는 살아계시냐?》
칠성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 저기 계셔요.》
바위가 가리키는 오막살이를 향하여 칠성이는 급히 달려갔다.
영문을 몰라하며 황바위도 그뒤를 따랐다. 지팽이를 짚고 사립문가에 서있는 황봉을 보자 칠성이는 소리쳤다.
《아저씨, 여기서 빨리 피하시우.》
그의 뜻밖의 말에 황바위의 발걸음이 뚝 멎었다.
《아니, 칠성이가 아닌가.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린가? 빨리 피하라니?》
지팽이를 짚고 급히 다가오던 황봉이 되받아물었다. 바위는 커진 눈으로 칠성이를 지켜봤다.
《성천부사가 여기로 옵니다. 어서 피하시우. 붙잡히면 다 죽습니다.》
《뭐, 그놈이 여기까지 날 또 잡으러 온단 말인가?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걸 알았단 말인가?》
《아니요. 그 부사놈이 아저씰 잡으러 오는게 아니라 저 초불봉에 치성을 드리고 왜놈에게 팔아먹을 범사냥을 하려고 숱한것을 거느리고 오는데 아저씨랑 바위를 보면 살려둘것 같습니까. 지금 저 골짜기로 올라오고있습니다. 나보구 길잡이를 하래서 앞서왔는데 내가 먼저 온것이 참 천행이군요.》
《뭐?!》
골짜기아래 안개속에서는 벌써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자, 빨리!》
칠성이는 달려가 집안을 둘러보더니 당장 그들이 먹어야 할 낟알과 그릇들을 서둘러 거두기 시작했다. 황봉은 후들후들 주먹을 떨었다.
눈에서 불이 일었다.
《아니, 그 불마귀같은 놈이 이 깊은 산골에까지…》
워낙 골짜기가 깊고 험해서 10여년을 살면서도 사람 하나 찾아드는걸 본 일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 원쑤놈이 여기까지 찾아들다니… 정말 자기가 북대봉 산신령에게 밉게 보인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 기가 막혔다.
칠성이는 서둘러 몇가지 세간붙이를 걸머지고 집앞쪽 수풀속을 향하여 앞장을 섰다. 황바위도 이것저것 걸머지고 아버지를 부축해갔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지팽이가 더 크게 쿡쿡 소리를 내는듯싶었다.
《이 사람 칠성이, 더 차근차근 좀 말해주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엉?》
황봉의 말에 칠성이도 자기가 너무 서둘러대며 할 말을 다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왕궁안의 김귀인인지 김귀신인지 하는 계집년이 여기 북대봉속에 옛말로 전해오는 신기한 초불봉이 있다는 말을 듣고 성천부사에게 부처님생일인 오늘 초파일부터 그 바위꼭대기에 초불을 켜놓고 3일치성을 드리라고 했답니다.
제가 더 많은 아들딸을 낳게 해줄것과 낳아놓은 아들딸의 무병장수를 비는데 사실은 제 아들이 앞으로 임금자리를 차지하게 해달라고 비는거랍니다.》
《아니, 그럼 저게 옛말에 나오는 그 〈초불봉〉이란 말인가. 그걸 어떻게 알아냈다던가?》
《성천, 양덕고을 늙은이들의 말을 듣고 비슷한 곳을 알아냈답니다. 그런데 그게 진짜 그 〈초불봉〉인지 알게 뭡니까.》
《뭐?》
《그리고 부사는 이 계제에 조참봉이랑 짜구서 치성이 끝난 다음 북대봉호랑이를 잡아서 가죽을 벗겨 왜놈에게 팔아먹으려구 한답디다. 왜국의 왕을 대신하는 도요도민지 한 놈이 조선의 호랑이가죽을 사오란대요. 그래서 이번에 사냥군 열두명에 숱한 몰이군까지 데리고옵니다. 이제 그 악귀같은 조참봉도 사냥군이랑 더 데리고 뒤따라 올거야요. 그러니 아저씨네가 여기서 어떻게 견디여내겠습니까.》
칠성이는 급히 황봉을 부축하고 앞산중턱에 있는 으슥한 바위굴속으로 들어갔다.
《바위야, 너 여기서 나다녀선 안된다. 아버지를 잘 보살펴드려라. 그런데 3일치성이 끝나면 곧 호랑이사냥이 시작될텐데 야단났구나.》
칠성이가 안이 달아하는데 《형님, 걱정마우. 그 성천부사놈을 내 가만 놔두지 않갔소. 아버지나 여기서 꼼짝말구 계시우.》하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황바위는 굴을 뛰쳐나가 숲속을 가로질러 어데론가 사라졌다.
칠성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저씨, 큰일났수다. 저애가 어느 판국인지도 모르고 저렇게 철없이 날치니…》
《그놈의 성깔머리가 이런데 처박혀있을리가 없지.》
황봉이도 안절부절 못하는데 갑자기 황바위가 불쑥 다시 나타나더니 칠성의 손을 잡고 물었다.
《칠성형님! 밤나무골엔 갔다왔겠지요. 어머니랑 쌍가마랑 억쇠네 식구들이랑 다 만났겠지요?》
하더니 대답을 들을 사이도 없이 한번 벙긋 웃고나서 또 어데론가 훌쩍 사라졌다.
칠성은 목젖이 뜨거워났다. 이런 경황속에서도 다시 달려와서까지 그것을 물어보는 갸륵한 황바위, 그러나 아직도 집에 가보지 못한것으로 해서 그에게 죄를 지은것만 같아 가슴이 옥죄이는데 골짜기에 말울음소리와 사람들 들레는 소리가 커졌다.
《그럼 아저씨만이라도 여기 꼼짝말구 계시우.》
칠성이는 급히 골짜기쪽으로 달려내려갔다. 사방을 둘러봐도 황바위가 간 곳은 알길이 없었다.
황봉은 굴벽을 쾅쾅 치며 울부짖었다.
《하늘도 무심하구나. 그 원쑤놈들이 이 골짜기에까지 기여들다니… 나를 병신으로 만들어놓구도 또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때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아들이 오직 하나 자기가 기대일 기둥인데 그놈까지 저렇게 철없이 날치니 꼭 무슨 일을 저지를것만 같아 가슴이 새삼스럽게 옥죄여들었다.
황봉은 아들을 금방 원쑤놈들 손에 죽이는것만 같아 엉금엉금 굴밖으로 기여나왔다. 벌써 자기의 오막살이쪽으로는 성천부사일행이 올라오고있었다.
《바위야! 바위야!》
황봉은 애타게 아들을 불렀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순간 이 심심산골에서 목숨걸고 쌓아올린 이 세상의 자기 몫이 갑자기 송두리채 무너지는듯 아들을 부르는 목소리가 칵 쉬여졌다.
이때 황바위는 제 둥지에 기여든 구렝이떼를 본 산제비처럼 날쌔게 산비탈을 가로질러 자기 집 앞산쪽 우거진 숲속에 와서 숨었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놈들의 떼거리를 본 황바위는 깜짝 놀랐다.
(아니, 저렇게 많이?…)
성천관가에서 본 산수벙거지 쓰고 륙모방망이든 놈들과 거먹초립 쓴 역졸들까지 앞장서왔다.
황바위는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숱한 놈들이 밀려들줄은 생각못했던것이다.
(아, 저놈들이 우리 집을…)
황바위는 가슴을 할딱거리며 자기 집쪽을 지켜보았다. 앞장서 올라온 놈들이 란장을 부리기 시작했다.
겁도 났지만 분기가 더 치밀어올랐다.
집앞의 오리나무와 홰나무에 말을 매는 놈, 뜨락으로 밀려들어가 차곡차곡 쌓아놓은 나무가리와 자기가 지고오다가 팽개친 나무단까지 가져다가 화토불을 피우고 아버지와 자기의 손때가 묻은 세간붙이들을 마구 내동댕이치는 놈들…
(아, 저 동고리…)
황바위는 저도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놈들이 활활 타는 화토불속에 집어던진 그 동고리는 시렁우에 얹어두었던것이다. 그안에는 쌍가마가 그날 매준 빨간 갑사댕기쪼박이 들어있었다.
성천관가마당에서 악귀같은 놈들의 발길에 밟히우고 찢기워 한쪼박만 남아있었지만 정갈한 앞개울물에 피자국, 발자국을 씻고 또 씻어 소중히 넣어둔 댕기와 어머니가 썼다는 버들동고리다.
황바위는 머리를 싸쥐였다. 쌍가마와 그의 어머니에게 큰 죄를 짓는것만 같아 마음이 죄여들었다.
(아, 내가 그걸 왜 그냥 놔두고 왔던가.)
황바위는 발을 동동 굴렀다. 금방 내달려가고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는 황바위는 으르릉거리며 몸부림쳤다.
놈들이 하는짓이란 모두 승냥이나 메돼지따위 짐승들이 하는짓과 꼭같았다. 제가 나서자란 집앞뒤밭에 가꿔놓은 봄싹들, 울밑의 진달래며 꽃싹들이 짓뭉개지고 푸르청청하던 소나무들이 놈들의 도끼날에 애처로운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 때 그것이 제 몸뚱이가 찍히는것처럼 아프게 느껴졌다.
(아, 저 소나무는 조선백성의 마음처럼 사철푸른 나무라고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말해준 나문데… 정말 저걸 다 빼앗긴단 말인가.)
그는 떡갈나무가지를 붙안고 안절부절 못했다.
(그래, 저 초불봉에 초불을 켜놓고 성천부사가 왜놈줄 호랑이를 많이 잡게 해달라고 빌겠지? 왜놈중은 잡지 않고 아버지 발꿈치만 끊어놓은 그놈을 따라다니며 떠받드는 저놈들도 꼭같은 놈들이 아닌가, 개자식들…)
《아버지, 저놈들을 보시나요?》하고 소리라도 치고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갑자기 굴속에 있는 아버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는 쓱 눈등을 문질렀다. 그의 두주먹에는 어느새엔지 차돌멩이가 꽉 쥐여있었다.
이제는 우글거리는 놈들때문에 한발자국도 옮겨놓을수가 없었다. 황바위의 가슴은 바직바직 조여들었다. 분했다. 억울했다. 그러나 아무리 성깔이 드세다 해도 역시 열세살, 그는 어쩔수없이 입술만 꽉 깨물고 씰룩거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