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 회)
13. 려명이 비껴오다 935년 음력으로 3월 하순무렵 어느날이였다. 왕건이 주요대신들을 어전으로 불러들이여서 이날 고려조정은 신새벽부터 설레이고있었다. 후백제조정에서 마침내 일이 터지여 이찬 능환이 일부 대신들과 짜고 반정을 일으켰던것이다. 반년 넘게 들인 거사를 일거에 치른 반정의
직접적동기는 견훤의 왕위양도에 있었다. 견훤은 예견했던바대로 후실의 자손인 금강을 태자로 선포하였다. 3월초 어전조회석상에서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리자 그 즉시로 후백제조정은 기름가마끓듯 끓어번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능환이 이발을 사려물고 일어섰다. 왕위는 죽으나사나 신검이 이어야 한다, 후백제를 일으켜세운것은 이 능환이다, 견훤이 말년에 로망이
든것만큼 나라의 사직을 바로하고저 나서지 않을수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온몸을 끓이고있는 능환에게 이미전부터 반대의사를 표명해왔던 파진찬 신덕과 영순이 찾아와 가슴을 두드리며 독촉해나섰다.
능환은 량검과 룡검이 부대를 끌고 완산주어귀에까지 들어오게 하였다. 이 모든 일이 극비밀리에 진행되여 견훤은 물론 금강자신도 모르고있었다. 금강은 신검형제들이 어떻게 나오나 주시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완산주 도성방어사의 직책을 겸하고서도 이들의 동향에 신경을 죽이지
않고있었다. 그러나 이후로 무슨 연유인지 신검쪽이 조용해졌다. 별수가 있을라구, 제까짓것들이… 금강은 별다른 일없이 시일이 지나자 탕개가 풀려 해이되기 시작했다. 견훤도 점차 도성이 조용해지자 한시름 놓고있었다. 그는 량검과 룡검이 병문안을 핑게로 자기를 찾아온것을 만나주면서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한걸음 더 내짚어 그들이 청하는대로 한동안
말미를 정하고 금산사절간으로 유람까지 떠나갔다. 드디여 일은 벌어져 견훤은 절간에 들어서는 즉시 감금되였다. 제 아비를 가두어놓은 두 아들은 머리도 숙이지 않고 떠벌였다. 《늙으신 부왕마마가 평생을 들여 일떠세운 후백제의 사직을 바로잡아 안존케 하자는것이니 안심하소서.》 《무엇이라구?… 후백제의 사직을 너희들이 바… 바로잡는다구?!》 견훤은 천둥소리를 듣는듯 화들짝 놀랐다. 이 애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있는건가? 《아직 알아듣지 못했소이까? 늙으신 부왕마마를 상왕으로 뫼시고 우리가 대업을 이어갈가 함이외다.》 량검이 두눈을 부릅뜬채 견훤을 쏘아보며 뇌까리고있었다. 《나를… 상왕으로?!… 아이쿠!…》 견훤은 무너진듯 주저앉아버렸다. 비로소 사태를 깨달은것이였다. 다른 놈도 아닌 제 아들놈들이 아비를 페위시키자고 나선것이였다. (저런 천하에 찢어죽일 놈들을 보았나!…) 견훤은 순간 까무라치고말았다. 량검은 자기의 군사를 갈라 금산사를 봉쇄하게 한 뒤 즉시 말머리를 돌려세워 김제고을을 벗어나 완산주까지 50여리길을 어둡기 전에
달려왔다. 도성앞에는 능환이 신덕, 영순과 함께 신검을 앞세우고 기다리고있었다. 량검과 룡검은 숨돌릴사이없이 궁성으로 쳐들어갔다. 금강은 궁녀들을 끼고앉아 히히덕거리다가 순간에 량검의 칼날에 목을 잘리고말았다. 같은 시각에 룡검은 금강일파를 하나하나 도살해치웠다. 후백제도성은 순식간에 피에 잠겨들었다. 신검은 능환이 작성한 살생부를 보고 와들와들 떨었다. 후백제의 쟁쟁한 장수들이 거의다 들어있었던것이다. 《이들을 모두 죽이자는거요?》 《전하를 지지하지 않는자들이오이다. 용서했다가 이후에 후환을 당하느니 미리 죽여 환난을 막는수오이다.》 능환은 단호했다. 《하오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 하는수밖에.》 신검은 수긍했다. 그는 제 정신이 아니였다. 그저 능환이 하자는대로 하는 꼭두각시 그대로였다. 능환은 간무까지 제 손으로 죽여버렸다. 정신을 차린 견훤이 땅을 치며 울부짖었다. (아, 원통한 일이로다. 제 자식들에게 이런 변을 당하다니… 아비가 한평생 바쳐 일으켜세운 나라를 자식놈들이 무너뜨릴줄이야… 절통한지고!…) 견훤은 능환이 후백제의 장수들을 적지 않게 제거했다는 소식에 또 한번 까무라칠번 하였다. 장수들을 죽이면 군사는 누가 이끌고 왕건이와는 누가 싸운단 말인가!… 견훤은 능환이 간무마저 죽였다는것을 전해듣자 다시금 까무라치고말았다.… 어전회의는 정오무렵까지 계속되였다. 급변한 후백제조정의 정황에 긴급하게 대처해야 했던것이다.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하오이다. 이후로 신검과 능환이 어떻게 나오는가를 보고나서 공격해도 늦지 않을줄 아오이다.》 금필의 의견에 대다수 관료들이 동의했다. 일부는 제잡담 들이치자고 제기하였지만 왕건은 머리를 저었다. 금필은 왕건에게 또 한가지 주청했다. 《먼저 라주를 찔러보는것이 좋을듯 하오이다. 후백제조정이 혼란된 틈을 리용하면 쉽게 라주를 되찾을수 있을것은 물론 후백제의 맥도 짚어보는겸
등뒤로 포위하는 효과를 얻게 될것이오이다.》 《그게 좋겠소.》 왕건은 금필의 제의에 만족해하면서 그 즉시로 그를 도통대장군으로 임명하고 라주로 떠나도록 하였다. 935년 4월 초사흘날, 금필은 수군을 이끌고 또다시 남으로 출병했다.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라주는 고려군에 떨어지고말았다. 고려는 다시금 라주를 타고앉았으며 금필은 또 한차례 승전의 소식을 안고 송악으로 올라왔다. … 견훤은 온몸이 분노로 타 재가 될 지경이였다. 밖에서는 대줄기같은 비발이 계속 내리꽂히고있었다. 보리장마였다. 견훤은 비발을 바라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저 비발이 그대로 비수가 되여주었으면… 하여 신검이 그놈의 정수리를 내리쳐 급살시켜주었으면…) 견훤은 자나깨나 신검을 죽이고픈 생각 하나뿐이였다. 세상에 제 아비를 잡아먹는 자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자식에게 화를 입어 세상에 웃음거리가 된 자기 처지를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솟아
참을수가 없었다. (네 이놈! 내 너를 기어이 죽여버리고말테니 두고 보아라!) 견훤은 이발을 부드득 소리나게 갈았다. 그는 지금 후실 고비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는중이였다. 달포가 지난 뒤부터 절간의 경비가 좀 허술해지기 시작했다. 신검이 제법 왕노릇을 감당하고있는 모양인지 소란하기 그지없던 완산주도성이 즘즘해졌다고 한다. 신검이 자기는 얼굴을 들여밀지 않으나 대우만은 후히 하여 견훤이 궁성에서 먹던 음식가지들이 거의나 그대로 상우에 오르는판이였다. 실은 신검이 세상의 여론을 다소나마 무마해보려는 심산으로 하게 한 짓이였다. 백성들은 제 아비를 내친 신검을 따르지 않고있었으니 신검에게 붙은자들은 완산주도성안의 몇몇 관료들뿐이였다. 후백제의 대다수 관료들은 신검과 능환의 역모행위에 분노하고있었다. 장수들이 더욱 그러했다. 선대왕에게 충성했다고 해서 죽인다면 누가 그뒤를 따를것인가. 누구든 다음왕에게 또 죽음을 당해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것이였다.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는 그 즉시 반란을 일으키려다가 참았다. 신검이 금산사에 갇힌 견훤을 아예 죽여버릴것 같아 그만두고만것이였다. 신검은 고립되여있었다. 신검의 지시는 후백제도성밖을 나가는 즉시 휴지장이 되고말았다. 그는 도성안에서만 왕일뿐이였다. 능환이 민심을 돌려세우고저 어진 정사를 권고했다. 견훤이 페위된것이 나이탓일뿐더러 새 왕이 상왕을 극진히 모신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일종의 노죽을 부리고있는것이였다. 여하튼간에 절간의 경비가 풀린것이 기회로 되였다. 견훤의 후실 고비는 음식과 교태로 경비서는 군사를 어렵지 않게 휘여잡고 그 도움을 받아 절을 빠져나갔다. 그는 견훤이 가르쳐준대로 옥계사로 스며들어 운암대사를 만났다. 그에게 고려에로의 귀순을 도와달라는 견훤의 부탁을 전하고 급히 되돌아섰다. 대사 운암은 곧 이 사실을 라주의 고려진영에 알리였다. 고려군은 즉시 배길로 하루반만에 이 정보를 개경에 날라갔다. 왕건은 이 정보를 받은 즉시 금필에게 과업을 주었다. 조용히 라주로 들어가서 어떻게든 금산사에 갇혀있는 견훤을 빼내오라는 특별임무였다. 《견훤이 고려로 귀순하기를 청하였단 말이오이까?》 금필은 뜻밖의 소식에 와뜰 놀라기까지 하였다. 《아무쪼록 이 일을 실수없이 성사시켜야겠소. 견훤왕이 귀순한다면 삼국의 통일을 훨씬 앞당길수가 있네.》 《그러하오이다. 정녕코 그러하오이다.》 금필은 온몸을 떨며 대답했다. 그리고는 즉시로 정주포구를 떠나 라주로 내려왔다. 금필은 라주에 내려와 운암대사와 련계를 가지였다. 그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 견훤의 금산사탈출계획과 고려에로의 호송작전안을 주도세밀하게
짰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척되고있는줄은 모르고 견훤은 돌아온 고비만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였다. 《네가 무사히 돌아왔구나. 보내놓고 후회했다. 너마저 잘못되면 나는 어찌할가 하고 생각했지. 그저 죽고만싶었구나.》 《너무 걱정마시오이다. 운암스님은 꼭 도와주겠다 했소이다.》 《그가 대답은 그리해도 끝까지 해주겠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는 이미전에 날보고 욕심을 걷어치우라고 한적이 있었다. 왕건에게 천명이 가있으니
단념하라는것이였지.》 운암은 왕건을 돕는데로 기울어진 사람이니 견훤 자기같은 존재는 귀찮게 여길것이라는것이였다. 그러나 견훤은 잘못 생각하고있었다. 운암은 견훤이 왕건에게 가붙는것이야말로 통일의 지름길을 여는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고려의 통일대의를 돕는 일에 이보다 더 좋은 보탬거리가 어디 있으랴. 지금의
견훤은 귀찮은 존재가 아니라 값진 존재인것이였다. 견훤자신만이 이것을 모르고있었다. (신검 이 고현 놈! 내 고려로 가기만 하면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야말것이다.) 견훤은 오로지 고려의 손을 빌어 못난 제 자식을 죽이려는 그 한가지 생각에만 옴해있었다. 이후로 일은 금필이 운암과 꾸민대로 착착 실현되여갔다. 고비가 금산사로 돌아간 뒤 나흘후에 운암은 다시금 사람을 띄워 견훤에게 알려왔다. 재간껏 절간을 빠져나와 노루목까지만 당도해달라는것이였다.
그곳에 네필의 말을 매놓을테니 말을 달려 만경강하구인 옥포로 가라고 했다. 로상에서 고려군의 마중을 받을것이니 그들의 안내로 옥포에서 배에
오르면 된다고 하였다. 정작 탈출방안을 받아들자 이러저러한 착잡한 생각으로 견훤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였다. 그러나 견훤은 지체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고려에
가있었던것이다. 감시하는 군사들을 따돌리는 일은 고비가 맡았다. 고비는 자기와 견훤의 몸에 지닌 패물을 갈라내여 가까운 장거리에 나가 술과 고기를
바꾸어왔다. 그날 밤은 경비군사 전원을 불러놓고 술추렴을 벌렸다. 고비가 치마바람을 일구며 이들의 취흥을 돋구었다. 《그대들이 나같은 늙은이를 지키느라 이 산중에 들어와 고생이 많으이. 두고온 부모처자생각이 간절할테니 이 술로 마음을 달래이도록 하게.
자, 어서들 들라구.》 견훤이마저 수선을 떨고나서자 군사들은 아예 허리띠를 풀어제끼고 다가붙었다. 지금껏 일없은 절간인데 오늘이라고 일이 나랴. 몇달째 술은
구경도 못해본 이들인데다 술에 주리고 정에 주려 갇혀있는 견훤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병졸들인지라 공짜술을 먹이는 인심을 마다할리 만무하였다.
그들은 이내 다 취해 쓰러지고말았다. 견훤은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군사들을 확인한 뒤 조용히 절을 빠져나왔다. 고비(승평부인)와 그의 아들 능예 그리고 딸 애복이까지 넷이였다. 사위는 먹물을 뿌린듯 새까맸다. 견훤은 눈더듬, 손더듬으로 숲을 헤쳐나갔다. 고비가 견훤을 거들었다. 노루목까지 나오는데 십리걸음이 들었다. 그곳에 약속한대로 운암이 보낸 말이 매여져있었다. 이들은 말을 타고 옥포로 내달렸다. 운암의 말대로 가는 길에서 한무리의 기마대렬과 마주쳤다. 견훤은 흠칠했으나 인차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들은 금필이 보낸 고려군사들이였던것이다. 견훤은 이들의 호위를 받으며 포구에 당도했다. 물가에서 금필이 견훤을 마중하였다. 《전하, 고려장수 유금필 인사드리오이다.》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유장수께서 이곳까지 나오시여 나를 마중하시다니요.…》 견훤은 금필이 정중하게 대해주니 더없이 감동되여 눈굽부터 훔치였다. 금필은 견훤일행이 배에 오르자 인차 출발시켰다. 정주를 떠나올 때는 은밀히 오느라 몇척의 배가 내려왔을뿐이지만 돌아가는 길엔 마흔척의 배가 주런이 늘어섰다. 라주에서 보충한 전함들이였다.
혹여 후백제가 견훤을 가로막을가 우려한데도 있었지만 기본목적은 견훤의 위신을 높여주자는것이였다. 금필이 견훤을 살펴보고있노라니 그는 여전히 위구심을 털어버리지 못하고있었다. 그의 심경이 자못 복잡할것이였다. 지금껏 왕건을 죽이지 못해 갖은 술수를 다 써온 견훤인것이다. 때로는 마음에 없는 화의도 하였고 화친을 약속하기는 또 몇번이였던가. 허나
그것은 그때뿐, 이들은 서른해가 넘도록 서로 죽일내기만 해왔다. 바다에서는 몇번을 맞섰고 땅우에서도 또 몇번을 맞섰던가. 그 수는 이루 헤아리기조차 어려울것이다. 언젠가 운주성싸움때에는 옹근 하루낮을
맞붙어돌아가 동양최대의 접전기록을 세우지 않았던가. 견훤과 싸우기는 금필도 마찬가지였다. 금필이 견훤과 싸운 회수를 따져본다면 왕건을 훨씬
앞서는 정도였다. 당대의 숙적으로 끝을 마칠것 같던 왕건과 견훤사이가 순간에 맹우로 뒤바뀌여졌다. 동등한 지위에서가 아닐뿐이였다. 견훤은 인생의 참패를 당한 이후에 말년을 의탁하는 일종의 구걸행각으로 비참한 참회의 길, 사죄의 길에 오른것이였다. 지금껏 적으로 맞섰던 자기를 고려왕이 정말로 대우해줄것인가가 견훤의 고민거리일것이였다. (내가 이제 와서 그의 호의를 바랄수가 있을가?) 견훤은 이렇게 우려하고있을것이였다. 금필은 배전에 주저앉아있는 견훤을 부축해 일으켜세웠다. 《안으로 드시오이다. 바다바람이 차온데…》 금필이 이끄는대로 지척지척 걸어가는 견훤의 안색은 여전히 우울해있었다. 자기가 세운 나라는 버리고 남에게 일생을 의탁하러 가는 비참한
신세, 한해전만 해도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승부를 다투던 왕건에게 항복을 하러 가는것이나 다름없이 된 자기 처지가 가련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그들이 정주에 도착한것은 해질무렵이였다. 옹근 하루를 내처 온것이였다. 견훤은 정주포구에 내려 뜻밖에도 왕건의 마중을 받았다. 《고려임금께서 비천한 이 늙은이를 마중하시다니요! 송구하고 황공하기 그지없소이다.》 견훤은 감심어린 표정으로 숙인 머리를 인차 들지를 못하였다. 《전하께서 저를 찾아주시니 반갑기 그지없을뿐이오이다. 어서 허리를 펴시지요.》 왕건이 부축해주자 견훤의 얼굴이 그제야 들리였다. 그의 두눈에서 금시에 주먹같은 눈물방울이 두르르 굴러떨어졌다. 《명색이 한 나라의 임금으로 있은 사람이로되 말년을 남의 집에 의탁하게 된 이 사람을 마음껏 비웃어주옵소서.》 《그렇지 않사오이다. 전하께옵서 우리 고려로 오신것은 작은 나라 임금에만 옴해있자 함이 아니옵고 동족의 나라들을 합치고 합쳐서 더 큰 한
나라로 되게 하자는 뜻이겠으니 이 아니 환영할 일이 아니겠소이까.》 왕건은 견훤의 귀순에 대해 본인이상으로 큰 의의를 부여해주고있었다. 왕건은 견훤을 시종 부축여주며 송악으로 인도하였다. 금필은 왕건이 견훤을 투항해온 적국왕으로가 아니라 우방국의 임금처럼 동격으로 맞아주는데 대해 다소 의견이 있었으나 참고 넘기였다. 자식들에게 따돌리운것에 분이 치밀어 제 땅을 차버리고 넘어온 늙은이를
왕건은 대번에 겨레통합의 대업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그 지위를 규정해버리고만것이였다. 통일에 이바지한 인물인데야 부디 투항이냐 항복이냐를 면전에서 따져가며 례우에 차이를 둘 필요가 없다는 왕건의 도량에 견훤은 확실히
감복해마지 않았다. 다음날인 935년 6월 스무아흐레날 견훤은 피로를 풀 사이도 없이 왕건에게 찾아가 정식으로 귀순의 례를 갖추어올리였다. 《고려국대왕페하! 후백제의 망국군주 견훤이 페하께 의탁코저 하니 받아주옵소서!》 수치심과 모멸감에 젖은 견훤의 목소리는 통곡에 가까운 흐느낌이였다. 왕건은 황황히 내려와 끓어엎드린 견훤을 일으켜세웠다. 그리고는 손수 부축하여 경희전마루에 함께 오른 다음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윽고 왕건은 엄숙히 입을 열었다. 《백관들은 들으라! 후백제대왕께서 나를 찾아오게 되신것은 대왕께서 정사를 그르쳐서가 아니라 신하들이 대왕을 잘 받들지
아니하였기때문이니라. 나라일을 임금이상으로 잘 아는 신하가 어디 있으며 나라일을 임금이상으로 잘 처리할 신하 또한 어디 있단 말이냐. 임금이
옳다면 옳은것이고 그르다면 그른것이지 어느놈이 감히 임금의 뜻을 거역하여 이 지경이 되게까지 한단 말이뇨? 남의 집안사정이라 하여도 실로 분격을
누를길 없는 일이로다.》 왕건은 후백제왕자들의 반정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하고있었다. 동병상련이라고 왕건은 지금 견훤과 자기가 처지가 바뀌였다면 어찌 되였을가 하고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우리 고려도 후백제의 이 일을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왕건은 태자책봉과 관련한 일에 이후에라도 머리를 삐쳐들 대상들이 없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기회 맞춰 다시금 장을 지지였다. 《다시한번 강조하건대 후백제대왕께서 여생을 의탁코저 우리 고려에 귀순해오신것은 단군이래 우리 겨레의 령토와 인구를 통합하여 동방에 다시한번
위용을 떨치려는 모두의 뜻에 부합되는 장거이니 모두 이 용단을 찬양할것이로다.》 왕건은 다시금 견훤의 귀순에 대해 찬사를 하고난 뒤 견훤에게 《상부》라는 존호로 부르겠다고 언명하면서 견훤의 지위를 백관의 우에
있는것으로 규정해주었다. 또한 양주땅을 견훤일행의 식읍으로 주고 궁성의 남쪽을 내주어 견훤이 거처하게 하였으며 남녀종 40여명과 말 10필을
주는 등으로 특별히 대우하게 하였다. 견훤은 왕건의 처사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견훤의 귀순은 왕건과 금필이네들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는 국토통일의 하늘가에 비낀 려명의 시작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