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8 회)
11. 금필이 귀양을 가다 931년 겨울, 송악도성 남대문을 나와 서해 조강나루로 가는 길우로 세명의 일행이 걷고있었다. 앞에서 걷는이는 기골이 장대했다. 그는 머리를 곧추 든채 찬바람을 맞받아 씨엉씨엉 걸었다. 뒤를 따르는 두명의 군사들은 웬일인지 온몸을
옹송그린채 맥이 빠진 걸음이였다. 앞선이의 옷주제가 람루하지만 않았다면 뒤따르는 두 군사가 앞선이를 호송해가는줄을 가려보기 어려울것이였다. 《나으리! 추우실텐데 이 덧저고리를 걸치시오이다.》 뒤의 군사 하나가 보짐을 헐어 옷가지 하나를 덧씌워주려고 하였다. 《그만둬라. 나는 귀양을 가는 죄인이다. 죄인에게 무슨 인정이란말이냐?》 앞선이가 거절하였다. 《인정이 아니오라… 들고가느니 입고가시는편이…》 《그만두라고 하지 않느냐. 죄인은 죄인으로 대하는것이 법을 받드는 자세이니라.》 앞선이는 한사코 거절하며 그저 묵묵히 걸어갈뿐이였다. 자기를 죄인이라 칭하는 사람은 바로 대광 유금필이였다. 그는 지금 곡도(백령도)로 귀양을 가는 길이였다. 귀양길에 나선 금필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예로부터 충신이 있는 곳엔 간신도 있는 법이라지만 정작 제가 당하고보니 그 심정이 이루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한달전의 일이였다. 어느날 저녁 금필은 갑자기 어전으로 왕건의 부름을 받게 되였다. 《그대가 신라왕과 더불어 나를 모함하자 한것이 사실이뇨?》 느닷없이 들이대는 왕건의 물음에 금필은 와뜰 놀랐다. 《제가 페하를 모함하려 하다니요? 신라왕과 함께 모함하려 하였다는건 또 무슨 말씀이오이까?》 금필은 머리가 핑 돌 지경이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런 변을 보았나?) 금필이 미처 정신차릴 사이도 없이 왕건은 다시금 내쏘았다. 《여기 문서장이 있는데도 모르쇤가?》 두툼한 봉서 하나가 금필의 발치에 떨어졌다. 《다궂지만 마시고 자초지종 말씀해주시오이다, 페하! 도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것이옵니까?》 《그 문서장을 읽어보면 알것 아닌가?》 왕건이 차겁게 내뱉았다. 《나는 이런건 보지를 않겠소이다. 지금 날더러 모반이라 하지 않으셨소이까?》 《그대가 전해에 서라벌에 들어갔을 때 신라왕과 더불어 천하를 도모하자고 언약하였다며?》 《그러하오이다.》 금필은 지난해 경순왕을 만나 주고받은 말을 인차 상기하였다. 《그것이 잘한것이란 말이뇨?》 《신라는 조만간 고려에 들어올것이로되 고려와 신라가 합쳐질것이라 말한것이 잘못이란것이오이까?》 《그대가 천하를 도모하련다 한게 잘한것인가?》 《네에?…》 금필은 말문이 막혔다. 눈앞이 아찔했다. 누군가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진것이였다. 생트집이 분명하였지만 말뜻을 따지고보면 해석하는대로 번져지기 쉽상이였다. 변명할 여지가 없었던것이다. 금필은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페하, 나는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람이오이다. 그 천하는 내것이 아니오라 페하의것이로소이다. 그 말뜻을 그래 페하가 모르신단 말이오이까?》 금필은 부르짖었다. 《대답을 주시오이다. 정녕 모르시오이까?》 이번엔 왕건의 말문이 막혔다. 《하오면 신라조정에서 짜놓은 이 각료분배안은 무엇이뇨?》 왕건이 손가락으로 봉서를 가리켰다. 《신라가 각료직을 짜고있는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오이까? 그거야 그네들이 제 할일을 하는것이 아니오이까?》 이번에도 왕건은 말을 못했다. 한참만에야 왕건이 변명조로 나왔다. 《간자들의 보고가 그렇게 되여있다. 그들의 진의는 다시 따져볼테지만 여하튼 그대는 큰 실수를 하였다.》 《명심해서 처신하겠소이다.》 《됐다. 돌아가보라.》 왕건은 차겁게 내뱉고 일어섰다. 《아니, 가지 못하겠소이다.》 금필은 엎드린채 부르짖었다. 억울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형님을 만나 이날 이때까지 이렇듯 차겁게 나를 대한적이 언제 있었던가. 형님이 어찌하여 저렇게 되셨는가?!… 금필은 금시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돌아가라고 하지 않느냐!》 《아니가겠소이다. 나한테 술 한방구리 내려주사이다. 그냥은 돌아가지 못하겠소이다!》 《이 사람이?!…》 왕건이 주춤거렸다. 《왕후마마! 어디 계시오이까! 소인에게 술을 내려주소서, 왕후마마!》 격해진 금필은 자리에 없는 왕후를 찾아 불렀다. 지금의 억울한 이 심정을 신혜왕후만은 알아주리라싶어서였다. 《안전에 든 왕후를 여기서 찾으면 어쩐다는거냐? 그만 진정하라. 내가 잘못하였다.》 왕건은 그만에야 금필에게 사죄를 하고 나섰다. 그제야 자기가 지나쳤다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이날 금필은 대성통곡하였다. 왕건은 정말로 신혜왕후를 찾아 침전에로 금필을 데리고 들어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그 시각 신혜왕후는 장화왕후에게 가있었던것이다. 금필은 불려온 궁녀를 돌려보내고 제손으로 술을 부어 마시고 크게 취하여 왕건의 침전에서 곯아떨어지고말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금필의 얼굴엔 웃음기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는 전후사연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틀림없이 후백제의 리간계일것이였다. 어느 간신의 작간인지도 몰랐다. 그로부터 며칠후에 금필은 또 한번 봉변을 당하였다. 누군가가 금필이 후백제의 첩자를 끼고 산다고 상주한때문이였다. 금필의 부인 림씨가
후백제의 첩자라는것이였다. 금필은 다시금 분노를 터뜨렸다. 림씨가 부여사람인것은 사실이나 후백제의 관할하에서 살았다고 다 후백제첩자인가? 그것도 후백제의 첩자들이 꾸민 모략이였다는것이 인차 드러나기는 하였지만 금필에게는 여간 타격이 아니였다. 다른 일에서라면 몰라도 금필은 자기를 지키는데는 약하였다. 천성이 고지식한 그는 자기를 다잡는데 많은 시일이 걸렸다. 남을 모함해본적이
없는 그는 정작 제가 모함을 당하자 평소의 여유를 잃고 절절 맸다. 금필은 이 점에서 누구보다 약했던것이다. 금필은 오랜만에 지나온 나날을 떠올려보았다. 세월의 갈피를 슬쩍슬쩍 뒤져보느라니 자기도 적지 않게 남을 골려주었다는데 생각이 미치였다. 물론 그것은 적측에 대해서뿐이였다. 그제야 금필은 머리를
끄덕였다. 골탕을 먹은 적측에서 언제든 보복을 해오리란걸 알아차렸던것이다. 금필은 비로소 안정을 되찾았다. 적을 골리는것은 모함이 아닌것이다. 모함이란 죄없는 자기편사람을 골탕먹이는것을 말하는것이다. 금필은 자기편사람들이 자기를 모함하지는 않을것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그것이 금필의 잘못이였다. 이번에 금필은 자기편사람들로부터 진짜 모함을
당한것이였다. 바람한점 없는 날씨였다. 송악도성을 떠나올 때와는 달리 바다는 잔잔했다. 물때를 맞춰 떠난 배는 조용히 수면을 가르며 떠가고있었다. 한마리의 갈매기가 배전을 외롭게 감돌았다. 금필은 아득히 멀어져가는 륙지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다. 배를 타본지도 오래되였다. 금필은 자기가 라주로 나들던 때로부터 10년이 지났다는것을 상기했다. 그간에만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던가. 고려를 일떠세우고 북방을 넓혔다. 남쪽도 초기보다 많이 넓혔으며 신라를 끌어당기는데도 거의 성공했다. 후백제와의 마지막 한판승부를 가르면
그다음엔 통일인것이다. 많은 일을 하였고나! 참으로 멀리도 달려왔도다! 가슴이 쩌릿해왔다. 그만하면 괜찮은 인생행로였다. 사나이로 세상에 나서 그만한 일을 하였다는것은…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금필은
분발하고있었다. 그런데 이 지경이 되다니… 금필은 다시금 한숨을 내쉬였다. 자기가 당한 모함이 통분하기 그지없었던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금필은 식렴이 자기를 시기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잡쳐지는 그 일은 금필이 왕건을 따라 평양성을 순행했던 지난해 봄에 벌어졌었다. 발해유민들을 안착시키는 일은 예상외로 잘되여갔다. 그간 해서일대의 많은 주민들을 이주시켜 평양성의 인구는 대폭 늘어났으며 도성도 옛모습을 드러내면서 고구려도읍의 위세를 되살리였다. 왕건의 말대로
고려의 제2의 수도로서 나무랄데가 없었다. 왕건은 만족을 금치못해 식렴을 치하했다. 그런데 식렴이 생각밖에 고려국의 평양천도를 독촉해나섰다. 그간 10년을 틀고앉아 해놓을것은 다해놓았으니 수도를 즉시 옮기자는것이였다. 왕건은 이를 만류하며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했다. 삼국을 통일한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자칫하다간 불필요한 소모로 국력이 기울수
있다는것이였다. 이것은 더없이 나무랄데 없는 옳바른 리치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식렴은 여전히 고집했다.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인것만큼 응당히 수도도 고구려의 수도를 택해야 한다고 하면서 먼저 수도를 평양으로 정하고 통일된 이후에 곧바로
이곳에서 통일국의 정사를 펴나가는것이 순서라는것이였다. 그것도 일리는 있는 소리였다. 어쨌거나 고려가 앞으로 수도를 평양으로 하자는것은 왕건의 결심이자 금필과 그 형제들 그리고 고려조정의
대다수 고구려출신관료들의 견해였다. 삼국통일이후에 수도를 옮기자는데 차이가 있을뿐이였다. 당장은 통일을 우선시해야 하였다. 국력을 깡그리 모아서 후백제를 타승하는데로 집중해야 하였다. 평양천도에 마음쓰면서 국력을 분산시키다가는
아차하면 돌이킬수 없는 화를 입을수도 있었다. 금필은 왕건의 이러한 뜻을 알기에 왕건의 편을 들었었다. 이것이 식렴의 노여움을 살줄이야… 페하의 총애를 혼자서 독차지하더니 나를 내려다보는구나. 듣던바 그대로 금필은 교만해지였구나. 식렴은 금필을 한번 눌러놔야겠다고 생각을 굳히게 되였다. 아닌게아니라 이때에 이르러 조정의 일은 금필의 입놀림에 적지 않게 좌우되고있었다. 왕건은 나라의 대소사를 금필과 즐겨 론의했다. 관료등용에 한해서만은 최응과 최지몽이 주로 다루었는데 때없이 왕건과 자리를 같이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금필도 그 일에 적잖게 관여하게
되였다. 물론 금필자신이 주도적으로 참녜한것은 아니였다. 왕건이 이들과 함께 있을 때 금필의 의향을 스스럼없이 묻군 하여 소견을 아뢴것이 그대로 결정이 되는 례가 많아진것이였다. 조정의 관료대신들, 지방의 호족들이 금필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금필이 고정하고 사리사욕을 모르므로 아첨군들은 뒤에서
비평을 많이 했다. 목적한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체로 금필을 욕하였다. 평양성에 앉아있는 식렴의 귀에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것을 곧이곧대로 들은바는 아니였으나 금필의 세줄이 너무 불리여졌다고까지는 생각하고있은 식렴이였다. 아닐세라 오늘 보니 그것이 빈말은 아니였구나. 나같은건 조금도 어려워하지 않는구나. 되지 않겠는걸! 고려조정에 나를 몰라보는 사람이
있다니.… 식렴은 금필을 가로보기 시작했다. 식렴의 이런 마음속 변화를 잽싸게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왕건의 장인이 되는 충주호족 우두머리 류긍달이였다. 류긍달은 일찌기 자기의 딸을 왕건에게 섬기여 셋째부인(신명왕후)으로 삼게 하였었다. 그즈음에 왕건은 주로 신명왕후를 가까이 하고있었다. 그에게서 아들을 넷이나 보았던것이다. 왕자를 넷씩이나 낳은 신명왕후의 코대는 여간 높지
않았다. 그는 장화왕후를 뛰여넘어 제가 낳은 왕자중의 맏이를 태자로 삼게 하려고 무진애를 쓰고있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충주세력이 있었다. 꼭
찍어말하면 신명왕후의 아버지 류긍달이였다. 술희는 물론 금필도 이를 결사반대했다. 맏이를 넘어서서 둘째가 태자로 된다는것은 상례를 깨는 일로서 특별한 리유도 없이 뛰여넘는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기때문이였다. 모사들인 최응과 최지몽도, 궁성호위장인 복지겸도 금필과 견해가 일치했다. 홍유와 배현경은 금필의 세불림에 은근히 심사가 뒤틀려있던지라
리치는 어찌되였든 금필의 견해를 비틀고 나앉아 침묵하고있었다. 신명왕후가 무진애를 썼지만 태자책봉은 장화왕후의 소생인 맏이 무에게로 정해졌다. 충주세력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모든 일이 금필이의 작간이라고 단정하고 유금필을 제거하자는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충주세력과 인연이 깊은 식렴이(식렴은 소시적에 왕건의 부친 룡건이 장사거래를 할 때마다 즐겨 데리고다니였는데 그때 룡건과 가까왔던
충주호족들과 일찍부터 인맥을 맺고있었다.) 이를 암암리에 밀어주었다. 충주세력은 달라붙어 금필의 흠을 캐기 시작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드디여 금필에게 험테기가 씌워지기 시작했다. 임금의 총애를 악용하여 제왕행세를 하고있다는 참소도 들어왔다. 건국초기 동북방개척때 임금의 허가없이 말갈족의 귀화를 받아들였다는것이 첫 죄목이였다. 그것은 왕건이 전권을 주었으므로 문제삼을것이
아니라고 이미 선을 그어준것인데도 시일이 지나니 또다시 문제거리로 되고있었다. 왕건은 그따위 입씨름은 걷어치우라고 잘라버렸지만 참소군들은 검질기게 달라붙었다. 이번엔 왕명을 흥정한 죄목을 들고나왔다. 어느핸가 금필이
왕건과 함께 평양성에 가서 식렴을 도와 서북방안정에 전력을 기울이던 그때 문화현의 류달을 엄하게 다스리라 하였는데 류달의 형벌을 제지시킴으로써
왕명을 심히 거역하였다는것이였다. 왕의 어명을 흥정하고 거역한 신하는 절대로 용서해서는 안된다고 목에 피대를 돋구었다. 금필이 왕명을 거역하였다고 들고나온 또 한가지 죄목이 있는데 그것도 듣고보면 어처구니없는것이였다. 어느핸가 왕건과 함께 평양성을 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서였다. 다지홀(평산)을 지나 우봉(금천)웃쪽 토산지경에 들어선 일행이 길가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있는데 길옆 골안에서 범이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느라니 분명 범들이 맞붙어돌아가며 싸우는 소리였다. 쌍붙는 철도 아닌데 웬 다툼질들일가?… 금필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왕건이 불쑥 일어섰다. 그리고는 《범이로구나!… 한번 몸을 놀려볼가.》하며 호위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활을 달라는것이였다. 금필은 얼핏 범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골안을 살펴보았다. 잡관목이 우거진 골안은 오리는 실히 되여보였는데 골안이 끝나는데서부터는 벼랑이
들쑹날쑹한 산자락으로 둘러막혀있었다. 골안에서 살질로 범을 맞히면 그만이지만 빗맞히는 경우 범이 달아나면 그땐 난사였다. 범이란 놈은 나무숲에서보다 바위벼랑우에서 몸놀림이 더 날래다. 사람은 바위벼랑우에선 일단 말에서 내려야 하므로 범과 일 대 일로 맡붙어
접전을 해야 하는데 자칫하면 역습을 당하기 쉽다. 그런대로 살질이나 칼질을 할수는 있으나 거기서도 놓치면 산발을 타고 뛰는 범을 잡기가
힘들것이다. 차라리 범이 마주 덤벼들면 좋겠지만 이쪽의 사람수가 많은것을 알면 범은 뛰는쪽을 택할것이 뻔하다. 내뛰는 범을 잡겠다고 세월없이
따라갈수도 없는 일이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잡기가 힘든때문이다. 범은 낮보다 밤에 더 먹이사냥을 즐기는 짐승이다. 고양이보다 더 밤눈이 밝은것이
범인것이다. 하루밤에 이백리까지는 멈추지 않고 달아빼는 범을 무슨 수로 따라잡는단 말인가. 지형도 잘 모르는 깊은 산중에서 자칫하단 무슨 화를
당할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범을 잡기는 고사하고 되려 먹히울수 있었다. 제지시켜야 했다. 《페하! 로독이 쌓여있는 몸인데… 그만두시는게 좋겠소이다.》 금필이 만류했으나 왕건은 막무가내였다. 《아우는 별걱정을 다 하오. 로독을 푸는셈치고 얼핏 달려보세나.》하며 번개같이 말우에 오르더니 고삐를 채며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급해난 금필은 허둥지둥 왕건을 뒤따랐다. 얼마쯤 달리던 금필은 서로 엉켜붙어 돌아가는 두마리의 수범을 발견하게 되였다. 범들은 보통 오륙십리안팎을 지경으로 해서 자기들의 령지를
차지하고 살았다. 자기 령지안에 다른 놈이 들어오면 죽기로 싸워 쫓아버리거나 아니면 쫓겨나야 하였다. 그래서 수범들은 자기 령지를 지키기 위해
또 빼앗기 위해 죽기로 싸우는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싸움이 붙은 범을 잡기가 쉬울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독이 오른 범들의 싸움에 훼방을
노는 자가 있으면 그가 사람이든 짐승이든 가리지 않고 족쳐대기가 일쑤였던것이다. 저들의 싸움은 일단 접어두고 힘을 모아
훼방군부터
치고보는것이였다. 그걸 당해내기가 쉽지 않은것이다. 금필은 범잡는데는 귀신이란 소리를 듣는 경험자이며 이런 경우도 적잖게 맞다들려보았는데 결코 좋은 결실을 바라기 힘든 정황이였다. 《페하! 위험하오이다.》 금필은 소리쳤다. 그러나 왕건은 코웃음을 쳤다. 《아우는 왼쪽놈을 맡으라! 난 오른쪽놈을 맡을테니…》하고는 무서운 속력으로 말을 몰아나가며 활질을 단념하고 칼을 뽑아들었다. 이걸 어쩌면 좋단 말인가, 전장도 아닌 곳에서 맹랑하게 페하를 상하게 해서는 면목이 서지 않는다. 다급해난 금필은 왕건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옴해 무작정 왕건을 앞질러 싸우는 범들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범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헤집어놓고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 사람아! 왜 내앞을 막는거냐? 아우는 왼쪽놈만 잡으라 하지 않았는가!》 왕건은 금필이 제나름으로 노는데 화가 나서 고함쳤다. 그러거나말거나 금필은 두놈의 가운데를 꿰지르며 내닫는 속에 번개같이 두팔을 휘둘러 량쪽의 범들을 내리찍었다. 왼쪽놈은 대가리는 뒤로 젖혔으나 코수염이 뭉텅 잘리워나갔다. 잘리운 코수염가시들이 솔잎처럼 흩날렸다. 오른쪽놈은 휘두르던 왼쪽 앞발통이
칼날에 떨어져나갔다. 놈은 따웅 소리와 함께 공중걸이로 뛰여오르더니 뒤로 획 돌아섰다. 금필이 얼마나 급속도로 공격을 들이대였는지 범들은 대번에 기가 꺾여 줄행랑을 놓았다. 코수염을 잘린 놈은 산마루를 바라고 정신없이
치달아올랐다. 반대로 앞발통을 잘리운 놈은 천방지축 골안밖으로 내뛰였다. 이웃에서 침입해왔던 놈 같았다. 금필은 혼잡속에서도 왕건이 범을 잡지 못하면 그냥 돌아서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앞섰다. 누구보다 승벽이 강한 왕건이였다. 그가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빈손으로 돌아서는것을 보여줄수는 없는것이다. 하다면… 금필은 골안밖으로 내빼는 범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왕건이 제
손으로 잡도록 해야 했다. 금필은 번개같이 말을 달려 범을 옆으로 우회하여 몰아갔다. 앞발 하나를 상한 범은 속도가 떴다. 금필이 앞을
막아나서자 놈은 방향을 옆으로 꺾었다. 금필은 혼신의 힘을 다해 범을 왕건이 있는쪽으로 몰아갔다. 《저놈 잡아라!》 호위군사들이 소리치는 속에 왕건은 마주달려오는 범을 막아섰다가 한칼에 범의 멱을 올리찔렀다. 따웅 하는 괴성과 함께 범은 목에 칼이 박힌채로 왕건의 머리우를 날아 쿵 하고 풀숲에 처박혀 뒹굴었다. 《잡았다!…》 호위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범을 둘러쌌다. 범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채로 검붉은 피를 분수처럼 내뿜고있었다. 군사 하나가 투구를 벗어 내쏘는 피를 받았다. 《페하! 다친덴 없소이까?》 금필은 황급히 왕건에게로 달려가 그의 온몸을 눈더듬하였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그는 안도의 숨을 후- 내쉬였다. 《십년감수로소이다. 하마트면…》 《아우에겐 이 사람이 코흘리개로 보이는가?》 《예?…》 금필은 꿈쩍 놀라 왕건을 쳐다보았다. 노기가 잔뜩 서린 왕건이 두눈을 부릅뜬채 금필이 자기를 쏘아보고있었다. 《페하!》 금필은 왕건이 선손을 떼운것이 분해서 그러는것을 알아차렸다. 《평지에서 범을 잡는거야 누군들 못하겠는가. 내 오늘 저 벼랑턱쯤에서 범과 한번 붙어보려 했는데… 아우가 훼방놀지 않았는가!》 가쁜숨을 씩씩 내쉬며 왕건은 이렇게 내뱉고는 획 돌아섰다. 《페하! 정말 죄스럽게 되였소이다. 어망결에 그만… 페하가 해를 입을가 보아… 벌을 내려주소이다!》 금필은 왕건이 기분을 잡쳐하자 그만 기가 푹 꺾이고말았다. 엉거주춤 서있던 금필은 군사가 내여미는 투구를 받아들고 황망히 왕건에게 다가가
다시금 사죄하였다. 《페하! 그만 고정하소서… 저… 식기 전에 이 피를…》 금필은 왕건에게 범의 피가 가득 담긴 투구를 정히 들어올렸다. 《아우나 마셔라!… 범이야 아우가 잡은게 아닌가!》 왕건은 성이 풀리지 않는지 손을 획 내저었다. 《그만 돌아가자!》 왕건은 풀대를 지르밟으며 련이 서있는 길쪽으로 말도 타지 않은채 발길을 돌려버렸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왕건은 금필에게 선손을 떼운것이 분해
몇번이고 아쉬움을 곱씹었다. 금필은 그날 온 하루를 속이 한줌만 해있었다. (일도 참… 페하의 안전을 위한다는 노릇이 그만 기분만 잡쳐드렸구나.) 금필은 후회막심했다. 그러나 인차 마음을 다잡았다. 살다보면 열성이 되려 말썽이 되는 때도 있는 법이다. 아무랬거나 페하가 무사하니 되였다. 페하만 안녕하면 그만이다. 나 같은게 미움을 좀 받는거야 뭘하나. 금필은 속으로 이렇게 자기를 위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