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3 장

《나는 이 나라 백성이다》

3

 

황바위를 업고 관가에서 멀리 떨어진 뒤산골짜기로 달려간 한칠성이는 아늑한 곳에 그를 눕혀놓고 급히 그의 저고리앞섶을 들추더니 가슴에 귀를 대보았다.

무지한 발길에 내질리워 시퍼렇게 멍이 든 어린 가슴이 겨우 할딱이고있었다.

《얘야, 얘야, 정신을 차려라.》

칠성이는 어찌할바를 몰라하며 황바위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안타까이 그를 불렀다.

그런데 그 경황중에서도 황바위는 발길들에 짓뭉개진 빨간 댕기 한쪼박을 꼭 틀어잡은채 기척이 없었다.

칠성이는 그를 업고 여기로 달려오며 가슴을 죄였었다.

(이애만이라도 살려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을 한꺼번에 다 죽게 해서는 안된다.)

자기가 열살때 량반놈의 집 사포도청(개인이 백성을 고문하려고 가지고있는 형장)에 끌려가 빚을 못갚고 군포를 못냈다는 《죄》로 오늘 황봉이가 맞듯이 매를 맞고와서 집문턱에 피를 쏟고 죽은 아버지생각이 나서 그는 가슴이 저며지는것 같았다.

그후 땅바닥을 치며 울부짖다가 까무라친 어머니와 발을 동동 구르는 누이동생 쌍가마를 두어두고 양덕고을 조참봉네 상노로 끌려가던 일이 어제일처럼 떠올라 황봉의 부자가 당하는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랑 쌍가마는 어데서 어떻게나 지내는지… 이애에게도 어머니랑 동생이 있겠는데…)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마침 황바위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정말 날범같은 아이였다.

《우리 아버진 죽었나요?》

몽롱한 눈으로 칠성이를 바라보며 황바위는 입술을 떨었다.

《아, 네가 살아났구나.》

칠성이는 그를 와락 그러안고 급히 말했다.

《얘야, 어서 여기서 도망치거라.》

잠시 칠성이를 눈여겨보던 황바위는 《아니, 어제 놀이배 뒤흔들어놓은 형님 아니유?》하고 소리를 쳤다. 그는 함뿍 땀에 젖은 길쑴한 얼굴에 허우대가 큰 칠성이를 대뜸 알아봤다.

그는 칠성이가 남같지 않았다. 그도 자기네처럼 부사와 조참봉과 량반놈들에게 천대를 받으며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이런 때 자기를 살려주었다는 고마움에 난생처음 《형님.》이란 말이 자연스럽고 뜨겁게 입에서 튀여나왔다.

《아니, 네가 나를 어떻게?》

칠성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황바위는 그의 손을 꽉 그러잡으며 《형님, 우리 아버진…》하고 애타게 다시 물었다.

칠성이는 말문이 막혀 그를 꼭 껴안고 두손을 부들거리다가 우선 타드는 황바위의 입술을 추겨주려고 급히 개울로 달려갔다.

이때 말발굽소리가 나더니 웬 량반 하나가 황바위옆으로 다가와 말에서 내렸다.

순간 황바위는 본능적으로 몸을 도사리며 자기옆에 있는 돌멩이를 거머쥐였다.

《오, 네가 살았구나.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황바위는 여차직하면 그의 면상을 후려갈기려고 몸을 더 도사리는데 《림선다님!》하고 칠성이가 소리쳤다. 양덕고을에서 여러번 본 일이 있는 림중량이였던것이다.

《네가 이애를 살려냈구나. 용타.》

림중량은 후―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제사 눈을 말똥거리며 림중량을 바라보던 바위는 생각이 났다.

(옳구나. 비류강 풀밭에서 농군들이랑 도시락을 풀던 그 량반이구나. 억쇠 아버지가 말하던 그 림선달이구나.)

《얘야, 이 선다님은 좋은 어른이시다.》

칠성이가 바위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제서야 바위의 손에서 돌멩이가 떨어졌다.

《우리 아버지는 죽었나요?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했다구 죽이나요? 왜놈중 알려준것도 죄가 되나요. 예?》

황바위는 림중량의 중치막자락에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너의 아버지는 죽지 않는다. 죽을 사람이 따로 있지. 자, 우선 이 약을 먹어라.》

《예? 우리 아버진 죽지 않나요? 그게 정말인가요?》

바위의 두눈에 새빛이 돋았다. 림중량은 주머니에서 우황청심환 한개를 꺼내더니 그것을 칠성이가 떠온 표주박물에 풀어서 황바위에게 먹였다.

황바위는 울먹이며 그 약을 삼켰다.

림중량은 불이 이는 그의 두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너 몇살이냐?》

《열세살입니다.》

《음, 한 고을을 다스리는자가 열세살난 어린 아이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림중량은 기가 찬듯 후 한숨을 짓고나서 급히 칠성이에게 말했다.

《칠성아, 이제 그놈들이 이애 아버지도 또 널보구 업어다가 비류강물에 처넣으라고 할게다. 죄없고 먹을알이 없는 사람을 왜 붙잡고있겠느냐. 그러니 네가 빨리 가서 그를 둘쳐업고 이리로 오너라. 죽어서는 안될 사람이다. 내 말뜻을 알겠느냐?》

《예, 제 가서 꼭―》

《칠성아, 너를 믿고 보낸다. 목숨을 걸고 옳은 길에 나서는 너를 알기에 부탁하는것이다. 억울한 사람, 의로운 사람을 도울줄 알아야 한다.》

《예, 알겠소이다. 제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여기서 저를 기다려주사이다.》

황바위가 간신히 일어나다가 쓰러지며 달려가는 칠성이에게 소리쳤다.

《칠성형님! 나랑 함께 가자요.》

침통한 얼굴로 그를 지켜보던 림중량이 황바위가 꼭 틀어쥐고있는 댕기쪼박을 보며 물었다.

《그건 웬거냐?》

《쌍가마가 준거예요.》

《쌍가마라니?》

《칠성형님의 누이동생이예요. 지금 그 어머니랑 쌍가마는 칠성형님때문에 울고들 있어요.》

그러면서 한서방네 집 이야기를 대충 해주었다.

《음―》

림중량의 목소리는 침통했다.

이날저녁 어스름녘에 발뒤꿈치를 끊기우고 피투성이가 된 황봉을 오추마에 태운 림중량은 갓과 중치막을 벗어 말잔등에 싣고 맨 망건바람으로 말고삐를 잡고나섰다.

《선다님! 선다님! 저를 내려놔주사이다. 돌멩이처럼 짓밟히우는 이 천한 목숨이 무엇이길래…》

황봉은 말잔등을 치며 흐느꼈다.

《인간이 자기의 값을 제스스로 낮추 봐서는 안되는 법이야. 자네는 조선백성의 넋을 지닌 사람이야. 그리고 이 아들앞에서 떳떳한 아버지구…》

말잔등우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관가의 동헌이 시골 머슴방만큼도 인정없고 무지막지한 곳인줄은 정말 몰랐댔소이다.》

그 말에 림중량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물었다.

《그래 이젠 어디로 가자는가?》

《예, 화엄산 서설봉나으리댁으로―》

《서설봉선생? 마침 잘됐네. 나도 그분을 한번 만나뵙고싶어하던 참인데… 자, 가자구.》

림중량의 손길을 따라 오추마는 코투레질을 한번 하더니 뚜거덕뚜거덕 발걸음을 옮겼다.

메고왔던 괴나리보짐도 없이 아버지옆에 붙어가는 황바위의 머리끝에서 찢어진 빨간 댕기쪼박이 나풀거렸다.

큰 바위와도 같은 의지로 잔악한 형장고문을 이겨낸 황봉을 업고오면서 황바위가 손에 쥐고 쓰러졌던 그 댕기쪼박에 깃든 사연을 알게 된 칠성이의 숨결은 높아지고 발걸음은 빨라졌다.

림중량의 부탁을 받고 관가로 들어설 때 호방은 기다리기라도 한듯 따져물었다.

《애새끼를 물속에 처박았느냐?》

《예.》

칠성이는 난생처음 거짓말을 했다.

《이놈도 업어다가 물속에 처넣어라. 마님의 령이다.》

호방놈은 피투성이가 된 황봉을 칠성이에게 내맡겼다.

(정말 네놈들은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들이구나.)

칠성은 부르르 주먹이 떨렸으나 어떻거나 이들부자를 살려내야겠다는 생각과 림중량의 부탁을 생각하며 황봉을 업고 달려왔던것이다.

허우대는 크나 마음이 형편없이 여린 칠성이는 황바위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빗겨주고 쌍가마의 찢어진 댕기쪽을 손바닥우에 놓고 촘촘히 펴서 매주면서 큰 체통을 들먹거리며 흐느꼈다.

황바위는 그의 손길에서 다시한번 그 어머니와 쌍가마의 다심하던 손길을 느꼈다. 칠성이는 떠나는 황봉의 피투성이된 다리를 그러안고 《저대신 아저씨다리가 이렇게…》하며 차마 그 다리를 놓지 못했다. 그러면서 림중량에게 애원을 했다.

《이제 제 관가로 가서 황바위도 아버지도 모두 비류강물속에 던졌다고 할테니 선다님, 이 착한 아버지와 아들을 어서 빨리 피신시켜주사이다.》

《오냐. 걱정말아라. 그 부사란자가 너만도 못한 놈이니 장차 이 고을백성들이 이런 참변을 어찌 한두번만 당하겠느냐.》하며 허희탄식을 한 림중량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데 황바위는 황바위대로 헤여지는 칠성이를 붙잡고 울먹이며 부탁했다.

《형, 어머니랑 쌍가마가 더 울지 않게 빨리 밤나무골로 가서 만나보시라요. 그리고 북대봉으로 와서 우리랑 함께 살자요.》하며 매달렸다. 그러는 황바위에게 칠성이는 《난 종의 신센걸…》하고 울먹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그 말을 들을 때 황바위는 칠성이가 어려서 종으로 끌려가서 어머니가 보고싶다고 울다가 조참봉놈에게 장작개비로 맞았다고하던 한서방의 이야기와 방금전에 본 그의 이마우에 크게 패여졌던 흠집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여먹었느냐고 묻기라도 하듯 림중량과 아버지를 번갈아봤다.

얼굴에는 침통한 빛이 흘러넘쳤다.

《칠성형님… 칠성형님…》

황바위는 고마운 사람의 이름을 외우며 걸었다.

림중량은 말없이 오추마고삐를 앞으로 끌었다. 아버지의 상한 다리를 고여받쳐든 황바위는 절뚝거리면서도 종종걸음으로 아버지의 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불타는 어린 넋, 아버지를 지지던 불갈구리를 부사앞에 던진 열세살내기 북대봉의 애어린 날범을 림중량은 그윽한 눈길로 돌아보며 말을 몰았다.

어느덧 동녘하늘에 하현달이 얼굴을 내밀었다.

물씬 꽃향기를 풍기며 봄밤의 한무데기 바람이 그들이 가는 길을 쓸어주었다.

림중량은 생각이 깊어졌다. 김요립의 잔악성을 생각하노라니 문득 20대 젊은 시절 과거를 보려 서울에 갔을 때 일이 회상되였다.

떠날 때 어느 젊은 선비 하나가 헐어빠진 도포와 갓망건을 하고 와서 하는 말이 《내 가친께서 3년째 벼슬길을 구하려고 서울 한 대감댁에 가계시면서 땅을 팔아 뒤를 대라고 해서 300석지기 땅을 다 팔고나서 이제는 어머님과 처자까지 굶기고있는판인데 서울에 가거든 우리 아버님을 만나뵙고 제발 그 벼슬 그만두고 내려오셔달라고 말씀 좀 해주시오.》하고 자기 아버지가 가있는 대감네 집을 대주며 간절히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찾아가보았었는데 그 대감댁 문객들의 꼴이 지금도 선히 눈앞에 떠올랐다.

하는 일없이 3년 또는 5~6년씩이나 그 대감집 사랑방에서 대궁밥(먹다남은 음식)을 얻어먹으며 구지레하게 때국에 절은 도포자락을 걸치고 앉아서 거드름피우는 대감의 눈치만 보고있던 위인들, 그 가운데는 자기네 집 300석, 500석지기 땅을 몽땅 팔아서 대감집 솟을대문안으로 들이민자가 비단 그 선비의 아버지뿐이 아니였다.

(이런자들이 벼슬을 사가지고 한 고을의 원이라도 되여 가는 날엔 우선 들이민 값을 봉창하느라고 백성들의 등가죽을 얼마나 악착하게 벗겨낼것인가. 이렇게 세상이 썩었단 말인가.)하는 울분이 치밀어 그저 돌아설가 하다가 아들을 생각해서 그 아버지를 만났는데 그는 정신이 나간 사람같았다.

《여보게, 내 아들보구 집을 팔아서라도 한번만 뒤를 더 대달라고 말해주게. 요 며칠전에도 대감께서 내앞을 지나시다가 〈큼직한 고을 원자리 하나 맡아가지고 나가면 되갔지?〉하고 말씀하셨네.》하며 꼭 투전에 미친 사람처럼 애걸을 하다싶이했다. 그 당시 대감님들은 가끔 자기의 문객들에게 이런 투로 한마디씩 해주면서 긁어낼것을 박박 긁어내는판이였다.

그래서 림중량은 과거보자던것도 걷어치우고 서울바닥에 침을 뱉고 집으로 돌아왔었는데 그후 얼마 안되여 그 대감이 당파싸움에 몰려 귀양살이를 갔다는 소문이 들려왔었다.

그후 림중량은 세상에 대고 코웃음을 치며 해학과 풍자로 세상을 웃어주고 음풍영월로 세월을 보내면서 세상밖의 선비로 자처하며 살았었다.

그러던중에 다른 고을로 가서 원노릇을 하는 전날의 그 친구를 다시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고을의 군기고와 군량창고는 텅 비여있고 성첩은 허물어졌으며 군사라곤 군적에 실려있는 빈 이름뿐이라는것을 알게 되자 소스라쳐 놀랐던것이다.

(나라의 방비가 이 지경이란 말인가? 이러다가 외적이라도 덤벼들면…)

이런 몸서리쳐지는 생각에 그는 정신을 새로 가다듬었던것이다.

그후부터 림중량은 세상일을 론의할수 있는 뜻있는 선비들과 무인들을 애써 찾아다니였다. 특히 고명한 검객과 명궁들을 찾아가 검술닦기와 궁술닦기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병서들을 탐독하였었다.

그중에서도 룡강땅의 김응서와는 더욱 마음이 통하여 가끔 오석산 황룡산성에 올라가 검술도 익혔는데 그럴 때면 사람들은 오석산에 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들 했다.

림중량은 생각에 잠겨 황봉의 말고삐를 잡고가며 시 한수를 읊었다.

 

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워도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홀로 오노매라

 

시의 긴 여운속에 말잔등에 앉은 황봉의 흐느낌소리는 더 커졌다.

아직은 어린 나이로 다는 알수 없지만 그 악독한 조참봉, 김요립이뿐아니라 왜놈까지 있어서 할아버지도 죽이고 아버지도 이 지경이 되였구나 하는 생각에 황바위의 두주먹은 차돌멩이처럼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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