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4 장

국난은 다가온다

3

 

황봉의 부은 다리는 좀체로 내리지 않았다.

오랜 세월 칼을 다뤄온 무인으로서 서설봉로인은 자기가 알고있는 약방문으로 초약을 마련하여 달였다.

훅훅 약탕관의 백탄불을 부는 늙은이의 어진 눈가에는 친자식에게 쏟아붓는듯한 정성의 잔주름이 물결쳤다.

웅담을 먹은 후 서설봉의 제자들이 잡아온 메돼지의 따끈한 피를 한사발 마신 황봉은 자기 이마우에 물에 담가 짠 수건을 얹어주고 다독여주는 설봉 부인의 그 손길에서 아득한 동심시절의 어머니 손길을 느끼고 약탕관옆을 떠나지 않는 서설봉로인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다.

…바로 이 화엄산은 열세해전에 조참봉의 녀종 봄순이와 함께 양덕거리 조참봉놈의 집에서 도망쳐나와서 지나가던 곳이다.

험한 산골짝들에서 황봉이가 앞장서 절벽우에 먼저 기여올라가 손을 아래로 내리밀면 부끄러운듯 머리를 숙이고 그 손을 부여잡고 오르던 봄순이.

그들은 평소에 서로 말 한마디도 주고받지 못한 사이였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여 소소리높은 벼랑우에 앞서 올라서는 황봉이.

그는 봄순이에게 있어서 삶의 손길을 뻗쳐주는 은인이였고 기둥이였고 세상에 오직 하나인 의지가지였다.

하기에 그런중에서도 봄순이는 황봉이가 걱정되여 숨을 헐떡거리며 《이러다 붙잡히면 우린 둘다 죽어요. 날 버리구…》하고 목메여 말할 때면 《죽긴 왜 죽어? 어느 놈이 우리를 붙잡는대? 흥, 붙잡아보라지.》하는 반발심으로 그를 번쩍 끌어올리던 황봉이였고 바로 봄순이가 이 산 뒤등 바위굴속에 축 늘어졌을 때 가슴을 쥐여뜯던 황봉이였다.

그 모진 세상에서 도망쳐나오면서도 씨오쟁이를 베고 죽는다는 농사군의 심정으로 북대봉 심산골에 뿌려 가꿀 조와 보리, 수수, 콩과 팥따위의 씨앗을 몇옹큼씩 토막지어 묶은 긴 전대를 허리에 차고 밭을 일구고 움막을 지을 괭이며 쇠스랑, 도끼, 낫 그리고 밥가마와 사발, 숟갈 몇가지 세간살이감들을 이웃에 사는 천서방부부의 극진한 도움으로 마련하여 지고이고 죽기내기로 톺아오른 곳이였다. 맑은 물에 목수건을 적시여 봄순이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줄 때 눈을 뜬 봄순이가 여기가 어디냐고, 범의 굴이 아니냐고 소스라쳐 일어나던 곳이다. 그러다가 황봉이를 보고는 안심이 되는듯, 부끄럽고 기쁜듯 두볼에 보조개를 지으며 어서 가자고 비칠거리며 다시 일어서던 곳이였다.…

서설봉일가와 가깝게 지내게 된 다음 모진 세상에서 살길이 없어 지주집에서 도망쳐 북대봉 범골에 가서 살며 아들을 홀로 키우자니 힘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 황봉의 말을 들은 서설봉로인은 이렇게 말했었다.

《위험한 인간세상에 아직은 될수록 나들지 말게. 소금은 우리 집에 마련해둘터이니 언제든지 와서 가져다 먹도록 하게.》

그러면서 자기 집 소금단지를 다 털어주었었다.

그러나 그때 황봉은 그 고마움에 눈물을 지으면서도 서설봉로인이 가슴속깊이에 묻어둔것은 미처 몰랐었다.

서설봉로인은 그때 황봉이의 이야기를 듣자 예리한 촉감으로 대뜸 짚이는데가 있었던것이다.

(이 사람이 조참봉이란자가 관가의 힘까지 빌려서 지금껏 찾고있다는 그 《도비》의 남편이 아닌지.…)

이렇게 생각한 서설봉로인은 그후 정성껏 황봉의 뒤를 돌봐주었던것이다.

황봉이 아들을 데리고 인간세상에 나가 살겠노라고 북대봉에서 나와 황바위에게 설봉로인내외앞에 하직의 큰절을 시킬 때도 그들의 앞길에 없지 않을 풍파를 두고 마음을 쓴 서설봉로인이였다.

황바위는 이 집 식구들에게서 어린 가슴속에 식어지지 않을 사람세상의 뜨거운 정을 담뿍 받아안았으며 인간세상을 보는 눈도 텄던것이다.

하기에 황봉이부자가 평양으로 떠나던 날에도 황바위의 머리를 쓸어주며 그의 인생행로의 첫출발을 위하여 괴나리보짐속에 밤새워 만든 길량식 떡을 넣어주던 서설봉로인이였고 해묵은 더덕뿌리를 보따리속에 끼워보내주던 유신검이였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인간세상의 복대신에 억울하게도 발꿈치를 끊기우고 그 보따리마저 다 빼앗기고 돌아온 자기를 붙안고 이다지도 가슴아파하는 그들을 보는 황봉의 가슴은 미여지는듯싶은데 그옆에서는 그의 마음인양 보글보글 약탕관의 초약이 끓고있었다.

어느덧 가물대는 회상과 따뜻한 인정의 품에 안긴 황봉은 오래간만에 혼곤히 잠이 들었다.

황봉이 누워있는 방은 서설봉이 거처하는 방이다. 장검과 동개가 걸려있는 바람벽에는 송죽을 그린 묵화족자가 걸려있고 학창의가 챙겨진 홰대옆에는 검은 삼베유건이 걸려있다.

그리고 《동국병감》을 비롯한 병서들이 쌓여있는 홰나무책상우에는 문방사우(붓, 먹, 벼루, 종이)가 갖춰져있다.

백탄화로불에서 끓는 향긋한 초약내가 그 방안에 가득찼고 뜨락에서는 황바위가 물푸레나무로 아버지의 지팽이를 만들고있었다.

그러다간 문득문득 손을 멈추는 황바위는 아버지와 활개치며 나오던 북대봉 깊은 골짝길을 그 지팽이로 짚으며 되돌아갈 아버지생각에 손에서 맥이 풀리군 했다.

놓아기른 망아지처럼 펄펄 뛰던 황바위가 요즘 며칠사이에 곡경많은 인간세상에서 갑자기 숙성한 어른처럼 된것 같이 느껴져 이윽토록 그를 지켜보던 서설봉은 마음이 울적해진듯 림중량에게 말했다.

《우리 밖에 나가서 바람이나 쏘이지 않으려우?》

《예, 그렇게 하십시다.》

그들은 집옆의 벼랑바위중턱에 세운 자그마한 초가이영정자로 올라갔다. 정자에는 《연비정》(제비가 난다는 뜻.)이라고 쓴 서설봉의 글씨로 된 현판이 걸려있었다. 아찔한 벼랑밑에서는 비류강 푸른 물이 쏴쏴 소리치며 흐르고있었다.

정자의 이름그대로 연비정에서는 아아한 산봉우리들을 넘어 구름바다를 헤치며 넘나드는 산제비떼가 한눈에 다 보였다. 벼랑은 온통 봄꽃치장을 하고있었다.

유신검이 돗자리를 가져다 깔고 자그마한 소반우에 정히 무친 산나물과 오지술병을 받쳐가지고 나왔다.

설봉 부인의 마음이였다.

《경황이 없어서 그동안 이야기도 나누지 못했구려. 중화가 본향이신가요? 그리고 량친슬하이신지?》

《어머님께서는 몇해전에 세상을 뜨시고 지금은 엄친슬하에 있소이다. 돌아가신 할아버님께서 벼슬길을 따라 중화고을에 오셨댔는데 아버님께서는 벼슬에 뜻이 없어 백수(벼슬하지 않은 선비)로 계시옵고 저 역시 어지러운 세상에서 벼슬길에 뜻이 없어 이렇게 지내고있소이다.》

첫잔을 들며 림중량의 름름하고 표일한 기상을 다시 바라보던 서설봉은 (초야에 이런 인재가 묻혀있었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하였다.

림중량은 림중량대로 서설봉에게서 볼수록 범상치 않고 강직하며 청수한 기골과 혈색좋은 얼굴, 흰 수염과 머리칼속에 간직된 강의한 기상을 느꼈다.

그리고 리률곡의 10만양병론이 반박을 받자 가슴을 쳤다는 일도 생각되여 그 애국지정의 반석같음과 나라의 앞날을 내다보는 그의 혜안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록 80고개를 바라보는 고령과 30여세간의 나이의 차이는 컸지만 그것을 잊고 서로 마음을 터놓는 망년지우의 뜨거운 정과 마음들이 통했다.

《지금 나라안이 삼거웃처럼 흐트러지고 왜적은 호시탐탐 내 나라를 노리고있는데 나라와 백성을 건질 선달의 포부는 무엇인지 고견을 듣고싶소. 우선 다가올 국난의 근원이 무엇인지…》

서설봉은 무인답게 에돌지 않고 직통으로 물었다.

《글쎄올시다. 배운것이 없어 아는것이 적은 저이오나 그 국난의 근원은 조정안의 당파싸움때문인줄 아옵니다. 이것은 저뿐이 아닌 백성들의 한결같은 목소리올시다.》

림중량도 직통으로 자기 주견을 말했다.

《옳거니, 옳거니. 당파싸움이란 망국의 근원이요.》

서설봉의 두눈에 근엄한 빛이 비꼈다.

림중량은 격해졌다.

《그로 해서 인재 없고 군사 없고 무기 없고 의리와 기강이 무너진 나라로 되여 종당에는 왜놈에게까지 침략의 길을 열어주게끔 된것이 아니오이까.》

림중량의 눈꼬리는 우로 올라가고 그 목소리에서는 쇠소리가 났다.

《옳거니. 그래서 오늘은 나라가 안으로 무너지고있으니 장차 밀려드는 왜적의 발길에 짓밟히지 않게 된다고 그 누가 장담하겠소.》

서설봉의 목소리도 통절했다.

격분을 억제할수 없는듯 유신검도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그런데도 조정대감님네들은 그 당파싸움을 백성들은 모르고있는줄 알고있소이다.》

유신검의 이 말에 림중량의 목소리가 격분으로 더 높아졌다.

《그것 보오. 그들이 얼마나 백성들을 무지렁이로 알고 깔보는 인간들인가. 무오년으로부터 장장 80여년을 두고 벌어진 그 저주로운 사화(조정의 원로대신들로 이루어진 대지주 훈구파와 주로 지방의 중소지주출신선비들로 이루어진 사림파간의 싸움)와 10여년전부터는 동인, 서인으로까지 갈라진 당파싸움을 백성들이 모르다니 그게 될말이요. 인간쭉정이들인 사대부들은 수염을 쓸고있지만 백성을 속일수는 없소. 엎치락뒤치락 서로 물고뜯다가 몰리우는 패가 무더기로 당하는 참혹한 정경과 죄없이 귀양살이를 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눈으로 보고 지어는 그 귀양살이군을 자기 마을에서 맞기까지 하는 백성들은 망하는 나라를 두고 가슴을 치며 주먹을 떨고있소.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라 하지 않소. 우리 백성들까지 몽매해서 그런것도 모르고있다면 장차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소.》

《알겠소이다. 지당한 말씀이오이다.》

유신검은 머리를 숙였다.

술 한잔을 쭉 들이마시고난 서설봉도 머리를 크게 끄덕이며 《옳은 말이요. 옳은 말이요. 그걸 백성들이 모르다니.》하며 통분함을 금치 못해하였다.

림중량의 목소리는 더 격해졌다.

《이렇게 국난은 안에서도 밖에서도 밀려들고있으니 장차 이 나라는 어떻게 될것이오이까?》

《참 절통한 노릇이요. 세상에 무서운것이 세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인두겁을 쓴 짐승이고 미친 놈 칼자루잡은것이고 무식한 놈 돈많은것이요. 이 세가지 무서운 일을 우리 백성이 다 겪고있소. 지금 벼슬아치들은 짐승이고 왜놈은 칼을 잡은 미친 놈이고 탐관오리들은 제 리속만을 위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고있으니 아, 정말 내 나라가 장차 어찌될고…》

서설봉은 주먹으로 돗자리바닥을 치며 오열을 터뜨렸다. 그 흐느낌소리가 림중량의 가슴벽을 쿵쿵 두드려주며 비류강우로 퍼져갔다.

(이 로인의 애국지정이야말로 얼마나 가슴 절절하고 뜨거운것인가.)

이런 생각으로 림중량이 서설봉을 손잡아 일으키며 위로하는데 어느 사이에 왔던지 연비정옆에 있던 황바위가 두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함께 온 서일에게 물었다.

《할아버님이 왜 우실가요?》

《망해가는 나라를 생각하시며 저렇게 가슴을 치군 하신단다.》

《나라가 왜 망하나요?》

《너의 아버지 발꿈치를 끊은 놈과 같은 놈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서 패싸움질만 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지 않기때문이란다. 그것을 안 왜놈들이 쳐들어올거라고 하시며 할아버님은 저렇게 늘 걱정을 하고계신단다.》

《왜놈이 그걸 어떻게 알가요?》

《네가 만났던 그 검은 장삼입은 놈같은 왜놈들이 우리 나라에 들어와서 다 알아가지.》

황바위의 가슴에 무거운것이 매달렸다.

서일이는 주먹을 꽉 틀어쥐며 말했다.

《그 왜놈이 우리 아버지도 죽였단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죽은 우리 아버지 하나때문에 저렇게 우시는게 아니야. 그놈들이 쳐들어오면 온 나라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게 되고 우리의 아름다운 삼천리강산이 불바다가 된다고 저러시는거야.》

애국지사의 손자답게 서일은 열세살나이에 벌써 아는것, 생각하는것이 많고 깊었다.

《우리는 가자.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서일은 황바위의 손을 끌었다. 그러나 황바위는 그곳을 뜨려 하지 않았다.

연비정에서는 림중량의 권고로 잔을 비우고난 서설봉이 그에게 신중히 말했다.

《그런데 왜적이 오래전부터 우리 나라를 노리고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요즘 당장이라도 우리 나라를 침범하려고 서두르는 그놈들속심이 무엇인지 림공은 어떻게 생각하오?》

《예, 저의 얕은 소견을 말씀드린다면…》

림중량은 잠간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릇이 차면 넘치는 법이고 넘치면 일이 터지는 법인데 하물며 섬나라 왜국안에 차고넘치는 그 횡포한 군력인데야. 듣자니 왜적은 하루라도 피를 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포악한 무리라고 하옵니다.

그러니 그 도요도미란 우두머리놈이 비록 백여년에 걸친 제 나라안의 란리를 평정은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좁은 섬나라안에 그놈들을 다 끼고앉아 먹여살리겠소이까. 거기에다가 오랜 싸움으로 더 궁핍해졌을 농사군들의 불평과 반항도 클것이고 도요도미의 반대파들도 지금은 눌리워있지만 다시 기회를 노리고있을것은 뻔한 일이 아니오이까.》

《그렇지.》

《그러니 이 계제에 승리에 도취된 놈들을 남의 땅을 침략하는 싸움터로 내몰아 거기서 마음껏 땅과 사람, 재물을 략탈하게 함으로써 제 신변에 돌려지는 창끝을 그곳으로 돌려놓자는것이 첫째 속심일겝니다. 다음으로는 그놈이 요즘은 드러내놓고 우리 나라와 명나라를 치겠다고 한다는데 그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영웅〉으로 제 명성을 떨쳐보려는 허황한 꿈으로서 졸개들을 급히 우리 땅으로 내몰려는 까닭의 하나로 된다고 생각하옵니다.

그런데다가 우리 조정의 무너진 기강과 문란한 군률로 방비가 없는 실정을 그동안 다 렴탐해낸 그놈이니 가만히 있을리가 있소이까. 우리 조선쯤 먹는것은 식은죽먹기로 생각하고있을줄로 생각되옵니다.

황봉부자가 이번에 만났다는 그 〈중〉놈의 검은 장삼속으로 들어간 지도도 이제 바다건너 왜국에 건너보낼것을 생각하면 참 통분한 일이오이다. 독사의 입에서는 독이 나오는 법인데 모가지를 빳빳이 쳐든 왜놈독사앞에서 조정대감네는 태평성세만 노래하고있으니, 아…》

림중량은 울분을 참을수 없어 말을 끊었다.

《내 락향후 오늘 림공과 같은 인재를 만난것이 기쁘오. 림공! 금석같은 말로 이 늙은이를 깨우쳐주어서 고맙소.》

서설봉로인은 림중량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아니올시다. 그저 제 좁은 소견을…》

《아니요, 아니요.》

서설봉은 그의 손을 더 꼭 잡아주고나서 긴 수염발을 쓸며 말했다.

《그러니 상감님께서 아무리 총명예지의 천품을 지니셨은들 어찌하시겠소. 조정은 싸움판이고 궁중에서는 요괴가 판을 치니… 아, 절통한지고.》

로인은 긴 한숨을 내쉬였다.

《한 인간의 마음속에 때가 끼여도 도로 희여지기 힘든 법인데 내 나라 조정이 이렇게 어지러워졌으니… 아, 어쩌면 좋단 말인고.》

이렇게 통탄하고난 서설봉은 《원래 상감께서는 조정을 바로 잡으시려고 인재도 등용하시고 백성들의 억울한 〈죄〉도 벗겨주시는 등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시였댔소. 그러나 당파싸움군들과 요괴스런 무리들이 하나를 드시면 열백번 묻어올라 갈피를 못잡으시게 하여 그 총명을 흐리게 해드렸단 말이요. 아, 률곡대감의 10만양병론만 성취되였어도…》이렇게 통절하게 부르짖듯 하고나서 서설봉은 연비정기둥을 붙안고 일어서서 호곡을 하듯 시조 한수를 읊었다.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

락락장송이 다 기울어지단 말가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백발을 흩날리며 기둥을 붙안은채 읊는 그의 침통한 목소리에 림중량과 유신검은 숙연해진 마음으로 머리들을 숙였다.

연비정밑에서 서일이는 황바위의 손을 다시 잡아끌었다.

끌려가면서도 황바위는 울고 웃는 연비정우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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