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 회)
제 3 장
《나는 이 나라 백성이다》
1
성천고을관가 내아(안채)의 깊숙한 뒤방에서는 어제 배놀이에서 당한 망신풀이겸 해정술상을 받은 신임부사 김요립이앞에서 그의 애첩 옥매가 조참봉이 보내온 제주도특산물들의 목록을 내리훑고있었다.
희멀쑥한 두부살얼굴에 새끼손가락으로 꼭 찍어놓은듯한 뱁새눈이 신통히도 어제 비류강에서 전복으로 까치집을 치던 아이놈상판이다.
김요립은 옥매의 희고 유들유들한 그 얼굴을 《보름달》이라고 부르군 했다.
김요립은 도호부 부사가 될만큼 배운것, 아는것이 없고 인품은 없지만 김귀인을 통하여 그 오라비 김공량의 한팔이 된 후부터 륙산, 해산할것없이 8도강산의 이름있는 토산물들을 걷어들이는데서와 백성의 등가죽을 벗기고 기름을 짜내는데서는 놀랄만한 완력과 수완을 가진자였다.
그래서 남해가고을에서부터 원노릇을 해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제주목사노릇 한번 못해본것이 평생의 한이 된다고 뇌까려왔었다.
그 말을 어느새 렴탐해낸 조참봉은 재빨리도 자기가 사람을 띄워 구해오겠다는 제주도특산물의 목록을 적어보내온것이다.
《제주토산물목이라…》
옥매는 그 생김새와 어울리는 째는 목소리로 그것을 부사앞에서 읽기 시작했다.
《홍합, 전복, 해삼, 문어, 큰새우, 삼치 각각 30근, 미역, 다시마 각각 열묶음, 유자, 실백잣, 귤 각각 열궤짝이라… 흥.》
옥매는 시답지 않은 얼굴로 읽다말고 코방귀를 뀌였다.
《…겨자, 후추 각각 스무근, 각종 갓양태 각각 다섯통, 탕건열죽, 말총 150근이라… 흥, 갓장사를 시키려는가?》
그러면서도 계속 내리읽었다.
《…우황 두근에 진주 열세꿰미… 한꿰미라는게 도대체 몇개란 말야?》
그 대목에 와서야 낯색이 좀 밝아진 옥매는 마지막물목을 읽었다.
《제주말 여섯필… 은안장, 대모채찍 갖춰서…》
김요립은 술잔을 든채 입을 헤벌리고 옥매를 쳐다보며 들으라는듯 거들먹거렸다.
《이 성천고을에 오자마자 내가 큰 봉을 잡은것 같애.》
《흥, 봉이 될지 꿩새끼가 될지 두고봐야지요.》
옥매는 백옥잔에 찰찰 넘게 감흥로를 부어주며 또다시 종알거렸다.
《거 봉이야기가 났으니말이지 당신이 죽은 닭대신 산 봉을 끌어온건 참 잘했시다. 펄펄 끓는 비류강 잉어국물에 당신의 이마는 그렇게 훌렁 벗어졌지만 그 칠성인지 하는 놈의 힘이 천하장사라니 써먹을 맛이 있겠시다.》
《그 애새끼놈을 잘 다루라구. 내 범의 새끼를 안구오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거든.》
김요립은 벗어진 이마빡을 문지르며 눈살을 찌프렸다.
《원 겁두… 그런데 참, 그 놀이배가 아주 뒤집혔더라면 어쩔번했수. 량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염이나 칠줄 아시우? 호호호… 하기야 량반이나 새나. 삼포왜란(1510년 남해가에서의 왜란)때부터 왜놈끼구 장사질 잘했다는 당신네 조상만큼만 해내두 괜찮지. 호호호…》
《쉿, 원 버르장머리없이. 자, 술이나 한잔 더 부으라구. 어험.》
《당신 암만 어험어험 하구 조를 빼두 그 쥐수염 몇오리 가지군 맥을 못춘다는걸 아시우.》
《고놈의 혀바닥을 그저…》
《흥, 혀바닥이 뭬라우. 누가 보길 하우, 듣길 하우.》
옥매는 쇠경을 김요립의 코앞에 대주며 《자, 한번 해보란 말이요. 내가 늘 대주는대로 아래것들앞에서는 말할것도 없고 맞서야 할 놈들과 대할 때는 이렇게 눈꼬리를 우로 추켜들어 지릅뜨고 쏘아보며 위엄있게 놀란 말예요.》하고 앙탈을 부린다.
옥매는 뱁새눈으로 눈을 부릅뜨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나 살두부속에 박힌 뱁새눈을 가지고는 흉내를 낼수 없어서 저도 픽 웃고마는데 《이렇게 하란 말이지?》하며 김요립이 제법 눈을 지릅뜨는 시늉을 했다.
《호호, 암만 봐도 쥐상판이야. 요놈의 수염 몇오래기때문에 더 개판이란 말이야.》
옥매는 김요립의 턱수염을 잡아챘다.
《체체, 요 버르장머리 없는것…》
김요립이 턱수염을 잡히운채 채머리를 흔들자 《제기 경복궁 뒤뜨락 양화당에서 김귀인은 상감님상투도 이렇게 잡아챈답데다. 호호호.》하고 옥매는 더욱 간드러지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김요립의 귀에 입을 바싹 대고 조잘거렸다.
《거 조참봉인지 하는 작자가 말꼬랑지에 붙어서 서울길 가보겠다는 쉬파리가 아니우? 우리 덕에 서울길을 터보자는거겠지? 흥, 이까짓 빈 종이장만 잔뜩 믿고있지 말라구요. 〈래일 황소다리보다 오늘 참새다리가 더 낫다.〉는 말이 있지 않수? 우리 허파에다 우선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보자는건데… 허지만 우리는 한수 더 떠서 혼인을 한다한다하면서 울궈낼것, 뽑아낼것 다 긁어내고 눈치코치있게 놀잔 말이외다.》
애첩의 훈수에 그래도 제노랍시고 김요립은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그놈이 관청닭 눈빼먹을 촌닭같은 놈이라는거야 당신보다 내가 더 잘 알지. 〈사또님, 사또님〉하면서 내게 등짐을 지워가지고 서울길 가자고 할 놈이란 말야. 그래서 아예 걷어치우고말지 어쩔지…》
《아니 그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리요? 걷어치우다니… 그 작자가 〈금송아지〉를 가지고만 있다면야 김공량별좌님 시켜서 조꼬만 벼슬감투 하나 슬쩍 씌워놓고 그 〈금송아지〉의 네다리, 등뼈, 갈비대, 꼬랑지까지 슬슬 구슬리고 우격다짐해서 다 떼내잔 말이요.》
《그렇게 쉽게 될가?》
《원, 오물짝거린다구야. 생전 봐야 조막손이라더니 제길…》
성천신임부사가 이렇게 한참 애첩의 훈수를 받고있는데 갑자기 관아의 삼문이 떠들썩하더니 《고변이요!》 하는 급한 목소리가 연거퍼 들려왔다.
《고변》이란 원래 역적이나 큰 사변이 생겼을 때 나라에 급히 알리는 말인데 세상이 문란해지면서 시골관가에서까지도 툭 하면 《고변》이란 말을 써서 백성들의 기를 꺾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뭐 고변? 이건 또 뭐야. 오자마자 재수없이. 이따위 산골에서 고변이라니?…》
김요립은 얼떨떨한 얼굴을 해가지고 동헌(원이 일보는 곳)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자 옥매가 묻어일어서며 귀띔을 해줬다.
《고변이라니, 눈치코치 봐가며 머리를 쓰라구요. 서울대감님네도 그런 땐 일을 잘 꾸며서 큰 몫을 차지하군 하는데 그런 솜씨를 좀 본따란 말예요.》
그러면서 옥매는 어제 당한 망신도 풀겸 아예 처음부터 잡도리를 단단히 하라고 충동질을 했다.
그래서 김요립은 조참봉을 비롯한 여러 고을안 백성들을 한번 단단히 틀어잡으리라고 윽별렀다.
이윽고 김요립은 옥매가 대준대로 눈을 잔뜩 치올려뜨고 틀을 차리며 동헌으로 나가앉았다.
《고변이라니, 무슨 고변인고?》
김요립이 동헌뜰을 내려다보는데 호방이 미투리감발에 수건을 벗어든 맨 상투바람의 황봉이를 끌고와서 대돌아래에 엎드리게 했다.
《나라의 흥망에 관한 고변이오이다.》
호방이 허장성세해서 원에게 고해바쳤다. 원래는 고변자가 생기면 그의 신분과 성명, 사는 곳 기타를 먼저 알아보고나서 고해바치게 되여있는것이다. 그런데 등치고 간 빼먹는것이 고을아전들의 솜씨인데다가 징짝만한 얼굴에 시뻘건 주코쟁이인 호방놈은 생김새대로 포악하고 음흉해서 이 고을 아전들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는자이다. 그속이 우렝이깍지속 같아서 이번 신관부사의 금새를 떠보느라고 일부러 그런것도 모르는체 하고 설레발을 쳤다.
《이 백성이 산수화를 치는체 하면서 우리 고을 산천지세와 성곽지형 등을 몰래 그리고있는 검은 장삼을 입은 수상한 중놈을 봤다고 하는데 그놈이 아무래도 조선사람이 아니고 왜놈같다고 하옵니다.
그것이 국가흥망에 관한 큰일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달려온것은 명망이 높으신 신관사또님을 믿고 흠모하는 실로 갸륵한 백성의 소행으로서 우리 성천고을에서 이런 일을 먼저 알아냈으니 앞으로 조정에서 큰상이 사또님께 내릴것으로 아뢰오.》
그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김요립은 대바람에 왈칵 성을 내며 소리를 질렀다.
《별 시라소니같은 놈들 다 보겠구나. 그 스님으로 말하면 불도에 도통하신 거룩한 학승(지식과 수양이 높은 중)이신데 어쩌구 어째? 뭐 왜놈?》
그러자 호방은 그자리에서 제 태도를 훌 바꾸었다.
《과시 명철하신 말씀이시오이다. 우둔한 저희들은 그것도 모르옵고…》
호방이 허리를 굽히자 황봉이 일어서서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숙이며 부사에게 아뢰였다.
《그가 우리 고을 지형지세를 그려서 장삼속에 넣어가지고 다니는것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봤사옵고 또 이런 일을 관가에 알리는것이 백성의 도리옵기에 사또님께 아뢰는바이오이다.》
이 순간 김요립은 방금전에 옥매가 시골놈들에게 백성다루는 솜씨를 보여주라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따위 일쯤 조정에 알리기나 새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서 추상같은 소리를 질렀다.
《이놈! 천한 백성놈이 감히 군국대사에 무슨 참견인고. 나라일을 상감님과 우리 국록지신(나라의 록을 타먹는 벼슬아치)들이 다 알아서 하고있는데 네놈이 무고한 스님까지 왜놈으로 만들어 고발한것은 새로 도임한 이 김요립을 우습게 알고 태평세월에 민심을 소란케 하려는것이 분명하도다. 여봐라!》
《에―잇!》
륙방관속과 사령, 군노들이 모여들어 머리들을 숙였다.
김요립은 고변때 머리를 잘 쓰는 서울대감들의 솜씨를 본따라던 옥매의 말을 다시 생각하며 그까짓 보잘것 없는 이 백성놈보다도 이 계제에 우선 어제 배놀이에서 당한 망신분풀이를 본때있게 해보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눈을 잔뜩 지릅뜨고 다시 호령을 했다.
《어제 칠성이란 놈은 내 놀이배를 뒤집어엎으려 하더니 저놈은 내 동헌을 뒤엎으려고 덤벼든 놈이다. 이런 놈에게 나라법 엄한줄 알려줘야겠다. 이놈이야말로 쇠불갈구리로 발뒤축 장심줄을 끊어놔야 할 놈이다. 이런 놈 놔두었다간 어떤 역적음모를 할지 모른다.
쇠불갈구리형구를 갖추는 동안 저놈을 우선 옥에 가두고 어제 배놀이에 왔던 량반들을 다 불러라.》
실로 황봉이에게는 날벼락같은 억울한 일이였다.
(이렇게 백성의 진정까지 짓밟다니. 이거야말로 범잡아 바치고 곤장맞는 격이 아닌가. 아무리 망한 놈의 세상이기로서니 이런법이 어데 있단 말인가?)
인간세상구경을 시키려고 그 심심산골에서 어린 아들을 앞세우고 나왔다가 이런 일을 당하는 황봉이 복장이 터지는것 같아 한마디 더 하려는데 부사는 벌떡 일어나 내아로 들어가고 황봉의 량옆으로는 두억시니같은 군노, 사령들이 우 달려들어 그를 삼문안에 있는 내옥으로 끌고갔다. 황봉은 몸부림을 쳤다.
(이럴줄 알면서도 찾아온것이 잘못이였지.… 아니다. 나는 조선백성으로서 할 일을 했다. 아, 내 아들은 지금…)
이때 기다리다못해 삼문안으로 달려들어온 황바위가 끌려가는 아버지를 보자 비호처럼 달려들어오며 소리를 쳤다.
《이놈들아! 왜 우리 아버지를 잡아가느냐?》
뜻밖에 나타난 아이녀석의 다기찬 고함소리에 움칠 발걸음을 멈춘 놈들은 륙모방망이로 그의 동가슴을 내질러 삼문밖으로 몰아냈다.
《어째서 왜놈은 놔주고 우리 아버지만 잡아가나요? 우리 아버지를 내놔요.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 어린 아들의 피타는 목소리가 황봉의 오장륙부를 허비였다. 아들의 애타는 목소리는 삼문밖 멀리로 밀려갔다.
내아로 들어간 김요립은 통인(심부름군)아이에게 령을 내렸다.
《내 군복을 내오너라!》
《옳쉐다. 바로 이런 때 군복값이 나갑네다.》
옥매는 제 손으로 김요립에게 구군복차림을 시켰다. 그의 군복은 도호부 부사 겸직인 첨절제사의 무관복이 아니라 대도호부 부사의 겸직군복차림보다도 더 호화스러운것이였다.
그는 날아가는 새도 손짓해서 떨군다는 권세를 쥔 김귀인을 등에 업은터라 금관자를 주어붙인 자기의 격에 맞게 군복도 이렇게 와드드하게 갖추고 지내는데 그 꾸밈새가 놀랄만큼 사치스러웠다. 무관이 극도로 천대를 받는 세월에 그가 이렇게 굉장한 구군복차림을 준비해가지고 다니는데는 부임해가는 곳마다에서 그 고을 백성들과 관속들 그리고 관하의 군수 또는 현감, 현령들, 지방토호들을 위압해놓으려는 속심이 담겨져있는것이다.
동헌으로는 이 고을 좌수, 별감, 유사를 비롯해서 진사, 선달, 참봉 등의 지방량반들과 토호들, 재산이 있는 생원, 풍헌 등속까지 다 모여들었다. 비류강배놀이때 배가 기울어진 탓에 자기들에게 그 무슨 화라도 미쳐올가봐 눈들이 둥그래져서 허겁지겁 모여든것이다. 어떤자는 배에서 마사진 갓도 미처 못고쳐서 탕건바람으로 온자도 있었다. 동헌에는 량대 넓은 통영갓과 뿔관들이 서로 겹치고 비벼댈만큼 성천고을바닥에서 제노라고 하는자들이 다 모여들었다.
여기로 요란한 구군복차림을 한 김요립이 눈을 잔뜩 지릅뜨고 여덟팔자걸음으로 나타나자 그가 예측했던대로 산골사대부들은 일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그를 맞으며 서로 슬금슬금 눈치들을 보았다.
공작꼬리 추켜올린 산수털전립에 밀화패영(밀화구슬로 꿴 전립끈) 건뜻 매고 붉은 소매에 걸친 검은 동달이우에는 야청전대띠를 조여맸다. 목화(군복차림때 신는 가죽신) 신고 동개(활과 화살을 꽂아메는 가죽통) 메고 금병환도(금자루칼) 비껴차고 손에는 은병등채(은자루에 등으로 만든 말채찍)를 든 김요립이 상우에 높이 앉아 삼엄한 삼문좌기(관가의 삼문을 열어놓고 백성들앞에서 죄인을 처리하는 자리)판을 벌렸다.
어느새에 나왔던지 큰 구경거리에 신이 난듯 부사의 《신동》아들녀석도 복건쾌자차림으로 애비옆에 붙어있다.
동헌대돌아래 뜨락에는 큼직한 형틀옆에 대곤, 중곤, 소곤(곤장의 크기들)을 든 집장사령들과 라졸들이 줄지어섰다.
그옆에는 오라줄(묶는 줄), 항쇄, 족쇄(죄인의 목에 씌우는 큰 나무판과 발에 채우는 쇠고랑), 쇠사슬, 주리대와 이글거리는 백탄불에 달군 쇠꼬치가 삼발이청동화로에 꽂혀져있다.
《그놈을 끌어내라!》
《예잇, 그놈을 끌어내랍신다!》
통인과 급창의 꼬리긴 소리에 이어 붉은 오라줄에 묶이운 황봉이가 군노들에게 끌려나왔다.
김요립은 동헌 좌중을 둘러보며 틀지게 한마디 했다.
《미천한 백성놈이 감히 군국대사를 가지고 운운하며 태평성대의 민심을 소란시키려 하기에 내 오늘 엄히 다스릴가 하오.》
그러자 지방의 《거물》들은 큰 숨들이 나가서 일제히 《예, 알았소이다.》하고 허리를 굽혔다. 어제 배놀이동티가 아니로구나 하고 후― 안도의 숨들을 쉬였던것이다.
잔뜩 틀을 차린 김요립은 《우선 그놈의 성명과 주소, 생업을 알아보라!》하고 령을 내렸다.
통인, 급창, 사령들이 긴목을 뽑아 그 소리를 받아외웠다.
순간 황봉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저놈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낸다면… 아. 바위야, 내 아들아…)
황봉은 머리를 번쩍 들고 동헌을 쏘아보며 부르짖었다.
《나는 죄인이 아니요. 이 나라 백성이요. 지금 남해가백성들은 왜놈들에게 집을 불태우고 처자를 잃고 팔도강산을 떠돌고있다 하옵니다. 그런데 사또님은 저를 죄인으로 다스리려 하니 백성들은 누구를 믿고 살겠나이까.》
뜻밖의 반항에 부닥친 부사는 《무엇이 어쩌구 어째? 그러구보니 저놈이 왜구의 죄행까지 내게 넘겨씌우려는 놈이로구나. 우선 저놈에게 대곤 열대를 안겨라!》하고 엉뎅이를 들썩이며 소리쳤다.
곧 형틀에 묶이여 엎어진 황봉의 볼기우로 휘파람소리를 내며 곤장이 내려지더니 또다시 허공으로 올라갔다가 철썩 소리를 내며 내려졌다.
대번에 형틀이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입술을 사려문 황봉의 입에서는 다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삼문밖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부사는 더 째지는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이 동헌은 왕궁과 조정대신들을 위해 있는것이지 너같은 무지렁이 백성들을 위해서 있는것이 아니야. 여봐라! 그놈이 아가리를 다시 못열게 더 쳐라!》
엇바꾸어 대드는 사령들의 손에서 곤장은 덮치여 내려졌다.
그러나 형틀에서는 한마디의 비명도 울려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보는데 저놈들앞에서 내가 우는 소리를 하면 애비구실을 못한다.)
황봉의 사려문 입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