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9 회)
왕건도 송악에 들어가서는 성이 풀려 저녁을 함께 하며 즐거이 담소도 하고 정사이야기도 나누다가
헤여졌었다. 그런데 그날 있은 일이 왕명을 거역한 죄목으로 불거져나온것이였다. 페하가 잡으라는 범은 잡지 않고 페하가 잡으려는 범을 가로채 잡으려
한것은 분명코 왕명을 거역한 죄라는것이였다. 왕건은 짜증을 내며 돌아앉아버렸다. 그러잖아도 장화왕후가 라주를 되찾아달라, 아버지를 살려달라 하며 갑옷에 투구까지 쓰고 나서서 궁성안을
소란케 하는통에 신하들앞에 면구스럽기 짝이 없는 왕건이였다. 거기에 금필의 버릇까지 잘못 가르쳤다며 들쑤시는 참소질에 화가 동한것이였다. 금필이 이 사람이 확실히 처신을 바로 못하누나. 왕건은 저도 모르게 금필을 고까웁게 생각하는데까지 이르게 되였다. 여기에 또 한가지 불미스런 죄목이 덧붙여졌다. 왕건에게는 신명왕후와의 사이에 난 딸이 있었다. 후에 고려에 투항해온 신라왕 김부의 안해가 된 락랑공주였다. 금필은 이 락랑공주를 남달리 귀여워했다. 그가 자기의 딸과 친하게 지낸데도 있었겠지만 공주가 금필을 남달리 따랐기때문이였다. 제어미
신명왕후가 죽도록 미워한 사람인 금필에게 그 딸은 반대로 죽기로 따랐다는것은 정말이지 괴이쩍은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바로 이 락랑공주를
금필이 희롱했다는것이였다. 락랑공주가 열두어살되는 해이니까 오륙년전쯤 되는 해에 있은 일이였다. 그해 여름 어느날 금필은 왕건과 함께 수군을 시찰한적이 있었다. 그날 왕건을 따라 바다구경을 나왔던 어린 공주는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여간 황홀해하지 않았다. 분홍빛노을이 타는 속에 쟁반같은 황금빛저녁해가 서서히 바다물속으로 스며드는 광경이였다. 해를 받아들이는 바다수면은 일렁이는 물결로 해서 마치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쇠물가마처럼 보이였다. 어찌보면 해가 지는것이 아니라 금시
뜨는것 같았다. 공주는 해가 물속으로 사라지자 여간만 아수해하지 않았다. 《아바마마, 솟는 해를 볼수는 없나이까? 전 솟는 해가 무척 보고싶나이다.》 공주가 왕건에게 졸랐다. 《솟는 해를 보고싶으면 래일 아침 송악 만월대우에 올라가 보려무나.》 《누가 산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싶다이까? 바다우에 솟는 해를 보게 해주소이다.》 공주는 막무가내로 졸랐다. 《바다우에 솟는 해야 여기서 볼수 있나? 동해에 가야 보지. 이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데리고가마.》 왕건은 공주를 얼리였다. 《언제 데려가겠나이까? 빨리 보고싶소이다, 네? 아바마마!》 공주가 너무도 간절하게 졸라대자 왕건은 그만 손을 획 내저었다. 《이 애야, 넌 내가 정사는 걷어치우고 너 해구경이나 시키러 다니란 말이냐? 원, 철도 없구나.》 왕건이 책망하자 공주는 금시 울상이 되였다. 《페하, 제가 이앞의 섬들을 돌아보는겸 공주님을 모시고 나가보겠소이다. 저 연평도쯤에 나가면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앉은자리에서 볼수가
있을것이로소이다.》 금필은 공주가 너무도 소원하는 모양이 미안스러워 금시 궁냥한것을 아뢰였다. 《거기 가면 다 볼수 있을가?!…》 잠시 기웃하던 왕건이 응수했다. 《그럼 래일 새벽에 같이 떠나보세.》 다음날 새벽, 일행을 태운 당두리선은 연평도로 떠나갔다. 그런데 막상 섬에 오르고보니 동쪽하늘엔 구름이 끼고 안개까지 자욱했다. 일행은 구름과 안개가 가셔지기를 기다리며 잠시 휴식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 안개가 가셔졌다. 이윽고 구름마저 갈가리 흩어지며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더니 미구에 아침해가 빠금히 끝머리를
드러냈다. 모두가 환성을 올리며 솟는 해를 바라볼 때 금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공주가 보이지 않았다. 금필은 급히 배에 올라 공주를 찾았다. 어느새 다시 들어가 누운 공주는 세상모르고 자고있었다. 금필은 앞뒤 가릴새없이 침상에 누워있는 공주를 흔들어깨웠다. 그런데도 공주는 잠에 취해 눈도 뜨려 하지 않았다. 다급해난 금필은 공주의 코를 꼭 쥐였다 놓았다. 그제야 공주는 눈을 떴다. 《공주아씨! 해가 솟고있소이다. 어서 일어나시오이다.》 《해가 솟는다구?! 으응… 나 좀…》 공주는 두손만 내민채 일어날념을 안했다. 잠이 덜 깬것이였다. 급해난 금필은 공주를 버쩍 안아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자, 어서 보시오이다. 아침해가 솟고있소이다.》 금필은 공주를 안은채 해솟는쪽으로 몸을 돌려주었다. 《야! 아침해!…》 그제야 공주는 두눈을 반짝 뜨고 환성을 올렸다. 금필이 내려놓으려 하자 공주는 도리머리를 저으며 더 바싹 금필의 품에 안겨들었다. 공주는 금필의 목을 꼭 그러안은채 떠오르는 해를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금필은 공주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니 기분이 둥 떠서 연방 공주를 춰올리며 한바퀴 빙그르르 돌기까지 하였다. 왕건도 공주가 기뻐하는 모양을 보며 흐뭇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었다. 일은 그렇게 된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공주를 희롱한것으로 뒤번져지고있었다. 왕건도 그때 일을 목격한지라 별일 아닌것으로 잘라버렸다. 그러나 참소자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떻게 신하가 감히 공주를 안아들고 휘두를수 있는가 하는것이였다. 무엄해도 분수가 있지 이건 도저히 그대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것이였다.
임금의 권위를 무시한 이 행동은 군신간의 례의를 어긴것으로서 절대로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우기였다. 왕건은 그만 얼굴을 찌프리고말았다. 왕족의 위엄을 손상시켰다는 주장에 손을 들고만것이였다. 일단 왕건이 주춤하자 죄목은 한계가 없이 부풀어 견책으로 굼땔 일이 아닌것으로 결론이 났다. 왕의 권위를 손상시킨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는데로 의견이 모아지였다. 최응과 최지몽이 금필을 만나 사연을 알아본 후에 왕건에게 상주했다. 최소한 귀양살이는 시켜야 할것이라는것이였다. 금필을 일시 궁성밖으로
내치여 여론을 눅잦히자는 뜻이였다. 왕건은 금필을 침전으로 불러들였다. 금필은 지몽이 주는 조언을 미리 받은터라 흔연히 받아들였다. 《페하, 페하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참아낼수 있나이다. 너무 상심마옵소서.》 《조정의 분위기가 하나같으니 어찌겠나. 그간 아우를 부리기만 한것이 죄스럽던터이니 잠시 쉬도록 하세.》 《알아들었사오이다. 신은 그저 민망스럽고 송구한 마음뿐이오이다. 나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마옵소서.》 《고맙네.》 왕건은 금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술이나 실컷 마셔보세.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며칠 지나 떠나도록 하게.》 《신은 래일 아침 떠나겠나이다. 페하 신상에 다시는 그늘이 지지않게 하겠나이다.》 금필은 이날 밤을 왕건과 같이 쉬였다. 다음날 아침, 그는 집에도 들리지 않고 귀양길에 올랐다. 금필은 왕명을 받으면 그 즉시로 떠나군 하였었다. 집에 들려본적이 단 한번도 없는 사람이였다. 이번 귀양길도 같았다. 그는 궁성을 나서는길로 관복을 벗어 내봉성에 맡기고 하인의 허름한 옷을 빼앗다싶이 한벌 달래입고 흔연히 대궐을 나섰다. 부인 림씨도 자식들도 구태여 바래주러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금필이 궁한 모습을 보이는것을 제일 싫어한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뭍에서 어지간히 떨어져있는 곡도는 외롭고도 한적했다. 바다구경도 하루이틀이였다. 금필은 울적한 마음을 달랠길 없어 섬기슭의 높다란 바위우로 올라갔다. 파도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올뿐 사위는 고요했다. 금필은 눈을 들어 멀리 남쪽 한끝을 응시했다. 왕건과 더불어 라주를 타고앉던 싸움의 나날들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금필의 마음 한구석이 아프게 찔려왔다. 라주를 빼앗긴 사실이 생각키웠던것이다. 어떻게 차지한 땅이였는데 그걸 빼앗기다니… 한시바삐 되찾아야 할 땅이였다. 라주는 물론 후백제전체를 하루빨리 정복해야 하였다. 지금쯤 땅으로, 바다로 한창 전장을 누벼야 할 몸이
외지에 갇힌 몸이 되였으니 금필은 자기 신세가 비통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권력에 환장을 했다구?… 임금과 나란히 권세를 누리려 했다구?…) 조정의 각료대신 모두가 금필을 그렇게 보고있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험담이였다. 금필은 가슴이 답답해났다. 조정의 각료대신 모두가 그렇게 본다는것은 보탠것이라 하더라도 열명중에 단 한명이라도 그것이 모함이라고 페하께 말해주는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조정이 지금처럼 허위와 기만이 묵과되고 조장된다면 나라정사가 장차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질런지 모를 일이였다. 금필은 술희마저 괘씸하게 생각되였다. 서경의 왕식렴이 금필형님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귀띔한것이 술희였다. 식렴이 나를 편협하게 생각하는것을 알았으면 페하께
진언을 해줘야 할게 아닌가?! 금필은 애꿎은 술희에게 눈먼 욕을 하였다. 금필은 갑자기 숭겸이 그리워졌다.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결코 가만있지 않았을것이였다. 금필은 숭겸과 함께 왕건을 따라 사냥길에 올랐던 이전의 일이 떠올랐다. 서경순찰을 마치고 송악으로 오는 도중에 다지홀벌판에서 잠시 머물러
사냥경기를 하였었다. 메돼지를 몰아잡기내기였는데 네 형제가(왕건을 포함해서) 꼭같이 한마리씩 잡은터라 승부를 가르기가 어렵게 되였다. 그때 머리우로 기러기떼가 날아가는것을 본 왕건이 기러기를 쏘아 떨구자고 제기했다. 왕건은 손수 어느 기러기를 쏘라고 일일이 찍어주었다. 그러면서 몸통을 맞히지 말고 오른쪽날개를 맞히라고 하였다. 차례로 화살을 날렸는데 오른쪽날개를 어김없이 맞힌것은 숭겸뿐이였다. 왕건이 이를 치하하여 숭겸에게 활을 쏜 그곳 땅을 상으로 하사했다. 300결(1결은 알곡으로 100짐정도)되는 땅이였다. 그날 술희가 희떠운 롱담을 한마디 하였었다. 《능산형님, 혼자서 상탔다고 으시대지 마소. 내 이후에 형님보다 더 많은 땅을 타는것을 보소. 거기에다 이 박술희가 소왕국을 세우고 형님을
호령할테요.》 그러자 숭겸이 정색해서 그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막내야, 나보다 더 많은 땅을 타겠다는것은 반대없다마는 소왕국을 세우겠다는건 웬 흰소리냐?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원 형님도… 그 말을 그대로 들으시우?》 《롱담이라도 그렇지, 남이 들었다간 당장에 역모죄를 씌우자고 할 소리가 아니냐?》 《딴은 그렇군요. 이 더퍼리가 생각없이 그만…》 술희는 목밑까지 붉어지며 얼핏 왕건을 스쳐보았다. 그 모양이 무안한지라 금필이 한마디 하였다. 《술희가 생각없이 말한것일테니 그쯤해둡시다. 하지만 술희야, 명심해라. 우리 형제는 권력 같은건 티끌만큼도 탐내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
페하를 모시다 죽는것이다.》 《더 이를데 없는 말씀이오이다.》 모두가 수긍했다. 왕건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척 그냥 웃어넘기였다. 그날 말한바그대로 금필에겐 정말로 권력욕이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화를 입는 단서로 되고있는줄을 금필은 모르고있었다. 권력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권모술수에 능하여 자기를 잘 감추는 법이다. 그들은 늘쌍 상전에게 곱게 보이기 위해 재간껏 술수를 꾸며댄다. 대체로 상전은 이에 넘어가기마련인데 사람의 마음이라는것이 곱게 노는자에게 쏠리는것이 상례이기때문이다. 사심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숨길줄 모르고 처세술이 약한것으로 하여 흔히 상전의 노여움을 사기가 일쑤이다. 군자는 이를 옳게 가려야 하나 빗나갈 때가 많은것이니 금필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충신이 모함을 당하는 일은 고금에 있는 례상사이다. 충신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도 권력에 얼마간은 눈을 돌려야 한다는것을 아는데는 시간이
요구된다. 금필은 이 리치를 귀양이 끝나고서야 깨닫게 되였다. 그것도 남의 귀띔을 받고서야… 어기영 치기영… 어그자 지그자… 먼 바루에서 목도군들의 먹임소리가 들려왔다. 바다가 모래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몽금의 포구에 금모래 노을고 구미의 물녘에 고기떼 놀은다 에루화 데루화 춤추며 놀은다 누군가가 구성지게 한소리 뽑았다. 금필은 느긋한 미소를 띠운채 노래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서는 지금 배무이가 한창이였다. 물녘에선 방금 배로 날라온 통나무들이 목도군들에 의해 부려지고있었다. 그옆 모래불에서는 각목을 다듬느라 목수들이 열심이였다. 도끼질하는 사람, 자귀질을 하는 사람, 톱질을 하는 사람, 먹줄을 치는 사람, 송진을 끓이는 사람 제각기 흥이 나서 제 일에
몰두하고있었다. 일판은 금필에 의해서 벌려진것이였다. 봄기운이 들기 시작하자 금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간 쌓이고 겹치였던 잡념도 동시에 털어버렸다. 이러고있을 때가 아니다, 무엇이든 일을 하자, 나라에 보탬이 되는 일을… 이렇게 생각한 금필이였다. 달리는 될수 없는 금필이였던것이다. 곡도에서 북으로 곧추 배길을 잡으면 백리가 채 되지 않아서 뭍이 나진다. 몽금포였다. 날이 맑을 때면 수평선너머로 가물가물 보이는 땅이였다. 그곳에서 필요한것들을 날라들이였다. 금필은 곡도에 사는 섬사람들과 쉬이 마음을 맞출수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고려의 대장수가 저들이 사는 섬에 와있다는 사실에 이들은
놀랐었다. 이들이 금필을 알게 된것은 술희가 섬에 보낸 총각애를 통해서였다. 금필이 떠나간지 얼마 안되여 술희가 보낸 총각아이가 섬에 나타났다. 군사로 써달라고 송악도성에 찾아와 졸라대기에 나이가 어리다며 돌려보냈더니 이번에는 술희네 집 담을 넘어들어와서까지 졸라댔다. 부모를 여의고 떠돌이를 하다 예까지 왔다는것이였다. 술희는 소시적 자기 처지와 비슷한데 인정이 통해 그를 집에 거두었다. 달무는 무척 똑똑하였다. 실은 금필장수를 찾아가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받고 왔다면서 자기 아버지가 젊었을 때 룡악산 절터에서 금필과 보름나마
무예를 닦은 일이 있다고 하였다. 이후로 아버지는 경당에 눌러앉아 제자들을 키우면서 금필의 성장을 제일처럼 자랑해왔다는것이였다. 병석에서
금필의 귀양소식을 듣고 송악에 가서 행처를 알아서 찾아가 그의 시중을 들면서 잘 지켜주라고 부탁했다는것이다. 이 나라의 대들보를 지키는 일이라고
하면서. 술희는 크게 자책하고 총각애 아버지의 부탁대로 하였다. 며칠후 달무는 술희가 가르쳐준대로 은밀히 금필을 찾아왔다. 호위병의 임무를 맡은것이였다. 달무는 우선 섬의 좌상로인을 금필에게 안내했다. 로인의 주선으로 금필은 섬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겨울을 무사히 났다. 인가가 쉰이 넘는 섬마을사람들은 집집마다 금필에게 정성을 다하면서 콩이나 보리 같은 자작 심은 낟알들을 아낌없이 날라왔다. 섬사람들은 농사절반, 고기잡이절반으로 생계를 잇고있었다. 농사가 잘 되지 않아도 걱정은 없었다. 바다를 뜯어먹으면 되는것이였다. 섬주변 바다에는 어류가 다양했다. 조기, 칼치, 오징어, 가오리따위들은 때만 맞으면 눈을 감고서도 퍼담아낼 정도인데다 갈게, 참게, 털게, 꽃게, 대게, 농게, 돌게 등
게만 해도 수십종이 넘었다. 달밤에는 온갖 게들이 집토방을 넘어들어와 방바닥을 기여다니는 정도였다. 섬에서는 제 손을 놀려 거둔것은 고스란히 제것이 되는터라 인심도 과히 박하지 않았다. 금필은 섬사람들과 어울리면서부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으며 이들과 더불어 집집의 대소사도
참녜하고 나라일도 걱정하였다. 날이 풀리자 이들과 함께 병선을 뭇기 시작하였으며 마을의 장정들에게 조련도 줄 계획이였다. 며칠전에는 몽금포에서 백여리 더 올라가있는 문화현에 사람을 파하였다. 병선건조에 필요한것들가운데 제일 요긴한것이 쇠붙이인데 가까운 뭍에서
구해들이는것만으로는 충당이 되지 않은때문이였다. 겸해서 류달의 안부도 궁금했던것이다. 그가 금필이 자기의 부탁대로 식렴과 손발을 맞춰 서북방방비에 필요한 지원을 잘 감당해주는지
알고싶었다. 금필은 식렴이 자기를 밀어내치는데 적지 않게 뒤조종을 했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큰 노여움없이 삭이고말았다. 이랬든저랬든 식렴은 일군이고
왕건의 믿음직한 보호자였던것이다. 임금의 4촌동생이라서 이렇다할 공직도 차례지지 않았지만 그는 왕건을 진심으로 힘자라는껏 받들고있었다. 그의
완력이 가끔 가다 도를 넘어 지방호족들의 의견을 야기시키는 때가 있군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일을 하자는 사람이였다. 자나깨나 고구려를 뒤이은
고려의 부흥만을 바라는 사람이였다. 이런 식렴이므로 금필은 정말이지 그가 밉지 않았으며 이런 식렴이를 류달이 잘 맞추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것이였다. 금필은 자기의 귀양살이소문이 류달의 귀에도 들어갔으리라 짐작했다. 귀양지가 이곳 곡도라는것을 알고 언제든 달려올것으로 믿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그가 매사에 조심하는 편인지라 귀양살이하는 죄인과는 접촉을 말아야 한다는 나라의 법도쯤은 모르지 않을것이므로 감히 찾아올 용단까지는
내리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금필은 류달에게 쇠붙이만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배무이에 쓸 고정쇠못들과 병쟁기를 만들 벼리쇠를
보내달라고 했었다. 미구에 곡도와 이 주변 해안지대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동원할수 있게 준비해두려는것이였다. 《나으리 나오셨소이까.》 금필은 대목으로 추천된 중늙은이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여났다. 《일을 많이도 축냈소이다. 좀 쉬고들 하시지요.》 《그렇잖아도 쉬려고 했소이다, 나으리.》 대목은 흥겹게 응수하더니 손을 털며 소리쳤다. 《좀 쉬고들 하세. 다들 여기 와서 목이나 추기세나.》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술동이며 목함지들이 들려나왔다. 술바리가 오가고 오징어안주가 잇달았다. 누르끼레한 빛이 도는 걸쭉한 탁배기였고 검붉은 빛갈이 도는 오징어통찜이였다. 찐오징어보다 생오징어를 담은 함지들이 먼저 바닥났다. 바다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곳 사람들도 생것을 더 잘하였다. (술희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한함지 잘 축냈을텐데…) 금필은 생오징어를 보자 술희를 생각했다. 《나으리도 어서 들어보소이다. 어제 밤참에 건진것이여서 물이 좋소이다.》 금필이 생오징어를 들여다보고만 있는것을 띠여본 대목늙은이가 거듭 권해왔다. 《고맙소이다.》 금필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오징어를 들고 한입 베여물었다. 달작지근하면서도 비릿한 오징어맛이 혀끝에 닿았다. (술희 이녀석이 페하를 모시는 일에 별다른 일은 없는지 모르겠다.) 금필은 왕건을 호위하는 술희의 중임이 제대로 되고있는지 걱정되였다. 왕건을 노리는 백제의 자객들이 잠을 잘리 만무였기때문이였다. 술희는 술을 많이 하는것이 흠이였다. 단숨에 한동이를 비우고 제꺽 코를 고는것까지는 좋은데 늦잠을 자는것이 문제였다. 술희는 조중석으로 술사발을 드는것은 내놓고도 자기 전엔 술 한동이를 꼭 비우고서야 눈을 붙이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한사발이 아니라
한동이였다. 새벽에 일어나기는 코집이 틀린 버릇이였다. 하기에 내전의 새벽순찰은 언제나 복지겸의 몫이였다. 금필은 이것이 늘 불만이여서 술희에게 쩍하면 지청구를 하였었다. 하지만 왕건은 언제 보나 술희편이였다. 왕건이 이런 술희를 노여워하지 않으니 누가 말해도 귀등으로 흘렸다. 남을
헐뜯는데 이골이 난
간신들이 이것은 왜 거들지 않는지 이상한 일이였다. 《사람이란 얼마만큼은 흠이 있어야 편안하게 보이는 법이오이다.》 언젠가 최지몽이 한 말이였다. 그때 지몽은 술희의 녀자건을 상기시키면서 그런 말을 하였었다. 쩍하면 사람 웃기는짓을 잘하는 술희는 내인을
취하는데서도 앙천대소할 일화를 남기였었다. 흠투성이 술희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