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 회)
제 5 장
되돌아선 인생길
1
며칠후 황봉은 아들이 다듬어준 물푸레나무지팽이를 짚고 서설봉로인의 집을 떠났다.
《안되네. 이 사람, 그 몸으로 가다니…》
서설봉내외가 앞을 막아나섰다.
《아니외다. 어서 가서 더 늦기 전에 봄씨붙임을 해야겠소이다. 농사철을 놓치면…》
《음…》
서설봉은 더 말리지 못했다.
《그럼 가게나.》
서설봉 부인은 옷고름으로 눈굽을 훔쳤다. 그들의 이 짤막한 말속에서 림중량은 우리 백성들의 강렬한 삶의 숨결을 느꼈다.
인간세상으로 날개를 편 어린 아들을 앞세우고 나왔다가 그 세상문턱도 못넘겨주고 되돌아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두고, 그 북대봉골짜기와 험한 산줄기등판을 외발로 걸어들어갈 아버지를 부축여갈 그 아들의 인생행로를 두고, 그들이 올렸던 쌍돛대를 무참히 분질러 허허바다 파도우에 팽개친 놈들을 두고 림중량은 주먹을 떨었다.
(아, 이 땅의 백성들은 자기의 삶과 봄을 저렇게도 살뜰히 가꾸건만…)
서설봉은 황봉부자에게 다시 시작해야 할 그들의 산골살림을 위하여 오곡씨앗을 꽁꽁 싸서 보짐속에 넣어주고 몇되박의 소금을 다 털어서 황바위가 진 배낭에 넣어주었다.
황봉의 신들메를 살펴주는 림중량은 가슴의 피가 거꾸로 서는것만 같았다. 설봉 부인은 호박씨, 박씨, 부루, 고추, 마늘씨앗까지 그들의 보짐속에 챙겨넣어주었다.
말을 타고 가래도, 유신검이 따라가겠대도 《아무래도 외발로 살아가야 할 저인걸요.》하고 굳이 사양하며 황봉은 뜨거운 인정들에 목이 멘채 손을 내저었다.
그러면서 《다시는 인간세상에 나오지 않을 마지막인사를 받으시오이다.》하고 설봉내외에게 허리굽혀 하직인사를 하다가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더니 땅을 치며 황소울음을 터뜨렸다. 설봉 부인이 그를 부축하여 일궈세우며 위로했다.
《이러지 말라구. 보내는 늙은이들 마음도 생각해줘야지.》
《예, 예…》
황봉은 제정신이 든듯 지팽이에 의지하여 일어섰다. 그가 짚고 일어선 지팽이끝이 마당복판에 푹 박혔다.
림중량은 황봉의 어깨를 꽉 잡고 말했다.
《마지막인사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저 아들을 나라와 백성을 지킬 북대봉호랑이로 키워서 인간세상으로 꼭 보내야 하오.》
《아니외다. 저애를 다시는 사람세상에 내보내지 않겠소이다.》
황봉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울부짖듯 했다. 그러더니 《선다님! 부디 이 불쌍한 백성들을 위해 귀중하신 옥체 돌보사이다.》하고는 꽃핀 화엄산등허리를 지팽이끝으로 짚으며 발걸음을 뗐다. 씰룩이는 두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것이 지팽이를 짚은 손등으로 쉬임없이 굴러떨어졌다.
요즘 몰라보게 철이 든듯 머리를 깊숙이 숙여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없이 아버지를 부축하며 가는 황바위를 보는 사람들은 포악한 세상에서 돌덩이처럼 차굴리우는 황봉의 목숨의 이음줄인 그 아들, 록록치 않은 그 아들을 보며 황봉이가 결코 외롭지않다는 생각을 했다.
《바위야, 잘 가.…》
멀리 뾰족봉에까지 따라가며 소리쳐주는 서일의 목소리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메아리쳐 따라오는데 아버지의 한쪽발이 되여가면서 돌아보고 돌아보던 황바위는 마침내 가물가물 아지랑이속에 묻히우고말았다.
이렇게 황봉부자는 다시 나오지 않을 인간세상의 문을 닫듯이 북대봉 첩첩한 산발들을 닫고닫으며 깊이깊이 심산속으로 다시 들어가는것이였다.
《바위야, 우리 다시는 사람세상에 나가지 말자.》
《예.》
바위는 이렇게 아버지마음을 위로하며 걸었지만 정말로 원통했다.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가서 성천부사놈의 목줄을 물어뜯고싶었다.
비류강 놀이배우에서, 동헌마루에서 본 그 악귀같은 부사놈과 흉물스러운 조참봉놈, 우묵눈의 왜놈중이 뒤를 따라오는것만 같아 황바위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깐놈들과는 댈수도 없이 착한 자기편 사람들이 인간세상에는 더 많다는 생각에서 힘을 냈다. 부사놈의 놀이배를 뒤집어엎고 아버지와 자기를 죽음속에서 건져낸 칠성이, 아버지를 말에 태우고 그 말고삐를 잡아주던 림중량, 왜놈에게 짓밟힐가봐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며 연비정에서 가슴을 치던 서설봉할아버지와 유신검아저씨며 그 집식구들 그리고 성천의 밤나무골 한서방네 식구들을 다시한번 생각했다. 그들 하나하나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올라 가슴이 뜨거웠다.
(칠성형님이 집에 가서 어머니랑 쌍가마를 만났을가? 우리 아버지가 발뒤꿈치 끊기운 소식을 들으면 억쇠 아버지랑 쌍가마 어머니랑 얼마나 놀랄가.)
그의 생각은 자꾸 갈래를 쳤다.
황바위는 아버지 불쌍한 생각이 괴여올라 아버지가 건너야 할 징검돌도 안아다놓고 벼랑턱의 칡넝쿨, 다래넝쿨도 걷어놓으며 아버지의 한쪽발이 되여주었다.
골짝깊이 들어갈수록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그 마음인듯, 아들의 마음인듯 그들을 맞는 북대봉골안의 폭포들도 안개속에서 쿵쿵 소리를 높였다.
이날 서설봉일가의 믿음의 장검을 받아 찬 림중량도 서설봉의 검술비결이 적혀진 수기를 소중히 간직하고 오추마에 올랐다.
며칠후에는 아득히 먼곳으로 상처입은 자손들을 떠나보낸듯한 마음인 서설봉로인내외가 이것저것 미처 생각지 못했던것들을 더 챙겨주는것을 한짐 걸머진 유신검이 황봉의 지팽이자국이 박힌 발자국을 뒤쫓아 북대봉으로 떠나갔다.
그 짐속에는 설봉 부인이 짠 무명으로 지은 황봉부자의 옷 한벌씩과 삼베, 무명헝겊들 그리고 바늘, 실까지 꼼꼼히도 챙겨넣어져있었다.
피에 절은 그들의 옷을 벗겨주려는 뜨거운 인간의 정이였다.
2
북대봉골짜기로 깊이깊이 들어가던 황바위는 골짜기의 맑은 물가에서 아버지 다리쉼을 시키고 도시락을 펴놓았다.
물속에 비낀 자기를 보며 그가 머리채를 앞으로 돌렸을 때 반뽐짜리로 줄어든 빨간 댕기가 물속에서 한들거렸다.
순간 황바위는 자기의 찢어진 댕기를 보고 깜짝 놀라던 쌍가마의 얼굴을 출렁거리는 물속에서 보았다. 황바위는 얼른 댕기를 뒤로 돌렸다.
쌍가마에게 자기 잘못을 들킨것만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는 험한 세상에서 그동안 쌍가마네 집에 어떤 비극이 벌어졌는지는 알길이 없었다.
…황봉부자를 떠나보낸 다음 칠성의 소식을 다시 알아보려고 성천고을로 나갔던 한서방은 뜻밖에도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던것이다.
왜놈중을 보고 관가에 알렸다가 신임사또에게 황봉이가 매를 맞고 발꿈치를 끊기웠다는 끔찍한 소식과 매를 맞고 숨이 져가는 아들까지 그들부자를 다름아닌 칠성이가 관가의 령을 받고 업어다가 비류강물속에 처넣었다는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한서방은 눈앞이 아찔했다.
《부사는 그렇다치고 그 〈비류강장수〉란 아이놈이 알고보니 시라소닙데다.》
《그 황소같은 녀석이, 웬놈의 힘은 그리 세가지구 그 장한 사람들을 두벌죽음 시키다니…》
이렇게들 주고받는 사람들의 말을 들은 한서방은 하늘땅이 빙빙 도는것만 같았다.
(그럴수가 있나? 우리 칠성이가… 그 착한것이… 그렇다면 매맞아죽은 제 아버지를 업어다가 강물에 처넣은거나 다를게 뭔가?)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그 말들을 믿지 않을수가 없었다.
아들의 소식을 듣자 칠성이 어머니는 그자리에 푹 꼬꾸라지더니 정신을 잃고말았다.
비류강 놀이배를 뒤엎으려던 아들로 하여 뿌듯이 괴여오른 자랑으로 비여있던 가슴 한구석이 메꿔지기도 하던 어머니였다.
그런데 바로 그 강물속에 그리도 불쌍한 사람을, 그리도 영특하게 생겼던 그의 아들을 제 등으로 업어다가 처박다니…
광풍으로 뿌리뽑힌 큰 거목에 깔려버린 그 총각, 그밑에 움트던 봄싹이 깔려버린듯한 북대봉총각이 진정 가엾었다.
죄스러웠다.
황바위를 팔베워 재운 어머니의 그 하루밤, 그것은 빼앗긴 아들과의 백날밤이기도 했었다.
피흐르는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생나무가지 꺾듯이 앗아간 아들 칠성이를 마음속에 붙안아 가슴속 응혈의 한모서리를 풀어본 밤이기도 했었다.
하기에 난생처음 안겨보는 어머니품이런듯 자기 가슴에 머리를 들이박고 비벼대던 북대봉총각에 대한 애틋한 정과 따스하던 그 체온마저 삽시에 놓쳐버린 어머니였다.
《엄마야…》
쌍가마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허볐다.
그러나 어머니는 눈을 뜨지 못했다. 이 땅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서 바라는것은 황금보옥이 아니다.
우리의 선량한 어머니들이 바라는것은 하늘땅에 대고 소리쳐도 부끄러울것이 없는 그런 떳떳한 자식인것이다.
인간이 지녀야 할 의리와 선량한것을 지닌 그런 아들딸인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여주리라 믿었던 아들이 짐승도 낯을 붉힐 불의를 저질렀다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들에 대한 기대, 그 모든것을 삽시에 다 잃어버린 어머니에게 남은것이란 인간의 허울뿐이였다. 하여 가슴속에 가득찬 재가루를 안고 풀썩 주저앉을수밖에 없는 어머니였다.
《엄마야―》
쌍가마는 다시 어머니를 안고 몸부림쳤다. 온 식구가 달라붙어 손발을 주무르고 이웃들이 모여들어 걱정들을 하는 속에 후― 하고 한숨을 내쉰 어머니가 벌떡 일어났다.
《그게,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아, 내가 짐승을 낳았단 말인가?》하고 가슴을 치던 어머니는 실신을 하고말았다.
그다음부터 며칠동안 물 한모금 들지 않던 어머니가 갑자기 《쌍가마야, 머리 곱게 빗고 그 총각의 댕기달고 비류강으로 빌러가자.》라고 하는가 하면 《떡 해이고 송아지 잡아가지고가서 빌면 비류강 룡왕님이 네 오라비를 용서해줄가? 그런데 떡이 있어야지, 송아지가 있어야지.》라고 해서 어린 딸을 놀래우고 더 울려놓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이웃들이 모여와서 《사람 죽은것이 원통해서 원님의 놀이배를 뒤집어놓은 아들인데 설마하니 그애가 그런짓이야 했갔수?》하고 그 마음을 안정시켜주면 《짐승을 낳은 어머니가 여기 있는데두?》하고 큰소리를 치며 모처럼 들었던 죽사발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에그, 저 어머니가 자식때문에 실성을 했구나.》
아낙네들은 그것을 차마 볼수 없어 눈물들을 훔치며 돌아섰다.
《아, 백성들의 마음은 이리도 정가롭고 착하건만…》
이웃로인들은 장탄식을 하며 흰 수염을 떨었다.
《여보, 이 일을 어쩌면 좋소?》
억쇠 어머니가 남편앞에서 가슴을 쳤다.
《엄마야, 이러지 말구 이 죽을 드오.》
쌍가마는 죽그릇을 들고 애원을 하며 흐느꼈다.
그러다가는 제정신이 든듯 딸을 그러안고 《아, 그렇게도 불쌍하게 자란 북대봉총각을… 인간세상구경을 처음 나온 그를… 그 두눈에서 펄펄 일던 불덩이를 글쎄 비류강속에 처박아 꺼버리다니…》하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는 그전날 황봉부자에게 밥상을 차려주던 개다리소반에 흰 모래를 무드기 담은 사발을 올려놓고 《쌍가마야, 어서 비류강으로 제를 지내러 가자.》하고 나서는 바람에 한서방은 《아, 우리 삼촌어머니가 이렇게 미치다니…》하며 주먹으로 땅을 치고 쌍가마는 어머니 치마자락에 매달려 《엄마야, 엄마야, 우리 오빠는 착한 오빠야. 그 총각이랑 그 아버지를 물속에 처넣지 않았을거야.》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런 때에 한서방에게 또 다른 기가 막힌 소식이 전해졌다.
신임사또가 명산대천에 치성을 드리는데 한서방네 집에서 상밤 서말을 내놓으라는 관명이 내린것이다. 서말은커녕 세알의 밤도 없는 한서방은 자기 안해를 불렀다.
《여보, 오늘중으로 여기를 뜹세다.》
《예?》
순하디순한 안해의 놀란 눈이 커졌다.
《첫째론 숙모님을 이 성천땅에 더 계시게 하고싶지 않소. 가슴이 미여져 어디 살갔소. 멀리 떠나면 좀 어떨런지… 그리고 신임부사 노는 꼴이 우리 집식구 다리심줄까지도 끊어놓을것 같아서 그러오.》
《그런데 갑자기 어데로…》
안해는 눈물범벅이 되여 불안스런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글쎄…》
한참동안 한숨을 짓고있던 한서방은 《맹산땅 깊은 산골 곰의덕이란 곳에 먼 친척 한분이 있는데 거기로 갑시다.》하고 일어섰다.
이리하여 한서방네 다섯식구는 그날로 남부녀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쌍가마의 어머니는 맨발로 나섰다. 딸이 짚신을 신겨주려고 하자 《짐승을 낳은 어미가 신을 신고 다니다니.》하며 제정신이라도 든듯 좌르르 눈물을 쏟았다.
《아, 나라에 기여든 왜적을 고발한 충직한 백성은 때려죽이고 착한 어머니는 저렇게 미치게 하는 이 나라에 어찌 국난인들 닥쳐오지 않으랴.》
이웃늙은이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향땅을 떠나는 한서방앞에서 다른 말들을 하지 못했다.
《네가 불쌍하구나.》
이웃에 사는 동갑이 갑년이의 어머니가 쌍가마를 그러안았다.
이렇게 한서방의 일가는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뻐꾹새가 울며 앞서는 범골마을앞 언덕을 넘어갔다.
황바위부자가 떠나던 날 두눈에 가랑가랑 눈물을 담고 쌍가마가 발돋움치며 올라서던 언덕이였다. 오늘은 그 언덕을 넘는 쌍가마의 머리에 참나무잎새만한 황바위의 빨간 댕기가 매달려 데룽거렸다.
세거리길가에서는 아이들이 오늘도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불났다고 탈났다고
량반집에 가지 말아
불꺼주고 약써주고
량반님네 매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