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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장 편 소 설
박 윤
( 제 27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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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강하는 류경수군단장의 곁에서 화광이 치솟는 고지를 바라보았다. 예광탄과 조명탄의 불줄기사이로 파란 신호탄이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천지를 진감시키며 련포군의 강력한 습격타격이 811.7고지와 그 린접의 적차단물에 가해졌다. 파릿한 불줄기가 적진지로 날아가면 이윽고 굉음이 천지를 뒤흔든다. 그것은 련속 이어지면서 땅이 움씰거리며 화염이 치솟아 검은 하늘을 덮어버린다. 처음엔 귀가 멜것처럼 멍하더니 차츰 습관되여간다. 석강하와 함께 류경수군단장에게 붙잡혀 이 감시소에 눌러있게 된 박한주도 화염이 폭풍치는 전방을 묵묵히 바라본다. 얼마나 장엄한가. 석강하는 박한주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한주동무, 음악에 이걸 다 담을수 없을가?》 《석동무, 나도 그걸 생각하고있소. 교향악, 전투의 장엄한 교향악을 말이요.》 석강하는 북받치는 격정을 누를수 없어 박한주의 손을 꼭 잡았다. 이때 불시에 포소리가 멎고 감시소에 있던 몇몇 지휘관들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서슬에 석강하와 박한주도 따라나갔다. 《와ㅡ》하는 소리가 아슴푸레 들려왔다. 811.7고지를 목표로 공격출발진지를 차지하고있던 전투원들이 돌격에 진입한것이였다. 석강하는 한 지휘관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내달렸다. 총성이 콩볶듯하는 그리고 만세의 함성이 련속되는 고지로 내달렸다. 석강하의 온몸에는 이름할수 없는 희열과 기운이 태동쳤다. 그가 고지에 올랐을 때는 적의 1참호에 뛰여든 전투원들이 육박전을 벌리고있었다. 석강하는 무작정 그리로 달려가며 권총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탄에 그의 군모가 벗겨졌다. 얼결에 손을 머리에 가져가니 총탄에 머리가죽이 벗겨졌는지 땀과 함께 피가 손에 묻어났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에 피발이 섰다. 홱 몸을 돌렸다. 저쪽 은페호바닥에 두사람이 맞붙어 딩구는것이 눈에 띄운다. 석강하는 권총을 쳐든채 씽 하니 그리로 달려갔다. 철갑모를 쓴 허우대 큰 미제침략군의 등판대기가 확 눈에 안겨들자 그는 몸을 낮추며 방아쇠를 련신 당겼다. 어느새 탄창이 비였는지 철컥 소리가 났다. 미제침략군놈이 옆으로 쓰러지자 그놈과 격투를 벌리고있던 사람이 몸을 털며 일어섰다. 석강하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아니, 한주동무가?…》 박한주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 손으로 군복을 툭툭 털었다. 그에게는 총대신 수류탄 두개가 차례졌었는데 이미 써버린 상태였다. 《고맙소. 사실은 배지기로 제껴버리려댔는데…》 《허허 참, 내가 괜히 끼여들었군.…》 석강하는 웃으며 입을 다셨다. 그제야 그는 참호속에 자기와 박한주 두사람만이 남아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전투원들은 벌써 적1참호를 벗어나 고지정점으로 돌격하고있었다.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작곡가선생, 난 동무때문에 또 늦었소.》 《됐소. 꾸물거릴게 있소.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소. 날 따르오!》 박한주가 제법 결패스럽게 웨치며 앞장서 전호턱에 올라섰다. 석강하도 적의 카빙총을 벗겨쥐고 그의 뒤를 따랐다. 돌격의 만세소리는 이미 고지웃쪽에서 울리고있었다. … 석강하는 후날 박한주가 작곡한 전시가요들을 들으며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 그가 어떻게 전쟁의 열광, 승리의 함성, 전사들의 랑만을 그리도 예민하고 정확하게 감수했으며 그 좁은 오선지에 잡아넣어 시대의 교향악으로 울려퍼지게 했는가는 누구보다 자기가 잘 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자기의 《은공》도 없지 않았다고… 박한주가 창작한 《아무도 몰라》, 《해안포병의 노래》등을 비롯한 전시가요들은 힘과 용기, 투지와 랑만, 승리와 희열의 노래로 세월을 넘어 울려퍼졌다. 공화국의 한 세계프로권투선수권보유자는 경기출전때마다 그가 창작한 곡 《해안포병의 노래》를 울리며 경기장에 나가 승리하였다. 박한주는 전후 인민군문예창작집단의 한 성원으로 사업하면서 류경수의 관심과 고무속에 수령송가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를 창작하였다. 그는 공화국의 첫 세대 공훈예술가이다. 전화의 나날에 전선동부에서 인연을 맺은 두 군인, 항일혁명투사 류경수는 혁명렬사릉에, 종군작곡가 박한주는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있다. 력사가 기억하도록 위인들의 큰 심장이 이들을 영생의 언덕에 내세우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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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9월 22일 밤 1시, 예광탄과 조명탄이 엇갈려 썰어대는 검푸른 밤하늘에 드디여 854.1고지 점령을 위한 공격구분대의 돌격을 알리는 신호탄이 길게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올랐다. 적 참호밑의 돌격선까지 접근하여 은페하고있던 전투원들은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돌격해올라갔다. 아군의 811.7고지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적들이 미처 정신을 차릴새없이 일격에 시작한 공격이였다. 탄환이 핑핑 귀전을 스치고 박격포탄이 장렬하며 파편과 불과 흙비말을 휘뿌렸다. 박원진은 흑흑 숨을 몰아쉬며 신기철분대장의 뒤를 따라 무섭게 앞으로 내달렸다. 문득 귀가에 폭음과 총소리를 누르며 노래소리 같은것이 틀린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박원진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탐조등과 파렬되는 포탄의 화광에 윤애사의 군모밑으로 흘러내린 머리칼과 얼굴이 얼핏 드러난다. (용쿠나.) 그때 화선방송국에서 우렁찬 노래가 울려나왔다.
가렬한 전투의 저기 저 언덕 피흘린 동지를 잊지 말아라 …
박원진은 온몸이 훅 들리는듯 했다. 《만세!ㅡ》의 함성이 더 높아지며 전사들의 검은 물결이 노도처럼 고지를 덮쳤다. 박원진은 목이 다 쉬여버렸다. 이제는 입에서 《와!》하는 단절음만 뿜어나왔다. 적의 참호를 향해 기관단총을 휘두르며 내닫던 박원진은 《엎디라!》하는 소리에 무르춤 굳어졌다. 고지릉선의 중간쯤 되는 계선에서 강한 불줄기가 빗살처럼 날아왔다. 적의 토목화점에서 뿜어대는 불줄기였다. 《저놈들을 그저…》 조순근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신기철분대장이 그의 등을 손으로 눌러버렸다. 《가만!》 신기철의 입에서 단김이 뿜겨나왔다. 그는 묵묵히 화점을 쏴보다가 박원진과 조순근을 돌아보았다. 불이 이글거리는것 같은 눈빛이 어둠속에서 확 안겨온다. 비장한것이, 숭고한것이 그 눈빛에서 격렬하게 뻗쳐왔다. 문득 신기철이 미소를 지었다. 아니, 입술 한쪽이 약간 들렸을뿐이다. 신기철은 불쑥 몸을 일으키더니 비호같이 달려나가며 화점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콰쾅!》 온 천지가 뒤흔들리는듯싶다. 화점앞에서 눈부신 섬광이 번쩍이고 파편이 밤공기를 찢었다. 신기철이 다시 몸을 일으키며 목갈린 소리로 웨쳤다. 《당원들이여! 장군님을 위하여 돌격 앞으로!》 그의 웨침과 함께 대오가 일떠서는 순간 적의 중기화점이 다시 불질을 하기 시작했다. 돌격에로 부르던 신기철이 휘친하며 쓰러졌다. 《분대장동지!》 목이 터지게 웨치며 일떠서는 박원진의 군복자락을 조순근이 움켜쥐였다. 그순간 쓰러졌는가싶던 신기철이 불사신처럼 몸을 일으키며 웅글진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당원들이여, 날 따라 앞으로!》 신기철분대장이 육탄이 되여 날아들어 불뿜는 화구를 막자 적화점에서 불줄기가 뚝 멎어버렸다. 엎드렸던 병사들이 일제히 솟아나 성난 사자들처럼 고지의 릉선을 향하여 질풍같이 달려갔다. (분대장동지!… 세포위원장동지!… 이 피값을!… 쓰러진 전우의 원한씻으러…) 박원진은 입술을 악물고 내달렸다. 눈에서 불이 펄펄 일었다. 악악하며 적 참호에 뛰여들어 기관단총을 휘둘러댔다. 미제침략군 1참호를 점령한 구분대는 고지정점을 향하여 공격성과를 확대해나갔다. 예광탄의 퍼런 빛이 하늘을 마구 썰고 화염방사기의 불줄기가 휙휙 단풍든 잡관목들을 끄슬리며 지나간다. 익측과 린접에서도 공격전투가 한창 벌어져 854.1고지는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박원진은 달리면서 탄창주머니를 뒤져 새 탄창을 꺼내들었다. 목에서 쇠비린내가 훅훅 올리치밀고 군복잔등은 땀에 젖고 불에 타버려 몸에 가드라붙은것 같다. 그래도 달렸다. 탄알이 스쳐지나간 오른쪽허벅다리에서 물같은것이 줄줄 흘러내려 군화등을 적신다. 고지정점가까이에서 구분대의 돌격은 또다시 좌절되였다. 은페된 나지막한 바위사이에서 새로운 화점이 검질기게 불을 토했던것이다. 전사들은 그 자리에 엎디여 일제히 화력을 집중하였다. 기관단총들과 경기관총이 맞받아 불질을 한다. 하지만 견고한 화점은 끄덕도 안한다. 수류탄을 던졌으나 투척거리가 모자란다. 박원진은 전투대오의 맨앞 바위츠렁밑에 엎드려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적화점을 쏘아보았다. (우리 분대장동지가 목숨으로 연 돌격로가… 당원동지들이 앞장선 이 길이… 채순아, 우린 김장군님령도를 받는 공화국의 민청원이지… 옥호동샘물을 지켜줘.… 어머니, 난 꼭 당원이 되고싶어요. 부디 몸성히 계세요.) 박원진은 온몸에 휩싸이는 강력한 힘의 후광을 느꼈다. 그는 땅을 차며 몸을 일으켰다. 《민청원들이여! 로동당원들의 뒤를 따라 앞으로!…》 박원진은 거인처럼 일어나 쨍쨍한 목소리로 웨치며 적화점을 향하여 달려갔다. 열여덟살의 불타는 가슴으로 적화구를 막았다. …854.1고지정점에 온통 탄알과 파편구멍이 숭숭한 공화국기가 포연속에 세차게 펄럭이였다. 조순근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박원진에게로 리만희대대장과 윤애사 그리고 석강하와 박한주가 달려왔다. 《박원진이, 눈을 뜨오! 우린 승리했소. 단 40분동안에 고지를 점령했단 말이요! 응?…》 리만희가 박원진의 군복자락을 와락 걷어쥐고 흔들었다. 《원진이, 우린 이겼어. 어서 장군님께 승전의 보고를 올려야지.》 군모를 벗어든 조순근이 손등으로 눈굽을 훔쳤다. 훔치고 또 훔쳐도 눈물은 그냥 투박한 손등을 따라 줄줄 흘러내렸다. 윤애사가 조용히 다가가 박원진의 손을 잡았다. 《원진동무, 어서 눈을 뜨세요. 골짜기의 샘우물이 우리것이 되였어요.》 윤애사의 화염에 끄슬린 얼굴에서도 맑은것이 방울방울 떨어져 박원진의 군복앞섶을 적신다. 그 순간 박원진이 불쑥 눈을 뜨고 리만희와 윤애사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 전선의 밤하늘이 그대로 비껴 파들거린다. 《애사누이, 이젠… 그 샘우물맛을… 직접 가보세요.… 좋은 시를…》 박원진은 웃으려 하였다. 했으나 그 웃음은 그만 중간에서 영영 굳어져버리고말았다. … 종군녀류시인 윤애사는 854.1고지전투가 끝난 후 조순근부분대장과 함께 그 샘우물앞에 오래도록 서서 떠날줄 몰랐다. 그는 차마 그 샘물을 마실수 없었다. 전선사령부에 가있는 심봉운에게 주려고 군용물통에 그 샘물을 담으려 하였다. 그러나 채 담지 못한채 주저앉았다. 뭔가 기약도 없이 심장을 쾅쾅 두드렸다. 샘물을 두고 하던 박원진의 말이, 그의 고향 약수터에 대한 말이 귀전을 울렸고 죽으면서도 빛을 잃지 않던 그의 맑은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러자 전선길을 다니며 무수히 마주쳤던 샘물과 박우물과 실개천들이 눈앞을 스치였다. 대학시절의 농촌 우물가, 빨래방치소리… 거리를 달리는 전차들과 들꽃송이들… 물보라… 웃음소리… 샘우물 한옆에 쭈그리고앉아 마라초를 뻑뻑 빨던 조순근이 정신나간 녀자처럼 눈을 번뜩이는 윤애사를 걱정스레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윤애사는 도툼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샘우물과 이어진 아름다운 지향과 랑만을 두고, 래일의 꿈을 안고 한목숨 바친 전사들의 위훈을 두고 그는 《결전의 길로》와 같은 무게있는 작품을 쓰려고 결심한것이다.… 그 순간 가보지 못한 곳, 가고싶었던 곳, 박원진전사가 늘 외우던 옥호동 약수터… 그 잔디푸른 약수터의 전경이 그냥 눈앞을 맴돈다. 모진 진통속에, 몸부림속에… 며칠후 서정시 《약수터에서》가 전선신문에 실렸다. 이것은 혁명적락관주의에 기초한 비장성도 전사들의 대중적영웅주의에 대한 격찬도 아니였다. 발랄하고 따뜻하고 랑만적인 색조가 고향을 그리는 젊은 병사의 뜨거운 정을 내뿜었다. 애젊은 청춘들은 그렇게도 아름답고 찬란하고 억센 삶을 꿈꾸고 사랑했던것이다. 윤애사는 자기의 손을 잡은채 눈을 감은 박원진전사도 그러한 희망차고 밝은 시를 열렬히 바랐을것이라는것을 충심으로부터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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