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12. 좌절에서 벗어나다

 

그무렵 후백제도성 완산주에서는 또 한번 일떠설것을 노리는 모의가 벌어지고있었다.

《지금 고려의 맹장 유금필이 귀양을 가있다 하나이다. 나는 그걸 확인했소이다. 그가 조정에 없는 이 기회에 고려를 일망타진해야 하오이다.》

모사 간무가 열변을 토하였다.

《그게 확실한가?!》

견훤의 거적눈이 치떠지였다.

《소식에 의하면 고려조정에서 태자책봉을 놓고 의견이 엇갈려 다툼질이 좀 있은가본데 애꿎은 금필이 어간에서 화를 입은것으로 짐작되나이다.》

《그대의 리간계가 빛을 보는게 아니요?!》

《그리 아셔도 무방한줄로 아뢰오이다.》

간무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었다.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요. 우린 태자책봉과 관련해서 절대로 이 소리, 저 소리 말아야 할것이요.》

견훤은 누구에게라없이 침을 놓았다.

제가 신검대신 금강을 태자로 내정하고있는데 대해 이러니저러니 참견을 말라는 뜻이였다.

견훤은 이미 금강을 태자로 정하고있었다. 선포를 하지 않고있을뿐이였다.

순서로 보면 맏이 신검이 되여야 할것이나 견훤은 이미 금강에게 기울어져있었다. 견훤은 뜯어보면 볼수록 자기를 꼭 먹고게운것 같이 기골이 장대한데다 인물 또한 절색이요, 담도 크고 무술도 뛰여난데다 언변술도 능한 금강이야말로 왕위에 오를 적임자라는 생각을 굳히고있었다.

신검을 태자로 여기고 모사 능환을 사부로 임명하였던것은 이미전에 무시해버린 견훤이였다.

허나 신검을 바라고 지금껏 정력을 기울여온 능환은 쉽게 물러설 잡도리가 아니였다. 이것을 눈치챈 견훤이 사전경고를 하는것이였다.

후백제조정은 수군수군 뒤설레기 시작했다. 견훤의 처사에 아연해하는 축들이 적잖았다.

신검은 제가 응당 왕위를 이으리라 여겨온것이 뒤집히려 하자 분격해마지 않았다.

후백제조정은 태자책봉문제로 심히 어지러워져 위기에 직면해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간무는 오직 싸움에만 몰두했다.

그도 신검을 태자로 내세우는것이 옳은것인줄을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일체 끼여들지 않았다. 실은 견훤이 내세우는 금강도 어떤 면에서는 신검보다 나은 측면이 있기때문이였다. 게다가 이 일은 자기가 간언한다고 될일이 안되거나 안될 일이 되는것이 아니였던것이다. 태자책봉은 임금의 몫인것으로 그는 알고있었던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해서 이 일은 외면하는 간무였으나 능환은 이런 간무를 그지없이 얄미워했다. 제 편을 들지 않는다고 덮어놓고 가로보는것이였다.

이로해서 둘사이의 불신은 나날이 더해만 갔다.

왕을 보좌하는 두 모사가 서로 등을 돌려대였으니 판은 깨진판이였다.

간무가 고려와의 결전준비에 골몰하는 그 시각에 능환은 견훤의 태자책봉을 파탄시킬 엄청난 모략을 꾸미고있었다.

이런줄도 모르고 견훤은 간무가 준비하는 결전준비를 밀어주는데만 급급하고있었다.

후백제는 고려와 싸워 이기자면 수군을 늘여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허울만 남은 수군을 새롭게 보강하고 확대하는 일을 맹렬히 추진하였다.

그무렵에 후백제장수 공직이 고려에 투항해왔다. 금강의 태자책봉을 만류하고 신검을 내세우라고 상주하러 갔다가 견훤에게 퇴박을 받은 분을 참지 못해 의거해온것이였다. 하여 공직이 지키고있던 후백제의 변방 매곡성이 고려의 수중에 넘어왔다.

대노한 견훤은 완산주에 인질로 거두고있던 공직의 딸을 죽여버리고말았다.

분노한 공직은 왕건에게 간청하여 매곡성앞에 있는 후백제의 일모산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일자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공직을 도우러 직접 전방으로 나왔다. 계획하였던 서경순찰은 잠시 뒤로 미루었다.

고려군의 일모산성공략은 수월히 이루어지지 않고있었다. 후백제군도 이제는 고려군과 싸울줄 알았던것이다.

수차례의 공격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고려군은 한달동안 숨을 돌리고 다시금 공격했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또 한달을 재수습하고 다시금 공격하여 세번째만에야 겨우 성공했다.

고려군이 일모산성을 타고앉아 만세를 부르는 그 시각에 견훤은 수군으로 고려의 정주포구를 기습하였다. 불의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고려는 한순간 얼떨떨해졌다.

후백제군은 그 기세를 타서 송악으로 육박해들어갔다. 고려의 수도는 졸지에 바람앞의 등불같은 신세에 놓이게 되였다.

박술희와 복지겸이 있는 힘을 다해 막아나섰다. 이들의 지휘밑에 송악의 내군은 죽기로 맞서싸웠다.

량측은 나흘간의 공방전에서 각기 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서야 주저앉았다.

후백제의 수군은 서해안일대의 고려수군기지들을 거의다 요정내였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내미홀(해주) 해안가를 올리훑고 뒤이어 부포까지 올려밀다가 금필의 민병수군과 부딪쳐 좌절당하였다.

금필이 스스로 모아키운 민병수군이 요진통에 한몫 한것이였다.

금필은 후백제수군이 부포반도를 다리로 삼아 륙지로 올리붙은 다음 송악을 측면에서 기습해들어가려는 기도를 간파하고 전률했었다.

(그렇게는 될수 없다. 이 유금필이가 살아있는한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분노한 금필은 앞장에 서서 민병수군을 이끌었다.

후백제수군을 뒤로부터 에워싸고 일자진을 친 뒤 반나절을 포위해놓고 기다리다가 썰물이 지는 때를 노려 일제히 불화살을 날리게 했다.

퇴로가 막힌 후백제수군은 금필의 포위환을 뚫고나가려고 필사적으로 공격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전멸되였다. 대부분의 후백제수군 범선들은 물이 찐 개펄우에 오도가도 못하고 댕그라니 올라 붙은채 고스란히 불타버리고말았다.

후백제수군의 우회공격기도를 좌절시킴으로써 송악은 위기에서 구원되였다.

금필은 송악에 전령을 띄워 사태가 수습되였음을 알리고 다시금 귀양지로 돌아갔다. 전과는 간단히 개괄하고 임금의 허가없이 군사를 일으킨 죄가 크므로 거듭 벌을 청한다는 편지를 왕건에게 보내였다.

송악을 목표로 기습해들어왔던 후백제수군은 황황히 퇴각해갔다.

일모산성에서 돌아온 고려군주력이 저들의 뒤통수를 치기 전에 빠져나가야 했기때문이였다. 고려수군을 일망타진하려던 목적은 달성했다고 본것이였다.

개경을 기습하려던 두번째 목표는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후백제수군의 희생이 너무도 컸던것이다.

후백제군이 퇴각한 뒤 전장을 돌아보는 왕건의 마음은 미여지는듯했다.

한강과 림진강, 례성강하구를 면한 해안일대가 일대 수라장이 되였다. 희생된 군사와 깨여진 배의 수자가 상상을 초월했다.

후백제군이 송악도성의 문어구까지 들어왔던 사실에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신혜, 장화왕후를 비롯한 대신관료들의 내인들까지 창을 꼬나들고 나설만큼 사태는 엄중했었다.

송악린근과 바다가마을들에서는 남녀로소가 구별이 없이 싸움에 나섰었다. 나라가 생사존망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백성들이 보여준 그 의기에 왕건은 머리가 수그러졌다.

후백제수군의 우회공격을 저지시켜 위기를 면하게 한 금필의 행동은 또 얼마나 의로운가. 만약 금필이 후백제수군의 우회공격을 저지시키지 않았더라면, 하여 후백제수군이 륙지로 올라 송악에로의 측면공격이 실현되였다면 결말은 다르게 되였을수도 있었다. 소름이 돋는 이 사실앞에서 왕건은 다시금 금필의 존재에 대해 절감했다.

《승리자에겐 벌을 주지 않는 법이다. 금필대광을 속히 돌아오게 하라.》

왕건은 집무청뜨락에 부복하고있는 금필을 내려다보며 죄스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그대는 억울하게 벌을 받고서도 나라만을 생각하였단 말이뇨? 날 원망할대신 도리여…》

왕건은 말끝을 흐리였다.

《죽으나사나 저는 페하의 신하이오이다. 페하! 엎어놓으나 제쳐놓으나 저는 달리는 될수 없는 고려사람이오이다.》

《아우!…》

왕건은 금필의 대답에 신음소리를 내였다.

이런 사람을 내 타매하다니…

왕건은 허겁지겁 뜰아래로 내려와 금필의 두손을 그러잡았다.

《아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거네, 다시는…》

왕건은 금필을 이끌고 내전으로 들었다.

933년 5월, 금필은 왕건으로부터 정남대장군에 봉하여지고 의성부 성주로 임명되였다. 왕건이 림종을 앞둔 최응의 권고를 받고 취한 조치였다. 최응은 예언하기를 자기가 죽은 즉시 후백제는 공격을 해올것인바 그곳은 고려가 신라땅안으로 깊숙이 밀고들어가 차지한 의성부일것이라고 했다. 그곳으로 공격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후백제가 고려의 서남쪽 어디인가를 먼저 공격하여 고려의 이목을 따돌릴수도 있다고 하면서 이번 싸움에서 후백제를 꼭 눌러버려야 하며 이 일은 금필이 맡아해야 실수없을것이라고 신신당부했다. 금필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후백제의 기가 죽는다는것이였다.

최응은 자기 후임에는 최지몽이 있으니 별다른 일은 없을것이고 군사의 총대장에 유금필만 다시 올려세우면 삼국통일의 마지막결속은 어렵지 않으리라 단언하고 숨을 거두었다. 불치의 병이 서른다섯밖에 되지 않는 전도가 유망한 재사를 쓰러뜨리고말았다.

최응은 죽기 전에 금필에게도 이런 말을 남기였다.

《적만 보지 말고 자기 주변도 보시오이다. 적의 칼날도 아플테지만 자기편 칼날은 더 아플것이오이다. 자기편 칼날을 류의하시오. 그 칼날은 곧 혀날이오이다. 헌즉 조정에 몸담은 사람이 충의를 지키자면 권력에도 한쪽손은 담그어야 하오니 이 점을 잊지 마소서.》

금필은 최응의 조언을 좇아 자기 딸을 왕가에 거두어주기를 주청했다.

왕건은 한사코 거절했으나 금필의 부인이 신혜왕후에게 거듭 조른 끝에 일은 성사되여 금필의 딸은 왕건의 아홉번째 부인(동양원부인)이 되고 금필자신은 왕건의 장인이 되였다.

신혜왕후는 물론 장화왕후까지 찬성한 뒤에 이루어진 혼사였다. 금필이 왕가에 들면 더는 허술히 보는 눈이 없게 될것이라고 믿는 이들이였던것이다.

그러나 왕가와의 혼인이 아니더라도 금필의 지위는 이미 굳혀졌었다. 후백제의 서해안급습으로 풍지박산이 될번 한 위기를 겪고난 뒤 진짜로 고려를 지켜낼 위인이 누구냐 하는 물음앞에 간신들은 더는 할말이 없었던것이다.

 

후백제의 공격목표는 혜산진(흥성)이였다. 후백제는 흥성을 타고앉아 옹근 하루를 버티다가 퇴각하고말았다. 왕건이 이곳을 주목하고 제때에 손을 썼기때문이였다.

왕건은 최응이 림종시에 후백제가 의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서남쪽 어디인가를 먼저 쑤시리라는 말을 심중히 받아들였다. 왕건자신도 고려군이 현재 신라의 중심어간인 의성으로 깊숙이 내려가있는 반면에 고려의 서남방향, 특히는 서해를 면한 지역이 아직까지도 후백제가 차지하고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있었다. 이 지역은 한해전 후백제군의 기습으로 고려의 서해안이 점령당하였던 이후로 아직 되찾지 못한 곳이였다. 송악에서 륙로로 5백리가량밖에 안되는 곳이였다. 송악에서 천리가 넘는 의성쪽보다는 혜산진쪽이 송악을 공격하기에 더없이 유리한 곳이기에 어찌보면 후백제가 의성이 아니라 흥성에 기본목표를 정할런지도 모를 일이였다.

왕건은 군사를 일부 갈라내여 혜산진으로 증파하기로 결심하고 홍유에게 군사를 맡기였다. 그사이 홍유와 어성버성해져있던 사이를 풀자는 의도에서였다.

홍유는 왕건이 자기를 여전히 신임한다는 사실에 사기가 나서 즉시 출병하여 로장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후백제군이 너무도 급작스레 쳐들어와 이미전부터 흥성을 수비하던 군사들이 약간의 손실은 내였지만 백리밖 안성부근까지 내려와 대기하고있던 홍유의 증원군이 덮쳐들자 후백제군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퇴각하고말았다. 혜산진은 다시금 고려의 수중에 들어갔다.

왕건은 혜산진쪽이 안정되였다는 보고를 받은 즉시 금필에게 전갈을 띄웠다.

《짐이 혜산진으로 공격해온 후백제군을 홍유대광으로 하여금 조처하게 하였거니와 후백제가 의성으로 공격해오면 실수없이 막을것이다. 혹여 후백제가 신라도성을 다시금 침범하는 경우 아우는 결단코 군사를 이끌고 가서 신라를 구원할것이다.》

왕건의 어지를 받은 금필은 후백제군이 의성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선손을 썼다. 장사 여든명을 선발해 데리고 급히 서라벌쪽으로 내달렸다. 중도에 의성으로 올라오는 후백제군과 마주쳤으나 다치지 않고 고스란히 지나쳐버렸다. 그 수가 많지 않았기때문에 의성에 진치고있는 고려군사만으로도 넉근히 처리할수 있었던것이다.

대신 금필은 후백제군이 적은 인원으로 의성을 치고 기본주력으로는 서라벌을 또 치려는 속심을 간파하였다. 왕건도 이를 예견하여 어지에 특별히 강조하였던게 아닌가. 금필은 주저없이 서라벌방향으로 말을 몰았다. 아니나다를가 사탄(락동강지류)이 보이는 등마루에서 금필은 후백제군 주력과 맞다들었다. 여든명으로는 어림없는 력량대비였으나 금필은 군사들을 독려하여 앞장에서 쳐나갔다. 사탄여울목에서 불의에 기습하여 후백제군 주력의 선두를 짓조겨대고 그 기세로 후백제군 주력의 허리를 꺾어놓았다.

후백제군은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졌다. 고려의 제일가는 맹장인 유금필이 다시 나타났다는 소리 한마디에 기가 질려 갈팡질팡하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후백제군 주력의 대장은 신검이였다. 간무가 적극 추천한것이였다. 이번 싸움을 잘 치르어 견훤의 마음을 돌려세워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능환도 두손을 들어 찬성하였으며 다시없는 기회라고 신검을 독려했다.

그러나 일은 이들이 바라는대로 되지 않았다. 금필이 역습해오자 신검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퇴각한것이였다. 같이 따라나섰던 량검과 룡검도 종시 돌아서고말았다.

의성으로 올리밀었던 후백제군도 고스란히 전멸되였다. 의성에 대기하고있던 고려군 주력이 금필이 이른대로 여유있게 진을 치고있다가 다가오는 족족 때려치웠던것이다.

패전소식에 접한 견훤은 격노하여 량검과 룡검을 무주와 강주의 도독으로 내려보내고 신검은 무언지계로 따돌려버렸다.

간무는 머리를 싸쥐였다. 바다 한끝에 귀양갔다던 금필이 귀신처럼 불쑥 신라땅에 나타날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그였다.

을녀(간무가 금필에게 들여보낸 녀인)한테선 금필이 귀양지에서 풀려나왔다는 소식이 왜 오지 않았을가, 그의 정체가 드러났는가?

가슴을 쥐여뜯고있는 사람은 간무뿐이 아니였다.

능환은 간무가 우정 신검을 골탕먹이려고 짜맞춘것이 아닌가고 의심했다. 지난해에 고려의 서해안을 기습할 때는 신검을 아껴야 한다며 빼놓아 그 좋은 무공의 기회를 놓치게 한 간무가 이번 혜산진싸움에는 별로 신검을 내세우는게 몹시도 이상하게 여겨졌던것이다.

그러니 간무 네가 나를?!… 능환은 이를 갈았다.

이번 싸움에서 신검이 크게 이겨 견훤으로 하여금 금강으로부터 신검에게로 행여나 마음을 돌려먹게 하려고 한것은 간무도 능환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틀어지자 독이 오른 능환은 애초부터 간무가 신검을 아니, 바로 능환자신을 더욱더 궁지에 몰아넣으려고 꾀한것으로 오해하고만것이였다.

한편 견훤의 아들들을 련이어 꺾어놓은 금필은 방향을 서라벌로 돌렸다.

신라왕은 고려군을 두손 들어 환영했다. 다시금 들이대는 후백제군의 공세앞에 어쩔줄을 몰라 전전긍긍하던 그였다. 견훤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후백제에 조공을 약속하고 금필이 왕건대신 들어왔을 때에는 서라벌주둔까지 소청했던 그였다.

그뿐이랴. 금필이 왔다간 다음해인 931년 여름에 단행한 고려왕 왕건의 서라벌방문을 신라는 얼마나 극진히 환대했던가.

왕건과 무려 두달이 넘도록 함께 지냈으며 그즈음에 와서 고려와 신라는 이미 한집안이 다된듯싶었던것이다.

이런 신라를 견훤이 가만둘리 만무였다.

이번에 후백제의 신라공략이 성공만 하였다면 왕자신은 물론 신라 조정이 지리멸렬하였을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금필이 거느린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쳐이기였을뿐아니라 신라를 또 한번 구원해준것이였다.

신라왕은 금필에게 더는 숨기지 않고 조만간에 신라가 대용단을 내리리라는것을 서슴없이 암시했다.

금필은 신라의 이러한 동향을 즉시에 송악에 전했다.

왕건에게 이 이상의 큰 선물은 다시 없을것이였다.

왕건은 승전고높이 돌아온 금필을 성밖에까지 나와 맞아들이였다.

신라조정의 동향이 자기가 예견한대로 흘러가고있는데 만족하고있는 그였다.

왕건이 이번에 금필에게 의성을 지키면서도 신라조정을 돌보라고 한것은 후백제의 예기를 눌러놓자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신라를 보호하고 신라로 하여금 고려에로의 투항을 당기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자기가 바라는바를 금필이 만족하게 실현해가고있었던것이다.

왕건은 금필을 거듭 치하했다.

《역시 금필대광은 우리 고려에 제일가는 명장이시오.》

며칠후에 왕건은 금필과 함께 서경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금필을 모해한 각각의 잘못을 꼭꼭 집어 렬거하고 견책에서 파직까지 정도에 따르는 벌을 내리였다.

신명왕후의 주위를 맴돌던 내시며 녀종들을 모조리 갈아치우고 류긍달에게는 충주로 내려가라고 령을 내리였다.

식렴에게는 아무런 훈시도 처벌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렴은 완전히 주눅이 들어버렸다. 개경(송악)이 아니라 서경에 와서 그것도 식렴을 앞에 세워놓고 죄를 따진것자체가 왕건이 다름아닌 식렴자신을 겨누고있다는것을 그가 모를리 없었던것이다.

장화왕후의 소생인 무를 밀어치우고 제 딸 신명왕후의 아들을 태자로 내세우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던 류긍달을 뒤에서 은근히 밀어주던 사람이 바로 식렴자신이였던것이다.

파당짓기와 세력불리기에 여념이 없던 간신배들이(대체로 충주세력이였다.) 더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며 고려조정은 비로소 정돈이 되였다.

잡관목들이 키를 넘었으나 하늘을 가리울 정도는 아니였으니 저녁해가 떨어진때문이였다.

퍼그나 큰 골안에 고려군이 꽉 차있었다. 금필이 지휘하는 군사들이였다. 이들은 이 골안에 사흘째 묵고있었다.

운주성을 타고앉았다가 인츰 이리로 숨어든것이였다. 후백제군을 유인기만하기 위해서였다.

두해전인 932년 여름, 후백제수군의 기습으로 고려의 서해안이 점령당했던 그때 견훤은 보군도 동시에 올리밀어 운주성을 일시 차지하였었다. 후백제장수 공직이 고려에 의거해오면서 고려땅이 되였던 운주성이였다.

왕건은 서해안지대에로 총공세를 취하면서 첫 순서로 운주성을 다시 탈환하도록 했다. 운주성이 위치한 차령산줄기너머에 있는 웅진성을 내다보고 정한 목표였다.

후백제군은 크게 저항도 하지 못한채 성을 내주고말았다.

왕건은 그 기세로 계속 나아가려다가 멈춰세우고 견훤이 어떻게 나오나 좀 지켜보기로 하였다.

왕건은 금필과 최지몽, 공직과 마주앉아 차후일정을 의논했다.

《견훤이 싸우자고 올라오면 칠것이되 화의를 청하면 마주앉자는 생각이요.》

《견훤이 굽어들것으로 내다보오이까?》

최지몽이 왕건에게 되물었다.

《그래주었으면 해서 하는 말이요.》

《견훤이 싸우러 오면 왔지 화의하려고 오지는 않을것이로소이다.》

금필이 자기의 생각을 이렇게 내놓자 모두 긍정하는 얼굴이였다.

《여기로 오면서도 그래 와서도 그래 생각되는것이 많아서 그러오. 전야에선 농부들이 가을걷이가 한창인데 우린 또다시 싸움을 벌리였소. 아까운 인명을 줄이고있단 말이요. 두렵기 그지없소. 더이상 동족의 피를 보고싶지 않구려.》

왕건의 얼굴에 고뇌의 빛이 스치였다.

금필은 왕건의 심중이 리해되였다.

생각해보면 이 땅우에선 30년이 넘도록 싸움이 멎지 않고있는것이다.

그 과정에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헤아리랴.

이기면 만세를 부르고 지면 우는것으로만 끝난다면 작히나 좋을가, 사람이 죽는것이 문제였다. 매 가정들에 지울수 없는 상실의 아픔을, 마음속 상처를 남겨놓는 이 싸움에 백성들은 진저리를 치고있는것이였다.

《하오나 멈추면 안될것이오이다. 후백제만 쓰러뜨리면 곧 통일이오이다. 마지막고비를 이겨내셔야 하오이다, 페하!》

금필은 마음속 진정을 담아 간곡하게 아뢰였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조금만 기다려보자는거요. 싸우러 오면 치는것이지만… 요즈음 후백제의 사정을 헤아려보면 어쩐지 견훤이 손을 내밀것만 같아뵈여 내 그러는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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