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비류강의 배놀이

2

 

북대봉산맥은 조선의 북부 남쪽 중심부를 평안도와 함경도의 경계를 따라 비스듬히 세로 질러서 동서의 분수령을 이루며 길게 뻗은 아아한 산발이다.

이 산줄기의 인봉산, 백산, 북대봉일대와 양덕고을 오강산과 맹산땅의 대모원골에서 시작한 물줄기들은 좀더 서쪽인 화엄산,시도산일대의 수많은 골짜기들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들과 서로 합쳐지면서 대동강 북동쪽의 큰 가지인 비류강을 이룬다.

깊고 험준한 골짜기들과 깎아지른 벼랑밑들을 에돌며 뛰여내리며 싱그러운 수풀들, 꽃무지들을 헤치고 굽이굽이 감돌아 흘러내리는 맑디맑은 물줄기는 성천고을에 이르러 더 폭넓고 깊은 강을 이룬다.

비류강기슭을 따라 그 첩첩한 골짜기마다에는 절묘한 풍경과 무르익은 정취속에 슴배인 인간세상의 곡절많은 생활들과 전설도 많다.

성천과 양덕 등지에 많은 온천물이 땅속에서 신비롭게 끓어오른다 하여 강이름을 《끓는 물줄기》라는 뜻에서 《비류강》이라고 부르게 되였다는것도, 성천고을 비류강 한가운데 있던 섬이 평양 모란봉밑으로 떠내려가서 백성들이 그 땅세때문에 고역을 더 치르게 되였다는 이야기 등도 다 그런 실례들인것이다.

성천고을거리앞을 흐르는 강을 따라 좀 거슬러올라가면 강기슭에 예로부터 경치가 좋아서 신선이 내린다는 이름높은 강선루가 하늘높이 추녀를 추켜들고있고 좀 우쪽으로 더 올라가면 철썩이는 푸른 물을 허리에 감고 깎아지른듯한 비류벽이 병풍처럼 높이 솟아있다.

그 벼랑 낭떠러지들에 수백년을 내려오며 뿌리박은 로송가지들에는 흰 두루미들이 내려앉았는데 모래불에 점점이 펼쳐진 다박솔포기들과 벼랑에 피는 봄철 진달래떨기며 한껏 붉은 가을단풍은 한층 이곳의 풍치를 돋군다. 하여 예로부터 시와 글씨, 그림을 즐기는 시인, 문객들이 수많이 찾아오던 곳이다.

오늘도 그 비류벽밑에서는 신임성천부사의 부임축하화전놀이가 벌어졌다.

그런데 오늘의 이 화전놀이는 비류벽에 불길처럼 타는 진달래꽃잎을 찹쌀지짐에 붙여먹는 정취보다도 임금(조선봉건왕조 14대왕인 선조)의 총애를 독점한 김귀인(종1품의 높은 벼슬칭호를 가진 왕의 첩)과 인척관계에 있다는 신관사또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는데 큰 의의가 부여되여있는것이다.

그래서 성천도호부관하에 있는 덕천, 개천, 순천, 자산, 상원의 다섯고을 군수들과 양덕, 맹산, 삼등, 강동, 은산 다섯개 현들의 현감, 현령들을 위시하여 성천부중 륙방관속들과 이 지방 량반토호들이 한껏 차린 봄배놀이인것이다.

신임사또 김요립이 탄 배는 하나의 놀이배라기보다 큰 벼슬아치의 호화로운 안방을 그대로 옮겨놓은듯싶었다. 꽃니리바람에 건들거리는 화사한 봄차일속의 담양특산인 자무늬박이대발안에는 절승경개를 그린 키낮은 산수병풍이 둘러쳐져있고 배바닥에는 정교한 화문석이 펼쳐져있다.

발밖에는 통인을 비롯하여 고을 구실아치들이 두손을 모아잡고서서 대령하고있다. 병풍앞 홍공단 보료우에는 옥색도포에 남빛쾌자를 치레로 걸치고 고위당상관이 다는 금관자가 번쩍이는 망건에 받쳐진 칠빛 번들거리는 테넓은 통량갓을 숙여쓴 신관사또 김요립이 앉아있는데 아무리 보아야 그 얼굴은 신통히도 쥐상판이다. 잔뜩 틀을 차리고 《수복강녕》을 수놓은 사방침(팔꿈치를 대고 기대이는 베개 비슷한것)에 비스듬히 기대인 그의 앞에는 자개박이 큰 상다리들이 휘게 진수성찬이 차려져있다.

상좌인 신관사또앞에는 이 고을의 수기(우두머리기생)인 섬월이가 서울 궁중시녀들의 본이라도 딴듯 칠보홍군(아름다운 보배구슬장식과 붉은 치마)으로 몸단장을 하고 백옥잔에 찰찰 술을 부어 신관사또앞에 두손으로 받쳐들고있다.

그 술은 서울 왕궁후원에 있는 양화당 깊숙한 방안에서 김귀인이 선조왕에게 따라붓는 섬사주(산 두꺼비를 문 구렝이를 담가서 만든 술)이다.

서울소식 시골서 먼저 안다는 격으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또가 이곳으로 부임해올 때 김귀인이 특별히 보내주었다는 술이다.그것은 대중할수 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간에 비류강절벽아래 이 화려한 배안에서 백옥잔이 넘치게 따라부은 그 술이 보통술이 아닌것만은 사실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섬월이가 술잔을 두손에 고여들고있은지 이미 퍽 오랬는데도 신관사또는 사방침에 비스듬히 기댄채 쥐상판의 몇오리 수염을 쭝긋거리며 괴춤속에 한손을 넣고 긁적거리기만 하고있다.

그의 귀바퀴뒤 망건에서는 유난히 금관자가 번쩍거린다. 아무리 기강이 문란한 세상이라 해도 한개 산골부사가 보란듯이 금관자를 번뜩이는 이 사실만 가지고도 위압이 된듯 고을에서 제노라 하는 량반토호들은 근엄한 얼굴로 조심스레 상두리에 빙 둘러앉아있다. 원래 법도대로 한다면 감사의 벼슬품계가 종2품이니만큼 그밑의 부사, 목사, 군수, 현감 등에도 각각 그에 맞게 벼슬품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진 요즘세월에는 목사, 부사속에도 감사와 품계가 같은자들이 많은 세상이 돼서 감사가 감사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한것이다.

틀이 없이 내려온 새 사또라 해도 그놈이 어떤 바위를 등에 업고 온 두꺼비인지 몰라 눈치놀음을 할 판인데 하물며 왕궁 뒤골방의 끈을 잡고와서 내놓고 재세를 부리는 신임사또앞에서이랴.

오늘 잔치의 주동인물인듯한 메주볼 조개턱에 모밀눈이 아까부터 쥐상판앞에 머리를 조아리고있었다.

높다란 자세로 그들을 굽어보는 우월감에 취한 신관사또는 그저 괴춤속을 긁적거리고만 있다.

《메주볼》이 술잔을 든 섬월이에게 모밀눈을 끔벅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섬월이가 술잔을 든채 노래를 불렀다.

 

불로초로 빚은 술을

백옥잔에 가득 부어

드시는 잔마다에

삼가 비오나니

이 잔을 드시오면

백세청춘하오리다

 

그러자 괴춤안에서 손을 쑥 뺀 신관사또가 벌떡 일어나앉으며 꽥 소리를 질렀다.

《이년, 날보구 백살만 살란 말이냐?》

그통에 모두 와뜰 놀라며 뒤로 주춤하는데 《메주볼》이 제법 담이 큰체 한마디 했다.

《사또님, 관하 백성들과 이 양덕백성의 성의를 널리 받아주사이다.》

그자가 큰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봄까투리 날아가는것 같은 높은 청가락으로 이렇게 인사를 아뢰자 신임사또는 힐끔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괴춤에서 뺀 손으로 술잔을 받았다.

한편 백사장의 삼베차일안에 걸어놓은 널직한 지짐판들에서는 이 고을에서 손꼽히는 숙수(료리사)들이 찹쌀가루로 부지런히 진달래꽃전을 지지노라 기름냄새를 풍기고 리방, 호방(고을아전들)의 독촉을 받으며 관노와 상노아이들은 작은 매생이로 새로 지진 꽃전과 애송아지산적, 통닭찜, 비류강의 잉어회따위를 부지런히 놀이배로 실어나르고있다.

강변에는 이 호사스러운 신임사또의 화전놀이를 구경온 각양각색의 차림을 한 남녀로소들이 진을 치고있고 각 고을 원님들과 량반님네가 타고온 말들과 교군군, 짐군들이 법석대고있다.

《저 신관사또가 임금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있는 김귀인의 사돈의 팔촌이라던가요?》

《나라고간을 타고앉아서 좌지우지하는 김귀인의 오라비 김공량별좌가 보낸 사또님이라우.》

두사람이 이렇게 속삭이자 한사람이 제법 아는체를 했다.

《저 신임사또가 궁중에 바칠 천하진품들을 긁어모으려고 진주며 전복소산지인 전라도 바다가고을에서부터 여러 고을의 원님자리를 갈아타면서 여기까지 올라왔다우.》

《에구나, 그러니 북대봉호랑이들이 제 가죽 안벗기우려고 뛰게 됐군.》

《쉿!》

《쉬는 무슨 놈의 쉬… 이제 저 새 사또가 이 성천고을에 틀고앉아서 양덕, 맹산의 호랑이가죽, 곰가죽, 여우가죽, 족제비가죽까지 다 벗기기 전에 우리 백성들의 등가죽부터 벗기려들텐데… 산보다 호랑이가 더 크단 말이 바로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이지요.》

구경군들속에서 이런 귀속말이 오고가는데 귀가 좀 먼듯한 한 늙은이가 그들에게 대고 《듣자니 새로 온 사또님이 옴쟁이라면서?》하고 청가락높은 소리를 쳐서 와그르르 웃음들이 터졌다.

《옳아, 그래서 그 옴딱지를 떼려구 우리 성천온탕을 찾아온 모양이군그래. 난 왜 사타구니에 손을 넣고 긁적거리나 했구만. 하하하…》

《성천온탕물 더럽히게 됐네.》

이렇게들 수군거리며 웃어대는데 30살이 넘어보이는 허우대 큰 농사군차림의 맨 상투쟁이가 《우리는 이거나 풀어놓고 먹읍세다.》하고 싸가지고온 도시락을 백사장옆 풀둔덕에 풀어놓았다.

그러자 여라문명의 농군들이 《그게 좋은 생각이군.》하며 함께들 둘러앉았다.

이때 자경마(말잡이군없이 자기가 말을 모는것)로 이곳을 지나던 름름한 8척장신인 30대의 젊은 선비가 《판은 이 판이 진짜판이로군. 하하하…》하면서 타고온 검은빛 오추마고삐를 버드나무에 매고 도포를 벗어 갓과 함께 나무가지에 걸더니 망건바람으로 술이 든 자라병과 안주그릇을 들고 그들앞으로 왔다.

《아니, 림선다님께서 어떻게 여기엘?…》

도시락을 먼저 풀던 농군과 몇사람의 농군들이 일어서서 허리를 굽혔다.

《이러지들 마시우.》

선비는 그들을 제자리에 앉혔다. 늘씬한 앉은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특히 해맑은 얼굴에 까만 다복수염과 유연하면서도 도고한 몸가짐, 예지로운 빛이 넘치는 그의 두눈이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다.

《선다님은 왜 저 배에 오르셔서 노시지 않으시구…》

한 농군이 이렇게 말하자 《저기서야 이런 도시락밥맛을 모르리. 하하…》하고 그는 호방하게 웃었다.

스스럼없이 구는 그 선비로 하여 마음이 누그러진 사람들은 돌아가는 탁배기사발에 흥이 났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고 대바르며 백성들의 심정을 잘 아는 중화고을의 선비 림중량이였다.

그에게 있는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도 그것을 알수 있었다.

언젠가 그는 이웃고을의 군수로 부임된 친구를 축하해주려고 간 일이 있었는데 마침 그날은 새 원이 도임하면 하기로 되여있는 그 고을의 충신의 후손들과 효자, 렬녀들에게 상을 주는 날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들의 마음을 낚으려는 통치배들의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했었다. 그의 친구도 역시 아전들의 말만 듣고 몇사람을 불러 상을 주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가운데에는 효자로서 매번 신관사또가 올 때마다 상을 타는 박가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원은 그에게 《네가 늙은 부모 공양을 잘한다니 실로 기특한 일이로다.》하고 상을 주려고 하였다. 이때 옆에 앉아있던 림중량이 군수에게 그 부모들이 몇살인지, 어떻게 해서 효자로 되였는지 한마디라도 물어보고 상을 주라고 귀띔을 했다. 그래서 새 원은 그에게 물었다.

《부모의 나이 금년에 몇살들인고?》

《예, 어머님은 일찌기 세상을 뜨시옵고 아버님이 계시온데 금년에 일흔살이오이다.》

《어머니가 몇해전에 세상을 떴느냐?》

《서른해전, 아버님께서 갓 마흔살때 세상을 뜨셨소이다.》

《그럼 이붓어머니가 있겠구나.》

《예… 저… 미처 그 일은 생각지 못했사오이다.》

이때 림중량이 원에게 말했다.

《저놈에게는 상보다도 볼기를 쳐야겠소.》

《엉?》

《30년동안이나 제 애비를 홀아비로 둬두었으니 그런 불효자식이 어데 있단 말이요. 인생 30년동안 독수공방의 외로움이 어떠했겠소. 자식이 아무리 효자인들 로친네만이야 하겠소. 그게 무슨 놈의 효자란 말이요.》

《옳소.》

원도 그 말에 공감을 하고 그저 볼기를 쳐서 내보냈다.

이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이번에도 효자상을 타가지고올것을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상을 타가지고오는것이 아니라 절뚝거리며 왔다.

《네가 이게 웬일이냐?》

아버지가 놀라서 묻자 아들은 《아버지를 30년동안이나 홀아비로 늙혔다고 볼기를 맞았소이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70고령의 백발인 아버지는 무릎을 철썩 치며 한마디 했다.

《이제사 명관이 왔도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구나.》

그후부터 림중량에게는 《명관재목 림선달》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것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깊이 헤아리는 그의 깊은 통찰력과 인간의 륜리도덕마저 저희들의 통치수단으로 삼아 백성들을 우롱하는 썩은 관료배들에 대한 호된 비판이며 야유였기때문이였다.

그후부터 백성들은 그를 더 스스럼없이 대했고 때를 못만난 《룡》이라고들 했다. 그리고 고을원들을 비롯하여 제노라 하는 지방토호들도 그를 소홀히 대하지 못했다.

놀이배에서는 3현6각(민족기악편성의 일종)소리가 들리고 그에 맞춰 록의홍상(푸른 저고리, 붉은 치마)을 맑은 강물속에 잠그듯 비끼며 기생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도시락을 먼저 푼 농군이 선비에게 한마디 물었다.

《선다님, 듣자니 저 신임사또님의 권세가 장하신것 같은데 장차 이 고을 백성들에게 어떤 복이 되겠는지요?》

그러자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늙수그레한 농군이 선비가 대답하기 전에 직판으로 쏘아댔다.

《저 사또가 가는 곳에서는 마가을도 마른 봄이 된답데. 그의 령을 어겼다가 곤장아래 사등이뼈가 부러진 사람들이 기여서 하루밤에 백리나 간다는데 복은 무슨 놈의 복…》

이때 선비는 보기 좋은 다복수염을 쓸더니 우로 치올라간 눈꼬리에 웃음을 끌어올리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백성들의 복이라… 자, 술이나 듭세다.》

그러더니 그는 절절한 목소리로 시 한수를 읊었다.

 

점심밥을 싸들고

들역으로 나간 농부

해저물어 집에 와선

목놓아 통곡하네

 

갈기갈기 찢어진 옷

몸인들 가릴소냐

텅 빈 뒤주안에

쌀인들 남았으랴

 

어린 자식 매여달려

밥달라 울부짖되

원쑤로다 밥이 죽이

어데서 난단 말가…

 

사람들은 귀를 강구고 생각에 잠겼다.

이때 아들을 데리고 그앞을 지나가던 황봉이가 그 시읊는 소리를 귀담아듣다가 백사장쪽으로 갔다.

아들은 아버지를 따라가며 물었다.

《저 시읊는 사람도 량반인가요?》

《량반인데두 좋은 사람같구나.》

그 풀밭을 돌아보며 아들은 종종걸음으로 아버지를 따라갔다.

《선다님, 선다님덕분에 우리 놀이판이 저 배놀이판 못지 않소이다.》

아까 직통으로 쏴대던 중늙은이가 주발뚜껑에 술을 그득 붓더니 몇점의 진달래꽃잎을 띄워 림선달에게 권했다.

선비는 다복수염을 쓸고 그 술을 받아 쭉 들이켰다.

이때였다.

구경군아이들 한패가 우― 하고 풀둔덕뒤쪽의 큰 쪽가래나무 밑으로 몰려갔다.

쪽빛복건을 쓰고 멋으로 붉은 갑사쾌자를 산뜻이 걸쳐입은 아이가 완자테 두른 날씬한 갓신을 받쳐신고 우쭐우쭐 걸어가는데 그뒤를 아이들이 따라가며 속살거렸다.

《저게 사또님 아들이래.》

《어른들이 그러는데 저 열세살배기에게 열여덟살짜리 딸을 시집보내겠다구 조참봉이라는 양덕고을 큰 부자가 여기까지 와서 오늘 잔치에 송아지 두마리, 술 열독을 냈대.》

《참 한심한 세상이지.》

《너 어른들 입내 곧잘 내누나, 잉 히히.》하고 한 아이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씽긋했다.

강가에 모여선 사람가운데서는 촌훈장티가 나는 중늙은이가 옆의 친구에게 귀속말을 하듯 했다.

《저애가 저 신관사또의 신동아들이라네.》

《신동? 머리가 비상한 모양이로군.》

《그렇다네. 집에 독선생을 두고 글을 배우는데 천자문을 3년 걸려 뗐다네. 그런데 그 선생이 뉴월, 시월이라고 말을 대주자 저〈천재〉아이가 그의 턱밑에 대고 삿대질을 하면서 〈선생이라는게 륙자도 십자도 몰라? 륙월, 십월이지 무슨 놈의 뉴월, 시월이야.〉하고 소래기를 질렀다는거야.》

《앗 하하하, 륙월, 십월이라… 거 〈천재〉로군. 그래서?》

《그래서 그 훈장은 입이 쓰거워서 〈나는 이 천재를 가르칠 재목이 못되오.〉 하고 그 집에서 뛰쳐나오고말았다누만. 그런데 저 사또의 간에 붙어사는 놈들이 저애를 아예 〈신동〉으로까지 추켜올렸다누만.》

《거 혹시 자네가 그 집에서 륙월, 십월바람에 쫓겨나오지나 않았나?》

《에이, 이 사람.》

《와하하하…》

이때 조무래기들이 그 《신동》을 따라가며 또 속살거렸다.

《아니, 저치 저 쪽가래나무 까치집을 치려는거 아냐?》

아니나다를가 신임사또의 귀동자는 까치집밑으로 가서 량쪽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어가지고온 조그마한 덩어리 하나를 꺼내들더니 까치집을 향하여 힘껏 팔매질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도 못올라가고 땅에 떨어졌다.

알을 품으려던 봄까치가 제 집을 털리울 위험을 느끼자 쪽가래나무우를 날아돌며 자지러지게 깍깍거렸다.

사또님댁 도련님은 그것이 재미나는듯 그 덩어리를 련속 올려던졌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을 치고말았다.

헤멀쑥한 두부살에 새끼손가락으로 꼭 찔러놓은것 같은 뱁새눈을 반짝거리며 연신 팔매질을 하는 《신동》의 머리우를 맴도는어미까치는 더 자지러지게 깍깍거린다.

《저놈의 비단옷에 똥이나 칵 싸주려마.》

이렇게 말하며 한 아이가 달려가더니 뱁새눈이 까치집을 치다가 떨어뜨린 그 덩어리 한개를 주어들고 떠들어댔다.

《이게 뭘가? 돌멩인줄 알았더니 아니구나.》

《글쎄 이게 뭘가?》

아이들은 모여들어 그것을 돌려가며 고개들을 기웃거렸다. 굳기는 한데 돌멩이는 아니고 고기덩이같기도 한데 고기치고는 너무 딱딱하다.

한 아이가 그걸 입에 넣고 질근거리더니 《야, 이거 맛있는거구나.》하고 소리치자 아이들이 모두 그것을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어보았다.

《고기다, 고기야! 그런데 무슨 고길가?》

이때 허겁지겁 여기로 달려온 호방이 《도련님, 어서 배로 가십시다. 사또님께서 찾으십니다. 원, 이런데로 혼자 나오시다니요.》 하며 허리를 굽신했다.

그러자 뱁새눈은 우쭐해져서 아이들을 돌아보며 《흥, 산골데기들! 전복(고급조개살의 한 종류)도 모르는것들…》 하고는 허세를 부리는 수닭처럼 목을 잔뜩 곤두세우고 호방을 따라갔다.

《쌍, 저새끼…》

아이들은 들었던 전복을 팽개치고 부사아들놈을 쏘아보았다.

《아니, 전복이라니?》

《그 귀한것으로 까치집을 치다니…》

풀둔덕에 앉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아, 망할놈의 세상!》

《그 전복 하나를 따느라고 남해바다 천길물속을 목숨걸고 무잠이질한 녀인들이 저 꼴을 봤더라면 가슴을 쳤을게다.》

《전복도 전복이지만 그 아이놈 노는 꼴을 좀 보우. 고양이새끼는 배속에서부터 코수염을 달고 나온다더니 흥. 량반의 자식이랍시구…》

도시락을 먼저 풀던 농군이 머리를 흔들었다.

이때였다.

《앗, 사람 빠졌다!》 하는 아우성이 백사장쪽에서 터졌다.

백옥잔의 섬사주를 마시던 신관사또가 비류강 잉어회를 더 찾는 바람에 그걸 가지고 매생이를 타고 놀이배로 가던 관노아이가 사또님댁 도련님을 모시고 가라는 호방의 호통소리를 듣고 배머리를 돌리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매생이가 뒤집혀졌던것이다.

《빨리 사람을 건져야 한다!》

사람들이 술렁대고 구경군들과 하인들 몇사람이 강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세찬 물살에 벌써 휘말려간듯 관노아이는 찾을길이 없었다.

이때 놀이배우에서 새된 호령소리가 울렸다.

《그까짓 관노아이새끼 하나 뒈진걸 가지고 무얼 이렇게들 소란을 피우느냐?》

홍공단보료우에 도사리고앉은 신관사또의 불호령이였다.

《섬월아, 어서 노래를 불러라.》

조참봉이 섬월이에게 또 모밀눈을 끔뻑거렸다.

《이 촌계집들아, 왜 그렇게 눈깔들을 똥그랗게 뜨고만 있느냐. 어서 춤판을 못벌릴가, 앙?》

몇오리의 쥐수염을 쭝긋거리며 고함치는 신관사또의 호통바람에 깜짝 놀란 섬월이가 노래를 다시 불렀다.

 

잡수시오 잡수시오

이 술을 한잔 잡수시면

백세청춘하오리다

 

그가 어정쩡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자 배안의 록의홍상들이 일어서서 역시 어정쩡한 가락으로 춤판을 벌렸다.

바로 이때였다. 배전 물속에서 한사람이 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찾으려고 강물에 뛰여들었던 사람이였다. 몸집은 크나 애젊고 얼굴이 길죽한 소년이였다. 양덕고을 조참봉이 데리고온 칠성이라고 부르는 상노아이였다.

그는 증오의 불꽃이 튀는 눈으로 놀이배안을 쏘아보다가 부드득 이를 갈더니 놀이배의 고물을 잡고 두손으로 힘껏 잡아돌렸다.

순간 그 큰 놀이배가 기우뚱하더니 옆으로 기울어졌다.

잔뜩 틀을 차리고 앉아서 불호령을 하던 신관사또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이어 그를 떠받들듯 하고있던 조참봉의 육중한 몸뚱이가 그를 깔고 덮쳤다.

펄펄 끓는 잉어국에 이마가 벗어진 사또며 갓끈이 떨어진 량반님네들이 뒤로, 옆으로 곤두박히며 아우성을 쳤다.

자개박이 큰상에 한껏 차린 진수성찬이 뒤집혀지며 한쪽으로 넘어박혔다.

덮쌓여 쏠린 량반님들의 비명이 더 커졌다.

《비류강에 장수났다!》

백사장에 경탄의 환성이 터졌다.

《저 장수가 양덕고을 조참봉이 데리고온 상노아이라우.》

《열여섯살난 칠성이란 총각이라우. 성이 한가라던지…》

《저런 장수힘을 가지구도 사람들에게 손찌검 한번 해본 일이 없고 매를 맞고도 오히려 울기만 하던 애라우.》

백사장은 놀라와하고 통쾌해하는 소리들로 와글거렸다. 한참후에야 놀이배가 바로섰으나 배안은 란장판이 되였다.

구정물을 뒤집어쓰고 까무라치듯 했던 신관사또가 이윽고 조참봉을 걷어차고 일어나더니 테쭈그러진 통량갓을 잡고 쾌자자락에 묻은 잉어회국물을 털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백탄숯불에 쇠꼬챙이를 달궈라! 그놈의 오금단지 장심줄을 불로 지져 끊어라!》

바빠맞은 형방이 급창대신 그 말을 먼저 되받아외웠다.

《쇠꼬챙이에 불을 달궈 저 상노아이놈의 오금단지 장심줄을 지져 끊으랍신다!》

신관사또는 흔들거리는 배전을 잡고 다시 고함을 쳤다.

《저런 놈을 살려두면 후날 필연코 역적질을 할것이다. 당장 내앞에 형구를 갖추게 하라.》

《예잇! 급창, 당장 형구를 갖추랍신다!》

통인의 복창을 다시 받아외우는 급창의 길게 뽑는 목소리가 비류강우로 퍼져갔다.

《어이구, 저 상노아이가 병신이 되겠구나.》

《아, 원통한 일도 있지. 그 어린것이…》

백사장이 술렁거렸다.

풀둔덕에서 도시락을 먼저 펴놓던 농군이 달려오며 다급히 소리쳤다.

《칠성아! 칠성아…》

이윽고 삼발이 놋화로에 백탄숯의 시퍼런 불길이 펄펄 일고 긴 쇠저가락이 그 불길에 시뻘겋게 달궈졌다.

이제 신관사또앞으로 묶이워 끌려온 상노아이의 다리오금 장심줄이 시뻘겋게 달궈진 그 쇠꼬치에 지글지글 지져져 끊기우게 되는것이다. 아낙네들은 벌써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돌아섰다. 이리하여 화전놀이배는 삽시에 사람들을 전률케 하는 신관사또의 잔악한 처형장으로 되고말았다. 이때 배놀이터에 와있던 황봉이가 구레나룻을 푸들거리며 옆의 사람에게 물었다.

《신관사또옆에 바싹 붙어있는 저 메주볼 모밀눈이 양덕고을 조참봉이 분명하지요?》

그러자 그 사람은 무슨 화풀이라도 하듯 내쏘았다.

《잘 알면서 뭘 다시 묻소? 세도있는 사또님이 우리 고을에 오자 저렇게 남의 고을에서까지 달려와서 제 딸을 주겠다구 그 코밑에 바싹 달라붙었다우.》

황봉은 서둘러 아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바위야, 가자.》

그러나 아들은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싫어요. 난 더 보구 갈래요.》

《이눔아, 사람죽이는것 보고싶어서 그러느냐?》

여느때없이 두손을 와들대며 사정없이 잡아끌던 황봉은 잠시 발길을 멈추는것이였다.

모지름을 쓰듯 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아들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한아름 안고 고개를 기웃거릴뿐이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못보일것을 보이기라도 한듯 그의 손을 다시 꽉 그러잡고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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