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10. 후백제를 치고 신라를 보호하다

 

927년 새해에 들어서자 후백제는 또다시 신라를 괴롭히기 시작하여 하나, 둘 신라의 성들을 빼앗아낸것이 어느새 10여개를 넘기고있었다.

신라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한 고려의 체면을 여지없이 깎아내리며 한껏 조롱하고있는것이였다.

격분한 왕건은 5천의 기마군을 이끌고 직접 출병하여 후백제가 차지한 신라의 룡주(경상북도 례천)를 불의에 들이쳐 탈환해냈다.

신라를 쥐기 위한 싸움에서 후백제에 주도권을 떼워서는 안될 일이였기에 왕건은 군력을 정비한 뒤에 봄철에 접어들자마자 다시금 운주성너머 금강 남쪽으로 공격을 개시하는 한편 수군으로 후백제의 남해 끝 강주(경상남도 진주)를 치게 했다.

정주포구를 떠난 고려수군은 수군장수 영창과 능식의 지휘밑에 라주와 목포에 은밀히 내려가 병력과 식량을 보충한 뒤 불의에 강주를 들이쳐 점령해버렸다. 강주뿐아니라 그 주변의 돌산(전라남도 순천), 서산, 전이산(경상남도 남해군)까지 함락시켰다.

등뒤를 떼운 견훤은 불에 덴 황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시각 모사 간무는 견훤에게 강주는 내쳐두고 서라벌로 진격하자고 부추겼다. 이것은 그가 오랜 기간 고심한 끝에 내린 방안이였다.

견훤은 처음엔 이 안을 반대했으나 서라벌을 쳐서 신라를 후백제의 속국으로 만들면 고려로부터 신라를 떼내는데서 후백제가 선수를 차지하게 된다는 설명에 응해나서고말았다.

후백제의 간무는 서라벌공략을 성공시키기 위해 실로 무모한 모험과 희생도 서슴지 않았다.

왕건은 후백제의 강주땅이 수중에 들어오자 웅진 남쪽방향으로의 공격은 잠시 멈추고 장수 김락을 시켜 벼락같이 후백제의 동쪽변방인 대야성을 쳐서 점령하게 했다.

대야성은 견훤이 네번째만에야 점령했던 성이였다. 견훤은 간난신고끝에 신라로부터 빼앗아낸 대야성에 자기 장수들중에서 제일로 치는 추허조를 보내여 지키게 했었다. 룡상에 오른 직후부터 신라의 대야성을 떼내려고 견훤은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 그 대야성이 고려의 수중에 다시 들어가는것을 보면서 견훤은 참아야 했다. 간무가 집요하게 설득을 시킨것이였다. 고려의 이목을 그쪽으로 끌어다놓고 불의에 서라벌을 쳐야 한다는것이였다.

아닐세라 고려는 감쪽같이 속아넘어갔다.

고려가 대야성을 점령한 뒤 추허조의 시체를 완산주로 날라다주었을 때에도 견훤은 간무의 애원에 애써 눈물을 흘리며 참았다.

신라의 고사갈이성 성주인 흥달이 고려로 귀순하고 그 부근 성주 여럿이 잇달아 후백제를 배반하고 흥달을 뒤따라 고려로 넘어갔을 때에도 견훤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적당히 군사를 파하여 고려군이 남으로 진격하는것을 막게 하였을뿐 그 이상으로 공격해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고려가 후백제의 서라벌공격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것이였다.

정작 서라벌정벌을 떠나는 이해 9월에는 일부 력량으로 신라의 북쪽변방인 근품성(상주)을 치게 하여 고려군을 유인했다.

간무는 첩자들을 시켜 견훤이 서북방향으로 해서 송악으로 쳐들어 가려 한다는 《정보》까지 루설하는 연막을 쳤다.

간무는 고려의 이목을 완전히 따돌리고서야 서라벌공격을 개시하게 했다.

견훤의 서라벌공격은 성공했다.

간무는 신라조정에 반감을 품고있던 왕족 김경렴을 내세워 그의 길안내까지 받으며 신라가 숨돌릴사이도 없이 번개처럼 서라벌을 타고앉아버렸다.

신라 경애왕은 주연에 빠져있다가 체포되여 견훤앞에 끌려나왔다.

그와 함께 왕자들과 왕비, 빈첩들이 갈가리 옷을 찢기워 알몸을 드러낸채로 견훤앞에 내동댕이쳐졌다.

견훤은 포석정 뜨락우에 올라앉아 주런이 엎어져있는 서라벌왕족들을 내려다보았다.

(이것들이 고려왕족들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고려가 내 발밑에 엎드려 빌며 조공하게 하였으면 좋으련만 그건 바랄수가 없는 일이로되 이 신라놈들이 고려에 가붙는것만은 참을수가 없구나.)

생각이 이에 미치자 견훤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였다.

《이 천하에 몹쓸 신라놈들아! 어서 내앞에 술을 쳐라!》

견훤의 강박에 경애왕은 눈물을 흘리며 견훤에게 술을 쳤다. 왕자들과 왕비, 빈첩들도 각기 제앞에 마주앉은 후백제장수들에게 술을 쳤다.

《너희들은 그래도 다행인줄 알아라. 우리 의자왕께선 임금도 아닌 남의 나라 장수에게 술을 부으셨으니 그 치욕을 너희들에게 비길소냐? 너희 신라놈들은 언제 가면 남의 나라를 등에 업는 그 못된 버릇을 고치겠느냐, 이 더러운 종자들아! 으흐흐흐…》

견훤은 눈물을 흘리며 격분에 몸을 떨었다.

(의자대왕마마! 부디 한을 푸옵소서!…)

견훤은 술대접을 단숨에 비우고 포석정 돌바닥에 깨치였다.

그리고는 경애왕의 발치에 칼을 내던졌다.

《네 어찌 살기를 바라느냐, 어서 네 스스로 목을 베여라!》

입을 앙다문 경애왕은 천천히 칼을 집어들었다.

《내가 오늘 너를 벌하는것은 신라를 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들이 고려와 손잡는것을 막으려 함이다. 그걸 알고 죽어라!》

견훤이 부르짖자 경애왕의 눈이 치떠졌다.

《그대의 명도 오래 가지 못할것이요. 옛날에도 사로잡은 적국의 왕은 죽인적이 없는것으로 나는 아오. 그런데… 역시 그대는 삼국통일의 주역이 될수 없는 존재였구려. 그대는 후날 꼭 고려왕에게 가서 죽을것이요. 반드시 그렇게 될것이요, 하하하…》

말을 마친 경애왕은 스스로 목을 베여 자결하였다.

그의 목에서 피가 뿜어나오며 포석정뜨락을 적시였다.

포석정뜨락이 울음바다가 되였다.

견훤은 신라왕의 빈첩들과 궁녀들을 서렬에 따라 수하장수들에게 나눠주었다.

견훤자신은 신라왕의 왕비를 취하였다.

이날 밤 서라벌도성안팎은 부녀자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후백제군사들은 서라벌도성안팎을 누벼가며 부녀자겁탈로 밤을 새웠다.

견훤은 싸움에서 이기고난 뒤면 무조건 점령지의 녀자들을 유린하게 했다. 후백제군사들은 이에 완전히 버릇되여있었다. 견훤은 군사들을 고무하는 용병술의 일종으로 이를 장려하였지만 이것은 군대의 도덕수준의 저하를 보여주는것외에 아무것도 아니였다.

싸움의 승패는 군사의 수와 지략과 함께 그의 도덕수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는것을 견훤은 알지 못하고있었다.

신라도성을 유린한 견훤은 다음날 황급히 철수해갔다.

왕건이 지금쯤이면 알아차리고 달려올것을 예견해서였다.

허겁지겁 철수해가는 혼잡속에서도 견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다 먹은 떡이였는데… 그대로 눌러앉아 왕건과 겨루어보는 수가 아닐가. 여기 앉아서도 왕건을 사로잡을수 있음직한데…

이런 생각이 머리속을 감돌았다.

허나 견훤은 알고있었다. 분노한 왕건이 사생결단하고 접어들것인즉 서라벌을 지켜낸다는것이 말처럼 쉽지 않으리란것을…

오히려 제가 묻힐 묘자리나 잡아놓는 꼴이 되기 십상일터였다.

신라로 출전한 후백제군사들의 대부분은 공산근방에 머물러있는터라 고려군이 서라벌을 포위하고 좁혀들면 수적으로 약한 견훤은 그를 당해내기 어려운것이다. 먹기는커녕 자칫하면 먹히우고말 판이였다.

아무리 서라벌을 먹고싶어도 지금은 참아야 했다. 먹어도 왕건을 사로잡은 다음에 맘놓고 먹어야 할 일이였다. 그렇게 작당을 하고나선 걸음이여서 견훤은 이를 사려물고 물러가는것이였다. 물러가면서도 견훤은 적지 않은 신라의 보물과 쟁인바치들을 후백제로 끌고갔다. 그리고 신라조정의 친고려세력을 무자비하게 제거해버렸다.

왕위에는 왕족중에 그중 온건파로 보이는 김부를 앉히였다. 그에게서 고려와의 단절과 후백제에 대한 조공을 약속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견훤이 떠난 후 김부는 살아남은 대신들앞에서 자신의 왕위를 사양하였다. 살아남은 왕족들과 대신들이 하도 간청해서야 할수없이 그는 왕위를 수락했으니 그가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이였다.

왕건은 후백제군이 신라의 근품성(경상북도 상주)을 공격하였다는 소식에 분개하였다. 대야성을 떼운 뒤 주눅이 들줄 알았는데 어느틈에 그 웃쪽을 또 넘겨다본단 말인가. 그 즉시 군사를 이끌고 근품성으로 달려가 보기 좋게 후백제군을 치고 그 기세로 고을부(경상북도 영전)까지 치달아내려온 다음 왕건은 잠시 주춤했다. 후백제장수 박영규와 지훤이 이악스레 맞서는 모양만 보일뿐 견훤이 보이지 않는데 의심이 갔던것이다.

그가 어디로 빠져나갔을가. 어디 가서 무슨짓을 하는걸가.…

이틀이 지나서야 왕건은 견훤이 신라왕궁을 유린한것을 알게 되였다.

《천하에 불법무도한 견훤이로다. 이번엔 진짜로 그에게 버릇을 가르쳐야겠다. 출전하라!》

왕건은 견훤이 공산(대구부근)으로 철수경로를 잡고있다는 보고를 받자 그리로 군사를 이끌고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은 함정이였다.

후백제의 모사 간무가 서라벌공략에 뒤이어 이어질 왕건의 움직임까지 타산하고 이곳에 거대한 매복진을 펴놓고있었던것이다.

그는 이번 서라벌공략작전을 짤 때 왕건을 없애치울 두번째 방안까지 면밀히 세워놓았다. 견훤의 퇴로를 우정 루설함으로써 격분한 왕건이 목표를 본 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것이라는것을 타산하고 유도한것이였다.

그런줄도 모르고 신라의 종심깊이로 내려온 왕건은 공산부근 등주계곡에 진을 치고 견훤이 오기를 기다렸다.

고려군은 후백제군의 다른 한 부대가 이 계곡의 막치기에 있는 은해사와 미리사란 절간 뒤산에 미리 진을 치고 기다리는줄은 꿈에도 알지 못하였다.

서라벌에서 돌아오는 견훤의 선두부대가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고려군은 첫 화살을 날려보지도 못하고 등뒤로부터 미리 대기하고있던 다른 후백제군사들의 공격을 받게 되였다.

견훤이 속해있는 서라벌정벌군이 계곡의 동쪽입구에서 달려오던 그 기세로 몰아붙이고 계곡의 량쪽산을 차지하고있던 후백제군이 각기 북남쪽에서 공격해 내려왔다.

고려군은 계곡의 서쪽으로 밀리우기 시작했다.

신숭겸(능산)과 배현경, 김락 등 고려장수들은 왕건을 에워싼채 퇴각을 거듭했다.

저녁에 시작한 전투가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계속되였다.

날이 밝자 사태는 명백해졌다.

고려군은 완전히 계곡에 갇히여있었던것이다.

후백제군에서는 사기를 올리며 공격을 거듭해왔다.

《왕건을 죽이면 전쟁이 끝난다, 왕건을 사로잡으라!》

후백제장수들이 웨치는 소리였다.

후백제군은 왕건을 사로잡는것을 오늘싸움의 목표로 하고있었다.

왕건의 얼굴도 피칠갑이 되여있었다.

사태는 험악했다. 모든것이 끝장날판이였다.

《어떻게든 페하를 살려야 한다! 숭겸, 술희장수는 페하를 옹위하고 빨리 북쪽산으로 오르라! 공헌, 김락, 손행장수들은 나와 함께 적을 막을것이다.

군사들!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있다. 우리가 죽기로 싸우면 페하는 안전할것이고 페하가 안전하면 고려가 안전할것이요, 우리 부모처자가 안전할것이다.

고려의 부흥을 위하여 앞으로!》

배현경이 소리지르며 말을 몰아나가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나머지 고려군사들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형세는 역전될수 없었다.

후백제군은 오직 왕건만을 겨누어 활을 쏘고 창을 던졌다.

날이 밝았으므로 왕건의 모습이 적진에 환히 드러났던것이다.

숭겸이 잽싸게 왕건을 부둥켜안았다.

《왜 이러느냐?》

왕건이 몸을 뒤틀자 숭겸이 부르짖었다.

《페하! 잠시동안만… 제가 페하가 되겠사옵니다.》

《뭐라구?》

숭겸은 무작정 왕건을 끌어안고 바위뒤로 뒹굴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왕건의 방포를 벗겨내여 제 어깨에 걸쳐매고 왕띠까지 풀어내여 제 허리에 맸다.

《페하! 나를 막지 마소이다. 나는 장부답게 죽을 곳을 찾았으니 아무 여한이 없소이다. 페하는 고려의 하늘임을 명심하소서! 하늘이 무너지지 말라고 내 먼저 가는것이니 이 동생을 웃으며 바래주시오이다. 어서 그 투구도 마저 주시오이다.》

《아우야! 아니된다. 그러지 말아!》

《어서 그 투구를… 에익!》

숭겸은 왕건의 금빛투구까지 벗겨내였다.

《형님! 아우의 하직인사를 받아주소서!》

숭겸은 투구를 안은채 절을 했다. 그의 얼굴에 눈물이 비오듯 했다.

《숭겸아!…》

왕건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였다.

《술희야! 페하를 부탁한다!》

왕건의 투구까지 눌러쓴 숭겸은 왕건의 말에 올랐다. 그리고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씽하니 내달렸다.

《고려왕이 나타났다!》

《왕건이다!》

후백제의 진중에서 고함소리가 터졌다.

잠시 종적을 잃고 허둥대던 후백제군사들이 벌떼마냥 덮쳐들었다.

신숭겸의 청룡언월도가 번개불을 일쿠기 시작했다.

견훤은 새벽안개발이 서려들어 전장이 잘 보이지 않자 절 가까이로 말을 몰아 달려나왔다.

왕건(신숭겸)의 모습을 다시 띄여본 견훤은 흠칫했다.

가슴이 쿵당거리고 정신마저 아뜩해지였다.

이젠 왕건을 잡았구나! 후백제가 이겼구나!

그는 너무도 흥분되여 얼이 나갈 지경이 되였다.

(실컷 내쳐두어라. 네가 죽여야 얼마를 죽이겠니. 까짓 후백제군 백천을 죽여도 아까울게 없다. 왕건, 너만 잡으면 된다. 너만 잡으면…)

그러나 왕건은 쓰러지지 않고 전후좌우로 말을 달리며 후백제군사들을 삼대베듯 쓸어눕히고있었다.

실로 그 위용이 장하고나!

이런 생각이 들자 견훤은 흠칠했다.

정작 살아있는 왕건을 대하는 경우 그를 죽이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큰 산이 큰 산을 보는 법이라고 그의 출중함을 견훤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경애왕이 죽으면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적국의 왕을 사로잡은 뒤엔 죽이지 않는 법이라고 했던가.… 그가 하던 말이 뇌리를 찔렀다.

견훤은 그 순간 자기가 왕건을 사로잡으면 죽이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그럴바엔… 견훤은 장수들에게 나직이 일렀다.

《고려왕을 사로잡지 않아도 된다. 그의 목을 베게 하라! 고려왕의 목을 베는 군사에게 완산주 령주의 직을 주리란걸 알려라!》

그 소리에 후백제군사들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숭겸은 기운이 진하고말았다.

(이제는 페하가 어지간히 빠져나가셨을테지… 형님! 부디… 강녕하소서!…)

송악쪽 하늘을 바라보는 숭겸의 얼굴에 여한이 없는 미소가 어려있었다.

숭겸은 쓰러졌다.

견훤은 제 앞에 가져온 시신의 얼굴이 왕건이 아닌것을 보고 놀랐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견훤은 길길이 뜀 뛰며 통분해했다. 왕건이 빠져나간것이였다.

《빨리 추격하라!》

후백제군사들이 다시금 창을 꼬나들고 흩어져갔다.

… 술희는 왕건을 호위하면서 백리길을 내처 내달렸다.

나흘전에 둔치고있던 고을부까지 와서야 유금필과 만날수 있었다.

금필은 왕건이 근품성으로 출병하면서 송악에 떨구어놓았었다. 발해유민을 받아들이는 일을 비롯해서 북방의 일처리도 적잖았기때문이였다.

왕건이 출정한 다음 금필은 북방의 일을 보는 속에서도 최지몽과 함께 가슴을 조이며 남쪽만 주시했다.

며칠이 지나 견훤의 서라벌정벌소식을 듣고서야 이들은 무릎을 쳤다.

(백제가 무서운 계략을 꾸미고있구나! 우리 대왕님을 노엽혀서 울밖으로 끌어내여 죽이자는것이다.)

둘의 생각은 일치했다.

금필은 그 즉시 응원군사를 이끌고 밤낮을 이어대였다.

허나 금필이 고을부까지 내려왔을 때에는 이미 운명의 공산전투가 끝난 뒤였다.

금필은 왕건의 발치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이 무슨 변고였단 말인가! 고려가 끝장을 볼번 하지 않았는가!

《술희 이놈아! 너 정신이 있는 놈이냐? 에이익!…》

금필은 처음으로 술희의 얼굴에 손을 댔다.

《금필형님! 내가 죽일놈이외다. 내가… 내가 페하를 저 지경이 되게 하고 능산형님마저 죽게 했소이다.》

술희도 대성통곡을 하였다.

《네놈들이 내가 죽지 않은것이 마땅치 않아 곡을 하고있는거냐, 지금!》

왕건이 버럭 욕설을 터뜨렸다.

《?!…》

그 소리에 술희는 울음을 멈추었다.

《난 아직은 살아야겠다. 숭겸아우가 부탁하였느니라. 저는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한다고, 우리가 시작한 일을 끝내야겠기에 그랬을테지. 그러니 울어도 일을 끝내고서 울자. 알아들었냐?》

왕건의 목소리는 비분에 떨고있었다.

《알아들었소이다, 페하!》

모두가 왕건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고려군은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귀로에 올랐다.

희생이 컸다. 고려가 생겨 처음 당하는 큰 패배이고 처음 당하는 큰 희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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