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궁예가 왕건을 다시 끌어올린데는 제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왕건이 라주로 떠나간 뒤 태봉국(그사이 궁예는 국호를 《마진》대신에 《태봉》으로 바꾸었다. 911년으로 기록되여있다.) 조정안에서는 서로 물고뜯는 세력다툼이 나날이 더해가고있었다.

그중에서도 가려와 아지태의 싸움은 처절했다.

오늘밤 아지태가 상소를 하면 다음날 가려가 또 맞받아 상소를 했다. 이들의 암투의 골자는 조정대신들에 대한 파직과 등용이였다. 가려가 천거한 인물은 아지태에 의해 어김없이 부결되고 아지태가 천거한 인물은 또 가려에 의해 부결을 맞군 하였다.

궁예는 이들 둘사이의 암투가 끝없이 확대되여가자 더는 참지 못하고 결단을 내리였다. 왕건을 데려다 이들의 머리우에 앉혀놓아 궁예 자기쪽에 한계단 거리를 두게 하는것과 동시에 왕건을 통해 국정을 장악하고 두 인물도 단속하게 하려는것이였다.

궁예가 왕건을 통해서만 자기를 만나게 해놓음으로써 아지태와 가려는 이전처럼 궁예에게 쌀뒤주에 쥐 드나들듯 들락날락거릴수가 없게 되였다.

할수없이 이들은 우선은 왕건을 거치는 절차에 복종하였다. 왕건은 이들이 무엇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궁예를 만나려 하는지를 손금보듯 알게 되였다.

왕건은 이왕에 앉혀놓은 자리를 지킬바엔 온전히 지켜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이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문책하거나 처형, 파직하려고 하는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사리를 밝힐것은 밝혀가면서 따지고 퇴짜를 놓았다.

태봉조정의 형사소송이 비로소 바로잡히기 시작하였으며 관료들과 백성들은 다같이 왕건을 칭찬해마지않았다.

소란하기 그지없던 태봉조정이 다소 안정을 찾은듯싶었다.

이 기회에 살고난것은 궁예였다. 가려와 아지태를 떼여버린 궁예는 조정일은 왕건에게 맡겨버리고 또다시 자술경에 심취되여가기 시작했다. 자기를 석가와 대등한 지위에 올려세워 민심을 그러안아보려는 망상이 되살아오른것이였다.

태봉국조정이 안정되고있다는 소식에 더더욱 약이 오른 간무는 흉한 소문돌리기와 자객에 의한 쇠두레교란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벌려나갔다.

그가 들여보낸 자객들이 송악의 왕건과 금필의 집들을 기습한것도 이즈음이였다.

간무는 송악에 파견하는 자객들을 엄선하였지만 그토록 날고긴다는 작자들이 다 성공하지 못하였다. 문제는 송악성이 견고한데다 왕건의 가병들이 경비를 철통같이 서고있는데 있었다.

송악은 왕궁으로 지은 도성이다보니 외성, 중성을 거쳐서야 내성에 있는 왕건의 집에 들어갈수가 있었다. 도성의 구조가 거대하고 복잡한데도 있었지만 왕건의 가병들이 원체 몸놀림에 빈틈이 없고 주인을 위해서는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런 각오를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왕건은 가병들의 가족들도 도성안에 거처하게 하였는데 이것은 곧 그들이 왕건을 지키는것이 자기 가족과 자신을 지키는것으로 되게 하였던것이다.

이런 곳으로 서뿔리 들어온 후백제자객들이 견딜리 만무했다. 성안으로 들어왔던 자객들은 성공하지 못하고 잡히게 되자 독약을 먹고 모두 자살해버렸다. 간무가 지독하게 키운자들이였다. 밖에서 망을 보던 한명의 자객만이 겨우 도망쳐가서 실패한 사실을 보고하고 역시 자살하고말았다.

간무는 하늘이 또 왕건을 도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이번 기회에 왕건가족과 금필의 가족을(금필의 부인은 왕건이 네 가족과 나란히 이웃하고있었다.) 없애버림으로써 왕건에게 정신적타격을 주고 기를 꺾어놓으려고 하였었다.

송악에 있는 왕건의 집이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즉시에 궁예에게 보고되였다. 놀란 궁예는 그날로 왕건과 금필의 가족을 쇠두레도성안에 들어와 살도록 조처했다.

이 좋지 못한 소식은 라주에 있는 금필의 귀에도 날아들었다.

금필은 은근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싸움에서 진 분풀이를 하고있구나!)

금필은 견훤이 계속해서 또 무슨짓을 할런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했다.

(이럴 때 또 한번 견훤의 뒤통수를 후려치면 버릇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금필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을무렵 쇠두레에서 군령이 내려왔다. 궁예가 내린 명령이였다. 금필에게 무진주(광주)로 공격해나가라는것이였다.

금필은 견훤을 치라는 명령은 반가왔지만 지대가 무진주인데는 마음이 흐려졌다. 순서로 보면 라주 다음 차지해야 할 곳은 무진주가 옳았다. 무진주는 완산주 다음가는 후백제에서 두번째로 큰 고을이였다. 거리상으로 보나 방향으로 보나 무진주가 다음번 공략대상으로 되여야 하는것은 기정사실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태봉의 군사력이 모두 동원될 때라야만 가능한것이였다. 금필이 현재 가지고있는 라주 수비군사로써는 너무나도 힘에 부친 거의나 불가능한 일이였다.

그러나 궁예는 명령하고있었다.

금필은 라주 아래인 강진이나 라주서북인 령광을 치라면 성큼 나서겠지만 무진주를 치라는 령에는 주저되는바가 없지 않았다. 그것은 무진주를 차지한다 해도 그다음이 문제였기때문이였다.

지금까지는 서해를 등지고 목포에서 라주까지 남북으로 차지하고 동쪽으로는 령암앞까지 차지하여 동서남북으로 방어종심을 형성하게 되여있어 지탱할수가 있었다. 이제 무진주를 차지하면 그것은 후백제의 가운데로 가냘픈 팔 하나를 내민 격이 되는데 그것은 언제든지 잘리울수 있는것이였다. 잘리우지 않으려면 좌우로 계속해서 땅을 넓혀야 하는데 그것은 후백제라는 한개 나라와 라주라는 일개 변방과의 대결을 요하는것으로서 전혀 승산이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궁예의 명령은 이미 내려졌다. 왕명이였다.

금필은 전력을 기울여 무진주를 공격했으나 무진주는 깨여지지 않았다.

간무가 달려와 지원을 한것이였다.

후백제는 무진주가 깨지는 경우 잘못하다가는 남북으로 두동강날수 있는 위험이 있었던것이다.

금필은 사흘을 공격한 끝에 돌아서고말았다. 력량이 소모되면 자칫 라주까지 방어할수 없게 되기때문이였다.

금필은 이번 무진주공략명령을 궁예가 직접 내린것에 주의를 돌리였다. 왕건이라면 이런 무모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것이였다.

그렇다면 여기에 무슨 곡절이 있는것이 아닐가.…

어쨌든 금필은 라주방어라는 큰 임무에 무게를 싣기로 했다. 무진주공략이란 작은 임무에 지나치게 맥을 뽑아 라주전체를 잃는다면 그것은 돌이킬수 없는 실패로 되기때문이였다.

금필은 이 시각 자기는 왕건에게 복종하는 사람이지 궁예에게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굳히게 되였다.

금필은 자기에게 내려진 무진주공략명령이 궁예의 시기심에 의한것이라는것을 알수 없었다.

한동안 자아도취에 빠져있던 궁예는 조정이 조용한것에 주의가 갔다. 가만히 살펴보니 왕건이 정사를 착실하게 보고있는것이였다. 질서가 정연하고 백성들은 태평성대까지는 몰라도 당장의 호구지책에는 큰 문제가 없는듯 만족해하고있었다.

피를 물고 드잡이를 하던 가려와 아지태도 어찌된 조화속인지 침먹은 지네모양 왕건앞에서는 량수거지가 아주 단정하였다.

궁예 자기앞에서 침방울을 튕기고 마루바닥을 치던 살기찬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궁예는 다시한번 왕건에게 탄복하였다. 그러나 탄복은 즉시에 시기로 이어졌다.

(왕건이 저렇듯 출중할진대 언제 나를 밟고 올라서자고 할지 누가 알랴.)

생각이 이에 이르자 궁예는 그제야 가려가 리해되였다. 그는 시종일관 왕건을 경계하라고 궁예 자기에게 간하여왔었다. 그것은 바로 가려 그가 왕건의 우월함을 잘 알고있고 궁예 자기가 그에 뒤질가보아 념려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는것이였다.

내가 왜 그의 마음을 몰랐을가.…

궁예는 다시금 가려를 불러들여 국정을 의논하기에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가려는 활기를 얻고 다시 일어섰다.

아지태가 그만 환장을 할 지경이 되였을즈음 궁예는 아지태마저 또다시 내전으로 불러들였다.

두 모사가 다시금 뜀뛰기를 하고나서자 조정도 다시금 풀떡풀떡 끓기 시작했다.

궁예는 왕건의 부장인 유금필의 명성도 시기했다.

그가 왕건의 밑에 있는데 만족하는 사람이기망정이지 다른 마음만 먹었다면 또 하나의 왕건이 될수 있는 인물이였다. 그런 그가 왕건에게 붙어있어 가뜩이나 비대한 왕건을 더욱 살찌워주고있다고 생각한 궁예는 어떻게든 금필을 깎아내리고싶어 무진주공략이라는 힘겨운 싸움명령을 가볍게 내리였던것이다.

궁예가 예견한바대로 금필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다른 때 같으면 신경을 곤두세웠을것이나 궁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였다. 왜냐면 금필의 패배 그자체가 궁예에겐 즐거움이였던것이다. 왕건의 체면을 조금이나마 깎아내린것으로 하여 깨고소한 기분에 사로잡힌 궁예는 그만 금필을 처벌해야 한다는것도 잊어버리고말았다.

궁예는 금필에게 무진주를 공격하라고 령을 내린 사실을 왕건에게는 일체 내색하지 않았었다. 며칠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왕건은 은근히 긴장해졌다. 궁예가 자기를 보는 시각이 이리저리 달라지고있는것을 육감으로 느낀것이였다. 하여 그는 온전한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면서 뭐든 궁예보다 모자란다는것을 알리는데 적지 않은 수고를 하군 하였다.

궁예가 자기를 거치지 않고 가려와 아지태를 찾아도 모르는척 했으며 하루고 이틀이고 궁예가 찾든말든 그저 자기 시간에 나가고 자기시간에 집으로 갔다.

그러나 형사소송건에 한해서만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고 관심했다. 백성들이나 벼슬아치들이나 억울한 사정이 생기면 왕건에게 상주했다.

왕건은 또한 자기가 군사에서 손을 뗀것으로 궁예가 리해하지 않도록 하는데도 신경을 썼다. 그는 궁예에게 금필이 피로하였으므로 좀 쉬게 해야겠다고 제기하여 불러올리고는 그와 나란히 보란듯이 송악이나 정주로 순찰을 나가 수군을 포함한 송악의 군사가 왕건자신의 수하임을 시위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궁예가 어떻게 나오나 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왕건은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 태봉의 마군장들과도 내놓고 어울리면서 친교를 두터이 했다. 원래는 이들이 이미전부터 왕건자기에게 마음을 돌리고있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주위가 그렇지 않아 자주 모여앉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금필이로부터 너무 몸을 사리고있을 필요는 없을것 같다는 조언을 들은 뒤부터 행동거지를 바꾸었다. 이들과 마주앉는 기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군 했다. 시중으로서 저녁 여가에 그쯤한 모임은 무리하지 않다는 배심에서였다.

태봉의 마군장들(신숭겸이까지 포함해서)은 뻐젓이 왕건의 주위에 뭉쳐 돌았다.

한편으로 왕건은 시중이라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지만 어느편 세력에도 편중하지 않는 태도를 취하였다. 충주, 청주, 명주, 패서지역 어디건 동일하게 대하면서 인재들을 포섭하는데 전심했다.

이러한 왕건을 특별히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궁예가 총애하는 또 한명의 모사 최응이였다. 토산고을의 호족 최우달이라는 사람의 아들인 그는 당년 갓 스무살에 접어든 젊은 나이에 천하대사를 론하는데서 누구에게도 짝지지 않는다는 사람이였다. 궁예는 그를 늘 자기의 곁에 두고 문서일반을 통채로 맡기고있었다. 좀해선 누구와도 접촉을 잘하지 않는 그가 열흘전쯤 왕식렴을 만나고 얼마전에 하루건너 사이를 두고 능산과 금필의 집을 다녀갔었다. 의원의 말이 산삼과 말린 사슴피를 써보라 하기에 얻으러 왔다면서 능산의 집에서는 산삼을, 금필의 집에서는 말린 사슴피를 가져갔었다. 최응은 원체 몸이 허약하여 종종 약방문을 하는터라 얼핏 보면 례사로이 여길법도 하지만 다른 경로로도 얻을수 있는것을 부디 왕건의 결의형제들인 능산과 금필에게서 얻어간것은 좀 표나는 거동이 아닐수 없었다. 이것은 그가 왕건과 그의 결의형제들에게 관심을 두고있다는 표시였다.

아니나다를가 며칠후에 왕건이 최응의 도움을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일어났다.

그동안 즘즘했던 궁예의 의심증이 또다시 폭발하였다.

야밤삼경에 변복을 하고 남의 집 창문가에 다가가 이런저런 소리들을 엿듣고는 다음날 불러들여 문초를 하고 쇠몽둥이를 휘둘러 죽이는 놀음을 벌려놓던 궁예가 어느날 갑자기 왕건을 불러들여 따지고들었다.

간밤에 자기를 거세할 역모를 꾸몄다는것이였다. 갑자기 들이대는 생억지에 왕건은 당황해났다. 루루이 변명을 하고나섰으나 궁예는 요지부동이였다.

아연해진 왕건이 주먹을 부르쥐고 막부득한 경우에 취할 행동을 생각하고있는 순간 아뿔싸! 하는 소리와 함께 왕건의 발꿈치로 붓대가 굴러내려왔다. 얼굴을 들고 바라보니 궁예옆에서 문서장을 꾸미고있던 최응이 떨어뜨린 붓대를 주으러 허둥지둥 대청마루를 내려서고있었다.

허리를 굽혀 떨어뜨린 붓대를 주으면서 최응이 속삭이였다.

《시중! 역모를 인정하고 잘못을 비는수오이다.》

(역모를 인정하고 잘못을 빌라?!…)

그 순간 왕건의 뇌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궁예의 《관심법》, 궁예는 상대방을 꿰뚫어본다는 같지않은 관심법으로 자기의 령험함을 시위하고있었다. 그의 관심법을 인정하는것이 위기해결의 열쇠라는것을 그제야 깨달은것이였다.

왕건은 짐짓 자기의 《잘못》을 빌기 시작했다.

《실은 대왕님을 얕보고 그런 생각을 했더랬소이다. 순간이나마 그런 마음을 가졌던것을 용서해주시오이다. 대왕께서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계실줄은 정말이지 소인은 생각도 못하였소이다. 정말 령험하시옵니다.》

왕건은 그 순간에도 궁예를 춰올리는것을 잊지 않았다.

《와하하! 으하하하!…》

궁예는 머리를 젖히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러한줄 이제야 알았느뇨! 시중, 한나라의 정승으로서 그게 뭐요? 부끄러워하시오!》

《용서만 해주시오면 이후로 다시는 대왕님을 노엽히지 않겠소이다.》

《시중이 솔직해서 좋소. 사람이 때로 그런 억심을 가질수도 있는것이요. 잘못을 인정하였으니 내 용서하노라.》

《망극무지로소이다.》

왕건은 생거짓말을 주저없이 하였다.

《여봐라! 시중에게 금으로 장식한 말안장을 주라.》

궁예는 생각지 않게 상까지 내렸다.

《시중, 난 오늘 정말로 기쁘오. 내 그대를 믿겠소. 다른 생각 말고 돌아가 쉬시오.》

《대왕전하! 강녕하소서!》

왕건은 무릎걸음으로 돌아서 나왔다.

그날 당한 봉변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소스라쳐 일어서게 되는 왕건이였다.

왕건은 궁예에게 완전히 실망하고말았다. 궁예는 이미 갈데까지 간 사람으로서 더는 앞날이 없었다.

왕건은 우울해졌다.

큰일을 그와 함께 하기에는 이미 때가 지났으며 더는 그에게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게 되였다는것을 왕건은 절감하고있었다.

하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어차피 그를 넘어서야 하지 않을가.

왕건은 난감했다. 그가 제스스로 비켜서지 않는다 해도 언제건 누군가에게 밀려날것은 뻔한 사실이였던것이다. 그것만이 아니고 그 일의 주역이 왕건자신에게 차례지리라는 예감이 들면서 당혹감이 더해갔던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전부터 자기를 눈여겨보고있다는 사실이, 날이 갈수록 자기 주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있다는 사실이 이를 확신케 해주는것이였다.

금필을 비롯한 의형제들은 처음부터 왕건 자기를 임금의 자리에까지 밀어갈 잡도리를 하고 접어든 사람들이므로 더 말해볼 나위도 없는것이고 《이제는 태봉의 코흘리개들까지도 건시중만 바라보고있소이다.》하며 궁예의 폭정을 바로잡아줄것을 제기하는 관료대신들의 속내도 뻔한것이였다.

하지만 아닌말로 왕건은 아직은 자기가 만사람의 우에 군림하는 일인자로 되는것을 바라지 않고있었다. 거기에 궁예가 이미 앉아있는 이상, 그가 민심의 흐름을 옳게 타고 기발을 든 이상에는 그와 더불어 대사를 도모해가는것이 순차이고 바른길이라고 생각하는 왕건이였다. 궁예가 지금의 이 세 나라를 통합한 뒤에 이를 공고히 하는 일만 맡아안자고 하여도 보통 뻐근한 일이 아니라고, 그 뒤감당이야말로 자기가 죽기로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는 왕건에게 이제 당장 그것도 임금을 몰아내고서 그처럼 중대한 일의 전부를 자기가 전적으로 맡아안는다는것은 상상도 못한 난문제였던것이다. 그만큼 왕건은 궁예를 믿었고 의지하려 하였었다. 그러나 현실은 왕건이 바라는대로 되지 않고있었다.

겨레의 통합을 위해서 어쩔수없이 거쳐야 할 일이라고 명목을 세워보지 않은것도 아니였으나 어쨌든 사연은 어찌되였든지간에 뒤날에 사람들이 자기를 어찌 볼것인가 하는 생각이 그를 괴롭히고있는것이였다.

그렇게는 할수 없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다시한번…

고민속에 모대기던 왕건은 그만에야 모든것을 포기하고싶은 심중에 빠지고말았다.

왕건의 이러한 심리를 넘겨본 금필은 아연해졌다.

《형님! 그러시면 되겠소이까?》

격해진 금필은 무작정 칼을 뽑아들었다.

《이 칼이 형님과 이 아우의 목을 베여버리지 않게 하여주소서!》

《금필아우!…》

왕건은 두눈을 감은채로 한동안 옴짝 않고있었다.

이윽해서야 왕건은 나직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만 진정하라. 내가… 내가 잠시 나약해졌었구나.》

두눈을 슬며시 뜬 왕건은 금필의 손을 으스러지게 그러쥐며 부르짖었다.

《고맙네, 아우! 우리 좀더… 힘을 내세!》

《그래야 하구말구요! 형님!》

금필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최응이 형님을 크게 도왔소이다. 고마운 사람이오이다.》

《그래, 그를 잘 보호해야겠네!》

《알아들었소이다.》

금필은 그날로 왕건의 승인을 받고 송악에 있는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잘하는 녀종을 한명 골라 데려왔다. 최응이 가뜩이나 식사량이 작은데다가 음식까지 너무 가려 몸이 더 약하다고 보고 우선 최응의 식사부터 전임으로 시중들도록 하려는것이였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서 이 녀종이 음독살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저녁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던 녀종이 배를 움켜쥐며 쓰러져버린것이였다. 숨이 끊기는 순간에 녀종은 《운주사 중이…》라는 말만 남기였다.

하지만 최응은 즉시 알아차렸다. 두어시간전쯤에 왔다간 동냥중이 무슨짓인가 하고 간것임을 간파했던것이다.

빈손으로 오기도 멋적고 하여 운주사골안에 흔해빠진 부추를 조금 뜯어왔노라며 찬이나 해올리라 횡설수설하다가 보리쌀 두어줌을 받아가지고 달아났었다.

최응은 즉시 은숟갈을 들어 부추생채에 대여보았다. 대번에 퍼렇게 독이 배여올랐다. 녀종이 간을 보느라 먼저 먹어본것이 그만에 변을 당한게 틀림없었다. 이 사실은 곧 금필에게 알려졌다.

운주사란 쇠두레성밖에 있는 절간이였다. 금필은 능산과 술희와 함께 급히 수사망을 펴나갔다.

운주사 중은 해시무렵(밤 열시경)에 끝내 잡혀들어왔다. 쇠두레성밖 이십리 채 되지 않은 곳에 있는 여울가 나루에서 배를 기다리는 놈을 꽁져온것이였다.

금필은 즉시 문초에 들어갔다.

운주사 중놈은 후백제의 간무가 들여보낸 간자였다. 그사이 할 일은 다 하였으므로 돌아오되 떠나오면서 태봉국조정의 요인들중의 인물을 하나 죽이고 오라는 임무를 집행하다가 덜미를 잡힌것이였다.

중은 궁예가 신라 경문왕의 서자라는 소문도 제가 내돌린것이라고 증언했다. 그가 품고있던 살생부에는 궁예와 함께 왕건, 최응, 가려 그리고 금필과 능산 등 의형제들의 이름도 적혀있었다.

금필은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후백제의 간무가 왕건을 죽이려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있는 사실때문이였다. 금필은 간무가 자객에 의한 살인놀음을 더는 하지 못하게 결정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굳게 하였다.

금필은 중의 토설을 받아내는중에 또 한가지 중요한 단서를 잡아쥐였다.

중이 아지태를 가까이 한 사실이였다. 물론 아지태는 이 중이 후백제의 간자인줄을 꿈에도 모르고있었다. 다만 태봉국의 일등모사는 아지태 바로 자기라고 추어주는 중놈의 감언리설에 넘어가 그와 무릎을 마주하고 밤을 밝힌적이 몇번 있었을뿐이였다. 고구려계승이나 꿈꾸는 가려에 비해 바다건너 중원까지 그러안는 그러한 대제국을 꿈꾸는 아지태 당신이야말로 당대에 다시 없을 인물중의 인물이라는 소리에 벼룩이 간도 빼먹을 정도로 약은 아지태가 그만 넘어가고만것이였다. 아지태는 궁예에게 이 중이 령험한 인물이니 한번 등용해 써봄이 좋으리라고 간하기까지 하였었다.

금필은 후백제의 간무가 궁예의 두 모사인 가려와 아지태사이에 쐐기를 쳐서 둘이 다투게 하여 궁예의 조락을 유도해왔음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간무의 꾀에 넘어가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헤덤비는 아지태가 가련하기 그지없었다. 아울러 고구려계승의 뜻을 가로막으려는 아지태를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단호히 대처해야 할 일이다. 서둘러야겠다!)

금필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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