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5 장

되돌아선 인생길

3

 

아래도리에는 울긋불긋 봄꽃치장을 하고 아아한 산마루들은 아직도 희디흰 눈수건을 쓴 철늦은 북대봉의 봄이다.

그 산발속에 《초불바위》라고 황봉의 부부가 이름지은 그리 높지 않는 돌바위봉우리가 있다.

그들은 그 돌바위이름을 지어부르면서 이 지방사람들이 외워오는 옛말이 바로 그 《초불봉》이 아닐가 하고 생각해왔었다. 그 바위는 마치 초대를 세워놓은것처럼 끝이 뾰족했다.

바라보느라면 그 뾰족바위끝에 초대를 꽂아놓고 불을 켜보고싶어진다. 그렇게 놓고보면 우툴두툴한 그 벼랑바위몸체도 마치 녹아내린 초불의 눈물이 엉켜붙어 더덕져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초불봉밑에는 사람모양의 두개의 큰 바위가 마치 그 초불바위를 붙안고있는듯싶다.

…어느 왕때엔가 극히 지혜롭고 용감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운 한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이웃나라에는 욕심이 많고 포악한 임금이 있었다. 그는 항상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려고 기회를 노리며 많은 군사와 병쟁기들을 준비해놓는 한편 숱한 렴탐군들을 들여보내여 우리 나라의 내부형편을 알아내가고있었다.

그 신하는 이런 실태를 환히 꿰뚫어보고있었기때문에 군사를 키우고 병쟁기를 갖추며 성들을 쌓아서 나라의 방비를 튼튼히 할것을 왕에게 제기했다. 그러나 오랜 태평세월에 물젖어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던 왕과 대신들은 그의 말속에 임금의 정치를 비난하는 뜻이 담겨져있다면서 그를 형틀에 잡아매고 곤장질을 시작했다.

왕은 직접 친국좌기(왕의 직접심문)의 자리에 벌리고 앉아서 물었다.

《네 감히 그 곤장밑에서도 외적이 쳐들어온다고 말할테냐?》

《쳐들어옵니다.》

허공에서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홍곤장, 청곤장이 내려져 그의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부스러졌다.

대신들이 고함을 쳤다.

《이래도 외적이 쳐들어오느냐?》

《온다.》

《정말 오느냐?》

《온다.》

곤장질은 며칠이나 계속되였다.

궁성문밖엔 백성들이 모여들어 충신을 죽이지 말라고 웨쳤다.

그러나 몽매하고 진부한 왕과 신하들은 그 목소리들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매질을 계속했다.

그 신하는 형틀우에서 마침내 원통하게도 목숨을 잃고말았다.

그가 죽자마자 적들이 쳐들어왔다. 나라안은 삽시에 불바다, 피바다가 되고 백성들의 아우성과 통곡소리로 뒤덮였다.

이때 머리 흰 늙은 부부가 북대봉 깊은 골짜기로 들어와 골짜기의 석간수로 목욕을 하고난 다음 초대처럼 생긴 나지막한 바위우에 초불을 켜놓고 치성을 드렸다. 그들은 나라를 위하여 바른말을 하다가 맞아죽은 그 신하의 부모였다.

그들은 초불앞에 엎드려 북대봉 산신령에게 빌었다.

《내 아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소원을 못푼채 세상을 떠났는데 외적이 이 땅에 쳐들어왔나이다. 그 원쑤놈들이 내 아들의 소원대로 이 땅에서 멸살이 되게 해주소서.》

아들의 뜻으로 이렇게 그 부모들이 사흘낮사흘밤을 빌고났을 때 북대봉에는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초불바위가 움씰움씰 커지더니 마침내 수백길로 자라났는데 밤마다 그 바위끝에서 초불같은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러더니 그 바위에서 시뻘건 불뭉치가 하늘로 날아올라 적군의 진중에 떨어졌다. 그래서 무수한 적들이 타죽었다.

그다음부터 북대봉근방에는 적들이 얼씬도 못하고 나라안에 쳐들어왔던 놈들도 이 소문을 듣고는 산천도 이 나라 백성을 돕는다고 하면서 겁에 질려 도망치고말았다.

그런데 또 신기한 일이 생겼다. 아들을 대신하여 초불바위에 초불을 켜놓고 빌던 아버지, 어머니가 그 초불바위를 그러안은채 큰바위가 되여 굳어진것이다. 마치 아들의 소원대로 나라안에 외적이 다시는 기여들지 못하게 하려는듯이… 그러자 수백길로 높아졌던 바위도 예전대로 되고말았다.

오늘도 그 전설의 바위인듯한 초불봉은 아름다운 봄치장을 하고 그날처럼 우뚝 서있다.

그 초불봉옆의 오막살이로 돌아온 황바위는 기진맥진한 아버지를 방에 눕히고나서 서설봉이 지워보낸 밥가마를 부엌에 다시 걸었다. 아들의 정성인양 장작불로 훈훈해진 방안에서 황봉은 아들이 끓인 좁쌀미음을 억지로 넘겼다. 몸은 지칠대로 지쳤건만 눈을 감아도 잠은 천리로 멀어지고 끝없는 생각들이 얽혀져 뒤채기다가 문짬으로 바깥을 내다보던 황봉은 《어이쿠!》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쳤다. 떠나갈 때 세상풍파에 밀리워 이 골짜기로 들어오는 사람이 쓰라고 옥매여 기둥우에 달아맸던 씨오쟁이를 모자라는 키로 발돋움해 내리려다가 고이고 올라선 장작개비와 함께 추녀밑으로 굴러떨어진 아들이 다시 일어나 이악스레 씨오쟁이를 안아내리는것이였다.

(아, 세상이 모질구나.)

황봉은 두주먹을 부들거리며 터지는 울음을 이를 악물고 삼켰다. 그의 괴로운 마음을 부드럽게 해주려는듯 묻어두고 떠났던 백일홍, 봉선화싹이 울밑에서 파랗게 움트고있었다.

이밤 초불봉에서는 소쩍새가 목이 터지게 울어옜다. 전날밤 밤나무골 한서방네 뒤동산에 날아와울던 소쩍새만 같아 황바위는 이윽토록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서자란 북대봉골짝 소쩍새소리가 이렇게 구슬픈줄을 황바위는 처음으로 느꼈다.

밤은 얼마나 깊었는지…

황바위는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발꿈치를 쓸어보았다. 황봉의 가슴에 피눈물이 고였다.

《바위야, 그만 자려무나.》

황봉의 목메인 목소리와 큰 손이 아들의 마음과 머리를 쓸고 쓸어주었다.

다음날 아침 황바위는 초불봉옆 뙈기밭을 일구었다. 자기 키에 대면 너무도 큰 쇠스랑이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입을 꽉 다물고 비탈밭과 씨름이라도 하듯 황바위는 산등판을 억척스레 파일구었다. 아버지가 다루던 밭이며 쇠스랑이였다.

(이제는 아버지대신 내가 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큰 마음을 다잡아먹은 황바위다. 비록 애어린 쇠스랑질이지만 그의 매모진 마음이 북대봉 한모서리를 뚜져놓으며 한이랑두이랑 밭을 일구어나가고있었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두눈은 그 어떤 분노를 쪼아나가듯 황황히 타오르고있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불쌍한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나 기쁘게 해드리자는 갸륵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아버지의 가슴을 아프게 해주는 일인줄을 아직은 미처 다 모르는 아들이였다.

이때 와스락버스락소리가 나더니 아기사슴 두마리가 숲속에서 껑충껑충 뛰여나와 황바위옆으로 왔다. 목에는 산꽃굴레들을 둘렀다. 북대봉을 떠나기 전에 황바위와 함께 자란 아기사슴들이였다. 이 북대봉으로 다시 돌아와서 황바위는 제일선참으로 이 사슴들의 귀에 익은 휘바람을 불어서 불러냈던것이다. 아버지를 쓸쓸하지 않게 해드리려고 천고밀림에 대고 휘파람을 부는 황바위의 바지가랭이에 뿔을 비벼대며 사람세상인심이 어떻더냐고 물어보기라도 하는듯 긴목을 추켜들던 사슴들이다.

사슴들은 어려서부터 황바위와 함께 살다싶이하며 호랑이가 울 때면 황바위네 부엌간으로 뛰여들군 하였다. 황바위는 아버지가 웃으시라고 그 사슴들의 목에다 봄꽃을 따다 달아주었는데 아버지는 웃음대신 구레나룻만 더 씰룩거려 바위의 마음까지 더 쓸쓸했었다. 사슴들의 머리를 쓸어주며 바위는 제 동무들에게라도 말하듯 속삭이였다.

《좀 보라구, 아버지 쓰시던 쇠스랑자루가 너무 길지 않니? 그래서 이제 내가 쓰기 좋게 잘라야겠다. 그리구 이제 이 밭에 낟알들도 내가 다 심을테야. 너희들은 아버지한테 가서 껑충대며 놀아라. 우리 아버지 기뻐하시게.》

뙈기밭아래쪽의 오막살이옆 산살구나무밑에서 황봉은 씨다래끼를 메고 아들을 지켜보고섰다.

《원 녀석두…》

그의 눈굽에 뜨거운것이 자꾸 흘러내렸다. 그는 새파랗게 봄풀이 돋은 안해의 무덤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보, 좀 보우. 사람세상에 나갔다가 쫓겨돌아온 저 바위녀석을 말이요.》

마지막으로 아들을 남편의 품에 안겨주며 《이 산골에서 혼자 이 어린것을 어떻게 키우시겠소.》하고 감기지 않는 눈을 감은 안해였다.

황봉의 목줄기에서 굵은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오늘따라 청승맞은 국국새(산비둘기)는 극성스럽게도 울어댄다.

황봉은 지팽이를 고쳐짚고 씨다래끼안에 한쪽손을 넣었다. 아들이 기둥에서 내린 씨오쟁이의 씨앗이다. 봄순이와 함께 싸가지고 와서 이 골짝에 처음으로 뿌려 가꿔온 낟알들이였다.

황봉은 아들이 일군 이랑을 따라 지팽이를 옮겨가며 씨앗을 뿌리고 한발로 묻어갔다. 오늘따라 초불봉은 황봉에게 더 가슴아픈것으로 안겨왔다. 열네해전 봄순이와 함께 이 골짝으로 도망쳐왔을 때 그들은 망울을 터치는 진달래떨기가 비낀 맑은 석간수 한그릇을 그 초불바위밑에 정히 떠놓은 다음 푸른 소나무가지와 사철나무가지를 물그릇옆에 고여놓고 북대봉과 더불어 백년을 함께 푸르싱싱 살아갈 굳은 언약을 맺는 혼례를 치르었던것이다.

그날 뻐꾸기 한마리가 그들의 머리우를 날아가며 그 보기 드문 혼례식소식을 온 북대봉산발들에 펼쳐놓으려는듯 뻐꾹거릴 때 봄순이는 그 초불바위를 치며 통곡을 터뜨렸다. 북대봉 정갈한 옥계수로 씻고 닦고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이마우의 《도비》라는 불글자를 초불바위에 비비며 흐느낄 때 그 바위돌을 함께 그러안은 황봉의 두손은 크게도 부들거렸었다.

그후부터 초불봉벼랑에 첫 진달래가 피는 날이 그들의 나이를 세는 날이 되고 아들의 생일날이 되였다. 그들이 이 골짝에 들어온 날도, 아들이 태여난 날도 초불봉의 진달래가 붉은 망울을 터친 날이였던것이다.

뙈기밭아래에 세운 오막살이에서 봄순이는 아들을 낳았었다. 북대봉산발이 들썩하게 아들의 우람찬 첫울음소리가 메아리칠 때 스물다섯이 넘어서야 첫아들을 본 황봉은 그 아들을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었다. 그러면서 너만은 북대봉바위처럼 꿋꿋하게, 억세게 머리를 번쩍 들고 살라고 그 이름을 《바위》라고 지어주었던것이다.

양덕고을을 도망쳐나올 때 허리에 차고왔던 무명자투리로 첫옷을 해입힌 아들을 품안고 뜻밖에도 봄순이가 고운 목청으로 노래를 불러서 황봉은 처음으로 안해의 노래소리를 들었고 그 얼굴에 활짝 피여난 웃음꽃도 보았었다.

 

아가야 내 아가야

어서 자라라

착한 사람 업어주고

악한 놈 무는

북대봉호랑이로

자라나거라

 

(아니, 저 사람에게 저런 고운 목청이 있었던가. 저런 웃음을 지니고있었던가. 그리고 저런 뜻깊은 노래를 부르다니…)

짓밟히던 인간의 통곡인 저 노래소리에 가슴이 저려들었지만 황봉은 또한 흥에 겨워 그후부터 자주 풀피리를 만들어 불기도 했었다.

그들에게는 그날부터 아들도 봄도 노래도 피리도 있었다. 그들에게 청춘시절이 있었다면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화려하던 인생의 청춘시절이였다.

그러나 그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었다. 그 아들이 오늘은 자기를 대신하여 이렇게 북대봉등판을 파일구고 씨를 뿌리는것이다.

그는 자기가 병신이 된 마음의 아픔보다도 애비를 위하고 삶을 위하여 쇠스랑을 휘두르는 애어린 아들을 보는것이 더 못견디게 가슴을 쳤다.

생각에 잠겼던 황봉은 오막살이옆 살구나무꽃가지에 날아와 목청을 돋구는 황금빛 꾀꼴새를 눈이 시게 바라봤다.

꾀꼴새도 그 꽃이 봄순이가 고향을 도망쳐올 때 바쁜 경황속에서도 어머니가 누워있는 뒤둔덕의 살구씨를 품고와서 심은 나무에서 핀 꽃이라는것을 저도 알고있다는듯이 목청을 돋구었다. 날범도 달려가 잡을것 같던 무쇠다리를 억울하게 끊기우고 지팽이에 의지하여 사는 자신을 돌이켜보며 황봉은 갑자기 서글퍼진듯 긴 한숨을 내쉬다가 깜짝 놀라 멈췄다. 아들이 볼가봐서였다. 이윽토록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위야, 좀 쉬였다 하려무나.》

아버지는 측은한 눈길로 아들을 지켜보았다.

《전 일없어요. 아버지, 들어가세요. 씨앗도 제가 다 뿌리겠어요.》

(에그, 험한 세상이 어린것을 저렇게도 일찍 어른스럽게 만들었구나. 이 애비를 생각해서 이젠 인간세상이야기조차 통 입밖에 내지 않으니…)

인생의 봄비를 맞혀주려 데리고나갔던 세상에서 아들에게 맞히운 된서리가 이 봄날 아버지의 가슴속에 성에가 되여 버걱거렸다.…

이렇게 그가 아들생각에 잠겨 봄씨붙임을 하고있을 때였다.

《허, 이거 북대봉골짜기에 대풍이 들겠군. 하하하.》

갑자기 오막살이쪽에서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신검이 서설봉로인내외가 챙겨준 물건들을 지고온것이다.

뜨락에 지게를 받쳐놓고 큼직한 괭이를 둘러멘 유신검이 밭으로 올라왔다.

《아저씨!》

《유서방!》

인간의 정에 목마른 황봉부자의 뜨거운 목소리가 초불봉에 메아리쳤다.

유신검이 사흘을 묵는 동안에 일군 뙈기밭엔 오곡이 뿌려지고 아버지가 쓰던 지게목발도 괭이자루도 쇠스랑도 어린 아들에게 알맞춤하게 다 고쳐지고 울바자도 더 탄탄하게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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