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 회)
제 2 장
괴상한 중의 검은 장삼
2
황바위는 억쇠와 벌써 어울려져서 손칼로 나무가지를 가지고 솜씨를 내여 사슴모양의 장난감을 깎아주고있었다. 그옆에는 처녀애가 쪼그리고앉아서 쌍까풀진 두눈에 담뿍 흥미가 쏠린 웃음을 짓고있는데 두볼에는 쌍보조개가 예쁘장스레 패워져있었다.
《네 이름이 뭐냐?》
황바위는 난생처음 처녀애에게 이름을 물어봤다.
그러자 처녀애는 황바위앞에 머리를 숙이더니 제 정수리의 쌍가마를 짚어보이며 《이거야.》하고 해해 웃었다. 황바위가 영문을 몰라하자 처녀애는 《쌍가마란 말야, 그것도 모르나?》하고 다시한번 웃어댔다.
《쌍가마?》
황바위는 그것도 이름이냐는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북대봉산속에서 늘 먹고자란것이였지만 이날저녁 한서방의 안해가 정성들여 무치고 볶고 데쳐서 밥상에 놔준 두릅, 더덕, 고사리, 곰취가 별다른 맛이여서 황바위는 그것들에 더 달라붙었다.
멀건 풀죽이건만 그것도 냠냠해하는 억쇠를 보자 제 죽을 듬뿍 덜어주는데 갑자기 억쇠가 울타리밖의 사스레나무를 가리키며 《데거.》하고 소리를 쳤다. 거기서는 다람쥐 한마리가 높다란 가지우에서 두눈을 대록거리며 이 집 식구들을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아버지, 나 저거 잡아줘!》
억쇠는 아버지에게 그 다람쥐를 잡아달라고 졸랐다.
《이눔아, 저 높은 나무가지에 앉은 다람쥐를 무슨 재간으로 잡아달란 말이냐?》
한서방은 어이없어 허허 웃었다. 그런데 어느새엔가 문밖으로 뛰쳐나간 황바위가 마당가에 있는 긴 장대끝에 제 주머니에서 꺼낸 조그마한 올가미를 매달더니 사스레나무밑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더니 눈깜짝할 사이에 재치있게 다람쥐를 옭아내렸다.
《야!》
억쇠와 쌍가마가 후닥닥 뛰쳐나갔다.
《아니, 어쩌믄…》
쌍가마 어머니랑 억쇠 어머니가 입을 딱 벌리는데 한서방은 놀란 눈길로 황봉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녀석이?…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앞으로 큰일을 할 놈이요.》
그러자 쌍가마의 어머니도 황봉에게 한마디 했다.
《그래서 나도 아까부터 눈여겨보는데 저 아들애가 몇살이유?》
《열세살이외다.》
《아니 누가 저앨 열세살루 보갔소. 우선 숙성도 하지만 인정미랑 날랜 그 솜씨랑 마음쓰는게 꼭 어른같구려.》
녀인은 황바위가 대견해져서 익숙한 솜씨로 다람쥐장을 억쇠에게 만들어주는 그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이때 새삼스러운 눈으로 황바위의 참나무잎새만한 댕기를 바라보던 쌍가마가 《애개개, 댕기가 쬐꼬맣기도 하네.》하고 깔깔거렸다.
인간세상의 정에 굶주린 황바위의 어린 가슴속에 이 집 사람들의 진정이 뜨겁게도 스며들어 놓아기른 망아지같은 성미인 그도 쌍가마가 웃어주는 웃음에 함께 벙글거렸다.
《그래 저애 고향이 어디우?》
《북대봉산속이외다.》
황봉의 대답을 들은 한서방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생각이 깊어진 얼굴로 말했다.
《옳거니, 그래서 저 녀석이 북대봉호랑이기상을 타고났군. 저 이글거리는 눈이랑 두드러진 이마랑 꽉 다물린 큰 입을 좀 보지. 하하하. 내 관상쟁이는 아니지만 저 앤 틀림없는 천하장수감이요. 잘 키워서 대장부구실을 하게 하시우.》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새낀들 무슨 제구실을 하겠소. 천한 상놈의 자식이…》
스스럼없는 이 집 인심에 끌리여 황봉이도 한마디 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요? 동서고금의 영웅호걸과 천하장수들이 거의 다 천한 사람들속에서 나왔답데다.》
결패가 있고 성질이 걸걸한 한서방에게 끌려든 황봉이는 그 말에 문득 생각이 난듯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 비류강반에서 본 선비는 누구요? 도시락을 함께 풀던 량반말이외다. 범상한 인물이 아닌것 같던데… 량반재세를 별로 하지 않는것 같더군.》
《중화고을에 사는 림중량이란 선비이지요. 성품이 무탈해서 여기 성천온탕에 올 때면 농군들과도 늘 스스럼없이 그렇게 군다우. 그의 인품이나 학식으로 보면 재상감이 되고도 남지만 북도사람 천시하는 세상이니 원래 벼슬따위에 뜻을 두지 않고 지내는 한미한 량반이지요. 관가들에도 대바른 말을 해주고 해서 이 근방에서는 원님네들도 그를 홀홀히 대하지 못하지요. 또 그분은 천하 검객(칼 잘 쓰는 사람)이고 명궁(활 잘 쏘는 사람)이랍데다. 그뿐아니라 부모에게 효성이 아주 극진하답데다. 량반치고는 좀 보기 드문분이지요.》
《정말 흔치 않은 량반이군.》
황봉은 크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쌍가마 어머니는 황바위부자의 감발을 재물에 빨아서 숯불다리미로 매끈하게 다려주고나서 남자들의 성근 바느질우에 올올이 가는 바늘을 덧박아 황바위의 저고리 앞섶까지 알뜰히 손질해주었다. 빼앗긴 아들의 옷을 손질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손길을 모르고 자란 황바위는 바싹 그옆에 턱을 고이고앉아서 재치있게 바늘을 움직여나가는 그의 손질과 얼굴을 지켜봤다. 아버지에게서 말로만 듣던 어머니모습을 그 어머니에게서 찾아내기라도 하는듯 그윽한 정을 담은 두눈을 떼지 못했다.
황봉은 어깨숨을 쉬고나서 말했다.
《아주머니 우리 애가 제 어머니얼굴을 모르고 자란 애웨다. 그래서…》
《그래요? 에그, 그랬댔구만.》
쌍가마 어머니는 자기옆에 붙어앉은 황바위의 머리를 쓸어주며 그의 얼굴을 다시 뜯어봤다. 방안의 눈들이 바위에게 쏠렸다.
바위는 난생처음 느끼는 부드럽고 훈훈한 녀인들의 정, 어머니손길을 느끼며 (이런 어머니가 있는 쌍가마는 얼마나 좋을가? 저 억쇠두…) 하는 부러운 생각이 들어 쌍가마의 쌍까풀진 눈도 다시 바라보고 한서방네 세살배기 억쇠도 다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이런 좋은 어머니에게서 칠성이를 빼앗아간 조참봉과 부사가 한없이 미워났다.
《그러니까 어머니없이 저 아들을 북대봉산속에서 키워냈단 말이요?》
한서방은 측은한 눈길로 황바위를 바라보며 그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렇수다. 그 심산속에서 어려서 제 어머니를 잃은 저것을 오늘까지 키워왔으니 저애는 산짐승들속에서 자란셈이지요. 그런데 인간으로 태여난 자식을 그 산속에만 묻어두는것이 애비로서 죄를 짓는것만 같아 인간세상으로 데리고나왔는데 글쎄 오늘…》
황봉은 목이 걸리는듯 말을 끊고말았다.
잠시 방안에는 서글프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한서방은 짚단을 방안에 옮겨다놓고 손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다시 스륵스륵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어떻게 돼서 그 심산중에 들어가 살게 됐소?》
쌍가마 어머니가 바느질손을 멈추고 물었다.
《내 타고난 험한 팔자타령을 어떻게 다 하갔쇠까. 어려서 아버지를 왜놈에게 잃고 하나밖에 없는 형과 헤여졌는데 무슨 고생, 무슨 천댄들 안당해봤갔소. 그래도 각박한 세상에서 가난은 하지만 무던한 인심들이 나누어주는 밥덩이와 헌옷가지로 목숨을 이어갔는데 잔뼈가 굳기도 전에 악귀같은 량반부자놈들의 무거운 짐에 등뼈가 휘였지요. 그러는중에 한 열일곱살쯤 나이가 잡혀드니 생각이 달라집데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목숨처럼 가꾸던 밭뙈기에 자꾸 생각이 미쳐져 마음을 다잡아먹고 어느 한 산골짜기로 들어가서 비탈밭을 일구기 시작했지요. 황소처럼 일하고 쥐처럼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억척스럽게 땅과 죽기내기로 싸움을 한끝에 겨우 몇뙈기 비탈밭을 일궈놨지요. 그런데 글쎄 관가요 땅임자요 하는것들이 쉬파리떼처럼 달라붙어서 땅세요, 호포요, 군포요, 무슨 세곡이요 하고 오만가지로 털어내는데 배겨내는 수가 있습데까. 천한 농사군은 그놈들의 밥인걸요. 그러는중에 부라퀴같은 땅임자란 놈이 내버려두었던 그 땅을 제 땅이라고 관가와 짜고서 들고치는게 아니겠소. 그대로 있다가는 별수없이 땅을 빼앗길뿐아니라 힘꼴이나 쓰는 나자신도 갈데없이 그놈의 집 종신세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데다. 악이 납데다. 그래서 불쌍하게 사는 한 처녀와 함께 북대봉골짝으로 도망을 쳤댔쉐다.》
한서방은 새끼꼬던 손을 멈추고 황봉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안해와 쌍가마 어머니도 황봉에게서 눈을 못뗐다.
황봉은 문득 자기도모르는 사이에 이야기가 너무 깊이 들어가고있다는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야기머리를 딴데로 돌렸다.
《내 이 우리 아이놈 키우던 이야기나 좀 할가요?》
방안은 조용해졌다.
《그 심심산골에서 산비둘기처럼 서로 의지하며 살던 안해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첫걸음마를 떼고 〈엄마〉를 부르며 벙실거리는 저것을 남겨놓고 글쎄 덜컥 눈을 감는게 아니갔수. 그다지도 박복한 팔자를 타고난 사람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져서 나도 따라 목숨을 끊어버릴가 하는 마음도 먹었지만 불쌍한 자식때문에 이를 악물고 살았지요.》
《그 산골에서 어떻게?》
한서방 안해가 가느다란 한숨을 쉬였다.
《사람이 악이 받치니까 무서운게 없습데다. 주먹을 부르쥐고 암사슴이랑 산양따위를 쫓아다니며 잡아다가 젖을 짜 저걸 먹였는데 그땐 호랑이의 젖이라도 있으면 달려가서 빼앗아다가 먹이겠습데다. 끌려온 어미사슴이 제 새끼생각을 하며 울 때 인간이란 너무나도 모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산발을 헤매며 그 새끼를 찾아다가 아들옆에 함께 놔주면서 내 눈물도 많이 흘렸댔수다. 저애는 제 엄마젖대신 이 애비의 짠 눈물을 먹고 자란셈이지요.》
지금까지 못듣던 말을 아버지에게서 듣는 황바위의 눈이 커졌다.
《그런데 이 녀석의 젖빠는 힘이 어찌나 세던지 통통하던 짐승들의 젖통이 삽시간에 훌쭉해지군 했지요.》
긴 한숨을 쉬고난 쌍가마 어머니가 옷고름을 눈으로 가져가더니 무엇인가를 생각한듯 바느질그릇을 밀어놓고 억쇠 어머니에게 무어라 귀속말을 했다.
그러자 억쇠 어머니는 슬며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바위는 아버지의 팔소매를 꼭 잡고 한서방은 새끼꼬던 손을 깍지끼고 생각에 잠겼는데 마당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쌍가마 어머니가 문을 열고 나가보니 억쇠 어머니가 빈 술병을 안고 굴뚝모퉁이에 소침해서 서있었다.
《외상술이라고 안주던가?》
《예.》
억쇠 어머니는 죄라도 지은듯 머리를 못들었다.
《아, 모진 놈의 세상… 그러니 그 산속에서 아들을 데리고 인간세상에 나온 저 사람에게 술 한잔도 대접을 못한단 말인가.》
격해진 쌍가마 어머니의 목소리가 방안에 들린듯 문이 활짝 열리더니 황봉이가 맨발로 뛰여나왔다. 빈 술병을 안은 이 집 안주인은 부엌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자, 아주머니, 들어가십시다. 그 마음들을 술 열독에 대겠쉐까.》
황봉의 목소리는 갈려있었다.
《이놈의 세상이 언제면 콱 망할구.》
쌍가마 어머니는 다시 눈굽을 닦았다.
한서방은 방안사람들의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애를 썼다.
《그러니까 저애가 북대봉호랑이의 기상을 닮았지. 내가 관상을 괜찮게 보지 않소, 하하하.》
황봉은 술보다도 인간세상의 정에 취한 심정이였다.
황봉이는 애써 밝은 얼굴로 한서방에게 물었다.
《내 산속에서 일찍 귀밑머리가 세여서 늙어보이는데 내 나이 몇살이나 되여보이우?》
《한 마흔예닐곱…》
《허허허, 서글픈 일이로군. 10년을 높여주누만.》
《아니, 그럼 나보다 한두살 우란 말이우? 하기사 남다른 세상을 살았으니 그럴만도 하지.》
《우리 천한 백성들의 한평생이란 왜 팔자들이 모두 이 모양일가? 내나 아우님네나 다…》
《허허, 형님두, 그게 무슨 팔자겠수. 다 이 못된 놈의 세상탓이지.》
《하긴 그래. 나만 두고봐두… 그런데 아우님, 내가 인간세상을 떠나서 이 녀석을 키울 때 무엇이 제일루 무섭구 가슴아팠는지 아나? 그건 북대봉호랑이도 곰도 승냥이도 아니였네. 짐승들속에서 제 자식을 사람으로 못키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였네. 밥숟갈드는 법부터 말하는 법, 옷입는 법 등 인간의 체모와 도리가 무엇인지 그걸 모두 나한테서 배우고 본받게 하자니 아는것은 적고 생각은 얕구… 다른데서 제눈으로 보는것없이 세상을 깨닫게 하자니… 정말 저게 불쌍하게두 자랐지.》
한쪽에 돌아앉아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쌍가마는 올롱해진 눈으로 바라보고 황바위는 아버지를 새삼스럽게 바라봤다.
《그렇지만 이놈의 세상에서 북대봉바위처럼 누구에게도 짓밟히우지 말라고 저애 이름을 〈바위〉라고 지어주었네. 그러나 이름이나 그렇게 지었다구 고달픈 우리 신세가 달라지겠나. 우리 형님도 이름은 돌이지만 어느 발길에 짓이겨지지나 않았는지… 이번에 그 형님을 찾아보자구 이앨 앞세우고 평양성을 향해 나섰는데 사람세상구경을 처음하다나니 줄곧 내 꽁무니에 붙어오며 백가지, 천가지를 다 물어대누만.》
《그런데도 아들애의 례의범절이 나무랄데 없구려. 인정미도 마음씨도…》
《내가 이애가 사람모습을 못갖출가봐 무척 마음을 썼댔지. 산속에서 제일 귀한게 소금인데 나야 쩝쩔한 나무껍질이랑 풀뿌리로 염기를 대신했지만 이애에게는 그럴수 없어서 수십리씩이나 되는 산골짝 오돌막들에서 소금 몇옹큼이라도 구해볼가 하고 다닐 때면 어려서부터 이 녀석을 지게목발우에다 앉혀가지고 다녔지. 아들녀석이 사람과 짐승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게 하려구… 그러던중에 이애가 열살인지 되던 때부터 서울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문란한 조정의 일들이 역겨워서 벼슬을 버리고 화엄산에 들어와사는 마음어질고 세상리치에 밝은 어른의 집엘 자주 다니게 되였는데 그 어른에게 배워서 이애가 사람체모를 이만큼이라도 갖추게 되였다네.》
《참, 형님이 험한 세상에서 용케도 이 아들을 키워왔수다. 제길, 우리 백성들이야 얼마나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유. 그런데 악독한 놈들때문에…》하더니 한서방은 생각이 난듯 말을 꺼냈다.
《듣자니 김요립이라는 신임부사랑 양덕고을 조참봉을 두고도 지금 항간에서는 별별 말들이 다 돌고있다우.》
《어떤 말들이?》
《그 두 옴두꺼비가 지금 서로 저편의 심통을 두드려보는 판이라우. 조참봉은 신임부사에게 바싹 붙어서 이 계제에 큼직한 벼슬감투 하나를 사가지구 아예 량반으로 둔갑해볼 심산이라우. 그래서 그 쥐상판 신임부사를 쑥대끝에 올라앉은 송장메뚜기처럼 보면서도 그 세도줄을 그러잡고 늘어지는판인데 잘하면 서울 김공량이와도 끈을 맺을수 있겠다는 속구구를 하고있다우.》
《음…》
《한편 신임부사는 조참봉이 쥐고있는 룡의 알이 얼마나 큰것인가 하고 그 무게를 떠보는판이라는데 벌써 다 먹어놓은 알이라고 생각하고있겠지.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신임부사는 진주기생인 소실(첩) 옥매의 장단에 춤을 추는 위인이랍데다. 이놈의 세상에서 재물과 권세면 무슨 일인들 못하갔수.》
황봉은 오랜 세월 산골살이를 한 자기에 비해서 놀랄만큼 세상일에 밝고 견문이 넓은 한서방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말에는 조리가 있고 의분이 비꼈다.
조참봉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황바위의 두눈이 데굴데굴 굴었다. 그러나 아직은 그 리치를 다는 알수 없는 이야기들이였다. 또한 조참봉의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말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생각하며 그는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어느덧 밤이 깊었다. 그러나 주인과 객의 눈들에서는 불꽃들이 튀고있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듯 고콜불이 일렁거렸다.
이밤 황바위는 어린 마음에도 곡절많은 생애와 자기를 키우느라 피눈물을 그리도 많이 뿌린 아버지생각이며 보지 못한 어머니생각 그리고 처음으로 듣고 보고 알게 되는 세상일들이 자꾸만 머리속에 맴돌아 밤이 깊도록 두눈을 또록거렸다.
(아버지는 나때문에 억쇠 아버지보다도 더 저렇게 머리가 세였구나. 왜 세상에는 쌍가마네와 억쇠네 그리고 우리같은 천대받고 불쌍한 사람들과 조참봉과 사또같은 놈들이 있을가?)
이런 생각만도 그의 어린 가슴에 다 붙안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아름찬것이였다.
이밤따라 소쩍새는 목이 메게 울어댔다. 북대봉 소쩍새가 여기까지 따라와서 황바위의 귀전에 대고 《세상구경이 어떻더냐?》하고 물어보는것만 같아 황바위는 몸을 뒤채이는데 쌍가마 어머니가 황바위를 자기의 팔을 베워서 눕혀주었다.
억울하게 빼앗긴 아들에게 팔을 베워주는 어머니심정이였으리라. 그러니 아들을 빼앗기고 어머니노릇을 못하는 그 마음이 얼마나 쓰리랴. 그 심정을 아직은 다 알수 없는 황바위였다. 그렇지만 세상에 태여나 어머니라는 말을 안 다음 처음으로 안겨보는 어머니품이였다. 그는 살며시 어머니가슴에 얼굴을 묻어봤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포근하고 훈훈한 품이였다.
쌍가마는 또 쌍가마대로 어머니등뒤에 꼭 붙어서 그립던 오빠와 함께 어머니의 품에 안긴 마음으로 간절하던 소원을 풀어보는 밤이였다.
밤은 깊어 비류강우에 은하수가 기울었다. 한서방은 아까 들은 황봉의 말에서 이 사람이 바로 조참봉이 지금까지도 찾고있는 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의 아픈 가슴을 허벼놓지 않으려고 더 물어보지 않았다.
《형님, 왜 잠을 못드시우?》
한서방이 황봉에게 속삭이였다. 어찌 황봉뿐이랴. 쌔근거리는 세살배기 억쇠를 내놓고는 누구도 잠을 이룬 사람이 없는 밤이였다.
괴여오르는 가슴, 울적한 심정을 돌려보려고 황봉은 일어나앉아 한서방에게 말했다.
《여보게, 내 오늘 별스런 중놈을 만났댔네.》
《어떤 중인데?》
한서방도 일어나 마주앉았다.
《암만 봐두 수상하단 말이야.》
그러면서 황봉은 오늘 만났던 괴상한 중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우묵한 눈이 몸을 오싹하게 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수상하단 말이야.》
그러자 한서방은 그 중은 중인데도 절간들에는 들리는 일이 없으며 목탁치며 동냥을 하는 일도 없고 누가 말을 물으면 대답은 않고 그저 두손을 모아 합장만 해서 벙어리중이라고들 한다고 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고을에 신임부사가 도임해오자 그 중이 그림을 그려보냈는데 그 산수묵화와 글씨가 보기드문 명화이고 명필이랍데다.》
《그런가? 어쩐지 나는 그놈을 보는 첫눈에 벌써 그놈이 우리 나라 사람같질 않더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 쳐들어왔던 그 왜놈들 상통같더란 말이야.》
그러자 한서방도 생각나는게 있는듯 말했다.
《형님생각이 옳은것 같쇠다. 듣자니 지금 왜놈렴탐군들이 별별 차림으로 우리 나라에 기여들어 8도강산을 개싸다니듯 한답데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별로 아랑곳하지도 않고있다니 이거 큰일 아니유?》
《그러니 그놈도 왜놈이 분명한데 그저 놔둘수야 없지 않나?》
《그러나 어찌겠수. 서울 대감님네들두 그런 일엔 크게 마음을 쓰지 않구 우리 고을 사또님도 그의 그림을 받아들고는 입이 헤벌어졌다는데… 그러니 나라에 망조가 들었지.》
한서방은 서글픈 얼굴을 했다.
다음날 아침 황봉부자는 그 집을 떠났다. 비록 하루밤이지만 10년맞잡이로 인정을 품앗이하며 지새운 집이였다.
그들이 떠날 차비를 할 때 쌍가마가 어머니의 어깨를 흔들며 속살거렸다.
《엄마, 내 댕기 저 총각 주자요. 어떻게 저런 쬐꼬만 댕기 드리고 큰아버지 만나러 가나.…》
《용타, 네가 나보다 낫구나.》
어머니는 딸의 마음씨가 대견스러운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깊이 간직했던 댕기를 동고리속에서 꺼냈다.
쌍가마가 오빠 만나러 갈 때 드렸던 빨간 갑사댕기였다. 여러해만에 만나는 아들에게 집안의 궁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오랜 고심끝에 어머니가 마련해준 댕기였다.
《내가 달아줄래.》
《그래라.》
벙실 한번 웃고난 황바위는 댕기를 든 쌍가마앞에 돌아앉아 수굿이 머리를 숙였다.
참나무잎새만한 댕기대신에 한뽐짜리 빨간 갑사댕기를 드리고 벙글거리는 황바위를 바라보는 쌍가마의 얼굴에도 함박꽃이 피였다.
《아이 고와라! 》
그는 짜락짜락 손벽을 쳤다. 쌍가마 어머니는 촘촘히 딴 머리채끝에 드린 황바위의 댕기를 쓸어보고나서 다시한번 그의 머리치장을 곱게 시켜주는데 황바위는 제가 드렸던 댕기를 쌍가마의 손에 쥐여주었다.
동구밖 산모퉁이까지 따라온 한서방네 식구는 친혈육을 멀리 떠나보내는 심정들이였다.
황봉은 한서방에게 한마디 했다.
《아우님! 여기서 정 살림이 펴지지 않거든 내가 살던 북대봉 초불봉아래 범골로 들어가게. 내 나올 때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들어오면 살라구 낟알씨앗들을 씨오쟁이속에 넣어서 달아매놓고 왔네. 울밑에 꽃씨도 뿌려놓고… 거기엔 호랑이는 디글거려도 인간호랑이는 없거든.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애들이…》
이렇게 말하고난 그는 흐려진 마음으로 다람쥐장을 안고 자기 아들의 바지가랭이에 붙어선 억쇠와 눈물이 가랑거리는 쌍가마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서 형님이나 찾아보시우. 평양성안으로 찾아가는건 잘한 생각 같쇠다.》
한서방은 떠나는 황봉의 마음을 이렇게 부추겨주었다.
황바위는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한서방부부와 쌍가마 어머니에게 꾸벅꾸벅 절을 하고나서 다람쥐장을 안은 억쇠를 가슴에 안아주었다.
억쇠의 동그란 얼굴에 온통 웃음꽃이 피였다.
《바위야, 어서 가서 큰아버지를 꼭 만나거라.》
쌍가마 어머니는 황바위의 앞섶을 다독여주며 울먹이였다. 왼쪽 눈두덩이에 도드라진 검은 사마귀가 그의 마음인양 자꾸 씰룩이였다. 억쇠 어머니는 아예 돌아서서 얼굴을 못돌렸다.
또하나의 오빠를 멀리 떠나보내는듯 쌍가마는 종종걸음을 쳐 둔덕으로 올라섰다. 가물가물 앞산모퉁이를 도는 황바위를 지켜보던 쌍가마의 두볼로 가랑거리던 눈물이 방울져 굴러내렸다. 엄마가 타준 똑바른 가리마우, 쌍가마우로 살구꽃잎이 날아와앉았다.
(왜 내옆에는 오빠들이 없누?)
쌍가마의 쌍까풀진 두눈에 또 커다란 눈물방울이 맺히는데 그 손에는 황바위의 조그만 댕기쪼박이 꼭 쥐여져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