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 회)
제 3 장
《나는 이 나라 백성이다》
2
김요립은 뜻밖에도 황봉의 완강한 저항앞에서 불에 덴 소 날치듯 했다. 한번 본때를 보이려던 노릇이 잘못하다간 또다시 어제처럼 개코망신을 당할것 같아서였다.
매질은 더욱 가해지고 곤장은 황봉의 찢어진 살점을 묻어올려 허공에 휘뿌렸다. 형틀밑이 피로 흥건해졌다.
호방놈이 소리쳤다.
《이놈아, 그래도 잘못했다고 사또님께 사죄를 안할테냐?》
그러나 황봉은 입을 열지 않았다.
황봉의 몸에는 무서운 매가 내려졌다. 그러나 지금 황봉은 그 아픔보다도 아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이 찢어지는듯싶었다.
그는 아들을 빼앗긴다면 자기의 삶의 존재가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했다.
황봉은 형틀을 거머쥐고 모지름을 썼다. 무서운 악형을 자기도 놀랄만큼 이겨내는 힘의 언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가 백성으로서 옳은 일을 했다는 그것이였다. 자식앞에서 떳떳하다는 그것이였다.
그래서인지 정신이 가물거리는 속에서 자기도 이상하리만큼 갓난 아들을 안고 북대봉에서 부르던 안해 봄순의 자장가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그 노래소리가 황봉에게 불끈불끈 장수힘을 안겨주었다.
아가야 내 아가야
어서 자라라
착한 사람 업어주고
악한 놈 무는
북대봉호랑이로
자라나거라
이 순간 황봉은 일생을 두고 사무친 원한과 념원, 그것이 이런 간고할 때 죽음도 이겨내는 인간의 힘으로 된다는것을 느꼈다.
다음순간 황봉은 불도가니속에 처박히는듯한 고통에 짓눌리우며 한쪽 발꿈치에 예리한 통증을 느꼈다.
가물가물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올려다본 부사가 마치 염라대왕처럼 보였다.
이때였다.
《이놈들아, 우리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죽이려 드느냐?》 하는 애되고 새된 목소리가 동헌뜨락으로 날아들었다.
륙모방망이에 밀려났던 황바위가 붐비는 사람들의 틈을 뚫고 삼문안으로 어린 날범처럼 다시 뛰여든것이다.
그는 군노, 사령들이 손쓸사이도 없이 형장앞으로 달려들며 피와 불속에 잠긴 아버지를 부여잡고 《아버지!―》하고 애타게 부르짖더니 불갈구리 든 놈에게 달려들어 그놈의 손가락을 꽉 물어끊었다.
《으악!》하고 소리친 놈이 불갈구리를 땅에 떨구자 황바위는 날쌔게 그 불갈구리를 집어서 추켜들고 곧바로 동헌대돌우로 뛰여오르며 《이 왜놈편 놈들아!》하고 고함을 치면서 힘껏 동헌복판에 내동댕이쳤다.
머리우로 날아드는 시뻘건 불갈구리를 보자 《앗!》, 《에그머니.》하며 사대부들은 어제 놀이배에서보다도 더 다급한 비명을 질렀다.
불이 펄펄 이는 두눈을 부릅뜬채 불갈구리를 추켜들고 달려드는 열세살내기가 그들에게는 제놈들을 잡으러 온 염라국의 불장군처럼 보였다.
불갈구리는 잔뜩 구군복차림을 하고 버티고앉아있던 김요립의 신짝앞에 떨어지며 피식피식 마루바닥을 태웠다. 엉겁결에 후닥닥 일어선 김요립이 신고있던 목화로 그것을 걷어차서 불갈구리는 대돌아래로 굴러내려갔다. 이번에는 군노, 사령놈들이 어― 와― 하고 뒤로 밀려났다.
《엄마야!―》
금방 기절을 할듯한 소리를 지르며 부사의 《신동》아들놈이 어푸러지며 내아로 도망쳤다.
《바위야―》
황봉은 몸을 뒤틀며 힘껏 소리쳐 아들을 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입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피눈물로 되여 가슴속에 괴였다.
《저 애놈을 당장 요정내지 못할가? 그리고 백성놈들을 다 내쫓아라!》
김요립이 다급한 소리를 질렀다. 순간 호방놈의 무지한 발길에 황바위는 동가슴을 채워 그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백성들은 륙모방망이에 밀려나며 분노에 떨었다. 군노, 사령놈들이 달려들어 황바위를 질질 끌어다가 다시 삽짝문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칠성아, 그 애새끼를 끌어다가 비류강물속에 처넣어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방놈이 소리를 치자 내아쪽에서 칠성이가 나타났다. 그는 동헌우와 뜨락을 둘러보더니 입술을 씰룩이며 삽짝문밖으로 나가쓰러진 황바위를 둘쳐업었다.
칠성이를 본 동헌우의 량반토호들이 다시한번 움씰 놀랐다.
실신한 황바위를 업고가는 칠성이의 등뒤에 대고 호방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 애새끼 살려줬다간 네 모가지 날아날줄 알아라.》
이때였다. 삽짝문밖에서 말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중치막에 갓망건 단아하고 다복수염에 이목이 뚜렷하며 기상이 당당한 선비가 오추마에서 내려 거침없이 동헌안으로 들어섰다. 중화선비 림중량이였다. 집으로 돌아가다가 신임부사 노는 꼴이 오늘 꼭 동헌에서 무슨 일이 생길것 같아서 말머리를 돌렸던것이다.
《신관사또께 시골선비 문안드리러 왔소이다.》
갑작스런 그의 출현에 김요립이 어리둥절해있는데 벌써 림중량은 동헌우로 올라섰다.
망가진 갓테를 안고 쩔쩔 매던 량반들은 이런판에 구면이면서 범상한 인물이 아닌 그가 나타난것을 어색하게 생각도 하고 또 다행으로도 생각하면서 《이거 림선다님, 어려운 행차이시웨다.》, 《오시기 수고하셨쉐다.》하고 저마다 아는체 수인사들을 하며 체모없이 된 꼴들을 얼버무려보려 했다.
그바람에 김요립도 어정쩡해져서 허리를 굽신했는데 림중량은 좌중 한복판에 떡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김요립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어떤 놈인데 감히…)
김요립은 애써 자존심을 불러일으키며 이렇게 뇌여보기도 하고 쥐수염을 쓸어도 봤지만 선비의 쏘는듯한 눈정기에 눌려 저도모르게 《알게 돼서 반갑쇠다.》하고 다시 굽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무릇 저속한 인간이란 약한자에 대해서는 포악무도하지만 저보다 웃자리에 있는자이거나 무엇인가에 눌리우게 되는 사람앞에서는 남의 몇곱으로 허리를 굽히는 법이다. 이윽토록 동헌뜨락의 참혹한 형장을 바라보며 말이 없던 림중량이 입을 열었다.
《신관사또께서 첫 공사를 어제 선유배에서 하신줄로 알았는데 오늘은 또 이렇게 엄엄한 구군복차림으로 고변대사를 친히 삼문좌기로 치죄하시노라 수고가 많소이다. 산악같은 이 위엄으로 하여 나라의 안녕이 반석처럼 다져질것으로 아오이다.》
그의 음성과 말뜻에는 처음부터 조소와 칼날같은 야유가 담겨져있었다. 그런데 김요립은 그 말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분한 말씀이외다. 그런데 저놈이 저 형틀우에서도 한마디 비명도 안지르는 독종이 돼서…》하고 뇌까리였다. 동헌안의 량반들이 서로 돌아보며 눈들을 꿈쩍거렸다.
《하하, 그까짓 곤장에 살점쯤 뜯기우는거나 불갈구리로 발꿈치쯤 끊기우는것이 뭐이 그리 아파서 소리를 치겠소. 그러구보니 사또님께서는 산 사람의 다리힘줄을 불로 지져 끊는데 무척 흥미를 느끼시는것 같구려. 발꿈치를 끊는 형벌이야 역적음모에 가담한자에게 가하는 국법인데 고변을 한 농군이 역적이라는것을 대번에 알아내신 사또의 그 총명에 머리가 수그러지는구려. 하하하.》
림중량은 동헌이 들썩하게 웃어대더니 《그런데 그 아이놈이 글쎄 원님이랑 여러 량반님네를 보구 모두 왜놈편이라구 하면서 불갈구리를 이 동헌마루에 내동댕이쳤다니 그놈이 참 버릇이 없는 놈이올시다. 하하하.》하고 또 한바탕 웃어댔다.
그제사 김요립도 생각이 미쳐져서 한마디 하려고 하는데 림중량은 말도 없이 동헌대돌로 내려섰다.
김요립이 늙은 아전인 리방을 부르더니 물었다.
《대체 저자가 누군가?》
《거 맞서지 않는게 좋소이다. 중화고을 선빈데 호락호락할 인물이 아니올시다.》
리방은 림중량을 소개한다기보다도 사태를 수습해보려고 좀 과장을 해서 김요립을 눌러놨다.
대돌아래 관속들속에서도 술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오랜 아전살이에서 이런 경우 림기응변에 이골이 난 호방이 시뻘건 주코를 벌름거리며 부사앞에 한걸음 나서면서 허리를 굽신했다.
《사또께 아뢰오. 죄인치죄를 잠시 뒤로 미루시는게 어떠하올지…》
《음, 우선 내옥에 가둬넣어라.》
김요립은 쓴지 단지 입맛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뱉듯 했다.
뜰아래 형장제구가 치워지고 실신한 황봉은 들것에 실려 다시 옥으로 갔다.
그것을 보자 림중량은 성큼성큼 삽짝문밖으로 걸어나가 오추마에 올라타더니 말고삐를 잡았다. 뚜벅뚜벅 말은 가던 길을 다시 갔다.
이때 갑자기 놀랜 까투리 날아가는것 같은 웃음소리가 동헌뜨락에 들리더니 조참봉이 하인들에게 술통과 안주감을 지워가지고 들어오며 지껄여댔다.
《신관사또님의 동헌에서의 첫 공사에 내가 늦었군. 그런데 듣자니 웬 아이놈이 불갈구리를 휘두르며 동헌마루에 뛰여들었다니 이건 고금력사에 없는 일이여서… 여하간 사또님의 명성이 널리 세상에 퍼지게 되였소이다. 하하하… 그 아이놈 참 당돌한 놈이군. 감히 여기가 어디라구. 하하하.》
(저 소귀신보다 더 질긴 작자가 왜 또 이런 때 나타나서 내 얼굴에 먹칠을 하누. 제길, 중 머리깎은 날 모기가 성한다더니 왜 오늘은 이런 작자들만…)
김요립이 목구멍에까지 치밀어오르는것을 겨우 참는데 동헌마루로 올라온 조참봉은 또다시 《그 아이놈이 아무리 생각해두 괘씸한 놈이군. 그놈이 우리 사또님 구군복까지 불태워놓을 놈이로구만. 고현놈.》하고 연신 까투리소리를 내며 너스레를 피웠다.
《자, 사또님. 오늘은 수고를 하셨는데 여기 상좌에 어서 와서 앉으시오이다. 내 오늘 사또님을 위해서 천일주 두통을 마련해가지고 왔소이다.》
요란한 판을 벌려놓고 제 위엄을 떨치려던 노릇이 형장에선 신음소리 한마디 못듣고 아이놈에게서는 제가 달구게 한 그 불갈구리에까지 얻어맞을번 했고 거기에다 그 림중량이란 선비에게 된 우박까지 맞은 생각에 분통이 터지는데 이 소귀신같은 놈까지 이렇게 와서 까투리웃음을 웃어대니 김요립은 심사가 편할리 없었다. 그런데 조참봉은 좌중을 둘러보며 물었다.
《중화고을 림선다님이 오셨단 말을 들었는데 어데 가셨소? 한잔 같이 나눌걸.》
이때 옆에 있던 좌수가 그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기며 《좀 가만있구려.》 하고 귀띔을 해주는데 김요립은 볼꼴이 없이 된 구군복자락을 거머쥐고 내아로 휭하니 들어가버리고말았다.
동헌마루에서는 이름모를 잔치가 벌어졌다.
신관사또환영축하연이라기에는 구색이 맞지 않고 새 사돈될 조참봉이 첫턱을 쓴다기에는 어제 차린 화전배놀이가 있는 뒤여서 그것도 잘 맞지 않았다. 그러나저러나 동헌에서는 천일주 몇잔씩이 돌아가자 언제 그런 일들이 있었더냐는듯 기생들의 새장고소리에 량반님들의 어깨춤이 어울려 돌아갔다.
내아에 들어가 군복을 벗어 팽개치고 청도포로 갈아입은 김요립이 속이 클클해서 동헌으로 나가려는데 옥매가 도포자락을 끌어잡아앉히고 쏘아붙였다.
《오늘 메주를 그만 자셨으면 됐지 또 뭘 더 자시러 나가시려우.》
《메주라니?》
《흥. 그 중화에 산다는 선비에게서랑 그 산골백성놈 애새끼에게서 얻어자신게 그래 메주가 아니구 뭐요? 그애놈 불갈구리에 구군복이 견디여냈으니 그래도 다행이지.》
《그… 그게 무슨 놈의 말버릇이야.》
《말버릇 탓하기 전에 좀 크게 노시우. 군복차림만 와드드하게 하고 산골놈 발꿈치나 지지고 앉아서…》
그러면서 옥매는 김요립이앞에 보따리 두개를 풀어놓았다.
《흥, 산이 운 끝에 쥐 한마리라더니 그 큰판에서 겨우 이거야.》 하며 보따리들속에서 두뿌리의 산삼과 록용 한가치, 고사리, 더덕따위들을 들춰냈다.
황봉부자의 보따리였다. 그나마 호방놈의 큰 메기아가리에 절반은 들어갔으리라고 생각한 옥매는 잔뜩 이마살을 찌프렸다.
《당신 한다는 놀음이 참 한심해서… 그까짓 백성놈 발꿈치나 끊어서 생길게 뭐요? 소문만 더러웠지. 그런데 여보, 그 중이 진짜 왜놈인줄 어떻게 알고 령을 내렸소? 후탈이 있을가 걱정이 돼서 슬그머니 그놈을 놔주라고 했지만 중화의 선비가 내막을 알고 간게 께름직하외다.》
《내 다 보는게 있으니 마음놓게. 태평세월을 어지럽히는 놈들은 지체없이 쳐야 해.》
옥매는 산삼과 록용을 따로 건사하며 종알거렸다.
큰아버지에게 가지고가자고 그 한뿌리의 산삼을 위하여 황바위는 아슬한 벼랑들을 얼마나 타고올랐던가.
옥매는 또 종알거렸다.
《흥, 그래도 듣자니까 그 중화고을선비가 당신을 공기돌 다루듯 했다면서요?》
《누… 누가 그래, 엉?》
《나두 다 듣는 귀가 있지요.》
그건 호방의 입을 통해 들은것이였다.
이 순간 김요립은 《아차.》하고 무릎을 칠번 했다.
(그 선비녀석이 들어설 때 내 눈을 부릅뜰걸 깜박 잊었댔군. 하기야 그놈의 두눈이 하두…)
김요립은 지금도 림중량에게 자기가 잔뜩 짓눌리우고있는것만 같아 푸시시 맥이 풀렸다. 이때 《그 애새끼 갔나?》하고 이 집의《신동》이 뒤방문을 열고 잔뜩 겁에 질린 얼굴을 내밀어서 김요립은 몇오리 안되는 쥐수염을 다 뜯어버리기라도 할듯 배배 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