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4 장

국난은 다가온다

1

 

허리가 늘씬한 흰 눈빛의 애숭이 설화마가 봄풀을 뜯고있다.

풀둔덕옆의 돌각담 다락밭에서는 기골이 장대한 백발로인이 희고 긴 수염을 흩날리며 밭고랑을 일구고있다.

가끔 쇠스랑을 멈추고 서서 청청한 봄하늘에 우짖는 종다리를 찾기라도 하는듯 머리를 드는데 혈색 좋은 얼굴에서는 눈등을 덮은 흰 눈섭이 꿈틀거린다.

머리는 희였어도 마음은 희지 않았구나. 비범한 기상이 헛되이 늙은 로인이 아니로구나 하는것을 느끼게 하는 풍모다.

인생말년에 느끼는바 있어 초야에 묻혀살면서 한가로이 대자연의 한 모서리를 일궈가꾸며 즐기는것인가.

여기 화엄산은 성천고을에서 북동쪽으로 80리, 북대봉에서는 서남쪽으로 역시 80리를 상거해서 솟아있는 산이다.

산은 이름그대로 산세가 화려하고 웅장하며 그 기슭을 흐르는 비류강의 물빛은 푸르기로 이름난 곳이다.

대자연은 이 산허리에도 봄을 끌어올려 엷은 비단필 아지랑이속에 화사한 꽃숲과 신록, 지저귀는 철새떼를 펼쳐놓았다.

산중턱의 아늑한 남향받이 펑퍼짐한 곳에는 정갈한 초가삼간이 있다.

옹이 지고 구부러진 기묘한 형국의 해묵은 로송들과 회양목이며 진달래무더기가 뿌리박은 비류강가의 아아한 절벽과 어울려 지어진 이 초가집은 봄을 가꾸는 집주인의 마음인듯 그 손길이 구석구석 잘도 미쳐져있다.

집 량옆엔 산살구, 복숭아, 돌배, 산벗, 산수유, 앵두 등 과일나무가 가꿔져 저마다 알맞는 봄단장을 하고있다.

주인의 손길로 엄동설한속에서도 포근히 감싸여져있던 짚이불을 벗은 매화며 새순을 쭉쭉 뻗는 장미, 월계넝쿨 그리고 울밑의 란초, 지초며 국화싹무데기들이 한껏 봄하늘을 향하여 기지개를 켜며 머리를 쳐들고있다.

집 뒤쪽에 있는 자그마한 야장간에서 토목수건을 질끈 동인 40대의 중년사나이가 날을 세운 괭이를 둘러메고 로인앞으로 오더니 《호군나으리, 이걸로 저쪽 비탈에 또 한뙈기 일굴가 합니다.》하며 새로 벼린 괭이날을 내보이였다.

《이러다간 우리가 큰 땅임자가 되겠군그래. 허허허.》

로인이 호탕하게 웃는데 《할아버님, 저기 골짜기로 사람들이 올라오고있사와요.》하고 열서너살쯤 되여보이는 손자아이가 두릅바구니를 들고 뒤등성이에서 달려내려오며 소리쳤다.

《상한 사람을 말에 태워가지고오는것 같사와요.》

얼굴이 해맑고 총명하게 생긴 그의 두눈이 놀라움으로 디룩거렸다.

《상한 사람?》

로인의 두눈에 의문의 빛이 비꼈다.

《제가 가보겠소이다.》

중년사나이가 골짜기를 향하여 내려갔다. 로인의 손자애도 그뒤를 따랐다.

손자와 함께 두릅순을 꺾고있은듯한 할머니가 뒤미처 로인앞으로 다가오며 숨을 헐떡이였다.

《말에 실려오는 사람이 눈에 익긴 한데 누군지 잘 알수 없군요.》

로인은 말없이 쇠스랑을 짚고 집쪽으로 내려갔다. 로인은 황봉일행이 찾아오는 서설봉이였다.

이윽고 오추마에 태운 상한 사람을 부축하며 사람들이 로인앞으로 올라왔다.

《호군나으리…》

말갈기를 잡은 상한 사람이 말잔등에서 울음을 터쳤다.

《아니, 이거 황봉이 이 사람! 이게 어찌된 일인가, 엉?》

달려가서 황봉의 피투성이된 옷과 싸맨 발목을 쓸어안은 로인은 손을 부들거렸다.

황봉은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억울하오이다. 자식에게 인간세상 구경시키려구 호군나으리 량주분께 하직인사까지 올리고 떠났던 제가 천한 백성된탓에 발꿈치 장심줄만 끊기우고 이렇게 되돌아왔소이다. 호군나으리!》

《그게 무슨 소린가. 발꿈치를 끊기우다니?》

그러자 옆에 섰던 황바위가 《왜놈 중놈을 보고 관가에 알려주었는데 글쎄 성천고을 사또가 우리 아버지에게 곤장질을 하고 불갈구리로 발꿈치 장심줄을 끊었사와요.》하고 억울한 호소를 하자 서설봉로인은 다시한번 놀랐다.

《성천부사가? 음…》

그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자, 신검이, 우선 사람을 방으로 업어다 눕히라구.》

유신검(중년사나이)이 황봉을 업고 방으로 들어가 눕혔다.

방에서 황봉은 쾅쾅 가슴을 쳤다.

서설봉 부인이 황봉의 피에 젖은 감발을 그러안고 손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여만 가누.》

《음, 왜놈중을 이곳에서 봤단 말이지.》

서설봉로인의 얼굴이 심중해지는데 림중량이 안뜨락으로 들어섰다.

《이 선다님이 우리 아버지를 말에 태워가지고 오셨사와요.》

큰 눈에 담뿍 감사의 정을 담은 황바위가 림중량의 손을 잡고 서설봉앞으로 갔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서설봉이 이렇게 사의를 표하자 림중량은 《천만의 말씀이올시다. 다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진탓에… 이미 오래전부터 선생님의 성화(높은 이름)를 익히 들었소이다. 그런데 이렇게 뵈옵게 되여 마음 편안치 않소이다. 저는 중화고을 선비 림중량이올시다.》하고 자기 소개를 했다.

《반갑소. 나도 선달의 명성을 들어온지 오랬소.》

이 첫 상봉의 마당에서 이 나라 백성들이 안고사는 봄이 아닌 엄혹한 설한풍을 두고 백발로인과 젊은 선비는 벌써 이심전심의 가슴속에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격정들이 오갔다.

《저 황봉이 부자에게 돌리시는 깊으신 은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백성의 도리를 지키다가 저 지경이 된 사람을 맞으시는 심정을 무어라 위로해드리오리까.》

림중량의 진정에 넘친 위로의 말을 듣는 서설봉로인은 봄꽃과 신록에 뒤덮인 화엄산 앞뒤를 생각깊이 돌아보며 《저런 참화를 당하는 사람이 저 사람 하나이라면야 마음이 이다지 아프겠소. 나라의 실정은 몽땅 왜적에게 도적맞히우면서도 관가에서는 충직한 백성의 발꿈치나 끊어놓고있으니 아, 나라가 장차 어찌 될고.》하고 탄식했다.

로인의 긴 탄식의 목소리에 대답하듯 한 무데기의 회오리바람이 밀려와 꽃가지들을 흔들어놓았다.

집옆의 깎아지른 절벽아래 비류강이 바위밑을 두드리며 철썩이였다.

이 땅의 봄은 살뜰히 가꾸어주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얼음덩이를 묻어둔채 화려한 겉치레를 하고있는것이였다.

의지하는 언덕이 든든해져서 마음의 탕개가 풀려서일가. 황봉은 마침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온몸이 불덩이같았다.

서설봉로인내외의 지성 담긴 미음도 로인의 비방약물도 넘기지 못한채 옹근 이틀을 모대기는 그를 두고 온 집안은 당황해지고 황봉의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다.

그런데다가 더욱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것은 아버지가 먹지 않는 동안 어린 아들이 한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는것이였다.

그는 아버지의 다리를 그러안은채 밤과 낮이 없이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설봉로인의 손자 서일이가 숟가락을 쥐여주어도, 모진 발길에 채운 가슴팍 응혈이 빠지라고 유신검이 꿀물을 풀어 들고와도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저런다간 애비보다 아들을 먼저 놓치겠소.》

서설봉 부인이 애타하였다.

며칠사이에 황바위의 두볼은 홀쪽해지고 두눈만 더 커지며 황황히 불길이 솟구치는것 같았다.

서설봉로인이 림중량을 보며 말했다.

《저애를 좀 보우. 흡사 병든 어미범을 지키면서 맴도는 새끼범같구려.》

《그러기에 그 포악무도한 성천부사앞에 불갈구리를 내동댕이쳤지요. 비록 심산속에서 자랐지만 불굴한 내 겨레의 넋은 저 어린 가슴속에도 자라고있는것이 아니겠소이까.》

《옳거니.》

림중량의 말에 서설봉로인은 머리를 크게 끄덕이였다.

 

2

 

온몸에 어혈이 든 황봉을 위하여 유신검이 곰열을 구하려 사냥을 가겠다고 창을 들고나섰다.

서설봉 부인이 어떻게 갑자기 곰을 잡겠느냐고 했지만 며칠이 걸려도 꼭 잡아서 사람을 살려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림중량이 자기와 둘이서 가자면서 서설봉의 각궁(뼈로 만든 활)과 전통을 메고 나섰다.

험한 골짝과 벼랑을 타며 우거진 숲속을 헤치면서 곰이 나타날만한 길목에 다달은 그들은 짐승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니까 리률곡대감의 10만양병론이 배척을 받자 서설봉로인은 인차 락향을 해왔단 말이지.》

《그렇소이다. 벼슬등급으로 말하면 아득한 차이였지만 률곡대감은 호군나으리의 인품과 뛰여난 검술을 알고계셨기에 항상 허물없이 대해주시며 나라일에 대해서도 함께 걱정을 하셨댔소이다. 그러기에 하직인사로 가셨을 때도 률곡대감은 호군나으리의 손을 잡고 놓지 못하시고 호군나으리는 목이 메여 인사도 변변히 못하고 오셨답니다.

이곳으로 온 후 얼마 안있어 리률곡대감께서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 닥쳐올 국난을 내다본 인재가 가고말았구나.〉 하고 땅을 치셨소이다.》

《그러니까 서설봉선생은 군무에 오래동안 종사하셨겠소?》

《그렇소이다. 서설봉나으리는 중종(조선봉건왕조 11대왕) 말엽부터 인종, 명종시기를 거쳐 금상(현재 임금)을 모시는 30여년동안 주로 5위도총부(나라의 군사를 관할하는 부서)에 계시면서 사용이라는 말직으로부터 호군벼슬까지 지내셨소이다. 비록 큰 벼슬자리는 아니였지만 뛰여난 그 검술로 하여 력대 병판(병조판서)대감네들의 존대를 받았고 훈련원에도 자주 나가 검술시범도 하셨댔소이다.》

《음.》

《저는 나으리와 함께 30여년동안 한낱 검을 벼리는 검공으로 지내왔지만 항상 저의 칼 벼리는 솜씨를 칭찬해주시며 친혈육처럼 돌봐주셨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유신검은 서설봉이 을묘왜변때에는 직접 출전을 했고 그의 외동아들도 그후 왜구들을 치다가 장렬한 전사를 했다고 했다.

《을묘왜변때 호군나으리 년세는 40이 훨씬 넘은 때였소이다. 저도 그때 20대의 젊은 나이로 함께 출전을 했었는데 새까맣게 밀려드는 왜구들이 나으리칼에 삼대 쓰러지듯 하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나으리가 눈을 부릅뜨고 칼을 추켜들기만 해도 왜적의 무리는 량쪽으로 쪽 갈라져 환히 길이 틔였는데 그것은 나으리의 뛰여난 검술과 함께 불같은 애국지심이였다고 지금도 저는 생각하고있소이다.》

유신검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높아졌다.

《그러니까 유서방도 설봉선생과 함께 서울을 떠났겠소?》

《나으리께서 서울을 떠나오시며 어지러운 세상에서 칼은 녹쓸어도 마음만은 녹이 쓸게 하지 말라고 저에게 간곡히 말씀하실 때 저는 선뜻 나으리를 따라나섰댔소이다.》

그것은 자신도 일찍 상처를 하고 홀몸으로 서설봉내외를 친부모처럼 의지해 살아왔을뿐아니라 서설봉이 외아들을 왜놈에게 빼앗긴 후 며느리마저 세상을 떠나서 열살난 유복손자 서일과 늙은 부인을 데리고 나서는것을 보고만 있는것이 인간의 의리가 아니며 애국지사에 대한 흠모의 정을 버릴수가 없어서였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가뿐한 보따리를 걸머지고 나설 때 삼거웃처럼 흐트러진 세상에서도 창파에 정히 씻은 옥돌같이 살았건만 나라와 백성앞에 진 빚을 다 못갚고 떠나는듯 발길 무거워하는 서설봉로인앞에서 자기의 발걸음도 무거웠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원래 호군나으리 고향은 맹산땅이였는데 이곳 산천이 마음에 드시여 여기서 이젠 벌써 3년세월을 사셨소이다.

그동안 호군나으리는 다가올 국난을 생각하시며 하루도 검술 닦으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시고 저에게도 칼벼리는 일을 부지런히 하라고 하셔서 그동안 30여자루의 칼과 창을 벼려놓았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뿐아니라 서설봉은 항상 손에서 병서를 놓지 않으며 창검과 활촉, 탄알맞은 상처에 쓸 약초도 골라캐고 가꾸기도 하며 화약재료인 염초도 만들고 표창(무기의 일종) 만드는 법도 새로 생각해내였다고 했다.

그리고 이 근방 젊은이들에게 나라형편을 알려주며 검술도 배워주고있는데 닥쳐올 큰 란리를 막을만한 인재를 아직 못만난것을 제일로 마음아파한다고 말했다.

이때 그들의 옆쪽 벼랑턱에서 돌멩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골짜기 개울로 가재사냥을 온듯 재빛곰 한마리가 바위골을 타고 내려오고있었다.

《에크, 황서방부자를 살리려고 저놈이 내려왔나봅니다.》

유신검이 기뻐했다.

그는 창을 고누어잡고 일어서며 자기는 벼랑을 타고 돌아가서 그놈의 오른쪽 갈비대에다 대고 창질을 할테니 왼쪽에 활질을 해달라고 림중량에게 부탁했다.

얼마 안있어 곰은 《으응―》 소리를 지르며 개울바닥에 너부러졌다.

곰은 량쪽 갈비대에 동시에 화살과 창을 맞았던것이다.

《과시 명궁이시오이다.》

《아니요. 유서방이 과연 신술이요.》

둘은 서로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며 벙긋 웃고나서 쓰러진 곰의 배를 가르고 곰의 쓸개를 떼냈다.

길도 험하거니와 빨리 돌아갈 생각으로 곰의 몸뚱아리는 거의 버리다싶이 했다.

《이번에 서설봉나으리 검술을 한번 보시고 가시지 않겠소이까?》

돌아오는 길에서 유신검이 림중량에게 물었다.

《그러면야 오죽 좋겠소. 그런데 그런 도통한 검술을 쉽게 보여주시겠는지…》

《아니오이다. 선다님을 대하시는 나으리의 각별한 정과 믿음을 저는 벌써 느끼고있소이다.

저는 수십년동안 모셨기때문에 나으리의 지인지감(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오이다.》

유신검의 얼굴에는 진정의 빛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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