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 회)
한편 왕건은 목포앞 덕진포에서 견훤의 수군과 대치하고있었다. 왕건이 거느린 수군의 배는 다잡아 50척밖에 안되였다. 금필에게 절반을 떼여준때문이였다. 반면에 견훤의 수군은 100척이 넘고있었다
량쪽은 서로 대치한채 사흘을 넘기고서야 접전을 시작했다.
나흘째 되는 날 후백제수군이 먼저 일제히 공격을 해왔다. 첫 진이 맥을 뽑은듯 해지자 견훤은 또 두번째 진을 내몰았다. 처음엔 일자진이였는데 두번째는 팔자진이였다. 일이 되여가는 형세를 보아 왕건의 지휘선을 타격하자는 심산같았다.
어찌된 일인지 바람도 바다쪽으로 내불었다. 바람을 등진 견훤의 군사들이 기세를 올렸다.
눈깜짝할 사이에 왕건의 수군의 앞서렬이 갈라져나갔다.
《계속 공격하라!》
견훤은 주먹을 부르쥐고 고함쳤다. 생각같아선 당장에 칼을 빼들고 뛰쳐나가 자기의 무술을 한껏 펼쳐보이고싶었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연방 울려갔다. 공격을 계속하라는 신호였다.
돛폭이 찢어질듯 내부는 바람세를 타고 후백제수군은 말그대로 쏜살같이 내달아나갔다.
이제는 왕건의 수군이 뒤렬도 갈라지고있었다. 좀 있으면 왕건의 수군은 완전히 두동강이 날판이였다.
(드디여 때가 왔구나! 이제는 좌우로 에워싸고 고아먹는수다!)
견훤은 간무에게 소리쳤다.
《군사! 왜 그러고 섰소? 빨리 좌우토막들을 에워싸도록 해야잖소?》
견훤의 고함소리에 간무가 얼굴을 돌렸다.
《전하! 공격을 멈추어야 할것 같소이다.》
《뭣이라구? 왜 멈춘다는거요?》
견훤은 피대줄을 돋구었다.
《예감이 이상하오이다.》
《무슨 예감 말이요?》
《왕건이 지금 일부러 비켜서고있는것 같소이다.》
《일부러 비켜선다고?…》
《저것 보소이다. 돛폭을 모두 제끼고있소이다.》
간무가 손짓하는쪽을 견훤이 자세히 보니 왕건의 배들은 모두 돛폭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방향과 일치하게 돛폭을 돌려놓고있는것이였다. 틀림없이 의도적으로 하는 행동이였다.
저건 뭘 의미하는건가?… 왜 저럴가?… 지금껏 밀리우고있는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다.
의문은 인차 풀리였다. 견훤의 수군이 왕건의 수군대형을 가르고 지나는 그 순간을 노려 왕건의 군사들이 불뭉치를 던지기 시작한것이였다.
후백제수군의 배우로 불뭉치들이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들어왔다.
하나, 둘… 후백제수군의 배들에 불이 달리기 시작했다. 돛폭들이 불에 타며 하나, 둘 떨어져내렸다.
《화공이오이다. 왕건이 화공을 들이대고있소이다.》
간무의 얼굴이 이그러지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내돋고있었다.
(또 실패구나!)
간무는 점점 더 얼굴이 해쓱해지였다.
《이제는 어떡헌단 말인고? 군사! 빨리 수습책을 내놓소!》
견훤이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능창이 이놈은 어디 가서 헤매는고? 내앞에서 장담해놓고는 어디에 죽어자빠졌는가?》
견훤은 애매한 능창만 욕하면서 제가 그에게 앞질러 올라가 왕건의 수군을 막으라고 한것은 감감 잊고있었다.
《능창, 네놈을 릉지처참해버릴테다.》
견훤은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전하, 왕건의 수군사이에 끼운 일진은 이젠 틀렸소이다.》
《틀렸다고?!》
《그렇소이다. 일진은 왕건의 먹이로 주는수오이다. 군사를 거두소서. 다음에 대비해야 할것이오이다.》
《뭣이라구? 저 왕건에게 먹이를 준다구? 거두기는 무얼 거둔단 말이냐? 후진을 출동시키라!》
견훤은 리성을 잃고 막무가내로 고아댔다.
그러나 후진의 군사들은 주춤거리기만 할뿐 앞으로 나갈념을 못하고있었다. 눈앞에서 자기네 수군의 일진이 불고기가 되고있는것이 보이였던것이다. 왕건의 군사들은 불붙는 후백제수군의 배에 올라 제 마음대로 칼탕을 치고있었다. 눈앞의 그 참경에 후진의 후백제군사들은 넋을 잃고 굳어져있었다.
《전하! 공격을 삼가해야 하오이다. 뒤일을 생각하소서. 왕건은 지금 저 먹이로 만족할것이오이다. 아직은 우리가 력량상 우세하오니 다음번을 기다려보시오이다.》
간무는 애절하게 빌었다.
《제발 비오니 고정하소서, 전하!》
《어허이구… 미치겠구나!》
견훤은 그만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이날 견훤은 수군의 사분의 일을 잃었다.
눈앞에서 제 군사들이 죽어가는것을 두눈 펀히 뜨고 지켜보고있어야 했다.
날이 저물녘까지 제 할 일을 다 하고난 왕건의 수군은 남쪽으로 방향을 돌리고있었다.
왕건이 또 무슨짓을 하려는가? 창황중에도 견훤은 왕건의 다음행동이 두려워났다.
《군사! 저 왕건이 남으로 내려가는것이 무슨 의도인것 같소?》
《글쎄올시다.… 가만!》
간무의 눈살이 꼿꼿해졌다.
《왕건이 혹시 진도를 노리는것이 아니옵니까?》
《진도를?!…》
견훤의 두눈이 꿈쩍거렸다.
《왕건의 수군이 물우에서 어느덧 한주일이 지났소이다. 필시 그들에겐 물과 쌀이 떨어졌을것이오이다.》
간무의 말이 옳은것 같았다. 그러면 진도를 방어해야 할것이였다.
《하오면 빨리 진도를 수비할 대책을 세워야잖소?》
견훤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섰다.
《그러하오이다. 군사를 얼마간 돌려야 할것 같소이다.》
《여기 군사를? 진도에는 수비군사가 없는고?》
《얼마 되지 않사오며 그것도 백성들로 보강했을뿐이오이다.》
간무의 말에 견훤은 머리를 저었다.
《왕건이 허위기동을 하는게 아니요? 그가 이 목포를 단념할 까닭이 무엇이란 말이요?》
견훤은 목포의 위치가 중요함을 잊지 않고있었다.
목포를 누가 차지하는가에 따라 자기네가 서남해의 제해권을 쥘수도 있고 잃을수도 있는것이다. 더구나 목포의 한 귀퉁이에는 지금 왕건을 기다리는 라주군사의 수군이 있는것이다. 왕건이 이들과 합세해야만 견훤의 수군과 균형을 맞출수 있었다. 이제 진도로 얼마간의 병력이라도 떼여낸다면 그만큼 목포는 더 위험해진다.
《이보우, 군사! 진도는 자체로 수비케 하우. 이곳 군사는 떼여낼수 없소.》
견훤은 단호히 거절했다.
《하오면 진도는 먹히우고말것이며 왕건은 숨돌릴 여유를 얻게 될것이오이다.》
《진도를… 줘야지. 까짓거 먹이를 또 주잔 말이야. 그사이 우린 목포의 라주군사를 먹읍세. 그게 더 유리하지 않겠나?》
목포의 왕건이네 수군을 먹어치우기만 하면 그것도 밑지는 일은 아니였기에 간무는 견훤의 말에 선선히 응하였다.
그날 밤 량측은 제각기 서로 다른 곳을 공격하였다.
왕건은 진도를 쳐서 타고앉아 수군의 전투력을 회복하였으며 견훤은 뒤로 돌아 목포만의 라주 수군기지를 들이쳤다. 이 전투에서 견훤은 라주 수군을 완전소멸하지는 못하였으나 영산강 하구쪽으로 깊숙이 몰아넣어 왕건이 거느리고온 수군과 더는 협동을 할수 없게 만들어놓았다.
왕건이 예견했던바 그대로 싸움은 길어지고있었다.
진도에 틀고앉아 하루밤, 하루낮을 쉬는 속에서도 왕건은 금필과의 련계를 회복하기 위해 고심했다.
능창이 무안반도해안을 차단하고있어 금필의 행처를 찾기가 헐치않았던것이다.
왕건은 금필이 이전처럼 주도적으로 행동하여 자기 위치도 알리고 행동방향도 가늠하게 해주었으면 하고 고대하고있었다.
그 시각 금필도 초조하게 왕건의 지휘선을 기다리고있었다. 그간의 싸움으로 능창의 발목을 붙들고있으라는 초기 지시는 수행한셈인데다 후백제의 서해안을 깨끗이 세척해버렸던것이다.
견훤은 목포남쪽해안에서 더 나올념을 못하고 목포앞바다에서만 들락날락할뿐이였다.
금필의 활약으로 후백제수군은 완전히 주도권을 잃고있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되면 왕건에게도 금필에게도 불리할것이였다.
이러나저러나 여기는 후백제의 령역인것이다.
라주의 군사들은 후백제의 보군이 완전히 제압하고있는 상태였다. 바다싸움에서 라주군사의 지원을 바란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였다.
금필은 목포의 라주수군이 견훤에게 밀려 영산강대안에 갇혀있는것과 왕건이 진도를 차지하고 형세를 회복할 생각을 하고있다는것을 알수가 없었다.
금필은 다음의 지시를 앉아서 기다릴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싸움을 벌려 자기의 위치와 앞으로의 기도를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왕건이 금필에게서 바라는바와 일치되는것이였다.
이틀을 싸움이 없이 지내고나니 금필의 군사들도 근질거려했다.
군사들을 하품이나 하며 앉아있게 하다니, 내가 또 해이되였어. 이러한 자책속에 금필은 서둘러 일을 꾸며나갔다.
먼저 대담하게 목포고을을 들쑤셔댔다. 다섯명씩 무은 몇개의 조들로 진행하는 소규모습격전이였다. 한편으로 능창이 지키고있는 무안반도주변의 무인도들에도 기습을 조직하였다. 낮에 물녘에서 감시를 해두었다가 밤에 들어가 병졸들의 목을 따오도록 했다.
소규모의 습격전이 예상외로 전과가 컸다.
무인도에 널려있던 능창의 수군이 고이도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작은 무리로 널려있다가 죽느니 한곳에 합쳐져있자는 심산인것 같았다.
섬들에 박혀서 해안을 감시하던 방법을 버리고 이제는 무리지어 배를 타고 순찰을 했다. 숨어있을 때보다 드러난 적의 행동이 오히려 적정 판단에 유리했다. 금필은 고이도에 모인 적 수군을 일망타진하고 그다음 목포고을을 크게 들이치기로 결심했다. 목포고을은 견훤의 군사들에 의해 일시 점령되여있었다. 목포의 오다린도 종례가 있는 라주성으로 피신해가있었다.
금필이 행동계획을 세우고있는데 목포고을에 파했던 어느 한 기습조가 적의 전령을 하나 붙잡아왔다. 그의 품속에서 뜻밖에도 견훤의 편지가 흘러나왔다. 능창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견훤은 편지에서 능창의 무능을 지적하고 책임을 묻고있었다. 왕건의 수군을 미리 막지못하여 목포에서의 싸움이 패하게 하였은즉 그 죄를 알고 스스로 벌을 청하라는것이였다.
(이 편지를 보면 능창이 어떻게 나올것인가?)
금필은 이 편지를 보는 순간 한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이 기회에 능창을 돌려세울수는 없겠는가?!)
성사될수도 있을것 같았다.
금필은 편지를 건사하였다. 잡혀온 후백제전령이 능창의 행처를 딱히 모르는것을 알고는 일단 가두어놓게 한 다음 능창을 찾는데 모든 힘을 돌렸다.
금필은 끝내 고이도에 있는 능창의 행처를 알아내였다.
금필은 능창의 됨됨이를 비교적 자세히 알고있었다. 그는 견훤이 옛 백제땅을 휩쓸며 일진광풍을 일으키던 초엽엔 견훤을 별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자신 옛 백제땅의 서남해일대에서 신라조정에 반기를 든 배군들을 규합해서 해상폭동군을 무어가지고 한창 이름을 날리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는 견훤의 복속요구를 단번에 거부해버리였었다.
견훤의 측근들은 능창을 제거하자고 주청했다. 그러나 견훤은 그때마다 머리를 가로 저었다. 바다를 전혀 모르는 견훤으로서는 장차 능창을 내세워 바다를 쥐려고 한것이였다. 견훤은 능창에게 자기의 한쪽팔이 되여달라고 했다. 륙지에서는 견훤이라면 바다에서는 능창이라는것이였다. 능창은 견훤이 자기와 대등한 지위에서 대해주겠다는 소리에 그에게 복속되고말았다.
처음에 견훤은 능창을 우대하였다. 자기의 모사들과 한자리에 세우고 대소사를 론했고 바다에 한해서는 능창의 조언을 적극 들어주었다. 지금의 후백제 서해와 남해의 수군은 말짱히 능창의 손에서 꾸려진것이였다. 그야말로 견훤의 한팔이 되여준것이였다.
그런데 룡상에 앉아 시일이 지나면서 견훤은 달라졌다. 능창에게 하사된 품계도 문제려니와 (그는 겨우 정5품에 해당되고있었다.) 싸움이 패하면 전적으로 그 책임을 능창에게 미는것이였다.
6년전 왕건의 라주공략때도 그랬었다.
능창은 처음엔 왕건의 수군을 가법게 보아 선수를 떼웠지만 결정적인 대목에 와서는 옳게 행동했었다. 그때 능창은 왕건의 수군을 전면대결이 아니라 우회포위공격으로 소멸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그것도 바다에서 순수 해전으로만 결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에게 모든 전권을 달라고 하였었다. 그래야 자기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견훤은 능창을 뒤전에 밀어놓으면서 수군의 삼할도 되지 않는 인원을 주면서 왕건의 앞을 막으라고 하였다. 능창은 그때에도 내키지 않는 싸움을 하였었다. 기본주력은 견훤에게 떼운채로 기본전장도 아닌 무인도주변해역에서 아이들 골목대장 같은짓만 하다말았었다. 그런데도 견훤은 능창에게 그 책임을 물었었다.
화가 동하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리해하려 하면서 능창은 꾹 참고 재기를 노려 다시금 수군을 꾸려내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기슭으로 밀려나게 되였다.
싸움은 견훤이 제가 하고 실패의 책임은 능창에게 묻는것이였다.
이번에도 능창이 죽었소 하고 받아들일가?…
금필은 이전에 라주에 머물러있으면서 료해한 능창에 대한 자료들을 다시금 하나하나 련결해보았다. 모름지기 그가 돌아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능창을 만나는 수다.
금필은 고이도에 대한 기습을 조직했다. 목적은 능창을 산채로 잡아오는것이였다.
그날 밤 능창을 사로잡는 일은 성공했다. 술희가 이끄는 기습조가 일을 제낀것이였다.
술희는 자기의 철퇴사슬로 능창의 팔목을 감아쥐고 함께 뒹굴다가 다같이 맥이 빠져 뻗어버리고말았었다. 둘이 턱수염을 함께 물고 늘어진것을 군사들이 들것에 담아들고 금필의 앞에 날라왔다.
금필은 능창이 정신을 차리자 술상을 차려 잘 대접하고나서 견훤이 써보낸 편지를 보이였다. 능창은 견훤의 편지를 두번세번 곱씹어 읽어본 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겠소. 내 지휘기의 후백제라는 글자우에 마진이란 글자를 덧새겨주시오. 이 시각부터 나는 왕건의 수하요.》
《그러니… 마진에 귀속되겠다 그 말씀이요?》
《그렇소.》
《환영하오.》
금필은 능창의 두손을 꽉 잡아주었다.
다음날 금필은 능창의 수군과 나란히 목포를 향하여 떠났다.
그무렵에 왕건은 다시금 견훤과 대치하고있었다. 량쪽은 금시 공격을 시작하려 하고있었다.
《속도를 높이라! 빨리 공격에 합세해야겠다.》
금필은 선두함선에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그때였다.
《금필형님! 저길 보소이다. 능창이 저놈이 하는짓을…》
금필은 술희의 다급한 웨침소리에 얼핏 옆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니, 저놈이?!…)
술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능창이 타고있는 함선의 지휘기가 어느새 《후백제수군대장 능창지휘기》라는 본래의 글자로 바뀌여있었다.
(그러니 네놈이… 거짓귀속을?!…)
금필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형님! 어서 계속 전진하시우. 저놈은 내가 처리하리다.》
술희는 옆에서 가지를 치고 따라오던 함선우로 휭 날아넘어갔다.
《그놈의 목을 단칼에 베여버리라! 그리고 마진이란 글자를 다시 덧붙여서 그놈의 이름자가 씌여진 지휘기를 그냥 날리게 하라!》
《알아들었소이다.》
술희는 몇척의 함선을 휘몰아가지고 능창이 탄 지휘선을 좌우로 포위해들어갔다.
얼마쯤 있어 술희는 군사들과 함께 능창의 배우에 뛰여올랐다.
금필이 계속 전진하면서 뒤돌아보니 술희와 능창의 격투가 쉽게 끝날상싶지 않았다. 게다가 귀속되였던 후백제의 함선들은 우왕좌왕하면서 금필이 자기를 따르지 않고 제자리돌이를 하고있었다.
(안되겠구나!)
금필은 자기가 탄 지휘선을 돌려세웠다. 사태를 알아차린 금필수하의 함선들이 몽땅 돌아서서 능창의 수군을 에워쌌다.
금필이 능창의 지휘선에 뛰여오르는 순간에 술희의 철퇴가 드디여 능창의 머리를 명중했다.
능창이 쓰러지는것을 보고서야 후백제수군은 수그러들었다.
《배신자는 누구든 이렇게 될것이다. 이후에 두번다시 마음을 돌려먹는자가 있을 땐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다.》
금필의 웨침소리에 후백제군사들은 일제히 엎드리며 복종의 뜻을 표시했다.
《앞으로!》
금필은 다시금 전진할것을 명령했다.
둥둥둥…
북소리를 울리며 금필은 전진해나갔다.
금시 접전을 하려다가 멈추어선채 옆구리에 나타난 함선들이 어느 편인지를 몰라 주춤거리던 량쪽의 대형들중 왕건의 함선들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그들의 시야에 나란히 펄럭이는 두개의 지휘기가 들어왔던것이다.
하나는 《마진수군 부장 유금필지휘기》라는 글발이 씌여진것이고 다른 하나는《마진수군 부장 능창지휘기》라는 글발이 씌여진것이였다.
견훤은 신음소리를 내뱉았고 간무는 무릎까지 꺾으며 주저앉았다.
능창이 죽은줄을 알리 없는 견훤은 자기 수군이 왕건에게 합세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싸움은 해보나마나라는것을 즉시 알아차렸던것이다.
능창이 왕건에게 가붙다니… 견훤의 얼굴은 거멓게 죽어들어갔다.
왕건이 재빨리 수군의 일부로 남쪽을 둘러막는통에 견훤은 삼면포위에 들었으며 후백제수군은 완전히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견훤과 간무는 눈물을 흘리면서 퇴각을 서둘렀다. 후백제수군은 지는줄 알면서도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밀집대형으로 늘어섰던 탓에 퇴각하는것도 쉬운것이 아니였거니와 허나새나 임금의 퇴각을 엄호해야 했던것이다.
왕건과 금필은 량쪽에서 서서히 후백제수군을 조이였다.
뒤이어 피의 접전이 시작되였다.
창과 칼이 란무하는 속에 주검이 늘어나면서 바다물이 뻘겋게 물들고있었다.
후백제수군이 절반으로 줄어든무렵 왕건은 싸움을 중지시켰다. 무모한 죽음을 내지 않으려는것이였다. 후백제의 남은 수군도 더는 버티지 않고 항복하였다.
어느덧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있었다.
금필은 왕건의 배우에 올라 뜨겁게 포옹하였다.
싸움은 끝났다.
왕건은 전장을 수습케 하고 뭍으로 배를 대게 했다.
싸움이 지나간 전장은 참혹했다.
배우에 뒹굴고있는 목없는 후백제군사들의 시체가 보는 사람들의 눈을 아프게 자극했다.
귀로에 오른 일행은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금필이 쳐다보니 왕건의 얼굴도 밝지 못했다. 웬일인지 이기고서도 기분이 나지 않는 모양이였다. 싸움을 치른 뒤에 매양 느끼는 기분이였다.
왕건은 포로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한 다음 혼자말처럼 금필에게 이렇게 물었다.
《수고했소, 금필아우. 그런데 아우! 앞으로 이런 싸움을 얼마나 해야 되겠나?》
《그 끝을 어찌 알겠소이까? 여하튼 견훤이 무릎을 끓을 때까지가 아니겠소이까?》
《그 말은 옳네만… 나는 앞으로 신라와는 싸우지 않으려네. 신라만은 싸우지 않고 포섭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왕건은 여전히 혼자소리처럼 되뇌이고있었다.
금필은 지금 왕건이 동족의 죽음을 놓고 가슴아파한다는것을 절감했다.
라주, 목포일대는 다시금 안정되였다.
그동안 견훤에게 야금야금 먹히웠던 일부 지역을 다시 되찾은것은 물론 목포남쪽으로도 령역을 확대했다.
목포성주 오다린도 되돌아왔다.
그는 왕건과 마주하자 눈물부터 흘렸다. 어느덧 그의 머리도 백발이 되여가고있었다. 왕건이 오씨부인의 잉태소식을 알려주자 오다린은 날듯이 기뻐했다.
금필도 그 순간 림씨부인이 무척 보고싶어졌다. 금필은 자기 마음속에도 녀인을 그리는 마음이 자리잡혀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후더워났다.
이 시각 견훤과 함께 패주하는 간무의 머리속엔 말할수 없는 적의가 솟구쳐흐르고있었다.
바다를 잃었다고 주저앉을 내가 아니다. 아직은 딛고설 땅이 있는한 반드시 다시 일어설것이다. 쇠두레! 쇠두레를 안으로부터 허물어야 한다. 나의 간자들이 그 일을 꼭 해낼것이다. 꼭!…
911년 여름 어느날, 왕건은 궁예의 호출을 받고 쇠두레로 올라왔다. 궁예는 왕건이 그동안 변방에 나가 공적이 컸다면서 관등을 뛰여올려 파진찬에 정하고 시중으로 임명했다. 태봉국 조정의 정승이 된것이였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일컫는바 그대로 우로는 왕 한명만 받들뿐이고 밑으로는 만백성의 우두머리가 되였다.

