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2 장

괴상한 중의 검은 장삼

1

 

비류강배놀이터를 떠난 황봉은 아들과 함께 성천고을거리를 에돌아지나서 20여리나 걸어오는 동안 깊은 생각을 안고 모대기였다.

왜 신관사또란 사람이 그 총각의 발뒤꿈치심줄을 끊느냐고 그리고 평양 가면 큰아버지를 꼭 만날수 있느냐고, 큰아버지를 만나면 이제는 헤여지지 않고 함께 살게 되느냐고 꽁무니에 붙어오며 지꿎게 물어대는 아들에게 똑똑한 대답을 못주는 자신이 서글프고 답답했다.

《아버지, 평양성이 아직 먼가요?》

《이제 좀더 가면 대동강이란 큰 강이 나진다. 그 강을 따라 내려가면 평양성이 보인다. 평양은 경치가 아름답고 땅이 기름져서 예로부터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란다. 거기가면 큰아버지소식을 꼭 알게 될것 같구나. 바위야, 기쁘지?》

애써 밝은 얼굴을 보이려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선뜻 대답했다.

《예.》

벙글거리며 웃는 아들의 두눈에 별이 돋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속에 그늘을 지어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자기도모르게 한숨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의 형인데 살아나있는지… 바위야, 내 너에게 늘 말해준대로 왜놈들때문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어려서부터 형제간이 서로 갈라져서 모진 세상을 살다나니 오늘에야 찾아가게 되는구나.》

《그 왜놈들이 어데 있나요?》

《바다건너 먼 섬나라에 있단다.》

《그런데 왜 그놈들이 와서 할아버지를 죽였나요? 그놈들이 또 오나요?》

《또 쳐들어올게라고 화엄산에 계시는 서설봉나으리는 늘 걱정을 하고계신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악독한 오랑캐놈들이니까…》

《?…》

굽이도는 비류강물길을 따라 내려가니 봄정취는 한껏 더 무르녹아있었다. 진달래꽃가지사이에서 앙증스러운 다람쥐가 빠끔히 두눈을 내밀고 황바위를 말똥말똥 바라본다. 순하디순한 흰점박이 아기사슴이 긴 목을 추켜들고 황바위에게 어데 가느냐고 묻는것 같았다. 껑충껑충 그것들에게로 뛰여갈 황바위였지만 오늘은 그저 수굿이 아버지만 따라가다가 북대봉집에 두고온 다람쥐며 애기사슴생각이 나서 그는 그것들에게 벙긋 한번 웃어만 주었다.

…황봉의 기억에는 자기가 태여난 곳이 어느 바다가마을이였다는것뿐이다.

어느날 콩밭김을 매던 아버지는 바다가마을들에 왜구(왜놈도적떼)가 몰려들어 불을 지르고 략탈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듣자 쇠스랑을 둘러메고 괭이, 도끼를 든 마을사람들의 앞장에 서서 달려갔는데 그때 그 우람차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시커먼 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는 왜놈 세놈을 쇠스랑으로 찍어넘긴 아버지는 놈들의 칼과 화살에 맞아 백사장을 붉은피로 물들이며 쓰러졌었다. 황봉이네들이 아버지를 붙안고 몸부림칠 때 가까스로 눈을 뜬 아버지는 어머니도 없는 열살과 여덟살배기 두 아들을 그러안고 《너희들은 부디 장수로 커서 저 왜놈들이 다시는 우리 땅에 기여들지 못하게 하거라. 그리고 두 형제가 떨어지지 말고 손을 꼭 잡고 살아가거라.》 하는 마지막말을 남겼었다.

그러나 몸집이 실한 형은 어느 량반놈에게 붙들려 어덴가로 끌려간 후로 소식이 없었다.

황봉은 그후 형을 찾아 바다가로, 린근마을로 헤매였으나 그의 소식은 들을길이 없었다.

악착한 세상에서 돌멩이처럼 단단하라고 아버지는 형의 이름은 돌이라고 지어주고 하늘을 훨훨 나는 봉새가 되라고 자기 이름은 봉이라고 지어주었건만 봉새인 자기는 넓고 푸른 하늘이 아니라 깊고깊은 산속을 헤매느라고 귀밑머리가 희기 시작한 오늘까지 아직도 그 형을 만나지 못한것이다. 그동안 바다물결 철썩이는 고향의 백사장, 아버지의 붉은피가 스민 그 백사장을 마음속에 붙안고 얼마나 피타게 몸부림쳐왔던가.

그러나 형의 왼손가락이 여섯이여서 《륙손》이라고도 불렀었는데 평양성으로 가면 세상에 흔치 않은 《륙손》이를 찾을것만 같아 이렇게 아들을 앞세우고 떠나온 황봉이였다.

황봉은 진달래떨기곁에 지게를 벗어놓더니 아들의 신들메를 고쳐매주고 댕기머리도 다시 땋아주었다.

황바위의 눈앞에는 놀이배우에서 호통을 치던 신관사또의 쥐상판과 메주볼 조참봉의 얼굴이 엇바뀌여 떠올랐다.

배를 뒤흔들던 상노아이의 모습도 떠올랐다.

(아, 나도 힘이 셌더라면 그놈의 배를 함께 뒤집어엎어줄걸…)

단 한채밖에 없는 심심산골 오돌막에서 자라나 처음으로 넓은 사람세상구경을 하는 어린 황바위에게는 너무나도 모를것, 놀라운것이 많아 어느덧 그도 눈을 깜박거리며 아버지처럼 말수더구가 적어졌다.

그들이 강굽이를 돌아섰을 때였다.

길가의 들쑹날쑹한 바위짬에 한껏 부푸는 잎망울들로 몸치장을 시작한 정향나무숲속에서 후리후리한 키에 소매가 후렁후렁한 긴 검은 장삼을 입은 중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고깔대신에 정교롭게 엮은 대삿갓을 푹 눌러쓰고 석장(중의 지팽이)을 짚었으며 행전을 치고 미투리를 받쳐신었다. 등에는 자그마한 바랑을 메고 목에는 보리수 백팔념주(중들이 념불을 외울 때 셈을 세는 자그마한 알꿰미)가 걸려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앞을 지날 때 중은 두손을 모아 합장을 했는데 어째서인지 대가리를 쳐든 뱀과 마주쳤을 때처럼 오싹해졌다. 대삿갓밑에 언뜻 보인 그의 우묵한 두눈이 류달리 날카롭게 번뜩였다. 눈등을 덮은 시커먼 눈섭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걸음새는 아주 점잖은데도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섬찍해지게 했다.

중을 만난 순간 주춤 걸음을 멈추었던 황봉은 다시한번 대삿갓밑의 그 우묵한 눈과 시퍼런 구레나룻자리를 바라보고나서 걷던 걸음을 내처 걸었다.

《아버지, 저 사람은 또 누군가요?》

황바위는 아버지를 따라가며 물었다.

《그건 중이라는게다.》

《중? 세상에는 별게 다 있네.》

《그렇단다. 세상에는 별의별게 다 있단다.》

아버지는 지금까지의 침묵을 깨뜨리고 열기띤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듯 하였다.

이날 해질무렵에 황봉부자가 성천온탕옆을 지나 으슥한 골짜기로 들어가는 세거리마을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농가를 찾아가서 하루밤 묵어갈 생각으로 마을안길로 들어서는데 아이들이 손을 잡고 빙빙 도는 놀이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불났다고 탈났다고

량반집에 가지 말아

불 꺼주고 약 써주고

량반님네 매맞는다

 

그들을 바라보는 황바위는 고개를 또 기웃거렸다.

(왜 불 꺼주고 약 써주고 매를 맞을가?)

세거리뒤쪽 밤나무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에 들어선 황봉은 한 농가에 가서 집주인을 찾았다.

이때 집뒤에서 새순이 돋기 시작한 밤나무를 찍고있던 주인이 도끼를 든채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는데 뜻밖에도 그는 비류강가의 풀밭에서 도시락을 먼저 풀고 칠성이를 부르며 놀이배쪽으로 달려가던 그 농군이였다.

《비류강배놀이구경을 하시던분이시구려.》

주인은 그들부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보, 손님이 오셨소.》

한서방이라는 주인이 소리를 치자 그의 안해가 나와 황봉에게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황바위의 괴나리보짐을 받아 내려주었다.

자그마한 키에 순하디순하게 생긴 얼굴이 갸름하고 주근깨가 많은 아낙네였다.

세살배기 그의 아들도 황바위의 바지가랭이에 매달려서 황바위는 그를 번쩍 높이 안아올렸다.

아이는 좋아라 캐드득거렸다.

한서방은 자기 아들을 안아올린, 아직 어린 나이이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언행이 사내다우며 특히 불구슬이 구는듯한 황바위의 눈을 보자 《사람의 몸값이 백냥이라면 눈값은 팔십냥이라는데 이녀석 눈이 범의 눈이니 앞날의 큰 장수감이 틀림없소. 범의 나룻처럼 치올라간 저 숱진 눈섭 좀 보지.》하고 자기 안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때 귀밑머리가 흰 한 녀인이 여라문살 남짓한 딸애를 데리고 들어섰다. 시름에 겨워 기진맥진한 얼굴이였다.

《그래 성천고을에 나가서 뭘 좀 알아보셨나요?》

한서방의 물음에 녀인은 《그 부라퀴같은 놈들 손에 들어갔는데 알긴 어떻게 알겠나.… 에그, 하늘도 무심하지.》하며 토방에 주저앉아 가슴을 탕탕 쳤다.

《우리 삼촌어머님이외다. 오늘 비류강가에서 아들이 기막힌 일을 당해서 저렇게…》

한서방의 말에 황봉은 배놀이터 일이 생각나서 《아니, 그럼 배를 뒤흔든 그 총각이?…》하고 한서방을 바라봤다.

《그렇쉐다. 그애가 내 사촌동생이외다.》

《저런… 그래 그 총각이 어떻게 되였소? 나는 그 참상을 내 자식에게 안보일려구 그냥 오구말았는데…》

황봉의 말에 한서방은 《이 정신 좀 보지. 손님을 뜨락에 세워놓구…》 하더니 토방에 기직자리를 펴고 그를 앉힌 다음 마주앉아서 그후에 있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참 세상엔 별일도 다 있습데다. 글쎄 쇠꼬챙이를 시뻘겋게 불에 달궈가지고 내 동생 오금단지 장심줄을 지져 끊으려고 사령놈들이 그앞으로 달려드는데 신관사또의 옴딱지라도 긁어줄듯이 바싹 그 턱밑에 붙어있던 양덕고을 조참봉이 사또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립데다. 그러자 그렇게도 으르렁거리던 사또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어험, 그 형벌을 중지하라!〉하고 령을 내리는게 아니갔소.》

《아니 그게 어떻게 된 노릇이요? 그 사또나 조참봉이 갑자기 부처님이 될수는 없는 일인데…》

어깨를 들먹이는 녀인의 옆으로 한서방의 안해가 다가서서 그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어주었다.

황바위와 녀인의 딸애의 눈이 한서방에게로 쏠렸다.

《그러더니 사또는 큰 기침을 하고나서 틀을 차리며 〈내 첫 부임공사인데… 그놈의 죄는 막중하지만 차마 어린 아이놈에게 그렇게까지는 할수가 없구나.〉하더란 말이외다.》

《거 정말 희한한 일이군.》

《그런데 알고보니 조참봉이 부사에게 꼬드기기를 〈그놈의 힘이 천하장순데 죽은 놈대신 데려다가 관노로 삼아 사또께서 요긴히 쓰시는게 좋지 않소이까. 내 오늘 선물로 그놈을 바치리다.〉라고 했답데다.》

《그러니까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하면서 그 칠성이를 가지고 물건짝처럼 주고받는 흥정을 했구만.》

《오금을 끊기우는거나 관노로 끌려가서 그 악귀같은 놈의 손아귀에 들어가는거나 같구같지요. 소위 백성을 다스린다는자들이 그러니 우리 백성들은 하늘없는 세상, 기댈곳없는 나라에서 사는 셈이지요.》

한서방은 비록 식자는 없어도 견문이 넓고 자기의 생각으로 세상을 재여보는 주견이 선 사람이였다.

《어떻게 돼서 칠성이가 그 악귀같은 조참봉놈의 상노가 되였는가요?》

남의 일같지 않아서 격분을 담아 묻는 황봉이에게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지요. 하기사 농사군신세나 종노릇이나 마찬가지지만…》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한서방은 어린 딸을 그러안고 어깨를 들먹이는 숙모에게 《너무 그러지 마시우.》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원래 우리 삼촌은 중화땅 꽃골이란 곳에서 살면서 농사를 지었댔는데 양덕고을 조참봉놈이 그가 근면하고 몸이 실한것을 알고서 제 사냥몰이군으로 데려갔었지요. 갖은 얼림수를 써서 말이웨다. 그러나 시골서 농사나 짓던 농사군이 처음 해보는 일이 서툰데다가 큰 짐승무리속으로 들이미는 바람에 그 짐승들에게 몰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병신이 되였지요. 그 몸으로 다시 농사를 짓다가 바칠걸 못다 바친 죄로 붙들려가서 된매까지 맞고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지요.》

한서방은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였다.

《그때 우리 칠성이는 열살이였고 저 애는 여섯살이였는데 저것들 오누이를 우리 삼촌어머님에게 맡겨놓고 삼촌은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우.》

황바위가 그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황봉이가 다그쳐물었다.

《그래서요?》

《그런데 그 여우같은 조참봉이란 놈이 제놈에게 우리 삼촌이 살았을 때 진 빚이 있다면서 글쎄 열살난 칠성이를 끌어갔지요. 이번에 보셨겠지만 그애가 어려서부터 그 조참봉이 침을 흘릴만큼 몸이 실했거던요.》

《여보게, 그 얘기 제발 그만두라구.》

삼촌어머니는 더 참을수 없는듯 한마디 하고는 애써 눈물을 거두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예, 그만둡시다.》

이렇게 대답은 하고도 한서방은 말하지 않고서는 못견디겠다는듯 말을 계속했다.

《그렇게 아들을 빼앗긴 다음 우리 삼촌어머님은 머리가 저렇게 세였다오. 그런데 그 아들을 만나보려구 작년에 저 딸을 앞세우고 양덕고을로 갔댔는데 글쎄 칠성이가 〈어머니, 제발 빨리 돌아가주오.〉하며 붙들고 울음을 터뜨리더라오. 조참봉놈이 제 누이동생을 보면 또 빼앗을 꿍꿍이를 할게라고 말이요. 그렇게 말한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우. 그게 열살나이로 그놈의 집에 붙들려가서 엄마 보구싶다고 밥도 안먹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자 조참봉이 장작개비로 내리쳐서 까무라치게 하고는 〈종의 새끼는 이렇게 길들여야 한다.〉면서 고간속에 처넣고 사흘이나 굶겼다오. 그래서 아예 집생각, 제 부모형제생각을 막아버리자구… 인간의 천륜까지 짓밟는 놈이지요. 그러니 그렇게도 그립던 어머니랑 누이동생을 돌려보낸 그 칠성이심정이 어떠했겠소. 그런데 이번엔 그애가 그 조참봉놈의 손에서 부사의 손으로 넘어갔으니 다리장심줄은 안끊겼지만 그앤 여우굴에서 승냥이굴로 옮겨진셈이지요.》

《허 참…》

황봉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종살이이야기가 나오자 바싹 귀를 강구고있던 황바위가 푸들거리는 아버지의 구레나룻을 바라보며 입술을 꼭 앙다물었다.

《하기사 우리 백성들의 목숨값이란 그런 놈들의 흥정에 달려있으니까…》

한서방은 답답한 심정을 풀어라도 볼듯 짚단을 갖다 앞에 놓고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황봉도 생각에 잠겨 긴 한숨을 내쉬고나서 함께 썩썩 새끼를 꼬았다.

《그런데 그놈들도 서로 얼려넘기기놀음을 한다우. 조참봉놈만 놓고봐도 제 고을 양덕현감을 재물을 가지고 공기돌 다루듯 하는 놈인데 이번 성천고을 신임부사의 뒤가 든든하단 말을 듣고는 거기에 바싹 달라붙어서 등때기 긁어주고 간빼먹으려드는 심산인가봅데다. 하긴 새 부사가 제 간덩이를 선뜻 내줄리도 없겠지만… 나그네도 들어서 아는지 모르오만 조가 그놈은 대를 두고 북삼땅의 피물(짐승가죽)과 산삼, 사향, 웅담, 산꿀 같은것을 긁어모아 천금을 모은 놈이라우.

그런데 그놈은 10여년전에 제놈의 집에서 도망치다가 잡힌 행랑처녀의 이마에 〈도비〉라는 불글자까지 새긴 악착한 놈이라우. 그때 담이 큰 총각이 있어서 밤중에 그 처녀를 둘쳐업고 종적을 감추었는데 각 고을 관청을 꼬드겨서 글쎄 근자에까지도 그 처녀총각을 찾고있다오.》

황봉은 흠칫 하고 새끼꼬던 손을 멈추었다. 잔등에 오싹 식은땀이 흘렀다. 황봉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이집 세살배기 억쇠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고있어서 그는 후 하고 가슴을 내리쓸었다. 그는 아들앞에서 조참봉이야기가 더 번져질가봐 말머리를 딴데로 돌렸다.

《그래서 저 삼촌어머님이랑 사촌누이가 여기 와서 살게 되였구려.》

《그렇수다. 분통이 터질 노릇이지요. 살던 고향에 있기가 아니아니해서…》

《한서방은 여기서 산지 얼마나 되우?》

《한 열둬대 땅을 뚜지며 살아왔지요. 그러나 오래 산게 대순가요. 대를 내려오며 피땀을 다 빨리우고 살림은 더 쪼들리여 이제는 밤나무까지 베제끼는 신센걸요. 제길, 농사군 천대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인데…》

황봉은 그의 심정이 느껴져 무거운 마음으로 물었다.

《그런데 새순이 돋는 밤나무는 왜 찍소? 한창 밤이 달릴 나문데…》

《흥, 누군 찍고싶어서 저 아까운것을 찍겠소. 저놈의 밤나무때문에 해마다 화를 입수다. 작년에도 밤흉년이 들어서 댓말밖에 못땄는데 글쎄 관가에선 두섬을 바치라는게 아니갔소. 더우기 신임부사 노는 꼴을 보니 백성의 등가죽 벗기기로 조선팔도에 조명이 났다더니 헛소문이 아닌것 같소. 제길, 귀신듣는데 떡소리 못한다구 그놈의 귀에 내 집에 좋은 성천밤나무가 있다는 말이 들어가면… 그래서 아예 베여치우자는거요. 또 하나밖에 없는 사촌동생 빼앗긴 분도 도끼질로 풀어볼가 해서…》

《참, 기가 막힌 노릇이군. 우리 백성들의 소원이라는게 기껏해야 보리겨떡인데, 제길…》

《보리겨떡이라도 차례지면야… 땅은 량반, 벼슬아치들과 권세있는자들의 손아귀에 몽땅 들어가고만 세상인걸… 나도 그놈들의 귀신같은 문서놀음에 하늘만 바라보던 천수답이 옥답으로 둔갑을 해서 억울하게도 없는 낟알 바치노라 알거지신세가 됐수다. 그러니 우리같은 농사군의 앞날이란 뻔하지요. 굶어죽거나 아니면 우리 칠성이처럼 남의 종살이를 하는수밖에 더 있소.》

한서방은 후 하고 다시 한숨을 내쉬더니 황봉의 손을 끌었다.

《자, 방으로 들어갑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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