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4 장

국난은 다가온다

5

 

집앞 개울가로 나온 서일이와 황바위는 메돼지의 밸을 씻어서 바위우에 널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쏴 소리가 나더니 큰 번대수리가 날아들어 밸 한토막을 물고 날아올랐다. 그들이 돌멩이를 쥐고 쫓아갔을 때 번대수리는 벌써 앞산 돌바위우에 앉아 그 밸을 다 삼키고나서 냠냠하다는듯 구부러진 부리를 바위돌에 비벼대고있었다.

《내 저놈을 잡을라오.》

갑자기 황바위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차돌멩이 몇개를 주어다가 콩알만큼씩 잘게 깨더니 그것을 메돼지밸속에 집어넣어 짤막짤막한 순대처럼 만들었다. 그러더니 멀찌감치 바위우에 놔두고 주먹만한 차돌멩이를 주어다가 서일이에게도 주었다. 얼마 안있어 또다시 날아든 번대수리가 돌순대 몇개를 게걸스럽게 집어삼켰다.

두 아이는 그것을 지켜보다가 번대수리가 돌순대를 다 삼키고난 다음 번대수리에게로 달려갔다.

번대수리는 푸드득하고 날개를 쳤다. 그러나 서너발쯤 떠오르더니 배속에 들어간 돌순대무게때문에 더 날아오르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푸드득댔다. 두 소년은 돌멩이로 번대수리를 두들겨팼다. 그러자 한발도 넘는 긴 날개를 펼친채 번대수리는 땅우에 풀썩 거꾸로 박혔다.

연비정을 내려오며 그것을 지켜보던 서설봉이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림중량에게 말했다.

《사모 쓰고 당상관 관복입고 남의 사타구니로 빠져나오는 위인과 창공을 날으던 저 번대수리를 돌멩이로 갈겨 떨구는 저 애어린 황바위녀석을 두고 림공은 어떻게 생각하오? 저애는 고금에 드문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아이인데…》

《저애가 틀림없이 앞으로 나라의 큰 재목감이 되리라고 저는 이미 믿고있었소이다.》

황바위와 며칠간을 함께 지내본 림중량의 확신에 찬 대답이였다. 서설봉은 두 아이를 불러 앞에 세우고 머리를 쓸어주며 물었다.

《누가 나이를 더 먹었느냐?》

《황바위보다 제가 석달 더 우이옵니다.》

서일이 대답하자 무엇인가를 생각하고난 서설봉은 말했다.

《음, 그럼 이제부터 황바위는 유복이(서일의 애명)를 외사촌형이라구 불러라. 그러니 황바위는 오늘부터 내 외손자이다. 알겠느냐?》

빈 술상을 들고 따라오던 유신검이 《아니, 어떻게 그렇게야…》하고 주저하자 서설봉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초야에 들어와서까지 우리가 반상(량반과 상놈)을 가리겠는가. 바로 지금 나라가 그것으로 해서 망하고있는데… 더구나 저 황바위의 기상과 지혜를 보라구. 비록 오늘은 하늘을 나는 수리개를 잡았지만 이제 자라면 나라를 지켜 왜적을 쳐물리칠 장수재목일세.》

그러나 그것이 황바위가 《도비》의 자식이라는것을 아는 서설봉의 웅심깊은 생각이라는것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림중량만이 생각깊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감격해서 말했다.

《옳소이다. 왕후장상(왕과 대장, 대신)의 씨종자가 따로 있지 않은데 저들을 보니 내 겨레후손들의 힘과 지혜가 느껴져 마음든든하여지오이다.》

《옳거니. 그러기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영웅감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심산속에서도 묻히운 옥을 찾아내고 다듬어서 그 빛을 온 천하에 뿌리도록 해야 하오. 림공, 앞으로 이애를 잘 키워주오.》

《명심하겠소이다.》

《조정대신들은 부패타락했지만 나라를 빛내이고 국난을 막아낼 사람들은 바로 우리 백성들이요. 그들에게 나라의 형편을 잘 알려주어 마음과 힘을 합치도록 해야 하오. 제 겨레를 사랑하는 백성의 넋이 살아있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는 법이요.》

《귀중하신 말씀이시오이다.》

《내 오늘 림공을 만나 10년은 젊어진것 같소. 허허허.》

로인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산중의 봄정취를 버리기 아쉬운듯 서설봉과 림중량은 이윽토록 바위길을 걸으며 서로의 가슴을 털어놓았다.

그들은 야장간에도 들려 유신검이 벼린 검과 창들도 살펴보았다.

실로 명검공의 솜씨가 깃든것들이였다.

그옆에는 주먹안에 들만한 쇠덩이들이 놓여있는데 가운데는 잘룩해서 호로병모양이고 끝은 뾰족하고 날카로왔다.

《이것이 새로 만드신 〈표창〉이라는것이오이까?》

림중량이 그것을 손에 들고 묻자 서설봉이 설명해주었다.

《그렇소. 이걸 뼘창 또는 표창이라고 부르는데 자루가 달린것도 있소.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주먹안에 들어가도록 만들었소.》

《말하자면 쇠돌멩이창이라고도 할수 있겠소이다.》

《옳소. 그렇지만 손에 잘만 익히면 싸움판에서 큰 은을 낼게요. 우리 군사안엔 석전군도 있는데 그 돌멩이대신 이걸 쓰면 얼마나 좋겠소.》

림중량이 표창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서설봉은 그옆에 있는 소금발처럼 돋아난 하얀 염초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200년전에 고려의 최무선장군은 저 염초로 화약을 만들고 화포, 화통, 불화살 등 여러가지 화약무기를 만들어 왜구를 쳤소.

500척이나 되는 배를 몰고 왜구들이 쳐들어왔을 때는 직접 부원수가 되여 100척의 배에다 그 화포들을 싣고 왜놈의 배 500척을 몽땅 물속에 처박은적도 있었소.

사실 화약을 만들어내고 또 그런 큰 화포들을 배에다 싣고 쏜것은 세상에 처음 있은 우리 나라의 큰 자랑이요.》

《아조에 들어와서도 쇠덩이, 돌덩이, 백개씩이나 되는 불화살을 넣고 쏘는 좋은 화약무기를 만들지 않았댔소이까.》

림중량의 말에 유신검이도 한마디 했다.

《몇십년전만 해도 우리의 그 화포, 화통들을 구경하던 왜놈들이 그것이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벌렁 나자빠졌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놈들을 쏠 총은 고사하고 군기고의 칼과 창까지 다 녹이 쓸었으니…

그리고 듣자니 오히려 지금 왜놈들은 오래전부터 모두 화승대총을 쓴다고 합니다.》

《그 화승대라는것도 따지고보면 우리가 먼저 만든것이지. 그걸 〈주화〉라고 했는데 혼자 메고다니는 화승총이였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것들이 있었는지도 다 잊어버렸으니 참 통탄할 일이요.》

서설봉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림중량은 염초밭과 표창을 쓸어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유신검이 서설봉에게 정중히 한마디 했다.

《저 림선다님이 호군나으리의 검술을 한번 뵈옵고저 하옵니다.》

《그렇소? 나도 한번 선달의 검술을 보려고 하던참이요. 마침 잘됐소. 허허허.》

이윽고 학창의를 입고 검은 삼베유건을 쓴 서설봉이 작달막한 박달나무방망이를 들고 앞장서고 망건만 쓰고 바지저고리바람에 행전을 친 림중량은 긴 참나무목검을 들고 뒤등성이로 올랐다.

이윽고 산중턱 펑퍼짐한 곳에서 짧은 방망이를 든 백발로인과 긴 목검을 든 젊은 한량이 마주섰다.

《귀중하신 검법의 진수를 가르쳐주사이다.》

《자, 그럼…》

이윽고 중량의 긴 목검이 허공을 째며 서설봉의 머리우로 내려졌다.

그러나 깊은 뿌리가 내린 큰 바위처럼 끄떡도 없는 서설봉의 짤막한 방망이가 내려지는 목검을 가볍게 옆으로 밀어제꼈다.

그러자 틈을 주지 않고 앞으로 다가서며 다시 비껴친 림중량의 목검을 이번에는 반발작 옆으로 비껴선 서설봉의 방망이가 또 가볍게 옆으로 쳐눕혔다.

림중량은 몸의 중심을 잃고 약간 휘청거리다가 이번엔 한길이나 뛰여올라 높이 목검을 추켜드는데 어느새 따라솟았는지 서설봉의 박달나무방망이가 그 목검끝을 살짝 건드려 내려지는 예봉을 손쉽게 밀어제꼈다.

그러자 림중량이 목검을 휘둘러 자기의 온몸을 감싸며 서설봉에게로 육박해들어갔다.

그런데 서설봉의 방망이가 그 목검을 세로그어 비껴치자 방망이와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림중량의 목검이 탁 멎었다.

《선생님!》

림중량이 목검을 짚고서서 서설봉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불과 몇합의 칼부딪침이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서설봉은 림중량의 검쓰는 재주를 알았고 림중량은 서설봉검법의 깊은 법수를 체득한것이다.

《음… 선달의 그 기백과 검술이 이제 크게 빛을 낼걸세. 반가우이.》

서설봉은 미더운 눈길로 림중량을 바라보았다.

《버리지 마시고 가르쳐주시기 바라옵니다. 시골에서 익힌 촌칼이 처음으로 법도있는 검법을 배우게 되여 실로 다행천만이오이다.》

《내가 그대를 버리다니. 수십년을 두고 찾던 헌헌장부의 법도있는 검술을 본 기쁨에 내 이마의 주름살이 다 펴지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고? 다만 내 넘겨주는것이 크지 못하여 여한일뿐일세. 하물며 우리가 익히는 칼이 왜적을 쳐서 국난을 막아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칼인데야.…》

《감사하오이다.》

림중량이 다시한번 머리를 숙이는데 언제 와있었던지 등성이바위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황바위와 서일의 눈이 초롱처럼 빛났다. 유신검의 얼굴이 밝아졌다.

서설봉이 환해진 얼굴로 유신검에게 말했다.

《자네 내려가서 자네가 벼린 칼 한자루 가지고오게.》

《예.》

유신검이 집으로 내려가더니 긴 검을 가져다 서설봉로인에게 주었다.

서설봉은 장검을 받아들었다.

서산마루에 걸터앉은 해살을 받아 칼날은 푸른빛무지개를 지으며 번쩍이였다.

《이 검은 저 유신검이 해를 두고 벼린것인데 〈비류검〉이라 이름을 달았네. 그 무엇에도 칼날이 상하지 않는 검일세. 사람들은 그의 솜씨를 사랑해서 유자춘이던 그의 이름을 유신검이라고 부르게 되였지. 자, 한번 보게나.》

이렇게 말하면서 서설봉은 칼날을 다시한번 비껴보더니 옆에 서있는 우불구불한 기둥감크기의 오리나무를 힘껏 가로 비껴 찍었다.

무우밑둥 잘리우듯 나무줄기가 쿵하고 땅우에 내리박혔다.

《야―》

바위등을 짚고선 황바위의 눈이 빛났다.

서설봉은 그 칼을 림중량에게 주며 말했다.

《이번 상봉을 잊지 않기 위해서 주는것이니 자, 받으라구. 이건 유신검의 선물이네.》

《감사하오이다.》

림중량의 두눈에 뜨거운 감사의 빛이 고여넘쳤다.

《다가오는 국난앞에서 이 비류검칼날을 더 시퍼렇게 세워주기 바라네.》

이 산등성이에서 이심전심의 애국지정들은 이렇게들 칼날처럼 벼려지고 깊어졌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황바위가 달려오더니 서설봉이 한칼에 베여넘긴 그 나무그루터기의 칼자국을 두손으로 쓸어봤다.

서설봉이 림중량과 유신검을 데리고 산에서 내렸으나 황바위는 그자리에서 뜨려 하지 않았다.

《형님! 할아버님이랑 림선다님처럼 칼을 잘 쓰는 장수들이 세상에 많수?》

《많긴…》

《성천고을의 그 사또라는 사람도 칼을 잘 쓰겠지요?》

《그런 놈들은 백성을 죽이는 칼은 쓸줄 알아도 쳐들어오는 왜놈들앞에서는 칼도 빼들지 못할 놈들이라고 할아버님은 늘 말씀하고계셔.》

황바위는 눈을 깜박거렸다.

《그러니까 왜놈들이 우리 나라를 깔볼수밖에…》

황바위는 서일이를 다시 바라봤다. 어쩌면 저렇게 자기보다 아는것이 많을가 하는 눈길이였다.

《형님! 나두 크면 칼을 잘 쓸수 있을가요?》

《있잖구. 그러나 큰다고 저절로 칼을 잘 쓰게 되는건 아냐. 할아버님은 날보구 꾸준히 칼 쓰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하셨어. 그래야 왜놈들이 쳐들어와도 나라를 지켜낼수 있는 칼이 된다구…》

《…》

황바위는 귀와 눈이 새로 밝아진듯 가슴이 넓어지고 새힘이 북받쳤다.

산을 내려오는 그들의 머리우에서 산종다리 두마리가 화엄산꼭대기로 치솟아오르며 령롱한 노래소리를 온 산판에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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